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두 여인은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당당하고 차분하게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몇몇 눈치 빠른 사람들은 두 사람이 몰래 기 싸움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두 여인은 마치 아름다움을 다투는 꽃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날카로웠다.조선미와 비교하면 이청아의 신분이 한참 딸리긴 했지만 전혀 자괴감에 빠지거나 실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투지가 더 불타올랐다.늘 도도한 그녀는 매사에 쉽게 지는 법이 없었다. 그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일일이 헤쳐 나가는 성격이었다.조선미면 어떠한가? 강능의 상업 퀸이면 또 어떠한가?언젠가는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고 심지어 그녀를 넘어설 거라고 다짐했다.“이청아 씨의 풍채를 다들 보셨죠? 이어서 여러분께 다른 젊은 인재를 소개하려 합니다. 이분은 저를 구해줬을 뿐만 아니라 저희 조신 그룹에 많은 도움을 준 귀인입니다.”그 순간 무대 아래가 다시 한번 들끓었다. 서로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는 사람들의 표정에 경악과 호기심이 가득했다.조선미의 눈에 들고 귀인이라고 칭하는 사람이 대체 누구란 말인가?!“의성 도련님, 조선미 씨가 말한 귀인이 설마 도련님은 아니죠?”이현이 슬쩍 한마디 했다. 그는 양의성처럼 뛰어난 청년이어야만 조선미가 말한 인물과 매칭이 된다고 생각했다.“의성아, 네가 바로 조씨 가문의 귀인이었어? 정말 축하해!”장경화는 환하게 웃으며 그 귀인이 바로 양의성이라고 단정 지었다.말문이 막힌 양의성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이 상황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고작 그 주제에 조신 그룹의 귀인이라니,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만약 그런 재주가 있었더라면 회사도 부도 위기에 처하지 않았을 것이다.“설마 그 자식은 아니겠지?”양의성의 뇌리에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이내 부정해 버렸다.‘아니! 그 자식일 리가 없어. 그 쓸모없는 놈이 어떻게 조신 그룹의 귀인이야?’긴장과 기대 가득한 눈빛 속에 잠깐 멈칫하던 조선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자, 그만 뜸 들일게요. 유진우 씨를 무대 위로 모시
“이 대표,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유진우는 일부러 모르는 척 담담하게 말했다.그는 단연코 공을 세워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이 아니었다.이청아와 끝난 사이라 그도 더는 그녀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진짜 너 아니라고?”이청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이 대표, 뭔가 오해했나 본데 나 같은 폐인이 어떻게 이 대표를 도울 수 있겠어?”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괜한 생각을 했나 봐.”이청아의 눈가에 살짝 실망한 기색이 스쳤다.“하긴, 네가 아무 이유 없이 왜 날 돕겠어? 우린 이젠 다 끝난 사이잖아. 게다가 너도 그럴 만한 능력이 없을 테고.”“맞아, 난 돈도 없고 권력도 없으니 양의성과 비할 바가 못 되지. 또 뭐 분부할 거 있어?”유진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없어, 그만 가서 조선미 씨나 돌봐.”이청아가 차갑게 말했다.“그래, 그럼 이만 나가볼게.”유진우도 더 말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그는 일부러 느리게 걷는 조선미를 곧장 따라갔다.“진우 씨, 청아 씨가 아직 진우 씨한테 미련이 남아있나 봐요.”조선미가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미련이요?”유진우는 저 자신을 비웃듯이 대꾸했다.“서로 원한을 맺고 등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에요.”“여자의 마음은 갈대와도 같아 어떤 일은 이청아 씨 본인도 깨닫지 못했을 거예요.”조선미가 미소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아참, 전에 희귀 약재가 조금 모자란다고 했었죠?”“네, 선미 씨가 다 찾았어요?”유진우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건 아니고요. 제가 아는 사람이 한 명 있는데 아마 진우 씨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의학 가문 출신이라 수많은 귀한 약재를 소장하고 있거든요. 어쩌면 그중에 유진우 씨가 필요한 약재가 들어있을지도 모르죠.”조선미가 대답했다.“그래요? 그분이 누구신데요?”유진우가 캐물었다.“나 따라오면 알아요.”조선미는 말을 돌리며 유진우의 손을 잡고 2층 휴게실로 들어갔다.그 시각 휴게실 안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
“어르신, 저는 따로 볼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안도균은 몇 마디 인사를 나눈 후 자리를 뜨려 했다.그는 신의를 보려고 일부러 찾아왔는데 돌팔이를 만나니 더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삼촌, 진우 씨 충고대로 요 며칠 되도록 강능에 남아있으세요. 의외의 사고라도 나면 어떡해요.”조선미가 좋은 뜻으로 말했다.“선미야, 내 일은 걱정할 필요 없다. 너 자신이나 잘 신경 써.”안도균은 문득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너랑 선우희재 씨의 약혼이 코앞인데 그 선우 집안의 도련님 성격으로 네가 딴 남자랑 가까이 있는 걸 싫어할 거야.”조선미는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듣기 싫은 말만 콕 집어서 하네.’“삼촌, 단지 약혼일 뿐 결혼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기껏해야 파혼하면 그만이에요.”조선미가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파혼? 상대는 선우 일가야. 너 파혼하면 뒷감당은 할 수 있겠어?”안도균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뒷감당할 게 뭐가 있어요? 그 집에서 날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요?”조선미가 담담하게 되물었다.“선우 일가에서 너한테는 당연히 어쩌지 않겠지. 다만 네 옆에 있는 이 사람은 과연 내버려 둘까? 너도 선우 일가의 수단을 잘 알 거야. 네가 유진우 씨와 더 가깝게 지낼수록 진우 씨는 위험해져.”안도균이 유진우를 흘겨보며 비꼬듯이 말했다.“칫! 선우희재가 감히 함부로 할까요!”조선미는 싸늘한 말투로 쏘아붙였다.“난 그저 미리 일깨워 줄 뿐이야. 어떻게 할지는 너한테 달렸어.”안도균은 더 말하지 않고 가볍게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선미야, 도균의 말이 맞아. 너랑 선우 일가의 일은 미리 결단내는 게 좋아.”조 어르신이 그녀를 타일렀다.“할아버지, 내가 알아서 할게요.”조선미는 머리를 끄덕였다.그녀는 어릴 때 선우희재와 혼약을 정했지만 단 한 번도 그를 좋아한 적이 없다.좋아하지도 않는데 어찌 결혼할 수 있겠는가?게다가 협력을 위한 결혼은 더 질색이었다!“아가씨, 강천호 씨가 뵙자고 하십니다.”이때 경호원 한 명이 노크
방 선생은 유진우를 힐긋 보더니 두 제자를 데리고 문밖을 나섰다.“진우 씨도 나가 있어요.”조선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진우에게 말했다.유진우는 알겠다며 곧바로 자리를 떴다.양쪽 모두 호흡이 척척 맞았다. 어쩌면 다들 제 속셈을 차리고 있을지도 모른다.“어이, 그쪽이 바로 조선미 씨의 경호원이야? 뭐 별 거 없네!”두 쌍둥이가 유진우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마치 자신들의 사냥감을 훑어보는 듯한 눈빛이었다.“그래? 두고 봐, 곧 알게 될 거야.”유진우는 더 말하지 않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정윤아, 세연아, 너희 둘 따라가서 기회 봐가며 저 녀석 처리해버려.”방 선생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는 유진우와 같은 어린 녀석은 굳이 그가 직접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두 제자가 가뿐히 해결할 수 있을 거로 여겼다.“알겠습니다!”정윤과 세연이 씩 웃으며 조용히 유진우를 따라갔다.유진우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한가롭게 산책하다가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회사가 금방 설립되어 지하주차장을 아직 정식으로 오픈하지 않았다. 주차장 안이 텅 비어 있어 고요한 정적만 흘렀다.“자식! 장소 한번 잘 잡네. 본인 무덤을 파는 거야 뭐야?!”이때 줄곧 뒤따라오던 정윤과 세연이 드디어 앞으로 나왔다.주위에 아무도 없어 손 쓰기 딱 좋았다.“너희들 눈앞의 이익만 탐하고 뒤에 닥칠 위험은 보이지 않지?”유진우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는 마치 이 상황을 진작 예상한 듯싶었다.“누가 할 소리! 뒤에 닥칠 위험은 너나 신경 써야지!”두 사람은 험상궂은 얼굴로 미소를 날렸다.다만 그들이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주차장 입구에서 갑자기 떠들썩한 발소리가 들려왔고 이어서 손에 칼과 쇠파이프를 든 파이터들이 기세등등하게 뛰어왔다.“고작 이게 다야? 우리 두 형제 입가심하기도 부족한데!”정윤과 세연은 씩 웃을 뿐 자신들에게 몰려오는 파이터들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뭐야?”유진우도 의아한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이들 두 사람을 상대하는 데 유진우도 굳이 도움이
“미리 말하는데 먼저 손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후회해도 늦어.”유진우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양의성은 그에게 보잘것없는 피에로일 뿐이니까.“칫! 네가 주먹 좀 쓰는 거 알아. 하지만 홀로 이 많은 사람을 상대할 수 있겠어? 내가 모셔온 분들은 전부 이 바닥 엘리트이고 무기도 쥐고 있어 네가 아무리 날렵해도 사지가 부러질 게 뻔해!”양의성이 쓴웃음을 지었다.맨주먹으로 싸우는 것과 손에 무기를 쥐고 싸우는 건 엄연히 다른 의미였다.양의성은 유진우가 절대 무기의 공격을 당해낼 수 없다고 여겼다!“이봐요!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원한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녀석은 오늘 우리의 사냥감이에요. 그러니까 옆으로 빠져 있어요!”이때 정윤과 세연이 입을 열었다.애초에 그들은 양의성이 유진우의 구세주인 줄 알았는데 한참 듣고 보니 둘은 서로 원수지간이었다.“이건 또 어디서 굴러온 바보들이야? 썩 꺼져. 안 그러면 너희들도 전부 토막 내버릴 테니까!”양의성이 두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우리도 함께 토막 낸다고?”정윤과 세연이 서로 마주 보더니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하하...이렇게 미쳐 날뛰는 사람은 또 오랜만이네. 자, 이리 와봐. 네 부하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볼게!”말을 마친 후 상대를 도발하듯 손가락을 꿈틀거렸다.“X발! 죽고 싶어 환장했어? 전부 다 잘라버려!”양의성은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아 바로 명령을 내렸다!곧이어 쇠파이프와 칼을 든 건장한 사내들이 와르르 몰려들었다.“일단 몸부터 풀자.”정윤과 세연이 입꼬리를 씩 올리고는 앞으로 뛰쳐 갔다.이어서 양의성이 식겁할 상황이 벌어졌다.맨손으로 주먹을 휘두르는 두 쌍둥이는 마치 용맹한 호랑이가 양 무리를 공격하듯 미친 듯이 살육을 펼쳤다.둘은 몸놀림도 빠르고 주먹의 힘도 어마어마했다.그들의 주먹에 맞은 사람들은 전부 바닥에 툭 쓰러졌다.운이 따라주지 않는 일부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가장 섬뜩한 것은 두 사람의 주먹질
“너... 너 대체 정체가 뭐야?!”정윤이 몸을 벌벌 떨며 바닥에서 기어올랐다.그의 얼굴엔 더는 경멸의 뜻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공포와 충격으로 뒤바뀐 듯싶었다.필력으로 날린 주먹 한 방이 상대에게 전혀 먹히지 않을뿐더러 도리어 본인이 중상을 입을 줄이야, 정윤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젠장, 이건 사람이 아니야!’사부님은 그들에게 상대가 보통 무사라고 했는데 대체 왜? 왜 이토록 강하단 말인가?!“형, 얼른 뛰어... 당장 도망가!”순간 벽에 꽂혀있던 세연이 목이 터질 듯 고함을 질렀다.유진우와 맞서 싸운 순간, 그는 이미 상대의 실력이 본인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는 걸 알아챘다.단 한 방으로도 그의 경맥을 산산조각내고 폐인으로 만들어버릴 정도였으니.“으악!”정윤은 내키지 않은 듯 포효했다.이어서 그는 제 동생을 버려두고 줄행랑을 쳤다.그는 아예 동생을 구할 수도 없고 죽을힘을 다해 맞서 싸울 자격조차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았다.만약 유진우가 큰 산이라면 그들은 산기슭의 두 마리 개미 새끼에 불과하다!좀전의 주먹 한 방으로 그는 아예 반항을 포기했다!“사부님께 반드시 알려야 해! 상대가 너무 막강해서 적으로 맞서 싸울 순 없어. 그건 죽음을 자초하는 거나 다름없다고!”정윤은 살고 싶어 발악하며 미친 듯이 주차장을 뛰쳐나갔다.그의 머릿속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사부님께 알리고 당장 강능에서 도망쳐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왜냐하면 유진우는 그들이 평생 건드리지 못할 섬뜩한 존재이니까!유진우는 허겁지겁 도망치는 정윤을 붙잡지 않았다.상대의 내장이 파열되어 죽음뿐이란 걸 잘 알기 때문이다.“당신, 정체가 뭐야? 왜 고작 이렇게 작은 강능에 머물러있어?”세연은 귀신이라도 본 듯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조선미의 옆에 이런 인물이 있었다는 걸 진작 알았다면 그들은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와도 절대 덤벼들지 않았을 것이다.“내가 누군지는 중요치 않아. 지금 바로 기회 줄게. 방 선생에 관련된 정보를 전부 말해
스카이 빌딩, 2층 휴게실.“진우 씨, 어디 다친 데 없죠?”유진우가 문을 열자마자 조선미가 재빨리 마중 나왔다.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에 걱정이 살짝 끼쳤다.“나 괜찮아요.”유진우가 머리를 내저었다.“그 쌍둥이는 이미 다 해결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이에요?”“그 두 명은 강천호 씨의 오른팔, 왼팔이에요. 둘 다 숨졌으니 강천호 씨도 이젠 경계심이 생길 거예요. 잠시 놔두죠. 괜히 궁지로 몰아갔다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잖아요.”조선미가 대답했다.그녀는 아직 강천호와 끝장을 볼 생각은 없었다. 상대에게 교훈을 살짝 주어 알아서 물러나게 하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그래요, 선미 씨가 알아서 해요.”유진우도 더 캐묻지 않았다.“아 참, 진우 씨, 요즘 최대한 피해 다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방금 소식을 접했는데 조훈의 큰형 조웅이 돌아왔대요. 사방에 공개수배를 내려서 살인범을 수색하고 있나 봐요.”조선미가 살짝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서민은 관료와 다투지 않는다.조웅은 적어도 작전 구역의 부장이니 조선미라 해도 조금은 꺼려지게 된다.“말씀 고마워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유진우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부장 관직은 확실히 큰 권력을 지니고 있다.서민들에겐 권력으로 모든 걸 다스리는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이다!다만 유진우는 그다지 두려울 게 없었다....그 시각, 조씨 가문 별장 안에서.조웅은 관 앞에 서서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거실 밖엔 조씨 일가의 멤버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모두가 머리를 푹 숙인 채 찍소리도 못했고 억압된 분위기가 소름 끼칠 따름이었다.조훈이 사망하고 배신자 조민은 감쪽같이 종적을 감췄으며 범인은 아직도 행방불명이었다.조씨 가문 전체가 이 일에 연루돼버렸다.“장군님! 찾았어요!”이때 부관 한 명이 재빨리 걸어왔다.“범인 누구야?”조웅이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쏘아붙였다.“범인이 누군지는 아직 단정 지을 수 없지만 범인과 관련된 자를 이미 찾았어요.”부관이 대답했다.
“헉?!”와르르 몰려든 무장병사들을 보자 모든 이가 충격에 휩싸였다.다들 어리둥절하여 서로를 마주 볼뿐이었다.“장, 장관님, 무슨 일이시죠?”장경화가 눈을 질끈 감고 먼저 질문을 건넸다.일개 서민인 그녀가 언제 이런 웅장한 장면을 보았겠는가?잘못한 것도 없는데 여전히 심장이 빨리 뛰었다.“다시 한번 묻는다. 누가 이청아야?!”위관이 더 굵은 목소리로 사납게 쏘아붙였다.“전데요...”이청아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담담한 척 되물었다.“장관님께서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죠?”“당신이 적을 내통하여 나라를 팔아먹고, 서방 세계에서 침입해 들어온 간첩이라는 유력한 정보를 입수했어! 지금 당장 우리와 함께 돌아가서 조사에 협력하도록 해!”위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적을 내통하여 나라를 팔아먹어?! 간첩?!”모두가 어리둥절해졌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이청아는 강능에서 나고 자란 영락없는 본 지방 사람인데, 그 어떤 불량 성분도 없는 아이인데, 심지어 조상 3대가 소박한 농민 출신인데 다짜고짜 간첩이라니?“장관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우리 딸은 이 사회의 엘리트이고 매년 바치는 세금만 해도 적잖은 액수예요. 게다가 자선활동도 자주 참가하는데 이런 애가 적과 내통하여 나라를 팔아먹다니요?”장경화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맞아요! 우리 누나는 결백해요. 다들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이현도 식탁을 내리치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진위 여부는 우리와 함께 돌아가서 조사해보면 다 나와!”위관이 차갑게 쏘아붙였다.“뭘 더 조사해요? 우리가 다 입증할 수 있어요!”“그래요! 청아는 절대 간첩일 리가 없어요!”뭇사람들은 한마디씩 이어받으며 그녀를 옹호해주었다.이청아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그들이 제일 잘 알았다.비즈니스 업계에서 작은 꼼수를 부렸다면 모를까 적과 내통하여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건 아예 터무니없는 소리였다!“난 명령을 수행할 뿐이야. 감히 방해하는 자는 같은 죄명으로 처벌한다!”위관이 귀찮은
“왕비님 말씀이 맞습니다. 비록 세자 전하께서 뛰어나다고는 하시지만 너무 젊으셔서 유태범과 같은 노련한 상대에게는 승산이 낮죠.”한참을 생각하던 장범규가 말했다.유장혁은 천재 중의 천재였지만 유태범도 단순한 인물이 아니었다.20여 년간 더 수련했다는 점에서 그 차이가 더 컸다.그래서 누가 승기를 거머쥘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저는 다른 의견이네요.”은성종이 다시 입을 열었다.“은 제후는 세자 전하 승산이 더 높다고 생각하시나요?”주한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맞습니다.”은성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왕께서는 함부로 내기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이 상황을 예상하시고 대비를 하신 분인데 100%의 확률이 없다면 내기도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러니 저희는 왕의 판단을 믿어야 합니다.”“그렇다고는 해도 무력 대결에서는 변수가 많습니다. 특히 동급의 강자들 사이에서는 작은 실수 하나로도 전세를 뒤집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는 누구도 승패를 예측할 수 없죠. 아무리 왕이라고 해도 그것까지는 예상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장범규가 반박했다.“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단순히 왕 때문만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은성종이 말했다.“그렇습니까? 어떤 이유가 있죠?”장범규가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혹시 경천 랭킹에 대하여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은성종이 갑자기 되물었다.“못 들어봤네요.”장범규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장범규는 비록 군사 경험은 풍부했지만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알고 있습니다.”주한휘가 갑자기 끼어들었다.“경천 랭킹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제일 권위 있는 랭킹이잖아요. 거기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모두 최강의 무공을 지닌 인물들이잖아요. 제가 알기로는 경천 랭킹 상위 3명은 용호산 장선기, 용각 각주 이원무 그리고 서경 검선 백준이라고 알고 있어요.”“뭐라고요? 검선 백준이 겨우 3위에요?”장범규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그의 눈에 백준은 단지 서경의
“건방지구나!”유태범이 눈을 치켜떴다.“같은 대 마스터 급의 강자인데 내가 몇십 년간 쌓아온 것이 젊은 네 놈에게 비길 수 없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삼촌께서 이렇게 고집을 부리시니 저도 더 이상 예의를 차릴 수 없겠네요. 그럼 시작하시죠.”유진우는 한 손을 내밀며 초대하는 듯한 제스처를 했다.“받아라!”유태범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발을 구르며 몸을 날려 강력한 공격을 시작했다.유태범의 칼법은 빠르고 강력했다. 그의 모든 칼은 치명적이며 모두 주요 부위를 겨누고 있었다.비록 화려한 기술은 없지만 실용적이고 빈틈이 없었다.유태범은 타고난 천재성을 바탕으로 오랜 전장의 경험과 여러 가지 정교한 칼법을 융합했다.지금의 그는 수많은 기법을 받아들여 단점을 극복해 가며 자신의 독창적인 칼법을 창조했다.그 칼법으로 그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사람을 공격했다.속도는 빨랐고 공격은 정확했으며 흉포하고 당할 수 없는 기세를 내뿜었다.유태범의 강력한 공세에 유진우는 빠르게 피하며 움직였다.그는 마치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불규칙하게 이동하며 상대를 뚫을 기회를 엿봤다.두 사람은 공격을 주고받으며 치열한 공방을 이어갔다.주위 사람들은 눈을 떼지 못하고 그들의 싸움을 놀라운 시선으로 지켜봤다.전투가 너무 치열하여 사람들은 다치지 않기 위해 모두 거리를 두고 넓은 공간을 남겨두었다.두 사람은 모두 대 마스터 급의 강자였으니 한 번의 타격으로도 산을 깎거나 바위를 쪼갤 수 있었다.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건 고사하고라도 싸움의 여파만으로도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다.“유태범의 실력이 이렇게 강한 줄은 몰랐네요. 대 마스터의 수준에 도달하고 전투 경험도 풍부하니 진우도 어려운 싸움이 되겠어요.”이의진은 눈을 좁히며 전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했다.그녀는 자신의 실력으로 겨우 두 사람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두 사람의 움직임은 너무 빨라서 따라잡기가 거의 불가능했다.“유태범 저 개자식, 정말 실력을 숨겨 놓고 있었네. 10년 전만 해도 우리와
“나쁜 놈! 돌아왔으면서 계속 숨어 있다니. 내가 이렇게 너를 끌어내 오지 않았다면 네가 모습이나 드러냈겠어?”유만수가 툴툴거리며 말했다.“됐어요.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시고 죽은 척한 것도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지금은 먼저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하죠.”유진우의 날카로운 시선이 유태범을 빠르게 스쳤다.유만수는 호룡각의 잔당에게 암살을 당했고 유태범은 즉시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빼앗으려 했었다. 그래서 그는 유태범이 호룡각의 잔당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반란이든 호룡각 잔당과의 결탁이든 그의 눈에는 모두 큰 죄였다.“유장혁!”충격을 받은 유태범의 얼굴은 곧 음침하게 변했다.그는 갑자기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았다.유만수는 분명히 유장혁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아까 그렇게 쉽게 승낙한 이유도 유장혁의 실력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유태범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비록 10년 만에 다시 만나지만 유장혁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뛰어난 존재로 성장했다.제갈영군을 물리친 것만 봐도 그의 실력이 평범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제갈영군의 실력은 이미 대 마스터에 근접해 있었고 전체 서경을 놓고 보더라도 손에 꼽히는 실력자였다.하여 그가 제갈영군을 물리친 것만 봐도 그의 실력이 대 마스터 수준에 가까운 것을 알 수 있었다.‘20대의 나이에 대 마스터라니... 정말 무서운 재능이야.’‘오늘 유장혁을 처리하지 않으면 계속 성장할 거야. 내가 서경왕이 되어도 매일 두려움에 떨며 살게 되겠지.’대 마스터 급의 강자는 살해에 실패하더라도 쉽게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삼촌,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습니까?”유진우가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니 네가 이렇게 성장할 줄은 몰랐다. 그냥 봤으면 못 알아볼 뻔했어.”유태범은 눈매를 좁히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삼촌, 그만두세요.”유진우가 담담히 말했다.“삼촌께서 정말 뉘우치신다면 어른인 점을 고려해서 유만수에게 부탁해서 죽음만은 면하게 해드릴 수 있어요.”
‘굳이 죽으러 나설 필요는 없지.’“흥! 그래도 분수는 제대로 아는 모양이야!”유태범이 냉소를 띠며 말했다.“유만수, 네 막내아들은 이미 물러섰어. 그렇다면 네 장남은 어디 있단 말이야?”“장혁아, 그동안 숨어있느라 고생 많았다. 이제 모습을 드러낼 때가 되지 않았느냐?”유만수가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그는 장남 유장혁을 한 번도 본 적 없었지만 그 존재는 알고 있었다.지난번 소현무의 사건 역시 유장혁의 제보 덕분에 해결할 수 있었다.지금처럼 왕부에 큰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의 성격상 방관만 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누가 늙은 여우 아니랄까봐... 유태범만 속인 게 아니라 모두를 속였네요. 이제 와서 저를 방패막이로 세우겠다니. 이대로 되는 거예요?”잠시 망설이던 유진우는 결국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 던졌다.유만수가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왕부의 대세는 아직 굳건했다.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나서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다.억지로 몰린 기분이긴 했지만 유진우도 유만수가 자신을 위한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오늘이 바로 권위를 세울 최고의 기회였기 때문이다.흑룡군 장교들이 모두 지켜보는 자리에서 표기대장군 유태범을 쓰러뜨린다면 이후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 길이 한층 수월해질 것이었다.“뭐라고? 저 사람이 유장혁이라고?”유진우의 정체를 본 이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조금 전 제갈영군을 쓰러뜨린 신비로운 고수가 바로 10년간 자취를 감췄던 유장혁이었다.그가 나타난 충격은 죽었던 유만수가 다시 돌아온 사실 못지않았다.‘누가 부자 사이 아니랄까 봐... 하나같이 교활해.’“너라고? 어떻게 된 일이야!”유태범의 얼굴이 굳어졌다.그는 유장혁이 사라진 줄로만 알았지 바로 곁에서 숨어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게다가 그의 강력한 실력은 자신조차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만들었다.“여러분, 죄송합니다. 신분을 숨긴 건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정체를 드러낸 유
“공정한 경쟁이라고?”유만수의 말이 떨어지자 주위 사람들은 일제히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누구도 유만수가 이런 말을 꺼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이미 형세가 뒤집혀 흑용군 고급 장교들에게 명령만 내리면 유태범을 체포해 이번 반란 위기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었다.그런데도 유만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유태범에게 반격의 기회를 주었다.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여보...”이의진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유만수가 손을 들어 제지하며 말했다.“걱정하지 말거라. 내게도 나름대로 계획이 있으니.”“유만수... 정말 네 아들과 나를 공정하게 경쟁시키겠다는 거야?”유태범은 다소 놀란 표정을 했다.방금까지만 해도 목숨을 걸 각오하고 있었는데 설마 유만수가 이렇게 공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울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대체 무슨 꿍꿍이지?’“네가 공정을 원한다면 그 기회를 주겠다. 내 결정을 납득할 수 있도록 처참하게 질 것이다.”유만수가 담담하게 말했다.“좋아! 당신이 한 말이야?”유태범은 눈을 가늘게 뜨며 기뻐했다.“우리 서경은 무위를 중요시하는 곳이지. 새로운 왕이 되려면 강한 실력이 있어야 마땅해. 그러니 군대의 규칙으로 경쟁하는 게 어때? 이긴 자가 왕이 되는 거지!”“유태범! 정말 뻔뻔하구나!”유태범의 말을 들은 이의진이 참다못해 소리쳤다.“너는 전장에서 오랜 경험을 쌓으며 무력 면에서 뛰어나다. 서경에서 너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데도 네 강점을 내세워 경쟁한다니 이게 공정이라고 할 수 있겠어?”“이 세상은 본디 강자가 존중받는 곳이다. 특히 서경에서는 더더욱 그렇지. 강한 실력이 없다면 수많은 장교를 어떻게 다스릴 수 있겠어? 설마 서경의 왕이 연약한 선비일 수 있다고 생각해?”유태범이 태연히 대꾸했다.“맞아! 우리도 절대로 약자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을 거야!”제갈영군도 이에 동조했다.“누구든 실력이 강한 자가 왕이 될 수 있었다면 이 세상은 이미 혼란에 빠졌을 거야!”이의진이 반박했다.
“태범아, 우리는 한 가족이다. 네가 칼을 내려놓는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유만수가 담담히 말했다.“왜? 왜 아직도 죽지 않은 거예요? 이미 중병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할 텐데... 왜 아직도 서경 왕 자리를 계속 차지하려고 하는 거냐고요!”유태범이 이를 악물며 외쳤다.눈에 핏줄이 선명히 드러난 유태범의 표정은 완전히 흉포해 보였다.“태범아, 네 성격은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너는 문무를 겸비했고 확실히 재능도 뛰어나지. 하지만 너는 남을 품을 그릇이 못 돼. 행동 방식이 너무 잔혹해 왕으로서는 적합하지 않아. 그리고 왕이 될 수도 없어.”유만수가 솔직히 말했다.“닥쳐!”유태범은 갑자기 고함쳤다.“너는 수십 년 동안 왕 자리에 앉아 있었고 이제 곧 죽을 거야! 이 자리도 이제는 내가 차지해야 할 때야. 전체 서경을 둘러봐도 나보다 이 자리에 더 적합한 사람이 있나?”“새로운 왕은 이미 정해져 있다. 너는 아니야.”유만수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이미 정했다고? 하하하”유태범이 미친 듯이 웃으며 말했다.“유천우는 겨우 풋내기에 불과해! 재능이나 능력, 권위를 논하더라도 유천우가 나보다 나은 점이 어디 있나? 무슨 자격으로 나와 다투는 거냐!”“내가 말한 사람은 천우가 아니야.”유만수가 담담히 말했다.“천우가 아니면 또 누가 있어? 설마 십 년 동안 실종되었던 유장혁을 말하는 거야?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녀석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거야? 정말 노망이라도 든 거야?”유태범이 가차 없이 비웃었다.“건방지다!”유태범의 말을 들은 홍복홍이 화를 내려고 했으나 유만수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유태범의 고함과 광기에 비해 유만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었다.“태범아, 장혁이는 죽지 않았어. 게다가 아주 잘 지내고 있어. 장혁이는 그 나이대의 나보다 더 뛰어나고 왕으로서도 더 적합해.”유만수가 진지하게 말했다.“죽지 않았다면 어쩔 건데? 나이를 따져보면 유장혁도 유천우보다 몇 살 많지 않아. 결국 그 역시 어린 녀석에
유태범은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그는 온갖 변수를 고려했지만 유만수가 이렇게 멀쩡히 눈앞에 나타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예상치 못한 충격은 견디기 어려웠다.사실 유태범뿐만 아니라 제갈영군을 비롯한 모든 반란군의 고급 장교들 역시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고 얼굴이 창백해졌다.그들이 유태범과 함께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유만수가 죽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만약 유만수가 죽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이런 반역을 감행할 용기는 없었다.“오늘 정말 시끌벅적하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다니...”유만수가 천천히 문밖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군중은 자연스럽게 길을 열어주었다.“어르신! 당신은 분명히...”이의진은 말을 잇지 못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분명히 유만수가 칼에 가슴을 관통당하는 것을 보았고 그의 숨이 멎는 것도 목격했다.게다가 직접 그의 장례식까지 치렀다.그녀는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긴장하지 마. 나는 귀신이 아닌 사람이다.”유만수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암살자의 공격은 내 목숨을 앗아갈 뻔했지만 다행히 진기를 사용해 심장을 보호한 덕에 가까스로 살아날 수 있었다.”“여보! 왜 저희에게 미리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나요? 얼마나 슬퍼했는지 아세요?”이의진은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유만수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는 극심한 슬픔에 빠졌다.그러나 왕부를 지키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며 장례를 치르고 야심을 품은 자들과 치열하게 싸워야만 했다.“의진아, 그동안 고생 많았다.”유만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미소 지었다.“내가 죽은 척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상처를 회복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내가 죽은 뒤 왕부와 서경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이다.”여기까지 말한 유만수는 갑자기 유태범 일행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안타깝게도 일이 내가 원하던 대로는 잘 풀리지
‘홍복홍을 계속 저대로 두면 병사들의 사기가 꺾일 거야.’“이게...”흑룡군의 고급 장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망설였다.홍복홍도 한때 흑용군의 대장군으로 그 위엄은 위왕 유만수 다음으로 높았다.서부를 평정한 후 그는 은거 생활을 시작했다.하지만 오래된 강교들은 여전히 그의 성과를 기억하고 경외하고 있었다.“뭐 하는 것이야! 귀가 먹었느냐? 아니면 지금 명령을 어기겠다는 거냐!”유태범은 말하며 사령관 병부를 꺼내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병부가 여기 있다! 누가 감히 내 명령을 어기는 것이냐!”“명령에 따르겠습니다!”유태범이 병부를 꺼내 들자 장교들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칼을 뽑아 들고 홍복홍을 포위하기 시작했다.그러나 홍복홍은 뒷짐을 진 채로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위왕께서 여기 계시는데 누가 감히 날뛰는 것이냐!”그때 갑자기 천둥 같은 목소리가 공중에서 폭발하듯 울려 퍼졌다.그 소리는 굉음처럼 전장을 뒤흔들며 모두를 압도했다.모든 병사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왕부의 문 앞에서 한 중년 남자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그는 두 손을 뒤로 하고 있었으며 허리가 약간 굽었고 걸음걸이도 약간 절뚝였다.겉으로 보건대 그 어떤 위엄도 강렬한 기운도 없었다.입고 있는 옷이 아니었다면 누구라도 그를 평범한 농부로 착각했을 것이다.그러나 농부처럼 보이는 중년 남자가 등장하자 전장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등장한 이는 이미 죽었다고 알려진 서경 왕 유만수이었다.“어... 어르신?”익숙한 얼굴을 마주한 이의진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분명 죽은 걸 확인했는데 어떻게 멀쩡히 저기 있는 거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꿈인가?’“아버지?”유천우도 유만수의 등장에 깜짝 놀라며 손에 들고
“여봐라! 당장 저놈을 잡아라!”유진우가 망설임 없이 공격해 오자 유태범은 결국 명령을 내렸다.강한 자가 자신의 편에 서면 당연히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적에게 넘길 수도 없었다.위협은 반드시 사전에 제거해야 했다.“모두 공격하라!”조군영과 고원이 손짓하며 외쳤다.백여 명의 무도 고수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유진우를 포위하며 공격을 감행했다.이들은 모두 흑용군의 장교급 지휘관들로 각자의 실력도 뛰어나거니와 이들이 합심한 힘은 천군만마를 초월했다.“멈춰라!”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하늘에서 유성처럼 땅에 내리꽂히며 번개 같은 속도로 인파 한가운데에 충돌했다.쾅!거대한 폭음과 함께 땅이 갈라지고 먼지가 사방으로 흩어졌다.강력한 충격파가 충돌 지점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며 주변의 무도 고수들을 연이어 물러서게 했다.모두가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비틀거렸다.“누구냐!”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50미터 앞에 화려한 옷을 입고 백발이 섞인 머리를 한 노인이 서 있었다.노인의 표정은 냉담했고 그의 몸 주위에는 붉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짙은 살기는 멀리서도 귀신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한 착각이 일게 했다.등장한 이는 바로 악명 높은 인도, 홍복홍이었다.“홍복홍? 드디어 나타났네!”이의진은 기뻐하며 외쳤다.위왕이 사망한 이후 홍복홍 역시 자취를 감추었었다.며칠 동안 그의 모습은커녕 어떤 연락도 닿지 않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그는 유씨 가문 삼대 고수 중 한 명으로서 진정한 실력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었다.아무도 홍복홍이 얼마나 강한지 몰랐지만 단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눈독 들인 자는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다는 것이었다.“다행입니다! 어르신만 있다면 우리에게도 희망이 생긴 거예요!”갑자기 등장한 홍복홍을 본 장범규는 정신을 차리며 활기를 되찾았다.홍복홍은 전설적인 인물로 위왕이 생전 가장 신뢰하던 조력자였다.비록 평소에는 조용히 지냈지만 그를 과소평가하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인도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