얇은 슬립만 걸친 한유라를 차마 쳐다보지 못한 채 바로 안방 화장실로 들어간 심강열이 안방 화장실을 둘러 보았다. 여긴 훨씬 화려하네.그리고 구석에 벗어둔 한유라의 속옷이 눈에 들어오고...빠르게 고개를 돌린 심강열이 수도꼭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흠... 좀 헐렁해졌네.“집에 공구함 같은 거 있어요?”“아... 아, 네.”여전히 멍한 표정의 한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창고로 들어가 한참을 뒤지던 한유라가 가격표도 뜯지 않은 공구함을 들고 나타났다.“여기요.”그때, 고개를 돌리지 않고 손만 뻗은 심강열의 손가락이 순간 한유라의 가슴을 스쳤다.이 세상에서 가장 폭신한 물질과 닿은 듯한 촉감에 심강열은 감전이라도 된 듯 다시 팔을 접었다.당황한 건 한유라도 마찬가지.두 사람 모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침묵은 한동안 이어졌다.다시 공구함을 받아든 심강열은 방금 전 그 터치는 잊고 수도꼭지에만 집중하려고 애쓰고 또 애썼다.이상하네. 여자랑 관계를 안 가져본 것도 아니고... 왜 이러는 거야. 다 큰 어른이 돼서는...하지만 한참 스스로를 설득해 봐도 방금 전 그 전율은 다시 심강열의 가슴을 두근거리기 만들었고 피가 꺼꾸로 솟듯 온몸이 뜨거워졌다.평소 친구들이 누가 몸매가 좋더라, 속궁합이 어떻더라는 말을 할 때면 심강열은 그저 말없이 고개만 젓는 타입이었다.사람들은 남자가 하반신으로 생각하는 동물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심강열은 자신만큼은 성적인 욕구에 큰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내가 경험이 너무 적었던 걸까?머릿속의 기억을 지울 수 없으니 심강열은 최대한 한유라의 존재를 잊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한편, 여전히 멍하니 서 있는 한유라도 빠르게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아까 도망쳤어야 했나? 아니지. 그럼 너무 유난떠는 것 같잖아. 그냥 실수인데.그럼 아무렇지 않은 척 넘어가는 게 맞나? 아니지. 그럼 내가 너무 닳고 닳은 여자 같잖아.또 뭘 더 달라고 하면 어떡하지? 이대로 도망치면 강열 씨
이에 김현숙의 눈이 동그래졌다.“그건 너무 이르지 않아? 유라가 결혼이 급할 나이도 아니고.”하지만 하시율도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결혼하고 나서 연애하는 것처럼 살면 되지... 현숙아, 내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유라가 정말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래. 내 딸처럼 끼고 살거니까 걱정하지 마. 오후에 우리 애들 신혼집이나 보러 갈까? 애들 첫 집은 무조건 내가 살 거니까 넌 가만히 있어!”머릿속에 이미 두 사람의 결혼생활을 그리기 시작한 하시율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애 낳으면 내가 다 길러줄 거야.”...한편 방금 전 두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한유라와 심강열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마법처럼 방금전까지 분수처럼 터져나오던 수도꼭지도 물 뿜기를 멈추고 두 사람이 어색하게 떨어졌다.잠깐의 침묵 후 한유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어떡하죠?”심강열도 착잡하긴 마찬가지였다.어제 자고 가라고 할 때 그냥 갈걸. 그럼 이런 일은 없었을 거 아니야. 그냥 수도꼭지 조금 조이면 되는 거였는데 왜 이렇게 된 거지. 정신을 어디 두고 있었던 거야, 심강열...이때 뭔가 다짐한 듯 한유라가 벌떡 일어서더니 얼굴에 묻은 물을 쓸어내렸다.“내가 직접 나가서 말씀드릴게요. 우리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이렇게 오해받는 건 아니잖아요?”한유라가 나가려던 그때, 심강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하얗고 가는 손목이 닿으니 또다시 묘한 전율이 심강열의 온몸을 휘감았다.“잠깐만요.”다시 후다닥 손을 놓은 심강열이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말씀드릴게요. 유라 씨는 옷 갈아입고 나와요.”그제야 자신의 꼴을 살펴보던 한유라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다 젖은 슬립... 이 꼴로 나갔다간 아무리 해명해도 변명으로 들릴 게 분명하니 한유라도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대충 수건으로 몸을 닦은 심강열이 심호흡을 길게 하고 거실로 나갔다.“엄마, 이모. 좋은 아침이에요.”헐벗은 아들의 모습에 하시율이 미간을 찌푸렸다.“아무리 곧 가족이 될 사이라지만 기본적인
하지만 언제까지 허리에 타올만 두른 채 돌아다닐 순 없으니 심강열은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다.한편, 역시 옷을 갈아입은 한유라는 침대에 주저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내 생에 이렇게 창피한 순간이 있었던가? 그것도 어른들 앞에서.혀 깨물고 죽은 척이라도 하고 싶은 한유라였다.방금전 힐끗 밖을 내다보니 주방에서 아침을 만드느라 시끌벅적한 두 엄마는 누가 봐도 가족의 모습이었다.하... 이걸 어떡하지.요리엔 젬병인 김현숙은 힐끔힐끔 방 쪽을 쳐다보았고 한유라의 등장에 바로 눈을 반짝였다.하지만 그녀보다 먼저 달려간 건 바로 하시율이었다.“유라야, 많이 피곤하지. 아줌마가 이것저것 만들어봤어. 주방에 들어오는 건 너무 오랜만이라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여전히 열정적인 하시율의 태도에 한유라는 어리둥절했다.강열 씨가 제대로 해명 안 한 건가...“이모, 저...”“됐으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마. 너도 지금 얼마나 창피하겠니. 이래 봬도 네 엄마도 이 이모도 젊었을 때가 있었고 다 이해해. 그리고 나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다. 네가 헤픈 애라고 생각하거나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다 우리 강열이 탓이지 뭐. 걱정하지 마. 이 일은 무조건 책임질 거니까.”흐뭇한 미소를 짓는 하시율의 눈이 심강열처럼 예쁘게 휘어졌다.하지만 한유라는 여전히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강열 씨가 설명 안 드렸나요?”“설명했지. 너랑 결혼하겠다던데?”하시율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때 마침 심강열이 작은 방에서 나오고 하시율이 더 목소리를 높였다.“유라 같은 애 어디서 못 만난다 너. 이런 애가 너랑 결혼하겠다고 하는 걸 영광으로 생각해.”심강열도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였다.하지만 충격적인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얼렁뚱땅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하시율은 두 사람더러 당장 혼인신고하러 구청으로 가자며 부산을 피웠다.두 사람이 아무리 해명해도 하시율도, 김현숙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렇게 두 사람 모두 출근도 하지 못한 채 구청으로 “압송”되었
화장실을 가겠다는 건 그저 한유라가 몰래 도망치기 위해 대충 둘러댄 핑계에 불과했다.하지만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하는 목소리에 한유라는 마음이 착잡해졌다.“아니에요. 아침에 홀딱 젖었더니 감기 기운이 좀 있어서.”하시율 옆에 서 있는 심강열도 제정신이 아니었다.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건지, 어쩌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려봐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사실 아까 한유라가 조용히 자리를 뜰 때 심강열은 당연히 한유라가 도망치는 줄 알았다.그가 아는 한유라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결혼을 고분고분 받아들일 사람이 아니었으니까.그런데 왜 돌아온 거지?이때, 하시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자, 이제 우리 차례야.”하시율이 심강열과 한유라의 등을 떠밀었다.서류를 제출하고 사인하고 그 흔한 서로를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까라는 대사 한 마디 없이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마친 법적인 부부가 되어버렸다.하시율은 입꼬리가 귀에 걸린 채 김현숙의 손을 잡았다.“이제 진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오후에 바로 집 보러 가야겠어. 식은 다음 달로 정하는 게 어때? 걱정하지 마. 우리 유라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화려한 신부로 만들어줄 거니까. 네 딸 억울하지 않게.”“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그리고 결혼식도 너무 성대하게 말고...”“안 돼! 요즘 스몰웨딩이니 뭐니 해도 한 번밖에 없는 결혼식, 나 결혼해요 세상에 떠벌리고 다니면 뭐 또 어때?”...두 엄마의 수다 속에서 심강열은 한유라를 힐끗 바라보았다.어딘가 우울해 보이기도 하고 이미 체념한 듯하기도 한 묘한 표정이었다.하지만 심강열은 달랐다.이 갑작스러운 결혼이 불쾌할만도 한데 그의 마음속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감정은 놀랍게도 기대감이었다.한편, 한유라는 끝없는 소용돌이에 떠밀려가는 기분이었다.아직 전 연애를 제대로 정리도 못했는데 다음 날 바로 결혼이라니.요즘은 막장드라마 스토리도 이렇게 안 쓰겠다.이게 지금 현실이 맞긴 한 걸까?한유라 역시 심강열을 힐끗 바라보았다.저 사람도 표
한유라 어머니의 말은 한유라의 심장에 못처럼 박혀 그녀는 고통에 질식할 것 같았다.전의 그녀가 믿지 않으려고 했었던 것을 지금의 그녀는 완전히 예상할 수 있었다.두 사람이 사랑했던 때에 민하준은 상처만 남을 말들을 내뱉지 않았지만 그 시간이 지나간 뒤, 민하준은 아무렇지도 않게 한유라에게 상처를 남길 말을 내뱉었다.민하준이 자신의 전처를 밟고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건 그가 한유라를 밟고 위로 올라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사랑은 한순간의 설레임에 불과했다, 그 설레임이 지나간 뒤, 바랄 수 있는 건 또 무엇이 있을까?한유라는 갑자기 느껴지는 추위를 견딜 수 없었다.평소 한유라의 어머니는 한유라가 좋아하는 그 어떤 것도 하찮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녀가 한유라를 위해 선택한 길은 제일 순탄한 길이었다."너랑 민하준 일 때문에 욕먹을 일은 없을 거야, 시율 이모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한유라의 어머니는 이미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기에 한유라는 더 이상 걱정할 거리도 없었다."우리도 젊었던 시절이 다 있었으니까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다 알고 있어. 하지만 시율 이모가 너를 많이 좋아하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그건 신경 쓸 필요가 없어, 너는 심 씨 집안에서 자기 자리만 잘 지키고 있으면 돼."그 말을 들은 한유라가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봤다."어머니, 심강열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시율 이모가 그 여자를 쫓아낸 거잖아요."한유라의 말을 들은 그녀의 어머니가 하찮다는 듯 웃었다. "그 여자 수작을 부려서 심강열이랑 만난 거야, 운 좋게 심강열을 만났지만 시율이 시험을 못 넘긴 거지. 그 천억의 유혹을 이겨냈다면 심 씨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 지도 모르지. 그때 너랑 심강열이 결혼을 취소해서 시율 이모가 그 여자를 받아들여볼까 생각했었는데.” “1000억에 마음이 동해서 떠나갔다고 들었어요.""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심강열이 말해줬어요."한유라의 말을 들은 그녀의 어머니의 표정이 굳
강서진이 박수혁을 보며 물었다.그도 이런 곳에서 소은정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상황은 늘 사람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었다. 소은정과 전동하의 일거수일투족에서 서로를 향한 마음이 느껴졌다.두 사람을 모르는 이들도 눈길을 보내는 마당에 박수혁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이는 박수혁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박수혁은 굳은 얼굴로 제자리에 앉아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려 노력했다.그 모습을 발견한 강서진이 다시 물었다."형, 다른 데 가서 한잔할까?"강서진은 박수혁이 두 사람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말을 꺼냈지만 박수혁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리고 두 사람이 자리를 옮기기 전, 소은정과 전동하가 먼저 일어났다.강서진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소은정과 전동하가 떠난 뒤, 박수혁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말이 돼? 저런 놈을 좋아하다니, 내가 저놈보다 못한 게 뭐라고.""형, 사람마다 안목이 다르잖아, 그냥 내버려 둬."퍽-강서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수혁이 컵을 깨버렸다. 그 모습은 마치 미치광이 같기도 했다."내버려 두라고? 뭘 내버려 두라는 거야?"박수혁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럴 수는 없지."말을 하며 일어서던 박수혁은 어지러움에 몸을 휘청였다."형, 너무 급하게 마셔서 그래, 내가 방 하나 잡아줄 테니까 거기에서 쉬어."강서진이 박수혁을 부축하며 말했다.그는 박수혁에게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되었기에 얼른 방을 하나 잡았다.하지만 방을 잡고 몸을 돌리고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박수혁이 사라지고 말았다.강서진은 어리둥절해졌다, 박수혁이 먼저 가버린 걸까?한편 박수혁은 어지러운 머리를 잡고 힘을 출 수 없었다.그는 이상함을 느꼈지만 어디가 이상한 것인지 말할 수 없었다.박수혁의 손에는 방금 전, 한 웨이터가 그에게 쥐여준 쪽지가 쥐여있었다."박 대표님, 방금 소 씨 성을 가진 여자분이 이걸 전해주라고 하셨어요."
박수혁은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힘겹게 일어났다.어젯밤, 그는 오랜만에 술에 취했다. 분명 많이 마시지 않았지만 그는 금방 취했었다.그때, 까무잡잡한 팔이 그의 팔을 잡더니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수혁아, 왜 더 안 자?"그 목소리를 들은 박수혁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하더니 차가운 눈으로 옆을 바라봤다.여자는 옷을 풀어헤친 채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그 옆모습은 박수혁의 마음 속에 자리 잡은 그이와 무척 닮아있었다.하지만 지금의 그는 정신이 말짱했기에 그녀가 소은정이 아닌 안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안진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박수혁은 말하지 않아도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 수 있었다.다음 순간, 박수혁은 망설임 없이 안진의 목을 그러쥐었다. 그리고 무섭도록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네가 수작질 부린 거지? 그렇지?"말을 하는 박수혁의 손에 더 많은 힘이 가해졌다. 그의 머릿속에 무서운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 여자를 죽여.그 누구도 감히 박수혁을 상대로 계략을 꾸밀 수 없었다.그는 그제야 어젯밤 술을 조금밖에 마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왜 어지러웠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박수혁 때문에 순식간에 잠에서 깨어난 안진은 박수혁의 손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점점 파래졌다. 안진은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그 느낌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그녀는 정말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하지만 그때, 문밖에서 연속으로 노크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박수혁이 그 소리에 정신이 팔린 사이, 안진은 고개를 돌리고 박수혁의 손에서 벗어나 게걸스레 숨을 몰아쉬었다.몇 십 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안진은 마치 지옥을 경험하고 온 것 같았다.만약 소은정이었다면 박수혁은 이런 짓을 했을까?박수혁의 차가운 눈빛이 안진의 얼굴을 훑었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극도의 공포감을 형성했다."안진, 너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안진의 몸 위를 물들인 울긋불긋한 멍과 흐트러진 차림새를 박
안진은 생사에 무던해진 사람이었다, 해외에서 테러리스트를 만나는 건 꽤 흔한 일이었기에 박수혁의 협박도 그녀에게 그다지 무서운 건 아니었다.안진이 박수혁의 역린을 건드렸기에 그가 화를 내는 것뿐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그랬기에 그녀는 이해할 수 있었다.정신을 차린 그녀는 다시 박수혁의 옷깃을 잡고 자신 쪽으로 당겼다.안진은 굴복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박수혁, 나 너랑 장난하는 거 아니야. 네 아버지 목소리 들어볼래?"안진이 차가운 박수혁의 얼굴을 보며 휴대폰을 집어 들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이어 휴대폰 너머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가씨, 무슨 일 있으세요?""사람은 아직 살아있어?""네.""그럼 전화받게 해."안진이 박수혁을 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그리고 다음 순간, 두려움에 잔뜩 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살려줘, 수혁아, 아버지, 살려줘요. 저 봉원이에요, 이 사람들이 돈을 달라고 하면 그냥 줘요. 저 병도 재발했고 여기 주위에서 전부 싸움 중이에요…"박봉원은 침착함을 잃고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그 목소리를 들은 박수혁의 눈빛이 더욱 예리해졌다.이 전화로부터 박봉원이 국내에 있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하지만 안진은 금방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눈으로 박수혁을 바라봤다."박 대표님, 이제부터 우리 사이는 내가 말한 대로 흘러가는 거야."안진이 웃으며 천천히 박수혁을 밀어내더니 옷을 입기 시작했다.그녀는 주동권을 거머쥐는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협박과 유혹을 통해서든 아니면 다른 사람을 계략에 빠지게 해서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다급한 노크 소리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박수혁은 문 앞으로 가더니 차가운 얼굴로 문을 열었다.문 앞의 이들은 그를 보곤 놀라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그들은 이 룸에서 태한그룹의 대표님 박수혁이 나올 줄 몰랐다는 듯한 얼굴이었다.박수혁은 놀라움으로 물든 기자들의 눈빛을 마주했지만 화를 낼 여력이 없었다, 이 모든 것도 안진이 꾸민 짓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