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여자…….’무대 위의 사랑스러운 여자를 본 운석이 발걸음을 멈추었다.그 여자가 부르고 있는 노래는 유명한 발라드, ‘바람’이었다. 그녀의 신비로운 목소리가 바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살며시 의자에 앉은 그 여자의 아름다운 뺨으로 한 줄기의 조명이 내려왔다. 곧이어 그 여자의 검은 머리칼이 흔들리고, 붉은 입술이 열렸다. 그 여자의 감미로운 노랫소리는 청중들로 하여금 시공간을 넘나드는 느낌이 들게 했다. 그 여자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운석의 귀를 파고들자, 운석의 머릿속에 발코니에서 울던 하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 밤, 눈썹을 가볍게 찌푸리고 있던 하연의 눈은 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운석은 자신의 가슴에 직격탄을 날리는 듯한 하연의 아름다움 모습에 매료되어, 눈도 한번 깜빡거리지 않은 채 하연을 바라보았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만 같았다.“자기야, 너무 감동적이라 눈물이 날 지경이야! 신나는 노래 좀 불러봐!” 무대 아래의 예나가 하연에게 소리쳤다.하연이 무대 아래의 친구들을 향해 윙크를 했다. “그래, 알았어.”곧이어 하연은 ‘사랑해'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는 하연의 얼굴에는 생동감 있는 웃음이 가득했다. 거기에 발로 장단을 맞추는 모습까지 더해지자 전체적으로 대단히 세련되고 매력 있어 보였다. 노래의 가사는 귀엽고 사랑스러웠으며, 노래의 품격 역시 소탈했다. 무대 아래, 모든 청중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가득했다. 청중들은 하연이 부르는 노래의 선율에 몸을 맡긴 채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연이 노랫소리로 인해 바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운석의 머릿속에 오동나무가 즐비한 F국의 한 거리가 펼쳐졌다. 운석은 자신의 손을 잡은 채 그 거리를 걷고 있는 하연의 모습을 상상했다. 한마디로, 하연에게 완전히 매료되어버린 운석이었다. 운석은 여태 하연과 같이 자신의 심장을 파고들 정도로 아름답고 다채로운 모습을 가진 여자는 본 적이 없었다.운석은 누군가가 자신의 귀에 속삭이는 소리를
핸드폰의 알림 소리가 울리자, 하연이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하성이 보내온 문자였다. [우리 하연이, 오빠 안 보고 싶어? 네가 제일 좋아하는 이 셋째 오빠가 네가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다! 조만간 F국에서 보자.] 하연이 온몸에 돋아난 닭살을 떨쳐내며 자판을 두드리며 답장을 보냈다. [안 보고 싶거든!]답장을 보낸 하연이 고개를 돌려 비서에게 지시했다. “저를 대신해서 서명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꽃은 회사의 여직원들에게 나눠주세요.” “알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비서가 하연의 사무실을 떠났다.하연은 계속해서 서류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때, 개발팀의 본부장인 유신혁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사장님, 좋은 아침입니다.”책상으로 다가와 하연에게 파일을 건네는 유신혁의 눈동자가 총명함으로 가득했다.“이번 달의 이윤표입니다. 한 번 보시죠.”아직 파일을 받아들지 않은 하연이 담담한 표정으로 유신혁을 바라보며 물었다.“유 부장님이 직접 오시다니, 무슨 일입니까?”하연이 유신혁의 손에 있던 서류를 훑어보며 말했다. “제 비서에게 맡기시면 될 일입니다. 이렇게 번거롭게 하지 않으셔도 돼요.”유신혁의 얼굴에 웃음이 깊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긴장한 기색도 역력해지는 듯했다. “사장님, 지난번 회의 때는 제가 실수했습니다.”하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괜찮습니다, 그냥 말씀해 보세요.”“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죄송해서, 오늘 저녁에 제가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할 수 있을까 하고…… 어떠십니까?” “제가 기항 그룹의 최신 소식을 알고 있습니다. 사장님과 개인적으로 공유하고 싶습니다.” 몸을 낮추며 굽신거리는 유신혁의 모습은, 지난번 회의실에서 하연을 향해 칼을 겨누며 날뛰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거짓이 많은, 변덕스러운 사람이야.’하연이 두 손을 깍지 낀 채, 유신혁을 꿰뚫어 보았다. “좋아요, 오늘 저녁에 뵙죠.”하연이 기항 그룹의 성재와 친분을 쌓자마자, 유신혁은 하연이 기항 그룹에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짙은 담배 냄새가 엄습해오자, 하연은 자신도 모르게 옆으로 당겨 앉아 유신혁과의 거리를 벌렸다. 하연이 눈을 들어 바라보니 유신혁의 이빨 사이로 새까맣고도 누런 치석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하연은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지는 듯했다.하연은 겉으로는 사람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중년의 남성이 사실은 구역질이 날 정도로 더러운 남자라는 것을 미쳐 생각지 못한 듯했다.“뭐 하시는 겁니까? 제가 다가오지 못하게 하려는 겁니까?” 하연이 최대한 숨을 참고 유신혁과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싶지 않았다.“사장님께서는 한서준의 침대에서 겨우 기어 내려와, 눈 깜짝할 사이에 DS그룹의 최하민 대표라는 배를 타셨지요. 그렇게 B시에 돌아오시자마자 우리 같은 원로 직원들은 발밑에 두시다니, 최 사장님, 정말 탄복스러울 따름입니다.” 하연의 입가에 썩소가 번졌다. 하연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오늘 저를 부르신 이유가, 칭찬을 하기 위해서였습니까?”“물론 아닙니다. 저는 단지 한서준과 놀던 여자는 다른 여자와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었을 뿐입니다.” 유신혁이 음흉한 미소를 지은 채, 노골적인 표현을 내뱉으며 하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유신혁은 며칠 전, 하연에 의해 체면을 구긴 일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형식적인 겉치레에 불과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각 부서의 문제에 대해 날카롭게 일침을 가했어. 능력이 출중한 여자임이 분명해.’ 이 생각은 시간이 흐를수록 유신혁의 위기감을 가중시켰다. 하연이 차가운 표정으로 유신혁의 말을 곱씹으며 말했다. “유 부장님, 여태 저를 그렇게 생각하신 겁니까?” “여자가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 잠자리 솜씨가 좋아 높은 자리에 앉았을 뿐이겠지요.” 유신혁은 여성에 대한 뚜렷한 차별을 드러냈다. 급기야 하연은 DS그룹 HR의 안목을 의심하게 되었다.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이 우리 그룹에 섞여 있었다니.’ “사장님과 한 대표, 두 사람의 결혼 비화를 좀 듣고 싶군요. 아, 침대 위에서 내는 그 아름다운 소리까
분노에 가득 찬 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의 뒤를 쫓아 호텔로 향하려 했다. 태현이 말했다. “봐, 내 말이 맞지? 남녀가 이렇게 호화로운 레스토랑에서 밥 먹은 다음, 호텔을 가는 게 아니라면 어디로 가겠냐?”태현이 서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서준아, 바람기가 많은 여자일 뿐이야. 그냥 내버려둬.” 태현의 위로에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 서준이 결국 호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혼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DS그룹의 최하민 대표와 결탁한 것도 모자라, 부하직원하고 놀아나기까지 하겠다고?”‘최하연, 나랑 이혼하고 변해버린 거야, 아니면 원래 이렇게 방탕한 여자였던 거야?’‘ 호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유신혁이 기다렸다는 듯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하연도 유신혁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가 오르려던 그 순간, 서준이 하연의 손목을 힘껏 잡아당겼다.“얘기 좀 하자.”유신혁과 함께 호텔 방으로 올라가려던 찰나,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붙잡는 서준을 본 하연은 순간 황홀감을 느꼈다. 그러나, 곧 이성을 부여잡고 눈앞의 서준을 똑똑히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차갑게 말했다 “한서준 씨, 정말 한가한가 봐? 난 일이 있어서 이만.” ‘우연의 일치일 뿐이야.’‘날 따라온 건 아닐 거야.’“두 분, 먼저 이야기 나누시죠.” 유신혁이 안색을 바꾸어 공손하게 서준의 비위를 맞추는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하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먼저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눈을 가늘게 뜬 서준이 유신혁이 탄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감히 최하연의 몸에 손을 대려 하다니. 오늘은 절대 그럴 수 없지.’ 서준은 하연의 손목을 잡고 있는 손에 더 강한 힘을 주었다. 통증을 느낀 하연이 힘껏 서준을 밀쳐냈다. “빨리 용건이나 말해!”“왜 저런 쓰레기랑 잠자리를 하려는 거야?”서준의 안색은 매우 어두웠으며, 말투는 따지는 듯했다. 유신혁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B시에서 이미 소문이 자자했
문을 닫은 유신혁이 급하게 옷을 벗기 시작했다.“최 사장님, 걱정 마십시오. 이 밤이 지나면, 제가 알고 있는 기항 그룹에 관한 모든 정보를 알려드릴 테니까요. 반드시, DS그룹의 B시 지사에서 행복하게 살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당장이라도 침을 흘릴 듯한 유신혁이 침대 머리맡에 숨겨 둔 카메라를 힐끗 쳐다보았다. ‘즐기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야. 녹화해서 원할 때마다 감상해야지. 거물급 인사와만 놀던 여자가 이제는 나랑 놀아난다 이 말이야. 기분을 나쁘게 하면 영상을 빌미로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해야겠어.’ 근질근질한 몸을 참을 수 없던 유신혁이 발가벗은 몸으로 아름다운 하연에게 달려들었다. 바로 이때, 하연이 탁자 위의 붉은 술병을 집어 들어 유신혁의 머리를 힘껏 내려쳤다. 유신혁이 멍한 표정으로 손을 뻗어 머리를 만지자, 손이 피투성이로 변했다. “아…….”“미친X, 네가 감히 나를 쳐?”유신혁이 곧바로 몇 걸음 나아가 하연을 향해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나 유신혁의 주먹은 하연의 한 손에 의해 반격당하여 아래로 힘껏 꺾이고 말았다. 하연의 강한 힘으로 인해 유신혁의 손이 하얗게 질렸다.곧이어, 몇 걸음 뒤로 물러선 하연이 옆으로 달려들어 유신혁의 가슴을 걷어찼다. 하이힐의 가는 굽이 유신혁의 갈비뼈를 찔렀다. 방안에 두둑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유신혁의 갈비뼈가 부러졌다. 하연이 이렇게 나올 거라 생각지 못했던 유신혁은 공포에 질려, 피범벅이 된 얼굴로 가슴을 가린 채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하연이 그런 유신혁의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끌었다. 진작 하연을 품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유신혁이었다. 그저 끝없는 공포만이 유신혁을 감쌌다. 유신혁이 두려움에 고개를 들고 말했다. “최 사장님, 몰라뵀습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놓아주세요.”“그래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 침대 스킬에 관심이 많던 거 아니었나요? 벌써 시시해지셨어요?” 위엄으로 가득 찬 하연의 눈동자는 유신혁을 두렵게 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시시
서준은 하연을 외면한 채 자리를 떠날 수 없는 듯했다. 서준은 하연을 데려가기를 원했다. 하연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었다. 서준은 하연과 유신혁이 함께 있던 층에 도착하자마자 유신혁이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하연은 아주 후련하고 홀가분한 모습이었다. 그제야 서준은 자신이 하연을 의심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준의 가슴은 마치 무언가에 의해 찢긴 것처럼 간헐적으로 아파왔다.맞은편에 서서 자신을 보고 있는 하연의 차가운 눈빛은 마치 보이지 않는 채찍이 되어 서준의 얼굴을 후려치는 것 같았다. 서준은 하연에게 다가갈 용기를 내지 못했고, 심지어는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믿음, 이 역시 3년간의 결혼 생활동안 서준이 하연에게 주지 못한 것이었다. 하연이 호텔을 나서자, 구급차에서 내린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든 채 호텔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하연은 집사에게 전화를 걸어 호텔로 차를 보낼 것을 지시하면서 다시 한번 옆에 서있는 양복차림의 서준을 힐끗 보았다. “내가 데려다 줄게.” 서준은 덤덤한 말투로 하연에게 아직 할 말이 남은 것처럼 말했다.하연의 눈은 서늘함과 예리함으로 가득했다. “아니, 한 대표님 차를 더럽힐 수는 없지.” “내 잘못이야.”서준의 목소리에는 실의가 섞여 있었다.“서영이랑 혜경이가 한 일, 내가 대신 사과할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난 하연은 희미한 표정으로 거절을 표했다. “필요 없어.”“3년 동안 그렇게 힘들었으면서, 왜 나한테 말 한 번을 안 했어?”하연이 떠난 후에야, 서준은 비로소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일을 묻는 말투조차도, 서준은 조심스러웠다. 하연은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었다. “한서준, 지겹지도 않니? 이미 다 지난 일이야. 이제 와서 고민하면 무슨 소용이야? 진작에 했어야지! 과거는 이미 다 지나버린 일인데 이제 와서 이런 것 고민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다구. 여태 뭐 하다 이제 와서!”‘늦바람이 무섭다더니.’기사가 포르쉐를 몰고 하연을 데리러 왔다. 하연은
하연이 편안하고 태연하게 의자에 앉아 입을 열었다.“어제 구급차에 실려가셨는데 오늘 퇴원하시다니. 유 본부장님 정말 건강하시네요.” “최 사장님, 농담 마십시오. 저도 회사의 업무에 지장을 줄까 걱정했습니다.”유신혁은 머리에 거즈를 두르고 있었고, 양복 재킷 밑에는 여전히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유신혁이 뻔뻔스럽게 말했다.“어제 기항그룹의 내부 소식을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생각나 서둘러 회사로 달려왔습니다.”하연이 유신혁을 향해 앉으라며 날렵한 턱을 들어올려 소파를 가리켰다.‘절대 그냥 말 하지 않을 것 같이 하더니, 한 대 맞고 나니 드디어 입을 여는군.’ “기항그룹에서 오늘 나노 로봇에 관한 프로젝트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DS 그룹의 의료 개발 프로젝트와 약속이나 한 듯 일치하더군요,” 하연은 짜증이 나서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매서운 말투로 말했다.“쓸데없는 말만 하실 거면 나가보세요.” 하연의 말을 들은 유신혁은 온몸을 벌벌 떨며 하연은 위협을 입으로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즉시 요점만 골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기항그룹이 이미 HT그룹을 찾아가 협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요 며칠 계약 절차를 밟고 있는 것 같더군요.”“HT그룹이요?” 하연은 의아해했다.유신혁이 지팡이를 짚은 채 하연에게 가까이 다가가 계속해서 말을 하려 했으나 하연이 눈빛으로 경고하자 즉시 한쪽으로 물러났다. “제가 들은 바로는, 기항 그룹과 HT그룹이 이틀 후, 교외 승마장에서 소규모 회의를 개최하고 그 때 최종적으로 계약을 확정한다고 합니다.”하연은 손에 든 금색 펜을 돌리다가 눈을 들어 유신혁에게 물었다. “믿을만한 정보예요?”“그럼요, 믿을만한 소식통입니다! 장담할 수 있습니다!”“음.” 하연이 눈을 가늘게 뜨고 수긍하는 듯했다. ‘이렇게 높은 수준의 기밀 정보가 이런 사람에게 알려진 거라면 틀림없이 고위층 인사와 관련된 것임이 분명해.’ 유신혁은 일찍이 하연의 미움을 샀다. 누구보다도 하연을 골탕먹이면 어떻게 되는지 잘
숨을 가라앉힌 하연이 휴대전화를 꺼내어 최근 D국으로 돌아온 하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는 너무도 이상한 일이었다. 나운석이 D국의 멀쩡한 NW그룹의 대표 자리를 놔두고, DS그룹 B시 지사에 지원하여 일반 직원으로 일하기를 원한다니.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연은 반드시 큰오빠인 하민에게 전화를 걸어 NW그룹의 상황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하민이 전화를 받았다.[하연아, 나한테 전화를 다하고, 무슨 일이야?]전화기 너머의 하민의 말투는 세련되었지만 온화한 애교가 배어있었다. 하연은 한쪽에 어색하게 서 있는 투자팀 본부장 장영환을 보고 입을 가린 채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오빠, 나운석, 그 녀석이 B시에 와서 우리 DS그룹 투자팀에 프로필을 넣었는데, 어떻게 된 일이야? NW그룹이 파산이라도 한 거야?”하민이 낮은 소리로 웃었다.하민은 하연이 나운석을 철천지 원수로 여기고 못되게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했다. [아니야, 나 회장님께서 나운석을 B시로 파견하셨다고 들었어. 그런데 DS그룹에 지원할 줄은 나도 전혀 몰랐어.] “알았어, 당장 꺼지라고 할게.”[하연아, 진정해.]하민이 충고했다.[나운석의 실력은 이미 너도, 나도 잘 알고 있잖아. 진정한 벤처 고수인 나운석이 네 투자팀에 있다면, 올해 네 손익계산서는 반드시 주주들을 만족하게 할 거야.]하민의 말에 조금은 누그러진 하연이 남매 사이에서만 있을 법한 애교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나운석이 나한테 결혼 이야기를 꺼내면 어떡해?”[네 신분은 대외적으로 공개된 적 없잖아. 나운석은 네가 한서준과 결혼했던 최씨 가문의 넷째 딸이라는 건 몰라. 네가 굳이 말하지만 않으면, 어떻게 알겠어?” 하연의 태도가 다소 누그러지자 하민이 덧붙였다.[B시DS그룹이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이 바로 나운석 같은 인재야. 너의 일방적인 감정 때문에 그렇게 우수한 인재를 거절한다는 게 아깝지 않아?] 하민은 하연을 성공적으로 설득했다. 하연의 현재 임무는 DS그룹의 B시 지사에서의 업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