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석의 질문에 정인규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뭐가 그렇게 급해요? 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괜찮을 거예요. 야밤에 경호원 수십 명을 대동할 수 있는 여자가 어디 보통 사람이겠어요?”하지만 정인규의 답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은 이한석의 시선이 천천히 박수혁에게로 향했다.왠지 그의 주위만 더 춥게 느껴질 정도로 어마무시한 냉기를 내뿜던 박수혁이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이 비서, 당장 가서 알아봐. 어젯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단 하나도 빼놓지 말고 당장!”이한석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리고 정인규를 향해 고개를 돌린 이한석이 입을 열었다.“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게 저희 대표님은 따로 볼일이 있으셔서...”이에 정인규도 눈치껏 고개를 끄덕였다.“아, 제가 대표님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네요.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네.”박수혁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탓인지 살짝 쉰 듯한 목소리는 감출 수 없었다.바로 차문을 닫은 이한석이 정인규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안녕히 가십시오, 정 대표님.”“네, 이 비서님도요.”잠시 후, 차에 탄 이한석은 바로 호텔 지배인에게 전화부터 걸었다.20분 뒤.통화를 마친 이한석이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대표님, 호텔 CCTV 확인 결과 전기섭 대표가 술을 마시고 소 대표님 방으로 찾아간 것 같습니다. 그 뒤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 비서와 경호원들이 방으로 들어가고 얼마 후 전기섭이 사람들에게 들린 채 나왔다고 합니다. 정신을 잃은 상태로요.”이한석의 설명에도 박수혁의 표정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선팅된 창문으로 비추는 햇살이 박수혁의 얼굴을 더 어둡게 만들어주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고? 은정이는 괜찮은 걸까? 혹시 다치진 않았을까?“지금 어디 있대?”옷매무새를 정리한 박수혁이 손잡이에 손을 올린 순간.이한석이 다급하게 말을 이어갔다.“아, 대표님. 소 대표님은 오늘 아침 일
그녀를 꼭 안은 전동하의 미소는 더 밝아졌다.포옹은 꽤 긴 시간 동안 이어졌고 왠지 콧등이 시큰해지는 기분과 함께 소은정이 입을 열었다.“겨우 하루 못 본 건데... 보고 싶었어요.”소은정을 안은 전동하의 팔에 더 힘이 들어가고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소은정의 등과 머리를 쓰다듬었다.“나도요.”한편,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가만히 보고 있던 누군가가 결국 참지 못하고 헛기침을 내뱉었다.“크흠.”예상치 못한 인기척에 부랴부랴 전동하의 품에서 벗어난 소은정은 차가운 표정의 소은호를 발견하고 흠칫했다.“오빠?”소은호의 옆에 서 있던 한시연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손을 저었다.“아가씨.”“하, 소은정, 이 오빠는 보이지도 안 나봐?”소은호가 눈을 흘기며 불평을 내뱉자 한시연이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미간을 찌푸린 채 전동하를 돌아본 소은정이 구시렁댔다.“난... 동하 씨 혼자서 온 줄 알았는데...”오빠랑 새언니랑 다 같이 온 거야? 그럼 아까 모습도 다 봤다는 거 아니야. 윽... 민망해. 쪽팔려!잔뜩 굳은 표정의 소은호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출국한 지 하루만에 해외에서 그 큰 사고를 쳤으면 바로 돌아올 것이지 그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와? 겁이 없는 건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지...”오빠의 꾸지람에 소은정이 메롱 표정을 지어보였다.“괜찮을 거라고 예상하고 잔 거야. 오빠는 내가 바보인 줄 알아?”이때 다가온 한시연이 설명을 이어갔다.“괜찮아 보여서 다행이에요. 오빠 말은 이렇게 해도 어제 잠 한숨 못 잤어요. 미국까지 직접 찾아가려다가 괜히 시선만 끌 것 같아서 겨우 참았다니까요.”“우리 오빠도 새언니처럼 말 좀 이쁘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이에 혀를 한 번 찬 소은호가 손가락으로 소은정의 이마를 살짝 밀었다.“지금 네가 내 태도로 뭐라고 할 상황이야? 시연이도 너 때문에 잠 한 숨 못 잤어. 새벽까지 미국 형사법을 들여봤다고.”소은호의 말에 흠칫하던 소은정은 그제야 한시연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하얀 한시연의
눈썹을 치켜세운 채 전동하를 바라보던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긴장했나 봐. 인사드리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더니...전동하도 이 상황이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지만 이렇게 된 이상 피할 수 없다는 생각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전동하와 서로 시선을 주고 받는 동생을 바라보던 소은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하, 소은정... 아주 좋아 죽네... 도저히 못 봐주겠다.“얼른 가요.”소은정이 전동하의 팔짱을 꼭 끼었지만 소은호의 눈치를 살피던 전동하가 그녀의 손을 스르륵 떼어내려 했다.하지만 그런 전동하를 골통 먹이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 소은정은 팔에 더 꽉 힘을 주며 싱긋 웃어보였다.내숭은... 평소엔 더 심한 짓도 하면서.행복하게 웃는 소은정을 바라보던 우연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이다... 어쨌든 무사히 돌아오셨으니 한고비 넘겼어.차에 탄 소은호가 우연준을 돌아보았다.“우 비서는 이만 퇴근해요. 내일 바로 회사로 출근하고요.”소은정을 힐끗 바라본 우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네.”“우 비서님 세미한테 연락해서 화보 촬영장 상황 계속 지켜보는 거 잊지 마세요.”“네, 대표님.”다행이다. 일을 맡기시는 걸 보니 고자질한 건 그냥 넘어가실 건가 봐. 잠시 후, 소은정의 본가.소은정의 예상과 다르게 소찬식은 낚싯대를 든 채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린 소찬식이 짧은 통화를 마쳤다.“왔어?”고개를 끄덕인 소은호가 한시연의 팔을 끌고 거실로 향하고 부랴부랴 소찬식을 향해 인사를 한 한시연은 그런 소은호를 살짝 흘겨보았다.“자리 피해주는 게 나아. 저기 계속 있다간 우리한테까지 불똥 튄다고.”이에 소은정이 오빠를 흘겨보았다.오빠, 다 들려... 아빠 화 많이 나셨겠지?역시나 심상치 않은 표정의 소찬식의 눈치를 살피던 소은정이 먼저 잘못을 인정했다.“아빠... 잘못했어요.”“뭘 잘못했는데?”하, 여자친구랑 싸우는 남자친구가 된 것 같네.우물쭈물하던 소은정이 솔직하게 말했다.“솔직히 저한
”하하, 그래.”고개를 끄덕인 소찬식이 전동하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가고 집사가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소은정의 곁으로 다가갔다.“아가씨, 뭐 드시고 싶으세요? 점심은 아가씨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준비할게요.”휴, 한 고비 넘긴 건가?한숨을 내쉰 소은정이 배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급하게 떠나느라 아침도 못 먹었더니 배가 고프네요.”멀미로 인한 울렁거림이 사라지니 바로 배가 고프기 시작한 소은정이었다.“아니. 아침을 안 드시면 어떡해요. 제가 일단 디저트라도 준비할게요.”말을 마친 집사가 부랴부랴 집으로 들어가고 소은정도 여유롭게 그 뒤를 따랐다.옷을 갈아입고 내려오는 소은호, 직원들에게 뭔가를 분부하는 한시연, 거실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전동하와 소찬식을 바라보던 소은정이 생각에 잠겼다.뭔가 허전한데? 아! 은해 오빠! 은해 오빠가 없으니까 틱틱댈 상대가 없네...이때 소찬식이 고개를 들리더니 그녀를 흘겨보았다.“거기 멍하니 서서 뭐 해? 어서 앉아.”아직도 화가 덜 풀린 듯한 소찬식의 모습에 소은정은 쪼르르 다가가 소파에 앉아 반짝이는 눈동자로 아빠를 바라보았다.그 맑은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소찬식도 차오르던 분노가 사르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나도 참 딸바보라니까. 내내 벼르고 있었는데 저 눈을 보니 화를 못 내겠어.“너 그런 사고를 쳤으면 바로 집에 연락부터 해야지. 그래야 해결을 하든 할 거 아니야. 그런데 그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와?”“어쨌든 무사히 돌아왔잖아요. 축하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축하?”어이없다는 듯 웃던 소찬식이 물었다.“네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갑자기 진지해진 소찬식의 목소리에 전동하가 움찔했다.이때 커피잔을 든 채 다가온 소은호가 털썩 소파에 앉았다.“그렇게까지 때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아니다. 아예 죽여버렸어야 하나요?”소은정이 뒷말을 하지 않았다면 전동하는 진심으로 그녀가 반성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커피를 뿜을 뻔한 소은호가 동생을 노려보았다.
전동하와 소은정을 대하는 소찬식의 태도는 완전히 달랐다. 소은정은 제자리에서 입술을 질끈 깨문 채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아빠가 하신 말씀이시니 나중에 뭐라 하지 마세요!”소찬식은 소은정을 노려보더니 말했다.“너는 나에게 말할 자격도 없어! 내 질문에 진심으로 대답해.”전기섭을 조용히 처리할 수 있는데 왜 그 사람을 돌려보냈냐고요?소은정은 더욱더 세게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저는 전인그룹이 전기섭이 죽어 가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게 할 거예요. 이런 쓰레기를 누가 제가 무서워할 것 같나요, 아빠?”소은호는 옆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전동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은정씨 말이 맞아요. 만약 조용히 처리한다면 전인그룹 쪽에서 반드시 신고할 것입니다. 심지어는 FBI를 동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제가 커집니다. 하지만 은정씨가 이렇게 한 원인은 대부분 사람이 개인 원한 관계로 알고 개입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소찬식이 눈썹을 치켜뜨더니 물었다.“그래서 지금 은정이가 처리한 방식이 맞았다고?”전동하가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소은정이 전동하를 보면서 미소를 띠었다. 역시 전동하는 언제나 소은정의 편이다. 당시 소은정은 그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처리했을 뿐이었다.소은정을 건드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누구이든지 모두 이런 대가를 치를 것이다. 당시 전동하가 그 현장에 있었더라면 일은 더욱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번졌을 것이다. 소은정을 위해서라면 전동하는 물불 가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은호와 눈짓을 교환한 소찬식는 더이상 소은정을 나무라지 않았다. “그래, 이미 벌어진 일이고 어떻게 수습할지 생각해 보자.”소은정이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진작에 다음 단계로 진행했어야 했죠.”진정된 소찬식이 입을 열었다.“아직까진 전인그룹이 이 일에 대해 모르는 것 같은데… 어젯밤 하도 소란스러웠으니 곧 조사에 들어갈 거야.”소은호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
전동하는 비참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덤덤하게 얘기했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게 하였다. 소은정은 가슴 아픈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전기섭을 전회장의 문 앞에 쓰레기처럼 버려놓은 것도 전회장에게 전기섭이 무능한 쓰레기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그녀를 위해서, 또 전동하를 위해서 버린 일이었다.이렇게 좋고 여린 사람을 괴롭히다니, 전인 그룹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소은호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어 바닥만 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소찬식은 동정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미안하네, 전대표. 그들이 반드시 우리를 찾을 것이지만 일은 소은호가 처리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은정이의 안전은 내가 무슨 수를 쓰든지 더 조심할걸세. 하지만 그들은 반드시 전대표에게 복수할 걸세…”이 일을 위해 나섰던 이들이 전동하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전동하가 이 일에 대해 변명하려 하여도 기회가 없었다. 전인 그룹이 전기섭을 위해 눈이 돌아 전동하를 위험에 빠지게 했다가는 큰일이다. 전동하는 차분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회장님, 어렸을 때부터 그 집안에서 자라와 누구보다도 그들을 잘 압니다. 그들이 저를 어떻게 하려고 해도 쉽지 않을 겁니다.”소찬식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전인그룹과 함께 어울리지 않아 그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은정이 웃으면서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요. 만약 저희를 다치게 하려고 한다면 죽여버리겠어요.”소은정은 차분한 말투로 살인 예고를 날렸다. 여기는 소씨 집안의 구역이다. 소씨 집안의 세력이야말로 얽히고설켜 있다. 이 자리까지 올라오기까지 거친 일들은 비바람뿐만이 아니다. 소은정은 소은호가 이 자리까지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과 역경을 지나 왔는지를 알고 있었고 그녀도 그 힘든 길에 발을 뻗으려 했으나 소은호가 그녀를 끄집어낸 것이다.소은호는 그런 소은정을 힐끗 쳐다보면서 아무런 말을 하
옛 기억에 잠겼던 소찬식의 입가에 다정한 미소가 번졌다. 당황한 소은정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아빠가 잘못 기억한 거예요. 성적 나빴던 적이 없다고요!”소은호가 조용히 한마디 했다. “내가 너 과외 해주기 전까지 늘 꼴등이었어.”소은정은 억울하다는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전동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고 소은정의 눈을 호기심 가득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해 더욱더 궁금해졌다. 외부에서는 똑똑하고 완벽한 소은정이 성적이 꼴등이었던 적이 있었다니! 디저트를 먹고 식사 준비를 기다리던 때였다. 아직 마음이 놓이지 않은 소찬식이 소은호를 서재로 불러들였다. 소은정이 쇼핑몰의 일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어둠과 회색 지대 같은 곳은 접촉하지 못했다. 그래서 소은호가 나서야만 했다. 한시연은 소은정과 전동하의 옆에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매우 우아하고 차분해 보였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때때로 눈을 맞추고 달콤한 웃음을 지었다. 공기 중에는 달콤한 향이 맴돌았다. 한시연이 그런 그들을 보면서 말했다. “제가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이 두 분을 방해한 것이 아닌가요?”소은정이 멈칫하더니 얼굴이 굳어졌다. 한시연의 말을 들은 소은정은 순간 부끄러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새언니…”소은정과 전동하의 관계는 아직 가족들에게 공개한 적이 없다. 소은호는 이미 알고 있지만 소찬식은 알고도 모른 척하고 있었다. 대놓고 말한 것은 한시연이 처음이다. 한시연은 다 눈치챘다는 듯 그들을 재밌다는 얼굴로 보고 있었다. “전동하씨가 전에 월 스트리트 투자은행에 계셨다고 했었나요?”전동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웃음에는 솔직하고 다정함이 묻어있었다. 전동하는 소은호의 아내이자 소은정의 새언니인 한시연에게 깍득하게 예를 갖추었다. “월 스트리트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였을 텐데… 금방 동하씨의 얘기를 들어보니 여기까지 오기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네요.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노력을
소은호의 얼굴에 어색한 기색이 역력했다.“그건 일 때문에…”소은정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계열사를 만나러 가는 일에 오빠가 굳이 나설 필요 없잖아. 매번 오빠가 직접 갔던 것이 새언니 때문이 아니면 대체 뭔데?”한시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눈가가 불그스름 해지고 눈물이 맺혔다. 소은호는 한시연에게 뛰어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품에 안고 다독였다.“내가 가야 하는 일이어서 갔을 뿐이야. 은정이는 …”한시연은 울먹이면서 말했다.“하지만 한 번도 거기엔 간 적이 없었다고 했잖아. 나를 보러 오기가 싫었던 거야? 매번 그쪽에 가더라도 월 스트리트는 피해서 다녔다고…”소은호는 복잡한 표정으로 소은정을 노려보았다. 한시연의 눈물을 보니 아파졌다. “울지마, 가든 말든 중요하지 않아. 당시에 모든 결정권은 너의 손에 있었어…”한시연이 놀라더니 고개를 숙여 더욱더 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한시연이 소은호를 밀치고 밖으로 나갔다. 이어 뒤따라가려던 소은호를 전동하가 잡고 말했다. “소대표님, 은정씨를 뒤따라가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발걸음을 옮겼다. 한시연이 울기 시작했을 때부터 소은정은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 사이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는 소은정도 잘 알지 못했다. 소은정이 이런 말을 한데에는 둘의 사이가 더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에 입 밖에 꺼낸 것인데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놀란 소은정은 그 자리에서 투명 인간처럼 서 있었는데 전동하가 그녀를 한시연에게 떠민 것이다. 하지만 소은정은 한시연을 잘 알지 못했는데 달래러 가더라도 소은호가 가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소은정은 눈을 크게 뜨고 전동하를 바라보았다. 전동하는 웃으면서 말했다.“어서 가세요…”소은정은 제자리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그때 소은호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에게 말했다.“거기서 뭐 해! 얼른 시연이한테 가! 달래지 못한다면 들어올 생각 하지 마!”소은해가 없는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