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일이 바쁘지 않을 때면 직접 현장에서 소품 배치며, 조명이며 사소한 사항까지 도움을 주었던 소은정 역시 덩달아 흐뭇해졌다.비록 아직 약혼식일 뿐이지만 초대한 하객들은 결코 적지 않았다.물론 최대한 조용하게 하고 싶다는 소은호, 한시연의 의견을 따라 언론에는 발표하지 않았고 초대장에 이름이 적힌 사람들만 참석하는 화려하면서도 조용한 약혼식이 만들어졌다.한유라와 심강열도 얼굴을 비추었지만 약혼 선물만 전하고 바로 자리를 떠버렸다.아마... 이것까지 지켜보기엔 아직 무리겠지.그 마음을 알기에 소은정도 굳이 강요하지 않았다.한숨을 내쉰 소은정이 대기실로 향했다.단아한 흰 드레스를 입은 한시연 위로 쏟아지는 조명 덕에 워낙 흰 피부가 투명하게 느껴졌고 얼굴에 걸린 맑은 샘물 같은 미소에 눈을 뗄 수조차 없었다.잠시 후, 식이 시작되고 하객들은 약혼 장소의 신비로운 인테리어와 아름다운 두 연인의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소찬식은 워낙 새로운 걸 좋아하는데다 하객들의 칭찬도 끊이지 않으니 저도 모르게 입이 귀에 걸렸다.식이 끝나고 AI 로봇들이 서빙이며 안내를 맡아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그 중에는 소은정에게 직접 로봇 구매 루트에 대해 묻는 이들도 있었다.잠시 후.익숙한 차량이 정원 앞에 멈춰섰다.소은정이 미소와 함께 다가가고 AI 로봇이 차문을 열어주었다.“오늘의 VIP 손님을 모십니다.”마이크는 차에서 내리기 전부터 로봇에게 시선을 빼앗겼고 그 뒤에 앉아있던 전동하가 아이를 번쩍 들었다.“얼른 내려! 창피하게!”고개를 돌린 마이크가 입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홱 돌렸다.“흥, 친아빠 맞아?”“많이 바빴나 봐요? 왜 이렇게 늦었어요.”소은정의 말에 전동하가 싱긋 웃었다.어두운 조명 속에서도 전동하의 눈동자는 맑게 빛나고 있었다.“미안. 갑자기 일이 생겨서요.”마이크가 달려가 바로 소은정의 손을 잡았다.“예쁜 누나, 평소에도 예쁘지만 오늘은 유난히 이쁘네요.”오늘의 소은정은 그레이톤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치
예쁜 누나와 떨어지는 게 아쉽긴 했지만 어차피 곧 다시 만날 거란 생각에 잠깐 망설이던 마이크는 결국 예쁜 누나의 손을 놓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하여간 애는 애라니까.전동하가 피식 웃었다.소은정이 마이크를 먼저 안으로 들여보낸 건 강서진이 왔다는 건 그 사람도 왔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역시나 고개를 돌리니 강서진 옆에 서 있는 박수혁의 얼굴이 보였다.꽤 오래만에 만나는 것이었지만 박수혁은 여전한 모습이었다.굳이 달라진 점을 찾자면... 워낙 차갑던 분위기가 더 냉랭해진 것 정도랄까?소은정 옆에 서 있는 전동하가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손의 온기가 심장까지 전해지고 방금까지 차갑게 식었던 마음이 다시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고개를 돌린 소은정은 전동하를 향해 싱긋 미소를 지은 뒤 아무렇지 않다는 듯 강서진에게 말을 걸었다.“서진 씨, 바쁜 데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요? 요즘 거의 반연예인처럼 사시잖아요?”강서진은 전 와이프인 추하나의 마음을 다시 얻기 위해 그녀가 고정 출연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반고정 패널로 출연하고 있었는데 능청스러운 모습으로 나름 인기 몰이 중이었다.“역시... 은정 씨는 여전히 독설가시네. 나 뼈 맞았어요.”강서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뭐, 재밌잖아요?”소은정의 여유로운 미소에 강서진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박수혁 혼자 왔다가 괜히 깽판이라도 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오긴 했지만 소은정의 얼굴을 보는 순간 역시 후회가 밀려왔다.하지만 소은정에게 여전히 그의 나체사진이 있으니 반박도 할 수 없고 더 미칠 노릇이었다.저 흑역사를 어떻게 지워야 하지...강서진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박수혁은 차가운 시선으로 전동하, 소은정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그의 매서운 눈초리가 꼭 잡은 두 사람의 손에 살짝 멈추고 곧 별일 아니라는 듯 시선을 돌렸지만 누군가 심장을 쥐어뜯 듯 가슴이 욱신거렸다.“전동하 대표님, 거성 프로젝트도 이제 막바지네요. 해외 특허 신청, 전시회 참여에 관한
사실 손을 홱 놓아버린 게 마음에 걸렸지만 농담을 하는 걸 보니 화가 난 건 아니다 싶은 생각에 소은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나 그런 여자 아니에요.”그리고 주위에 다른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소은정이 다시 슬그머니 전동하의 손을 잡았다. “동하 씨가 나랑 가장 잘 어울리는 파트너인데 내가 어디로 가요.”그녀답지 않은 닭살 멘트에 소은정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불빛이 어두워서 다행이야...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전동하의 입가에 미소가 실렸다.낯섬에서 익숙함으로 익숙함에서 친절함으로...그에 대한 소은정의 태도가 점점 바뀌고 있다는 걸 전동하도 느끼고 있었다.어느새 그의 세계로 더 깊이 발을 들이는 소은정을 바라보며 전동하는 왠지 마음껏 기뻐할 수 없었다.한편, 전동하와 팔짱을 끼고 들어오는 소은정의 모습을 발견한 소찬식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다른 사람이 보기엔 형식적인 파티 파트너일지 모르겠지만 소찬식은 그게 아님을 알고 있으니 표정 관리가 더 힘들었다.두 사람의 사이를 딱히 반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허락도 하지 않았다.어차피 젊은이들의 연애란 불확실성이 많은 것.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헤어지겠거니 했는데 한 달이 지났는데도 헤어지긴커녕 더 다정해진 모습에 왠지 불안해졌다.이때 소찬식의 친구가 다가와 자연스레 그의 옆에 앉았다.누가 오는 줄도 모르고 소은정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한 친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자식 키워봤지 소용없어. 은정이랑 전 대표 선남선녀에 잘 어울리는데... 이러다 다음 청첩장은 은정이 몫이겠어?”친구의 주책맞는 말에 소찬식의 마음은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은호 말고 은찬이, 은해도 있어. 은정이 차례가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무슨 소리야!”“하여간 은근히 보수적이라니까.”요즘 순서대로 결혼하는 집안이 몇이나 된다고.한편 소찬식의 마음도 착잡하긴 마찬가지였다.집안이면 집안, 외모면 외모, 성격이면 성격... 사람만 놓고 보면 눈 씻고 찾아도 찾기 힘든 최고의 사윗감이지만...
하지만 소찬식이 묻기 전에 전기섭이 먼저 입을 열었다.“회장님, 제가 오늘 실례를 무릅쓰고 초대받지 않은 자리에 온 건 박 대표님의 부탁을 받아 회장님께 저희 집안의 비밀에 대해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전기섭의 말에 소찬식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박수혁을 바라보았다.어색한 헛기침과 함께 박수혁이 입을 열었다.“회장님, 요즘 은정이가 전동하 대표와 각별한 사이로 지내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네. 제 사적인 욕심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은정이가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큽니다. 그래서 차마... 직접 은정이한테 알려줄 수는 없을 것 같아서요.”소찬식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전기섭을 바라보았다.“무슨 말인지는 잘 알겠지만... 집안의 사적인 비밀을 제가 알아도 괜찮을까요?”저번에 우리 집에서 한 말 말고 또 비밀이 있단 말이야? 딱히 듣고 싶지 않은데...게다가 소은정의 말에 따르면 전기섭은 겉보기엔 점잖고 침착한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 교활하다고 하니 엮이지 않고 싶은 마음이 컸다.전기섭이 진심어린 표정으로 대답했다.“제가 거짓말을 하는 거면 어떡하나 걱정하시는 거 압니다. 전에 제가 한 제안도 결국 거절하셨더군요. 그 결정 저도 존중합니다. 이제 얽혀있는 이해관계가 없으니 더 편한 입장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겁니다. 조심해서 나쁠 게 없으니까요.”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소찬식이 미소를 지었다.“좋습니다. 그럼 한 번 들어보죠.”박수혁을 힐끗 바라보던 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어갔다.“사실 전동하의 어머니는 미국 교포였습니다. 외모는 빼어났지만 가난했죠. 그런 여자가 해외에서 돈을 빨리 벌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업소에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 형님을 만나 정부가 되었죠. 그 결과로 동하가 태어났지만 형님은 애초에 이혼할 생각이 없었고 그 모습에 화가 난 건지 동하와 함께 죽어버리겠다고 형님을 협박했죠. 그래서 동하를 저희 집안에 들인 겁니다.”여기까지 말을 이어가던 전
하지만 소찬식은 형식적인 인사도 할 생각이 없는 듯 말없이 자리에 앉아있을 뿐이었다.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표정이 잔뜩 굳은 소찬식을 힐끗 바라보던 박수혁이 말했다.“회장님, 저도 어디까지나 은정이를 위해 전기섭을 여기까지 부른 겁니다. 전동하는 자신의 세력을 이용해 과거를 깨끗하게 세탁했죠. 어쩌면 전기섭은 전동하의 진짜 모습을 말할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일지도 모릅니다...”한참을 침묵하던 소찬식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그래. 우리 은정이... 걱정해 주는 마음은 고맙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지 않나? 신랑 아버지가 오래 자리를 비우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손님 맞이도 해야 하니 이만 가보겠네. 자네도 어서 나가보게.”소찬식의 비정상적인 차분함에 박수혁의 표정이 살짝 굳었지만 별다른 불평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박수혁이 휴게실을 나간 뒤에도 소찬식은 한참 동안 휴게실에 멍하니 앉아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딸과 사귀고 있는 남자의 끔찍한 과거에 대해 안 이상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지만 적어도 사람들 앞에서는 티를 낼 수 없으니 마음을 누르고 또 억눌렀다.물론 전기섭의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아예 믿지 않기엔 너무나 찝찝했다.도대체 진실은 무엇일까? 전동하는 왜 과거를 숨긴 것일까?밀려드는 의문이 가시처럼 그의 마음을 콕콕 찔렀다.은정이야 지금 콩깍지가 씌워진 상태니 말해도 별반 소용없을 테고... 나라도 신경 써야겠어.어느새 초대한 하객들이 거의 다 모였다.그 동안 소은정과 전동하는 항상 붙어있었지만 두 사람의 사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그저 비즈니스적으로 엮인 게 많다 보니 친한 모습을 보여주는 거겠거니 생각할 뿐이었다.하객들과 돌아가며 술을 마시다 보니 소은정은 왠지 기가 쪽 빠지는 기분이었다.와인잔을 내려놓은 소은정이 휴게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워낙 높은 굽의 하이힐을 신고 걸음을 옮기는 소은정의 모습이 왠지 위태로워 보였다.그런데 그때, 잘 걷던 소은정이 갑자
드레스 자락까지 챙겨주는 모습하며, 소은정을 바라보는 눈빛하며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남자의 모습이었으니까 궁금증이 밀려들 수밖에 없었다.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소은정이 난처한 표정을 짓던 그때 한시연이 여자를 흘겨보았다.“미혜야, 그렇게 프라이빗한 질문을 하면 어떡해.”미혜라는 이름의 여자가 귀엽게 메롱을 하더니 소은정을 향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아, 미안해요. 내가 실례했네요.”비록 당황스럽긴 했지만 나쁜 뜻으로 물은 건 아니니 소은정도 미소를 지었다.순간 전동하와의 연애사실을 인정하고 싶은 충동도 일었지만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마음을 다잡았다.아니야. 아직은 너무 일러...“괜찮아요. 호기심 없는 사람 있나요. 하지만 오늘은 일단 비밀로 하겠어요. 오늘은 누가 뭐라 해도 언니가 주인공이니까.”미소와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한시연이 물었다.“아까 마이크? 그 아이 전 대표님 아들이죠? 은해 도련님한테서 얘기 많이 듣긴 했는데 저도 직접 보고 싶네요...”“아주 귀여운 아이에요.”하지만 다음 순간 어두운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훑어보는 전동하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고 소은정의 미소가 어색하게 굳었다.뭐야? 아직도 마이크 못 찾은 거야?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소은정이 한시연에게 뭔가 말하려던 그때 전동하가 성큼성큼 다가왔다.그 와중에도 대화를 방해해 미안하다는 듯 한시연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전동하가 소은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마이크가 사라졌어요.”“뭐라고요?”“여기저기 다 뒤져봤는데 안 보여요. 하객들한테도 물었는데... 다들 어린 남자아이는 못 봤다네요...”소은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한시연 역시 불안한 예감이 밀려들었지만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두 사람을 위로했다.“아직 어리니까 어느 구석자리에서 놀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일단 진정해요. 식장에 CCTV도 다 깔려있고 AI 로봇한테도 카메라가 탑재되어 있어요. 이 식장에 들어왔다면 분명 찍혔을 거예요.”말을 마친 한시연이 소은정의 손
영상을 확인한 한시연의 표정도 어두워졌다.항상 친절하던 전동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초조함과 분노를 감출 수 없는 듯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창백해진 얼굴로 영상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던 소은정이 말했다.“저쪽이 좀 어둡네요. 3m 정도 밖에 안 되어 보이는데. 그 사이에 사라졌다고요?”“저곳은 하객들이 식장으로 들어오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작은 통로예요. 아무리 늦게 걸어도 10초 이상 머물 수 없는 곳인데 마이크는 어떻게...”도대체 어떻게 사라진 걸까?한시연이 말꼬리를 흐렸다.초조하게 입술을 물어뜯던 소은정이 전동하를 돌아보았다.“경찰에 신고하죠. 경찰이 출동하기 전까지는 우리끼리 식장 구석구석 둘러보고요.”말을 마친 소은정이 미안함이 담긴 눈빛으로 한시연을 바라보았다.“새언니...”한시연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말아요. 우리는 가족이잖아요. 아이를 찾는 게 가강 중요하죠.”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은 바로 통제실을 나섰지만 전동하는 차가운 시선으로 마이크가 사라진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하지만 모니터를 아무리 바라보아도 사라진 아이가 나타날 리가 없는 법. 조심스럽게 다가가려던 한시연은 한숨을 내쉬고 소은정의 뒤를 따랐다.마이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소은호 역시 흔쾌히 약혼식을 앞당겨 끝내는 것에 동의했다.갑자기 파티가 끝났다니 하객들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지만 어차피 즐길 만큼 즐기기도 했고 소은호의 예의 바른 사과와 고급스러운 선물까지 안겨주니 불쾌한 기색을 나타내는 사람은 없었다. AI 로봇들은 친절하게 차문까지 열어주며 마이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지 확인했다.하객들이 모두 떠나고 아름다운 3D 영상까지 꺼지고 나니 별장은 조용하다 못해 왠지 스산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소은정 일행은 다시 한 번 별장 구석구석을 뒤져보았지만 마이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상황을 접한 소찬식 역시 아이가 안타까웠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다 했던가?괜히 전동하와 사귀어 이런 일에 엮인 소은정이 더
잔뜩 굳은 표정의 소찬식이 대답했다.“당장 나오라고 해!”아빠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위화감에 소은정이 혼란스럽던 그때 전동하가 성큼성큼 다가왔다.“은정 씨, 아마 저택 안에는 없을 거예요. 지금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게요.”전동하가 다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소찬식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전 대표, 이런 자작극을 벌여? 게다가 하필 내 아들의 약혼식에서?”소찬식의 말에 멈칫하던 전동하가 고개를 돌렸다.“아버님,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아빠, 실종사건은 시간싸움이에요. 하실 말씀 있으면 다음에 하세요.”소은정이 전동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얼른 가요, 동하 씨.”하지만 전동하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소찬식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아이가 사라지면... 자네한테도 나쁜 일이 아니지 않나?”소찬식의 말에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아버지의 말이 가리키는 바를 바로 눈치챈 소은호가 옆에 서 있는 한시연에게 속삭였다.“가족이 아닌 사람들은 다 내보내.”고개를 끄덕인 한시연이 사람들과 함께 자리를 떴다.별장 거실에는 어느새 소은정의 가족들과 전동하만 남게 되었다.전동하의 검은 눈동자가 복잡미묘한 빛을 내뿜었다.“지금 아버님께서는... 제가 아이를 일부러 버리고 찾는 척하고 있다는 겁니까?”소찬식이 차가운 눈으로 전동하를 훑어보았다.“내 말이 틀렸나? 우연찮게 자네 과거에 대해 듣고 말았네. 나름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나도 가슴이 떨리는 말이었지. 마이크는 우리 집에서도 오랫 동안 지냈고 나를 비롯해 우리 가족 모두 마이크를 소중하게 생각했네. 내가 볼 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마이크에게 무슨 짓을 할 만한 명분이 있는 사람은 자네뿐인 것 같은데?”심한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소찬식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기에 주먹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모든 걸 확실히 하고 싶었다.만약 전기섭이 거짓말을 한 거라면, 그의 추측이 틀린 거라면 진심으로 사죄하겠지만 만약 모든 게 사실이라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