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 그룹, 기항그룹과 HT그룹 이 세 기업의 3자 간 협력의 큰 골자가 확정되었고, 결정된 계약 내용에 더 이상 이의 제기 없이 세부 사항 조율 중이며, DS그룹과 HT그룹은 각자 자기가 맡은 사업의 진행 내용과 일정을 공유하고 확인하도록 결정되었다.그 누군가의 관리 소홀로 도중에 작은 실수라도 발생하면 곧바로 수억 원의 손실로 연결된다.하연은 사업 진행 일정표를 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모든 협력 항목에 우리 DS그룹이 제시한 인원들이 추가되지 않았는데 왜죠?”세 회사의 전략 공유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협력 문건에는 기항그룹과 HT그룹 간의 상호 정보 공유는 명시되었지만 DS그룹만 유독 빠져 있었다.“이 프로젝트들은 이전부터 모두 HT그룹과 기항그룹이 진행해오고 있었습니다. DS그룹의 인원이 추가되어 일을 진행하면 자연히 업무 진행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두 측이 쭉 진행해서 결과가 나오면 그때 공유할 겁니다.”이 말을 하는 사람은 기항그룹에서 파견된 우지나 상무였다. 40세 전후반의 여성으로서 완벽한 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속마음은 그렇지 않고 겉으로만 웃고 있으니 마치 보톡스를 맞은 것처럼 표정이 어색했다.“아, 그래요?” 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우지나의 말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하연은 프로젝트서를 덮고 엷게 웃었다.“그럼 우 상무님은 계약을 체결한 뒤에 우리 측이 나노 로봇의 핵심 기술을 확인하려고 했을 때 왜 볼 수 없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우지나는 물컵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이 문제에 대해 이미 할 말이 준비되어 있었다.“이런 일들은 대표님이 돌아오시면 직접 이야기하실 문제입니다. 만약 실수로라도 기술 유출 문제가 발생하면 저희 기항그룹에 손해가 막심하거든요.”우지나는 흘끔 옆을 보고 서준이 전혀 입을 열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마음을 놓았다.오늘 이 소동에 서준이 혹시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낼까 걱정하지는 않았다. 현재 서준의 이혼문제로 세상이 떠들썩하기 때문이었다. 서준이
임원 이하의 실무 책임자들은 더 이상 하연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 밥그릇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최 사장님, DS의 직원들 지금 즉시 투입하실 수 있고, DS쪽에서 온 분들과는 모든 데이터와 자원을 공유할 겁니다!”“프로젝트에 관한 자료들 지금 바로 DS그룹 관계자에게 보내 드릴게요!”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한 시간 내에 마무리하세요. 이게 맘에 안 드는 분은 스스로 떠나시면 됩니다.”책임자들은 연달아 하연의 말에 대답하면서 회의 중이라는 사실도 망각하고 바쁘게 전화를 걸어 부하 직원들에게 재빨리 일을 처리하도록 배치했다. 모두 우지나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곤란하고, 안 하는 것도 불편했다.“우 상무님은 다른 사람 이야기 듣는 거 참 좋아하시나 봐요.”하연은 눈을 내리깔고 비웃듯이 말했다.“내가 단지 예쁜 얼굴 덕분에 날개 달고 이 자리까지 올라온 줄 알아요? 당신이 마음대로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그럴 리가요. 다 오해니까 대표님은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하연의 말투에 당해낼 재간이 없자, 우지나가 완전히 태세를 전환하여 하연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했다.하연은 의자에서 일어나 얼굴을 돌려 회의에서 아무 잘못도 없는 서준 쪽을 바라보았다.“한 대표님, 나한테 덤비는 사람들 어떻게 하는지 봤죠? 그럼 저는 이만 갑니다.”하연은 서준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가는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문을 밀고 나갔고, 정기태는 하연의 서류와 가방을 챙겨 들고 그 뒤를 따랐다.엘리베이터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뒤에서 차분하고 힘찬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서준이 뒤따라 나왔다.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하연은 서준과 함께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한서준의 희미한 목소리가 엘리베이터 안에 울렸다.“언제 이렇게 강하게 상대를 압박할 줄 알게 된 거지?”“항상 그랬어요.”“최하민이 이렇게 가르쳤나?” 서준은 낮은 목소
“빨리 기사 내려라.”서준은 눈살을 찌푸렸다.“그 자리에 너 끝까지 안 있었잖아,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이 아니었다고.”태현은 그만두었다.“뭐가 아니야, 최하연, 그런 여자 맞아.”“네가 그때 나를 안 말렸으면, 틀림없이 그 간사한 불륜 커플에게 다가가서 귓속말로 그들에게 예의와 염치가 뭔지 똑바로 가르쳤을 텐데!”태현은 당시 서준의 살벌한 눈빛 때문에 자기에 대한 의리가 1도 없었음을 알게 됐고, 말을 하면 할수록 화가 났다.“최하연이 승마장에서 그렇게 나를 놀리고 협박까지 했잖아! 아무래도 네티즌들에게 실체를 다 까발려야겠어.”“그래? 너 먼저 귀싸대기 한 대 크게 맞겠다.”하연의 차가운 목소리가 태현의 귀에 들어가자 그는 또 깜짝 놀라서 펄쩍 뛰었다.“어떻게 내가 가는 데마다 다 네가 있는 거야!” 태현은 몸이 떨리고 소름이 끼쳤다.혹여 나쁜 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들키는 일도 드물다. 그런데 매번 이렇게 험담을 할 때마다 당사자가 듣고 있다니 재수가 정말 없다.하연은 팔짱을 끼고 차가운 표정으로 뒤에 서서 옆의 여은에게 말했다.“좋다. 더 알아볼 것도 없네. 당사자가 바로 앞에 있잖아.”예나는 태현의 얼굴에 대고 삿대질을 하며 욕설을 퍼부었다.“우리 자기를 계속 괴롭힌 게 너였구나! 너 이 새끼 오늘 혼 좀 나보자!”하연은 예나를 막고 휴대전화를 꺼내 몇 번 조작해서 태현을 향해 휴대전화를 흔들어 보였다.“네가 이리저리 여자들을 껴안고 있는 사진을 방금 네 아내에게 선물로 보냈어.”태현은 즉시 옆에 끼고 있던 여자들을 놓고 큰 소리로 외쳤다.“최하연, 너 고소할 거야!”“와이프 친정이 그렇게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너는 너희 집에서 딱히 별 볼일 없고. 네 와이프가 네가 밖에서 이렇게 즐겁게 노는 것을 안다면, 이 얘기가 나오지 않겠어?”태현은 입이 댓 발 나왔다.“무슨 헛소리야! 내 와이프가 네 말 믿을 것 같아?”초조한 마음에 휴대전화를 꼭 쥐고 있는데 바로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몇 초간 목숨이
“태현이가 고의로 그런 건 아니야. 너에 대해 오해해서 그런 거니까 더 이상 따지지 마.”실망스러운 마음이 컸던 서준은 하연의 발걸음을 따라잡고 하연의 팔을 잡았다.하연은 힘껏 서준의 팔을 뿌리쳤다.“한 대표님은 정말 얼굴도 두껍네요. 무슨 권리로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죠?”서준은 하연의 좌우에 적의를 띤 여은과 예나를 보았다.“너는 마음이 태평양 같아서 안 된다니까. 우리가 친구처럼 잘 이야기해 볼게.”하연은 무신경하게 웃었고, 치켜뜬 눈에는 무관심이 가득했다.“나한테 전 남편은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어. 이혼하고 친구가 된다는 건 말도 안 되지.”하연이 이런 식으로 냉정하게 선을 긋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서준은 여전히 담담히 대처할 수 없었다. 서준은 일부러 냉담한 척 말했다.“사과 성명은 내일 아침에 발표할 거고, 실시간 검색어는 내가 곧 내리게 할 겁니다.”“여기서 그럴듯하게 관대한 척할 필요는 없어요. 저 사람들이 나에게 이따위로 대하는 것은 모두 한 대표 묵인하에 된 것 아닌가요?”“내가?”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하연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운이 가득했다. 찬란한 눈동자는 한서준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당신이 매번 나를 무시하는 그 태도 때문에 내가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마음대로 짓밟아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죠. 이제 와서 왜 갑자기 좋은 사람인 척인가요?”“당신 어머니와 여동생처럼 나를 대놓고 무시하는 것보다 안태현에게 더러운 물을 뿌리는 것이 차라리 더 낫죠.”서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한씨 집안에서 서준은 여태껏 하연의 처지에 관심을 둔 적이 없어서 겉으로는 가족들이 별 갈등 없이 잘 지낸다고 생각했다.서준은 하연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둘은 부부 사이였지만 내내 자녀가 없었다. 그래서 서준의 어머니인 이수애는 줄곧 이 일을 트집 잡아 사사건건 하연을 괴롭혔다. 그러나 하지만 서준은 단 한 번도 하연의 입장에서 말한 적이 없었다.게다가 형제들이 항상 자기 앞에서 하연이 여
나운석이 이렇게 내뱉자 안에 앉아있던 커플들이 모두 보고 작은 소리로 흥분하여 청혼에 성공했는지 각자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하연과 운석의 반대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안태현과 그의 아내가 앉아 있었다.태현은 요 며칠 동안 간신히 아내를 달래서 함께 밖에서 저녁을 먹자고 해서 나왔다.그는 커플 전용식당에서 하연을 발견하고는 하연의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하고 휴대전화를 꺼내 운석의 뒷모습 사진을 찍어 서준에게로 전송했다.그러고 나서 한 마디 덧붙였다.[야, 네 전처가 또 새로운 사냥감을 찾았어. 몸매를 보니 꽤 멋지네.]회의 중이었던 서준은 메시지를 받고 얼굴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관자놀이가 불룩거렸다. 휴대전화를 탁자 위로 탁탁 신경질적으로 두드려 회의에 참석하고 있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그는 의자 등받이에 걸린 외투를 들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여러분은 계속 회의 진행하십시오. 저는 일이 좀 있습니다.”곧이어 문을 밀고 떠나 식당으로 바로 달려갔다.운석은 몸을 곧게 펴고 정색하며 말했다.“여신님, 이전에 내가 대중 앞에서 고백한 행위는 확실히 무모했습니다. 나에 대한 인상이 더 나빠졌겠어요. 여기서 지금 사과드릴게요.”“사과받았고, 이제부터 안 그러면 됩니다.”그의 두 눈은 여느 때보다 진지하게 하연을 보고 있다.“하지만 당신에 대한 제 마음은 진심이라는 거 알아주세요.”“경매장에서 하연 씨의 몇 마디 말로 누군가가 거액을 들여 팔찌를 사게 했던 당신의 그 스마트함에 반했습니다.옥상에서 바람을 맞으며 눈물을 흘리는 하연 씨 모습 보면서 많이 가슴 아팠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내가 여자의 마음을 잘 알고 주변에 늘 여자들이 많은 것 같지만 그날 밤처럼 단 한 사람 마음이 신경 쓰인 건 처음이에요.나중에 B시로 다시 돌아왔을 때, 무대에서 하연 씨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완전히 빠져서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었어요.”하연은 운석의 가슴을 후비는 고백을 듣고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서준은 바짝 마른 입술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한 마디를 뱉었다.“보면 모르겠냐?”“하연 씨?” 나운석은 입을 크게 벌리고 하연을 가리켰고 또 서준을 가리켰다.“너?”결국 다시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했다. “나는...”“이게 다 무슨 일이야!”이런 어이없는 상황에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운석은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았다. 여신님을 위해 받아들여야 할 사실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태현은 코를 만지작거리며 어리둥절한 운석 옆으로 다가왔다.“운석아, 친구의 아내를 속이면 안 되지. 너는 이번에 일을 너무 크게 벌였어.”운석은 갑자기 화가 났다.“이혼했다며! 이제 자유롭게 연애해도 되는 거 아냐?”운석이 한서준을 밀고 건성으로 말했다.“하연 씨 처음 알았을 때 네 전처인 줄 몰랐다.”하연은 침착하게 서준의 곁을 지나쳤다. 그러자 뒤에서 싸늘하고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냥 설명하면 되지 않아?”하연은 차갑게 웃으며 물었다.“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이런 질문을 하는 겁니까?”하연은 말을 마치고 쿨하게 자리를 떠났다.“가지 마세요! 여기에 여기 세 사람과 무슨 일인지 같이 이야기해보고 오해도 풉시다.” 운석은 하연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서준은 어두워진 얼굴로 떠났고 안태현은 서준의 뒤를 쫓아갔다.운석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너무 혼란스럽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이튿날 아침, 운석은 비서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하연의 사무실로 뛰어들었다.하연은 눈을 들기 귀찮아서 서류에 코를 박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뭐 하러 나한테 왔어요? 좋은 친구들은 운석 씨한테 손가락질 안 하나 봐요?”“밤새 못 자고 생각해 봤는데, 여전히 하연 씨를 포기할 수 없어요.” 운석은 꼿꼿이 서서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그리고... 하연 씨에 대한 나의 감정이 더 확실해졌어요!”하연은 어이가 없었다.“이 정도로요?”하연의 기억 속의 이 사람은 천박하기 그지
[이런 불효 자식! 네 눈앞에 있는 사람이 바로 하연이잖아! 너와 정혼한 HT그룹 외동딸 최하연!]운석의 아버지 나훈철 회장은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큰 목소리로 운석에게 고함을 질렀다.나훈철이 운석을 B시로 발령을 내주었던 것은 운석이 하연과 가깝게 지냈으면 하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민은 원래 나훈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절대 운석에게 하연이 누구인지 직접 알려주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운석이 DS그룹에 출근할 수 있도록 했다.‘이런 천하에 막돼먹은 아들놈이 여전히 눈치 없이 어른의 면전에서 보란 듯이 약속을 깨고, 아직도 하연이를 못난이라고 큰소리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다니!’나훈철은 혈압이 오르는 것을 느꼈고, 화면 밖으로 나가 운석을 직접 따끔하게 훈계하고 싶었다.운석이 일어서며 사람의 이목을 끄는 매력적인 눈으로 하연을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운석은 정말 기억 속의 못난이와 눈앞에 있는 자신의 아름다운 여신이 동명이인이 아닌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내가 추앙하는 나의 여신님이... 내가 죽어도 결혼하고 싶지 않았던 그 혼인 상대였다니!”운석은 그 자리에서 펑 하고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었다. “아니야, 이건 거짓말이야. 사실일 리가 없어!”운석은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을 한 후,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하연은 운석을 보면서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하연은 태블릿은 놓아둔 채, 혼자 사무실에서 오랫동안 웃었다.군자가 원수를 갚는 데는 10년도 늦지 않는 법이었다.‘저 원수가 지금처럼 겁에 질려 정신없는 모습을 보니, 그야말로 1등짜리 복권에 당첨된 것보다 훨씬 기쁘고 신나네!’때마침 하민에게 전화가 걸려왔다.“큰오빠, 저한테 무슨 일 있으세요?” 최하연은 말투가 여유로웠다.[너는 파혼을 당했으면서 이렇게 큰일에 웃음이 나오니?]전화기 너머의 하민은 자신이 아끼던 여동생이 뜻밖에도 이렇게 운석에게 외모 때문에 미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약간 화가 났다.“물론 즐겁
서영이 어색하게 웃었다.“그럴 리가요. 전 얼마 전까지 외국에 있었어요.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더니,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은 믿지 마세요.”이수애 여사가 서준의 만류를 무릅쓰고 몰래 시아버지를 통해 일을 처리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쯤 서영은 감옥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체조나 하는 신세였을 것이다.하연이 차갑게 서영을 힐끗 보았다.“감옥에서 나왔으면 개과천선해서 착하게 살아야지. 내 숍을 또 부수고 행패를 부리면 이번에는 초범이 아니라 재범으로 감옥에 들어가는 건데 겁도 없어. 너 알아서 해, 나는 모르니까.”“나 감옥에 안 갔다고! 귀먹었어?”서영은 참지 못하고 하연에게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가다가 예나에게 가로막혔다.“지금 2 대 1인데, 몸 싸움하게?”서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눈앞의 두 사람을 한꺼번에 상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분해서 씩씩거리고 이를 갈며 말했다.“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너희들 숨기에는 이미 늦었어!”한서영은 한서준에게 절대 먼저 나서서 하연을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었다.“너 겁나는 거 다 알아. 우리 자기는 너 같은 계집애가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예나가 의기양양하게 하연의 어깨에 기대어 말했다.서영은 마음속으로 화가 나서 두 주먹을 꼭 쥐었지만 화풀이할 만한 대상이 없었다. 조용히 같이 왔던 일행들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직원들은 서영과 함께 왔던 명문가 아가씨들이 이미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고, 아무도 서영의 연락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만 전할 뿐이었다.그 작은 무리로부터 배척당했다는 수치심이 들자, 서영은 여전히 분개한 눈빛으로 아직 매장 안에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하연은 예나를 도와 팔찌 몇 개를 착용해 보았는데 모두 별로 맘에 들지 않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두 고객님, 혹시 팔찌 하나 더 안 가져가셨나요?” 직원의 눈은 친절한 거짓 웃음을 지었지만 의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뒤에 다른 직원 한 명이 달려왔다.“확실히 한 점이 부족한데, 직접 찾아
하연은 잠깐 당황했지만 곧바로 상혁의 귀에 속삭이듯 다가가며 말했다. “아직도 반응이 있네, 부 대표님은 아무나 거절하지 않는 건가요? 오늘 만약 다른 여자가 여기 앉아 있었다면...” 그녀의 농담과 향기가 귀를 간지럽히자, 상혁은 잠시 고개를 돌려 미묘하게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다른 사람은 없을 거야.” “그럼 나만?” 하연의 말에 상혁은 약간 무너지는 듯했지만 이내 그녀를 밀어내며 대꾸했다. “나의 의미는, 너도 아니야.” 하연의 얼굴에 순간 실망이 떠올랐다. 그녀는 입술을 내밀며 차 안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상혁은 잠시 침묵하며 그가 느끼던 생리적 반응이 가라앉길 기다린 후 차분히 말했다. “내려.” “당신은 의사한테 가는데, 내가 왜 내려야 해요?” “다시 붕대 싸매.” 상혁은 이 말을 던지며 차에서 내렸다. 하연도 그제야 그 의미를 깨닫고는 피식 웃으며 따라나섰다.F국에 돌아온 후 상혁의 위장병이 계속 재발하고 있었다. 불규칙한 생활과 식사가 병을 악화시켰고, 의사는 그의 상태를 보고 좋지 않은 얼굴을 했다. “부 대표님, 몸이 재산입니다. 이렇게 무리하다가는 일이 끝나기도 전에 몸이 망가집니다.” 하연은 밖에서 간호사가 다시 붕대를 감아주는 동안 그 말을 들었다. 상혁은 숨을 고르며 가볍게 대답했다. “제 몸 상태는 제가 잘 알아요. 약만 먹으면 돼요.”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계속 잔소리를 했다. “위장은 쉬게 해야 하는데, 아플 때 약을 먹는 건 이미 늦은 겁니다. 평소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혹시 비서도 없으십니까?” 상혁도 많은 비서가 있긴 했지만, 바쁜 스케줄 때문에 제대로 된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 비서가 가져다준 음식은 몇 시간 동안 방치되곤 했다. 오늘도 병원에 온 것은 원신민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었다.의사가 잔소리를 멈추자, 상혁은 미세하게 당황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의사는 밖을 힐끗 보며 한마디 더 덧붙였다.“밖에 계신 아가씨는 대표님의..
“이 정도의 약점을 부남준이 쉽게 너를 놓아줄 하연 없을 텐데?” “그건 제 추측일 뿐이에요!” 연지는 급히 상혁의 다리를 붙잡고 말했다. “그 재무 보고서에는 부남준과 다른 이사들, 특히 정규인과의 결탁을 증명할 수 있는 많은 세부 사항이 있어요.” 상혁은 정규인의 이름이 나오자 살짝 눈을 들었다. “어디에 있지?” “제 금고 안에 있어요.” “원신민.” 원신민이 재빨리 다가와 연지를 일으켜 세웠다. “내가 같이 가서 가져오지.” “대표님...” 상혁은 허락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연지의 머리카락을 살짝 잡아들며 라이터를 켰다. 불길이 일면서 머리카락이 재가 되어 날아갔고, 연지는 공포에 찬 표정을 지었다. 원신민이 연지의 입을 재빨리 막아 그녀가 소리 지르지 못하게 했다. 다행히 머리카락은 한 움큼만 탔을 뿐이었다. “알다시피, 황연지, 날 배신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겠지.” 연지는 공포에 질린 눈물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하연은 다영과 헤어진 뒤 자신의 차로 걸어가던 중, 갑자기 한 차량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는 한 발짝 물러섰다. 마치 상혁이 항상 타고 다니고 있는 차였다. 하연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차 문이 열리자 운전기사가 내려왔다. “부상혁 대표님께서 모시길 원하십니다.” 하연이 입술을 굳게 다문 채로 검게 칠해진 방탄유리를 바라보았는데, 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차 안은 향이 피워져 있었고, 정신을 안정시키는 듯한 상쾌한 향이었다. 남자는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으며, 그의 잘생긴 얼굴이 희미한 조명 속에서도 돋보였다. “무슨 일로 부르셨나요?” 하연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다음 순간, 손목이 붙잡혔고, 그녀는 한순간에 상혁의 품에 안겨버렸다. 남자의 강한 향이 공기 중에 가득 퍼졌다. 그러자마자 차가 출발하면서 뒤로 밀리는 힘 때문에 하연은 더욱 상혁의 가슴에 밀착되었다. 상혁은 하연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눈을 떴다. “내 회사
하연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 다영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최씨 가문은 혼인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후손들이 영원히 번영할 수 있는 가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상혁도 역시 그런 혼인의 필요가 없었다. 부남준은 달랐다. 그는 차남이었고, 어머니 집안의 지원이 없었기에 혼인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다영에게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최하연 씨, 만약에 남준 씨를 좋아하지 않으신다면 거리를 두세요. 괜한 오해를 피하려면 말이에요.” ‘이미 오해는 깊어진 것 같아.’하연은 무력하게 생각했다. ‘내가 지금의 문제는 부남준이 나랑 거리를 두지 않으려 한다고 말할 수도 없잖아.’“정다영 씨의 뜻은 이해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으니, 조언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미래는 정다영 씨가 스스로 잘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하연이 최대한 체면을 유지하며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부남준은 그렇게 겉보기만큼 단순한 사람이 아닙니다.” “단순하지 않다면 오히려 더 좋아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여자들은 강한 남자에게 끌리기 마련이다. 부남준의 성격을 마주할 때마다, 다영 역시 어느새 그의 매력에 빠져들고 말았다.둘은 주차장의 동남쪽 모퉁이에서 발생한 작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여자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목에는 끔찍할 정도로 붉게 번진 화상 자국이 있었다. 남자는 차 안 뒷좌석에 앉아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그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너를 시켜서 덫을 놓았냐?” “아무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황연지가 흐느끼며 대답했다. “저는 그저 대표님과 최 사장님의 소문을 들었고, 오랫동안 지시를 받지 못해 불만이 쌓였을 뿐이에요. 그래서 일부러 덫을 놓고 복수하고 싶었던 거예요.” 이를 듣고 상혁은 고개를 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하연의 몸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서로의 체온이 맞닿았고, 한쪽은 차갑고, 다른 쪽은 뜨거웠다. 하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내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남자야, 네 그림과는 전혀 상관없어.” “그리기가 두려운 거야?” 남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그림 쪽으로 밀어붙였다. “그리기 두려우면, 내가 대신 그려줄까?” “날 놔!” 하연은 힘을 주어 저항하다가 잉크병을 쳐서 넘어뜨렸고, 남준은 즉각 그녀를 보호하려 하며 둘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다. 잉크는 그의 옷에 쏟아졌다. 하늘이 깜짝 놀라 숨을 들이마셨다. “상무님...” 그와 동시에, 문밖에서 낮은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연은 본능적으로 돌아보았고, 그곳에 서 있는 정다영을 보았다. 정다영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남준 씨...” 남준은 다영을 보자마자 안색이 순간에 어두워졌다. “다영 씨는 여기 왜 왔어요?” 그는 마치 무언가 방해받은 것처럼 짜증이 난 표정이었다. 다영은 선물을 들고 있었다. “이거 몸에 좋다고 우리 어머니가 남준 씨도 드셔보라고 하셨어요.”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그녀가 조심스레 선물을 내밀었다.사실 이 핑계는 다영이가 둘만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 준비된 것이었지만, 자신이 들어왔을 때 다른 여자가 남준과 친밀한 화면을 목격한 것을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필요 없어요. 그냥 돌아가요. 이 비서, 정다영 씨를 집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려.” “저... 남준 씨...” 다영은 말끝을 흐리며 떠나기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다. “남준 씨, 이분은 누구세요?” 하연은 남준과 엮이기 싫어 얼른 그를 밀어내고는 빠르게 나와서 말했다. “정다영 씨, 우리 나중에 개인적으로 이야기하자.” 하연이는 다영을 데리고 나가려고 했지만, 다영은 움직이려 하지 않고 눈물을 글썽이며 남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준은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나도 이따가 회의가 있어요. 먼저 옷을 갈아입고 갈
부남준은 하연을 사무실로 끌어들인 뒤, 하연이가 믿기 힘들다는 듯 물었다. “왜 황연지를 해고한 거야?” 남준은 느긋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화상 입었잖아.” “내가 원하는 건 공평하고 공정한 처리야. 너의 독단적인 행동을 원한 게 아니라고.” “지금 상황에서 네 신분이 이미 밝혀졌는데, 그 사람들이 여전히 공평함을 믿을 것 같아?” 남준은 말하면서도 한 손으로는 비서에게 약상자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는 면봉을 꺼내 하연에게 약을 발라주려고 해서 하연의 손을 억지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말이야, 최 사장님이 손을 다쳤다면, 황연지 한 명 해고하는 걸로 충분히 배상이 될 것 같아?” 하연 남준의 농담을 무시하며 말했다. “나도 일부러 황연지에게 부딪힌 게 아니야. 첫째로, 동기도 없었고, 둘째로, 내가 굳이 적을 죽이려다 내 몸도 해치는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 누가 더 잘살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자면, 하연이 당연히 연지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총애받았을 것이다.“바로 그 동기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네가 직원을 괴롭히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거야.” 남준은 하연의 손에 약을 발라주며, 신중하게 말했다. “보통 사람들의 부유층에 대한 반감을 과소평가하지 마.” 하연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손을 빼려 했지만, 남준은 계속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듣기로는 DS그룹의 성적이 꽤 좋은데, 최 사장님의 정신이 이런 사소한 일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다니. 가족들은 확실히 너를 너무도 잘 보호했나 보군.” 하연은 그가 비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비웃지 마.” 그녀는 대답하면서 손을 뺐다. “그러니까 왜 날 찾아왔어?”남준은 물었다.“그냥 길 지나가다가 목말라서 물 한 잔 마시러 들렀어.” 하연은 억지로 핑계를 댔지만, 남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고 웃으며 면봉을 던지고 화장실로 손을 씻으러 갔다.하연의 시선은 남준의 비서에게
연지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괜찮아요, 제 잘못이에요.” 남자 직원은 바로 반발했다. “뭐가 연지 씨의 잘못이에요? 연지 씨가 뭘 잘못했는데요? 연지 씨가 피해자잖아요.” 연지는 남자 직원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조용히 말했다. “그만해요, 이분은 DS 그룹의 최하연 사장님이에요.” “최... 최...?” 남자 직원은 다시 하연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한층 낮췄고, 연지를 데리고 가려 했다. “자, 내가 널 처리해 줄게요.” 이 상황이 되니 하연은 마치 권력을 휘두르는 자, 강압적인 자로 여겨지기 시작했다.하연의 머릿속이 아파지며, 그녀는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잠깐 서봐요. 황연지 씨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 여기서 딱 정확히 말해 봅시다. CCTV를 확인하면 다 알 수 있잖아요.” 연지는 사과하며 말했다. “최 사장님, 제 잘못이에요. CCTV까지는 필요 없어요. 죄송해요, 제가 당신까지 다치게 했네요.” “너...” 하연은 더 화가 났다. ‘차라리 황연지가 맞서 싸우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무조건 고개를 숙이며 순순히 사과하니 마치 내가 진짜 잘못한 사람처럼 보이잖아.’주변의 많은 시선들이 하연에게 집중되자, 하연은 더욱더 참을 수 없었다. “그래요. 기왕 내가 날 무서워한다면... 좋아요!! 내가 마음대로 하는 게 맞다고 치자. 아무튼 CCTV는 반드시 봐야겠어요!” 멀리서 상혁이 이쪽에서 나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었다. “저쪽에선 무슨 일이야?” 원신민이 발돋움하며 말했다. “무슨 소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층은 부남준의 영역이었다. 상혁은 입을 굳게 다물고 이쪽으로 걸어왔다.연지는 불쌍한 얼굴로, 머리에 커피가 묻어 있었다. “정말 괜찮아요...” 이때, 부남준 사람들 속에서 나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야?” 하연은 남준과 마주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가 정말로 나타났다. “CCTV를 확인하면 되잖아. 확인해.”
“이건 도 잘 몰라요.” 정민의 권한은 고위급 기밀에 알 수 없었다. 하연은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증거를 정태훈에게 넘기자, 태훈이 바로 ‘까마귀’를 찾으러 갔다. 마침내 이틀도 지나지 않아 그 땅은 DS그룹의 소유가 되었다. 하지만, ‘까마귀’가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 일로 인해 정민도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었다. 하연이 정민을 다시 찾으러 갔을 때, 정민은 이미 그곳을 떠난 상태였다. 예전에 만났던 정민을 아는 ‘여자 동료’가 하연에게 말했다.“정민 언니... 고향으로 돌아갔어. 마치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도망치듯이 갔다던데. 그쪽 정민 언니의 사촌이라고 했잖아, 정말 몰랐어?” 하연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언니가 말하긴 했는데 이렇게 빨리 떠날 줄은 몰랐어요.” “정민 언니의 옛 애인 ‘까마귀’가 지금 언니를 온통 찾아다니고 있으니 빨리 도망가야지.” 하연은 그 말을 들으며 다시 한번 씁쓸하게 웃었다.“...”하연은 DL그룹 본사를 찾아갔다. 안내데스크 직원이 하연을 보고 전혀 놀라지 않으며 말했다. “최 사장님, 누구를 찾으셨나요?” 하연은 입을 열었다가 망설이며 말을 바꿨다. “부남준 상무님을 뵈러 왔어요.” 직원은 곧바로 부남준의 비서에게 연락을 취했고, 하연이는 대기실로 안내되었다. “상무님은 아직 바쁘셔서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하연은 대기실에서 부남준의 사무실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중년 남성이 있었는데, 그는 다름 아닌 바로 하연이 그날 부씨 가문 저택의 서재에서 본 부건국이었다. 부남준은 부건국에게 친절한 듯 보였지만, 부건국은 다소 기가 죽은 모습이었다. 두 사람이 무슨 말을 나누고 있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부씨 가문 가족이 부남준을 이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그의 권력이 점차 돌아오고 있음을 의미했고, 부남준이 DL그룹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시선을 돌린 하연은
하연은 상혁이 자신을 도울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얼굴에 장난기 어린 표정이 떠올랐다. 마치 못된 장난을 치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우리 졸업 날짜가... 며칠이더라?”그 말에 상혁의 평온했던 표정이 순간 무너졌다. 얼굴에 잠시 분노가 스쳐 갔다. 하연은 그의 반응을 보며 장난기가 잦아들었다.“농담이에요. 나도 당연히 기억하고 있어요.”하연은 그제야 상혁을 달래듯 메모장을 받아 들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녀의 미소는 긴장감으로 가득했던 순간을 잠시나마 밝게 비추는 듯했다.“내가 한명준의 선물을 받을 뻔했어요. 하지만 다행히 우리 넷째 오빠가 있잖아요. 오빠가 내가 고생하는 걸 두고 보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하연은 이미 이득을 본 주제에 오히려 얄밉게 굴며, 일부러 두 사람이 감정이 깊어지던 때 사용했던 애틋한 호칭으로 상혁을 불렀다.상혁의 몸도 순간에 마치 굳혔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연은 그가 준 땅이 절대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사람을 시켜 조사해 보았다. 그런데 조사 결과, 그 땅은 이 도시에서 악명 높은 깡패, 별명 ‘까마귀’의 손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연은 예상치 못한 결과에 미간을 찌푸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땅이 그렇게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을 줄은 몰랐다.정태훈이 말했다. “그 사람, 까마귀는 굉장히 위험한 인물입니다. 그 땅이 값어치 있다는 걸 알고 계속 내놓지 않으려 합니다.” 상혁이 준 주소는 ‘까마귀’의 애인의 집이었다. 그녀는 눈에 띄지 않도록 소박한 옷으로 갈아입고 홀로 그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도착해 보니 그곳은 마치 사창가 같은 장소였다. 남녀가 뒤섞여 있었고, 코를 찌르는 불쾌한 냄새가 가득했다.“정민 언니 만나러 왔어요.” 길가에 서 있던 여자는 하연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정민 언니? 무슨 일로 찾는 거야?” “저는 정민 언니의 친척입니다. 좋은 거래를 소개해 드리려고 왔어요.” 하연은 장난스럽게 눈을 깜빡였
상혁은 한 손으로 단추를 잠그며 말했다. “사실 꽤 좋은 거래였어. 아쉽네.” 이 순간, 그가 사업을 하는 사람의 태도로 하연의 말을 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었다. 하연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말문이 막힌 채 그대로 서 있었다. 하연의 고통스러운 모습이 상혁의 눈에 잠깐 비쳤는지, 결국 그는 약간의 연민을 보였다. “부남준을 만났어?” 하연이 고개를 들었다. “네 몸에서 부남준이가 좋아하는 남자 향수가 나네. 오늘 부남준이 정다영 씨와의 만남은 순조로웠나?”하연은 상혁이 모든 걸 이미 손에 쥐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설마 당신이 주선한 거였어요?” 상혁이 모호하게 미소를 지었다. “정다영 씨는 재능 있는 남자를 좋아해. 이 사회에서 부남준은 정다영 씨에게 치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지.” 하연은 드디어 기억났다.“정다영의 아버지가 지금도 DL그룹의 이사였고, 정다영과 부남준의 결혼은 부남준에게 득이 될 뿐이야.” “왜 굳이 스스로 적을 만들어요?”상혁은 하연의 다리를 힐끔 보았다. 그녀는 아직 발목이 완전히 낫지 않은 듯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까지 누가 적인지 알 수 없어.”하연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 생각에는 정다영이 부남준과 결혼하면 두 집안이 단단히 결속되고, 상혁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결국 가족의 지지가 없이는 부남준을 막아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혁은 하연을 지나쳐 서류를 들고 검토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늦었어. 이제 돌아가.” 그는 밤새도록 잠을 잤고, 이미 시간이 늦었지만 하연은 움직이지 않고 의자에 주저앉아 무언가를 깊이 생각했다. 상혁이 이미 계획을 세운 것 같다면, 하연도 자신이 정다영을 굳이 경고할 필요가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일보다 더 급한 문제가 있었다. 조승원이 계약을 취소했고, 지금 하연에게 남은 시간에 새로운 땅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손이현은 하연이가 굴복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그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