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고 정신이 아득해지려던 그때, 전동하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놓아주었다.살짝 달아올라 빨개진 뺨, 거칠어진 호흡, 호수처럼 맑은 눈동자, 꿀을 바른 듯 반짝이는 입술...그녀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전동하가 다시 그녀의 입술에 쪽 뽀뽀를 했다.하마터면... 정말 큰일날 뻔했어.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욕정을 누른 전동하가 말했다.“난 이렇게 달래주는 게 좋아요. 앞으로 기억해 둬요.”능글맞은 그의 말에 소은정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배워온 거야...입술을 꼭 깨문 소은정은 전동하를 홱 밀치더니 바로 집으로 쏙 들어가버렸다.풉... 역시 귀엽다니까.복도에 덩그러니 남겨진 전동하가 피식 웃었다.다음 날 아침, 부스스 눈을 뜬 소은정은 바로 휴대폰부터 확인했다.우연준과 처음 번호의 부재중 통화로 가득한 통화목록을 확인한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일이지?의아함과 함께 소은정은 먼저 우연준에게 콜백을 했다.“아, 대표님. 아까 마이크 학교 측에서 전화가 왔는데... 대표님더러 학교에 왔다 가시라는데요?”소은정의 비서로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덤덤하게 받아들이던 우연준 또한 이번에만큼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소은정과 전동하가 사귀는 건 사실이지만 마이크의 선생님이 왜 전동하가 아닌 그녀에게 연락을 해왔는지... 이해가 안 갔다.욕실로 향하던 소은정도 발걸음을 멈추었다.“네? 아, 알겠어요.”전화를 끊은 소은정이 전동하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어...”알림음에 전화를 끊은 그때 문자가 도착했다.“회의 중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중요한 회의인가 보네. 웬만하면 내 전화는 받을 텐데.잠깐 망설이던 소은정이 답장했다.“아니에요.”어차피 마이크는 그녀에게 이미 가족이나 마찬가지, 전동하 대신 학교를 가는 것도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다.잠시 후, 그녀가 학교에 도착하고 선생님이 공손한 태도로 그녀를 빈 교실로 안내했다.의자에 앉아 다리를 흔들고
여학생이 먼저 울었다니 선생님 입장에서는 여학생이 피해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는 상태.게다가 평소 그렇게나 귀엽고 착한 마이크가 누군가를 괴롭혔을 리가 없다고 소은정은 생각했다.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선생님이 휴대폰을 확인했다.“아, 한별이 아버님이 교문 앞에 도착하셨다네요. 전 마중 좀 나가볼게요.”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는 이 사실을 전동하에게 알려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이때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듯 마이크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별일 아니에요! 누나 혼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니까 아빠한테는 얘기하지 말아요. 저도 이렇게 사소한 일로 아빠 도움까지 받고 싶지 않다고요!”마이크의 말에 소은정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그래. 애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어쩔 수 없지 뭐.잠시 후, 선생님이 한별이라는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교실로 들어왔다.한별은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눈을 가진 누가 봐도 귀여운 여자아이였고 아버지는 50대쯤 되어 보이는 점잖은 중년 남자였다.물론 딸이 괴롭힘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이쪽은 마이크 누나분이시고. 이쪽은 고한별 학생 아버님이세요.”선생님의 소개에 소은정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지만 고한별 아버지라는 남자는 고개를 홱 돌리더니 코웃음을 쳤다.애매한 분위기에 어색한 미소를 짓던 선생님이 말을 이어갔다.“그럼 일단 두 분 앞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볼까요?”선생님이 두 아이를 향해 말하고 고한별은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바라보더니 바로 눈시울을 붉혔다.“괜찮아. 아빠가 있는데 뭐가 무서워. 다 말해!”훌쩍이던 고은별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모르는 문제가 있어서 마이크한테 물었는데 나더러 유치원부터 다시 다니라고 했어요...”고한별의 말에 마이크가 코웃음을 쳤다.“내 말이 틀렸어? 그런 것도 모르니까 유치원부터 다시 다니라고 한 거지!”“하, 얘 좀 봐봐?”고한별의 아버지가 기
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에 전동하는 당황스러웠다.뭐? 딸?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물으려던 그때 전동하의 머릿속이 번뜩였다.마이크는 항상 소은정을 “누나”라고 부르는데다 소은정은 워낙 동안이니 친누나라고 오해를 받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통화를 마친 전동하는 한숨을 내쉰 뒤 유창한 프랑스어로 사과의 말을 전하고 예정보다 일찍 회의를 끝마쳤다.학교로 향하는 내내 전동하는 선생님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해명하면 좋을지, 그리고 왜 소은정이 그 대신 학교로 간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다.30분 뒤, 교실에 도착한 전동하는 심상치 않은 교실 분위기에 미간을 찌푸렸다.쓰러졌다는 여자아이 아버지는 정신을 차린 모습이었지만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고 아이는 아빠의 품에 안겨 세상 서글프게 울고 있었다.그리고 어찌 할 바를 모르는 듯한 소은정과, 이 모든 사달을 일으킨 범인임에도 대수롭지 않은 듯한 마이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아버님 오셨어요?”가장 먼저 그를 발견한 선생님이 부랴부랴 일어서고 전동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과를 전했다.“죄송합니다. 저희 마이크가 또 말썽을 일으킨 모양이네요.”어렸을 때부터 크고 작은 사건을 일으키는 마이크 덕분에 학교에 호출을 당하는 것에 익숙해진 전동하 나름대로의 처세술이었다.그의 시선이 소은정을 휙 스치고 그녀는 괜히 가슴이 찔려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고 마이크도 소은정의 뒤에 몸을 숨겼다.하, 이 자식... 아빠 오니까 무섭다 이거야?선생님이 최대한 침착한 말투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전동하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IQ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상대방을 향한 기본적인 예의와 배려라고 생각하는 전동하라 마이크의 행동이 더 실망스러웠다.은정 씨도 나름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한 모양이지만 결국 마이크를 두둔한 것 같고...사건의 전말을 들은 전동하가 겸허한 태도로 여자아이 아버지에게 사과를 건네고 여기에 선생님의 설득까지 더해지자 그제야 아버지의 표정도 조금 풀어지기 시작했다.옷
순간 전동하도, 소은정도 당황하던 그때, 먼저 정신을 차린 전동하가 소은정의 손을 꼭 잡았다.하, 부녀?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했다.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손깍지라니... 부녀라기보다 커플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까 아까 교실에서도 아빠라는 말은 안 했지...한편, 전동하에게 손을 잡힌 채 부랴부랴 발걸음을 옮기던 소은정이 어색하게 웃었다.“내가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 부족한 게 많네요.”“이렇게 호출받은 게 처음은 아니라... 해외에서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것 같아요. 뭐, 워낙 적응력 하나는 뛰어난 자식이라 곧 괜찮아질 거예요.”전동하의 가벼운 목소리에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아, 회의 중이라면서요? 괜찮아요?”“어차피 거의 막바지였어요.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 있으면 바로 나한테 말해요. 이쪽으로는 나름 배테랑이랍니다.”전동하가 그녀의 손을 더 꼭 잡았다.얼굴을 붉히던 소은정이 변명했다.“아, 학교 쪽에서도 동하 씨가 전화를 안 받으니까 저한테 한 것 같아요.”하지만 그녀의 말에 전동하가 눈을 가늘게 떴다.“뭐라고요?”전화를 안 받아? 많은 부재중 통화 중에 학교나 마이크가 걸어온 건 단 한 통도 없었다.마이크 이 자식, 일부러...화가 난 듯한 전동하의 모습에 눈을 껌벅이던 소은정이 바로 마이크 편을 들었다.“아, 마이크가 동하 씨 번호를 깜박했나 봐요.”하지만 다음 순간 소은정은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아빠 번호를 까먹었다니... 핑계를 대도 참...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다.어이없다는 듯 웃던 전동하가 어깨를 으쓱했다.“그럼 절대 잊지 못하게 해야겠네요. 됐고 우린 밥이나 먹으러 갈까요?”생각보다 쉽게 화가 풀린 그의 모습에 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SC그룹 근처 레스토랑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각자 회사로 돌아갔다.며칠 뒤.우연준이 그녀에게 파티 초대장을 건넸다.“파티 초대장입니다. 해외 투자자들을 위한 파티
소은정이 다가가자 기사가 내려 문을 열어주었다.뒷좌석에 앉은 전동하가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오늘 왜 이렇게 이뻐요?”남자친구의 칭찬에 소은정이 웃으며 머리를 뒤로 넘겼다.“그런 칭찬은 너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네요.”소은정의 자뻑에 흠칫하던 전동하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뭐 그래도 내 칭찬은 다 진심이니까 흘려듣지 말아요.”하여간 말은 참 잘한다니까...소은정이 괜히 전동하를 흘겨보았다.한편 운전석에 앉은 기사는 달콤한 분위기를 뿜뿜하는 두 사람을 최대한 무시하며 운전에 집중하기 위해 애를 썼다.HL 호텔에 도착하고 전동하가 자연스럽게 그녀를 에스코트했다.그녀가 들어가자마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한참을 응대하던 그녀는 겨우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떴다.소파에 앉아 한숨 돌리고 있던 그때 전동하가 다가왔다.“파트너 이렇게 버리고 가기 있기에요?”섭섭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시달려 잔뜩 지친 그녀가 안쓰러운 전동하였다.멈칫하던 소은정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멋쩍게 웃었다.“오빠들이랑 왔을 때는 등장할 때만 같이 있고 그 다음엔 따로 다녔었거든요. 그게 익숙해졌나 봐요.”바로 그때, 마침 파티장에 입장한 강서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그 무서운 소은정에게 저런 환한 미소가 있었던가 싶던 그때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한 강서진의 얼굴이 어색하게 굳었다.아이고, 오늘 형 또 잔뜩 화나겠네.그 뒤를 따라 들어온 박수혁 역시 소은정을 발견하고 시선을 홱 돌렸다.“형, 그냥 새로운 남자에 대한 신선함? 그런 걸 거야. 마음에 담아두지 마.”차가운 시선으로 두 사람을 훝어보던 박수혁은 별말없이 다른 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강서진은 몰래 한숨을 돌렸다.잠시 후, 파티 호스트가 무대에 올랐다.“초대에 응해 주신 귀빈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오늘 이 파티는 미국에서 돌아온 오랜 제 친구를 위해 마련했답니다. 미국 전인그룹 전인국 회장님이십니다. 다들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전인그룹?소은정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다.나이가
전동하의 무덤덤한 태도에 전인국은 화가 치밀었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파티 호스트가 웃음을 터트렸다.“전동하 대표가 자네 아들이었어? 어쩐지... 미국에서 온 데다 전씨이기도 했지. 내가 왜 진작 눈치를 못 챘나 몰라?”친구의 너스레에 전인국이 피식 웃었다.“운이 좋아서 우리 집 핏줄로 태어난 거겠지.”무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던 전동하가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운이 좋아서요? 전 제가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먹은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살았는데요?”“전동하!”전인국이 목소리를 높이자 호스트가 두 사람 사이를 중재했다.“아이고, 자네 화 좀 줄여. 부자 사이에 무슨 오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천천히 얘기하면서 풀어. 난 그럼 저쪽에 한번 가봐야겠네.”호스트가 눈치껏 자리를 피해 주고 더 이상 친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서인지 전인국의 표정이 일그러졌다.“전동하, 기섭이 어디에 숨겼어? 네가 한 짓이지?”아버지의 추궁에 전동하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바다에 던졌습니다. 지금쯤 물고기 밥이 됐을 거예요.”“어찌 됐든 네 삼촌이야.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데 넌 어쩜... 내가 왜 너 같은 걸 데려왔는지...”아버지의 잔인한 질타에 전동하의 표정도 차가워졌다.“피가 물보다 진하다고요? 어차피 다들 절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자식으로 생각하시는 거 아닙니까? 제가 싹싹하게 나오면 오히려 적응이 안 되실 것 같은데.”순간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전동하의 한 발자국 뒤에 서 있던 소은정은 불꽃을 튀기는 두 부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아이고, 곁에 사람들 없었으면 아주 볼만했겠는데... 재벌집의 권력 다툼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였나?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난 것이 새삼스럽게 감사하게 느겨졌다.그리고 아무리 동생이라지만 아들의 안부 따위는 걱정하지 않는 듯한 전인국의 태도가 놀라웠다.“그래서? 풀어줄 생각없다... 이거냐?”“네. 그렇다면 어떻게 하실 거죠?”날카로운 아버지의 시선을 마주한
한숨을 푹 내쉰 전인국이 진심으로 전동하에게 실망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어차피 내가 죽으면 내가 가지고 있는 지분은 다 너한테 넘어가게 돼있어. 그런데 삼촌을 그렇게까지 몰아세워?”“전 대표, 아버지 말이 맞아. 그리고 이 대한민국에서 감금이라니. 그게 말이 되나?”“그래. 지금까지 키워주신 은혜를 생각해야지.”“어차피 시간 지나면 다 자네 몫이 될 걸 왜 마음이 그렇게 급하나.”...전씨 일가 내부 상황을 알 리가 없는 사람들은 그저 전인국의 선동에 이끌려 맞장구를 칠 따름이었다.아무것도 모르면서 다들 함부로 말하긴...게다가 전동하는 이 업계에서 나름 젠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전인국의 말 한 마디로 지금까지 쌓은 이미지가 무너지는 건 물론 괜히 가식적이며 욕심 많다는 프레임이 씌워질 수도 있었다.그건 안 되지...지금까지 뒤에서 구경만 하던 소은정이 한발 앞으로 다가섰다.“전동하 대표님과 협력하기 전 재산 상황에 대해 대충 조사를 해 본 적이 있긴 한데... 제 기억이 맞다면 전동하 대표가 가진 자산 중 전인그룹과 관련된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회장님께서는 왜 전동하 대표가 가문의 재산을 위해 이런 짓을 저지른 거라 단언하시는 건가요?”소은정이 갑자기 끼어들자 주위의 사람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전인권 역시 묘한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보다 피식 웃었다.“SC그룹 소은정 대표님이신가요?”“네.”어차피 다 알아봤을 거면서 모르는 척은...“기섭이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미모와 능력을 겸비한 재원이시라고. 오늘 보니 역시 그러네요.”“고맙습니다.”소은정이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전기섭의 뱀 같은 얼굴이 떠오르며 왠지 소름이 돋았다.같은 칭찬이라도 왠지 가식적으로 돌린단 말이야...“하지만 소은정 대표님. 저희 가문 사정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 같군요. 동하가 정말 혼자 힘으로 오늘 날의 명성을 얻었다 생각하십니까?”하지만 소은정은 이런 말에 기가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글쎄요. 다는
전동하의 말은 마치 고요한 수면 위에 던진 조약돌 같았다.납치?감금도 모자라 이제 또 납치라니...미국 재벌들은 다 이렇게 살벌하게 싸우는 건가?다들 잔뜩 겁 먹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헛소리 아닙니다. 증거가 있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먼저 오시길 기다렸습니다. 그때 발표하는 게 가장 확실할 테니까요.”“전동하...”그에게 공격을 날리 듯 전인국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지만 전동하는 오히려 미소를 짓더니 와인잔을 들었다.“자, 먼길 오셨으니 한잔 하셔야죠. 아버지, 일단 진정하시고 대화는 이제 따로 나누도록 하죠. 지금은 아버지께서 아직 준비가 안 되신 것 같네요.”말을 마친 전동하는 잔에 담긴 와인을 전부 마신 뒤 주위에 몰린 구경꾼들을 향해 싱긋 웃었다.“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돌아선 전동하가 소은정을 바라보았다.“난 밖에서 숨 좀 돌리고 올게요. 혼자 괜찮겠어요?”전동하의 눈동자에 담긴 미안함이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동하 씨 잘못도 아닌데 왜 미안해 해요...하지만 별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묘한 말을 남긴 채 전동하가 자리를 뜨자 분위기는 더 이상하게 번져갔다.잠깐 당황하던 전인국이 코웃음을 쳤다.“흥, 하여간 도망 하나는 잘 친단 말이야. 아이고, 본의 아니게 저희 집안 치부를 드러냈네요. 부끄럽습니다.”“아닙니다.”상황이 종료되고 사람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떴고 소은정도 휴식 구역에서 안면이 있는 이들과 인사를 나누었다.이때 누군가 다가오는 듯한 기분에 그녀가 고개를 홱 돌렸다.전인국이었다.그녀를 향해 웃으며 다가오는 전인국은 누가 봐도 사람 좋은 점잖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방금 전 잠깐 동안의 대화를 통해 그가 단순한 호의로 다가오는 게 아님을 소은정은 알고 있었다.“회장님, 저한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전인국이 다가오자 대화를 나누던 이가 눈치껏 자리를 뜨려고 하자 소은정이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네, 그럼 다음에 다시 얘기해요.”잠시 후,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