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강열은 더 이상 소은정을 붙잡지 않았고 한유라를 보면서 부탁했다.“그럼 은정씨 데리고 제 사무실 옆에서 쉬게 하도록 하세요. 잘 부탁해요.”한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습니다.”한유라는 소은정을 보면서 미소를 띠었다. 세 사람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세 명 모두 뒤에 있는 도지아를 투명 인간 취급하였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크게 한숨을 몰아쉰 그녀는 옆에 있는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그녀는 대표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갈 자격이 없었다. 심강열의 집안에서 사업확장을 할 때 초반에는 GD 그룹을 넘어설 조건이 되지 않아 대표를 위한 전용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전에 출근할 때 일찍 회사에 와 일 층에서 서성이다 심강열이 정시에 출근하면 우연을 가장해 그와 함께 올라오곤 하였다. 그때가 어쩌면 도지아의 제일 행복했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언제 전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 했었지?잠시 생각하던 도지아의 머릿속에 한유라가 스쳐 지나갔다. 우연인가? 처음에는 우연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정말 우연이었을까?한유라는 이런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하였지만 대표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하였다. 다들 한유라가 몰래 탄다고 생각했지만, 비서실에 있는 사람이라 아무도 폭로하지 못했다. 도지아의 마음이 불안해졌다. 초기에 그가 먼저 중북부 본사에서 지사 발령을 신청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말렸다.하지만 그녀는 심강열을 옆에서 조금이라도 더 돕고 싶어 신청했다. 이렇게 해야지만 심강열이 한번이라도 다시 자신을 봐줄 것이라 생각했다. 도지아는 심호흡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몇 발짝 걷지 않았을 때 동료가 다가와 얘기했다.“지아님, 금방 대표님이 찾으시던데요, 대표실로 오라고 하십니다.”도지아의 표정이 굳더니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애써 웃으면서 알겠다고 답했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한유라는 단호한 그의 태도에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희찬씨가 떠나기 전에 지아씨의 능력이 좋고 야망이 있는 사람이라 회사에 더 많은 것을 해줄 수 있을 거라 말했어요. 이런 작은 일 때문에 떠나보낼 사람이 아니라고요.”심강열의 표정은 단호했고 담담하게 말했다.“조희찬이 말한 것이 전부다 사실일 수는 없어요. 가끔 실수할 때도 있다고요. 야망이 아니라 욕심이에요!”그의 한마디에 주변의 공기가 마치 잔잔한 호수에 큰 돌멩이를 던지는 것처럼 크게 요동쳤다. “당신과 같은 신입에게도 이렇게 대하는데 다른 직원들에게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면 더 이상 반전의 여지가 있을까요?”심강열의 말이 한유라의 마음속에 다가와 꽂혔다.그녀는 그녀만 생각했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지 못했다. 도지아를 위해 포장을 해줄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을 위해 대신 용서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못되었다. 심강열은 그런 그녀를 다정한 눈길로 쳐다보더니 그런 그녀의 모습에 더 이상 강력한 태도를 취하지 못했다. 심강열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이리 와요…”한유라는 마지못해 그에게 다가갔다.심강열은 그녀의 손을 잡고 편안해진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유라씨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만약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더라도 남겨두지 않았을 것이에요. 능력이 있는 것은 맞지만 그 점을 이용해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남겨두지 않을 거예요. 우리 곁에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많지만, 그들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적어요.”그의 입에서 우리라는 말이 나오자, 한유라가 멈칫했다. 그의 말에 한유라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심강열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한유라가 경솔했다. 한유라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심강열은 웃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 휴대전화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을 거예요.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저한테 연락해요.”한유라의 전화를 바로 받지 못한 것에 대해 늘 후회하였다. 소은정이 한유라를 구해준 데에 대해 감사할 따름이었다
도지아를 본 심강열의 다정한 얼굴이 삽시간에 차가운 표정으로 바뀌었다.“왜 지아씨를 부른지 알아요?”그의 목소리는 늘 차가웠다. 도지아는 그를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지아는 그의 고독한 마음을 이해하고 제일 가까운 사람이 자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인제야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강열은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더니 말했다.“인사과에 가서 수속 절차 밟으세요.”도지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왜죠?”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면서 말했다.조사를 하기도 귀찮은 건가?입술을 꽉 깨문 도지아의 눈에 살기가 퍼졌다.“설마 내가 전화 하나만 하면 이 일을 누가 한 짓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을 모르나요?”도지아가 이를 꽉 깨물었다. 그녀의 호흡이 가빠졌다.“한유라 때문인가요? 아무 일 없잖아요!”밖에서 한유라가 이 일에 대해 더 파고들지 않을 거라는 것을 듣기도 하였다. 도지아는 이미 마음속으로 욕을 먹거나 수모를 당하는 것과 부서를 옮기는 예상을 하였다. 그 정도는 다 참을 수 있기에 이 자리까지 온 것이다. 퇴사하라고 하다니…“저는 걱정하던 일이 생기고 나서 후회하면서 처리하고 싶지 않으니 지금 반드시 떠나주길 바라요.”심강열의 목소리에는 감정이란 느껴지지 않았다. 도지아는 눈을 감았다. 그래, 이게 자신이 알던 심강열이지.차갑고 딱딱하고 어떠한 온기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다른 사람한테 여지를 주지 않는 사람…도지아는 크게 숨을 몰아쉬고 말했다.“대표님, 제가 유라씨에게 사과할 수는 있지만 아직 생겨나지 않은 일 때문에 이렇게 회사에 오래 있었던 저를 내친다는 것은 불공정하다 생각됩니다.”그녀가 심강열의 앞에 서 있는 것조차도 모든 힘을 써서 서 있는 것이다. “당신이 이 회사에 오래 있었으니, 사직으로 마무리하는 거예요. 인사과에 당신이 한 짓을 사실대로 말하면 뒤처리를 감당할 수 있어요?”도지아의 머리가 각목으로
왜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한테 손수 가르쳐주는 건데?왜 그녀는 대표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 건데?왜 모든 일들이 한유라가 끼어들었다 하면 너그러워지는 건데?도지아는 억누르고 있었던 수많은 질문들을 폭발해 버렸다. 그녀는 심강열의 답을 듣고 싶었다. 그녀를 깔끔하게 포기할 수 있게 하는 답변. 심강열은 어두운 눈동자로 그를 보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의 말투에는 조롱이 섞여 있었다.“나의 아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깐. 그녀가 내 곁에 있는 한 평생 특권을 누릴 수 있을 거야. 당신들과는 비교할 수 없지.”그들이 대체 뭔데 한유라와 비교를 하는 거지?그의 답에 도지아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아내?”심강열은 해석하기 귀찮았다. 사적인 일까지 직원한테 보고해야 하나?“나가.”도지아는 조용히 서 있더니 드디어 세계는 불공정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심강열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줄 알았다. 여기까지 그녀는 자신의 노력으로 올라왔고 평범한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심강열은 다를 수 있으나 평범한 사람들은 될 수 없었다. 그의 전 여자친구는 그의 돈만 보고 사랑이 없었다. 이번에는 한유라라는 여자에게 또 마음을 내주었다. 도지아는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오랫동안 감춰왔던 마음을 폭발하니 시원한 느낌이었다. 그저 잔혹한 현실에 더 다가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동료들이 그녀를 에워쌌다.“지아님, 은정씨 온 거 보셨어요? 실물은 처음 봤는데 인터넷에 있는 사진보다 훨씬 더 이쁘네요!”“맞아요! 너무 이뻐요, 내가 남자라도 좋아할 것 같아!”“듣기로는 유라님하고 친하다던데 둘은 어떻게 친해진 거에요?”“그러게요, 대표님은 지아님 불러서 뭐 한거에요? 왜 은정 대표님이랑 같이 안 있는 거예요? 대표님은 은정 대표님한테 관심 없대요?”“그러고 보니 둘이 진짜 잘 어울리네!”주위에서 온통 소은정에 관한
2층.한유라는 테이블 가득 펼쳐진 간식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소은정 대표님이 대단하긴 해? 허, 이 간식 좀 봐. 이 정도며 거의 왕족 아니야?”케이크를 한입 베어문 소은정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내가 좋아하는 가게에서 사왔네.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어.’“왕족 좋아하네. 그건 그렇고 심강열 대표랑 무슨 얘기한 거야?”소은정의 날카로운 질문에 한유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귀신 같은 계집애... 그건 또 어떻게 안 거래?’“너... 그걸 어떻게 알았어?”“그걸 뭘 봐야 아니?”소은정이 눈을 흘겼다.“이렇게까지 참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우리 유라 성격 많이 죽었다?”이에 한유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나라고 성질 죽이고 사는 게 쉽겠어? 뭐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고... 일일이 따지는 것도 유치할 것 같기도 하고...”한유라의 변명에 소은정이 이를 악물었다.“야, 정신차려. 도 비서라고 했나? 그 여자가 한 짓이잖아. 그렇게 티나는 여우짓을 왜 두고 보고만 있어. 큰일로 번지기 전에 네가 알아서 끊어내. 그냥 오냐오냐 한다고 해결될 일 아니야.”소은정의 말에 한유라의 큰 눈이 더 동그래졌다.“뭐야? 너 깡이랑 잤어? 어떻게 둘이 똑같은 말을 하냐.”“하, 그래도 양심은 있네. 이 일 대충 넘어가려고 했으면 내가 진짜 화냈을 거야. 정신차려. 너희 두 사람 부부야. 너 평생 속앓이 하면서 살 거야?”커피 한잔을 탄 한유라가 그녀 옆에 앉았다.“내가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지금 와신상담 중이거든. 이제 결혼식 올리면 내가 심강열 와이프라는 거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될 거잖아? 그전까진 그냥 신입 비서로서 살고 싶어. 내 진짜 정체를 알면 다들 얼마나 후회될까? 다들 나한테 아부하려고 들겠지?”“하이고, 그런 사람들 아부 받아서 참 좋으시겠어.”소은정의 비아냥거림에도 한유라는 깔깔 웃을 뿐이었다.“솔직히... 강열 씨 회사에서 일하면서 많이 배웠어. 엄마 회사에서 일할 때랑 비교도 안될 정도로
한유라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게...”“네가 모를만도 해. 지금까지 네가 이런 일을 겪을 필요 자체가 없었으니까. 좋은 기업이니 당연하게 훌륭한 직원을 뽑았을 테고 당연히 일도 열심히 잘 하겠지? 그러니까 굳이 네가 손 볼 필요가 없었던 거야. 너 스스로 모든 걸 다 할 수 있으면 그냥 1인 기업하고 말지 수백, 수천 명의 직원을 고용할 필요가 있을까?”‘하긴.’소은정의 위로에 한유라가 활짝 웃었다.그리고 잠시 고민하던 소은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그리고 굳이 그 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낼 필요도 없어. 사적으로 사이가 너무 좋으면 일할 때 오히려 힘들 거든. 혼내야 할 때도 평소 친분 때문에 입이 안 떨어질 때도 있으니까. 그것도 은근 스트레스다, 너?”세게 고개를 끄덕인 한유라가 두 눈을 반짝였다.“은정아, 나 그냥 너네 회사에서 일하면 안 돼? 깡한테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을 것 같은데?”이에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난 상관없어. 근데 심 대표가 널 놓아줄까?”“아니야. 깡이 그러라고 해도 엄마가 절대 안 된다고 펄쩍 뛰실걸? 이번 일도 그래. 일을 제대로 배워오라는 건 어디까지나 명분이고 나랑 깡이 친해지길 바라는 게 진짜 목적일 거야.”한유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럼 그냥 심해그룹에 있어. 심강열 대표... 능력 하나는 뛰어난 사람이니까 분명 배울 수 있는 게 있을 거야.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마. 회사 대표 사모님이 된 이상 네가 신경 써야 할 인간관계는 클라이언트뿐이야.”소은정이 몇 년간 쌓은 노하우, 다른 사람이었다면 절대 알려주지 않았겠지만 처음 사회에 나온 천둥벌거숭이 같은 한유라를 그저 두고볼 수만은 없었다.말을 마친 소은정이 케이크를 한입 더 베어물었다.입속에 은은한 달콤함이 확 퍼지며 이 시간이 아름답게 느껴졌다.‘흐음, 좋다...’한편 고개를 돌리니 방금 전 그녀가 한 말을 진지한 표정으로 노트에 옮겨적는 한유라의 모습이 보인다.‘참나, 평소엔 그렇게 똘똘한 애가 왜
탄탄한 가슴이 부딪힌 이마를 문지르던 한유라는 심강열을 노려보다 마지못해 대답했다.“괜... 괜찮습니다, 대표님.”심강열은 한유라의 뒤에 서 있는 소은정을 향해 싱긋 웃었다.“같이 내려가시죠?”“그럼 부탁드릴게요.”‘하이고, 그 새를 못 참고 또 올라왔구만.’이런 생각과 함께 소은정이 피식 웃었다.한편, 뭔가 큰일이 벌어질 거라 확신하며 손에 땀까지 쥐고 기다리던 직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예고편은 초특급 블럭버스터였는데 본편은 로맨스 코미디인 듯, 왠지 김이 팍 새버렸다.세 사람이 자리를 뜨고 직원들은 바로 수군대기 시작했다.“우리 대표님, 한 비서님 좋아하는 게 분명해. 다른 건 몰라도 저 눈빛은 찐이라고.”“내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아.”다른 직원들도 앞다투어 고개를 끄덕였다.수다를 떨면서도 직원들은 다들 의미심장한 표정이었다.심강열의 비서였던 도지아가 회사를 떠났고 인사팀에서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말해주지 않고 있다.게다가 도지아 본인도 회사 동료들의 연락처를 전부 차단해 연락조차 할 수 없는 상황.다들 그저 수석 비서 자리를 노리던 도지아가 갑작스러운 한유라의 등장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결국 먼저 퇴사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짐작만 할 뿐이었다.뭐, 평소 과묵한 성격이었던 도지아가 그런 야망을 숨기고 있는 여자였다는 게 꽤 놀랍긴 했지만 말이다.한편, 소은정 일행이 회사 로비로 내려오고 한유라는 고개를 돌려 심강열을 향해 손을 저었다.“얼른 올라가서 일해. 집에서 봐.”그녀의 말에 심강열이 피식 웃었다.“나도 오늘 정시 퇴근할 거야.”이에 한유라의 눈이 동그래졌다.“허, 맨날 일밖에 모르던 사람이 무슨 바람이 불었대?”‘정말 내 마음 몰라서 그래?’정말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그저 심강열의 신경을 자극하는 건지 복장이 터질 지경이었다.“응, 오늘은 좀 쉬고 싶어서.”“하긴. 워낙 일만 했으니까 피곤할만도 하지. 그럼 일찍 집에 가서 쉬어.”“굳이 집에 가야 해? 난 다른 데 가면 안 돼?”심강열의 뾰
한편, 차에 탄 소은정은 웃음을 참으며 방금 전 상황을 그대로 전동하에게 전했다.“두 사람 혼인신고부터 해서 다행이네요.”“왜요?”“그냥 약혼만 했으면 파혼을 해도 백 번은 더 했을 것 같은데요...”“최 팀장님, 조금만 더 빨리 가주실래요?”최성문을 독촉한 한유라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씰룩대는 소은정을 흘겨보았다.“어차피 매일 보는 사이인데 뭐가 그렇게 재밌어?”“동하 씨랑 얘기하는 것 자체가 재밌는데?”소은정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한유라는 구토하는 제스처를 취했다.“아, 아침에 내가 했던 말... 신경 쓰지 마, 알겠지?”이에 소은정이 얼굴에 피어오른 미소를 지우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응, 걱정하지 마. 어차피 걘 나 못 찾아.”지금 그녀의 스케줄은 완전히 대외비인데다 항상 경호원이 그녀의 주위를 지키고 있으니 자신만만한 소은정이었다.잠시 후, 두 사람을 태운 차량이 사운드 클럽 앞에 멈춰 섰다.“왜 여기로 왔어?”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하지만 한유라는 대답대신 소은정의 팔을 잡아당겼다.“넌 무슨 질문이 그렇게 많아. 내가 깜짝 선물 준비했지!”두 사람이 뛰다시피 클럽으로 들어가고 주차를 마친 최성문이 그 뒤를 바싹 따랐다.어두워지는 밤하늘과 달리 클럽의 분위기는 점점 뜨거워지고 사람들의 목소리, 빵빵한 음악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그곳에서 가장 은밀하지만 전망이 가장 좋은 룸, 이곳이 바로 오늘 그들의 모임 장소이다.테이블에는 술병이 쫙 깔려있고 성강희는 웬 상자 하나를 보물이라도 되는 듯 꼭 끌어안은 채 스테이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룸에 입장한 한유라가 바로 성강희를 덮치고 그는 기겁하며 상자를 위로 높이 들었다.“어허! 이거 우리 집 가보야. 손대지 마.”“하, 웃기시네. 그딴 돌덩이 난 관심도 없어. 그냥 네 멍청함을 좀 비웃고 싶은 거랄까?”“야! 그냥 돌덩이 아니거든! 이건 고려 때 일본으로 흘러갔다가 다시 영국까지 갔던 국보라고! 내가 여기에 부은 돈이 얼만데. 우리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