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과 만나기 시작한 뒤로 차에 항상 그녀를 위한 플랫슈즈를 준비해 두고 있는 전동하였지만 소은정은 단호한 목소리로 거절했다.“싫어요. 이 드레스에는 하이힐이 어울린다도고요.”하하, 우리 은정 씨... 이 와중에도 패션을 신경 쓰다니.병원에 들어가니 온기가 확 느껴지며 소은정은 몸에 힘이 쫙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그제야 소은정은 자신이 전동하의 재킷을 걸치고 있는 걸 발견했다.다친 주제에 얇은 셔츠 하나만 있고 있는 전동하를 바라보니 왠지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그래요?”소은정이 말없이 재킷을 벗으려던 그때 전동하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그냥 입고 있어요. 오랜만에 운동했더니 온몸에 열이 넘치네요.”잠시 후, VIP 병동.간호사가 전에 이곳에 입원했었던 소은정의 얼굴을 바라보고 바로 다가왔다.“이쪽 환자분한테 전체적으로 점검 좀 부탁드려요.”순간 간호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세상에... 이쪽이 환자였어?고개를 끄덕인 간호사가 바로 휠체어를 끌고 오고 소은정이 고갯짓을 했다.누가 보면 다리라도 부러진 줄 알겠네.어이가 없었지만 이런 과잉보호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전동하도 휠체어에 앉았다.2시간 뒤, 전동하가 의료진들에게 잔뜩 둘러싸여 검사실에서 나오고 소은정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일어섰다.“얼굴에 생긴 외상과 팔에 생긴 타박상을 제외하고 다른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연고 바르면 3일 안에 다 나을 거예요.”소은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휴, 크게 다친 건 아니라 다행이야.잠시 후, 오피스텔.평소와 달리 오늘은 소은정이 전동하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얼른 들어가요. 들어가는 거 보고 나도 갈 테니까.”“큭, 왠지 우리 두 사람 대사가 바뀐 것 같은데요?”평소에는 내가 하는 말이었는데.“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그리고 지금 동하 씨는 환자예요. 내가 보살펴 주는 게 당연하죠! 그러니까 얼른 들어가 쉬어요.”고개를 든 전동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은정 씨. 내가 어떤 상태든 내가 먼저 은정 씨를
한참을 가만히 있던 전동하가 말했다.“괜찮아요, 은정 씨. 난 괜찮아요...”어렸을 때부터 사생애아라는 오명 때문에 전동하는 기 한번 못 펴고 살았다.비록 재벌가의 자제였지만 그저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사는 사생아였을 뿐.왜 태어난 걸까?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된 순간부터 전동하의 머릿속을 꽉 채운 의문이었다.허영만 가득 찬 엄마, 책임감 없는 아빠, 그리고 무력한 자신...아무런 걱정 없이 밝기만 한 또래 아이들을 볼 때마다 부러움을 넘어 질투가 느껴졌다.그가 전씨 일가에서 배운 건 침묵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감추는 것뿐이었다.하지만 그렇게 굽히고 들어가도 그를 향한 전기섭의 적대감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전인그룹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처음 두각을 드러내자 전인국은 바로 함정을 파 그를 회사에서 쫓아냈다.어디서 더러운 사생아 주제에 기어오르려고. 평생 지옥에서 살아...그를 바라보는 전기섭의 시선은 항상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그래서 모든 걸 버리고 집을 나왔고 말 그대로 혈혈단신으로 월가에서 나름대로 입지를 다졌다.내가 비참하게 살길 바라? 그럴 수록 더 떡하니 잘 살아주겠어.자기 힘을 키워야 아들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죽기 살기로 일했고 이제야 좀 숨통이 트이나 싶을 때 소은정이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좋다... 이런 게 행복인 걸까?잠시 후, 한참을 훌쩍이던 소은정이 고개를 들었다.눈물에 셔츠가 흠뻑 젖은 걸 발견한 소은정이 멋쩍은 얼굴로 셔츠를 어루만졌다.“어쨌든 앞으로 그 누구도 동하 씨 괴롭히지 못하게 내가 지켜줄게요. 얼른 들어가요.”소은정의 말에 전동하의 가슴이 살랑거렸다.이렇게 예쁜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한편, 파티장 앞.오늘 밤은 밤바람이 유난히 차가웠다.차에 기댄 박수혁이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셔츠에 달렸던 다이아몬드 커프스 단추가 어느새 사라져버렸지만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허했다.차가운 얼굴로 담배를 입에 문 박수혁이 주머니에서 라이터
"동하가 너무 막 나가는 건 맞습니다. 한국에 있다고 자신을 건드리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거겠죠.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해도 아직 혈기왕성할 때라 그런가 귓등으로 흘리더군요."전인국의 말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박수혁은 피식 웃더니 짙은 담배 연기를 뱉어내고 무감정한 눈빛으로 앞쪽을 바라보고 있었다.아예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그의 모습에 전인국도 짜증이 치밀었지만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스렸다."박 대표님, 분명 동하가 우리 기섭이를 어딘가에 숨겨둔 걸 겁니다. 이 대한민국에서 태한그룹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은 없죠. 저희 형제를 좀 도와줄 순 없을까요?"그제야 박수혁이 고개를 돌렸다."도와달라라... 당신을 도우면 난 뭘 얻을 수 있죠?"무덤덤한 말투와 달리 박수혁의 머리는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전인그룹이라는 큰 고깃덩이가 눈앞까지 굴러온 이상 맛 한 번 보지 않고 버릴 수는 없었다.생각보다 훨씬 더 박수혁의 솔직한 질문에 전인국도 꽤 당황스러웠다..어차피 돈이라면 차고 넘치게 있을 테니 흔들리지 않을 테고...잠깐 고민하던 전인국이 말했다."전인그룹 한국지사의 지분 중 절반을 태한그룹에 양도하겠습니다.""하..."박수혁의 헛웃음에 당황하던 전인국이 다급하게 말을 바꾸었다."전인그룹은 지금 글로벌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박 대표님만 원하신다면 태한그룹이 전인그룹 한국지사의 유일한 클라이언트이자 대주주가 될 것입니다."다시 담배연기를 깊게 빨아들인 박수혁이 저 멀리서 달려오는 강서진을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좋습니다."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전인그룹이 한국에서 벌어들이는 수익 중 일부를 태한그룹이 거의 독점할 수 있을 것이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박수혁의 동의에 그제야 전인국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내일 저희 쪽 직원이 연락드릴 겁니다."이때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던 강서진이 말했다."형, 휴대폰을 이렇게 버려두고 오면 어떡해. 내가 한참 찾았네. 가자."이때 고개를 돌린 강서진이 멀어져
잠시 후, 박수혁은 휠채어에 앉은 채 병실에서 나왔다. 이마에는 붕대를 하고 팔에도 깁스를 한 그의 뒤를 병원의 의사들이 줄줄이 따랐다.‘뭐야? 멀쩡히 걸어들어가더니 휠체어를 타고 나온다고?’강서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아니 판을 이렇게 크게 키워야 해? 하여간 적당히를 몰라... 누가 보면 시한부 환자인 줄 알겠네!’강서진이 핀잔을 주려던 그때, 간호사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소은정 대표님이시잖아? 옆에 남자는 남자친구신가?""그런가 봐. 두 분 진짜 잘 어울리시더라. 남자친구가 조금 다치셨는데 소은정 대표님은 거의 울것 같은 표정이시던데?""남자친구도 잘생겼더라. 완전 그사세라니까. 부럽다...""제발 그 입들 좀 다물어요!"강서진이 무언의 아우성을 치려던 그때, 역시 대화내용을 들은 박수혁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휠체어에서 벌떡 일어선 박수혁이 깁스와 붕대를 거칠게 풀어 바닥에 던져버린 뒤 성큼성큼 병원문을 나섰다.한편,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의료진들은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팔꿈치가 약간 까진 걸로 깁스를 해달라 하고 반창고 정도만 붙이면 되는 상처에 붕대를 감아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부자들은 다 이렇게 변덕쟁이인 건가?’"형!"다급하게 안마의자에서 일어난 강서진의 고개를 살짝 돌리고 의사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타박상을 제외하고 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이 연고를 하루 세 번씩 발라주세요."고개를 끄덕인 강서진이 연고를 받아들고 부랴부랴 달려나갔다."형...""지금 형이 직접 운전하면 바로 사고야! 안 돼!"겨우 그를 따라잡은 강서진이 이미 운전석에 앉은 박수혁을 끌어낸 뒤 그 자리에 대신 앉았다."형, 어차피 앞으로 기회도, 시간도 많아. 전동하 저 자식이 언제까지 그렇게 기고만장할 것 같아? 안 그래?"안정적으로 시동을 건 강서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뒷좌석에 앉은 박수혁은 스쳐지나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물었다."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 안 해봤어?"그의 질문에 강서진도 말문이 막혀
다음 날, SC그룹, 9시 경.회의를 마친 소은정이 사무실로 들어오고 그 뒤를 따른 우연준이 평소답지 않게 우물쭈물거리기 시작했다."할말 있으면 그냥 해요."소은정이 피식 웃었다."전인권 회장이 한국의 모든 인맥을 동원해 전기섭 대표를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한테도 전기섭 대표의 행방을 알고 있냐며 묻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잠깐 침묵하던 소은정이 미소를 지었다."전인권 회장...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꽤 잘 통하는 인물인가 봐요? 다들 나서서 찾을 정도면 말이죠.""태한그룹도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잠깐 고민하던 우연준이 말했다."태한그룹과 전인그룹이 손을 잡는다면 저희도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적의 적은 친구라 이건가?’최근 태한그룹의 주요 프로젝트는 모두 하이테크 쪽에 집중되어 있고 전인그룹은 요즘 가상화폐 쪽에 투자를 해 꽤 재미를 본 상황이다.‘톡톡…’사인펜 끝으로 가볍게 책상을 두드리며 소은정은 깊은 고민에 잠겼다."우 비서님, 전인국 회장, 전인그룹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줘요. 사소한 것도 빠짐없이 전부요."비록 전체적인 정보는 알고 있었지만 왠지 진실에 뿌연 안개가 드리운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확실히 알아둘 필요가 있겠어.’소은정의 분부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던 우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소은정이 경계하는 건 태한그룹과 전인그룹의 협력이 아니었다. 전인그룹이라는 새로운 존재가 이 시장에 끼어든다면 이 바닥의 아슬아슬한 밸런스가 무너지게 될 터. 이것이 바로 소은정이 가장 걱정하는 일이었다.한편, 전기섭을 찾기 위해 경찰 인력까지 동원되었지만 결국 아무 성과도 얻지 못했다.시간이 흐를수록 전인국의 마음은 점점 타들어갔다.이와 달리 전동하는 평소와 다름없이 일하고 소은정과의 데이트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전기섭이나, 전인국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는 그의 모습에 소은정도 굳이 묻지 않았다."언젠가 때가 되면 말해 주겠지."며칠 뒤, 기분전환을 위해 한유라와 쇼핑을 하던 소은정이 미간
돈 좀 깨나 있다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프리미엄 마사지숍의 VVIP라면 적어도 수십 억은 썼다는 뜻, 깔끔한 디자인의 오일병은 딱 봐도 고급스러웠다.마사지사의 질문에 소은정은 가격도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네.”마사지사의 숙련된 손길에 소은정은 오랜만에 달콤한 휴식을 즐길 수 있었다.온몸의 근육이 풀어지고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들며 스르륵 잠이 들려던 그때, 소은정이 휴대폰이 울렸다.마사지사가 다급하게 휴대폰을 건네고 우연준의 이름을 확인한 소은정이 짧은 통화를 마쳤다.신 제품에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기지개를 켜는 한유라의 모습에 소은정이 피식 웃었다.“마사지 받으니까 어때?”“음... 온몸을 지폐로 두른 듯한 기분이랄까?”신박한 한유라의 비유에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뭐, 맞는 말이네.”만족스러운 서비스를 경험한 두 사람이 옷을 갈아입던 그때, 소은정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동하 씨네?’소은정의 입꼬리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걸렸다.“여보세요?”하지만 수화기 저편의 남자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회사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 비서님이 오늘 은정 씨 회사 땡땡이쳤다던데. 어디에요?”“유라랑 마사지 좀 받으러 왔어요. 지금 밥 먹으러 나가려고 하는데 동하 씨도 올래요?”“내가 가도 되는 거 맞아요?”소은정이 한유라를 바라보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는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괜찮다는데요.”“지금 바로 갈게요.”소은정이 통화를 마치고 옆에서 듣고 있던 한유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너희 두 사람 너무 붙어다니는 거 아니야? 꼭 밥까지 같이 먹어야 해? 친구랑 같이 있다는 거 들었으면 눈치껏 빠져줄 줄도 알아야지. 꼭 분리불안 있는 강아지 같다니까.”한유라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그건 네가 동하 씨가 박수혁이랑 싸우는 걸 못 봐서 그래. 그걸 봤으면 깜짝 놀랄 거다.’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소은정이 미소를 지었다.“동하 씨는 내 친구랑 만나는 거 좋아해. 어필할 기회라고 생각하거든.”
고개를 들어보니 전동하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는 전동하의 모습에 한유라가 고개를 저었다.‘은정이가 그렇게 좋은가...’“아, 동하 씨가 계산해 줬으면 좋겠다는 얘기하고 있었어요.”한유라가 농담처럼 건넨 말에 전동하는 바로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당연히 그래야죠. 대신 앞으로 더 자주 불러주세요.”농담을 진담으로 받는 그의 모습에 한유라의 미소가 어색하게 굳었지만 소은정은 굳이 그를 말리지 않았다.“아이고, 우리 동하 씨 그럼 앞으로 돈 많이 벌어야겠네요.”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전동하가 대답했다.“그럼요. 앞으로도 계산은 쭉 제가 할게요.”소은정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 전동하였다.계산을 마친 직원이 카드를 돌려주었다.“2억 4000만 원 결제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그 오일 딱 봐도 비싸 보이더니 생각보다 많이 나왔네.’전동하 역시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연스레 소은정의 핸드백을 받아들었다.한편 가격을 들은 한유라의 눈이 동그래졌다.2억 정도야 사려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금액이긴 했지만 마사지 2시간에 2억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뭐 먹을 거에요?”우연준의 문자에 답장을 하던 소은정아 말했다.“아까 보니까 저기 태국 레스토랑 새로 생긴 것 같던데. 가볼래요?”그녀의 제안에 한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워낙 배가 고파 고철이라도 뜯어먹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잠시 후, 레스토랑.식사를 하면서도 서로 시선을 마주치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한유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애들도 아니고... 저렇게나 좋을까? 은정이 쟤도 연애 처음 해보는 것도 아니면서 아주 푹 빠졌네? 아주 난 안중에도 없어...커플 사이에 커다란 방해꾼이 된 듯한 느낌에 한유라는 식사 내내 가시방석이었다.짧은 식사를 마친 한유라는 쿨하게 혼자 가겠다며 돌아섰다.아스파탐 수준의 달달함을 내뿜는 두 사
”사실 며칠 전에 우연히 예전 앨범을 보게 됐거든요. 전기섭의 어머니는 할아버지보다 30살이나 어린 젊은 여자였어요. 전씨 일가에 시집오고 나서 할아버지는 바로 돌아가셨고요.”전동하의 설명에 소은정이 시험 조로 물었다.“그러니까... 전기섭이... 할아버지 자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고개를 끄덕인 전동하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어머니가...”말끝을 흐린 전동하가 뭔가 다짐한 듯 말을 이어갔다.“돌아가시기 전에 사진을 많이 남겨두셨더라고요. 그리고 그 중에는 아버지와 전기섭의 어머니가 함께 찍힌 사진도 있었어요.”전동하의 말에 소은정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전인국 회장이... 전기섭의 어머니... 그러니까 전동하의 할머니 되는 사람과 그런 사이였다는 거예요?”한참 침묵하던 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직접 만난 적은 없었지만 사진 속 그의 “할머니”는 누가 봐도 감탄할 만한 미인이었다. 전에는 별 생각없이 넘겼던 사진들이었지만 이번에 앨범을 정리하며 다시 그 사진을 발견한 순간, 무시무시한 생각이 전동하의 머리를 스치며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었다.충격적인 이야기에 소은정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이 무슨 아침드라마에서도 보지 못할 막장 스토리란 말인가?대충 나이를 계산해 보면 전기섭의 어머니는 전동하의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어리다.만약 전기섭 대표가 정말 전 회장의 아들이라면...잠깐 고민하던 소은정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전 회장이 왜 그렇게 전 대표 편을 드나 의아했었는데... 자기 아들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면.. 게다가 첫사랑 연인이 낳은 아들이기도 하니까... 하, 말도 안 돼.”한 명은 술집 여자와 낳은 실수 같은 아들, 다른 하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첫사랑과 낳은 아들.어느 쪽에 마음이 더 갈지는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전동하에게는 차가움을 넘어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반면, 전기섭에게는 무조건적인 신뢰와 사랑을 보여주었던 전인국의 행동이 이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