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들어보니 전동하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는 전동하의 모습에 한유라가 고개를 저었다.‘은정이가 그렇게 좋은가...’“아, 동하 씨가 계산해 줬으면 좋겠다는 얘기하고 있었어요.”한유라가 농담처럼 건넨 말에 전동하는 바로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당연히 그래야죠. 대신 앞으로 더 자주 불러주세요.”농담을 진담으로 받는 그의 모습에 한유라의 미소가 어색하게 굳었지만 소은정은 굳이 그를 말리지 않았다.“아이고, 우리 동하 씨 그럼 앞으로 돈 많이 벌어야겠네요.”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전동하가 대답했다.“그럼요. 앞으로도 계산은 쭉 제가 할게요.”소은정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 전동하였다.계산을 마친 직원이 카드를 돌려주었다.“2억 4000만 원 결제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그 오일 딱 봐도 비싸 보이더니 생각보다 많이 나왔네.’전동하 역시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연스레 소은정의 핸드백을 받아들었다.한편 가격을 들은 한유라의 눈이 동그래졌다.2억 정도야 사려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금액이긴 했지만 마사지 2시간에 2억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뭐 먹을 거에요?”우연준의 문자에 답장을 하던 소은정아 말했다.“아까 보니까 저기 태국 레스토랑 새로 생긴 것 같던데. 가볼래요?”그녀의 제안에 한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워낙 배가 고파 고철이라도 뜯어먹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잠시 후, 레스토랑.식사를 하면서도 서로 시선을 마주치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한유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애들도 아니고... 저렇게나 좋을까? 은정이 쟤도 연애 처음 해보는 것도 아니면서 아주 푹 빠졌네? 아주 난 안중에도 없어...커플 사이에 커다란 방해꾼이 된 듯한 느낌에 한유라는 식사 내내 가시방석이었다.짧은 식사를 마친 한유라는 쿨하게 혼자 가겠다며 돌아섰다.아스파탐 수준의 달달함을 내뿜는 두 사
”사실 며칠 전에 우연히 예전 앨범을 보게 됐거든요. 전기섭의 어머니는 할아버지보다 30살이나 어린 젊은 여자였어요. 전씨 일가에 시집오고 나서 할아버지는 바로 돌아가셨고요.”전동하의 설명에 소은정이 시험 조로 물었다.“그러니까... 전기섭이... 할아버지 자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고개를 끄덕인 전동하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어머니가...”말끝을 흐린 전동하가 뭔가 다짐한 듯 말을 이어갔다.“돌아가시기 전에 사진을 많이 남겨두셨더라고요. 그리고 그 중에는 아버지와 전기섭의 어머니가 함께 찍힌 사진도 있었어요.”전동하의 말에 소은정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전인국 회장이... 전기섭의 어머니... 그러니까 전동하의 할머니 되는 사람과 그런 사이였다는 거예요?”한참 침묵하던 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직접 만난 적은 없었지만 사진 속 그의 “할머니”는 누가 봐도 감탄할 만한 미인이었다. 전에는 별 생각없이 넘겼던 사진들이었지만 이번에 앨범을 정리하며 다시 그 사진을 발견한 순간, 무시무시한 생각이 전동하의 머리를 스치며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었다.충격적인 이야기에 소은정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이 무슨 아침드라마에서도 보지 못할 막장 스토리란 말인가?대충 나이를 계산해 보면 전기섭의 어머니는 전동하의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어리다.만약 전기섭 대표가 정말 전 회장의 아들이라면...잠깐 고민하던 소은정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전 회장이 왜 그렇게 전 대표 편을 드나 의아했었는데... 자기 아들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면.. 게다가 첫사랑 연인이 낳은 아들이기도 하니까... 하, 말도 안 돼.”한 명은 술집 여자와 낳은 실수 같은 아들, 다른 하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첫사랑과 낳은 아들.어느 쪽에 마음이 더 갈지는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전동하에게는 차가움을 넘어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반면, 전기섭에게는 무조건적인 신뢰와 사랑을 보여주었던 전인국의 행동이 이제야
삐친 모습도 귀엽다니까...고개를 숙이고 쿡쿡 웃던 전동하가 바로 대답했다.“글쎄요. 원하는 거? 그런 건 없어요. 그냥 마이크 몫이었던 걸 되찾아주고 싶은 것뿐이에요.”마이크는 칠년 간 애지중지 키워온 아들이자 어두운 어린 시절 유일하게 그를 편견없이 대해준 착한 동생의 유일한 피붙이이다.마이크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었다.창밖을 바라보던 전동하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한테는 어떻게 하든 괜찮지만 마이크는... 마이크 몫인 건 어떻게든 돌려놓을 거예요.”그 모습을 바라보던 소은정이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긴, 동하 씨가 이제 와서 복수 때문에 이성을 잃을 리가 없지.두 사람이 한동안 얘기를 나누던 그때 전동하의 휴대폰이 울리고 통화를 하는 그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 이마를 짚던 전동하가 한숨을 내쉬었다.“마이크가 학교에서 또 사고를 친 것 같아요.”하, 이 자식, 아빠 마음도 몰라주고 또 사고를 쳐?방금 전까지 마이크를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해주겠다던 전동하가 이를 악무는 모습에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얼른 가봐요. 난 회사로 들어가봐야 할 것 같아요.”모든 게 계획대로라고 생각하며 며칠이 흘렀지만 박수혁의 능력은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했다.3일만에 박수혁의 부하가 전기섭을 찾아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역시 소식을 입수한 전동하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전혀 놀라거나 아쉽다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내 생각보다 조금 더 빨리 찾아냈네요.”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3일이나 흘렀어요. 박수혁 성격이라면... 꽤 속 많이 끓였을 걸요. 워낙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라.”“글쎄요. 그냥 대충 찾아서 3일이었지. 정말 진심으로 찾았다면...”전동하가 고개를 저었다.“전기섭이 풀려난 이상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조심해요.”소은정의 진심어린 걱정에 전동하가 생글생글 웃었다.“그러게요. 은정 씨, 나 너무 무서워요. 은정 씨 집에 숨어있으면 안 돼요?”잔뜩 겁
김하늘이 여기까지 왔다는 건 소은해와 아주 잘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이니 기분이 좋아진 소은정이 부랴부랴 거실로 들어갔다.뒤이어 소은호까지 들어오니 집사 아저씨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오랜만에 집이 북적이네요.”“아저씨가 많이 힘드시겠어요.”집사는 수십 년 동안 소씨 일가에서 일하며 사남매의 어린 시절부터 쭉 지켜본 사람으로 그들에게는 단순한 고용인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별말씀을요.”소은호가 거실로 안내한 집사가 바로 주방으로 들어갔다.사람들이 잔뜩 몰려 소호랑도 기분이 좋은지 소찬식의 무릎에 자리를 잡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소찬식도 흐뭇한 표정으로 호랑의 털을 어루만졌다.“아빠, 제가 이 세상에서 아빠 제일 사랑하는 거 알죠?”소은해의 애교에 김하늘이 어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오빠도 참... 저 나이 먹고 주책이라니까...“아빠, 이 세상에서 아빠 성격을 가장 잘 건드리는 사람이 누구죠? 그것도 은해 오빠죠?”이때 마침 거실로 들어온 소은정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그녀의 목소리에 소은해가 고개를 홱 돌리더니 그녀를 노려보았다.“야, 소은정. 너 지금 오빠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소은해의 공격에 우습다는 듯 헛웃음을 짓던 소은정이 자연스레 소찬식 옆에 앉았다.“은해 씨, 여자친구 절친한테 지금 무슨 말버릇이시죠?”아니, 저 계집애가...! 입만 살아서는소은해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껄껄 웃던 소찬식이 막내딸의 손을 토닥였다.“오늘은 너희 오빠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 마. 하늘이 앞에서 센 척하고 싶은 것 같은데.”소찬식의 말에 김하늘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그래도 소은정의 친구로서 워낙 자주 드나들던 곳이라 그녀도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아버님, 은정이 지금 충분히 오빠 봐주고 있는 거예요...”소은정도 어깨를 으쓱했다.“그럼요. 오빠는 좀 기를 눌러줄 필요가 있어요. 아니면 자기가 정말 잘난 줄 안다니까요.”이에 소은해가 다시 발끈했다.“야, 소은정. 너 두고 봐.”
흠칫하던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동하 씨가 한 거 맞을 거야. 이미 의심하고 있었으니까.”언젠가 결과를 받게 될 거라는 건 알았지만 본의 아니게 가족들까지 다 알게 되다니.무거운 바위가 가슴을 짓누르 듯 마음이 무거웠다.겉보기에는 비즈니스계는 물론이고 정계에도 인연이 닿는 명문가인 전씨 일가가 사실은 콩가루 집안이었다니.놀랍다기 보다는 왠지 우스웠다.그래서 전기섭을 그렇게 찾았던 거였어? 아들 어떻게 될까 봐?“아들이라니... 요즘은 드라마 시나리오도 그렇게 안 써. 비현실적이라고 시청자들이 욕한다고. 와, 전대 회장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관뚜껑 열고 나올 일이다 정말...”김하늘이 소은해의 옷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래서 전씨 일가에서 동하 씨를 그렇게 배척했던 거군요. 전기섭 대표도... 그렇게가지 동하 씨를 싫어한 걸 보면 이미 자신이 전 회장 아들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겠어요.”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소은해가 엄지를 내밀었다.“역시 우리 하늘이! 똑똑해!”눈치없는 오빠를 흘겨보던 소은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소찬식의 눈치를 살폈다.뭐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대충 예상이 갔다.아마 전동하 때문에 그녀까지 위험하게 될까 봐 걱정하는 거겠지.하지만 전동하의 여자친구로서 이 모든 걸 가만히 지켜볼 수 없는 그녀는 그럴 일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무거운 거실 분위기에 김하늘이 소은해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오빠, 오늘 소장하고 있는 사인들 보여준다고 했잖아요.”김하늘의 말에 소은해가 눈을 반짝였다.“응. 선배님들 사인들은 내가 거의 다 가지고 있거든. 결혼하면 다 네 거야.”“됐네요. 난 보는 것만으로도 족해요.”두 사람이 2층으로 올라가고 소은호는 소은정의 맞은 편에 자리를 잡았다.“이렇게 된 이상 전 회장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우리는 절대 그 누구의 편에도 서면 안 돼. 알겠지?”복잡한 표정의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이 와중에 SC그룹까지 끼어든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을 젓는 아버지의 모습에 그의 어깨에 기댄 소은정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해요, 아빠. 괜히 걱정만 끼쳐드리고...”전인권 회장... 여기까지 사람을 보내? 내가 너무 방심했어.시무룩한 딸의 모습에 소찬식이 미소를 지었다.“아니다. 지금 네 아빠 뒷방 늙은이 취급하는 거니? 그런 걸로 겁 먹을 사람으로 보여? 이 아빠가 가장 걱정되는 건 너야. 전동하 대표 때문에 네가 위험해질까 봐... 너 정말 전동하 대표랑 계속 만날 생각이니?”소찬식이 오랫 동안 고민하던 질문을 던졌다.“일단 며칠 동안 본가에서 지내는 게 어떻겠니? 같은 오피스텔에서 살면 사람들도 오해할 테고.”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전동하 대표의 상황이 안타깝긴 했지만 더 걱정되는 건 소은정 쪽이었다.적어도 자신의 손길이 닿는 곳에 지내야 마음이 놓일 것만 같았다.그의 말에 소은정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망설이던 소찬식이 말을 이어갔다.“아빠도 너희 두 사람 사이를 막무가내로 반대하는 건 아니야. 일단 헤어졌다가 전동하 대표가 이번 일을 제대로 해결하면 그때...”깊은 한숨을 내쉰 소은정이 그의 말을 끊었다.“아빠, 아빠 말씀 무슨 뜻인지는 알겠어요. 그런데 이미... 늦었어요.”“늦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저번에 파티에서 전인권 회장을 만났는데 저랑 동하 씨가 만나는 거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어요. 동하 씨 말고 전인권 대표와 만나보는 게 어떠냐는 말에도 거절했고요. 그리고 지금 헤어진다고 말하면 오히려 전에 사귀었다는 걸 인정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전동하 대표가 불리해지니까 버린다고 사람들이 수군댈 수도 있고요.”소은정의 말에 소찬식은 침묵하고 소은호는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전인권? 그 늙은이 노망이 났나. 어디서 들이댈 걸 들이대야지...”“나도 그렇게 생각해.”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그 뒤로 대화는 자연스럽게 다른 쪽으로 빠졌고 소찬식도 더 이상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다음 날, 소은정은 마사지를 받으러 가자
“아니!”김하늘이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그냥 좀... 이상해서...”평생 혼자 모든 걸 책임지고 해결하는 삶을 살아온 김하늘은 갑작스러운 소은해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송구스러웠다.연애를 할 때도 항상 김하늘이 먼저 리드하는 쪽이었는데 왠지 소은해 앞에서만큼은 약해지는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기도 했다.하지만 그녀 대신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 항상 그녀만을 바라만 봐주는 소은해의 모습에 마음이 사르륵 녹아내리는 것만은 사실이었다.아니, 너무 행복해서 오히려 불안할 지경이었다.“그럼 천천히 적응해 나가면 되지. 우리 오빠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멋있는 척 다하고 다니지만 너도 알지? 사실은 그냥 애야 애.”잠깐 고민하던 김하늘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어떻게 얻은 사랑인데... 행복한 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그래. 시간 지나면 적응되겠지. 아, 너야말로. 동하 씨랑 오래 가네? 난 솔직히 두 사람... 곧 헤어질 줄 알았거든.”김하늘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동하 씨가 좋은 사람인 건 맞지만 뭐 여러 모로 네 스타일은 아니잖아? 난 네가 은인에 대한 고마움? 그런 마음인 줄 알았는데...”김하늘의 말에 소은정이 피식 웃었다.“그러게.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그런데 동하 씨랑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 좋아하는 사람이랑 손을 잡고 날씨 좋은 날 산책하는 기분이랄까?”소은정은 저번 연애는 다르게... 라는 말을 목구멍으로 삼켰다.3년 동안 박수혁만 바라봤지만 손끝 한번 허락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소은정은 이미 사랑에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다. 그런 그녀에게 전동하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구원이나 마찬가지였다.정말로 행복해 보이는 소은정의 미소에 김하늘의 입가에도 웃음이 피어올랐다.다행이야, 좋은 사람 만나서... 은정이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그날 점심, 소은정은 작품 촬영을 마치고 쉬고 있는 손호영과 점심 약속을 가졌다.윤시라의 악행이 드러나며 손호영의 이미지가 좋아진 건 사실이었지만 매일 수많은 신인들이 쏟아지는 연예계에서
소은정이 솔직하게 대답했다.SC그룹 같은 대기업이 오점이 있는 연예인을 억지로 홍보하는 리스크를 그대로 감당할 순 없었다.여론 작업이며 SC그룹이 할 수 있는 건 물론 최선을 다하겠지만 남은 건... 운에 맡겨야 했다.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손호영도 고개를 끄덕였다.이때 소은정의 휴대폰이 울렸다.“회사로 점심 주문했어요. 먹고 일해요.”전동하가 보낸 문자였다.“나 점심 약속 있는데...”“약속이요? 남자예요? 여자예요?”“당연히 남자죠.”소은정의 답장에 전동하가 우는 이모티콘을 보내왔다.유치하긴.소은정이 피식 웃던 그때 어딘가에서 익숙하지만 거부감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어, 이게 누구야? 소은정 대표님, 이런 데서 다 뵙네요. 우리가 우연이긴 한가 봐요.”순간 미소를 지운 소은정이 고개를 돌렸다.오랜만에 보는 윤시라와 여유로운 모습으로 걸어오는 전기섭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전기섭 대표님? 아, 풀려나셨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축하드려요.”소은정의 말에 전기섭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평생 곱게 자란 전기섭에게 며칠 동안이나 감금을 당했다는 건 일생 일대의 치욕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보던 전기섭이 피식 웃었다.“고맙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남자랑 식사 중이시네요? 우리 귀여운 조카가 알면... 꽤 슬퍼하겠는데요?”“제가 누구랑 밥을 먹든 그건 제 자유입니다.”소은정이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이때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윤시라가 끼어들었다.“소 대표님이야 뭐. 젊고 돈도 많으니까 누구를 못 만나겠어요. 전동하 대표님만 불쌍하게 됐죠 뭐...”윤시라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기도 전에 벌떡 일어선 소은정이 손에 잡히는 유릿잔의 물을 그녀에게 끼얹었다.민첩하게 몸을 피해 물 한 방울 묻지 않은 전기섭과 달리 쫄딱 젖은 윤시라의 눈이 커다래졌다.순간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그녀의 눈동자가 불안감으로 흔들렸다.다시 자리에 앉은 소은정이 여유롭게 물었다.“저번 일로 입 단속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