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와르르 몰려든 무장병사들을 보자 모든 이가 충격에 휩싸였다.다들 어리둥절하여 서로를 마주 볼뿐이었다.“장, 장관님, 무슨 일이시죠?”장경화가 눈을 질끈 감고 먼저 질문을 건넸다.일개 서민인 그녀가 언제 이런 웅장한 장면을 보았겠는가?잘못한 것도 없는데 여전히 심장이 빨리 뛰었다.“다시 한번 묻는다. 누가 이청아야?!”위관이 더 굵은 목소리로 사납게 쏘아붙였다.“전데요...”이청아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담담한 척 되물었다.“장관님께서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죠?”“당신이 적을 내통하여 나라를 팔아먹고, 서방 세계에서 침입해 들어온 간첩이라는 유력한 정보를 입수했어! 지금 당장 우리와 함께 돌아가서 조사에 협력하도록 해!”위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적을 내통하여 나라를 팔아먹어?! 간첩?!”모두가 어리둥절해졌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이청아는 강능에서 나고 자란 영락없는 본 지방 사람인데, 그 어떤 불량 성분도 없는 아이인데, 심지어 조상 3대가 소박한 농민 출신인데 다짜고짜 간첩이라니?“장관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우리 딸은 이 사회의 엘리트이고 매년 바치는 세금만 해도 적잖은 액수예요. 게다가 자선활동도 자주 참가하는데 이런 애가 적과 내통하여 나라를 팔아먹다니요?”장경화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맞아요! 우리 누나는 결백해요. 다들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이현도 식탁을 내리치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진위 여부는 우리와 함께 돌아가서 조사해보면 다 나와!”위관이 차갑게 쏘아붙였다.“뭘 더 조사해요? 우리가 다 입증할 수 있어요!”“그래요! 청아는 절대 간첩일 리가 없어요!”뭇사람들은 한마디씩 이어받으며 그녀를 옹호해주었다.이청아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그들이 제일 잘 알았다.비즈니스 업계에서 작은 꼼수를 부렸다면 모를까 적과 내통하여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건 아예 터무니없는 소리였다!“난 명령을 수행할 뿐이야. 감히 방해하는 자는 같은 죄명으로 처벌한다!”위관이 귀찮은
“네?!”조천룡의 지목을 당한 양의성은 그대로 넋이 나가버렸다.상대가 이렇게 나올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분명 아무것도 안 했는데 영문도 모른 채 휘말려버리다니.“야 이 자식아! 솔직하게 말해. 우리 아빠의 죽음이 너랑 연관 있지?!”조천룡이 두 눈을 부릅뜨고 쏘아붙였다.“아니요... 난 모르는 일이에요! 난 아무것도 모른다고요!”양의성은 놀라서 연신 고개를 내저으며 식은땀만 주르륵 흘렸다.“모르는 거야 일부러 안 말하려는 거야?”조천룡이 실눈을 뜨고 날카롭게 물었다.“천룡 도련님! 저 정말 몰라요! 전부 오해라고요!”양의성이 온몸을 벌벌 떨었다.상대가 개인적인 원한을 품고 이런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는 결국 자신의 고충을 얘기할 수 없었다.“흥! 기어코 손을 대야 다 털어놓을래? 다들 이리 와서 이 녀석 짓밟아버려!”조천룡의 명령에 곧이어 두 명의 병사가 달려왔다.“잠깐!”이때 이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당신들 이분이 누군지 알아? 양씨 의약의 양의성 도련님이라고! 심지어 안 회장과도 친분이 있는 사이야. 이분 털끝 하나 잘못 건드렸다가 안 회장이 당신들 가만두지 않을 거야!”“봐봐요! 큰아버지 이것 좀 들어봐요! 이 자식이 안병서와도 아는 사이래요. 범인 중 한 명일 게 분명해요!”조천룡은 무슨 꼬투리라도 잡은 듯 마구 흥분하기 시작했다.“그러니까 네가 안병서를 꼬드겨서 외부인들을 데리고 내 동생을 죽였단 말이야?”조웅이 퉁명스럽게 물었다.조훈이 죽기 전 혐의가 제일 큰 사람이 두 명 있었는데 한 명은 안병서, 다른 한 명은 이청아였다.눈앞의 이 녀석이 지금 그 둘과 다 연관이 있으니 절대 벗어날 리 없었다.“아니요... 나 아니에요!”양의성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미친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저는 안 회장을 몰라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오해예요!”“의성 도련님! 왜 저들을 두려워해요? 안 회장이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는데 저들이 감히 도련님을 건드리겠어요?”이현이 당당하
설마... 유진우?!이청아는 문득 이 생각이 들었지만 곧바로 부정해버렸다.‘아니야! 말도 안 돼! 유진우는 이미 나랑 이혼해서 남남인데 왜 날 도와주겠어? 그리고, 설사 도와주려고 해도 걔가 그럴 능력이 돼?’“양의성 너 이 비겁하고 파렴치한 놈! 내가 눈이 멀었지, 어떻게 너 같은 놈을 믿을 수 있어!”“개자식! 너 같은 것도 매형이라고 봐주다니. 이거 완전 유진우 그 폐인보다도 못하잖아!”진실을 알게 된 후 장경화와 이현 모자는 더 사납게 욕설을 퍼부었다.전에는 누구보다 양의성을 굳게 믿었는데 상대가 파렴치한 사기꾼일 줄이야!“인간은 자고로 이기적인 법이야. 그러게 누가 바보같이 나한테 사기당하래?”양의성이 비난 조로 말했다.“다들 입 닥쳐! 귀 터지겠네 정말!”조천룡이 버럭 고함을 지르자 장내가 순간 조용해졌다.“천룡 도련님, 그러니까 저는 저 집안 사람들과 일말의 연관도 없어요. 안병서도 모르는 사람이고 조훈 어르신의 죽음은 이씨 집안 사람들이 벌인 짓이에요. 저랑 아무 상관 없다고요!”양의성이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싹싹 빌며 이씨 일가와 선을 그었다.“큰아버지, 이 녀석 어떻게 할까요?”조천룡이 고개 돌려 조웅에게 물었다.조웅은 아무 말 없이 앞으로 다가가 양의성 앞에 서더니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너랑 이씨 일가의 일은 내가 알 바 아니고, 범인이 누군지만 말해. 말하면 목숨은 살려줄게. 안 그러면 이씨 일가와 똑같이 처벌할 거야!”“말... 말할게요. 전부 다 말할게요!”양의성은 재빨리 머리를 굴리며 대답했다.“누구인지 알겠어요! 유진우 그 자식이 틀림없어요! 그 자식이 조훈 어르신을 해쳤어요!”“유진우? 많이 듣던 이름인데.”조천룡이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다.“도련님, 다 잊으셨어요? 애초에 그 자식이 도련님을 때렸잖아요!”양의성이 고자질을 해댔다.“그 녀석이었어!”조천룡은 불쑥 생각난 듯 험상궂은 얼굴로 말했다.“큰아버지, 유진우 그 녀석이 혐의가 제일 커요!”“그 사람 지금 어디 있어
한바탕 소란 끝에 이청아는 끝내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지금 그녀의 등은 살점이 뜯어져 이미 피로 물든 상태였다. 그 잔인한 상처에서 조금씩 피가 새어나왔다. 기절해서 쓰러졌지만 그녀의 몸은 무의식 상태에서 떨리고 있었다. “장군님, 이미 기절했습니다.” 부하가 보고했다. “물을 쳐서 깨우고 계속 때려라.”조웅이 차갑게 대답했다. “큰아버지, 이번에는 제가 직접 하면 안 돼요?”이때 조천룡이 날뛰기 시작했다. 남자구실을 못 하게 된 후로 그의 심리는 변태적으로 변했다. 예쁜 여인일수록 더욱 잔인하게 대하고 싶었다. “네가 좋아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라.”“감사합니다, 큰아버지!”조천룡은 사악하게 웃었다. 이청아가 깬 후 그는 긴 채찍을 여린 여자의 몸에 때렸다. “말해! 말 안 해?!”“날... 죽여... 얼른 날 죽여!”이청아는 고문당하며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지금 그녀는 그저 이 고통을 끊어내고 싶었다, 그게 죽음일지라도. “죽고 싶어? 그렇게 쉽게는 못 죽이지. 내 화가 아직 안 풀렸거든.”조천룡은 사악한 미소를 띤 채 계속해서 이청아를 고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이청아가 또 기절했다. “장군님, 범인도 아직 못 찾았는데 더 때리다가는 죽을 겁니다.”부관이 귀띔해 주었다. “여자 주제에 입이 무겁군.”조웅은 조금 놀랐다. 일반적으로 이런 고문 앞에 일반인은 세 번도 못 버티고 모든 것을 이실직고했다. 특훈을 받은 전사라고 해도 열 번 이상 찍으면 안 쓰러지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이 여자는 몇십 번이나 맞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웅조차도 그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문에 걸어놓고 미끼로 써라. 주변의 사람들도 물리고 유진우인가 뭔가 하는 놈이 와서 구하나 보자.”“네!”조웅이 명령하자 부관이 대답하고는 아직 정신이 들지 않은 이청아를 높은 곳에 매달았다. “절대 죽지 말아. 유진우를 잡으면 천천히 더 놀아줄 테니.”조천룡은 입가에 튄 피를 혀로 닦았다. 표
유진우가 화살처럼 빠르게 자리를 박차고 올랐다. “빨리! 빨리 죽여!”유진우가 움직인 것을 본 조천룡은 아연실색해서 비명을 질렀다. 엘리트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유진우는 이미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발차기 한 번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무장한 엘리트들이 트럭에 치인 것처럼 튕겨 났다. 방탄조끼마저 구멍 나 흉골이 부서졌다. 사람이 튕겨 나 바닥에 닿기도 전에 유진우는 또 다른 사람 앞에 나타나 목을 끊어버렸다. 연속 두 사람을 해치운 유진우는 전혀 힘든 기색도 없었다. 절대적인 속도와 힘 앞에 엘리트들도 속수무책이었다. 잠깐 숨 쉴 사이에 하나둘씩 쓰러졌다. 그들의 총구가 움직이는 속도조차 유진우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그들은 총을 한 번도 쏘지 못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유진우는 계속 이청아를 안은 채로 공격해 왔다는 것이었다. “어?”이 광경을 본 조천룡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귀신을 본 것 같았다. 이 사람들은 수많은 전장을 누빈 엘리트들이었고 다들 손에 총이 있었다. 유진우 한 명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왜 도리어 당하고 있지?‘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무술 고수였나? 이렇게 강하다니!”조웅은 눈을 가늘게 뜨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이 자리에 온 것도 매우 남달랐다. 무술 방면에서 그는 높은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사실 군대의 엘리트들은 모두 무술을 연마해야 했다. 머리만 쓰는 참모를 빼놓고는 무술 실력의 높낮이가 관직의 높낮이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었다. 유진우가 보여준 실력으로는 경험만 많으면 고급 군관 정도는 문제없었다. “장군님, 이 사람의 실력이 보통이 아닙니다. 부대를 다 불러올까요?”부관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다. 어쩌다가 만난 고수인데 내가 직접 상대하지.”조웅은 몸을 풀었다. 커다란 몸집 안에 호랑이 같은 힘이 숨겨져 있었다. “네 차례다!”마지막 엘리트가 쓰러지자 유진우는 또다시 조천룡을 쳐다보았다. “큰, 큰아버지, 살려주세요!
유장혁이 어떤 사람인가. 중주에 피바람이 불게 한 살아있는 재난 그 자체였다. 수많은 사람을 벌벌 떨게 만든 괴물이었다. 10년 전, 도시에 재난을 몰고 온 장본인이었다. 그전까지는 누구도 열다섯밖에 안 되는 소년이 세상을 발칵 뒤집을 줄 몰랐다. 어쩐지 장군이 이 사람을 보고는 놀라더라니. 그들의 앞에 서 있는 이 자가 10년 동안 잠적한 천재, 유장혁이었다. “쿵!”부관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순식간에 희망을 잃었다. 유진우는 고개를 돌려 조웅과 두 사람을 본 후 무시하고는 그대로 조천룡 앞으로 걸어갔다. “큰아버지, 살려주세요! 큰아버지!”조천룡은 부러진 다리를 감싼 채 몸을 웅크리고 뒤로 물러나며 계속해서 소리쳤다. “내가 말했지, 시체도 안 남게 만들어 주겠다고.”유진우는 바닥의 채찍을 집어 들고 조천룡의 얼굴에 대고 힘껏 휘둘렀다. “악!”조천룡이 고통 섞인 비명을 질렀다. 얼굴의 살점이 뜯겨 나가고 피가 사방에 튀었다. 유진우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또 한번 힘껏 채찍을 휘둘렀다. “퍽!”채찍의 소리와 함께 조천룡의 피부가 옷처럼 발가벗겨졌다. “악!”조천룡이 또 한번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큰아버지! 살려주세요!”조웅은 듣고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하며 그대로 굳어있었다. 유진우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조천룡의 몸에 채찍을 휘둘렀다. 사방에 피와 살점이 튀었다. 고통 섞인 비명이 고막을 찢을 듯했다. “그, 그만! 잘못했어, 내가 정말 잘못했어!”조천룡이 바닥에 꿇은 채 울면서 빌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진우는 귀가 먹은 것처럼 계속해서 채찍을 휘둘렀다. 이청아가 받은 고통의 열 배, 백 배는 돌려줄 작정이었다. “잘한다! 죽여버려!”구석에 숨어있는 양의성은 속으로 기뻐하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조천룡 같은 뛰는 놈도 유진우라는 나는 놈을 만나니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다. 유진우가 복수를 이어가고 있을 때 길게
고요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한복을 입은 노인이 유진우의 앞에서 무릎을 꿇을 때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입을 벌렸다. 안병서가 고개를 숙이게끔 하는 노인이 유진우의 앞에서 무릎을 꿇다니!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게다가 하인이 주인을 만난 상황이라니. 이게 진짜 무슨 상황인가. “어...”양의성은 믿을 수 없어 입만 딱 벌렸다. 유진우가 그저 무술 실력만 좋은 줄 알았는데 이토록 강한 뒷배가 있었다니. 안병서의 지위는 매우 높았다. 하지만 한복을 입은 노인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기도 했다. 그러니 한복을 입은 노인은 지위가 더 높을 것이었다. 그런 인물이 유진우 앞에서 꿇다니! 누군가가 뒤통수를 세게 친 느낌이었다. 평소에 아무 것도 아니던 유진우가 이런 뒷배를 가지고 있다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이때의 조천룡은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노인이 유진우 앞에서 무릎을 꿇은 그 순간부터 그의 정신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유일한 희망마저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희망 대신 절망과 공포가 자리 잡았다. 구세주인 줄 알았던 사람이 유진우의 아래 사람이라니? 젠장! 보통 괴물을 건드린 게 아니었다. 양의성과 조천룡과는 다르게 조웅은 이미 죽을 각오를 마친 상태였다. 유진우의 신분을 안 그 순간부터 그는 자기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만약 반항한다면 죽는 것은 그뿐이 아니라 그의 전체 가족일 것이었다. “도련님, 10년만입니다... 소인, 드디어 도련님을 찾았습니다!”용복 어르신은 바닥에 꿇은 채 눈물을 흘렸다. 전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유진우는 미동 없이 차가운 표정으로 얘기했다.“꺼져!”두 글자를 내뱉은 유진우는 용복 어르신을 무시하고 그대로 조천룡 앞에 걸어갔다. 그는 살기로 가득한 상태였다. “죽, 죽이지마... 제발 죽이지마... 날 살려준다면 뭐든지 다 할게!”조천룡은 놀란 나머지 소변을 지린 상태로 머리를 조아렸다.
이틀 후, 평안 의원. 기절해 있던 이청아는 드디어 깨어났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평범한 방이었다.테이블 하나, 의자 두 개 그리고 침대까지.살짝 익숙했다. 마치 전에 와 본 것처럼.“일어났어?”이때 유진우가 손에 쇠고기 야채죽을 든 채 들어왔다.별거 아니었지만 이틀을 연속 굶은 이청아에게는 꽤 유혹적이었다.그리고 그녀의 배에서도 꼬르륵 소리가 났다. “네가 날 구해준 거야?”이청아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먼저 물었다. “네가 다친 채로 길가에 있는 것을 주워 왔을 뿐이야.”유진우가 담담하게 얘기했다. “주워 와?”이청아는 눈썹을 찌푸리며 묻다가 그제야 또 물었다. “아, 나 얼마나 쓰러져 있었어? 조씨 가문은 지금 무슨 상황이야? 내 부모님은 괜찮으시고?”연이은 질문 폭탄에 유진우는 골치가 아팠다.그저 일일이 대답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넌 이틀을 기절해 있었고 가족은 다 괜찮아. 조씨 가문은 이미 불에 타서 다 사라졌어.”가족이 무사하다는 소리에 이청아는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곧 놀라서 되물었다. “불에 탔다고? 무슨 일이야?”“자세히는 모르는데 가스가 샜나 봐. 조씨 가문의 이삼십 명 되는 사람들이 다 화재에서 죽었다고 하더라고.”유진우가 대답했다. “가스가 새? 이렇게 타이밍 좋게?”이청아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 “다 자업자득이야. 그동안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 이렇게 된 거지.”유진우가 대답했다. 그러자 이청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시름을 놓았다. 조씨 가문이 없어지면 보복당할 위험도 없었다. “됐어. 그만 생각하고 죽부터 먹어.”유진우는 쇠고기 야채죽을 건넸다. “고마워.”배가 고픈 이청아는 거절하지 않고 죽을 건네받은 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따뜻한 죽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런데도 아쉬운 것인지 이청아가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내가 가서 한 그릇 더 가져올게.”유진우는 가서 또 한 그릇 떠왔다. 이청아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두 번째 그릇도 다 먹어버렸다. 뜨끈한 죽이 위를
“왕비님 말씀이 맞습니다. 비록 세자 전하께서 뛰어나다고는 하시지만 너무 젊으셔서 유태범과 같은 노련한 상대에게는 승산이 낮죠.”한참을 생각하던 장범규가 말했다.유장혁은 천재 중의 천재였지만 유태범도 단순한 인물이 아니었다.20여 년간 더 수련했다는 점에서 그 차이가 더 컸다.그래서 누가 승기를 거머쥘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저는 다른 의견이네요.”은성종이 다시 입을 열었다.“은 제후는 세자 전하 승산이 더 높다고 생각하시나요?”주한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맞습니다.”은성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왕께서는 함부로 내기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이 상황을 예상하시고 대비를 하신 분인데 100%의 확률이 없다면 내기도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러니 저희는 왕의 판단을 믿어야 합니다.”“그렇다고는 해도 무력 대결에서는 변수가 많습니다. 특히 동급의 강자들 사이에서는 작은 실수 하나로도 전세를 뒤집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는 누구도 승패를 예측할 수 없죠. 아무리 왕이라고 해도 그것까지는 예상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장범규가 반박했다.“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단순히 왕 때문만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은성종이 말했다.“그렇습니까? 어떤 이유가 있죠?”장범규가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혹시 경천 랭킹에 대하여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은성종이 갑자기 되물었다.“못 들어봤네요.”장범규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장범규는 비록 군사 경험은 풍부했지만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알고 있습니다.”주한휘가 갑자기 끼어들었다.“경천 랭킹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제일 권위 있는 랭킹이잖아요. 거기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모두 최강의 무공을 지닌 인물들이잖아요. 제가 알기로는 경천 랭킹 상위 3명은 용호산 장선기, 용각 각주 이원무 그리고 서경 검선 백준이라고 알고 있어요.”“뭐라고요? 검선 백준이 겨우 3위에요?”장범규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그의 눈에 백준은 단지 서경의
“건방지구나!”유태범이 눈을 치켜떴다.“같은 대 마스터 급의 강자인데 내가 몇십 년간 쌓아온 것이 젊은 네 놈에게 비길 수 없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삼촌께서 이렇게 고집을 부리시니 저도 더 이상 예의를 차릴 수 없겠네요. 그럼 시작하시죠.”유진우는 한 손을 내밀며 초대하는 듯한 제스처를 했다.“받아라!”유태범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발을 구르며 몸을 날려 강력한 공격을 시작했다.유태범의 칼법은 빠르고 강력했다. 그의 모든 칼은 치명적이며 모두 주요 부위를 겨누고 있었다.비록 화려한 기술은 없지만 실용적이고 빈틈이 없었다.유태범은 타고난 천재성을 바탕으로 오랜 전장의 경험과 여러 가지 정교한 칼법을 융합했다.지금의 그는 수많은 기법을 받아들여 단점을 극복해 가며 자신의 독창적인 칼법을 창조했다.그 칼법으로 그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사람을 공격했다.속도는 빨랐고 공격은 정확했으며 흉포하고 당할 수 없는 기세를 내뿜었다.유태범의 강력한 공세에 유진우는 빠르게 피하며 움직였다.그는 마치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불규칙하게 이동하며 상대를 뚫을 기회를 엿봤다.두 사람은 공격을 주고받으며 치열한 공방을 이어갔다.주위 사람들은 눈을 떼지 못하고 그들의 싸움을 놀라운 시선으로 지켜봤다.전투가 너무 치열하여 사람들은 다치지 않기 위해 모두 거리를 두고 넓은 공간을 남겨두었다.두 사람은 모두 대 마스터 급의 강자였으니 한 번의 타격으로도 산을 깎거나 바위를 쪼갤 수 있었다.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건 고사하고라도 싸움의 여파만으로도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다.“유태범의 실력이 이렇게 강한 줄은 몰랐네요. 대 마스터의 수준에 도달하고 전투 경험도 풍부하니 진우도 어려운 싸움이 되겠어요.”이의진은 눈을 좁히며 전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했다.그녀는 자신의 실력으로 겨우 두 사람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두 사람의 움직임은 너무 빨라서 따라잡기가 거의 불가능했다.“유태범 저 개자식, 정말 실력을 숨겨 놓고 있었네. 10년 전만 해도 우리와
“나쁜 놈! 돌아왔으면서 계속 숨어 있다니. 내가 이렇게 너를 끌어내 오지 않았다면 네가 모습이나 드러냈겠어?”유만수가 툴툴거리며 말했다.“됐어요.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시고 죽은 척한 것도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지금은 먼저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하죠.”유진우의 날카로운 시선이 유태범을 빠르게 스쳤다.유만수는 호룡각의 잔당에게 암살을 당했고 유태범은 즉시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빼앗으려 했었다. 그래서 그는 유태범이 호룡각의 잔당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반란이든 호룡각 잔당과의 결탁이든 그의 눈에는 모두 큰 죄였다.“유장혁!”충격을 받은 유태범의 얼굴은 곧 음침하게 변했다.그는 갑자기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았다.유만수는 분명히 유장혁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아까 그렇게 쉽게 승낙한 이유도 유장혁의 실력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유태범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비록 10년 만에 다시 만나지만 유장혁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뛰어난 존재로 성장했다.제갈영군을 물리친 것만 봐도 그의 실력이 평범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제갈영군의 실력은 이미 대 마스터에 근접해 있었고 전체 서경을 놓고 보더라도 손에 꼽히는 실력자였다.하여 그가 제갈영군을 물리친 것만 봐도 그의 실력이 대 마스터 수준에 가까운 것을 알 수 있었다.‘20대의 나이에 대 마스터라니... 정말 무서운 재능이야.’‘오늘 유장혁을 처리하지 않으면 계속 성장할 거야. 내가 서경왕이 되어도 매일 두려움에 떨며 살게 되겠지.’대 마스터 급의 강자는 살해에 실패하더라도 쉽게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삼촌,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습니까?”유진우가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니 네가 이렇게 성장할 줄은 몰랐다. 그냥 봤으면 못 알아볼 뻔했어.”유태범은 눈매를 좁히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삼촌, 그만두세요.”유진우가 담담히 말했다.“삼촌께서 정말 뉘우치신다면 어른인 점을 고려해서 유만수에게 부탁해서 죽음만은 면하게 해드릴 수 있어요.”
‘굳이 죽으러 나설 필요는 없지.’“흥! 그래도 분수는 제대로 아는 모양이야!”유태범이 냉소를 띠며 말했다.“유만수, 네 막내아들은 이미 물러섰어. 그렇다면 네 장남은 어디 있단 말이야?”“장혁아, 그동안 숨어있느라 고생 많았다. 이제 모습을 드러낼 때가 되지 않았느냐?”유만수가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그는 장남 유장혁을 한 번도 본 적 없었지만 그 존재는 알고 있었다.지난번 소현무의 사건 역시 유장혁의 제보 덕분에 해결할 수 있었다.지금처럼 왕부에 큰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의 성격상 방관만 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누가 늙은 여우 아니랄까봐... 유태범만 속인 게 아니라 모두를 속였네요. 이제 와서 저를 방패막이로 세우겠다니. 이대로 되는 거예요?”잠시 망설이던 유진우는 결국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 던졌다.유만수가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왕부의 대세는 아직 굳건했다.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나서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다.억지로 몰린 기분이긴 했지만 유진우도 유만수가 자신을 위한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오늘이 바로 권위를 세울 최고의 기회였기 때문이다.흑룡군 장교들이 모두 지켜보는 자리에서 표기대장군 유태범을 쓰러뜨린다면 이후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 길이 한층 수월해질 것이었다.“뭐라고? 저 사람이 유장혁이라고?”유진우의 정체를 본 이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조금 전 제갈영군을 쓰러뜨린 신비로운 고수가 바로 10년간 자취를 감췄던 유장혁이었다.그가 나타난 충격은 죽었던 유만수가 다시 돌아온 사실 못지않았다.‘누가 부자 사이 아니랄까 봐... 하나같이 교활해.’“너라고? 어떻게 된 일이야!”유태범의 얼굴이 굳어졌다.그는 유장혁이 사라진 줄로만 알았지 바로 곁에서 숨어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게다가 그의 강력한 실력은 자신조차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만들었다.“여러분, 죄송합니다. 신분을 숨긴 건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정체를 드러낸 유
“공정한 경쟁이라고?”유만수의 말이 떨어지자 주위 사람들은 일제히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누구도 유만수가 이런 말을 꺼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이미 형세가 뒤집혀 흑용군 고급 장교들에게 명령만 내리면 유태범을 체포해 이번 반란 위기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었다.그런데도 유만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유태범에게 반격의 기회를 주었다.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여보...”이의진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유만수가 손을 들어 제지하며 말했다.“걱정하지 말거라. 내게도 나름대로 계획이 있으니.”“유만수... 정말 네 아들과 나를 공정하게 경쟁시키겠다는 거야?”유태범은 다소 놀란 표정을 했다.방금까지만 해도 목숨을 걸 각오하고 있었는데 설마 유만수가 이렇게 공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울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대체 무슨 꿍꿍이지?’“네가 공정을 원한다면 그 기회를 주겠다. 내 결정을 납득할 수 있도록 처참하게 질 것이다.”유만수가 담담하게 말했다.“좋아! 당신이 한 말이야?”유태범은 눈을 가늘게 뜨며 기뻐했다.“우리 서경은 무위를 중요시하는 곳이지. 새로운 왕이 되려면 강한 실력이 있어야 마땅해. 그러니 군대의 규칙으로 경쟁하는 게 어때? 이긴 자가 왕이 되는 거지!”“유태범! 정말 뻔뻔하구나!”유태범의 말을 들은 이의진이 참다못해 소리쳤다.“너는 전장에서 오랜 경험을 쌓으며 무력 면에서 뛰어나다. 서경에서 너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데도 네 강점을 내세워 경쟁한다니 이게 공정이라고 할 수 있겠어?”“이 세상은 본디 강자가 존중받는 곳이다. 특히 서경에서는 더더욱 그렇지. 강한 실력이 없다면 수많은 장교를 어떻게 다스릴 수 있겠어? 설마 서경의 왕이 연약한 선비일 수 있다고 생각해?”유태범이 태연히 대꾸했다.“맞아! 우리도 절대로 약자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을 거야!”제갈영군도 이에 동조했다.“누구든 실력이 강한 자가 왕이 될 수 있었다면 이 세상은 이미 혼란에 빠졌을 거야!”이의진이 반박했다.
“태범아, 우리는 한 가족이다. 네가 칼을 내려놓는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유만수가 담담히 말했다.“왜? 왜 아직도 죽지 않은 거예요? 이미 중병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할 텐데... 왜 아직도 서경 왕 자리를 계속 차지하려고 하는 거냐고요!”유태범이 이를 악물며 외쳤다.눈에 핏줄이 선명히 드러난 유태범의 표정은 완전히 흉포해 보였다.“태범아, 네 성격은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너는 문무를 겸비했고 확실히 재능도 뛰어나지. 하지만 너는 남을 품을 그릇이 못 돼. 행동 방식이 너무 잔혹해 왕으로서는 적합하지 않아. 그리고 왕이 될 수도 없어.”유만수가 솔직히 말했다.“닥쳐!”유태범은 갑자기 고함쳤다.“너는 수십 년 동안 왕 자리에 앉아 있었고 이제 곧 죽을 거야! 이 자리도 이제는 내가 차지해야 할 때야. 전체 서경을 둘러봐도 나보다 이 자리에 더 적합한 사람이 있나?”“새로운 왕은 이미 정해져 있다. 너는 아니야.”유만수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이미 정했다고? 하하하”유태범이 미친 듯이 웃으며 말했다.“유천우는 겨우 풋내기에 불과해! 재능이나 능력, 권위를 논하더라도 유천우가 나보다 나은 점이 어디 있나? 무슨 자격으로 나와 다투는 거냐!”“내가 말한 사람은 천우가 아니야.”유만수가 담담히 말했다.“천우가 아니면 또 누가 있어? 설마 십 년 동안 실종되었던 유장혁을 말하는 거야?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녀석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거야? 정말 노망이라도 든 거야?”유태범이 가차 없이 비웃었다.“건방지다!”유태범의 말을 들은 홍복홍이 화를 내려고 했으나 유만수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유태범의 고함과 광기에 비해 유만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었다.“태범아, 장혁이는 죽지 않았어. 게다가 아주 잘 지내고 있어. 장혁이는 그 나이대의 나보다 더 뛰어나고 왕으로서도 더 적합해.”유만수가 진지하게 말했다.“죽지 않았다면 어쩔 건데? 나이를 따져보면 유장혁도 유천우보다 몇 살 많지 않아. 결국 그 역시 어린 녀석에
유태범은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그는 온갖 변수를 고려했지만 유만수가 이렇게 멀쩡히 눈앞에 나타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예상치 못한 충격은 견디기 어려웠다.사실 유태범뿐만 아니라 제갈영군을 비롯한 모든 반란군의 고급 장교들 역시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고 얼굴이 창백해졌다.그들이 유태범과 함께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유만수가 죽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만약 유만수가 죽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이런 반역을 감행할 용기는 없었다.“오늘 정말 시끌벅적하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다니...”유만수가 천천히 문밖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군중은 자연스럽게 길을 열어주었다.“어르신! 당신은 분명히...”이의진은 말을 잇지 못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분명히 유만수가 칼에 가슴을 관통당하는 것을 보았고 그의 숨이 멎는 것도 목격했다.게다가 직접 그의 장례식까지 치렀다.그녀는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긴장하지 마. 나는 귀신이 아닌 사람이다.”유만수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암살자의 공격은 내 목숨을 앗아갈 뻔했지만 다행히 진기를 사용해 심장을 보호한 덕에 가까스로 살아날 수 있었다.”“여보! 왜 저희에게 미리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나요? 얼마나 슬퍼했는지 아세요?”이의진은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유만수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는 극심한 슬픔에 빠졌다.그러나 왕부를 지키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며 장례를 치르고 야심을 품은 자들과 치열하게 싸워야만 했다.“의진아, 그동안 고생 많았다.”유만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미소 지었다.“내가 죽은 척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상처를 회복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내가 죽은 뒤 왕부와 서경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이다.”여기까지 말한 유만수는 갑자기 유태범 일행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안타깝게도 일이 내가 원하던 대로는 잘 풀리지
‘홍복홍을 계속 저대로 두면 병사들의 사기가 꺾일 거야.’“이게...”흑룡군의 고급 장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망설였다.홍복홍도 한때 흑용군의 대장군으로 그 위엄은 위왕 유만수 다음으로 높았다.서부를 평정한 후 그는 은거 생활을 시작했다.하지만 오래된 강교들은 여전히 그의 성과를 기억하고 경외하고 있었다.“뭐 하는 것이야! 귀가 먹었느냐? 아니면 지금 명령을 어기겠다는 거냐!”유태범은 말하며 사령관 병부를 꺼내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병부가 여기 있다! 누가 감히 내 명령을 어기는 것이냐!”“명령에 따르겠습니다!”유태범이 병부를 꺼내 들자 장교들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칼을 뽑아 들고 홍복홍을 포위하기 시작했다.그러나 홍복홍은 뒷짐을 진 채로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위왕께서 여기 계시는데 누가 감히 날뛰는 것이냐!”그때 갑자기 천둥 같은 목소리가 공중에서 폭발하듯 울려 퍼졌다.그 소리는 굉음처럼 전장을 뒤흔들며 모두를 압도했다.모든 병사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왕부의 문 앞에서 한 중년 남자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그는 두 손을 뒤로 하고 있었으며 허리가 약간 굽었고 걸음걸이도 약간 절뚝였다.겉으로 보건대 그 어떤 위엄도 강렬한 기운도 없었다.입고 있는 옷이 아니었다면 누구라도 그를 평범한 농부로 착각했을 것이다.그러나 농부처럼 보이는 중년 남자가 등장하자 전장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등장한 이는 이미 죽었다고 알려진 서경 왕 유만수이었다.“어... 어르신?”익숙한 얼굴을 마주한 이의진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분명 죽은 걸 확인했는데 어떻게 멀쩡히 저기 있는 거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꿈인가?’“아버지?”유천우도 유만수의 등장에 깜짝 놀라며 손에 들고
“여봐라! 당장 저놈을 잡아라!”유진우가 망설임 없이 공격해 오자 유태범은 결국 명령을 내렸다.강한 자가 자신의 편에 서면 당연히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적에게 넘길 수도 없었다.위협은 반드시 사전에 제거해야 했다.“모두 공격하라!”조군영과 고원이 손짓하며 외쳤다.백여 명의 무도 고수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유진우를 포위하며 공격을 감행했다.이들은 모두 흑용군의 장교급 지휘관들로 각자의 실력도 뛰어나거니와 이들이 합심한 힘은 천군만마를 초월했다.“멈춰라!”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하늘에서 유성처럼 땅에 내리꽂히며 번개 같은 속도로 인파 한가운데에 충돌했다.쾅!거대한 폭음과 함께 땅이 갈라지고 먼지가 사방으로 흩어졌다.강력한 충격파가 충돌 지점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며 주변의 무도 고수들을 연이어 물러서게 했다.모두가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비틀거렸다.“누구냐!”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50미터 앞에 화려한 옷을 입고 백발이 섞인 머리를 한 노인이 서 있었다.노인의 표정은 냉담했고 그의 몸 주위에는 붉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짙은 살기는 멀리서도 귀신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한 착각이 일게 했다.등장한 이는 바로 악명 높은 인도, 홍복홍이었다.“홍복홍? 드디어 나타났네!”이의진은 기뻐하며 외쳤다.위왕이 사망한 이후 홍복홍 역시 자취를 감추었었다.며칠 동안 그의 모습은커녕 어떤 연락도 닿지 않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그는 유씨 가문 삼대 고수 중 한 명으로서 진정한 실력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었다.아무도 홍복홍이 얼마나 강한지 몰랐지만 단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눈독 들인 자는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다는 것이었다.“다행입니다! 어르신만 있다면 우리에게도 희망이 생긴 거예요!”갑자기 등장한 홍복홍을 본 장범규는 정신을 차리며 활기를 되찾았다.홍복홍은 전설적인 인물로 위왕이 생전 가장 신뢰하던 조력자였다.비록 평소에는 조용히 지냈지만 그를 과소평가하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인도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