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각, 한씨 가문은 먹구름으로 뒤덮인 듯한 분위기였다. 서준은 어두운 얼굴로 소파에 앉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준은 방금 경찰서에서 돌아온 것이었다. 서준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민혜경만이 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비록 서준이 하연과 있던 자리에서 바로 디자이너 브랜드숍의 손실액을 깔끔하게 배상하긴 했으나, 사건에 연루된 금액이 너무도 컸던 탓인지, 하연 측은 결코 합의를 하려 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한서영은 감옥에 수감되고 말 것이었다. 변호사는 한서영이 약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것이라 추측했다. 방금 깨어난 이수애는 자신의 딸이 3년간 감옥살이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서준아, 이 어미 말 좀 들어보렴. 이대로 서영이가 감옥살이를 하게 둘 수는 없잖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이수애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서영이는 아직 어려, 그런 아이가 어떻게 범죄자들과 같이 먹고 자고 할 수 있겠어! 서영이는 결국 무너지고 말 거야!”“아들아, 최하연, 그 얘를 찾아가서 대화를 좀 나눠보렴. 잘 구슬려서 며칠만 까불게 두고, 최대한 합의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어떻겠니, 응?” 이수애의 말투는 거의 애원에 가까웠다. 이수애는 이제야 패배를 인정하는 듯했다. 서준이 눈살을 심하게 찌푸리고 낮게 말했다.“조직폭력배와 손을 잡고 타인의 재산을 훼손하다니, 정말 대범하기 짝이 없군요. 이번에는 서영이가 지나쳤습니다!”서준이 하연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문제는 하연이 서준과의 대화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으며, 그저 한서영을 감옥에 보내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너,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서영이가 어린 나이에 감옥살이라도 하라는 거니?”이수애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서영이도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서영이도 당한 게 있으니까 홧김에 복수한 거 아니야! 다 그 얘 잘못이야! 서영이한테 잘못이 있다면 그 얘한테 당했
“구 실장이 이미 F국 측 병원에 연락해 뒀어. 3일 뒤에 출국해.”출국이라는 두 글자를 들은 민혜경의 두 눈은 당황한 기색으로 가득해졌다. 민혜경이 이내 간절한 목소리로 서준에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서준 씨, 나, 나, 가고 싶지 않아. 아기랑, 서준 씨랑 B시에 있을래.”서준의 어두운 얼굴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굳건했다. 혜경이 앞으로 나아가 서준의 팔을 붙잡은 채 눈물을 글썽였다.“아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언니, 민혜주도 좀 생각해 줘. 한씨 집안의 일로 세상을 떠났잖아. 언니를 생각하면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혜주 일을 생각하면 분명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혜경이 넌 떠나야 해.” 서준의 말을 들은 혜경이 소파에 주저앉았다. 온 집안이 난장판이 된 탓에 집에 있는 것이 너무도 답답한 서준이었다. 때마침, 나운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서준아, 실시간 검색어 봤어?] 수화기 너머의 운석이 물었다.서준은 운석이 하연과 관련된 기사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했다.“오보야, 경찰도 이미 철수했어.”[너, 나랑 다른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데? 빨리 확인해 봐, 너희 집에 관련된 내용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와서 엄청나게 욕먹고 있으니까. 회사 홍보팀한테 빨리 처리하라고 해.]운석과의 전화를 끊은 서준이 재빨리 뉴스 기사를 확인해보았다. 기사를 확인한 서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준의 두 눈동자에서는 광풍과 소나기가 휘몰아치는 듯했다. ‘최하연, 이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반격한다고?’ ‘혜경이가 자신에 대한 허위 기사를 날조하여 인터넷에 게시하니까, 우리 가문에 본때라도 보여주려고 바로 대응해 오는 거야?’ 서준이 즉시 동후에게 전화를 걸어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온 기사를 내리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동후에게서는 기사를 내릴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위클리 뉴스의 편집장이 반드시 한씨 가문에 관한 기사를 3일간 실시간 검색어에 게시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다른 언론은 손도 쓸 수 없는 상황이라
‘저 여자…….’무대 위의 사랑스러운 여자를 본 운석이 발걸음을 멈추었다.그 여자가 부르고 있는 노래는 유명한 발라드, ‘바람’이었다. 그녀의 신비로운 목소리가 바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살며시 의자에 앉은 그 여자의 아름다운 뺨으로 한 줄기의 조명이 내려왔다. 곧이어 그 여자의 검은 머리칼이 흔들리고, 붉은 입술이 열렸다. 그 여자의 감미로운 노랫소리는 청중들로 하여금 시공간을 넘나드는 느낌이 들게 했다. 그 여자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운석의 귀를 파고들자, 운석의 머릿속에 발코니에서 울던 하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 밤, 눈썹을 가볍게 찌푸리고 있던 하연의 눈은 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운석은 자신의 가슴에 직격탄을 날리는 듯한 하연의 아름다움 모습에 매료되어, 눈도 한번 깜빡거리지 않은 채 하연을 바라보았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만 같았다.“자기야, 너무 감동적이라 눈물이 날 지경이야! 신나는 노래 좀 불러봐!” 무대 아래의 예나가 하연에게 소리쳤다.하연이 무대 아래의 친구들을 향해 윙크를 했다. “그래, 알았어.”곧이어 하연은 ‘사랑해'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는 하연의 얼굴에는 생동감 있는 웃음이 가득했다. 거기에 발로 장단을 맞추는 모습까지 더해지자 전체적으로 대단히 세련되고 매력 있어 보였다. 노래의 가사는 귀엽고 사랑스러웠으며, 노래의 품격 역시 소탈했다. 무대 아래, 모든 청중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가득했다. 청중들은 하연이 부르는 노래의 선율에 몸을 맡긴 채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연이 노랫소리로 인해 바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운석의 머릿속에 오동나무가 즐비한 F국의 한 거리가 펼쳐졌다. 운석은 자신의 손을 잡은 채 그 거리를 걷고 있는 하연의 모습을 상상했다. 한마디로, 하연에게 완전히 매료되어버린 운석이었다. 운석은 여태 하연과 같이 자신의 심장을 파고들 정도로 아름답고 다채로운 모습을 가진 여자는 본 적이 없었다.운석은 누군가가 자신의 귀에 속삭이는 소리를
핸드폰의 알림 소리가 울리자, 하연이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하성이 보내온 문자였다. [우리 하연이, 오빠 안 보고 싶어? 네가 제일 좋아하는 이 셋째 오빠가 네가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다! 조만간 F국에서 보자.] 하연이 온몸에 돋아난 닭살을 떨쳐내며 자판을 두드리며 답장을 보냈다. [안 보고 싶거든!]답장을 보낸 하연이 고개를 돌려 비서에게 지시했다. “저를 대신해서 서명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꽃은 회사의 여직원들에게 나눠주세요.” “알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비서가 하연의 사무실을 떠났다.하연은 계속해서 서류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때, 개발팀의 본부장인 유신혁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사장님, 좋은 아침입니다.”책상으로 다가와 하연에게 파일을 건네는 유신혁의 눈동자가 총명함으로 가득했다.“이번 달의 이윤표입니다. 한 번 보시죠.”아직 파일을 받아들지 않은 하연이 담담한 표정으로 유신혁을 바라보며 물었다.“유 부장님이 직접 오시다니, 무슨 일입니까?”하연이 유신혁의 손에 있던 서류를 훑어보며 말했다. “제 비서에게 맡기시면 될 일입니다. 이렇게 번거롭게 하지 않으셔도 돼요.”유신혁의 얼굴에 웃음이 깊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긴장한 기색도 역력해지는 듯했다. “사장님, 지난번 회의 때는 제가 실수했습니다.”하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괜찮습니다, 그냥 말씀해 보세요.”“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죄송해서, 오늘 저녁에 제가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할 수 있을까 하고…… 어떠십니까?” “제가 기항 그룹의 최신 소식을 알고 있습니다. 사장님과 개인적으로 공유하고 싶습니다.” 몸을 낮추며 굽신거리는 유신혁의 모습은, 지난번 회의실에서 하연을 향해 칼을 겨누며 날뛰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거짓이 많은, 변덕스러운 사람이야.’하연이 두 손을 깍지 낀 채, 유신혁을 꿰뚫어 보았다. “좋아요, 오늘 저녁에 뵙죠.”하연이 기항 그룹의 성재와 친분을 쌓자마자, 유신혁은 하연이 기항 그룹에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짙은 담배 냄새가 엄습해오자, 하연은 자신도 모르게 옆으로 당겨 앉아 유신혁과의 거리를 벌렸다. 하연이 눈을 들어 바라보니 유신혁의 이빨 사이로 새까맣고도 누런 치석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하연은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지는 듯했다.하연은 겉으로는 사람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중년의 남성이 사실은 구역질이 날 정도로 더러운 남자라는 것을 미쳐 생각지 못한 듯했다.“뭐 하시는 겁니까? 제가 다가오지 못하게 하려는 겁니까?” 하연이 최대한 숨을 참고 유신혁과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싶지 않았다.“사장님께서는 한서준의 침대에서 겨우 기어 내려와, 눈 깜짝할 사이에 DS그룹의 최하민 대표라는 배를 타셨지요. 그렇게 B시에 돌아오시자마자 우리 같은 원로 직원들은 발밑에 두시다니, 최 사장님, 정말 탄복스러울 따름입니다.” 하연의 입가에 썩소가 번졌다. 하연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오늘 저를 부르신 이유가, 칭찬을 하기 위해서였습니까?”“물론 아닙니다. 저는 단지 한서준과 놀던 여자는 다른 여자와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었을 뿐입니다.” 유신혁이 음흉한 미소를 지은 채, 노골적인 표현을 내뱉으며 하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유신혁은 며칠 전, 하연에 의해 체면을 구긴 일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형식적인 겉치레에 불과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각 부서의 문제에 대해 날카롭게 일침을 가했어. 능력이 출중한 여자임이 분명해.’ 이 생각은 시간이 흐를수록 유신혁의 위기감을 가중시켰다. 하연이 차가운 표정으로 유신혁의 말을 곱씹으며 말했다. “유 부장님, 여태 저를 그렇게 생각하신 겁니까?” “여자가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 잠자리 솜씨가 좋아 높은 자리에 앉았을 뿐이겠지요.” 유신혁은 여성에 대한 뚜렷한 차별을 드러냈다. 급기야 하연은 DS그룹 HR의 안목을 의심하게 되었다.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이 우리 그룹에 섞여 있었다니.’ “사장님과 한 대표, 두 사람의 결혼 비화를 좀 듣고 싶군요. 아, 침대 위에서 내는 그 아름다운 소리까
분노에 가득 찬 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의 뒤를 쫓아 호텔로 향하려 했다. 태현이 말했다. “봐, 내 말이 맞지? 남녀가 이렇게 호화로운 레스토랑에서 밥 먹은 다음, 호텔을 가는 게 아니라면 어디로 가겠냐?”태현이 서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서준아, 바람기가 많은 여자일 뿐이야. 그냥 내버려둬.” 태현의 위로에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 서준이 결국 호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혼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DS그룹의 최하민 대표와 결탁한 것도 모자라, 부하직원하고 놀아나기까지 하겠다고?”‘최하연, 나랑 이혼하고 변해버린 거야, 아니면 원래 이렇게 방탕한 여자였던 거야?’‘ 호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유신혁이 기다렸다는 듯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하연도 유신혁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가 오르려던 그 순간, 서준이 하연의 손목을 힘껏 잡아당겼다.“얘기 좀 하자.”유신혁과 함께 호텔 방으로 올라가려던 찰나,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붙잡는 서준을 본 하연은 순간 황홀감을 느꼈다. 그러나, 곧 이성을 부여잡고 눈앞의 서준을 똑똑히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차갑게 말했다 “한서준 씨, 정말 한가한가 봐? 난 일이 있어서 이만.” ‘우연의 일치일 뿐이야.’‘날 따라온 건 아닐 거야.’“두 분, 먼저 이야기 나누시죠.” 유신혁이 안색을 바꾸어 공손하게 서준의 비위를 맞추는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하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먼저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눈을 가늘게 뜬 서준이 유신혁이 탄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감히 최하연의 몸에 손을 대려 하다니. 오늘은 절대 그럴 수 없지.’ 서준은 하연의 손목을 잡고 있는 손에 더 강한 힘을 주었다. 통증을 느낀 하연이 힘껏 서준을 밀쳐냈다. “빨리 용건이나 말해!”“왜 저런 쓰레기랑 잠자리를 하려는 거야?”서준의 안색은 매우 어두웠으며, 말투는 따지는 듯했다. 유신혁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B시에서 이미 소문이 자자했
문을 닫은 유신혁이 급하게 옷을 벗기 시작했다.“최 사장님, 걱정 마십시오. 이 밤이 지나면, 제가 알고 있는 기항 그룹에 관한 모든 정보를 알려드릴 테니까요. 반드시, DS그룹의 B시 지사에서 행복하게 살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당장이라도 침을 흘릴 듯한 유신혁이 침대 머리맡에 숨겨 둔 카메라를 힐끗 쳐다보았다. ‘즐기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야. 녹화해서 원할 때마다 감상해야지. 거물급 인사와만 놀던 여자가 이제는 나랑 놀아난다 이 말이야. 기분을 나쁘게 하면 영상을 빌미로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해야겠어.’ 근질근질한 몸을 참을 수 없던 유신혁이 발가벗은 몸으로 아름다운 하연에게 달려들었다. 바로 이때, 하연이 탁자 위의 붉은 술병을 집어 들어 유신혁의 머리를 힘껏 내려쳤다. 유신혁이 멍한 표정으로 손을 뻗어 머리를 만지자, 손이 피투성이로 변했다. “아…….”“미친X, 네가 감히 나를 쳐?”유신혁이 곧바로 몇 걸음 나아가 하연을 향해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나 유신혁의 주먹은 하연의 한 손에 의해 반격당하여 아래로 힘껏 꺾이고 말았다. 하연의 강한 힘으로 인해 유신혁의 손이 하얗게 질렸다.곧이어, 몇 걸음 뒤로 물러선 하연이 옆으로 달려들어 유신혁의 가슴을 걷어찼다. 하이힐의 가는 굽이 유신혁의 갈비뼈를 찔렀다. 방안에 두둑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유신혁의 갈비뼈가 부러졌다. 하연이 이렇게 나올 거라 생각지 못했던 유신혁은 공포에 질려, 피범벅이 된 얼굴로 가슴을 가린 채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하연이 그런 유신혁의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끌었다. 진작 하연을 품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유신혁이었다. 그저 끝없는 공포만이 유신혁을 감쌌다. 유신혁이 두려움에 고개를 들고 말했다. “최 사장님, 몰라뵀습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놓아주세요.”“그래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 침대 스킬에 관심이 많던 거 아니었나요? 벌써 시시해지셨어요?” 위엄으로 가득 찬 하연의 눈동자는 유신혁을 두렵게 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시시
서준은 하연을 외면한 채 자리를 떠날 수 없는 듯했다. 서준은 하연을 데려가기를 원했다. 하연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었다. 서준은 하연과 유신혁이 함께 있던 층에 도착하자마자 유신혁이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하연은 아주 후련하고 홀가분한 모습이었다. 그제야 서준은 자신이 하연을 의심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준의 가슴은 마치 무언가에 의해 찢긴 것처럼 간헐적으로 아파왔다.맞은편에 서서 자신을 보고 있는 하연의 차가운 눈빛은 마치 보이지 않는 채찍이 되어 서준의 얼굴을 후려치는 것 같았다. 서준은 하연에게 다가갈 용기를 내지 못했고, 심지어는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믿음, 이 역시 3년간의 결혼 생활동안 서준이 하연에게 주지 못한 것이었다. 하연이 호텔을 나서자, 구급차에서 내린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든 채 호텔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하연은 집사에게 전화를 걸어 호텔로 차를 보낼 것을 지시하면서 다시 한번 옆에 서있는 양복차림의 서준을 힐끗 보았다. “내가 데려다 줄게.” 서준은 덤덤한 말투로 하연에게 아직 할 말이 남은 것처럼 말했다.하연의 눈은 서늘함과 예리함으로 가득했다. “아니, 한 대표님 차를 더럽힐 수는 없지.” “내 잘못이야.”서준의 목소리에는 실의가 섞여 있었다.“서영이랑 혜경이가 한 일, 내가 대신 사과할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난 하연은 희미한 표정으로 거절을 표했다. “필요 없어.”“3년 동안 그렇게 힘들었으면서, 왜 나한테 말 한 번을 안 했어?”하연이 떠난 후에야, 서준은 비로소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일을 묻는 말투조차도, 서준은 조심스러웠다. 하연은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었다. “한서준, 지겹지도 않니? 이미 다 지난 일이야. 이제 와서 고민하면 무슨 소용이야? 진작에 했어야지! 과거는 이미 다 지나버린 일인데 이제 와서 이런 것 고민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다구. 여태 뭐 하다 이제 와서!”‘늦바람이 무섭다더니.’기사가 포르쉐를 몰고 하연을 데리러 왔다. 하연은
부남준은 하연을 사무실로 끌어들인 뒤, 하연이가 믿기 힘들다는 듯 물었다. “왜 황연지를 해고한 거야?” 남준은 느긋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화상 입었잖아.” “내가 원하는 건 공평하고 공정한 처리야. 너의 독단적인 행동을 원한 게 아니라고.” “지금 상황에서 네 신분이 이미 밝혀졌는데, 그 사람들이 여전히 공평함을 믿을 것 같아?” 남준은 말하면서도 한 손으로는 비서에게 약상자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는 면봉을 꺼내 하연에게 약을 발라주려고 해서 하연의 손을 억지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말이야, 최 사장님이 손을 다쳤다면, 황연지 한 명 해고하는 걸로 충분히 배상이 될 것 같아?” 하연 남준의 농담을 무시하며 말했다. “나도 일부러 황연지에게 부딪힌 게 아니야. 첫째로, 동기도 없었고, 둘째로, 내가 굳이 적을 죽이려다 내 몸도 해치는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 누가 더 잘살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자면, 하연이 당연히 연지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총애받았을 것이다.“바로 그 동기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네가 직원을 괴롭히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거야.” 남준은 하연의 손에 약을 발라주며, 신중하게 말했다. “보통 사람들의 부유층에 대한 반감을 과소평가하지 마.” 하연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손을 빼려 했지만, 남준은 계속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듣기로는 DS그룹의 성적이 꽤 좋은데, 최 사장님의 정신이 이런 사소한 일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다니. 가족들은 확실히 너를 너무도 잘 보호했나 보군.” 하연은 그가 비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비웃지 마.” 그녀는 대답하면서 손을 뺐다. “그러니까 왜 날 찾아왔어?”남준은 물었다.“그냥 길 지나가다가 목말라서 물 한 잔 마시러 들렀어.” 하연은 억지로 핑계를 댔지만, 남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고 웃으며 면봉을 던지고 화장실로 손을 씻으러 갔다.하연의 시선은 남준의 비서에게
연지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괜찮아요, 제 잘못이에요.” 남자 직원은 바로 반발했다. “뭐가 연지 씨의 잘못이에요? 연지 씨가 뭘 잘못했는데요? 연지 씨가 피해자잖아요.” 연지는 남자 직원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조용히 말했다. “그만해요, 이분은 DS 그룹의 최하연 사장님이에요.” “최... 최...?” 남자 직원은 다시 하연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한층 낮췄고, 연지를 데리고 가려 했다. “자, 내가 널 처리해 줄게요.” 이 상황이 되니 하연은 마치 권력을 휘두르는 자, 강압적인 자로 여겨지기 시작했다.하연의 머릿속이 아파지며, 그녀는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잠깐 서봐요. 황연지 씨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 여기서 딱 정확히 말해 봅시다. CCTV를 확인하면 다 알 수 있잖아요.” 연지는 사과하며 말했다. “최 사장님, 제 잘못이에요. CCTV까지는 필요 없어요. 죄송해요, 제가 당신까지 다치게 했네요.” “너...” 하연은 더 화가 났다. ‘차라리 황연지가 맞서 싸우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무조건 고개를 숙이며 순순히 사과하니 마치 내가 진짜 잘못한 사람처럼 보이잖아.’주변의 많은 시선들이 하연에게 집중되자, 하연은 더욱더 참을 수 없었다. “그래요. 기왕 내가 날 무서워한다면... 좋아요!! 내가 마음대로 하는 게 맞다고 치자. 아무튼 CCTV는 반드시 봐야겠어요!” 멀리서 상혁이 이쪽에서 나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었다. “저쪽에선 무슨 일이야?” 원신민이 발돋움하며 말했다. “무슨 소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층은 부남준의 영역이었다. 상혁은 입을 굳게 다물고 이쪽으로 걸어왔다.연지는 불쌍한 얼굴로, 머리에 커피가 묻어 있었다. “정말 괜찮아요...” 이때, 부남준 사람들 속에서 나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야?” 하연은 남준과 마주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가 정말로 나타났다. “CCTV를 확인하면 되잖아. 확인해.”
“이건 도 잘 몰라요.” 정민의 권한은 고위급 기밀에 알 수 없었다. 하연은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증거를 정태훈에게 넘기자, 태훈이 바로 ‘까마귀’를 찾으러 갔다. 마침내 이틀도 지나지 않아 그 땅은 DS그룹의 소유가 되었다. 하지만, ‘까마귀’가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 일로 인해 정민도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었다. 하연이 정민을 다시 찾으러 갔을 때, 정민은 이미 그곳을 떠난 상태였다. 예전에 만났던 정민을 아는 ‘여자 동료’가 하연에게 말했다.“정민 언니... 고향으로 돌아갔어. 마치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도망치듯이 갔다던데. 그쪽 정민 언니의 사촌이라고 했잖아, 정말 몰랐어?” 하연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언니가 말하긴 했는데 이렇게 빨리 떠날 줄은 몰랐어요.” “정민 언니의 옛 애인 ‘까마귀’가 지금 언니를 온통 찾아다니고 있으니 빨리 도망가야지.” 하연은 그 말을 들으며 다시 한번 씁쓸하게 웃었다.“...”하연은 DL그룹 본사를 찾아갔다. 안내데스크 직원이 하연을 보고 전혀 놀라지 않으며 말했다. “최 사장님, 누구를 찾으셨나요?” 하연은 입을 열었다가 망설이며 말을 바꿨다. “부남준 상무님을 뵈러 왔어요.” 직원은 곧바로 부남준의 비서에게 연락을 취했고, 하연이는 대기실로 안내되었다. “상무님은 아직 바쁘셔서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하연은 대기실에서 부남준의 사무실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중년 남성이 있었는데, 그는 다름 아닌 바로 하연이 그날 부씨 가문 저택의 서재에서 본 부건국이었다. 부남준은 부건국에게 친절한 듯 보였지만, 부건국은 다소 기가 죽은 모습이었다. 두 사람이 무슨 말을 나누고 있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부씨 가문 가족이 부남준을 이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그의 권력이 점차 돌아오고 있음을 의미했고, 부남준이 DL그룹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시선을 돌린 하연은
하연은 상혁이 자신을 도울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얼굴에 장난기 어린 표정이 떠올랐다. 마치 못된 장난을 치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우리 졸업 날짜가... 며칠이더라?”그 말에 상혁의 평온했던 표정이 순간 무너졌다. 얼굴에 잠시 분노가 스쳐 갔다. 하연은 그의 반응을 보며 장난기가 잦아들었다.“농담이에요. 나도 당연히 기억하고 있어요.”하연은 그제야 상혁을 달래듯 메모장을 받아 들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녀의 미소는 긴장감으로 가득했던 순간을 잠시나마 밝게 비추는 듯했다.“내가 한명준의 선물을 받을 뻔했어요. 하지만 다행히 우리 넷째 오빠가 있잖아요. 오빠가 내가 고생하는 걸 두고 보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하연은 이미 이득을 본 주제에 오히려 얄밉게 굴며, 일부러 두 사람이 감정이 깊어지던 때 사용했던 애틋한 호칭으로 상혁을 불렀다.상혁의 몸도 순간에 마치 굳혔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연은 그가 준 땅이 절대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사람을 시켜 조사해 보았다. 그런데 조사 결과, 그 땅은 이 도시에서 악명 높은 깡패, 별명 ‘까마귀’의 손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연은 예상치 못한 결과에 미간을 찌푸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땅이 그렇게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을 줄은 몰랐다.정태훈이 말했다. “그 사람, 까마귀는 굉장히 위험한 인물입니다. 그 땅이 값어치 있다는 걸 알고 계속 내놓지 않으려 합니다.” 상혁이 준 주소는 ‘까마귀’의 애인의 집이었다. 그녀는 눈에 띄지 않도록 소박한 옷으로 갈아입고 홀로 그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도착해 보니 그곳은 마치 사창가 같은 장소였다. 남녀가 뒤섞여 있었고, 코를 찌르는 불쾌한 냄새가 가득했다.“정민 언니 만나러 왔어요.” 길가에 서 있던 여자는 하연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정민 언니? 무슨 일로 찾는 거야?” “저는 정민 언니의 친척입니다. 좋은 거래를 소개해 드리려고 왔어요.” 하연은 장난스럽게 눈을 깜빡였
상혁은 한 손으로 단추를 잠그며 말했다. “사실 꽤 좋은 거래였어. 아쉽네.” 이 순간, 그가 사업을 하는 사람의 태도로 하연의 말을 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었다. 하연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말문이 막힌 채 그대로 서 있었다. 하연의 고통스러운 모습이 상혁의 눈에 잠깐 비쳤는지, 결국 그는 약간의 연민을 보였다. “부남준을 만났어?” 하연이 고개를 들었다. “네 몸에서 부남준이가 좋아하는 남자 향수가 나네. 오늘 부남준이 정다영 씨와의 만남은 순조로웠나?”하연은 상혁이 모든 걸 이미 손에 쥐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설마 당신이 주선한 거였어요?” 상혁이 모호하게 미소를 지었다. “정다영 씨는 재능 있는 남자를 좋아해. 이 사회에서 부남준은 정다영 씨에게 치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지.” 하연은 드디어 기억났다.“정다영의 아버지가 지금도 DL그룹의 이사였고, 정다영과 부남준의 결혼은 부남준에게 득이 될 뿐이야.” “왜 굳이 스스로 적을 만들어요?”상혁은 하연의 다리를 힐끔 보았다. 그녀는 아직 발목이 완전히 낫지 않은 듯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까지 누가 적인지 알 수 없어.”하연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 생각에는 정다영이 부남준과 결혼하면 두 집안이 단단히 결속되고, 상혁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결국 가족의 지지가 없이는 부남준을 막아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혁은 하연을 지나쳐 서류를 들고 검토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늦었어. 이제 돌아가.” 그는 밤새도록 잠을 잤고, 이미 시간이 늦었지만 하연은 움직이지 않고 의자에 주저앉아 무언가를 깊이 생각했다. 상혁이 이미 계획을 세운 것 같다면, 하연도 자신이 정다영을 굳이 경고할 필요가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일보다 더 급한 문제가 있었다. 조승원이 계약을 취소했고, 지금 하연에게 남은 시간에 새로운 땅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손이현은 하연이가 굴복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그녀는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상혁이 바로 하연을 밀어냈다. “몸이 더럽고, 냄새도 안 좋으니, 나가라.” 상혁이 자신에게 말하듯 말했다. “전에 당신도 나를 이렇게 많이 챙겨줬잖아요.” 하연은 고집스럽게 상혁의 곁으로 다가갔다. “술주정뱅이.” 상혁은 그녀의 밝은 눈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원신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부에 있는 원신민을 불렀다. 하연이 다시 상혁의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원 비서는 이미 갔어요. 여기엔 나만 있어요.” 상혁은 핸드폰을 집어 들고 하연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원신민은 말했다. [대표님, 오늘 검토하셔야 할 서류는 모두 최 사장님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우선 충분히 쉬세요. 정규인 문제는 해결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상혁은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씻기 시작했다. “정규인은 떠났나요?” [새로운 사업을 받았고, 이익을 얻었으니 당연히 떠났습니다. 오후 비행기로 떠났습니다.]“고경수의 딸이 임신한 거 아니었나요?” [같이 가지 않았습니다. 정규인은 그렇게 위험을 무릅쓸 용기가 없었습니다.] “확실한가요? 그 아이는 누구의 아이죠?” [정규인의 아이입니다. 검사 결과는 최 사장님이 드린 서류에 있습니다.]상혁은 씻고 나와 머리가 한결 맑아졌다. 문을 열었을 때, 하연은 발코니에 서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는 서류에서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승원아, 도대체 왜 갑자기 우리와 계약 해지하려고 한 거야?” 하연은 정태훈에게서 연락받았다. 승원이 일방적으로 DS그룹과의 계약을 취소했다는 소식이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하연은 마치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승원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계약 취소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면서, 그동안 쌓아온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나도 분명히 말했잖아. 이건 우리 둘 사이의 계약이고, 다른 사람은 상관없어.”[알아, 하지만 존이가 예전에 내 목숨을
하연이는 멀리서 송혜선이 정다영을 칭찬하는 소하연 은은하게 들렸다. 그 내용은 대부분 과찬이었다. “졸업 후에 이곳에 남을 계획인가요, 아니면...” “우리 정씨 가문은 외동딸이니까, 당연히 곁에 두겠죠.” 하미주는 단호했다. 다영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망설였다. 그녀는 외부 세상을 보고 싶으며 큰 야망을 키웠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은 단순히 집에서 기다리며 맞선을 보거나 결혼하는 것 이상이었다. “그거 좋네요. 다영 씨, 남준은 계속 여기에 익숙하니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남준에게 연락하면 돼요.” “그렇게 하면 민폐겠죠.” 하미주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송혜선은 다영이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고, 이미 마음속으로 계산을 끝냈다. “무슨 걱정이세요, 아이들끼리는 공통된 언어가 있는 법이잖아요. 우리 남준은 기꺼이 도와줄 텐데, 다영이는 어때요?” 다영은 조금 전 남자에게서 느꼈던 은은한 향기를 떠올리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남준 오빠가 귀찮아하지 않는다면, 저도 기꺼이 좋겠어요.” 그 말을 들은 송혜선은 매우 만족스러워하며 ‘보시죠’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미주는 딸이 의외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고 놀란 듯했다. 그녀는 딸이 반항심 강한 줄 알았지만, 남준에게 마음이 있는 것을 보고 조금 의아해했다. 화분 뒤쪽에서 하연의 핸드폰이 ‘딩’소리를 내며 울렸다. 하연 고개를 들고 말했다. “남준 오빠.”남준은 그 소리에 흠칫하며 당황했다.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볼게요. 남준 오빠는 여기서 마음껏 즐겨요.” 하연은 착하게 미소 지으며 가방을 들어 올리고는 가볍게 돌아섰다. 남준이가 따라올지 신경 쓰지 않은 듯,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하연 이미 다영의 연락처를 손에 넣었고, 또 다른 소식도 받았다. 즉, 오늘 상혁이 바로 옆 식당에서 접대 중이라는 것이었다. 전날 과음한 그는 방에 묵고 있었고, 아직도 깨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모든 정보를 준 사람은 바
“우리 남준이는 타고난 재능이 좋지 않으니,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당연해요.” 송혜선의 말에 하미주는 더욱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 우리 집안이 혜선 사모님의 사정을 잘 몰라서 소홀히 했던 점이 있네요.” “무슨 말씀이세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남준은 다영을 데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그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다영은 계속 남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다음에 제가 밥을 살게요. 연락처 좀 알려주시겠어요?” 그제야 남준은 그녀를 한 번 보고, 비서에게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다영은 멈추지 않고 말했다. “제가 남준 씨의 개인 번호를 받고 싶어요.” 남준은 핸드폰을 다시 집어넣으며 말했다. “저는 전화번호를 저장하는 습관이 없어요.” “제가 저장할게요.” 다영은 긴장했지만, 동시에 솔직하고 대담했다. 남준은 벽에 기대며 숫자를 읊어주었다. “다영 씨,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해 주세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남준은 다영에게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같이 안 가요?” “회사에 일이 있어서 급히 돌아가야 해요.” 그제야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엘리베이터에 탄 다영은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남준을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봤는데, 갑자기 번호를 누르며 말했다. “그런데, 남준 씨의 그 작품은 정말 멋졌어요. 웅장하면서도 제가 그림 안에 서글픔과 고독이 느껴지더군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남준은 잠시 멈칫하며 그녀를 다시 보았다. 그의 감정은 가려졌지만, 차분히 대답했다. “다영 씨께서 제 작품을 감상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다른 작품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요?” 다영의 눈빛에는 이미 애정이 담겨 있었다. “제 번호를 이미 받지 않았나요?” 다영은 거절당하지 않았다는 것에 기뻐하며 환하게 웃었다. 하연은 이 호텔의 VIP 회원이었기 때문에, 호텔 지배인이 직접 안내했다. “정다영
“설령 제가 왕씨 가문을 하연 씨에게 준다고 해도, 하연 씨는 받지 않을 거잖아요.”이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남산 땅은요? 당신이 왜 제가 그걸 받을 거라고 생각하죠?”짧은 침묵이 흘렀다.하연의 눈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자신이 겨우 얻어낸 또 다른 부지를 이현이 몇 마디로 취소시켜 버렸다.“앞으로 제 일에 끼어들지 마세요.”하연은 차갑게 말하며 다시 돌아가 가방을 집어 들었다.“우리 회사와 계약 해지를 한 계약서라도 썼나?”승원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계약서도 없으니, 우리 계약은 그대로 진행할 거야. 내가 보증금도 곧바로 입금할게. 승원아, 협력은 우리 둘이 한 것이지, 다른 사람이 끼어들 자격은 없어. 잘 기억해.”하연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고, 그 분노는 차갑고 단호했다.그녀는 가방을 들고 단호히 자리를 떠났다.승원은 멍한 표정으로 한쪽에 앉아 있는 이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봐, 진심이야? 정말로 하연을 여자 친구로 만들려고?” 오랜 침묵 끝에 이현은 조용히 대답했다. “응.” 승원은 놀란 눈으로 이현을 바라보았다. “네가 농담하는 줄 알았어. 너 정말 하연이가 누구인지 알기나 해? 최씨 가문이 그렇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집안이라고 생각해? 게다가 하연의 전 남친은 세계 50대 기업의...” “부상혁 말이지, 알아.” 이현은 아주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승원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현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아까 먹다 남긴 음식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마치 굳은 결심이 담긴 듯한 모습이었다. “난 그저 과거의 후회를 만회하고 싶을 뿐이야. 지금 어떤 장애물도 문제가 되지 않아.” ...‘미녀4총사’의 톡방이 톡을 끊임없이 계속 문자를 올리고 있었다. [그 사람이 남산 땅을 가져왔다는 건 정말 큰 공을 들였다는 의미야. 하연아, 지금 그저 앉아서 득을 보면 되는 건데, 왜 안 받아?]여은이는 전형적인 사업가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