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혁은 가볍게 웃으며 말없이 하연의 손을 꼭 잡았다.“그건 나도 궁금해. 하지만 꼬리가 길면 언젠간 밟히게 돼 있어.”그 시각, B시.모연은 해변가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심지어 와인이 절반쯤 담긴 잔을 즐거운 듯 흔들어댔다.“한 대표님, 왜 그렇게 정색하고 그래요? 앉아서 같이 술이나 마셔요.”서준은 눈앞의 여자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모연은 분명 아주 낯선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왠지 익숙한 느낌을 주었다.“임모연 씨, 얼마면 돼요?”서준의 온기 없는 싸늘한 말투에 모연은 입술을 말아 올리며 눈썹을 치켜떴다.“참 시원시원하네요. 하지만 무슨 자격으로 저한테 그런 제의를 하는 거죠? 최하연과 씨와는 이미 이혼한 거로 아는데.”서준은 모연과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오늘 이렇게 직접 찾아온 것도 그저 모연더러 하연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라는 요구를 하러 왔을 뿐이다.“그건 나와 최하연의 일이니 임모연 씨는 상관하지 마세요.”서준은 말하면서 백지 수표 한 장을 꺼내 모연 앞에 내놓았다.“원하는 액수 적어요.”모연은 싱긋 웃을 뿐 수표를 받지 않았다. 이윽고 눈을 들어 서준과 시선을 교환했다.“한 대표님은 본인 여자한테 다 이렇게 관대하신가요? 그게 아무리 전처라고 한들, 이 정도 돈은 기꺼이 쓰나 보죠? 가져가세요, 저 임모연은 돈에 관심 없으니까.”“하, 돈이 싫다면 왜 최하연한테 2천억을 달라고 했죠? 돈이 싫은 게 아니라 내 돈이 싫은 모양이네...”모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준 앞에 다가갔다. 그 순간 강한 카리스마가 모연의 얼굴을 덮쳐왔다.‘역시 한서준이라 이건가?’‘몇 년이 지나도 여전하네, 그러니까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달려들지.’“한 대표님 돈은 너무 시시하잖아요? 다른 거래하는 게 어때요?”서준은 말없이 건네던 수표를 움켜쥐었다가 도로 거두어들이더니 또박또박 물었다.“무슨 거래요?”모연은 앞으로 바싹 다가가 서준과 한 뼘도 안 되는 거리에 멈춰 서더니 고개를 들고 싱긋 웃었다.“돈거래는 안 되지만
서준은 본인이 뭐에 홀린 것 같다는 생각에 고개를 살짝 젓더니 이내 대답했다.“임모연 씨의 목적이 뭐든, 뭘 하고 싶든, 절대 최하연은 다치게 하지 마요.”모연은 그 말에 깔깔 웃어댔다. 뼈를 뚫고 전해지는 듯 섬뜩한 웃음소리는 사람을 소름 돋게 했다.“한서준, 이미 늦었어. 뭐,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이윽고 모연은 서준을 빤히 바라보더니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한 대표님이 나와 결혼한다면 최하연에게 자비를 베풀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절대 봐주지 않을 거예요.”서준은 입가에 냉소를 띠었다.“지금 나를 협박하는 건가? 네 주제에 감히?”늘 담담하던 서준의 눈동자에는 순간 매섭고도 악랄한 빛이 스쳐 지났다. 이윽고 서준이 손을 휘휘 젓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앉은 동후가 서류 한 묶음을 꺼내 모연에게 건넸다.“임모연 시, 그래도 평화롭게 해결하려고 했는데, 이제 보니 내가 쓸데없는 짓을 한 것 같네요. 그렇게 자신만만하니, 내 손에 뭘 들고 있는지 모르나 보죠?”모연은 서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동후 손에 있는 자료를 확 낚아챘다. 이윽고 그 안에 든 내용을 본 순간 안색이 크게 변했다.이 순간 모연은 정말 당황했다.“이건 어떻게 손에 넣었지?”서준은 모연과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 증거들은 최하연이 누명을 썼다는 걸 충분히 증명할 수 있고, 당신이 그동안 디자인 업계에서 쌓은 명예도 한꺼번에 무너뜨릴 수 있어. 내가 임모연 씨라면 아무 소란도 일으키지 않고 얌전히 있을 텐데. 안 그러면 이 증거들 바로 언론사에 뿌릴 거니까...”서준의 협박에 모연은 등골이 오싹했다. ‘적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하지만 모연은 오히려 피식 웃었다. 심지어 서준의 말을 무시한 채 제 귀밑머리를 뒤로 넘기며 덤덤하게 말했다.“한 대표님, 따로 할 얘기가 있는데...”서준은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할 얘기가 있으면 경찰한테나 하시죠.”모연은 고개를 살짝
“대표님, 대체 왜 그러세요? 최하연 씨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왜 그냥 이렇게 떠나는 건데요?”동후의 질문이 연속적으로 쏟아졌지만, 서준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표님, 왜 그러세요?”“돌아가자.”서준이 끝까지 입을 다물자 동후도 입을 오므리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올 때만 해도 분명 하연의 누명을 벗겨주겠다며 자신만만해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 그저 충격을 받은 모습이니 동후는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방금 임모연이 대표님한테 뭐라고 했지?’동후가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서준이 갑자기 물었다.“최하연 돌아왔어?”동후는 다급히 대답했다.“아니요, 아직 G국에서 돌아오지 않으셨어요.”그 대답에 한참 동안 고민한 서준은 다시 입을 열었다.“전용기 준비해, G국으로 갈 테니까.”이토록 갑작스러운 결정에 동후는 의아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분부에 따랐다.“네, 대표님.”...이틀 동안 하연과 상혁은 더 이상 아무 진전이 없었다.그도 그럴 게, 상대가 마치 뭔가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처럼 깊이 숨어 조금의 흔적도 남기지 않았으니까.그 때문에 하연은 저와 상혁이 상대의 손에 완전히 놀아나는 건 아닌지, 귀국하지 않은 걸 들킨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그때, 진환은 새로운 정보를 알아 왔는지 흥분에 겨워 말했다.“형, 나 임모연이 성형 수술한 병원 찾았어.”그 한마디에 하연이 눈은 반짝 빛났다.“어딘데요?”진환은 어렵게 찾아낸 진료기록을 상혁과 하연에게 건넸다.“임모연 진짜 너무 교활하던데. 수술할 때 사용한 이름이 임모연이 아니라 전에 아무것도 못 찾은 거였어. 조사한 데 따르면 수술을 총 20여 차례나 받았는데 그중 4차례는 피부 이식 수술과 성형 수술이었어.”“음.”상혁은 가볍게 대답하고 진료 기록을 하연에게 건넸다.“네가 봐, 무슨 수상한 점 있어?”하연은 진료 기록을 한참 동안 펼쳐보다가 성명란에 적힌 Anna라는 영어 이름을 보고 멈칫했다.“임모연의 영어 이름
상혁은 진환과 눈빛을 교환하더니 대답했다.“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화상 자국은 흔적도 없이 말끔히 없어질 수 없을 거야...”이건 하연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그때 하연이 눈을 내리깔더니 진료 기록을 가리켰다.“여기, 문제 있어요.”“뭐가요?”진환이 의아한 듯 묻자 하연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혈액형이 달라요. 아까 학교에서 임모연 자료를 볼 때 신체검사 보고서도 본 적 있는데, 그 위에 적힌 혈액형은 분명 B형인데, 여기는 O형이에요.”진환은 그런 디테일까지 확인하지 못했다.“혹시 병원에서 실수한 거 아닐까요?”하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무리 실수라고 해도 이런 우연이 있을 리 없어요.”이 순간 하연의 의심은 한 층 더 깊어졌다.“상혁 오빠, 저는 아직도 의심스러워요. 지금 우리를 적대시하는 게 진짜 임모연인지.”디자인 스타일만으로도 충분히 문제 있다는 게 확인되는데, 이제 혈액형까지 다르다는 건 분명 두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걸 설명한다.‘그럼 진짜 임모연은 어디 갔지? 가짜 임모연은 또 누구고?’“5년 전의 임모연한테 친한 친구거나 친척이 있는지 조사해 보면 더 많이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하연은 왠지 5년 전의 교통사고를 기점으로 진짜와 가짜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게다가 현재, 누군가 그 진실을 알아내는 걸 방해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모연과 한패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목적이 대체 뭐지?’그때 상혁이 하연의 의견에 동의했다.“진환, 네가 가서 조사해 봐.”“알았어. 바로 조사할게.”진환은 짤막하게 대답하고는 곧바로 떠나갔다.진환이 가자 하연도 깊은 생각에 잠겼다.너무 많은 사실이 마치 촘촘하게 짠 그물망처럼 한데 얽혀 있어 하연은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그걸 본 상혁이 하연의 앞에 다가갔다.“하연아, 뭐 좀 먹어.”하연은 고개를 저었다.“저 입맛 없어요.”하지만 상혁은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고 하연의 손을 잡아당겼다.“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내가 있잖아.”하연은
하연은 거절하고 싶었으나 서준의 말투가 너무 유혹적이었다.심지어 서준이 뭘 알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하지만 하연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상혁을 보며 한참 생각하더니 끝내 대답했다.“위치 보내줄게.”“응.”전화를 끊은 하연은 바로 설명하려 했지만 상혁은 이미 하연의 속내를 읽은 듯 말했다.“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하연은 상혁의 말에 놀란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로부터 약 1시간 뒤, 서준이 도착했다.하연을 본 순간, 서준의 눈에는 놀라움과 기쁨이 스쳐 지났다. 그때 서준의 위에 있던 동후가 먼저 인사했다.“최하연 씨.”“동후 씨, 오랜만이네요.”예전과 똑같은 하연의 말투에 동후는 살짝 놀랐다. 전에는 분명 저와 회사 동료였던 사람이 이제는 하늘과 땅 차이가 되었는데, 하연이 동후를 보는 눈빛은 여전했다.그걸 느낀 동후는 마음이 따뜻해졌다.“한 대표님, 앉으시죠.”예의를 차린 하연의 말투에서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자 서준은 눈살을 찌푸렸다.하지만 하연은 그런 걸 상관할 겨를이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한 대표님이 먼 길 오신 게 회포나 나누려는 건 아니겠죠?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요...”서준은 입꼬리를 바르르 떨며 한참 머뭇거리다가 끝내 물었다.“임모연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알아냈어?”하연은 표정을 숨긴 채 대답하지 않았다.그러자 서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최하연, 더 이상 조사하지 마. 응?”서준이 이런 말투로 말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마치 이걸 들어주면 뭐든 약속해 줄 것처럼, 고상하고 오만하던 태도마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이에 하연은 살짝 놀랐다.“지금 무슨 말 하는 건지 알기나 해?”“이번 일 네가 억울한 건 알아. 네가 남의 작품 표절할 사람이 아니잖아. 하지만 계속 조사해 봤자 너한테 좋을 거 없어. 그만해. 내가 방법을 대서 네 결백 증명해 줄게.”하연은 너무 터무니없는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하지만 눈 밑까지 그 미소가 전달되지는 않아
서준은 분명히 느꼈다. 본인이 이 말을 한 뒤 공기가 삽시간에 변했다는 것을...하연도 한참 동안 뭔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한참 뒤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 안 나.”“기억 안 나는 거야? 하기 싫은 거야?”서준의 눈에는 실망이 드리웠다.하연은 입꼬리를 움직이더니 눈을 들어 서준을 바라봤다.“그럼 하나만 솔직히 말해 봐. 임모연과 무슨 사이야?”“아무 사이도 아니라면 믿어줄래?”서준의 입가에는 자조적인 미소가 걸려 있었다. 천하의 한서준이 언제 이렇게 비굴했던 적이 있나 싶었다.“최하연, 네가 계속 조사하겠다고 고집부리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거야. 난 그저 네가 다칠까 봐 귀띔해 주는 것뿐이야.”“한서준, 이런 말 하는 거 너무 웃기지 않아? 나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한다고? 이게 정말 날 위하는 거라고 생각해?”“아니야.”서준은 하연의 말을 잘랐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사실 저도 합당한 이유를 찾지 못했으니까.“최하연, 내 말 한 번만 들어주면 안 돼?”서준의 말투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하연이 말하려는 순간, 뒤에 있던 상혁이 입을 열었다.“하연아.”말이 끝나기 바쁘게 상혁은 성큼성큼 걸어와 하연의 곁에 섰고, 그 뒤를 따라오던 진환도 옆에 선 채 입꼬리를 올리며 먼저 인사했다.“HT 그룹 한서준 대표님 아닙니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서준은 진환을 흘깃거리더니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오랜만이네요.”진환은 하연과 서준 사이의 일을 진작 알고 있었기에 서준한테 호감이 없었다.하지만 서준의 능력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고 얼마나 대단한 거물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기에 무시할 수는 없었다.“한 대표님,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더니, 맞는 말이네요. 하지만 우리 형수님과는 무슨 예기 중이었어요?”‘형수님’이라는 호칭에 서준의 눈빛은 순간 어두워졌다.서준은 상혁과 하연을 바라보더니 물었다.“최하연, 두 사람 만나?”하연이 뭐라고 설
말을 마친 상혁은 서준의 대답도 듣지 않고 하연과 함게 떠나버렸다. 순간 커다란 홀에 서준 한 사람만 남게 되었다.서준은 마치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배처럼 떴다 잠기기를 반복하며 끝내 방향을 찾지 못했다.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동후가 서준의 옆으로 다가왔다.“대표님, 괜찮으세요?”서준은 그제야 눈에 초점을 찾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구 실장, 내가 예전에 대체 어떤 사람이었지?”“혹시 최하연 씨를 생각하시는 겁니까?”동후는 서준의 비서로 몇 년 동안 있으며 하연과 서준이 지난 3년간 어떻게 지냈는지도 옆에서 지켜봤다.물론 처음에 동후도 하연의 정체를 몰랐지만 일상생활에서 서준이 하연을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았다.아쉽게도 정작 서준은 그걸 인지하지 못했지만...“대표님, 대표님은 최하연 씨를 특별하게 생각하십니다. 하지만 아직도 본인이 왜 하연 씨를 다르게 대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 같네요.”동후의 말에 서준은 다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그때 옆에 있던 동후가 한숨을 쉬었다. 역시 당사자보다 제삼자가 더 잘 안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한편, 상혁과 함께 떠난 하연은 차에 오르자마자 참지 못하고 물었다.“진환 씨, 혹시 뭘 알아냈어요?”진환은 발언권을 상혁에게 넘겼다.“형수님, 걱정하지 마세요. 형한테 듣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자료는 이미 형한테 보냈어요.”“상혁 오빠, 대체 무슨 일인데요?”하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상혁을 바라봤다.그러자 상혁이 천천히 설명했다.“내가 진환한테 부탁해서 임모연의 친척과 친구에 대해 조사하라고 했거든. 그러다가 중요한 사람을 찾았어.”“누군데요?”상혁은 자료 뭉치를 하연에게 건넸다.“임모연한테 배예린이라는 절친이 있더라.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 친자매나 다름없는.”자료를 펼치자 젊은 여자의 사진이 하연의 눈에 들어왔다.“그런데 이상한 건, 5년 전 그 교통사고가 있은 뒤 두 사람의 연이 끊어졌다는 거야. 게다가 중요한 건 배예린이 지금은 싱글맘인데 컬럼비아 대학 교문 앞
하연은 고개를 들어 예린 앞으로 다가갔다.“저기 혹시 배예린 씨 맞나요?”예린은 그 말에 놀란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하연을 경계하는 듯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옆에 있는 상혁도 살펴보더니 물었다.“혹시 저 알아요?”“배예린 씨, 저희는 그저 임모연 씨한테서 배예린 씨에 대해 들은 적 있어 오늘 길 가다가 우연히 들른 겁니다.”모연의 이름을 들은 순간 예린은 흠칫 놀라더니 어색한 기색이 얼굴을 언뜻 지나갔다. 그러다 한참 뒤 확신 없는 말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임모연 씨이요? 혹시 모연을 알아요?”“네.”하연이 대답하자 예린은 오히려 웃으며 언짢은 듯 말했다.“지금 장난해요? 제가 모연과 어릴 때부터 친했는데 두 분 같은 지인이 있다는 건 한 번도 못 들어봤어요.”“말해요. 대체 누구죠? 진재준 그 인간이 보냈어요? 말해두는데, 아들은 내가 낳은 거지 그 인간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니 내 아들 빼앗아 갈 생각이면 꿈 깨라 그래요. 감히 모연의 친구인 척 이런 수준 낮은 거짓말을 하다니... 당장 나가요!”말을 마친 예린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빗자루를 들고 두 사람을 내쫓으려 했다.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하연은 얼른 설명했다.“배예린 씨,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진재준이라는 사람 몰라요.”하지만 예린은 전혀 믿지 않았다.“나 속이려 들지 마요! 돌아가서 진재준한테 말해요. 아이를 빼앗고 싶다면 법적 절차대로 소송 해라고. 그러면 내가 끝까지 싸워 주겠다고.”하연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다.그때 상혁이 나서서 하연의 앞에 막아서더니 예린이 휘두르는 빗자루를 손으로 잡았다.“배예린 씨,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정말 오해하셨어요. 우리가 찾아온 건 임모연 씨 때문입니다. 진재준 씨와 양육권 문제로 다투는 것 같은데, 그건 제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네요.”그 말에 예린은 얼른 하던 동작을 멈추고 믿기지 않는 듯 상혁을 바라봤다.“정말... 저를 도와줄 수 있나요?”“제가 양육권 소송 방면에서 가장 유명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