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당황하던 소은정이 피식 웃었다.“하하, 이런 상황은 드라마에서나 봤던 건데 저한테도 일어날 줄은 몰랐네요. 돈으로 저한테 겁을 줄 생각이시라면... 적어도 전인그룹의 절반은 내주셔야 할 겁니다.”돈이라면 나도 많아. 어디서 유세야?“아, 내 말을 오해한 것 같은데. 난 소 대표님한테 불만없어요. 오히려 마음에 꼭 듭니다. 그저 난...”입술을 깨물던 전인국이 말했다.“동하 말고 저희 기섭이랑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쿠궁!”순간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뭐지?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소은정이 눈을 깜박였다.“전기섭 대표요?”전기섭? 그 바보, 변태랑?그녀의 질문에 전인국이 고개를 끄덕였다.“전인그룹의 차기 상속자는 기섭입니다. 실력도 좋고 가문의 지지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거죠. SC그룹과 전인그룹이 손을 잡는다면 소 대표 장래에도 나쁠 게 없다고 생각되는데요?”전인국의 말에 소은정은 분노보다는 안쓰러움을 느꼈다.아, 이 사람... 지금까지 이런 취급을 받고 있었구나. 능력 하나 없는 전기섭은 가족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고 동하 씨는 사생아라는 이유로 온갖 오명을 뒤집어 쓰고 가문에서 쫓겨났어... 그런데 동하 씨가 사생아로 태어난 게 동하 씨 잘못은 아니잖아. 지금 뻔뻔하게 이런 말을 하는 이 아저씨 때문이지...그 누구의 도움과 신뢰도 받지 못한 채 지금의 성과를 얻어낸 전동하가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이제야 정정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 이제 하다하다 멀쩡히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까지 빼앗기게 생겼다니...전인국은 의미심장한 미소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알아본 바에 따르면 소은정은 굉장히 이성적인 여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적합한 정략결혼 상대인 태한그룹 박수혁과는 이미 틀어진 상태이니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을 터.그런 그녀에게는 전인그룹이 최적의 선택이 될 거라 전인국은 확신했다.소은정, 네가 정말 현명한 여자라면 내 제안에 무조건 흔들리게 될 거야. 명분없는 사생아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든 소은정이 피식 웃었다.“강서진 씨, 옛말에 앞길은 개도 안 막는다는데. 참... 여전하네요?”소은정의 비아냥거림에 강서진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여전히 독설가 면모를 보여주는 소은정에게 화가 안 난다면 거짓말이지만 알몸 사진을 가지고 있는 그녀에게 평생 굽실거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가 처량할 따름인 강서진이었다.하지만 형을 위해서라면 이쯤이야...!강서진이 다시 용기를 냈다.“은정 씨, 그게 아니라... 그냥 좋은 마음에 충고 하나 하고 싶어서요. 전동하 그 사람 은정 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사람 아니에요. 지금 속고 있는 거라고요.”강서진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이 바닥에 그 정도 가면 하나 안 쓰는 사람 있나요? 그리고 설령 날 속이는 게 맞다 해도 내가 속고 싶어서 속아주는 거예요. 강서진 씨가 뭐라 할 건 아니라고 보는데요?”강서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아, 괜히 말했네...소은정이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훤칠한 그림자가 그녀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고 박수혁의 존재를 느낀 그녀 또한 미소를 감추었다.파티 내내 박수혁은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소은정을 향한 그리움을 누르려 애썼다.하지만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로 향하는 시선은 박수혁도 막을 길이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와 미소 하나하나가 박수혁의 주의력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강서진도 이미 넋이 반쯤 나간 박수혁이 안쓰러워 먼저 다가온 것인데 기꺼이 속아주겠다니...마침 그 말을 들은 박수혁의 표정도 차갑게 굳었다.요즘 박수혁은 매일 소은정이 하루빨리 전동하의 진짜 모습을 눈치채길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그리고 그 진짜 모습을 알아채게 되는 계기에 그의 그림자가 남아있지 않도록 온갖 심혈을 기울였다.행여나 소은정이 질투로 인한 그의 모함이라 의심할까 봐 두려워서였다.하지만...너무나 차가운 소은정의 말에 박수혁은 영혼이 블랙홀로 끌려가는 기분이었다.성큼성큼 다가온 박수혁이 물었다.“너도 전동하에 대해
참 비굴하고 가련하기까지 한 한 마디.3년, 아니 2년 전에라도 이 말을 들었다면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테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그저 웃고 싶을 뿐이었다.박수혁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던 소은정은 자신의 마음을 더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아, 나 이제 이 남자... 정말 사랑하지 않는구나.“후회하고 싶지 않으니까. 똑같은 남자한테 감정 낭비하는 건 아무 가치없는 일이니까.”소은정의 솔직한 대답에 박수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항상 무표정이던 얼굴이 넋을 잃은 듯 무너졌다.가슴을 마구 쑤시는 듯한 차가운 말에 마지막 자존심까지 무너져버리고 말았다.하지만... 다음 순간, 고개를 숙인 박수혁이 소은정에게 다가갔다.이제 네가 누굴 사랑하는지 관심없어. 넌 내 거야. 아니, 내 거여야만 해...불행인지 다행인지 소은정이 빠르게 고개를 돌리고 박수혁의 차가운 입술은 그녀의 볼에 닿고 말았다.소은정은 온힘을 다해 반항했지만 남자의 힘 앞에서 그녀의 반항은 아이들 장난처럼 우스워보였다.두 손을 꽉 잡한 소은정은 두려우면서도 화가 치밀었다.이렇게 박수혁에게 잡히는 게 아닐까 싶어 두려웠고 왜 갑자기 이런 미친 짓을 할까 싶어 화가 났다...이때 차가운 바람이 소은정의 얼굴을 스치고 신음소리를 흘리던 박수혁이 중심을 잃고 기둥쪽으로 쓰러졌다.다행히 박수혁이 제때에 손을 놓아준 덕분에 소은정은 곧바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휘청이며 한발 물러선 박수혁이 무시무시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자신을 공격한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그의 눈동자에 살기가 서렸다.전동하가 잔뜩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평소 보여주던 친절의 가면을 집어던진 전동하의 포스는 박수혁 못지 않게 날카로웠다.박수혁을 노려보던 전동하가 소은정에게 다가갔다.“괜찮아요?”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던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요.”다시 고개를 돌린 전동하의 표정은 더 어두울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지만 박수혁은 거만하게 코웃음을 쳤다.“왜? 겨우 이 정도로 못
강서진이 부랴부랴 달려왔다.“두 사람 다 그만해. 전동하 대표, 경고하는데 수혁이 형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태한그룹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감당할 수 있겠어요?”소은정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강서진을 노려보았다.“왜 이제 와서 겁이라도 나나 보죠? 말끝마다 돈돈... 돈이라면 나도 있어요. 품위없게... ”소은정의 말에 강서진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하, 이 상황에서 전동하 편을 든다고?소은정의 말에 화가 더 치민 박수혁은 더 거센 공격을 이어나갔다.박수혁은 군인 출신, 진짜 전쟁과 테러를 겪은 그에게 이런 싸움쯤은 아무것도 아니어야 마땅했다.하지만 얌생이처럼 생긴 전동하의 생각밖의 실력에 박수혁도 조금 당황하기 시작했다.뭐야, 아예 영혼이 바뀐 것 같잖아?승부를 알 수 없는 개싸움이 이어지고 방금 전 강서진이 소란을 피운 덕분에 구경꾼들이 슬슬 몰려들기 시작했다.한숨을 내쉰 소은정이 두 사람 앞으로 다가갔다.“그만!”그녀의 목소리에 한덩이로 엉켜있던 두 사람이 바로 떨어졌지만 시선만은 여전히 맹수처럼 사나웠다.박수혁도, 전동하도 광대에 멍이 들고 입가에서도 피가 맺혀있었다.전동하가 소은정을 향해 다가가고 그의 상태를 살짝 살핀 소은정이 자연스레 그의 팔짱을 끼며 돌아섰다.그녀의 선택에는 그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박수혁은 왠지 모를 허탈감에 사로잡혀야 했다.“은정아...”박수혁이 속삭이듯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소은정이 발걸음을 멈추었다.순간 어두운 박수혁의 눈동자에 살짝 빛났다.“아까 당신이 나한테 한 짓... 충분히 맞을만 했던 거 알지? 동하 씨가 안 했으면 내가 때렸을 거야.”차가운 눈동자로 그를 노려보던 소은정이 다시 돌아섰다.잠깐 빛이 돌았던 박수혁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지고 왠지 무거워 보이던 전동하의 뒷모습은 갑자기 홀가분해졌다.박수혁에게 얻어맞은 곳이 전혀 아프게 느껴지지 않았다.한편, 싸움 구경을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박수혁과 전동하가 싸운 것
소은정과 만나기 시작한 뒤로 차에 항상 그녀를 위한 플랫슈즈를 준비해 두고 있는 전동하였지만 소은정은 단호한 목소리로 거절했다.“싫어요. 이 드레스에는 하이힐이 어울린다도고요.”하하, 우리 은정 씨... 이 와중에도 패션을 신경 쓰다니.병원에 들어가니 온기가 확 느껴지며 소은정은 몸에 힘이 쫙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그제야 소은정은 자신이 전동하의 재킷을 걸치고 있는 걸 발견했다.다친 주제에 얇은 셔츠 하나만 있고 있는 전동하를 바라보니 왠지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그래요?”소은정이 말없이 재킷을 벗으려던 그때 전동하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그냥 입고 있어요. 오랜만에 운동했더니 온몸에 열이 넘치네요.”잠시 후, VIP 병동.간호사가 전에 이곳에 입원했었던 소은정의 얼굴을 바라보고 바로 다가왔다.“이쪽 환자분한테 전체적으로 점검 좀 부탁드려요.”순간 간호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세상에... 이쪽이 환자였어?고개를 끄덕인 간호사가 바로 휠체어를 끌고 오고 소은정이 고갯짓을 했다.누가 보면 다리라도 부러진 줄 알겠네.어이가 없었지만 이런 과잉보호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전동하도 휠체어에 앉았다.2시간 뒤, 전동하가 의료진들에게 잔뜩 둘러싸여 검사실에서 나오고 소은정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일어섰다.“얼굴에 생긴 외상과 팔에 생긴 타박상을 제외하고 다른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연고 바르면 3일 안에 다 나을 거예요.”소은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휴, 크게 다친 건 아니라 다행이야.잠시 후, 오피스텔.평소와 달리 오늘은 소은정이 전동하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얼른 들어가요. 들어가는 거 보고 나도 갈 테니까.”“큭, 왠지 우리 두 사람 대사가 바뀐 것 같은데요?”평소에는 내가 하는 말이었는데.“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그리고 지금 동하 씨는 환자예요. 내가 보살펴 주는 게 당연하죠! 그러니까 얼른 들어가 쉬어요.”고개를 든 전동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은정 씨. 내가 어떤 상태든 내가 먼저 은정 씨를
한참을 가만히 있던 전동하가 말했다.“괜찮아요, 은정 씨. 난 괜찮아요...”어렸을 때부터 사생애아라는 오명 때문에 전동하는 기 한번 못 펴고 살았다.비록 재벌가의 자제였지만 그저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사는 사생아였을 뿐.왜 태어난 걸까?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된 순간부터 전동하의 머릿속을 꽉 채운 의문이었다.허영만 가득 찬 엄마, 책임감 없는 아빠, 그리고 무력한 자신...아무런 걱정 없이 밝기만 한 또래 아이들을 볼 때마다 부러움을 넘어 질투가 느껴졌다.그가 전씨 일가에서 배운 건 침묵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감추는 것뿐이었다.하지만 그렇게 굽히고 들어가도 그를 향한 전기섭의 적대감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전인그룹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처음 두각을 드러내자 전인국은 바로 함정을 파 그를 회사에서 쫓아냈다.어디서 더러운 사생아 주제에 기어오르려고. 평생 지옥에서 살아...그를 바라보는 전기섭의 시선은 항상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그래서 모든 걸 버리고 집을 나왔고 말 그대로 혈혈단신으로 월가에서 나름대로 입지를 다졌다.내가 비참하게 살길 바라? 그럴 수록 더 떡하니 잘 살아주겠어.자기 힘을 키워야 아들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죽기 살기로 일했고 이제야 좀 숨통이 트이나 싶을 때 소은정이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좋다... 이런 게 행복인 걸까?잠시 후, 한참을 훌쩍이던 소은정이 고개를 들었다.눈물에 셔츠가 흠뻑 젖은 걸 발견한 소은정이 멋쩍은 얼굴로 셔츠를 어루만졌다.“어쨌든 앞으로 그 누구도 동하 씨 괴롭히지 못하게 내가 지켜줄게요. 얼른 들어가요.”소은정의 말에 전동하의 가슴이 살랑거렸다.이렇게 예쁜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한편, 파티장 앞.오늘 밤은 밤바람이 유난히 차가웠다.차에 기댄 박수혁이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셔츠에 달렸던 다이아몬드 커프스 단추가 어느새 사라져버렸지만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허했다.차가운 얼굴로 담배를 입에 문 박수혁이 주머니에서 라이터
"동하가 너무 막 나가는 건 맞습니다. 한국에 있다고 자신을 건드리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거겠죠.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해도 아직 혈기왕성할 때라 그런가 귓등으로 흘리더군요."전인국의 말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박수혁은 피식 웃더니 짙은 담배 연기를 뱉어내고 무감정한 눈빛으로 앞쪽을 바라보고 있었다.아예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그의 모습에 전인국도 짜증이 치밀었지만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스렸다."박 대표님, 분명 동하가 우리 기섭이를 어딘가에 숨겨둔 걸 겁니다. 이 대한민국에서 태한그룹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은 없죠. 저희 형제를 좀 도와줄 순 없을까요?"그제야 박수혁이 고개를 돌렸다."도와달라라... 당신을 도우면 난 뭘 얻을 수 있죠?"무덤덤한 말투와 달리 박수혁의 머리는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전인그룹이라는 큰 고깃덩이가 눈앞까지 굴러온 이상 맛 한 번 보지 않고 버릴 수는 없었다.생각보다 훨씬 더 박수혁의 솔직한 질문에 전인국도 꽤 당황스러웠다..어차피 돈이라면 차고 넘치게 있을 테니 흔들리지 않을 테고...잠깐 고민하던 전인국이 말했다."전인그룹 한국지사의 지분 중 절반을 태한그룹에 양도하겠습니다.""하..."박수혁의 헛웃음에 당황하던 전인국이 다급하게 말을 바꾸었다."전인그룹은 지금 글로벌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박 대표님만 원하신다면 태한그룹이 전인그룹 한국지사의 유일한 클라이언트이자 대주주가 될 것입니다."다시 담배연기를 깊게 빨아들인 박수혁이 저 멀리서 달려오는 강서진을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좋습니다."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전인그룹이 한국에서 벌어들이는 수익 중 일부를 태한그룹이 거의 독점할 수 있을 것이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박수혁의 동의에 그제야 전인국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내일 저희 쪽 직원이 연락드릴 겁니다."이때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던 강서진이 말했다."형, 휴대폰을 이렇게 버려두고 오면 어떡해. 내가 한참 찾았네. 가자."이때 고개를 돌린 강서진이 멀어져
잠시 후, 박수혁은 휠채어에 앉은 채 병실에서 나왔다. 이마에는 붕대를 하고 팔에도 깁스를 한 그의 뒤를 병원의 의사들이 줄줄이 따랐다.‘뭐야? 멀쩡히 걸어들어가더니 휠체어를 타고 나온다고?’강서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아니 판을 이렇게 크게 키워야 해? 하여간 적당히를 몰라... 누가 보면 시한부 환자인 줄 알겠네!’강서진이 핀잔을 주려던 그때, 간호사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소은정 대표님이시잖아? 옆에 남자는 남자친구신가?""그런가 봐. 두 분 진짜 잘 어울리시더라. 남자친구가 조금 다치셨는데 소은정 대표님은 거의 울것 같은 표정이시던데?""남자친구도 잘생겼더라. 완전 그사세라니까. 부럽다...""제발 그 입들 좀 다물어요!"강서진이 무언의 아우성을 치려던 그때, 역시 대화내용을 들은 박수혁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휠체어에서 벌떡 일어선 박수혁이 깁스와 붕대를 거칠게 풀어 바닥에 던져버린 뒤 성큼성큼 병원문을 나섰다.한편,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의료진들은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팔꿈치가 약간 까진 걸로 깁스를 해달라 하고 반창고 정도만 붙이면 되는 상처에 붕대를 감아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부자들은 다 이렇게 변덕쟁이인 건가?’"형!"다급하게 안마의자에서 일어난 강서진의 고개를 살짝 돌리고 의사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타박상을 제외하고 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이 연고를 하루 세 번씩 발라주세요."고개를 끄덕인 강서진이 연고를 받아들고 부랴부랴 달려나갔다."형...""지금 형이 직접 운전하면 바로 사고야! 안 돼!"겨우 그를 따라잡은 강서진이 이미 운전석에 앉은 박수혁을 끌어낸 뒤 그 자리에 대신 앉았다."형, 어차피 앞으로 기회도, 시간도 많아. 전동하 저 자식이 언제까지 그렇게 기고만장할 것 같아? 안 그래?"안정적으로 시동을 건 강서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뒷좌석에 앉은 박수혁은 스쳐지나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물었다."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 안 해봤어?"그의 질문에 강서진도 말문이 막혀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