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손을 홱 놓아버린 게 마음에 걸렸지만 농담을 하는 걸 보니 화가 난 건 아니다 싶은 생각에 소은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나 그런 여자 아니에요.”그리고 주위에 다른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소은정이 다시 슬그머니 전동하의 손을 잡았다. “동하 씨가 나랑 가장 잘 어울리는 파트너인데 내가 어디로 가요.”그녀답지 않은 닭살 멘트에 소은정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불빛이 어두워서 다행이야...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전동하의 입가에 미소가 실렸다.낯섬에서 익숙함으로 익숙함에서 친절함으로...그에 대한 소은정의 태도가 점점 바뀌고 있다는 걸 전동하도 느끼고 있었다.어느새 그의 세계로 더 깊이 발을 들이는 소은정을 바라보며 전동하는 왠지 마음껏 기뻐할 수 없었다.한편, 전동하와 팔짱을 끼고 들어오는 소은정의 모습을 발견한 소찬식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다른 사람이 보기엔 형식적인 파티 파트너일지 모르겠지만 소찬식은 그게 아님을 알고 있으니 표정 관리가 더 힘들었다.두 사람의 사이를 딱히 반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허락도 하지 않았다.어차피 젊은이들의 연애란 불확실성이 많은 것.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헤어지겠거니 했는데 한 달이 지났는데도 헤어지긴커녕 더 다정해진 모습에 왠지 불안해졌다.이때 소찬식의 친구가 다가와 자연스레 그의 옆에 앉았다.누가 오는 줄도 모르고 소은정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한 친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자식 키워봤지 소용없어. 은정이랑 전 대표 선남선녀에 잘 어울리는데... 이러다 다음 청첩장은 은정이 몫이겠어?”친구의 주책맞는 말에 소찬식의 마음은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은호 말고 은찬이, 은해도 있어. 은정이 차례가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무슨 소리야!”“하여간 은근히 보수적이라니까.”요즘 순서대로 결혼하는 집안이 몇이나 된다고.한편 소찬식의 마음도 착잡하긴 마찬가지였다.집안이면 집안, 외모면 외모, 성격이면 성격... 사람만 놓고 보면 눈 씻고 찾아도 찾기 힘든 최고의 사윗감이지만...
하지만 소찬식이 묻기 전에 전기섭이 먼저 입을 열었다.“회장님, 제가 오늘 실례를 무릅쓰고 초대받지 않은 자리에 온 건 박 대표님의 부탁을 받아 회장님께 저희 집안의 비밀에 대해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전기섭의 말에 소찬식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박수혁을 바라보았다.어색한 헛기침과 함께 박수혁이 입을 열었다.“회장님, 요즘 은정이가 전동하 대표와 각별한 사이로 지내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네. 제 사적인 욕심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은정이가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큽니다. 그래서 차마... 직접 은정이한테 알려줄 수는 없을 것 같아서요.”소찬식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전기섭을 바라보았다.“무슨 말인지는 잘 알겠지만... 집안의 사적인 비밀을 제가 알아도 괜찮을까요?”저번에 우리 집에서 한 말 말고 또 비밀이 있단 말이야? 딱히 듣고 싶지 않은데...게다가 소은정의 말에 따르면 전기섭은 겉보기엔 점잖고 침착한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 교활하다고 하니 엮이지 않고 싶은 마음이 컸다.전기섭이 진심어린 표정으로 대답했다.“제가 거짓말을 하는 거면 어떡하나 걱정하시는 거 압니다. 전에 제가 한 제안도 결국 거절하셨더군요. 그 결정 저도 존중합니다. 이제 얽혀있는 이해관계가 없으니 더 편한 입장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겁니다. 조심해서 나쁠 게 없으니까요.”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소찬식이 미소를 지었다.“좋습니다. 그럼 한 번 들어보죠.”박수혁을 힐끗 바라보던 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어갔다.“사실 전동하의 어머니는 미국 교포였습니다. 외모는 빼어났지만 가난했죠. 그런 여자가 해외에서 돈을 빨리 벌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업소에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 형님을 만나 정부가 되었죠. 그 결과로 동하가 태어났지만 형님은 애초에 이혼할 생각이 없었고 그 모습에 화가 난 건지 동하와 함께 죽어버리겠다고 형님을 협박했죠. 그래서 동하를 저희 집안에 들인 겁니다.”여기까지 말을 이어가던 전
하지만 소찬식은 형식적인 인사도 할 생각이 없는 듯 말없이 자리에 앉아있을 뿐이었다.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표정이 잔뜩 굳은 소찬식을 힐끗 바라보던 박수혁이 말했다.“회장님, 저도 어디까지나 은정이를 위해 전기섭을 여기까지 부른 겁니다. 전동하는 자신의 세력을 이용해 과거를 깨끗하게 세탁했죠. 어쩌면 전기섭은 전동하의 진짜 모습을 말할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일지도 모릅니다...”한참을 침묵하던 소찬식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그래. 우리 은정이... 걱정해 주는 마음은 고맙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지 않나? 신랑 아버지가 오래 자리를 비우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손님 맞이도 해야 하니 이만 가보겠네. 자네도 어서 나가보게.”소찬식의 비정상적인 차분함에 박수혁의 표정이 살짝 굳었지만 별다른 불평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박수혁이 휴게실을 나간 뒤에도 소찬식은 한참 동안 휴게실에 멍하니 앉아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딸과 사귀고 있는 남자의 끔찍한 과거에 대해 안 이상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지만 적어도 사람들 앞에서는 티를 낼 수 없으니 마음을 누르고 또 억눌렀다.물론 전기섭의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아예 믿지 않기엔 너무나 찝찝했다.도대체 진실은 무엇일까? 전동하는 왜 과거를 숨긴 것일까?밀려드는 의문이 가시처럼 그의 마음을 콕콕 찔렀다.은정이야 지금 콩깍지가 씌워진 상태니 말해도 별반 소용없을 테고... 나라도 신경 써야겠어.어느새 초대한 하객들이 거의 다 모였다.그 동안 소은정과 전동하는 항상 붙어있었지만 두 사람의 사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그저 비즈니스적으로 엮인 게 많다 보니 친한 모습을 보여주는 거겠거니 생각할 뿐이었다.하객들과 돌아가며 술을 마시다 보니 소은정은 왠지 기가 쪽 빠지는 기분이었다.와인잔을 내려놓은 소은정이 휴게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워낙 높은 굽의 하이힐을 신고 걸음을 옮기는 소은정의 모습이 왠지 위태로워 보였다.그런데 그때, 잘 걷던 소은정이 갑자
드레스 자락까지 챙겨주는 모습하며, 소은정을 바라보는 눈빛하며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남자의 모습이었으니까 궁금증이 밀려들 수밖에 없었다.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소은정이 난처한 표정을 짓던 그때 한시연이 여자를 흘겨보았다.“미혜야, 그렇게 프라이빗한 질문을 하면 어떡해.”미혜라는 이름의 여자가 귀엽게 메롱을 하더니 소은정을 향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아, 미안해요. 내가 실례했네요.”비록 당황스럽긴 했지만 나쁜 뜻으로 물은 건 아니니 소은정도 미소를 지었다.순간 전동하와의 연애사실을 인정하고 싶은 충동도 일었지만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마음을 다잡았다.아니야. 아직은 너무 일러...“괜찮아요. 호기심 없는 사람 있나요. 하지만 오늘은 일단 비밀로 하겠어요. 오늘은 누가 뭐라 해도 언니가 주인공이니까.”미소와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한시연이 물었다.“아까 마이크? 그 아이 전 대표님 아들이죠? 은해 도련님한테서 얘기 많이 듣긴 했는데 저도 직접 보고 싶네요...”“아주 귀여운 아이에요.”하지만 다음 순간 어두운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훑어보는 전동하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고 소은정의 미소가 어색하게 굳었다.뭐야? 아직도 마이크 못 찾은 거야?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소은정이 한시연에게 뭔가 말하려던 그때 전동하가 성큼성큼 다가왔다.그 와중에도 대화를 방해해 미안하다는 듯 한시연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전동하가 소은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마이크가 사라졌어요.”“뭐라고요?”“여기저기 다 뒤져봤는데 안 보여요. 하객들한테도 물었는데... 다들 어린 남자아이는 못 봤다네요...”소은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한시연 역시 불안한 예감이 밀려들었지만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두 사람을 위로했다.“아직 어리니까 어느 구석자리에서 놀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일단 진정해요. 식장에 CCTV도 다 깔려있고 AI 로봇한테도 카메라가 탑재되어 있어요. 이 식장에 들어왔다면 분명 찍혔을 거예요.”말을 마친 한시연이 소은정의 손
영상을 확인한 한시연의 표정도 어두워졌다.항상 친절하던 전동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초조함과 분노를 감출 수 없는 듯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창백해진 얼굴로 영상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던 소은정이 말했다.“저쪽이 좀 어둡네요. 3m 정도 밖에 안 되어 보이는데. 그 사이에 사라졌다고요?”“저곳은 하객들이 식장으로 들어오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작은 통로예요. 아무리 늦게 걸어도 10초 이상 머물 수 없는 곳인데 마이크는 어떻게...”도대체 어떻게 사라진 걸까?한시연이 말꼬리를 흐렸다.초조하게 입술을 물어뜯던 소은정이 전동하를 돌아보았다.“경찰에 신고하죠. 경찰이 출동하기 전까지는 우리끼리 식장 구석구석 둘러보고요.”말을 마친 소은정이 미안함이 담긴 눈빛으로 한시연을 바라보았다.“새언니...”한시연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말아요. 우리는 가족이잖아요. 아이를 찾는 게 가강 중요하죠.”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은 바로 통제실을 나섰지만 전동하는 차가운 시선으로 마이크가 사라진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하지만 모니터를 아무리 바라보아도 사라진 아이가 나타날 리가 없는 법. 조심스럽게 다가가려던 한시연은 한숨을 내쉬고 소은정의 뒤를 따랐다.마이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소은호 역시 흔쾌히 약혼식을 앞당겨 끝내는 것에 동의했다.갑자기 파티가 끝났다니 하객들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지만 어차피 즐길 만큼 즐기기도 했고 소은호의 예의 바른 사과와 고급스러운 선물까지 안겨주니 불쾌한 기색을 나타내는 사람은 없었다. AI 로봇들은 친절하게 차문까지 열어주며 마이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지 확인했다.하객들이 모두 떠나고 아름다운 3D 영상까지 꺼지고 나니 별장은 조용하다 못해 왠지 스산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소은정 일행은 다시 한 번 별장 구석구석을 뒤져보았지만 마이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상황을 접한 소찬식 역시 아이가 안타까웠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다 했던가?괜히 전동하와 사귀어 이런 일에 엮인 소은정이 더
잔뜩 굳은 표정의 소찬식이 대답했다.“당장 나오라고 해!”아빠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위화감에 소은정이 혼란스럽던 그때 전동하가 성큼성큼 다가왔다.“은정 씨, 아마 저택 안에는 없을 거예요. 지금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게요.”전동하가 다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소찬식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전 대표, 이런 자작극을 벌여? 게다가 하필 내 아들의 약혼식에서?”소찬식의 말에 멈칫하던 전동하가 고개를 돌렸다.“아버님,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아빠, 실종사건은 시간싸움이에요. 하실 말씀 있으면 다음에 하세요.”소은정이 전동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얼른 가요, 동하 씨.”하지만 전동하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소찬식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아이가 사라지면... 자네한테도 나쁜 일이 아니지 않나?”소찬식의 말에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아버지의 말이 가리키는 바를 바로 눈치챈 소은호가 옆에 서 있는 한시연에게 속삭였다.“가족이 아닌 사람들은 다 내보내.”고개를 끄덕인 한시연이 사람들과 함께 자리를 떴다.별장 거실에는 어느새 소은정의 가족들과 전동하만 남게 되었다.전동하의 검은 눈동자가 복잡미묘한 빛을 내뿜었다.“지금 아버님께서는... 제가 아이를 일부러 버리고 찾는 척하고 있다는 겁니까?”소찬식이 차가운 눈으로 전동하를 훑어보았다.“내 말이 틀렸나? 우연찮게 자네 과거에 대해 듣고 말았네. 나름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나도 가슴이 떨리는 말이었지. 마이크는 우리 집에서도 오랫 동안 지냈고 나를 비롯해 우리 가족 모두 마이크를 소중하게 생각했네. 내가 볼 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마이크에게 무슨 짓을 할 만한 명분이 있는 사람은 자네뿐인 것 같은데?”심한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소찬식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기에 주먹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모든 걸 확실히 하고 싶었다.만약 전기섭이 거짓말을 한 거라면, 그의 추측이 틀린 거라면 진심으로 사죄하겠지만 만약 모든 게 사실이라
항상 부드럽고 친절하던 전동하는 딴 사람으로 변한 듯 날카로운 분노를 번뜩였다.한 발 다가선 전동하가 차가운 시선으로 소찬식을 바라보았다.“누가 그런 말을 한 겁니까?”“사실이냐고 물었네!”소찬식 또한 물러서지 않고 다시 한 번 물었다.전동하가 고개를 숙였다. 온몸의 혈관들이 터질 듯 부풀어오를 정도로 몸에 잔뜩 힘을 주던 그가 결국 입을 열었다.“네, 사실입니다. 그러니 아버님께서도 말씀해 주세요. 누가 말한 겁니까.”질문을 하긴 했지만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전동하는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차오르는 분노가 쌓이고 쌓여 몸 전체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전동하의 대답에 소은정 역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저렇게까지 분노와 증오를 내뿜는 전동하의 모습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고 가족들과 관련된 일일 것이라 짐작하면서도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후폭풍이 두려웠다.전동하의 인정에 소찬식이 헛웃음을 지었다.“그래. 자네가 솔직하게 인정했으니 나도 말하지. 자네 삼촌 전기섭이 말해 준 거네. 나한테 그 말을 해주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더군.”“전기섭”의 이름을 듣는 순간, 이미 짐작을 했음에도 전동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가만히 안 둘 거야...단호하게 돌아선 전동하가 별장을 나서려던 그때, 소찬식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자네가 은정이를 구해 준 건 고맙게 생각하네. 우리 집안도 은인에게 박한 사람들이 아니니 자네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겠네. 하지만 우리 은정이와 사귀는 건 안 돼. 자네가 단 한 순간이라도 마이크의 아버지였다면 지금 내 마음 이해할 거라 믿네.”그래. 이렇게 하는 게 맞아.소찬식의 최후통첩에 전동하가 발걸음을 멈추었다.부드러운 옆라인이 지금만큼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한, 두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곧 돌아와서 해명하죠.”마지막으로 깊은 눈으로 소은정을 바라본 전동하가 자리를 떴다.발걸음을 옮기는 전동하는 마치 사람들 앞에서 알몸으로 걷는 듯한 수치심에 휩싸였다.어두웠던 시간
소은호와 한시연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AI 로봇은 실시간으로 식장에 들어온 사람들 중 하객이 아닌 낯선 이가 있는지 스캔이 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파이더맨 같은 초능력자가 아닌 이상 초대받지 않은 사람이 감쪽같이 출입했다는 건 거의 불가능. 게다가 소찬식 말고는 전기섭의 얼굴을 본 사람도 없다.아직 화장도 지우지 못하고 드레스도 벗지 못한 한시연의 정교한 얼굴 위에 초조함이 스쳤다.“경찰에 신고해야 할까요?”소은정을 힐끗 바라보던 소은호가 고개를 저었다.“어차피 마이크가 사라진 지 3시간 정도밖에 안 됐어. 납치로 추정되는 협박 전화 같은 것도 없었고. 지금 이 상황에서 경찰에 신고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을 거야.”경찰에 신고한다는 말에 멍하니 있던 소은정이 고개를 홱 돌렸다.“오빠, 일단 경찰에 신고는 하지 말아줘. 일단 마이크를 찾는 게 중요하니까 난 일단 동하 씨한테로 가볼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오빠가 나 대신 아빠한테 물어봐줘.”소은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여긴 나한테 맡기고 가.”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이 드레스 자락을 잡고 바로 밖으로 뛰어나갔다.떠나는 소은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한시연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입을 벙긋거리며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가 결국 말했다.“아버님 말만 들어보면 전동하 그 사람... 거의 사이코패스나 다름 없던데. 게다가 본인도 인정했잖아. 그런데 왜 아가씨는 그 남자를 만나러 가는 걸까?”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전동하는 누가 봐도 완벽한 남자였다. 특히 한시연은 타고난 듯한 부드러운 성격과 겸손함을 좋게 보았었다.하지만 이 세상에 정말 완벽한 사람이라는 게 존재할까?방금 전, 만약 소찬식이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전동하는 여전히 차분하게 대응했을 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전동하가 소름 끼치게 느껴지는 한시연이었다.아가씨, 저런 남자랑 만나는 거 정말 괜찮은 거 맞을까? 게다가 아버님이 저렇게까지 반대하시는데... 도대체 어쩌려고...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