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강열은 더 이상 소은정을 붙잡지 않았고 한유라를 보면서 부탁했다.“그럼 은정씨 데리고 제 사무실 옆에서 쉬게 하도록 하세요. 잘 부탁해요.”한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습니다.”한유라는 소은정을 보면서 미소를 띠었다. 세 사람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세 명 모두 뒤에 있는 도지아를 투명 인간 취급하였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크게 한숨을 몰아쉰 그녀는 옆에 있는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그녀는 대표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갈 자격이 없었다. 심강열의 집안에서 사업확장을 할 때 초반에는 GD 그룹을 넘어설 조건이 되지 않아 대표를 위한 전용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전에 출근할 때 일찍 회사에 와 일 층에서 서성이다 심강열이 정시에 출근하면 우연을 가장해 그와 함께 올라오곤 하였다. 그때가 어쩌면 도지아의 제일 행복했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언제 전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 했었지?잠시 생각하던 도지아의 머릿속에 한유라가 스쳐 지나갔다. 우연인가? 처음에는 우연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정말 우연이었을까?한유라는 이런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하였지만 대표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하였다. 다들 한유라가 몰래 탄다고 생각했지만, 비서실에 있는 사람이라 아무도 폭로하지 못했다. 도지아의 마음이 불안해졌다. 초기에 그가 먼저 중북부 본사에서 지사 발령을 신청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말렸다.하지만 그녀는 심강열을 옆에서 조금이라도 더 돕고 싶어 신청했다. 이렇게 해야지만 심강열이 한번이라도 다시 자신을 봐줄 것이라 생각했다. 도지아는 심호흡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몇 발짝 걷지 않았을 때 동료가 다가와 얘기했다.“지아님, 금방 대표님이 찾으시던데요, 대표실로 오라고 하십니다.”도지아의 표정이 굳더니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애써 웃으면서 알겠다고 답했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한유라는 단호한 그의 태도에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희찬씨가 떠나기 전에 지아씨의 능력이 좋고 야망이 있는 사람이라 회사에 더 많은 것을 해줄 수 있을 거라 말했어요. 이런 작은 일 때문에 떠나보낼 사람이 아니라고요.”심강열의 표정은 단호했고 담담하게 말했다.“조희찬이 말한 것이 전부다 사실일 수는 없어요. 가끔 실수할 때도 있다고요. 야망이 아니라 욕심이에요!”그의 한마디에 주변의 공기가 마치 잔잔한 호수에 큰 돌멩이를 던지는 것처럼 크게 요동쳤다. “당신과 같은 신입에게도 이렇게 대하는데 다른 직원들에게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면 더 이상 반전의 여지가 있을까요?”심강열의 말이 한유라의 마음속에 다가와 꽂혔다.그녀는 그녀만 생각했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지 못했다. 도지아를 위해 포장을 해줄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을 위해 대신 용서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못되었다. 심강열은 그런 그녀를 다정한 눈길로 쳐다보더니 그런 그녀의 모습에 더 이상 강력한 태도를 취하지 못했다. 심강열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이리 와요…”한유라는 마지못해 그에게 다가갔다.심강열은 그녀의 손을 잡고 편안해진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유라씨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만약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더라도 남겨두지 않았을 것이에요. 능력이 있는 것은 맞지만 그 점을 이용해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남겨두지 않을 거예요. 우리 곁에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많지만, 그들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적어요.”그의 입에서 우리라는 말이 나오자, 한유라가 멈칫했다. 그의 말에 한유라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심강열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한유라가 경솔했다. 한유라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심강열은 웃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 휴대전화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을 거예요.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저한테 연락해요.”한유라의 전화를 바로 받지 못한 것에 대해 늘 후회하였다. 소은정이 한유라를 구해준 데에 대해 감사할 따름이었다
도지아를 본 심강열의 다정한 얼굴이 삽시간에 차가운 표정으로 바뀌었다.“왜 지아씨를 부른지 알아요?”그의 목소리는 늘 차가웠다. 도지아는 그를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지아는 그의 고독한 마음을 이해하고 제일 가까운 사람이 자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인제야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강열은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더니 말했다.“인사과에 가서 수속 절차 밟으세요.”도지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왜죠?”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면서 말했다.조사를 하기도 귀찮은 건가?입술을 꽉 깨문 도지아의 눈에 살기가 퍼졌다.“설마 내가 전화 하나만 하면 이 일을 누가 한 짓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을 모르나요?”도지아가 이를 꽉 깨물었다. 그녀의 호흡이 가빠졌다.“한유라 때문인가요? 아무 일 없잖아요!”밖에서 한유라가 이 일에 대해 더 파고들지 않을 거라는 것을 듣기도 하였다. 도지아는 이미 마음속으로 욕을 먹거나 수모를 당하는 것과 부서를 옮기는 예상을 하였다. 그 정도는 다 참을 수 있기에 이 자리까지 온 것이다. 퇴사하라고 하다니…“저는 걱정하던 일이 생기고 나서 후회하면서 처리하고 싶지 않으니 지금 반드시 떠나주길 바라요.”심강열의 목소리에는 감정이란 느껴지지 않았다. 도지아는 눈을 감았다. 그래, 이게 자신이 알던 심강열이지.차갑고 딱딱하고 어떠한 온기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다른 사람한테 여지를 주지 않는 사람…도지아는 크게 숨을 몰아쉬고 말했다.“대표님, 제가 유라씨에게 사과할 수는 있지만 아직 생겨나지 않은 일 때문에 이렇게 회사에 오래 있었던 저를 내친다는 것은 불공정하다 생각됩니다.”그녀가 심강열의 앞에 서 있는 것조차도 모든 힘을 써서 서 있는 것이다. “당신이 이 회사에 오래 있었으니, 사직으로 마무리하는 거예요. 인사과에 당신이 한 짓을 사실대로 말하면 뒤처리를 감당할 수 있어요?”도지아의 머리가 각목으로
왜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한테 손수 가르쳐주는 건데?왜 그녀는 대표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 건데?왜 모든 일들이 한유라가 끼어들었다 하면 너그러워지는 건데?도지아는 억누르고 있었던 수많은 질문들을 폭발해 버렸다. 그녀는 심강열의 답을 듣고 싶었다. 그녀를 깔끔하게 포기할 수 있게 하는 답변. 심강열은 어두운 눈동자로 그를 보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의 말투에는 조롱이 섞여 있었다.“나의 아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깐. 그녀가 내 곁에 있는 한 평생 특권을 누릴 수 있을 거야. 당신들과는 비교할 수 없지.”그들이 대체 뭔데 한유라와 비교를 하는 거지?그의 답에 도지아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아내?”심강열은 해석하기 귀찮았다. 사적인 일까지 직원한테 보고해야 하나?“나가.”도지아는 조용히 서 있더니 드디어 세계는 불공정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심강열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줄 알았다. 여기까지 그녀는 자신의 노력으로 올라왔고 평범한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심강열은 다를 수 있으나 평범한 사람들은 될 수 없었다. 그의 전 여자친구는 그의 돈만 보고 사랑이 없었다. 이번에는 한유라라는 여자에게 또 마음을 내주었다. 도지아는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오랫동안 감춰왔던 마음을 폭발하니 시원한 느낌이었다. 그저 잔혹한 현실에 더 다가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동료들이 그녀를 에워쌌다.“지아님, 은정씨 온 거 보셨어요? 실물은 처음 봤는데 인터넷에 있는 사진보다 훨씬 더 이쁘네요!”“맞아요! 너무 이뻐요, 내가 남자라도 좋아할 것 같아!”“듣기로는 유라님하고 친하다던데 둘은 어떻게 친해진 거에요?”“그러게요, 대표님은 지아님 불러서 뭐 한거에요? 왜 은정 대표님이랑 같이 안 있는 거예요? 대표님은 은정 대표님한테 관심 없대요?”“그러고 보니 둘이 진짜 잘 어울리네!”주위에서 온통 소은정에 관한
2층.한유라는 테이블 가득 펼쳐진 간식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소은정 대표님이 대단하긴 해? 허, 이 간식 좀 봐. 이 정도며 거의 왕족 아니야?”케이크를 한입 베어문 소은정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내가 좋아하는 가게에서 사왔네.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어.’“왕족 좋아하네. 그건 그렇고 심강열 대표랑 무슨 얘기한 거야?”소은정의 날카로운 질문에 한유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귀신 같은 계집애... 그건 또 어떻게 안 거래?’“너... 그걸 어떻게 알았어?”“그걸 뭘 봐야 아니?”소은정이 눈을 흘겼다.“이렇게까지 참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우리 유라 성격 많이 죽었다?”이에 한유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나라고 성질 죽이고 사는 게 쉽겠어? 뭐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고... 일일이 따지는 것도 유치할 것 같기도 하고...”한유라의 변명에 소은정이 이를 악물었다.“야, 정신차려. 도 비서라고 했나? 그 여자가 한 짓이잖아. 그렇게 티나는 여우짓을 왜 두고 보고만 있어. 큰일로 번지기 전에 네가 알아서 끊어내. 그냥 오냐오냐 한다고 해결될 일 아니야.”소은정의 말에 한유라의 큰 눈이 더 동그래졌다.“뭐야? 너 깡이랑 잤어? 어떻게 둘이 똑같은 말을 하냐.”“하, 그래도 양심은 있네. 이 일 대충 넘어가려고 했으면 내가 진짜 화냈을 거야. 정신차려. 너희 두 사람 부부야. 너 평생 속앓이 하면서 살 거야?”커피 한잔을 탄 한유라가 그녀 옆에 앉았다.“내가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지금 와신상담 중이거든. 이제 결혼식 올리면 내가 심강열 와이프라는 거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될 거잖아? 그전까진 그냥 신입 비서로서 살고 싶어. 내 진짜 정체를 알면 다들 얼마나 후회될까? 다들 나한테 아부하려고 들겠지?”“하이고, 그런 사람들 아부 받아서 참 좋으시겠어.”소은정의 비아냥거림에도 한유라는 깔깔 웃을 뿐이었다.“솔직히... 강열 씨 회사에서 일하면서 많이 배웠어. 엄마 회사에서 일할 때랑 비교도 안될 정도로
한유라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게...”“네가 모를만도 해. 지금까지 네가 이런 일을 겪을 필요 자체가 없었으니까. 좋은 기업이니 당연하게 훌륭한 직원을 뽑았을 테고 당연히 일도 열심히 잘 하겠지? 그러니까 굳이 네가 손 볼 필요가 없었던 거야. 너 스스로 모든 걸 다 할 수 있으면 그냥 1인 기업하고 말지 수백, 수천 명의 직원을 고용할 필요가 있을까?”‘하긴.’소은정의 위로에 한유라가 활짝 웃었다.그리고 잠시 고민하던 소은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그리고 굳이 그 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낼 필요도 없어. 사적으로 사이가 너무 좋으면 일할 때 오히려 힘들 거든. 혼내야 할 때도 평소 친분 때문에 입이 안 떨어질 때도 있으니까. 그것도 은근 스트레스다, 너?”세게 고개를 끄덕인 한유라가 두 눈을 반짝였다.“은정아, 나 그냥 너네 회사에서 일하면 안 돼? 깡한테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을 것 같은데?”이에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난 상관없어. 근데 심 대표가 널 놓아줄까?”“아니야. 깡이 그러라고 해도 엄마가 절대 안 된다고 펄쩍 뛰실걸? 이번 일도 그래. 일을 제대로 배워오라는 건 어디까지나 명분이고 나랑 깡이 친해지길 바라는 게 진짜 목적일 거야.”한유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럼 그냥 심해그룹에 있어. 심강열 대표... 능력 하나는 뛰어난 사람이니까 분명 배울 수 있는 게 있을 거야.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마. 회사 대표 사모님이 된 이상 네가 신경 써야 할 인간관계는 클라이언트뿐이야.”소은정이 몇 년간 쌓은 노하우, 다른 사람이었다면 절대 알려주지 않았겠지만 처음 사회에 나온 천둥벌거숭이 같은 한유라를 그저 두고볼 수만은 없었다.말을 마친 소은정이 케이크를 한입 더 베어물었다.입속에 은은한 달콤함이 확 퍼지며 이 시간이 아름답게 느껴졌다.‘흐음, 좋다...’한편 고개를 돌리니 방금 전 그녀가 한 말을 진지한 표정으로 노트에 옮겨적는 한유라의 모습이 보인다.‘참나, 평소엔 그렇게 똘똘한 애가 왜
탄탄한 가슴이 부딪힌 이마를 문지르던 한유라는 심강열을 노려보다 마지못해 대답했다.“괜... 괜찮습니다, 대표님.”심강열은 한유라의 뒤에 서 있는 소은정을 향해 싱긋 웃었다.“같이 내려가시죠?”“그럼 부탁드릴게요.”‘하이고, 그 새를 못 참고 또 올라왔구만.’이런 생각과 함께 소은정이 피식 웃었다.한편, 뭔가 큰일이 벌어질 거라 확신하며 손에 땀까지 쥐고 기다리던 직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예고편은 초특급 블럭버스터였는데 본편은 로맨스 코미디인 듯, 왠지 김이 팍 새버렸다.세 사람이 자리를 뜨고 직원들은 바로 수군대기 시작했다.“우리 대표님, 한 비서님 좋아하는 게 분명해. 다른 건 몰라도 저 눈빛은 찐이라고.”“내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아.”다른 직원들도 앞다투어 고개를 끄덕였다.수다를 떨면서도 직원들은 다들 의미심장한 표정이었다.심강열의 비서였던 도지아가 회사를 떠났고 인사팀에서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말해주지 않고 있다.게다가 도지아 본인도 회사 동료들의 연락처를 전부 차단해 연락조차 할 수 없는 상황.다들 그저 수석 비서 자리를 노리던 도지아가 갑작스러운 한유라의 등장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결국 먼저 퇴사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짐작만 할 뿐이었다.뭐, 평소 과묵한 성격이었던 도지아가 그런 야망을 숨기고 있는 여자였다는 게 꽤 놀랍긴 했지만 말이다.한편, 소은정 일행이 회사 로비로 내려오고 한유라는 고개를 돌려 심강열을 향해 손을 저었다.“얼른 올라가서 일해. 집에서 봐.”그녀의 말에 심강열이 피식 웃었다.“나도 오늘 정시 퇴근할 거야.”이에 한유라의 눈이 동그래졌다.“허, 맨날 일밖에 모르던 사람이 무슨 바람이 불었대?”‘정말 내 마음 몰라서 그래?’정말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그저 심강열의 신경을 자극하는 건지 복장이 터질 지경이었다.“응, 오늘은 좀 쉬고 싶어서.”“하긴. 워낙 일만 했으니까 피곤할만도 하지. 그럼 일찍 집에 가서 쉬어.”“굳이 집에 가야 해? 난 다른 데 가면 안 돼?”심강열의 뾰
한편, 차에 탄 소은정은 웃음을 참으며 방금 전 상황을 그대로 전동하에게 전했다.“두 사람 혼인신고부터 해서 다행이네요.”“왜요?”“그냥 약혼만 했으면 파혼을 해도 백 번은 더 했을 것 같은데요...”“최 팀장님, 조금만 더 빨리 가주실래요?”최성문을 독촉한 한유라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씰룩대는 소은정을 흘겨보았다.“어차피 매일 보는 사이인데 뭐가 그렇게 재밌어?”“동하 씨랑 얘기하는 것 자체가 재밌는데?”소은정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한유라는 구토하는 제스처를 취했다.“아, 아침에 내가 했던 말... 신경 쓰지 마, 알겠지?”이에 소은정이 얼굴에 피어오른 미소를 지우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응, 걱정하지 마. 어차피 걘 나 못 찾아.”지금 그녀의 스케줄은 완전히 대외비인데다 항상 경호원이 그녀의 주위를 지키고 있으니 자신만만한 소은정이었다.잠시 후, 두 사람을 태운 차량이 사운드 클럽 앞에 멈춰 섰다.“왜 여기로 왔어?”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하지만 한유라는 대답대신 소은정의 팔을 잡아당겼다.“넌 무슨 질문이 그렇게 많아. 내가 깜짝 선물 준비했지!”두 사람이 뛰다시피 클럽으로 들어가고 주차를 마친 최성문이 그 뒤를 바싹 따랐다.어두워지는 밤하늘과 달리 클럽의 분위기는 점점 뜨거워지고 사람들의 목소리, 빵빵한 음악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그곳에서 가장 은밀하지만 전망이 가장 좋은 룸, 이곳이 바로 오늘 그들의 모임 장소이다.테이블에는 술병이 쫙 깔려있고 성강희는 웬 상자 하나를 보물이라도 되는 듯 꼭 끌어안은 채 스테이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룸에 입장한 한유라가 바로 성강희를 덮치고 그는 기겁하며 상자를 위로 높이 들었다.“어허! 이거 우리 집 가보야. 손대지 마.”“하, 웃기시네. 그딴 돌덩이 난 관심도 없어. 그냥 네 멍청함을 좀 비웃고 싶은 거랄까?”“야! 그냥 돌덩이 아니거든! 이건 고려 때 일본으로 흘러갔다가 다시 영국까지 갔던 국보라고! 내가 여기에 부은 돈이 얼만데.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