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하연은 친구 예나와 함께 명품 매장에 가서 주문해둔 물건을 찾기로 약속했다.가게에 들어서자 직원들은 그녀가 최하연이라는 것을 알고는 즉시 매장 매니저를 호출했다.매니저는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최하연 고객님, 잠시만요. 고객님이 주문하신 보석은 너무 고가의 제품이라서 금고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받으러 갈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다리시는 동안 제가 먼저 다른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하연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괜찮습니다, 저희끼리 알아서 볼게요.”예나와 하연은 매장 곳곳을 한 바퀴 돌았지만 별로 흥이 나지 않았다.“자기야, 1층의 옷은 별로 맘에 안드네. 다른 사람들이 다 고르고 나서 남은 것들 같아. 우리 2층으로 가 보자.”예나는 하연을 끌고 2층으로 갔다.매니저는 곤란해하며 말했다.“정말 죄송합니다. 2층은 여러 사모님들이 보고 계십니다. 지금 들어가서 보시는 것이 불편하실 겁니다.”하연은 매니저를 향해 가볍게 웃었다.“알겠어요, 그럼 우리는 주문한 보석만 가지고 갈게요.”매니저는 매장의 상황을 잘 이해해준 하연에게 연거푸 감사인사를 했다. 이렇게 재산이 있으면서도 갑질을 하지 않는 고객은 드물었다.하연은 예나를 끌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즐겁게 핸드폰 게임 ‘에닝팡’을 즐겼다. 아래층에 있는 두 사람의 말소리는 펀칭된 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전해졌고 이수애의 귀에까지 들렸다.이수애가 유리창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고 하연을 발견하고는 안색이 갑자기 변했다.옆에 동행한 귀부인은 입을 가리고 몰래 웃으며 이수애의 상황을 비꼬는 것을 잊지 않았다.“사모님 댁 한씨 집안 못된 며느리가 인터넷에서 이름도 다 공개되고, 무슨 일인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되었다는데, 정말이예요?”“댁의 따님 서영이는 경찰서로 연행됐었잖아요, 이제 나왔어요?”상류층은 원래 강약약강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라, 모두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수애의 아픈 곳을 세게 찔렀다.이수애는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이를 악 물었다. 물컵을
“세상에 이렇게 비싼 목걸이가 어디 있어? 순 날강도 같으니라구!”이수애는 평소에는 고상하고 우아한 척 행동했지만 막상 하연과의 갈등 상황에서 막다른 골목에 이르니 뼛속 깊은 데부터 인색하고 쩨쩨함이 드러났다. 이수애의 날카롭고 째지는 목소리가 들리자 순식간에 매장 직원들의 눈살이 찌푸려졌다.매니저가 앞으로 나가서 설명했다.“사모님, 이 제품은 VERE와 우리 브랜드의 주문제작형 모델입니다. 위의 노란 빛을 띠는 다이아몬드는 일찍이 T국 여왕이 착용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 이 가격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있습니다.”“내가 당신들이 물건 팔아먹으려고 하는 허튼소리를 믿을 것 같아? 차라리 죽은 사람이 살아있다고 말하는 것을 믿겠네. 정말 우리 같은 부자들 돈을 그렇게 쉽게 뜯어가려고?”이수애는 매장 매니저에게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매니저는 지금까지 일해오면서 진상부리는 고객들을 수없이 봤지만 이수애처럼 직설적인 사람은 처음이었다. 매니저의 얼굴빛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매장 직원들을 난처하게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하연은 조롱이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고, 말투도 점점 차갑고 딱딱해졌다.“말씀하신 대로 저는 뭘 사도 상관없는데 뭘 머뭇거리시는 거예요? 빨리 결제하세요!”그녀는 위층에서 난간에 기대어 구경하는 재벌집 안주인들을 가리켰다.“지금 사모님이 하신 말씀은 B시의 명문가 사모님들 모두가 들었으니 억지 부리시면 안 됩니다.”이수애가 고개를 들자마자 2층에 함께 있었던 재벌 집안 안주인들이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 있는 얼굴들을 보았다.상황이 불리해지자 후회가 막심이었다. 체면을 되찾으려고 그런 건데 오히려 낯뜨거운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하연은 매장 매니저의 도움을 받아 침착하게 목걸이를 착용했다. 불빛 아래의 황금빛 다이아몬드는 반짝반짝 빛나고 눈부신 광채를 내는 것이 하연의 성격과 잘 어울려 보였다.예나는 하연 옆에서 한술 더 뜨며 맞장구를 쳤다.“역시 자기는 안목이 높다니깐.”또한 이수애를 향해 눈알을 부라
“최 사장님, 승마 솜씨가 훌륭하군요.”성재는 보이는 그대로 진심을 담아 하연을 칭찬했다. 누가 들어도 성재의 말을 인사치레가 아니었다.하연은 곁눈질로 한서준을 힐끗 보고 성재에게 말했다.“임 대표님, 잠깐 대표님과 단 둘이 따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기항그룹은 핵심 과학 기술 발전에 주력하는 회사이다.설립 이래 5년간 수많은 참신한 스마트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여 모든 분야의 찬사를 받았다.이번 나노로봇 기술은 전례없는 기술 혁신으로써 의료계 역사에서 해결하기 어려웠던 수많은 난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하연은 기항그룹의 바로 이 점을 높게 평가하여 성재에게 협업을 제안하려고 했다.서준의 눈동자는 차갑고 목소리에는 이미 불쾌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기항그룹은 이미 HT그룹과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미 다 끝난 계약에 대해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까?”하준의 시선이 계속 하연에게 머물러 있었다. 그가 말을 타고 멀리서 나타났을 때부터 서준은 하연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그동안 하연은 서준이 보는 앞에서 말을 타 본 적이 없고, 심지어 승마에 대해 단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이 여자에 대해서는……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군.’기항그룹과 HT그룹의 협력은 아직 비밀유지 단계에 있었다. 하연이 이렇게 빨리 소식을 듣고 개입하려 하는 모양새로 보아 앞으로 B시 재계에서 두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할 것으로 예상됐다.하연은 잠시 당황했다. 두 기업의 업무 진행이 이렇게 빠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 짧은 며칠사이에 계약절차까지 이미 끝난 상태였다.마음속으로는 다소 화가 났지만, 홍조를 띤 하연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했다.“이 프로젝트에 저희 DS그룹이 함께 해도 될까요?”성재는 하연의 목소리를 듣고 빙그레 웃었다. 그의 맑게 빛나는 두 눈동자를 보면 누구든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좀처럼 알 수 없었다.“현재 기항그룹이 이미 HT그룹의 투자를 받았는데, 투자자를 멋대로 추가하는 것은 매우 경솔한 결정이 될 겁
서준의 그림자가 순식간에 멈췄다. 절대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눈빛으로 하연을 바라보았다. 시종일관 차갑고 무겁게 침묵을 지켰다.‘이 여자는 정말 아름답고, 팔색조처럼 변화무쌍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전혀 알 수가 없어. 이 여자가 내민 문제는 마치 함정처럼 한 걸음만 잘못 디뎌도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아.’남은 정이 있는지 없는지는 더 지나봐야 알겠지만, 지금 서준은 이 결혼을 너무 쉽게 일찍 끝내 버린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하연은 눈을 아래로 깔고 가볍게 웃으며 미간의 서늘한 기운을 지웠다.“훗! 내가 잠깐 실언한 거예요, 한 대표님 같은 냉혈한이 그런 별볼일 없었던 과거에 매달릴 리가 있겠어요?”하연이 계속해서 말했다.“비즈니스 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익이잖아요. 이 점은 내가 굳이 말할 것도 없을 거고. 한 대표님이 나보다 더 잘 알 거고.”“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서준의 얼굴빛이 더욱 어두워지고 그의 매서운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더욱 압박감을 느끼게 했다.하연은 전혀 서준을 의식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한 대표님이 지난날의 감정으로 DS그룹의 사업 참여를 거절하지 않는다면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은데요?“저와 승마 시합을 하는 게 어때요?”머리카락 한 가닥이 뺨에 드리워져, 하연의 얼굴 전체에 자유분방함이 넘쳐 보였다.“당신이 이기면 DS그룹은 앞으로 절대 사업 참여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내가 이기면 당신은 DS그룹의 참여에 동의하는 겁니다.”서준은 전문적으로 승마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전문 선수 수준에 버금가는 실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하연은 오늘 아주 컨디션이 좋아서 반드시 그를 이기려고 할 것이다.임성재는 딱히 누구 편이라고 할 것이 없었지만 말 속에 자신의 진심을 분명히 드러냈다.“최 사장님의 진심은 제 눈에 너무 잘 보이고, 승마 기술도 특출하신 것 같습니다. 한 대표님이 승마실력에 얼마나 자신이 있는지가 오늘의 관건이겠군요.”서준이 눈썹을 살짝 찌푸릴 때 하연의 눈동자 색이
하연은 두 번째 바퀴에서 이겼는지는 개의치 않고, 마지막 세 번째 커브길에 집중해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다시 서준을 한 걸음 차이로 제치고, 결국 먼저 결승점에 도착했다.이 소리 없는 대결은 결국 하연의 승리로 끝이 났다.계속해서 손에 땀을 쥐고 있던 관중석의 사람들의 하연의 승리에 환호를 표했다.경마란 그런 것이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속도를 줄여가며 한 바퀴 더 달리고 난 후, 하연은 서준 앞에서 멈추고 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이목구비가 날렵한 하연의 얼굴에 웃음기가 만연해졌다. 헬멧을 벗으니 검은 머리카락이 어깨에 흩어졌다. 짜릿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목소리에는 아직 경기 중의 흥분이 남아 있었다.“한 대표님이 졌네요.”하연은 일찍이 여왕이 개최하는 ‘여왕컵' 승마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여왕의 찬사까지 받은 적이 있었다.하연은 어릴 때부터 말을 타는 것을 매우 좋아했는데, 이 때문에 최하민은 특별히 하연을 위해 진귀한 말을 구입하여 수많은 승마 챔피언을 초청하여 함께 훈련하게 했다.15살 때 하연의 애완동물은 천만 원이 넘는 I 국에서 수입한 황금빛 말이었다.이런 실전이 매우 중요한 종목에서 하연이 서준처럼 감독에게 레슨이나 받는 얼치기 선수에게 질 리가 없었다.이전에는 부드럽고 순종적인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자신의 강한 면을 숨겨왔었다. 이는 단지 서준이 자신을 한 번만이라도 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말 우습기 짝이 없었다.서준의 마음속에서는 하연에 대한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서준의 복잡한 눈빛이 하연에게 몇 초간 머물렀다가 다시 거둬들여졌다.“당신, 언제 승마를 배운 거야?”좀 전에 하연이 말을 타고 나타났을 때는 하연이 원래 말을 탈 줄 알았다는 사실에 놀랐는데, 이제는 하연이 뜻밖에도 정상급에 도달한 전공자 수준의 실력을 갖고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눈앞의 하연은 야생마처럼 자유분방하고 가시 돋친 장미 같은 존재였다. 하연의 일거수일투
태현은 서준의 성토에 순간 당황했다. 서준은 하연에게 져서 기분이 나쁘긴 했지만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나는 저 바람기 있는 여자를 상대도 안 하고 싶지만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네.”“그래?”하연의 차가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자 태현이 깜짝 놀랐다.그는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보며 당황하여 말했다.“소리도 없이 어디서 나타난 거야?”“당사자가 여기 있는데 바로 물어보면 되잖아?”하연은 팔짱을 끼고 똑바로 섰다. 눈동자 속의 상대를 압도하는 기세는 예전 그대로였다. ‘내가 방금 자기를 욕한 걸 들었나?’서준은 조용히 한쪽에 비껴 서서, 관심 없는 척 하연을 여러 번 곁눈질했다.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서준의 마음은 매우 복잡했다.“쳇, 원래 당신 같은 여자한테는 관심 없었어. 네 돈줄이나 얼른 찾아가.” 태현은 하연에게 가라고 손을 휘저으며 제멋대로 깔보는 투로 말했다.하연은 하이힐 신은 발로 몇 걸음 더 앞으로 걸어갔다. 하연의 이 기세 때문에 태현은 자기도 모르게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아무도 말 안 해줘? 안태현 씨, 당신이 다른 사람을 험담할 때 말이야... 정말 동네 노점상 같다는 거.”태현은 갑자기 화가 났다.“최하연 씨! 이혼하고도 내 친구 앞에서 어슬렁거리며 내 친구들의 일에 방해나 하고 다니고 말이야! 최하연 씨 같은 계집애들 이미 충분히 많이 봐왔어, 그런 당신이 나를 비웃어? 정말 어이가 없어서 웃겨 죽겠네.”마침 이때 청소부가 청소차를 밀고 지나가자 하연은 바닥 발 매트를 닦은 걸레를 빤 오수가 든 통을 들어 태현의 몸에 끼얹었다.태현은 오늘 리넨 소재의 흰색 양복을 입었는데 하연이 뿌린 오수에 온통 젖어 위아래로 옷 색깔이 변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속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그야말로 완전히 다 벗은 것보다 훨씬 더 못한, 참으로 딱한 상황이었다.그는 한 손으로는 상반신을 가리려고 했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하반신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허둥지둥해서 웃음을 자아냈다.“최하연! 당신이 감히 나한테 덤벼?”
‘오해라니? 선 넘네.’하연은 눈을 가늘게 뜨며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나를 모욕했던 일들이 지금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절대 별일 아닌 것처럼 간단히 넘어갈 수는 없지.’“공교롭게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나는 성격은 좋은데 뒤끝 작렬이지.’하연은 큰오빠의 설명을 떠올리자 운석을 놀리는 일이 재미있어졌다. 운석은 하연이 누군지도 모른 채 관심을 보였고 하연은 그런 운석의 모습을 즐겼다.“나한테 가까이 오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아시겠어요?”운석은 하연의 말을 전혀 듣지도 않고 직접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부드러운 빛을 띤 옥팔찌가 있었다. 한눈에 봐도 그 가치가 상당했다. 지난번 민혜경의 경매 낙찰 금액보다 수백 배 더 비싸 보였다.“지난번 일에 대한 감사의 선물인데, 마음에 드는지 한번 보세요.”이 옥팔찌는 운석이 오래 시간을 들여 직접 골랐다. 여러 보석 전문가들을 청해 보석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배우고 나서 장만한 상품이었다. 팔찌의 퀄리티로 보나, 가격으로 보나 그야말로 운석의 정성이 가득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가져가세요, 저는 이런 거 필요 없어요.”“나의 여신님, 제가 많이 좋아합니다.” 운석은 다시 한번 하연에게 마음을 고백했다.운석은 온몸에 눈부신 자신감이 흐르고, 용모도 준수하고 다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실제로 운석과 원수진 사람일지라도 그의 소탈하고 제멋대로인 매력에 흠뻑 빠질 정도다. 그러나 지금 운석의 앞에 있는 사람은 하연이었다.“저는 아니에요.”“왜죠?”“내 스타일이 아니에요.”하연의 말 한마디에 운석은 상처받은 것 같았다. ‘여신도 자기 이상형이 있었군. 흠...”운석은 하연의 이상형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하기로 했다.“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하연은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혹시 나중에 내 아이의 아이큐에 안 좋은 영향을 줄까 봐요.”운석은 마치 엄청난 농담을 들은 것 같았다. 운석은 실제로 IQ 167의 천재였다.“저를 거절하는 이유가 아이큐라니 믿을 수가 없군요.”
“죄송합니다, 사장님.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막았지만 워낙 완력으로 들이닥쳐서...”비서는 난감한 표정으로 뒤따라 들어왔다.하연이 침착하게 말했다. “괜찮아, 문 닫아.”유신혁의 갈비뼈 골절 회복이 빠르고, 얼굴의 상처도 대부분 아물었다.“사장님, 기항그룹과의 프로젝트 계획서를 봤는데, 거기 내 이름이 안 보이네요? 누락된 것 아닌가요?”하연은 만년필을 손가락으로 돌리면서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빠뜨린 거 아니고, 내가 유신혁 씨 이름 빼라고 했어요.”“사장님, 이것은 애초에 약속했던 겁니다.” 유신혁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지고 음흉한 것이 가득했다.“아쉬울 때는 이용하고, 쓸모없으면 그냥 버리는 거 너무 모양 빠지는 거 아닙니까?”하연은 예리한 눈빛으로 유신혁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유신혁 씨는 내가 당신 상관이라는 것을 잊은 거 아니죠? 내 판단에 따라 내가 결정하고 책임도 내가 집니다.”유신혁은 하연에게 잘 보이는 것에 실패하고 이를 악물고 말했다.“최 사장님, 저한테 너무 함부로 하지 마세요.”“그래? 그러면 내 결정 안 따를 겁니까?”하연은 개의치 않고 웃으며 두꺼운 사진 한 묶음을 꺼내 책상 위에 던졌다. 날렵한 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유 부장 같은 사람이 기항그룹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면 적지 않은 분란이 일어났을 것 같네요.”유신혁이 책상 위의 사진을 들고 보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온몸에 힘이 빠져 후들거리고 공포에 질려 하연을 바라보았다.“이거 다 어디서 났어요?”“아직 보여줄 게 많이 남았는데, 유 부장한테 내가 자세히 설명해야 합니까?”“아니, 됐습...”순식간에 유신혁의 기세가 꺾였다.하연의 가녀린 손가락이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하연의 입술 사이에는 유신혁에 대한 비웃음이 가득했다.“내 짐작이 맞네요. 몰카를 찍은 게 처음이 아니더군요.”“사진 속에 있는 사람들 연락처 다 가지고 있어요. 이 여자들과 유신혁 씨와의 관계가 사생활이겠지만 이게 다 몰카로 찍혔다는 것을 알면, 이 여자들 모
부남준은 하연을 사무실로 끌어들인 뒤, 하연이가 믿기 힘들다는 듯 물었다. “왜 황연지를 해고한 거야?” 남준은 느긋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화상 입었잖아.” “내가 원하는 건 공평하고 공정한 처리야. 너의 독단적인 행동을 원한 게 아니라고.” “지금 상황에서 네 신분이 이미 밝혀졌는데, 그 사람들이 여전히 공평함을 믿을 것 같아?” 남준은 말하면서도 한 손으로는 비서에게 약상자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는 면봉을 꺼내 하연에게 약을 발라주려고 해서 하연의 손을 억지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말이야, 최 사장님이 손을 다쳤다면, 황연지 한 명 해고하는 걸로 충분히 배상이 될 것 같아?” 하연 남준의 농담을 무시하며 말했다. “나도 일부러 황연지에게 부딪힌 게 아니야. 첫째로, 동기도 없었고, 둘째로, 내가 굳이 적을 죽이려다 내 몸도 해치는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 누가 더 잘살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자면, 하연이 당연히 연지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총애받았을 것이다.“바로 그 동기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네가 직원을 괴롭히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거야.” 남준은 하연의 손에 약을 발라주며, 신중하게 말했다. “보통 사람들의 부유층에 대한 반감을 과소평가하지 마.” 하연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손을 빼려 했지만, 남준은 계속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듣기로는 DS그룹의 성적이 꽤 좋은데, 최 사장님의 정신이 이런 사소한 일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다니. 가족들은 확실히 너를 너무도 잘 보호했나 보군.” 하연은 그가 비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비웃지 마.” 그녀는 대답하면서 손을 뺐다. “그러니까 왜 날 찾아왔어?”남준은 물었다.“그냥 길 지나가다가 목말라서 물 한 잔 마시러 들렀어.” 하연은 억지로 핑계를 댔지만, 남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고 웃으며 면봉을 던지고 화장실로 손을 씻으러 갔다.하연의 시선은 남준의 비서에게
연지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괜찮아요, 제 잘못이에요.” 남자 직원은 바로 반발했다. “뭐가 연지 씨의 잘못이에요? 연지 씨가 뭘 잘못했는데요? 연지 씨가 피해자잖아요.” 연지는 남자 직원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조용히 말했다. “그만해요, 이분은 DS 그룹의 최하연 사장님이에요.” “최... 최...?” 남자 직원은 다시 하연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한층 낮췄고, 연지를 데리고 가려 했다. “자, 내가 널 처리해 줄게요.” 이 상황이 되니 하연은 마치 권력을 휘두르는 자, 강압적인 자로 여겨지기 시작했다.하연의 머릿속이 아파지며, 그녀는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잠깐 서봐요. 황연지 씨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 여기서 딱 정확히 말해 봅시다. CCTV를 확인하면 다 알 수 있잖아요.” 연지는 사과하며 말했다. “최 사장님, 제 잘못이에요. CCTV까지는 필요 없어요. 죄송해요, 제가 당신까지 다치게 했네요.” “너...” 하연은 더 화가 났다. ‘차라리 황연지가 맞서 싸우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무조건 고개를 숙이며 순순히 사과하니 마치 내가 진짜 잘못한 사람처럼 보이잖아.’주변의 많은 시선들이 하연에게 집중되자, 하연은 더욱더 참을 수 없었다. “그래요. 기왕 내가 날 무서워한다면... 좋아요!! 내가 마음대로 하는 게 맞다고 치자. 아무튼 CCTV는 반드시 봐야겠어요!” 멀리서 상혁이 이쪽에서 나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었다. “저쪽에선 무슨 일이야?” 원신민이 발돋움하며 말했다. “무슨 소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층은 부남준의 영역이었다. 상혁은 입을 굳게 다물고 이쪽으로 걸어왔다.연지는 불쌍한 얼굴로, 머리에 커피가 묻어 있었다. “정말 괜찮아요...” 이때, 부남준 사람들 속에서 나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야?” 하연은 남준과 마주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가 정말로 나타났다. “CCTV를 확인하면 되잖아. 확인해.”
“이건 도 잘 몰라요.” 정민의 권한은 고위급 기밀에 알 수 없었다. 하연은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증거를 정태훈에게 넘기자, 태훈이 바로 ‘까마귀’를 찾으러 갔다. 마침내 이틀도 지나지 않아 그 땅은 DS그룹의 소유가 되었다. 하지만, ‘까마귀’가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 일로 인해 정민도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었다. 하연이 정민을 다시 찾으러 갔을 때, 정민은 이미 그곳을 떠난 상태였다. 예전에 만났던 정민을 아는 ‘여자 동료’가 하연에게 말했다.“정민 언니... 고향으로 돌아갔어. 마치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도망치듯이 갔다던데. 그쪽 정민 언니의 사촌이라고 했잖아, 정말 몰랐어?” 하연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언니가 말하긴 했는데 이렇게 빨리 떠날 줄은 몰랐어요.” “정민 언니의 옛 애인 ‘까마귀’가 지금 언니를 온통 찾아다니고 있으니 빨리 도망가야지.” 하연은 그 말을 들으며 다시 한번 씁쓸하게 웃었다.“...”하연은 DL그룹 본사를 찾아갔다. 안내데스크 직원이 하연을 보고 전혀 놀라지 않으며 말했다. “최 사장님, 누구를 찾으셨나요?” 하연은 입을 열었다가 망설이며 말을 바꿨다. “부남준 상무님을 뵈러 왔어요.” 직원은 곧바로 부남준의 비서에게 연락을 취했고, 하연이는 대기실로 안내되었다. “상무님은 아직 바쁘셔서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하연은 대기실에서 부남준의 사무실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중년 남성이 있었는데, 그는 다름 아닌 바로 하연이 그날 부씨 가문 저택의 서재에서 본 부건국이었다. 부남준은 부건국에게 친절한 듯 보였지만, 부건국은 다소 기가 죽은 모습이었다. 두 사람이 무슨 말을 나누고 있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부씨 가문 가족이 부남준을 이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그의 권력이 점차 돌아오고 있음을 의미했고, 부남준이 DL그룹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시선을 돌린 하연은
하연은 상혁이 자신을 도울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얼굴에 장난기 어린 표정이 떠올랐다. 마치 못된 장난을 치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우리 졸업 날짜가... 며칠이더라?”그 말에 상혁의 평온했던 표정이 순간 무너졌다. 얼굴에 잠시 분노가 스쳐 갔다. 하연은 그의 반응을 보며 장난기가 잦아들었다.“농담이에요. 나도 당연히 기억하고 있어요.”하연은 그제야 상혁을 달래듯 메모장을 받아 들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녀의 미소는 긴장감으로 가득했던 순간을 잠시나마 밝게 비추는 듯했다.“내가 한명준의 선물을 받을 뻔했어요. 하지만 다행히 우리 넷째 오빠가 있잖아요. 오빠가 내가 고생하는 걸 두고 보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하연은 이미 이득을 본 주제에 오히려 얄밉게 굴며, 일부러 두 사람이 감정이 깊어지던 때 사용했던 애틋한 호칭으로 상혁을 불렀다.상혁의 몸도 순간에 마치 굳혔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연은 그가 준 땅이 절대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사람을 시켜 조사해 보았다. 그런데 조사 결과, 그 땅은 이 도시에서 악명 높은 깡패, 별명 ‘까마귀’의 손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연은 예상치 못한 결과에 미간을 찌푸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땅이 그렇게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을 줄은 몰랐다.정태훈이 말했다. “그 사람, 까마귀는 굉장히 위험한 인물입니다. 그 땅이 값어치 있다는 걸 알고 계속 내놓지 않으려 합니다.” 상혁이 준 주소는 ‘까마귀’의 애인의 집이었다. 그녀는 눈에 띄지 않도록 소박한 옷으로 갈아입고 홀로 그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도착해 보니 그곳은 마치 사창가 같은 장소였다. 남녀가 뒤섞여 있었고, 코를 찌르는 불쾌한 냄새가 가득했다.“정민 언니 만나러 왔어요.” 길가에 서 있던 여자는 하연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정민 언니? 무슨 일로 찾는 거야?” “저는 정민 언니의 친척입니다. 좋은 거래를 소개해 드리려고 왔어요.” 하연은 장난스럽게 눈을 깜빡였
상혁은 한 손으로 단추를 잠그며 말했다. “사실 꽤 좋은 거래였어. 아쉽네.” 이 순간, 그가 사업을 하는 사람의 태도로 하연의 말을 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었다. 하연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말문이 막힌 채 그대로 서 있었다. 하연의 고통스러운 모습이 상혁의 눈에 잠깐 비쳤는지, 결국 그는 약간의 연민을 보였다. “부남준을 만났어?” 하연이 고개를 들었다. “네 몸에서 부남준이가 좋아하는 남자 향수가 나네. 오늘 부남준이 정다영 씨와의 만남은 순조로웠나?”하연은 상혁이 모든 걸 이미 손에 쥐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설마 당신이 주선한 거였어요?” 상혁이 모호하게 미소를 지었다. “정다영 씨는 재능 있는 남자를 좋아해. 이 사회에서 부남준은 정다영 씨에게 치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지.” 하연은 드디어 기억났다.“정다영의 아버지가 지금도 DL그룹의 이사였고, 정다영과 부남준의 결혼은 부남준에게 득이 될 뿐이야.” “왜 굳이 스스로 적을 만들어요?”상혁은 하연의 다리를 힐끔 보았다. 그녀는 아직 발목이 완전히 낫지 않은 듯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까지 누가 적인지 알 수 없어.”하연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 생각에는 정다영이 부남준과 결혼하면 두 집안이 단단히 결속되고, 상혁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결국 가족의 지지가 없이는 부남준을 막아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혁은 하연을 지나쳐 서류를 들고 검토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늦었어. 이제 돌아가.” 그는 밤새도록 잠을 잤고, 이미 시간이 늦었지만 하연은 움직이지 않고 의자에 주저앉아 무언가를 깊이 생각했다. 상혁이 이미 계획을 세운 것 같다면, 하연도 자신이 정다영을 굳이 경고할 필요가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일보다 더 급한 문제가 있었다. 조승원이 계약을 취소했고, 지금 하연에게 남은 시간에 새로운 땅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손이현은 하연이가 굴복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그녀는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상혁이 바로 하연을 밀어냈다. “몸이 더럽고, 냄새도 안 좋으니, 나가라.” 상혁이 자신에게 말하듯 말했다. “전에 당신도 나를 이렇게 많이 챙겨줬잖아요.” 하연은 고집스럽게 상혁의 곁으로 다가갔다. “술주정뱅이.” 상혁은 그녀의 밝은 눈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원신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부에 있는 원신민을 불렀다. 하연이 다시 상혁의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원 비서는 이미 갔어요. 여기엔 나만 있어요.” 상혁은 핸드폰을 집어 들고 하연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원신민은 말했다. [대표님, 오늘 검토하셔야 할 서류는 모두 최 사장님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우선 충분히 쉬세요. 정규인 문제는 해결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상혁은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씻기 시작했다. “정규인은 떠났나요?” [새로운 사업을 받았고, 이익을 얻었으니 당연히 떠났습니다. 오후 비행기로 떠났습니다.]“고경수의 딸이 임신한 거 아니었나요?” [같이 가지 않았습니다. 정규인은 그렇게 위험을 무릅쓸 용기가 없었습니다.] “확실한가요? 그 아이는 누구의 아이죠?” [정규인의 아이입니다. 검사 결과는 최 사장님이 드린 서류에 있습니다.]상혁은 씻고 나와 머리가 한결 맑아졌다. 문을 열었을 때, 하연은 발코니에 서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는 서류에서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승원아, 도대체 왜 갑자기 우리와 계약 해지하려고 한 거야?” 하연은 정태훈에게서 연락받았다. 승원이 일방적으로 DS그룹과의 계약을 취소했다는 소식이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하연은 마치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승원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계약 취소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면서, 그동안 쌓아온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나도 분명히 말했잖아. 이건 우리 둘 사이의 계약이고, 다른 사람은 상관없어.”[알아, 하지만 존이가 예전에 내 목숨을
하연이는 멀리서 송혜선이 정다영을 칭찬하는 소하연 은은하게 들렸다. 그 내용은 대부분 과찬이었다. “졸업 후에 이곳에 남을 계획인가요, 아니면...” “우리 정씨 가문은 외동딸이니까, 당연히 곁에 두겠죠.” 하미주는 단호했다. 다영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망설였다. 그녀는 외부 세상을 보고 싶으며 큰 야망을 키웠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은 단순히 집에서 기다리며 맞선을 보거나 결혼하는 것 이상이었다. “그거 좋네요. 다영 씨, 남준은 계속 여기에 익숙하니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남준에게 연락하면 돼요.” “그렇게 하면 민폐겠죠.” 하미주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송혜선은 다영이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고, 이미 마음속으로 계산을 끝냈다. “무슨 걱정이세요, 아이들끼리는 공통된 언어가 있는 법이잖아요. 우리 남준은 기꺼이 도와줄 텐데, 다영이는 어때요?” 다영은 조금 전 남자에게서 느꼈던 은은한 향기를 떠올리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남준 오빠가 귀찮아하지 않는다면, 저도 기꺼이 좋겠어요.” 그 말을 들은 송혜선은 매우 만족스러워하며 ‘보시죠’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미주는 딸이 의외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고 놀란 듯했다. 그녀는 딸이 반항심 강한 줄 알았지만, 남준에게 마음이 있는 것을 보고 조금 의아해했다. 화분 뒤쪽에서 하연의 핸드폰이 ‘딩’소리를 내며 울렸다. 하연 고개를 들고 말했다. “남준 오빠.”남준은 그 소리에 흠칫하며 당황했다.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볼게요. 남준 오빠는 여기서 마음껏 즐겨요.” 하연은 착하게 미소 지으며 가방을 들어 올리고는 가볍게 돌아섰다. 남준이가 따라올지 신경 쓰지 않은 듯,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하연 이미 다영의 연락처를 손에 넣었고, 또 다른 소식도 받았다. 즉, 오늘 상혁이 바로 옆 식당에서 접대 중이라는 것이었다. 전날 과음한 그는 방에 묵고 있었고, 아직도 깨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모든 정보를 준 사람은 바
“우리 남준이는 타고난 재능이 좋지 않으니,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당연해요.” 송혜선의 말에 하미주는 더욱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 우리 집안이 혜선 사모님의 사정을 잘 몰라서 소홀히 했던 점이 있네요.” “무슨 말씀이세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남준은 다영을 데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그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다영은 계속 남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다음에 제가 밥을 살게요. 연락처 좀 알려주시겠어요?” 그제야 남준은 그녀를 한 번 보고, 비서에게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다영은 멈추지 않고 말했다. “제가 남준 씨의 개인 번호를 받고 싶어요.” 남준은 핸드폰을 다시 집어넣으며 말했다. “저는 전화번호를 저장하는 습관이 없어요.” “제가 저장할게요.” 다영은 긴장했지만, 동시에 솔직하고 대담했다. 남준은 벽에 기대며 숫자를 읊어주었다. “다영 씨,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해 주세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남준은 다영에게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같이 안 가요?” “회사에 일이 있어서 급히 돌아가야 해요.” 그제야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엘리베이터에 탄 다영은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남준을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봤는데, 갑자기 번호를 누르며 말했다. “그런데, 남준 씨의 그 작품은 정말 멋졌어요. 웅장하면서도 제가 그림 안에 서글픔과 고독이 느껴지더군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남준은 잠시 멈칫하며 그녀를 다시 보았다. 그의 감정은 가려졌지만, 차분히 대답했다. “다영 씨께서 제 작품을 감상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다른 작품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요?” 다영의 눈빛에는 이미 애정이 담겨 있었다. “제 번호를 이미 받지 않았나요?” 다영은 거절당하지 않았다는 것에 기뻐하며 환하게 웃었다. 하연은 이 호텔의 VIP 회원이었기 때문에, 호텔 지배인이 직접 안내했다. “정다영
“설령 제가 왕씨 가문을 하연 씨에게 준다고 해도, 하연 씨는 받지 않을 거잖아요.”이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남산 땅은요? 당신이 왜 제가 그걸 받을 거라고 생각하죠?”짧은 침묵이 흘렀다.하연의 눈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자신이 겨우 얻어낸 또 다른 부지를 이현이 몇 마디로 취소시켜 버렸다.“앞으로 제 일에 끼어들지 마세요.”하연은 차갑게 말하며 다시 돌아가 가방을 집어 들었다.“우리 회사와 계약 해지를 한 계약서라도 썼나?”승원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계약서도 없으니, 우리 계약은 그대로 진행할 거야. 내가 보증금도 곧바로 입금할게. 승원아, 협력은 우리 둘이 한 것이지, 다른 사람이 끼어들 자격은 없어. 잘 기억해.”하연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고, 그 분노는 차갑고 단호했다.그녀는 가방을 들고 단호히 자리를 떠났다.승원은 멍한 표정으로 한쪽에 앉아 있는 이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봐, 진심이야? 정말로 하연을 여자 친구로 만들려고?” 오랜 침묵 끝에 이현은 조용히 대답했다. “응.” 승원은 놀란 눈으로 이현을 바라보았다. “네가 농담하는 줄 알았어. 너 정말 하연이가 누구인지 알기나 해? 최씨 가문이 그렇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집안이라고 생각해? 게다가 하연의 전 남친은 세계 50대 기업의...” “부상혁 말이지, 알아.” 이현은 아주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승원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현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아까 먹다 남긴 음식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마치 굳은 결심이 담긴 듯한 모습이었다. “난 그저 과거의 후회를 만회하고 싶을 뿐이야. 지금 어떤 장애물도 문제가 되지 않아.” ...‘미녀4총사’의 톡방이 톡을 끊임없이 계속 문자를 올리고 있었다. [그 사람이 남산 땅을 가져왔다는 건 정말 큰 공을 들였다는 의미야. 하연아, 지금 그저 앉아서 득을 보면 되는 건데, 왜 안 받아?]여은이는 전형적인 사업가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