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은 방문객 명단에 사인을 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눈치 빠른 성강희는 그녀를 발견하고 달려와서 알랑방귀를 뀌었다.“우리 은정이 오늘따라 눈이 부시네. 연예인들도 초대했는데 너한테 비교하니까 일반인 같아. 치마가 참 예쁜데 많이 짧네?”소은정은 이를 악물며 표정관리를 했다.“발목까지 내려오는 게 짧다고? 웨딩드레스인 줄 알아?”성강희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우리 할아버지가 꿈에서도 손자며느리를 그리시는데 네가 웨딩드레스 입고 나랑 한 바퀴 돌아준다면 아마 축의금으로 건물 한 채를 사고도 남을걸?”소은정이 곱지 않게 그를 흘기며 말했다.“아마 넌 곱게 파티장을 떠나지는 못하겠지.”그랬으면 최소 두 다리 골절이었다!성강희도 눈치 있게 입을 다물고는 그녀를 이끌고 어르신 앞으로 갔다.“할아버지, 제가 누구를 데려왔나 한 번 보세요. 손자며느리감으로 어때요?”소은정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 당장이라도 이 놈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싶었다!주변에는 조금 전 도착한 성강희의 친척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그 장면을 보고 모두 실소를 터뜨렸다.성 씨 어르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소은정을 바라보았다.소은정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노인에게 인사하고는 준비한 선물을 꺼냈다.“할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 건강하세요!”어르신은 연세가 드셨지만 무척 정정하고 두뇌회전도 빨랐다.선물을 꺼내본 그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골동품을 보고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네 아버지가 신경 많이 썼군.”소은정도 웃으며 말했다.“마음에 드신다니 안심했어요!”성강희가 옆에서 너스레를 떨었다.“할아버지, 은정이 어때요? 손자며느리로 손색이 없지 않나요?”소은정은 주먹을 날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아냈다.성 씨 어르신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은정이는 나한테 딸 같은 아이야!”주변에서 웃음을 터뜨렸다.하지만 성강희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사라졌다. 장난 좀 쳤다고 친구에서 엄마뻘이 되어버리다니!‘장난 그만 쳐야겠어! 이러다가 소은정한테 엄마라고 부르게 생겼군!
성강희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주연화는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성강희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주석재가 성 씨 가문 전체를 날려버릴 뻔했고 그 일로 성 씨 가문도 주석재를 원수처럼 생각하게 됐지만 성강희를 향한 주연화의 마음은 전혀 변함이 없는 듯했다.성강희가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는 순간, 주연화가 눈을 반짝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당황한 성강희는 의리고 뭐고 다 팽개치고 혼자 도망갈 태세를 취했다.“소은정, 나 먼저 갈게. 혼자 조심해!”말을 마친 그는 다급히 파티홀을 빠져나갔다. 너무 급히 나가느라 친척들의 손에 든 잔을 부딪치기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조심성 없다고 그를 탓하던 친척들은 주연화를 보자 말을 바꾸었다.“빨리 도망가. 절대 잡히면 안 돼!”소은정은 황당한 표정으로 시트콤 같은 이 장면을 바라보았다.반면 박수혁은 그녀와 단둘이 있을 시간을 벌었다는 생각에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녀와 단둘이 대화를 나눈 게 언제였던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다.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가녀린 손을 잡고 억지로 밖으로 끌었다.강 건너 불구경 하고 있던 소은정은 당황해서 손을 뿌리쳤지만, 남자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그녀는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차갑게 말했다.“이거 놔.”이런 장소에서 사람들에게 그와의 사이를 오해 받고 싶지 않았다.그녀의 말투가 너무 매몰찼던 탓인지 박수혁이 그녀의 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뒤돌아서서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남자가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턱짓을 했다. 그곳에는 휴게실이 있었다.“저기서 그냥 조용히 대화만 하려는 건데 그것도 힘들어?”그녀를 이상한 곳으로 끌고 갈 생각은 없었다.조용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장소를 바꾸고 싶었을 뿐.소은정은 이 기회에 상대에게 할 말을 하는 것도 좋겠다고 판단했다.항상 과거에 묻혀 살 수는 없었다.두 사람은 평온한 표정으로 마주 앉았다. 전처럼 다투지도, 그렇다고 냉랭한 분위기도 풍기지 않았다.서로 한 발씩 양보하자
주변의 소리가 잦아들었다.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눈앞의 남자는 암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소은정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박수혁의 변화가 보이지 않는 건 아니었다.하지만 그를 보면 지난 과거가 떠올라서 힘들었다.이제 그녀의 옆에는 그녀를 웃게 해줄 사람이 있었다.그녀는 앞으로 더 행복할 것이다.소은정은 잠시 침묵하다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나 남자친구 생긴 거 알잖아. 없다고 해도 다시 돌아갈 마음은 없어.”박수혁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알아. 남자친구. 결혼해도 이혼하는 세월에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남자친구가 무슨 소용이지? 아직 나에게도 기회가 있는 거잖아.”소은정이 인상을 쓰며 반박하려는 순간, 등 뒤에서 김하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은정아.”고개를 돌리자 김하늘이 그녀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딘가 초조해 보였다.소은정은 담담히 자리에서 일어섰다.“먼저 갈게.”어차피 그와 이런 대화를 계속하고 싶지는 않았다.박수혁은 말없이 술잔을 입가에 가져가서 기울였다.옆모습이 유난히 쓸쓸하게 느껴졌다.소은정은 김하늘에게 다가가며 부드럽게 물었다.“이제 도착한 거야?”김하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유라는 남자친구랑 같이 온다고 해서 나 혼자 왔어. 네가 박 대표랑 이야기하고 있길래 불렀지. 저 사람 아직도 마음을 못 접은 거야?”소은정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사람은 가질 수 없는 것에 목 매달잖아. 아무리 진심이라고 해도 그걸 누가 믿겠어?”냉랭하고 매몰찬 대답에 김하늘조차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너 정말….”그녀는 처음으로 박수혁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소은정은 관심 없는 사람에게 이성적이고 냉철했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박수혁의 속마음을 꿰뚫어본다는 건, 그에게 정말 마음이 떠났음을 의미했다.하지만 사람들은 두 사람의 이혼 과정에서 가장 상처받은 사람이 박수혁이라고 생각했다.김하늘은 더 말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어차피 그녀는 지금 전동하와 행복한 시간을
그날 사건은 도시 전체를 뒤흔들었다.양수진은 성 씨 가문의 인맥을 이용해서 억지로 사건을 덮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임양수는 출국했고 어린 소녀의 가정은 적지 않는 보상금을 받는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되었다.상류층 인사들에게 임양수는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다.소은정은 경멸의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사건이 잠잠해지니까 또 돌아온 거야?”김하늘도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얌전하게 돌아온 것도 아니야. 여자친구랑 같이 돌아왔대. 군수물자 상인들과 관계가 깊은 집안의 딸이라는데 가문에는 힘이 좀 되겠지. 양수진은 언니 덕을 많이 보며 살았잖아. 아마 눈치 보는 생활도 지겨웠을 거야. 그런데 이렇게 고개를 쳐들 기회가 찾아왔으니 자랑하는 거겠지.”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군수물자 상인?”어쩐지 너무 당당하게 임양수의 귀국을 사람들 앞에 발표한다 생각했다. 이런 인맥이면 어디를 가든 환대 받을 수 있었다.일반인은 감히 접근하지도 못할 인맥이었고 그들과 인맥을 쌓은 사람들은 정계에 인맥이 있거나 해외 인사들과 접촉이 있었다는 뜻이었다.국내 일류 그룹인 SC그룹이고 소은호도 과거에 조폭들과 어울려 지냈지만 알맞은 시기에 빠져 나왔다. 너무 깊게 빠졌다가는 가문이 망하는 지름길이었기 때문이었다.휘하에 수천 명의 생계를 책임진 대그룹은 절대 그런 사업을 손에 대지 않는다.안전의 문제가 아니라 이윤은 큰 이 사업이 오래 갈 사업은 아니었기 때문이다.SC그룹의 자산과 유명세로 이 업계에 발을 담근다고 비난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하지만 그들은 투명하고 정당한 사업만 고집해 왔다.그들은 절대 군수업에 손을 담그지 않았다.김하늘은 위스키 잔을 집어 소은정에게 건네며 말했다.“앞으로 성 씨 가문이 이 업계에 발을 들이면 아마 SC그룹이나 태한그룹도 눈치 좀 보겠어.”비록 성 씨 가문이 날로 쇠퇴의 길을 걷고 있지만 그래도 손 꼽히는 기업 중 하나였다.성강희가 큰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은 순위권에 변동은 없을 것이다.소은정은 고개를 흔들
임양수의 옆에는 차가운 인상의 여자가 동행하고 있었다. 큰 키에 가녀린 몸매, 그리고 검은색 드레스에 빨간 입술, 무척 시크하고 냉랭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였다.사람들은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양유진도 마찬가지였다.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소은정을 보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임양수가 데려온 여자는 소은정과 무척 많이 닮아 있었다.예쁘지만 차가운 분위기 속에 음침한 기운도 섞여 있었다.소은정도 뭔가 눈치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우연일까?김하늘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소근거렸다.“너희 어머니 설마 쌍둥이를 출산하신 건 아니지? 내 머릿속에 자꾸 막장 드라마가 그려지잖아.”소은정이 그녀를 흘기며 말했다.“이상한 생각하지 마. 우리 엄마 딸은 나 하나야.”“그런데 왜….”김하늘이 말끝을 흐리자 소은정은 담담하면서 직설적으로 말했다.“메이크업.”그 여자는 얼핏 보기에 소은정과 아주 닮았지만 그건 그냥 분위기였을 뿐이다. 자세히 보면 그들의 이목구비는 전혀 닮지 않았다.소은정은 냉철한 분위기의 소유자였지만 이목구비는 여성스러웠고 자주 웃기 때문에 딱딱한 분위기는 없었다.하지만 이 여자는 소은정보다 더 냉랭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는데 마치 일부러 도도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조성하려고 연기하는 것처럼 보였다.김하늘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작은 소리로 투덜거렸다.“설마 저 여자 일부러 너 따라한 거야? 우리 그냥 먼저 돌아갈까?”“어르신 생신이신데 우리가 가버리면 심정이 어떻겠어? 구석진 곳에 앉아 있더라도 자리는 지켜야지.”오늘의 주인공이 다른 사람이었으면 돌아가도 무방하겠지만 상대는 성 씨 어르신이었다. 두 가문은 오랫동안 돈독한 사이를 유지했고 어르신은 소은정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 중 한 명이었다.김하늘도 말실수를 느꼈는지 입을 다물었다.양수진은 오랜만에 본 아들의 볼에 연신 입을 맞추며 호들갑을 떨었다.양유진 사모님은 잠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표정을 수습했다.임양수가 데려온 여자는 차가운
양유진 여사는 안나의 출현이 별로 반갑지 않은 눈치였다.그녀는 예의상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돌아섰다.임양수가 다급히 그녀의 팔목을 붙잡았다.“이모, 저도 할아버지 좀 찾아 뵐까요? 인사도 드리고 좋은 소식도 전해야죠!”양유진 여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머뭇거리자 양수진이 언니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좋은 기회잖아, 언니. 양수 데리고 어르신께 가서 인사 드리고 회사에 출근시켜 달라고 하자. 그래야 회사에 남아서 강희도 도와주지!”양유진 여사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나중에 하자. 난 아버님이랑 일 얘기 별로 안 하거든.”“언니, 그게 무슨 말이야? 설마 양수 회사에 취직시킬 생각이 없는 거야? 양수도 해외에서 많이 배웠어. 강희한테 도움이 되면 됐지 방해는 안 할 거라고. 가족끼리 돕고 살아야지, 사람들이 우리를 뭐라고 생각하겠어?”양 여사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난감한 표정으로 동생을 바라보았다.평소에 도움을 주는 것도 내키지는 않아도 동생이라 모른 척할 수 없어서 계속 도와주고 있었는데 회사에 자리까지 요구하다니.양 여사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등 뒤에서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모, 저도 해외파거든요? 해외에 살다 온 게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그래요? 그리고 저 회사에서 누구 도움 필요 없으니 성의는 고맙지만 사양할게요!”웃으며 다가온 성강희가 양 여사를 부축하며 말했다.“할아버지가 찾으시던데 같이 가보실래요?”그제야 양 여사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아버님이 연세가 드신 뒤로 성격도 까다로워지셨어. 난 먼저 가볼게.”양 여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뒤, 자리를 벗어났다.양수진은 언니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무시했다는 생각에 불쾌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언니를 탓할 수도 없었다.그녀는 안나의 손을 잡으며 너스레를 떨었다.성강희는 안나를 힐끗 보고는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고 뒤돌아섰다.임양수는 그의 태도가 불쾌했는지 다가가서 그의 팔을 잡았다.“아까 그거 무슨 표정이야?
한유라는 여전히 당당한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반면, 그녀에게 이끌려 온 민하준은 약간 포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하지만 한유라는 사람들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소은정을 발견한 그녀가 이쪽을 향해 힘껏 손을 흔들었다.소은정이 김하늘과 함께 그녀에게 다가가자 한유라는 그제야 팔짱을 풀며 인사를 건넸다.“소개할게. 이쪽은 민하준 씨.”소은정과 김하늘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다 아는 사이에 왜 갑자기 소개하는 걸까? 뭔가 다른 목적이 있나?한유라는 민하준에게 친구들을 소개했다.“이쪽은 내 절친이야. 하준 씨도 몇 번 만난 적 있지? 얘가 소은정, 그리고 이쪽이 김하늘. 성강희도 있는데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도 않네….”민하준은 소은정과 김하늘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한유라가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하준 씨도 이제 볼일 봐. 난 친구들이랑 있을게.”민하준은 그녀를 힐끗 보고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소은정과 김하늘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번갈아보았다.궁금증을 참지 못한 소은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정식으로 사귀기로 한 거야? 네 엄마는 허락하셨어?”한유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아니.”“그런데 왜….”김하늘이 말끝을 흐리자 한유라가 웃으며 말했다.“매일 저 사람을 향한 마음이 커지는 것을 느꼈어. 그리고 매일 보지만 볼 때마다 달라. 그래서 오늘의 하준 씨를 너희에게 소개시켜 주고 싶었거든!”소은정과 김하늘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닭살!한유라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어르신께 인사도 드려야 하는데 절까지 해야겠지?”김하늘이 웃으며 말렸다.“너한테 절 받다가 어르신이 되려 쓰러지시겠어. 네가 오히려 뭔가를 요구할까 봐 겁내실 것 같은데!”소은정도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맞아!”한유라는 씩씩거리며 뒤돌아섰다.“어쨌든 여기서 기다려. 곧 돌아올게.”평소 그들을 한없이 예뻐하던 어르신이었기에 인사는 필수였다.소은정은 부드럽게
성강희가 나타나자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자리를 비켜주었다.소은정은 중심에 서 있는 전동하를 바라보았다.귀티 나는 검은색 정장에 항상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그가 오늘 따라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는 몰라도 그는 지금 상당히 언짢은 상태였다.전동하가 누군지 모르는 양수진은 가소로운 표정으로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그녀는 가장 주의해야 할 상대가 박수혁뿐이라고 생각했다.이곳에 처음 온 전동하가 사람을 잘못 본 상황이었는데 군수물자 상인인 안나에게 잘 보이려고 양수진이 전동하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상황이었다.“잘못 보긴 뭘 잘못 봐? 핑계도 참 저질스럽긴. 일부러 그런 거지? 오늘이 어떤 자리인 줄 알고 감히 여기까지 온 거야? 감히 안나 씨가 누군 줄 알고 건드려? 당장 경찰에 신고할 거야!”주변 사람들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었다.양수진은 쉽게 넘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안나 앞에서 어떻게든 점수를 따고 싶었던 것이다.안나는 말없이 차가운 시선으로 이 상황을 구경하고 있었다.성격 좋은 전동하마저 짜증이 치밀었다. 성강희에게 이런 무례한 친척이 있었다는 사실이 더 믿기지 않았다.그는 오늘 방문한 것이 조금 후회되었다.그의 눈빛에 짜증이 가득 담겼다.“말했잖아요. 그냥 사람을 잘못 봤다고요. 그리고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거든요?”“그쪽 말을 어떻게 믿어? 내가 내 두 눈으로 직접 봤는데 아직도 발뺌할 셈이야?”소은정은 고개를 돌리고 성강희를 바라보았다. 그는 마치 구경꾼처럼 팔짱을 끼고 이 상황을 구경하고 있었다.“야, 성강희, 좀 나서보지?”성강희가 웃으며 말했다.“내가 어떻게 감히 전 대표를 건드리겠어? 저 사람 한 마디면 온 재계가 흔들릴 텐데. 우리 이모가 멍청해서 상대를 잘못 고른 거지.”“너 동하 씨 이용해서 네 이모가 망신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지?”성강희가 살짝 굳은 표정으로 소은정을 내려다보았다.소은정은 조용히 그들에게 다가갔다.예쁘장한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