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을 확인한 한시연의 표정도 어두워졌다.항상 친절하던 전동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초조함과 분노를 감출 수 없는 듯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창백해진 얼굴로 영상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던 소은정이 말했다.“저쪽이 좀 어둡네요. 3m 정도 밖에 안 되어 보이는데. 그 사이에 사라졌다고요?”“저곳은 하객들이 식장으로 들어오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작은 통로예요. 아무리 늦게 걸어도 10초 이상 머물 수 없는 곳인데 마이크는 어떻게...”도대체 어떻게 사라진 걸까?한시연이 말꼬리를 흐렸다.초조하게 입술을 물어뜯던 소은정이 전동하를 돌아보았다.“경찰에 신고하죠. 경찰이 출동하기 전까지는 우리끼리 식장 구석구석 둘러보고요.”말을 마친 소은정이 미안함이 담긴 눈빛으로 한시연을 바라보았다.“새언니...”한시연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말아요. 우리는 가족이잖아요. 아이를 찾는 게 가강 중요하죠.”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은 바로 통제실을 나섰지만 전동하는 차가운 시선으로 마이크가 사라진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하지만 모니터를 아무리 바라보아도 사라진 아이가 나타날 리가 없는 법. 조심스럽게 다가가려던 한시연은 한숨을 내쉬고 소은정의 뒤를 따랐다.마이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소은호 역시 흔쾌히 약혼식을 앞당겨 끝내는 것에 동의했다.갑자기 파티가 끝났다니 하객들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지만 어차피 즐길 만큼 즐기기도 했고 소은호의 예의 바른 사과와 고급스러운 선물까지 안겨주니 불쾌한 기색을 나타내는 사람은 없었다. AI 로봇들은 친절하게 차문까지 열어주며 마이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지 확인했다.하객들이 모두 떠나고 아름다운 3D 영상까지 꺼지고 나니 별장은 조용하다 못해 왠지 스산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소은정 일행은 다시 한 번 별장 구석구석을 뒤져보았지만 마이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상황을 접한 소찬식 역시 아이가 안타까웠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다 했던가?괜히 전동하와 사귀어 이런 일에 엮인 소은정이 더
잔뜩 굳은 표정의 소찬식이 대답했다.“당장 나오라고 해!”아빠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위화감에 소은정이 혼란스럽던 그때 전동하가 성큼성큼 다가왔다.“은정 씨, 아마 저택 안에는 없을 거예요. 지금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게요.”전동하가 다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소찬식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전 대표, 이런 자작극을 벌여? 게다가 하필 내 아들의 약혼식에서?”소찬식의 말에 멈칫하던 전동하가 고개를 돌렸다.“아버님,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아빠, 실종사건은 시간싸움이에요. 하실 말씀 있으면 다음에 하세요.”소은정이 전동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얼른 가요, 동하 씨.”하지만 전동하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소찬식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아이가 사라지면... 자네한테도 나쁜 일이 아니지 않나?”소찬식의 말에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아버지의 말이 가리키는 바를 바로 눈치챈 소은호가 옆에 서 있는 한시연에게 속삭였다.“가족이 아닌 사람들은 다 내보내.”고개를 끄덕인 한시연이 사람들과 함께 자리를 떴다.별장 거실에는 어느새 소은정의 가족들과 전동하만 남게 되었다.전동하의 검은 눈동자가 복잡미묘한 빛을 내뿜었다.“지금 아버님께서는... 제가 아이를 일부러 버리고 찾는 척하고 있다는 겁니까?”소찬식이 차가운 눈으로 전동하를 훑어보았다.“내 말이 틀렸나? 우연찮게 자네 과거에 대해 듣고 말았네. 나름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나도 가슴이 떨리는 말이었지. 마이크는 우리 집에서도 오랫 동안 지냈고 나를 비롯해 우리 가족 모두 마이크를 소중하게 생각했네. 내가 볼 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마이크에게 무슨 짓을 할 만한 명분이 있는 사람은 자네뿐인 것 같은데?”심한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소찬식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기에 주먹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모든 걸 확실히 하고 싶었다.만약 전기섭이 거짓말을 한 거라면, 그의 추측이 틀린 거라면 진심으로 사죄하겠지만 만약 모든 게 사실이라
항상 부드럽고 친절하던 전동하는 딴 사람으로 변한 듯 날카로운 분노를 번뜩였다.한 발 다가선 전동하가 차가운 시선으로 소찬식을 바라보았다.“누가 그런 말을 한 겁니까?”“사실이냐고 물었네!”소찬식 또한 물러서지 않고 다시 한 번 물었다.전동하가 고개를 숙였다. 온몸의 혈관들이 터질 듯 부풀어오를 정도로 몸에 잔뜩 힘을 주던 그가 결국 입을 열었다.“네, 사실입니다. 그러니 아버님께서도 말씀해 주세요. 누가 말한 겁니까.”질문을 하긴 했지만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전동하는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차오르는 분노가 쌓이고 쌓여 몸 전체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전동하의 대답에 소은정 역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저렇게까지 분노와 증오를 내뿜는 전동하의 모습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고 가족들과 관련된 일일 것이라 짐작하면서도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후폭풍이 두려웠다.전동하의 인정에 소찬식이 헛웃음을 지었다.“그래. 자네가 솔직하게 인정했으니 나도 말하지. 자네 삼촌 전기섭이 말해 준 거네. 나한테 그 말을 해주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더군.”“전기섭”의 이름을 듣는 순간, 이미 짐작을 했음에도 전동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가만히 안 둘 거야...단호하게 돌아선 전동하가 별장을 나서려던 그때, 소찬식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자네가 은정이를 구해 준 건 고맙게 생각하네. 우리 집안도 은인에게 박한 사람들이 아니니 자네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겠네. 하지만 우리 은정이와 사귀는 건 안 돼. 자네가 단 한 순간이라도 마이크의 아버지였다면 지금 내 마음 이해할 거라 믿네.”그래. 이렇게 하는 게 맞아.소찬식의 최후통첩에 전동하가 발걸음을 멈추었다.부드러운 옆라인이 지금만큼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한, 두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곧 돌아와서 해명하죠.”마지막으로 깊은 눈으로 소은정을 바라본 전동하가 자리를 떴다.발걸음을 옮기는 전동하는 마치 사람들 앞에서 알몸으로 걷는 듯한 수치심에 휩싸였다.어두웠던 시간
소은호와 한시연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AI 로봇은 실시간으로 식장에 들어온 사람들 중 하객이 아닌 낯선 이가 있는지 스캔이 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파이더맨 같은 초능력자가 아닌 이상 초대받지 않은 사람이 감쪽같이 출입했다는 건 거의 불가능. 게다가 소찬식 말고는 전기섭의 얼굴을 본 사람도 없다.아직 화장도 지우지 못하고 드레스도 벗지 못한 한시연의 정교한 얼굴 위에 초조함이 스쳤다.“경찰에 신고해야 할까요?”소은정을 힐끗 바라보던 소은호가 고개를 저었다.“어차피 마이크가 사라진 지 3시간 정도밖에 안 됐어. 납치로 추정되는 협박 전화 같은 것도 없었고. 지금 이 상황에서 경찰에 신고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을 거야.”경찰에 신고한다는 말에 멍하니 있던 소은정이 고개를 홱 돌렸다.“오빠, 일단 경찰에 신고는 하지 말아줘. 일단 마이크를 찾는 게 중요하니까 난 일단 동하 씨한테로 가볼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오빠가 나 대신 아빠한테 물어봐줘.”소은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여긴 나한테 맡기고 가.”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이 드레스 자락을 잡고 바로 밖으로 뛰어나갔다.떠나는 소은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한시연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입을 벙긋거리며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가 결국 말했다.“아버님 말만 들어보면 전동하 그 사람... 거의 사이코패스나 다름 없던데. 게다가 본인도 인정했잖아. 그런데 왜 아가씨는 그 남자를 만나러 가는 걸까?”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전동하는 누가 봐도 완벽한 남자였다. 특히 한시연은 타고난 듯한 부드러운 성격과 겸손함을 좋게 보았었다.하지만 이 세상에 정말 완벽한 사람이라는 게 존재할까?방금 전, 만약 소찬식이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전동하는 여전히 차분하게 대응했을 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전동하가 소름 끼치게 느껴지는 한시연이었다.아가씨, 저런 남자랑 만나는 거 정말 괜찮은 거 맞을까? 게다가 아버님이 저렇게까지 반대하시는데... 도대체 어쩌려고...한시
대충 메이크업도 지우고 캐주얼한 옷으로 갈아입은 두 사람이 본가로 향했다.집으로 들어가 보니 소찬식은 여전히 화가 잔뜩 난 표정이었다. 게다가 소은정은 돌아오지 않는 걸 보고 표정이 더 일그러졌다.집사가 조심스럽게 두 사람을 맞이했다.“은해 도련님께서는 하늘 씨한테 가셨습니다. 지금 회장님 기분이 많이 언짢으세요.”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 소은호가 한시연과 함께 거실로 향했다.“왜 너희들뿐이야?”“왜요? 싫으세요? 그럼 갈까요?”망설임없이 한시연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려는 아들의 모습에 소찬식은 코웃음을 치다 풀어진 눈빛으로 한시연을 바라보았다.“아가, 너한테 화내는 거 아니다. 오늘 밤,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 이렇게 좋은 날 내가 많이 미안해.”“아니에요. 그런 말씀 마세요, 아버님. 그냥 약혼식일 뿐이고 저도 이제 이 집안 가족이잖아요. 무슨 일 생기면 함께 이겨내는 게 맞죠.”한시연이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그래. 너희들 결혼 선물로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섬들 중 하나를 줄 테니 아무거나 골라...”소찬식의 덤덤한 말에 한시연의 미소가 어색하게 굳었다.소씨 일가가 재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나 싶어 살짝 당황스러웠다.아가씨도 섬 모으는 걸 좋아한다더니 아버님한테서 배운 건가?멍하니 서 있는 한시연의 모습에 소은호가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얼른 아빠한테 고맙다고 해야지.”“감사합니다. 아버님.”앞으로도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야 하나...한시연이 소찬식의 재력에 감탄하고 있을 무렵, 소찬식은 소은호를 노려보았다.“은정이는 왜 안 왔어?”“전동하 대표 만나러 갔습니다.”아들의 덤덤하지만 솔직한 대답에 소찬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뭐? 그 살인자한테 가는 걸 그냥 두고 봤다고? 네가 그러고도 오빠야!”지금 당장이라도 소은정에게 달려갈 것 같은 기세에 소은호가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아빠, 3년 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일이 있었죠. 그때 억지로 은정이를 말렸다가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잊
3월 중순이었지만 아직 날씨는 쌀쌀했다.게다가 밤이 되니 한기가 얇디얇은 드레스 차림의 소은정의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다행히 차에 예비용으로 보관해 둔 양털 재킷이라도 있어도 다행이었다.급한대로 걸친 옷이었지만 드레스와도 어울리고 그녀의 가녀린 몸매를 더 부각시켜주었다.잠시 후, 빠르게 달려 호텔 앞에 도착한 소은정은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전기섭이 묵고 있는 17층에 도착했다.하지만 17층 호텔 복도에 1m마다 보디가드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모습에 소은정은 단호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이때 그녀와 가장 가까이 서 있던 경호원이 다가와 팔을 뻗었다.“이층은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전 대표님한테 전하세요. 소은정이 만나고 싶어 한다고.”무슨 말인가 싶어 소은정을 내쫓으려던 경호원었지만 옷도 화려하고 포스도 남다른 모습이 차라리 대표님께 보고드리는 게 낫겠다 싶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그 사이 소은정은 호텔을 둘러보았다.상황을 보아하니 17층 전체를 렌트한 듯 싶었다.얼마나 적이 많으면 이렇게까지 한대...잠시 후, 경호원이 방금 전보다 훨씬 더 공손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소은정 대표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은 경호원의 안내를 받아 드디어 전기섭의 방 앞에 도착했다.경호원이 노크하고 바로 누군가 문을 열었다.방금 전 샤워를 마쳤는지 전기섭은 가운 차림에 머리도 젖어있고 얼굴도 살짝 달아오른 모습이었다.곧 40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완벽한 피부와 헐렁한 가운 사이로 보이는 쭉 뻗은 쇄골과 완벽한 복근...다른 남자였다면 감탄했을지 모르지만 왠지 이 순간 소은정은 전기섭이 더 역겹게 느껴질 뿐이었다.경호원이 눈치껏 자리를 뜨고 전기섭이 미소를 지었다.“아, 죄송합니다. 샤워 중이라 차림이 변변치 않네요.”“아니에요. 제가 쉬시는 데 방해한 건데 제가 더 죄송하죠.”소은정은 억지 미소라도 짓기 위해 입꼬리를 올렸다.비록 호텔방으로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복도에 서 있는 경호원
눈썹을 치켜세운 소은정은 침묵을 지켰다.당연하지. 아무 희생없이 어디서 먹튀를 하려고.전기섭, 당신한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잠시 후, 꼰 다리 위에 손을 포개 올려놓은 전기섭이 뜬금없이 물었다.“동하가 소은정 대표님을 좋아한다 들었는데. 그 마음 받아주셨습니까?”“갑자기 그건 왜 물으시죠?”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냥 단순한 호기심이랄까요. 미국에 있었지만 소은정 대표님의 미모와 뛰어난 능력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동하도 평소에는 나름 번듯한 모습으로 연기하고 있잖아요. 그 모습에 대표님이 속지는 않았을까... 궁금해서요.”흥미롭다는 전기섭의 표정에 고개를 살짝 숙인 소은정이 미소를 지었다.“대표님, 제가 연인이라 부르는 사람은 아주 많답니다. 그 중에 90%는 배우죠.”지금까지 수많은 남자들과 스캔들이 났었던 그녀다.지금 이 상황에서 그녀와 전동하의 관계가 밝혀진다면 전기섭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일단은 숨기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소은정의 애매모호한 대답에 전기섭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얼굴도 몸매도 나쁘지 않고... 고고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는데. 사생활은 문란한 여자였나?전동하... 너도 여자 보는 눈은 꽝이구나.순간 전기섭의 미소가 더 환해졌다.“나름 그쪽으로는 고수셨군요. 동하한테 안 넘어가신 걸 보면.”“저도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오늘 식장에 온 하객들은 전부 저희 CCTV 영상 범위 안에서 움직였어요. 하지만 대표님과 전동하 대표의 아들인 마이크만은 CCTV는 물론이고 현장에 도착한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죠.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전기섭의 표정에서 뭔가라도 잡아내기 위해 소은정이 눈에 힘을 주었다.하지만 전기섭은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네? 마이크도 갔었나요? 올 때도 갈 때도 급하게 움직이다 보니 마이크는 저도 못 본 것 같은데요.”순간 소은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거짓말... 눈은 재밌다는 미소를 짓고 있으면서 입은 놀라는 척하는 걸 보면 분명
소은정의 말에 전기섭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동하 아들한테 왜 그렇게까지 신경 쓰시는 겁니까?”“그건 내 맘입니다. 그 이유까지 설명해야 하나요?”소은정이 고고한 눈빛으로 전동하를 내려다보고 그 차가운 표정을 바라보던 전기섭이 피식 웃었다.재밌네... 귀하게 자란 부잣집 아가씨다워. 저렇게 당당한 걸 보니 전동하와는 아무 사이가 아닌 게 분명하고... 마이크 그 자식은 워낙 아양을 잘 떠니까 신경이 쓰일 수도... 그런데 그런 애송이한테 푹 빠질 정도면 듣던 것처럼 그렇게 똑똑한 건 아닌가 봐?전동하가 미소를 지으며 양팔을 벌리자 가운이 살짝 풀리며 가슴 근육이 더 많이 드러났다.나름 매혹적인 눈빛으로 소은정을 훑어보던 전기섭이 말했다.“제가 괜한 소리를 했네요. 도움이 필요하면 제가 도와드릴 수도 있습니다.”“아니요. 서로 말이 안 통하는 것 같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윽, 느끼해.소은정이 단호하게 고개를 돌렸다.“잠깐만요. 제 방에 들어온 이상 마음대로 나가실 수 없을 겁니다.”“그게 무슨 소리죠?”“제게 더 좋은 제안이 있습니다. 더 큰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제안이요.”전기섭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뭔데요?”벌떡 일어난 전기섭이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저와 결혼하신다면 전인그룹 전체가 은정씨께 되는 겁니다. 이 작은 대한민국을 벗어나 미국에서도 마음껏 움직일 수 있을 거예요.”뭐야? 농담하는 건 같지 않고 무슨 꿍꿍이지.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리자 전기섭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아시겠지만 전 저희 가문 후계자입니다. 이제 곧 전인그룹 전체가 제 게 된다는 뜻이죠. 미국 재계는 물론이고 정계까지 진출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죠.”“지금 뭐 좀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전 그쪽한테 관심없는데요?”소은정이 헛웃음을 터트렸다.“물론 그러시겠죠. 하지만 이건 정략결혼 아닙니까? 결혼이라는 법적 관계로 이어진 또 다른 형태의 비즈니스죠. 결혼 뒤에는 서로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되는 겁니다. 수많은 여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