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꼭 안은 전동하의 미소는 더 밝아졌다.포옹은 꽤 긴 시간 동안 이어졌고 왠지 콧등이 시큰해지는 기분과 함께 소은정이 입을 열었다.“겨우 하루 못 본 건데... 보고 싶었어요.”소은정을 안은 전동하의 팔에 더 힘이 들어가고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소은정의 등과 머리를 쓰다듬었다.“나도요.”한편,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가만히 보고 있던 누군가가 결국 참지 못하고 헛기침을 내뱉었다.“크흠.”예상치 못한 인기척에 부랴부랴 전동하의 품에서 벗어난 소은정은 차가운 표정의 소은호를 발견하고 흠칫했다.“오빠?”소은호의 옆에 서 있던 한시연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손을 저었다.“아가씨.”“하, 소은정, 이 오빠는 보이지도 안 나봐?”소은호가 눈을 흘기며 불평을 내뱉자 한시연이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미간을 찌푸린 채 전동하를 돌아본 소은정이 구시렁댔다.“난... 동하 씨 혼자서 온 줄 알았는데...”오빠랑 새언니랑 다 같이 온 거야? 그럼 아까 모습도 다 봤다는 거 아니야. 윽... 민망해. 쪽팔려!잔뜩 굳은 표정의 소은호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출국한 지 하루만에 해외에서 그 큰 사고를 쳤으면 바로 돌아올 것이지 그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와? 겁이 없는 건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지...”오빠의 꾸지람에 소은정이 메롱 표정을 지어보였다.“괜찮을 거라고 예상하고 잔 거야. 오빠는 내가 바보인 줄 알아?”이때 다가온 한시연이 설명을 이어갔다.“괜찮아 보여서 다행이에요. 오빠 말은 이렇게 해도 어제 잠 한숨 못 잤어요. 미국까지 직접 찾아가려다가 괜히 시선만 끌 것 같아서 겨우 참았다니까요.”“우리 오빠도 새언니처럼 말 좀 이쁘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이에 혀를 한 번 찬 소은호가 손가락으로 소은정의 이마를 살짝 밀었다.“지금 네가 내 태도로 뭐라고 할 상황이야? 시연이도 너 때문에 잠 한 숨 못 잤어. 새벽까지 미국 형사법을 들여봤다고.”소은호의 말에 흠칫하던 소은정은 그제야 한시연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하얀 한시연의
눈썹을 치켜세운 채 전동하를 바라보던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긴장했나 봐. 인사드리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더니...전동하도 이 상황이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지만 이렇게 된 이상 피할 수 없다는 생각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전동하와 서로 시선을 주고 받는 동생을 바라보던 소은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하, 소은정... 아주 좋아 죽네... 도저히 못 봐주겠다.“얼른 가요.”소은정이 전동하의 팔짱을 꼭 끼었지만 소은호의 눈치를 살피던 전동하가 그녀의 손을 스르륵 떼어내려 했다.하지만 그런 전동하를 골통 먹이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 소은정은 팔에 더 꽉 힘을 주며 싱긋 웃어보였다.내숭은... 평소엔 더 심한 짓도 하면서.행복하게 웃는 소은정을 바라보던 우연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이다... 어쨌든 무사히 돌아오셨으니 한고비 넘겼어.차에 탄 소은호가 우연준을 돌아보았다.“우 비서는 이만 퇴근해요. 내일 바로 회사로 출근하고요.”소은정을 힐끗 바라본 우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네.”“우 비서님 세미한테 연락해서 화보 촬영장 상황 계속 지켜보는 거 잊지 마세요.”“네, 대표님.”다행이다. 일을 맡기시는 걸 보니 고자질한 건 그냥 넘어가실 건가 봐. 잠시 후, 소은정의 본가.소은정의 예상과 다르게 소찬식은 낚싯대를 든 채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린 소찬식이 짧은 통화를 마쳤다.“왔어?”고개를 끄덕인 소은호가 한시연의 팔을 끌고 거실로 향하고 부랴부랴 소찬식을 향해 인사를 한 한시연은 그런 소은호를 살짝 흘겨보았다.“자리 피해주는 게 나아. 저기 계속 있다간 우리한테까지 불똥 튄다고.”이에 소은정이 오빠를 흘겨보았다.오빠, 다 들려... 아빠 화 많이 나셨겠지?역시나 심상치 않은 표정의 소찬식의 눈치를 살피던 소은정이 먼저 잘못을 인정했다.“아빠... 잘못했어요.”“뭘 잘못했는데?”하, 여자친구랑 싸우는 남자친구가 된 것 같네.우물쭈물하던 소은정이 솔직하게 말했다.“솔직히 저한
”하하, 그래.”고개를 끄덕인 소찬식이 전동하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가고 집사가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소은정의 곁으로 다가갔다.“아가씨, 뭐 드시고 싶으세요? 점심은 아가씨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준비할게요.”휴, 한 고비 넘긴 건가?한숨을 내쉰 소은정이 배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급하게 떠나느라 아침도 못 먹었더니 배가 고프네요.”멀미로 인한 울렁거림이 사라지니 바로 배가 고프기 시작한 소은정이었다.“아니. 아침을 안 드시면 어떡해요. 제가 일단 디저트라도 준비할게요.”말을 마친 집사가 부랴부랴 집으로 들어가고 소은정도 여유롭게 그 뒤를 따랐다.옷을 갈아입고 내려오는 소은호, 직원들에게 뭔가를 분부하는 한시연, 거실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전동하와 소찬식을 바라보던 소은정이 생각에 잠겼다.뭔가 허전한데? 아! 은해 오빠! 은해 오빠가 없으니까 틱틱댈 상대가 없네...이때 소찬식이 고개를 들리더니 그녀를 흘겨보았다.“거기 멍하니 서서 뭐 해? 어서 앉아.”아직도 화가 덜 풀린 듯한 소찬식의 모습에 소은정은 쪼르르 다가가 소파에 앉아 반짝이는 눈동자로 아빠를 바라보았다.그 맑은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소찬식도 차오르던 분노가 사르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나도 참 딸바보라니까. 내내 벼르고 있었는데 저 눈을 보니 화를 못 내겠어.“너 그런 사고를 쳤으면 바로 집에 연락부터 해야지. 그래야 해결을 하든 할 거 아니야. 그런데 그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와?”“어쨌든 무사히 돌아왔잖아요. 축하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축하?”어이없다는 듯 웃던 소찬식이 물었다.“네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갑자기 진지해진 소찬식의 목소리에 전동하가 움찔했다.이때 커피잔을 든 채 다가온 소은호가 털썩 소파에 앉았다.“그렇게까지 때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아니다. 아예 죽여버렸어야 하나요?”소은정이 뒷말을 하지 않았다면 전동하는 진심으로 그녀가 반성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커피를 뿜을 뻔한 소은호가 동생을 노려보았다.
전동하와 소은정을 대하는 소찬식의 태도는 완전히 달랐다. 소은정은 제자리에서 입술을 질끈 깨문 채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아빠가 하신 말씀이시니 나중에 뭐라 하지 마세요!”소찬식은 소은정을 노려보더니 말했다.“너는 나에게 말할 자격도 없어! 내 질문에 진심으로 대답해.”전기섭을 조용히 처리할 수 있는데 왜 그 사람을 돌려보냈냐고요?소은정은 더욱더 세게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저는 전인그룹이 전기섭이 죽어 가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게 할 거예요. 이런 쓰레기를 누가 제가 무서워할 것 같나요, 아빠?”소은호는 옆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전동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은정씨 말이 맞아요. 만약 조용히 처리한다면 전인그룹 쪽에서 반드시 신고할 것입니다. 심지어는 FBI를 동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제가 커집니다. 하지만 은정씨가 이렇게 한 원인은 대부분 사람이 개인 원한 관계로 알고 개입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소찬식이 눈썹을 치켜뜨더니 물었다.“그래서 지금 은정이가 처리한 방식이 맞았다고?”전동하가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소은정이 전동하를 보면서 미소를 띠었다. 역시 전동하는 언제나 소은정의 편이다. 당시 소은정은 그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처리했을 뿐이었다.소은정을 건드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누구이든지 모두 이런 대가를 치를 것이다. 당시 전동하가 그 현장에 있었더라면 일은 더욱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번졌을 것이다. 소은정을 위해서라면 전동하는 물불 가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은호와 눈짓을 교환한 소찬식는 더이상 소은정을 나무라지 않았다. “그래, 이미 벌어진 일이고 어떻게 수습할지 생각해 보자.”소은정이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진작에 다음 단계로 진행했어야 했죠.”진정된 소찬식이 입을 열었다.“아직까진 전인그룹이 이 일에 대해 모르는 것 같은데… 어젯밤 하도 소란스러웠으니 곧 조사에 들어갈 거야.”소은호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
전동하는 비참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덤덤하게 얘기했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게 하였다. 소은정은 가슴 아픈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전기섭을 전회장의 문 앞에 쓰레기처럼 버려놓은 것도 전회장에게 전기섭이 무능한 쓰레기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그녀를 위해서, 또 전동하를 위해서 버린 일이었다.이렇게 좋고 여린 사람을 괴롭히다니, 전인 그룹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소은호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어 바닥만 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소찬식은 동정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미안하네, 전대표. 그들이 반드시 우리를 찾을 것이지만 일은 소은호가 처리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은정이의 안전은 내가 무슨 수를 쓰든지 더 조심할걸세. 하지만 그들은 반드시 전대표에게 복수할 걸세…”이 일을 위해 나섰던 이들이 전동하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전동하가 이 일에 대해 변명하려 하여도 기회가 없었다. 전인 그룹이 전기섭을 위해 눈이 돌아 전동하를 위험에 빠지게 했다가는 큰일이다. 전동하는 차분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회장님, 어렸을 때부터 그 집안에서 자라와 누구보다도 그들을 잘 압니다. 그들이 저를 어떻게 하려고 해도 쉽지 않을 겁니다.”소찬식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전인그룹과 함께 어울리지 않아 그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은정이 웃으면서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요. 만약 저희를 다치게 하려고 한다면 죽여버리겠어요.”소은정은 차분한 말투로 살인 예고를 날렸다. 여기는 소씨 집안의 구역이다. 소씨 집안의 세력이야말로 얽히고설켜 있다. 이 자리까지 올라오기까지 거친 일들은 비바람뿐만이 아니다. 소은정은 소은호가 이 자리까지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과 역경을 지나 왔는지를 알고 있었고 그녀도 그 힘든 길에 발을 뻗으려 했으나 소은호가 그녀를 끄집어낸 것이다.소은호는 그런 소은정을 힐끗 쳐다보면서 아무런 말을 하
옛 기억에 잠겼던 소찬식의 입가에 다정한 미소가 번졌다. 당황한 소은정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아빠가 잘못 기억한 거예요. 성적 나빴던 적이 없다고요!”소은호가 조용히 한마디 했다. “내가 너 과외 해주기 전까지 늘 꼴등이었어.”소은정은 억울하다는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전동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고 소은정의 눈을 호기심 가득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해 더욱더 궁금해졌다. 외부에서는 똑똑하고 완벽한 소은정이 성적이 꼴등이었던 적이 있었다니! 디저트를 먹고 식사 준비를 기다리던 때였다. 아직 마음이 놓이지 않은 소찬식이 소은호를 서재로 불러들였다. 소은정이 쇼핑몰의 일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어둠과 회색 지대 같은 곳은 접촉하지 못했다. 그래서 소은호가 나서야만 했다. 한시연은 소은정과 전동하의 옆에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매우 우아하고 차분해 보였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때때로 눈을 맞추고 달콤한 웃음을 지었다. 공기 중에는 달콤한 향이 맴돌았다. 한시연이 그런 그들을 보면서 말했다. “제가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이 두 분을 방해한 것이 아닌가요?”소은정이 멈칫하더니 얼굴이 굳어졌다. 한시연의 말을 들은 소은정은 순간 부끄러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새언니…”소은정과 전동하의 관계는 아직 가족들에게 공개한 적이 없다. 소은호는 이미 알고 있지만 소찬식은 알고도 모른 척하고 있었다. 대놓고 말한 것은 한시연이 처음이다. 한시연은 다 눈치챘다는 듯 그들을 재밌다는 얼굴로 보고 있었다. “전동하씨가 전에 월 스트리트 투자은행에 계셨다고 했었나요?”전동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웃음에는 솔직하고 다정함이 묻어있었다. 전동하는 소은호의 아내이자 소은정의 새언니인 한시연에게 깍득하게 예를 갖추었다. “월 스트리트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였을 텐데… 금방 동하씨의 얘기를 들어보니 여기까지 오기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네요.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노력을
소은호의 얼굴에 어색한 기색이 역력했다.“그건 일 때문에…”소은정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계열사를 만나러 가는 일에 오빠가 굳이 나설 필요 없잖아. 매번 오빠가 직접 갔던 것이 새언니 때문이 아니면 대체 뭔데?”한시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눈가가 불그스름 해지고 눈물이 맺혔다. 소은호는 한시연에게 뛰어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품에 안고 다독였다.“내가 가야 하는 일이어서 갔을 뿐이야. 은정이는 …”한시연은 울먹이면서 말했다.“하지만 한 번도 거기엔 간 적이 없었다고 했잖아. 나를 보러 오기가 싫었던 거야? 매번 그쪽에 가더라도 월 스트리트는 피해서 다녔다고…”소은호는 복잡한 표정으로 소은정을 노려보았다. 한시연의 눈물을 보니 아파졌다. “울지마, 가든 말든 중요하지 않아. 당시에 모든 결정권은 너의 손에 있었어…”한시연이 놀라더니 고개를 숙여 더욱더 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한시연이 소은호를 밀치고 밖으로 나갔다. 이어 뒤따라가려던 소은호를 전동하가 잡고 말했다. “소대표님, 은정씨를 뒤따라가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발걸음을 옮겼다. 한시연이 울기 시작했을 때부터 소은정은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 사이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는 소은정도 잘 알지 못했다. 소은정이 이런 말을 한데에는 둘의 사이가 더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에 입 밖에 꺼낸 것인데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놀란 소은정은 그 자리에서 투명 인간처럼 서 있었는데 전동하가 그녀를 한시연에게 떠민 것이다. 하지만 소은정은 한시연을 잘 알지 못했는데 달래러 가더라도 소은호가 가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소은정은 눈을 크게 뜨고 전동하를 바라보았다. 전동하는 웃으면서 말했다.“어서 가세요…”소은정은 제자리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그때 소은호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에게 말했다.“거기서 뭐 해! 얼른 시연이한테 가! 달래지 못한다면 들어올 생각 하지 마!”소은해가 없는
한시연이 울먹이면서 말을 했고 그녀의 목소리에 후회와 슬픔이 담겨 있었다. “내 사업이 수익이 날 때쯤 한국인들의 파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오빠가 참여하는 걸 알고 있었어요. 오빠 얼굴 한번 보고 싶어서 여기저기 알아봐서 겨우 그 파티에 참석했죠. 하지만 먼저 나서기는 쉽지 않더라구요. 어렵게 지인한테 연락처를 받아서 며칠 동안 고민해 문자 한 통을 보냈어요. 신기하게도 바로 저라는 것을 알더군요.”소은정은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한시연과 소은호의 러브스토리가 순정 멜로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치정 멜로로 느껴졌다. 침묵 속에 뼈저린 마음이 베어져 있었다.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된 거예요?”소은정이 물었다. 한시연은 짧은 한숨을 쉬더니 웃었다.“맞아요. 제가 먼저 잊지 못했다고 말했어요. 만약 오빠가 아직 혼자라면 저랑 잘해볼 마음이 없냐고, 물론 싫다면 어쩔 수 없고요.”그 말을 들은 소은정은 침묵했다. 소은호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라 당연히 그가 주동적으로 쟁취할 거로 생각했었는데 한시연이 먼저 다시 만나자고 했다고? 남자는 사랑 앞에서 자신의 감정이 제어가 잘 되는 편인가 보다. 한시연이 말을 이어갔다.“그가 대답을 망설이는 그 몇초의 시간 동안 시간이 멈춰 버리는 듯했어요. 다행히 오빠도 좋다고 하더라고요.”그래서 5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다시 그들이 만나게 된 것이다.“제 생각에는 이걸 사랑이라고 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제가 은호씨가 좋아서 따라다녔고 마침 은호씨가 더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저랑 만나준 걸 거예요. 제가 운이 좋았어요.”그녀의 말을 들은 소은정의 마음이 아파왔다. 소은정이 한시연을 더욱더 비참하게 만든 듯했다.“새언니, 그렇게 깐깐한 오빠가 어떻게 그런 이유로 새언니랑 결혼하려 했겠어요? 만약 오빠가 좋아하지 않는다면 다시 만났을 리가 없어요. 두 분이 이별하고 나서 오빠 주위에는 어떤 여자도 곁에 두지 않았어요. 오빠가 새언니가 있는 도시에 갔다가 돌아오면 항상 깊은 생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