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이 어색하게 웃었다.“그럴 리가요. 전 얼마 전까지 외국에 있었어요.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더니,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은 믿지 마세요.”이수애 여사가 서준의 만류를 무릅쓰고 몰래 시아버지를 통해 일을 처리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쯤 서영은 감옥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체조나 하는 신세였을 것이다.하연이 차갑게 서영을 힐끗 보았다.“감옥에서 나왔으면 개과천선해서 착하게 살아야지. 내 숍을 또 부수고 행패를 부리면 이번에는 초범이 아니라 재범으로 감옥에 들어가는 건데 겁도 없어. 너 알아서 해, 나는 모르니까.”“나 감옥에 안 갔다고! 귀먹었어?”서영은 참지 못하고 하연에게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가다가 예나에게 가로막혔다.“지금 2 대 1인데, 몸 싸움하게?”서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눈앞의 두 사람을 한꺼번에 상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분해서 씩씩거리고 이를 갈며 말했다.“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너희들 숨기에는 이미 늦었어!”한서영은 한서준에게 절대 먼저 나서서 하연을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었다.“너 겁나는 거 다 알아. 우리 자기는 너 같은 계집애가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예나가 의기양양하게 하연의 어깨에 기대어 말했다.서영은 마음속으로 화가 나서 두 주먹을 꼭 쥐었지만 화풀이할 만한 대상이 없었다. 조용히 같이 왔던 일행들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직원들은 서영과 함께 왔던 명문가 아가씨들이 이미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고, 아무도 서영의 연락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만 전할 뿐이었다.그 작은 무리로부터 배척당했다는 수치심이 들자, 서영은 여전히 분개한 눈빛으로 아직 매장 안에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하연은 예나를 도와 팔찌 몇 개를 착용해 보았는데 모두 별로 맘에 들지 않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두 고객님, 혹시 팔찌 하나 더 안 가져가셨나요?” 직원의 눈은 친절한 거짓 웃음을 지었지만 의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뒤에 다른 직원 한 명이 달려왔다.“확실히 한 점이 부족한데, 직접 찾아
하연이 입가에 조롱하는 웃음을 띠며 서영의 앞에 섰다.“왜 멍하니 있어? 빨리 경찰에 신고해! 나 이렇게 기다리고 있잖아.”서영은 초조해져서 온 얼굴이 땀투성이가 되어 핸드폰을 손에 꽉 쥐고 어쩔 줄 몰라 했다.“내 가방 안에 있어야 할 팔찌가 왜 네 가방에 들어갔는지 궁금하니?”한서영은 순간 멍해졌다.“나는 도대체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하나도 모르겠네.”“너 정말 네가 내 가방에 물건을 넣는 걸 내가 못 봤을 거라고 생각해?”하연이 엄하게 물었다.서영이 목걸이를 훔쳐 하연의 가방에 넣을 때 하연은 마침 옆에 있던 거울을 통해 서영이 일을 꾸미는 것을 보았고, 서영이 몸을 돌릴 때 잽싸게 그 목걸이를 꺼내어 서영의 가방 안에 넣었다.예나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고, 비로소 큰 그림의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는 것을 느꼈다. “한서영, 너, 너는 정말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렇게 나이가 어린 데도 못된 짓을 꾸밀 생각을 해? 참 대단하다!”“지난번에 너를 구치소까지 보낼 생각은 아니었어. 근데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아직도 그 일에서 배운 게 하나도 없네. 그러면 내가 오늘 한씨 집안 대신 너 좀 따끔하게 가르쳐야겠다!”하연이 고개를 돌려 점원에게 말했다.“112로 신고해서 경찰 부르세요!”“신고하지 마. 경찰 부르지 말라고!”서영은 점원을 막고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게 했다.그 순간 서준으로부터 온 전화가 울리자 서영은 전화를 받고 울기 시작했다.“오빠, 빨리 와서 나 좀 구해줘. 이 사람들이 나를 경찰로 넘기려고 해.”예나는 기가 찼다.“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잘못은 자기가 저질러놓고, 오히려 억울하다고 울고 있네.”서준은 마침 바로 근처에 있어서 몇 분 내로 금방 매장에 도착했다.들어오자마자 하연의 일행과 서영이 서서 대치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오빠! 이 사람들이 여럿이서 나를 괴롭혀!”서영이 큰 소리로 울며 하연과 친구들을 가리켰다.서준의 냉엄한 눈빛으로 하연을 힐끗 쳐다보고, 얼굴을 돌려 차가운 목소리로 서영에게
서영은 하연 앞에 가기 싫어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목소리는 모깃소리만큼 작았다.“그게..., 미안하게 됐어.”예나가 화가 나서 거칠게 말했다.“더 크게 말해, 안 들려!”한서영은 두 손을 꼭 맞잡고 눈을 딱 감고 조금 더 크게 말했다.“미안하다고 말했잖아! 미안하다고!”“됐지?” 서영은 고개를 돌려 서준을 보았다.“오빠.”서영의 표정이 우는 것보다 더 딱해 보였다.서준은 차갑게 말했다.“나 말고 하연 씨에게 사과해야지.”서영은 어쩔 수 없이 하연 쪽으로 몇 발짝 걸어갔다.“사과했으면 됐지, 뭐 하러 경찰까지 불러 조사를 받게 하냐고? 사과만 하면 경찰 조사 안 받아도 된다는 건가? 한 대표님, 너무 이기적이시네.”하연이 붉은 입술로 서준을 비웃었다. 서준은 하연의 이런 태도 때문에 전혀 상황을 종잡을 수 없었다.“괜히 도둑으로 몰려서 꼼짝없이 잡혀갈 뻔했는데, 명문가 한씨 집안사람이면 말 한마디로 죽음도 면하는 금수저인 거야?”가족들이 하도 오냐오냐하며 키워서 서영의 못된 행동은 어른이 되어서 점점 더 심해졌다. 하연은 서영을 혼쭐낼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가흔은 하연의 태도에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미친 듯이 울고 발광하는 서영을 또 한 번 연행해갔다.서영이 경찰에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 서준의 얼굴이 걱정 때문에 어두워졌다.“작은 다이아몬드 팔찌 하나 때문에 이렇게 문제를 키울 필요가 있나?”서준이 하연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언제부터 이렇게 몰인정한 사람이 됐지?”이혼 전, 하연은 서준과 관련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참았었지만, 이혼하자마자 완전히 한씨 집안사람들이 원수처럼 느껴졌다. 이혼 후에 돌변한 하연의 태도 때문에 서준은 하연이 점점 더 낯설게 보였다.서준은 서영에게 사과도 시켰고, 목걸이 값을 직접 지불해서 하연에게 사주겠다고도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성에 안 차는지 계속 불만인 하연을 이해할 수 없었다.“그래? 난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데 당신이 잘 몰랐던 거지.” 서준은
가흔은 전시회에 온 대중들의 반응을 보고 자신의 선택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하연이 압도하는 이 무대의 연출은 너무 완벽했다.반대쪽에서 무대를 보던 운석은 이때 그 누구보다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이런 자리에서 이렇게 하연을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한동안 온통 서글프고 실의에 빠져 지냈다. 운명의 장난이라 생각했다. 자기 손으로 너무나 완벽한 운명의 상대를 밀쳐낸 것에 대해 뼈저리게 후회했다.운석은 한때 자신의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른 것으로 생각하고 이제 하연을 잊기로 결정했다.그러나 하연이 등장하는 것을 본 후, 다시 참지 못하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마치 그날 밤 건물 옥상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처럼...“엄마, 저것 봐, 또 그 재수 없는 계집애야!” 구석에 앉아있던 서영이 이수애를 조심스럽게 잡아당기며 말했다.이수애는 말투가 매우 좋지 않다.“네가 말 안 해줘도, 나도 다 보여.”“그래.” 서영은 입을 다물었다. 서영은 두번이나 감옥에 들어간 일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비참하게 욕을 먹었다. 지금은 가족들 앞에서 마음대로 숨도 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이수애는 그 ‘바다의 눈물'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차라리 이를 악물고 이 목걸이를 사서 잃었던 명예를 되찾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최근 한씨 집안의 위상이 땅바닥에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수애는 명품 매장에서 하연의 VVIP카드로 한번 모욕을 당했고, 서영은 다이아몬드 팔찌 건으로 경찰서에 두 번이나 연행되었다.최근 B시 상류층 여성모임에서 이수애와 서영의 평판은 형편없었다. 사람들이 서영과 이수애 하면 돈도 없고, 부자인 척하며, 좀도둑질이나 한다는 몇 가지 단어를 떠올리는 상황이었다.마지막 전시품이라 최하연은 스탠드에서 내려온 후에도 푸른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풀지 않았다.가흔은 총 디자이너로서 내빈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VERE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묵묵히 고생해 주신 스태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물론
“너 사람 잘 못 건드렸어!”이수애는 이를 악물고 이 한 마디를 하연에게 내뱉으며 서영을 끌고 사람이 적은 곳으로 몸을 피했다.하지만 기자들 무리가 두 사람의 뒤를 바짝 쫓았던 탓에 잠깐 동안은 관중석보다 두 사람의 주위가 더욱 시끄러웠다.쇼케이스가 끝났다.무대 뒤로 돌아온 하연이 ‘바다의 눈물'을 한쪽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았다.예나는 또 다른 분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하연은 앉아서 예나가 단체방에 공유한 쇼케이스 현장 사진을 보고 있었다.[나나양: 자기야, 봐봐! 우리 둘 다 너무 예쁘지?][이쁜이: 하트 뿅뿅! 너무 예쁘다!][여은이: 해외 출장 가는 것만 아니었으면 가서 꼭 보고 싶었는데. 이리 와, 안아줄게.][가으니: 오늘 수고했어! 저녁에 다 같이 모이자.][나나양: 오늘 정말 웃겨 죽을뻔했다니까?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VERE을 사버리겠다는 하연이 전 시어머니 태도에 웃겨서 눈물이 다 났어.] [이쁜이: 그 사람은 아직도 내가 자기 며느리인 줄 아나 봐.]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대기실 문이 열리고 잔뜩 화가 난 이수애와 서영이 들어왔다.하연은 입가에 경멸하는 웃음을 띠며 싸움에서 진 수탉 같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아까 들은 욕으로는 부족했나요? 그래서 욕을 더 들으려고 직접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너는 오늘 이 목걸이 꼭 나한테 팔아야 해!”이수애는 들어오자마자 최하연에 의해 구석에 아무렇게나 놓인‘바다의 눈물’을 언뜻 보았다. 저렇게 비싸고 예쁜 것을 장난감처럼 대충 벗어던져 놓은 것을 보자 질투심이 폭발할 것 같았다.구겨진 체면을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연의 목걸이를 자기가 사는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귀가 잘 안 들리면 병원에 가세요. 안 팔 거라고 했는데 잘 안 들리시나 보네요.” 하연은 휴대전화를 한쪽에 놓고 거울을 보면서 계속 귀걸이를 빼고 있었다.“목걸이 값이 얼마가 됐든 상관없어, 꼭 살 거야!”“그만하시죠.”하연이 여유롭게 말했다.이수애는 화가 나서 현기증이 몰
“오빠, 나 믿지? 나랑 엄마 지금 이 모양 이 꼴 된 거, 다 저 여자가 한 짓이야.”서영은 서준이 믿지 못할까 봐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이수애도 일어나서 계속 말하려다, 갑자기 흥분하면서 쓰러졌다. 옆에 있던 서영이 이수애를 얼른 부축했다.하연은 오래전부터 이수애와 서영의 이런 속임수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상대를 비웃는 하연의 말투에는 당당함이 배어 있었다.“맞아, 내가 그랬어.”하연은 이 사람들과는 한 마디도 섞고 싶지 않았다. 몸을 돌려 대기실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서준이 문 앞을 가로막았다.하연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떨어져서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비켜.”초주검이 된 이수애와 서영의 모습을 본 서준은 하연에게 기울었던 마음의 저울추가 다시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언제까지 화만 내고 있을 거야?”서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하연은 이것이 근래에 들은 것 중 가장 웃긴 농담이라고 느꼈다.“내가 무슨 화를 냈다고 그래?”“내가 당신 여동생과 어머니한테 손찌검을 당한 거, 이혼 전에 당신 집에서 괴롭힘당했던 걸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고?”“정말 다정한 효자 나셨네.” 하연은 어이없어 고개를 저었다.“내가 뭐 하러 저런 더럽고 역겨운 사람들 보면서 시간을 낭비하겠어?”“그렇게 고상하신 분이 손버릇은 아주 나쁘네!”서영은 또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다가 기절한 이수애를 일으켜 세웠다.“당신들 스스로 이렇게 화를 자초하잖아, 더러운 파리처럼 계속 내 주변을 맴돌면서 괴롭히는데, 내가 당신들 마음까지 헤아려줘야 하는 거야?”“식구들 단속 잘 해. 동네 창피하게 나와서 웃음거리 되지 말고.”하연의 날카롭고 차가운 눈동자로 서준을 째려보았다.“다시 한번 이렇게 제멋대로 무례하게 행동하면, 그때는 변기 물 세례로 끝나지 않을 거야.”서준은 여전히 커다란 돌부처처럼 움직이지 않은 채 차가운 눈으로 하연을 바라보았다.“그래도 한때는 부부 사이였는데, 이렇게까지 듣기 거북하게 말해
운석은 이전에 껄렁껄렁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하연을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보아하니 손수건이 필요 없을 것 같네요.”하연이 정색하며 말했다.“물론이죠, 울지도 않았으니까요.”“지난번처럼 예쁘게 우는 모습일 것 같아 오늘은 특별히 손수건 두 장 준비했는데.”운석은 손수건을 하나 더 꺼내며 눈웃음을 지었다.“어때요, 나 배려심 끝판왕입니다.”하연은 D국 옥상에서 있었던 그날 밤을 떠올렸다. 자신이‘원수' 앞에서 운 거였다. 그렇게 다른 사람 앞에서 우는 게 거의 없는 일이라 그 날의 기억이 몹시 불편했다.“제가 언제 그랬다고 그러세요? 운석 씨가 잘못 알고 있는 거예요.”운석은 하연과 다투지 않고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내가 잘못 안 거 맞아요.”운석은 하연의 불편한 얼굴을 보면서 이전에 울었던 것도 서준 때문이었을 거라고 추측했다.“내가 가서 한 대 때려줄까요?” 운석이 이 말을 물었을 때 그 눈빛은 보기 드물게 진지했다. 심지어 허공에 주먹질까지 했다.“말만 하세요, 뭐든 가서 시키는 대로 다 할 거니까.”“한서준이랑 친구겠지만, 한서준 편만 안 들면 돼요.” 하연은 운석의 말을 믿지 않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했다. 운석은 자신을 믿으라며 가슴을 힘껏 두드렸다. 그 진동 때문에 두 번이나 헛기침을 했다.“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내가 명색이 정의의 사도인데, 내 친구라고 편들 수는 없습니다!”하연을 보는 운석의 눈빛에는 마치 여왕을 위해 전쟁에 나가는 기사 같은 비장감이 돌았다.하연의 아름다움은 장미처럼 가시가 돋혀 있다. 운석은 하연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따르기로 했다.정색을 하는 운석이 너무 웃겨서 하연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정말 아무 말 대잔치네요.”“원하는 거 저한테 말만 하세요.”운석이 발걸음을 내디디며 하연의 곁에 섰다.“말만 번지르르하긴.”하연은 계속 운석을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전과 다른 점은 이번에는 미간에 웃음기가 있다는 것이다.‘오늘 내 편을 드는 걸 보니 눈이 삔 한서준보다 백배 낫네
“바빴어요.” 하연은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조진숙과 하연의 어머니는 매우 사이좋은 친구였다. 하연의 부모가 사망한 후부터 줄곧 조진숙과 부동건 부부가 하연 남매들을 돌보았다. 하연이 성인이 되고 나서야 조진숙은 비로소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났다.조진숙은 하연의 어린 시절 내내 엄마 역할을 대신해왔다. 하연은 일찍이 조진숙을 진짜 가족처럼 생각했다.하연은 사방을 바라보며 조진숙을 향해 음흉하게 웃었다.“이모, 동건 삼촌은 왜 안 오셨어요?”“오거나 말거나!”조진숙은 화가 난 척했다.“그 사람 얘기는 하지도 마.”“오.” 하연은 입술을 오므리고 웃음을 참았다.조진숙과 부동건 부부는 애증의 관계이다. 같이 있을 때는 싸우고, 떨어져 있으면 상대방을 걱정했다. 젊었을 때 화가 나서 잠시 이혼한 적이 있었다. 부동건은 이혼한지 얼마 안되어 바로 후회하고, 아내만 생각하고 아내만 쫓아다니는 아내 바라기 생활을 시작했다.DL그룹 사업도 내버려두고 이제 갓 성년이 된 아들 부상혁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그러고 나서 세계일주 여행을 하는 와이프를 쫓아다니게 되었다.“이것아, 너 이혼한 거 하민이한테 다 들었어. 이렇게 나이를 먹고도 결혼을 장난으로 여기다니.” 조진숙은 하연의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따뜻한 눈빛으로 하연의 작은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이모가 애초에 어떻게 너를 가르쳤지? 괴롭힘을 당하면 반드시 받은 만큼 되돌려줘야 해. 너는 이 조진숙의 보물이야. 네 뒤에 DL 그룹과 최씨 집안이 있다는 걸 잊지 마.“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말 안 한 거예요.”하연은 조진숙의 팔을 좀 더 꼭 껴안고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제가 잘못했다는 거 이제 알아요.”하연은 약한 모습이 없는 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가족 앞에서 이런 약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었다.조진숙은 하연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모, 왜 그래요?”조진숙은 하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 당시 NW그룹이
“대표님, 부남준 상무님이 돌아오셨습니다.” 최상층 사무실에서, 원신민이 차분하게 보고했다. 부상혁은 고개를 들고 시선을 멀리 두었다. 그는 느긋하게 외투를 정리하며 평온한 얼굴로 앉아,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원신민은 말을 이어갔다. “상무님께서 동남아에서 상당히 많은 지지를 얻어내셨습니다. 현재 이사회에서도 분위기가 매우 긍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회장님도 잇달아 칭찬을 아끼지 않고 계십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핸드폰에서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상혁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본 그의 눈빛에 순간적으로 부드러운 기운이 스쳤다. [부 대표님? 오늘 저녁 시간 괜찮으세요? 만나고 싶어요!!]메시지에는 귀여운 이모티콘이 하나 붙어 있었다. 메시지의 주인은 분명 지금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상혁은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다. 벨소리가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갑자기 전화했어요?]그녀는 상혁의 전화해 의아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옆에 있던 원신민은 이를 보고 눈치를 챘는지 두 발짝 물러섰다. 그리고 조용히 옆에서 대기했다. 상혁은 미간을 풀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최 사장님께서 만나고 싶다니, 제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서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서요.” 하연은 가볍게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부 대표님, 자제력이 아직 부족한 것 같네요!]“그렇죠, 제가 최 사장님 앞에서는 특히 더 자제력이 부족해요.” 그의 목소리에는 다른 뜻이 담겨 있었다. 하연은 전화기 너머에서 얼굴이 붉어졌고, 서둘러 말을 돌렸다. [정 실장이 콘서트 티켓 두 장을 가져왔어요. 오늘 저녁에 우리 같이 보러 가요.] “그럼 내가 저녁에 데리러 갈게.” [좋아요.] 전화를 끊고, 상혁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깊었지만, 차가운 고요함이 가득했다. 곧, 그의 저음이 울려 퍼졌다. “가자. 이제
‘부씨 가문의 장손, 절대로 부상혁의 아이가 되어서는 안돼!!’ 이 말은 송혜선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녀 마음 깊숙이 뿌리를 내려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어머님, 이 일은 남준 씨의 의사를 따라야 할 것 같아요.” 다영은 입가에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표정은 어딘가 씁쓸했고, 눈동자에는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 어른거렸다. 송혜선은 별다른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이 일은 너무나도 당연한 절차에 불과했고, 복잡한 문제가 될 이유는 없었다. “걱정 말아. 남준이한테는 내가 직접 이야기할 테니까. 이런 중요한 문제 앞에서는 우리 남준도 절대 흐릿한 태도를 보이지 않을 거야.” 송혜선은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다영을 안심시켰다. 다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깊은 밤. 격렬한 사랑의 열기가 가라앉은 후, 다영은 온몸에 땀이 촉촉이 배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부남준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미련 하나 없이 자리에서 훌쩍 일어섰다.그 순간, 다영이 남준의 등 뒤에서 두 팔로 단단히 그를 끌어안았다. 남준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손에 쥔 동작이 멈췄다. “갑자기 왜 이래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한결같이 차분했다. 다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의 등에 얼굴을 바짝 붙인 채 더욱 힘껏 그를 끌어안았다. “조금만 더 있어주면 안 될까요?” 남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아침 일찍, 중요한 일이 있어서 서둘러야 해요.” 다영은 그의 품에서 천천히 물러섰다. 침대 머리맡의 희미한 빛이 그녀의 눈동자 속 기대감을 비추고 있었다. “남준 씨, 우리 아이를 가져보는 게 어때요?” 남준의 표정은 여전히 깊고 변함없었다. 그는 다영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했죠?” 다영은 그를 응시하며 눈망울을 반짝였다. “남준 씨
남준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습니다.” 정지철은 얼굴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한걸음에 다가가 차 문을 열어 주었다. “자, 그럼 우리 집으로 가세.” 동시에, 정씨 가문의 저택은 불빛으로 환히 밝아져 있었다. 정다영은 오랜 시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벌써부터 문밖으로 자꾸만 향하며,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주머니, 기사님께 전화 한 번 해 보세요. 왜 아직도 안 오시는 거죠?” 가정부인 왕순미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께서 직접 모시러 가셨으니, 곧 도착하실 겁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다영은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뛰어나갔다. “분명히 남준 씨일 거야.” 문을 나서자 찬바람이 불어왔고, 다영은 몸을 살짝 떨었지만, 마음속 설렘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남준 씨!” 차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다영의 시선은 오직 한 곳만을 향했다. 하지만 차에서 내린 이는 기대했던 남준이 아니었다.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그녀는 놀란 듯 말했다. “어머님, 여기 웬일이세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실망이 묻어났지만, 금세 태연한 척하며 표정을 고쳐 잡았다. “왜? 내가 오면 안 되는 거니?” 차에서 내린 사람은 바로 송혜선이었다. 송혜선은 어두운 색의 패딩을 입고 있었지만, 부드럽게 불룩 나온 배는 그녀의 우아함과 품격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다영은 서둘러 다가가 송혜선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다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 오실 줄 몰랐고, 미리 말씀도 없으셨잖아요.” 송혜선은 다영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다정하게 말했다. “남준이가 돌아온다길래 네 아버지가 연락을 줬거든. 그래서 겸사겸사 들러본 거야.” 다영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는 상황을 이해했다. 단순히 들르겠다는 말은 구실에 불과했고, 내일 있을 이사회를 염두에 둔 방문임이 분명했다.
“제가 요즘 입덧이 심해서 기름진 음식은 못 먹거든요.” 하연의 말에 부동건은 금방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랬구나. 그렇다면 다음에 혜선 이모에게 담백한 음식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할게.” 부동건은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 곁에 있던 비서는 부동건의 눈짓을 읽고, 즉시 보온 통을 조용히 치워갔다. “혜선 이모는 그런 일을 잘 아니까, 모르는 게 있으면 혜선 이모에게 물어보렴.” 그 말이 떨어지자, 사무실 공기가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하연은 상혁의 표정이 차갑게 변한 것을 느꼈다. 그의 주변에는 금세 폭풍이 몰아칠 듯한 기운이 감돌았다. 하연은 상혁의 손을 살짝 잡으며 그를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삼촌도 점점 사람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시는 것 같네요. 혜선 이모도 지금 임신 중이신데, 어떻게 그런 부탁을 드릴 수 있겠어요?” 부동건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대단한 일도 아닌데 뭐가 걱정이냐, 넌 걱정하지 말거라.” 하연은 여전히 단호한 태도로 거절했다. “아니에요. 전 늘 진숙 이모가 해주신 음식을 먹어서, 다른 분이 만든 건 익숙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녀가 조용히 조진숙을 언급하자, 부동건은 잠시 당황한 듯 멈칫했다. 곧 코를 문지르며 멋쩍게 말했다. “그렇구나, 내가 생각이 짧았다. 진숙 이모는 어릴 때부터 널 봐왔으니 네 입맛을 가장 잘 알겠지.” 그는 말을 돌리며 덧붙였다. “그럼 앞으로 이런 건 진숙 이모에게 부탁하자꾸나.” 상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이런 일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들의 단호한 어조에 부동건은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젊은 사람들 일은 내가 나설 일이 아니지. 다만 너희 둘이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부동건은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이제 너희가 가정을 이루고 일도 안정적으로 맡게 되어, 정말 기쁘구나.” 그는 마치 옛날을 떠올리는 듯
상혁은 하연을 단숨에 품 안으로 끌어당기며 밀착했다. “대범하다는 건 과장이야. 그저 한 번의 신세를 갚았을 뿐이야.” 하연은 그의 말에 질투가 더 짙어졌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을 톡톡 찌르며 따져 물었다. “어떤 일이길래 부 대표님이 그렇게 큰 손을 쓰셨나요?” 전진그룹의 프로젝트는 최소 몇억에 달하는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었다. 하연은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니면, 부 대표님이 나한테 감추고 싶은 무슨 비밀이라도 있는 건가요?” 상혁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그녀의 귀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네 작은 머릿속엔 도대체 무슨 생각이 그렇게 가득하니?” 상혁의 큰 손은 자연스럽게 하연의 어깨로 내려왔다. 그는 몸을 숙이며 하연의 시선을 마주했다. 깊고 진지한 눈동자 속에 하연의 모습만 담겨 있었다. 상혁은 하연을 장난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거 알아? 하연아, 너 지금 엄청 귀엽다.” 하지만 하연은 여전히 진지했다. “부 대표님, 화제를 돌리지 말아요.” “응.”상혁은 가볍게 대답하며 그녀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는 그 모임에서 들었던 말이 하연의 귀를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설명하기 시작했다.“주슬기에게 이익을 준 건, 단지 주슬기에게 빚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 이 세상에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른 얽매임이 없다는 걸 뜻하지.” 잠시 말을 멈춘 후, 그는 덧붙였다. “하지만, 하연아. 오늘 너의 모습은 정말 마음에 들었어.” 하연이 질투를 하고, 다른 여자를 신경 쓰는 모습...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상혁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하연의 얼굴은 금세 붉어졌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상혁의 손등을 꼬집으며 말했다. “부 대표님, 오해하지 말아요. 그냥 우리 아이 아빠가 걱정돼서 그런 거예요... 으읏!” 하연의 말이 끝나
“마침 ZT그룹의 서류가 도착했네요. 최 사장님, 함께 올라가시죠.” 연지의 말에 하연은 자연스럽게 주의를 기울였다. “DL그룹이 ZT그룹과도 협력하고 있나요?” 연지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원래는 없었죠.” 바로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연지는 공손하게 손짓하며 말했다. “먼저 타시죠.” 하연은 앞장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고, 연지는 뒤따라 옆에 섰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올해 사업 조정으로 ZT그룹과 협력할 기회가 조금 생겼습니다. 게다가 부 대표님께서 ZT그룹을 꽤 신경 써 주신 덕에, 자연스레 왕래가 잦아졌죠.” 하연은 시선을 고정한 채 연지의 말 속에 숨은 의미를 느꼈다.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호기심 섞인 말투로 물었다. “오, 그게 무슨 뜻이죠?” 연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사실 연말은 늘 우리 회사에서 가장 바쁜 시기인데, 최근 부대표님께서 전진그룹의 프로젝트를 모두 ZT그룹에 넘기셨거든요. 덕분에 이번 연말은 꽤나 한가해졌어요. 전진그룹이라면 바로 무역협회 전영철 회장님 회사잖아요.”하연은 연지의 말 속에서 핵심을 놓치지 않았다. 전진그룹은 F국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으로, 그 기반은 단단했고 산하 프로젝트도 방대했다. 그런 이익을 고스란히 주슬기에게 넘겼다니, 충분히 의심할 만했다. 하연의 마음속에 의혹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평정을 유지하며 연지를 흘깃 바라봤다. 연지가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낸 건 분명 의도가 있었다. 하연은 차갑게 눈을 좁히며 물었다. “그 말은, DL그룹이 그 프로젝트를 전부 ZT그룹에 넘겼다는 거네요?” 연지는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런데 부 대표님께서 이 일을 말씀 안 하셨나 봐요?” 하연은 옅게 미소 지으며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이렇게 말해 줬으니, 덕분에 알게 됐네요.” 연지는 속이 뜨끔하며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급히 변
하성은 핸드폰 화면을 힐끗 보더니, 온통 빨갛게 물든 주식 그래프를 보고는 손을 뻗어 하연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었다. “우리 하연이, 이제 완전 큰 부자가 됐네.” 하연은 활짝 웃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다 오빠 덕분이에요. 역시 든든한 나무 밑에 있어야 시원하게 쉴 수 있는 거죠.” 하성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눈에 애정 어린 미소를 띄웠다. “하연이 네가 기댈 수 있는 나무가 될 수 있어서 오히려 내가 영광이지.” 하연은 문득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오빠가 있어서 참 좋아요.” 하성은 책상 위의 서류를 들어 흔들며 웃었다. “그럼, 최 사장님. 이 프로젝트, 이제 나한테 넘겨줄 준비는 됐습니까?” 하연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네, 오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업무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하성은 업무를 빠르게 익혔다. 그의 예리한 감각과 타고난 사업적 통찰력은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심지어 정태훈도 하성의 능력에 감탄하며 연신 칭찬했다. “하성 도련님, 처음부터 연예계에 발을 들이지 말았어야 했어요. 이렇게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니, 우리 최 사장님보다 더 대단한 걸요.” 하성은 장난스레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 “정 실장까지 이런 입발린 소리를 하다니, 어울리지 않네.” 태훈은 황급히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진심으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는 하성을 한번, 하연을 한번 번갈아 보며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최씨 가문 분들은 모두 사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십니다. 하민 도련님이든, 하연 아가씨든, 지금의 하성 도련님까지, 모두 뛰어난 경영 실력을 가지셨죠. DS그룹은 누구 손에 맡겨도 틀림없이 번창할 겁니다.” 하연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들었죠, 오빠? 이제 회사는 오빠한테 맡기고, 저는 잠시 쉬어야겠어요.” 하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지금 너는 우리 집안
“오빠, 정말 나한테도 숨길 거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잖아요!” 하연은 점점 초조해졌다.하성은 대수롭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다 지난 일이야.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거잖아.”“하지만...” 하연이 더 말하려 하자, 하성은 서둘러 동생의 말을 잘랐다. 그는 손으로 하연의 어깨를 주무르며 화해를 구하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됐어. 하연아, 오빠 이제 막 돌아왔는데 좀 쉬게 해 줘. 내일이면 회사에 나가야 하는데, 남은 마지막 자유 시간마저 빼앗을 거야?”하연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 “알았어요. 더 이상 묻지 않을게요. 다만, 후회하지 않으면 좋겠어요.”하성은 입가를 살짝 끌어올리며 대답했다. “응, 알았어. 난 할아버지랑 좀 있다가 갈게.”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바로 몸을 돌려 떠났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떠나는 하성의 뒷모습을 보며, 하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꺼내 신가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가흔에게도 아무런 답장이 오지 않았다. 마치 그 메시지가 허공으로 사라져 버린 듯했다.다음 날. 하성이 DS그룹을 맡게 된다는 소식이 삽시간에 퍼지며 많은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이른 아침부터 회사 입구에는 여러 매체의 기자들이 몰려들어 첫 번째 단독 기사를 얻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서여은이 하연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하성 오빠가 DS그룹을 맡는다는 소문 들었는데, 진짜야?] 하연은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답장을 보냈다. [응, 맞아.] 여은은 깜짝 놀라며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왜 갑자기 하성 오빠가 DS그룹을 맡아? 그리고 너는? 혹시 너는 상혁 오빠랑 사랑에 빠져서 정신없는 거 아니야?]하연은 당황하며 짧게 답했다. [나 임신했어.]순간 채팅창에는 감탄사로 가득 찬 메시지가 연달아 올라왔다. [!!!] [하연아, 너 진짜 너무 빠르잖아!]하연이 답장을 쓰기도 전에 여은
손이현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창밖의 하늘은 이미 노을로 물들어 있었다. 눈부신 석양이 한 폭의 그림처럼 창유리를 통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온 비서는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이현을 발견하고 나지막이 말했다. “상무님, 깨어나셨습니까?”이현은 천천히 시선을 거두며 평온한 얼굴로 대답했다. “응. 오늘 고생 많았어.”그 말에 비서는 마치 큰 짐을 내려놓은 듯 숨을 내쉬며 미소 지었다. “전 괜찮습니다. 상무님, 그리고 이젠 정말 건강 좀 생각하세요. 그러다가 큰일 나십니다. 더 쉬세요.”이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고 있어.”“사장님,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목마르시죠? 물 한 잔 가져오겠습니다.” 비서는 그렇게 말하며 유리잔에 따뜻한 물을 따라 내밀었다. “오늘 하루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셨으니 제가 도시락 하나 포장해 올게요.”이현이 막 말리려 했지만, 이미 비서는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쓴웃음을 지으며 천장을 바라보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하연은 가만히 있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임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연말 전까지 모든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다.“이젠 홀몸도 아닌데. 몸도 챙기고 뱃속의 아이도 생각해야지.” 최동신은 진심 어린 충고를 했지만, 하연은 자기 할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 “할아버지, 걱정 마세요! 저 정말 괜찮아요. 그리고 지금 큰오빠, 새언니 달콤한 신혼이잖아요. 둘만의 행복한 시간을 좀 보낼 수 있게 큰 오빠 몫까지 제가 해야죠.”최동신은 하연의 이 말에 딱히 반박할 수 없었다. 최 노인에게는 손자, 손녀 모두 소중했기 때문이다. 하민이 이제 막 신혼을 맞이했으니 당연히 더 신경 써줘야 했다.“정 실장이 있잖아. 정 실장이 네 옆에서 오래 도왔으니. 정 실장한테 맡기면 되지, 네가 다 할 필요는 없잖아.” 그 말의 하연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