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하가 자리를 뜨고 그 모습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추하나가 소은정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축하해요.”“고마워요. 그런데 우혁이는요?”아직 열애 사실을 공개한 건 아니지만 이런 자리에 추하나를 혼자 보낼 성격이 아닐 텐데...“우혁이 요즘 새 프로그램 기획 중이거든요. 아까 그냥 얼굴만 잠깐 비추고 바로 갔어요.”다행이네. 두 사람 여전히 좋아보여서.잠시 후, 다시 돌아온 전동하가 그녀를 힐끗 바라보고 바로 그 눈빛에 담긴 뜻을 눈치챈 소은정이 일어섰다.“하나 씨, 그럼 저도 이만 가볼게요. 만나서 반가웠어요.”“그래요. 이제 또 봐요.”호스트인 심강열에게도 인사를 한 뒤 파티장을 나선 두 사람은 자연스레 전동하의 차에 탑승했다.왠지 숨막히는 분위기에 소은정이 살짝 창문을 열었지만 전동하가 다시 창문을 닫아버렸다.“아직 밤바람이 차요. 옷도 이렇게 얇게 입었으면서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요?”꾸짖는 듯한 말투였지만 그 속에 감춰진 걱정은 감출 수 없었다.“화 다 풀린 거예요?”소은정의 질문에 전동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어차피 은정 씨가 날 달래줄 리도 없으니까 알아서 풀어야줘.”전동하의 말에 소은정은 죄책감이 밀려들면서도 왠지 의아했다.달래달라니. 애도 아니고...곁눈질로 그녀를 힐끗 바라보던 전동하가 물었다.“왜 처음부터 해명 안 했던 거예요?”아... 아직도 그 사모님이라는 단어가 신경 쓰이는 거구나.“사실 처음엔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몰라서... 해명하려던 참에 동하 씨가 온 거고요...”잠깐 망설이던 소은정이 전동하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그럼 어떻게 달래줄까요?”두 사람의 연애에 더 적극적인 건 항상 전동하였고 소은정도 어느새 그의 사랑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 상태였다.하지만 순간 이런 관계가 전동하에겐 불공평하다는 기분이 들었다.소은정의 진지한 눈빛에 전동하의 가슴이 콩닥거렸다.안정적으로 운전을 하던 그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기분에 당장이라도 브레이크를 밟고 싶었으니까.그제야 살짝 굳었던
소은정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고 정신이 아득해지려던 그때, 전동하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놓아주었다.살짝 달아올라 빨개진 뺨, 거칠어진 호흡, 호수처럼 맑은 눈동자, 꿀을 바른 듯 반짝이는 입술...그녀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전동하가 다시 그녀의 입술에 쪽 뽀뽀를 했다.하마터면... 정말 큰일날 뻔했어.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욕정을 누른 전동하가 말했다.“난 이렇게 달래주는 게 좋아요. 앞으로 기억해 둬요.”능글맞은 그의 말에 소은정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배워온 거야...입술을 꼭 깨문 소은정은 전동하를 홱 밀치더니 바로 집으로 쏙 들어가버렸다.풉... 역시 귀엽다니까.복도에 덩그러니 남겨진 전동하가 피식 웃었다.다음 날 아침, 부스스 눈을 뜬 소은정은 바로 휴대폰부터 확인했다.우연준과 처음 번호의 부재중 통화로 가득한 통화목록을 확인한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일이지?의아함과 함께 소은정은 먼저 우연준에게 콜백을 했다.“아, 대표님. 아까 마이크 학교 측에서 전화가 왔는데... 대표님더러 학교에 왔다 가시라는데요?”소은정의 비서로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덤덤하게 받아들이던 우연준 또한 이번에만큼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소은정과 전동하가 사귀는 건 사실이지만 마이크의 선생님이 왜 전동하가 아닌 그녀에게 연락을 해왔는지... 이해가 안 갔다.욕실로 향하던 소은정도 발걸음을 멈추었다.“네? 아, 알겠어요.”전화를 끊은 소은정이 전동하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어...”알림음에 전화를 끊은 그때 문자가 도착했다.“회의 중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중요한 회의인가 보네. 웬만하면 내 전화는 받을 텐데.잠깐 망설이던 소은정이 답장했다.“아니에요.”어차피 마이크는 그녀에게 이미 가족이나 마찬가지, 전동하 대신 학교를 가는 것도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다.잠시 후, 그녀가 학교에 도착하고 선생님이 공손한 태도로 그녀를 빈 교실로 안내했다.의자에 앉아 다리를 흔들고
여학생이 먼저 울었다니 선생님 입장에서는 여학생이 피해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는 상태.게다가 평소 그렇게나 귀엽고 착한 마이크가 누군가를 괴롭혔을 리가 없다고 소은정은 생각했다.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선생님이 휴대폰을 확인했다.“아, 한별이 아버님이 교문 앞에 도착하셨다네요. 전 마중 좀 나가볼게요.”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는 이 사실을 전동하에게 알려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이때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듯 마이크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별일 아니에요! 누나 혼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니까 아빠한테는 얘기하지 말아요. 저도 이렇게 사소한 일로 아빠 도움까지 받고 싶지 않다고요!”마이크의 말에 소은정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그래. 애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어쩔 수 없지 뭐.잠시 후, 선생님이 한별이라는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교실로 들어왔다.한별은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눈을 가진 누가 봐도 귀여운 여자아이였고 아버지는 50대쯤 되어 보이는 점잖은 중년 남자였다.물론 딸이 괴롭힘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이쪽은 마이크 누나분이시고. 이쪽은 고한별 학생 아버님이세요.”선생님의 소개에 소은정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지만 고한별 아버지라는 남자는 고개를 홱 돌리더니 코웃음을 쳤다.애매한 분위기에 어색한 미소를 짓던 선생님이 말을 이어갔다.“그럼 일단 두 분 앞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볼까요?”선생님이 두 아이를 향해 말하고 고한별은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바라보더니 바로 눈시울을 붉혔다.“괜찮아. 아빠가 있는데 뭐가 무서워. 다 말해!”훌쩍이던 고은별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모르는 문제가 있어서 마이크한테 물었는데 나더러 유치원부터 다시 다니라고 했어요...”고한별의 말에 마이크가 코웃음을 쳤다.“내 말이 틀렸어? 그런 것도 모르니까 유치원부터 다시 다니라고 한 거지!”“하, 얘 좀 봐봐?”고한별의 아버지가 기
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에 전동하는 당황스러웠다.뭐? 딸?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물으려던 그때 전동하의 머릿속이 번뜩였다.마이크는 항상 소은정을 “누나”라고 부르는데다 소은정은 워낙 동안이니 친누나라고 오해를 받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통화를 마친 전동하는 한숨을 내쉰 뒤 유창한 프랑스어로 사과의 말을 전하고 예정보다 일찍 회의를 끝마쳤다.학교로 향하는 내내 전동하는 선생님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해명하면 좋을지, 그리고 왜 소은정이 그 대신 학교로 간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다.30분 뒤, 교실에 도착한 전동하는 심상치 않은 교실 분위기에 미간을 찌푸렸다.쓰러졌다는 여자아이 아버지는 정신을 차린 모습이었지만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고 아이는 아빠의 품에 안겨 세상 서글프게 울고 있었다.그리고 어찌 할 바를 모르는 듯한 소은정과, 이 모든 사달을 일으킨 범인임에도 대수롭지 않은 듯한 마이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아버님 오셨어요?”가장 먼저 그를 발견한 선생님이 부랴부랴 일어서고 전동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과를 전했다.“죄송합니다. 저희 마이크가 또 말썽을 일으킨 모양이네요.”어렸을 때부터 크고 작은 사건을 일으키는 마이크 덕분에 학교에 호출을 당하는 것에 익숙해진 전동하 나름대로의 처세술이었다.그의 시선이 소은정을 휙 스치고 그녀는 괜히 가슴이 찔려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고 마이크도 소은정의 뒤에 몸을 숨겼다.하, 이 자식... 아빠 오니까 무섭다 이거야?선생님이 최대한 침착한 말투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전동하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IQ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상대방을 향한 기본적인 예의와 배려라고 생각하는 전동하라 마이크의 행동이 더 실망스러웠다.은정 씨도 나름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한 모양이지만 결국 마이크를 두둔한 것 같고...사건의 전말을 들은 전동하가 겸허한 태도로 여자아이 아버지에게 사과를 건네고 여기에 선생님의 설득까지 더해지자 그제야 아버지의 표정도 조금 풀어지기 시작했다.옷
순간 전동하도, 소은정도 당황하던 그때, 먼저 정신을 차린 전동하가 소은정의 손을 꼭 잡았다.하, 부녀?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했다.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손깍지라니... 부녀라기보다 커플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까 아까 교실에서도 아빠라는 말은 안 했지...한편, 전동하에게 손을 잡힌 채 부랴부랴 발걸음을 옮기던 소은정이 어색하게 웃었다.“내가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 부족한 게 많네요.”“이렇게 호출받은 게 처음은 아니라... 해외에서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것 같아요. 뭐, 워낙 적응력 하나는 뛰어난 자식이라 곧 괜찮아질 거예요.”전동하의 가벼운 목소리에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아, 회의 중이라면서요? 괜찮아요?”“어차피 거의 막바지였어요.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 있으면 바로 나한테 말해요. 이쪽으로는 나름 배테랑이랍니다.”전동하가 그녀의 손을 더 꼭 잡았다.얼굴을 붉히던 소은정이 변명했다.“아, 학교 쪽에서도 동하 씨가 전화를 안 받으니까 저한테 한 것 같아요.”하지만 그녀의 말에 전동하가 눈을 가늘게 떴다.“뭐라고요?”전화를 안 받아? 많은 부재중 통화 중에 학교나 마이크가 걸어온 건 단 한 통도 없었다.마이크 이 자식, 일부러...화가 난 듯한 전동하의 모습에 눈을 껌벅이던 소은정이 바로 마이크 편을 들었다.“아, 마이크가 동하 씨 번호를 깜박했나 봐요.”하지만 다음 순간 소은정은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아빠 번호를 까먹었다니... 핑계를 대도 참...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다.어이없다는 듯 웃던 전동하가 어깨를 으쓱했다.“그럼 절대 잊지 못하게 해야겠네요. 됐고 우린 밥이나 먹으러 갈까요?”생각보다 쉽게 화가 풀린 그의 모습에 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SC그룹 근처 레스토랑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각자 회사로 돌아갔다.며칠 뒤.우연준이 그녀에게 파티 초대장을 건넸다.“파티 초대장입니다. 해외 투자자들을 위한 파티
소은정이 다가가자 기사가 내려 문을 열어주었다.뒷좌석에 앉은 전동하가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오늘 왜 이렇게 이뻐요?”남자친구의 칭찬에 소은정이 웃으며 머리를 뒤로 넘겼다.“그런 칭찬은 너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네요.”소은정의 자뻑에 흠칫하던 전동하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뭐 그래도 내 칭찬은 다 진심이니까 흘려듣지 말아요.”하여간 말은 참 잘한다니까...소은정이 괜히 전동하를 흘겨보았다.한편 운전석에 앉은 기사는 달콤한 분위기를 뿜뿜하는 두 사람을 최대한 무시하며 운전에 집중하기 위해 애를 썼다.HL 호텔에 도착하고 전동하가 자연스럽게 그녀를 에스코트했다.그녀가 들어가자마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한참을 응대하던 그녀는 겨우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떴다.소파에 앉아 한숨 돌리고 있던 그때 전동하가 다가왔다.“파트너 이렇게 버리고 가기 있기에요?”섭섭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시달려 잔뜩 지친 그녀가 안쓰러운 전동하였다.멈칫하던 소은정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멋쩍게 웃었다.“오빠들이랑 왔을 때는 등장할 때만 같이 있고 그 다음엔 따로 다녔었거든요. 그게 익숙해졌나 봐요.”바로 그때, 마침 파티장에 입장한 강서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그 무서운 소은정에게 저런 환한 미소가 있었던가 싶던 그때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한 강서진의 얼굴이 어색하게 굳었다.아이고, 오늘 형 또 잔뜩 화나겠네.그 뒤를 따라 들어온 박수혁 역시 소은정을 발견하고 시선을 홱 돌렸다.“형, 그냥 새로운 남자에 대한 신선함? 그런 걸 거야. 마음에 담아두지 마.”차가운 시선으로 두 사람을 훝어보던 박수혁은 별말없이 다른 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강서진은 몰래 한숨을 돌렸다.잠시 후, 파티 호스트가 무대에 올랐다.“초대에 응해 주신 귀빈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오늘 이 파티는 미국에서 돌아온 오랜 제 친구를 위해 마련했답니다. 미국 전인그룹 전인국 회장님이십니다. 다들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전인그룹?소은정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다.나이가
전동하의 무덤덤한 태도에 전인국은 화가 치밀었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파티 호스트가 웃음을 터트렸다.“전동하 대표가 자네 아들이었어? 어쩐지... 미국에서 온 데다 전씨이기도 했지. 내가 왜 진작 눈치를 못 챘나 몰라?”친구의 너스레에 전인국이 피식 웃었다.“운이 좋아서 우리 집 핏줄로 태어난 거겠지.”무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던 전동하가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운이 좋아서요? 전 제가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먹은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살았는데요?”“전동하!”전인국이 목소리를 높이자 호스트가 두 사람 사이를 중재했다.“아이고, 자네 화 좀 줄여. 부자 사이에 무슨 오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천천히 얘기하면서 풀어. 난 그럼 저쪽에 한번 가봐야겠네.”호스트가 눈치껏 자리를 피해 주고 더 이상 친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서인지 전인국의 표정이 일그러졌다.“전동하, 기섭이 어디에 숨겼어? 네가 한 짓이지?”아버지의 추궁에 전동하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바다에 던졌습니다. 지금쯤 물고기 밥이 됐을 거예요.”“어찌 됐든 네 삼촌이야.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데 넌 어쩜... 내가 왜 너 같은 걸 데려왔는지...”아버지의 잔인한 질타에 전동하의 표정도 차가워졌다.“피가 물보다 진하다고요? 어차피 다들 절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자식으로 생각하시는 거 아닙니까? 제가 싹싹하게 나오면 오히려 적응이 안 되실 것 같은데.”순간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전동하의 한 발자국 뒤에 서 있던 소은정은 불꽃을 튀기는 두 부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아이고, 곁에 사람들 없었으면 아주 볼만했겠는데... 재벌집의 권력 다툼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였나?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난 것이 새삼스럽게 감사하게 느겨졌다.그리고 아무리 동생이라지만 아들의 안부 따위는 걱정하지 않는 듯한 전인국의 태도가 놀라웠다.“그래서? 풀어줄 생각없다... 이거냐?”“네. 그렇다면 어떻게 하실 거죠?”날카로운 아버지의 시선을 마주한
한숨을 푹 내쉰 전인국이 진심으로 전동하에게 실망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어차피 내가 죽으면 내가 가지고 있는 지분은 다 너한테 넘어가게 돼있어. 그런데 삼촌을 그렇게까지 몰아세워?”“전 대표, 아버지 말이 맞아. 그리고 이 대한민국에서 감금이라니. 그게 말이 되나?”“그래. 지금까지 키워주신 은혜를 생각해야지.”“어차피 시간 지나면 다 자네 몫이 될 걸 왜 마음이 그렇게 급하나.”...전씨 일가 내부 상황을 알 리가 없는 사람들은 그저 전인국의 선동에 이끌려 맞장구를 칠 따름이었다.아무것도 모르면서 다들 함부로 말하긴...게다가 전동하는 이 업계에서 나름 젠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전인국의 말 한 마디로 지금까지 쌓은 이미지가 무너지는 건 물론 괜히 가식적이며 욕심 많다는 프레임이 씌워질 수도 있었다.그건 안 되지...지금까지 뒤에서 구경만 하던 소은정이 한발 앞으로 다가섰다.“전동하 대표님과 협력하기 전 재산 상황에 대해 대충 조사를 해 본 적이 있긴 한데... 제 기억이 맞다면 전동하 대표가 가진 자산 중 전인그룹과 관련된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회장님께서는 왜 전동하 대표가 가문의 재산을 위해 이런 짓을 저지른 거라 단언하시는 건가요?”소은정이 갑자기 끼어들자 주위의 사람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전인권 역시 묘한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보다 피식 웃었다.“SC그룹 소은정 대표님이신가요?”“네.”어차피 다 알아봤을 거면서 모르는 척은...“기섭이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미모와 능력을 겸비한 재원이시라고. 오늘 보니 역시 그러네요.”“고맙습니다.”소은정이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전기섭의 뱀 같은 얼굴이 떠오르며 왠지 소름이 돋았다.같은 칭찬이라도 왠지 가식적으로 돌린단 말이야...“하지만 소은정 대표님. 저희 가문 사정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 같군요. 동하가 정말 혼자 힘으로 오늘 날의 명성을 얻었다 생각하십니까?”하지만 소은정은 이런 말에 기가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글쎄요. 다는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