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여자라고 경고했었다.“과찬입니다.”이청아가 예의 바르게 웃었다.“청아 씨, 좋은 소식 하나 더 알려줄게요.”그때 양의성이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아까 도현 도련님이 그러는데 오늘 개업식에 조씨 가문의 아가씨도 직접 오신대요.”“그래요? 너무 잘됐네요!”이청아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기뻐했다. 계약을 체결하든 새 회사에 관한 일을 상의하든 전부 조신 그룹의 이사가 나서서 처리한 바람에 아직 조씨 가문의 아가씨를 만난 적이 없었다.물론 조선미의 이름을 들은 적은 있었다.조 어르신이 물러난 후로 그녀가 조씨 가문 전체를 책임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 조씨 가문을 나날이 번창하게 했고 전보다 훨씬 더 좋은 성과를 이루었다.어찌 보면 두 사람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그녀는 조선미를 자신이 따라잡아야 할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만난 적이 없어 늘 아쉬웠다.그런 조선미가 오늘 직접 현장에 온다고 하니 저도 모르게 기대되었다. 상업 퀸의 카리스마가 어떤지 제대로 보고 싶었다.“누나, 조선미 씨가 강능의 4대 미녀 중 한 명이라던데 엄청 예쁘겠지? 두 사람 만나면 나한테 좀 소개해 줄 수 있어?”이현이 기대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았다.“그래그래. 이현이 나이도 적지 않은데 장가갈 때가 됐어. 조씨 가문의 아가씨라면 데릴사위로 보낸다고 해도 좋아!”장경화는 정신이 번쩍 드는 것만 같았다.“엄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조선미 씨가 이현이를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있겠어요?”이청아가 가차 없이 딱 잘랐다.“무슨 말을 그렇게 해? 우리 이현이가 어때서? 젊고 힘도 세고 잘생겼잖아. 그 아가씨랑 딱이네, 뭐.”장경화가 또박또박 말했다.“그러니까 말이야. 내 몸매 좀 봐.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내 근육질 몸매에 반했는지 몰라.”그러더니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다짜고짜 팔근육을 보여줬다.두 사람의 모습에 이청아는 어이가 없었다. 그들을 이곳에 괜히 데려온
“저 여자였어?!”무대 위로 올라온 조선미를 보자마자 이청아는 그대로 넋이 나갔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늘 만나길 기대했던 조신 그룹의 아가씨가 그녀와 맞서던 여자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엄마, 그 여우 년 아니야? 저 여자가 왜 올라가?”두 눈을 부릅뜬 이현이 아직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설... 설마... 저 여자가 바로 조신 그룹의 아가씨야?”장경화는 화들짝 놀란 나머지 입까지 파르르 떨었다. 눈앞의 여우가 조씨 가문의 딸이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왜? 왜 저 여자냐고!”그때 양의성도 벼락을 맞은 것처럼 낯빛이 사색이 되었고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유진우 옆에 있던 여자가 강능의 상업 퀸이자 많은 이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 존재라는 걸 전혀 예상치 못했다.전에 자신이 저질렀던 짓이 뇌리에 스쳐 지나가면서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어떡하지? 이미 조선미 씨한테 밉보였어.’“의성아, 전에 조선미 씨를 만난 적이 있었어?”그때 옆에 있던 안도현이 수상함을 눈치채고 물었다.“있... 있어요. 게다가 불쾌한 일도 있었어요.”양의성이 부들부들 떨며 침을 꿀꺽 삼켰다.“감히 조선미 씨를 건드려? 너도 참 대단하다!”안도현은 마치 곧 죽을 사람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조선미가 오늘 이 자리에 앉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겠는가, 절대 만만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도련님, 전에는 제가 눈이 멀어서 아가씨를 건드리고 말았어요. 이따가 아가씨한테 제 말 좀 잘해주실 수 있어요?”양의성이 부들부들 떨며 안도현의 손을 덥석 잡았다.“양의성, 이런 일은 나도 못 도와줘. 스스로 살길을 도모해.”안도현은 양의성을 매정하게 뿌리치고는 자리를 떠났다. 한낱 볼품없는 사람 때문에 조선미를 건드린다는 건 바보나 할 짓이었다.“망했어...”안도현의 단호한 뒷모습에 양의성의 낯빛이 사색이 되었다.조선미가 넓은 아량으로 너그러이 용서해 주면 모를까, 만약 복수라도 한다면 말 한마디만으로도
“아주 좋아. 그럼 하루빨리 해결해. 더는 다른 예상치 못한 일이 있어선 안 돼!”강천호의 표정이 그제야 조금 풀렸다.“걱정하지 마. 내 두 제자가 직접 나서면 저 사람은 무조건 죽은 목숨이야!”방 선생이 덤덤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휴대 전화를 꺼내 문자를 보냈다.그 시각, 시끌벅적한 무대 아래와 달리 무대 위의 조선미는 무척이나 침착했다.“일단 저희 회사 개업식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조선미는 마이크를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침착하고 엄청난 카리스마와 도도한 눈빛이 더해지니 한 나라를 다스리는 여왕과도 같았다.“다들 아시다시피 저희 조신 그룹에 새로운 사업 파트너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조신 그룹의 일부 사업은 새 파트너의 손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주변을 쭉 살피던 조선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조신 그룹의 새 파트너가 대체 누구인지 다들 궁금하시죠? 조급해하지 말아요. 곧 여러분께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청아 씨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여러분 큰 박수로 맞이해 주십시오!”조선미가 먼저 손뼉을 치기 시작하자 곧바로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청아야, 네 차례야!”가장 먼저 반응한 장경화가 그녀를 툭툭 쳤다. 이청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비록 조선미의 정체에 여간 놀란 건 아니지만 지금의 그녀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한 걸음 한 걸음 무대 위로 올라갔다.“어머! 또 미녀네? 오늘 안구 정화 제대로 하는구나!”“두 분 다 예쁘지만 스타일이 달라. 양쪽에 저런 여자를 끼고 잘 수만 있다면 수명 10년과 바꾼다고 해도 기꺼이 바꿀 수 있어!”“젠장! 어떤 남자여야만 저런 미인을 차지할 자격이 있을까?”이청아가 무대에 오르자 현장이 다시 한번 들썩거리기 시작했다.조선미만으로도 충분히 이목을 끄는데 이청아가 나타나자 현장 분위기가 더욱 뜨거워졌다. 두 미녀가 동시에 무대 위에 있는 모습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또 만났네요, 이청아 씨.”조선미가
무대 위 두 여인은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당당하고 차분하게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몇몇 눈치 빠른 사람들은 두 사람이 몰래 기 싸움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두 여인은 마치 아름다움을 다투는 꽃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날카로웠다.조선미와 비교하면 이청아의 신분이 한참 딸리긴 했지만 전혀 자괴감에 빠지거나 실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투지가 더 불타올랐다.늘 도도한 그녀는 매사에 쉽게 지는 법이 없었다. 그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일일이 헤쳐 나가는 성격이었다.조선미면 어떠한가? 강능의 상업 퀸이면 또 어떠한가?언젠가는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고 심지어 그녀를 넘어설 거라고 다짐했다.“이청아 씨의 풍채를 다들 보셨죠? 이어서 여러분께 다른 젊은 인재를 소개하려 합니다. 이분은 저를 구해줬을 뿐만 아니라 저희 조신 그룹에 많은 도움을 준 귀인입니다.”그 순간 무대 아래가 다시 한번 들끓었다. 서로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는 사람들의 표정에 경악과 호기심이 가득했다.조선미의 눈에 들고 귀인이라고 칭하는 사람이 대체 누구란 말인가?!“의성 도련님, 조선미 씨가 말한 귀인이 설마 도련님은 아니죠?”이현이 슬쩍 한마디 했다. 그는 양의성처럼 뛰어난 청년이어야만 조선미가 말한 인물과 매칭이 된다고 생각했다.“의성아, 네가 바로 조씨 가문의 귀인이었어? 정말 축하해!”장경화는 환하게 웃으며 그 귀인이 바로 양의성이라고 단정 지었다.말문이 막힌 양의성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이 상황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고작 그 주제에 조신 그룹의 귀인이라니,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만약 그런 재주가 있었더라면 회사도 부도 위기에 처하지 않았을 것이다.“설마 그 자식은 아니겠지?”양의성의 뇌리에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이내 부정해 버렸다.‘아니! 그 자식일 리가 없어. 그 쓸모없는 놈이 어떻게 조신 그룹의 귀인이야?’긴장과 기대 가득한 눈빛 속에 잠깐 멈칫하던 조선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자, 그만 뜸 들일게요. 유진우 씨를 무대 위로 모시
“이 대표,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유진우는 일부러 모르는 척 담담하게 말했다.그는 단연코 공을 세워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이 아니었다.이청아와 끝난 사이라 그도 더는 그녀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진짜 너 아니라고?”이청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이 대표, 뭔가 오해했나 본데 나 같은 폐인이 어떻게 이 대표를 도울 수 있겠어?”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괜한 생각을 했나 봐.”이청아의 눈가에 살짝 실망한 기색이 스쳤다.“하긴, 네가 아무 이유 없이 왜 날 돕겠어? 우린 이젠 다 끝난 사이잖아. 게다가 너도 그럴 만한 능력이 없을 테고.”“맞아, 난 돈도 없고 권력도 없으니 양의성과 비할 바가 못 되지. 또 뭐 분부할 거 있어?”유진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없어, 그만 가서 조선미 씨나 돌봐.”이청아가 차갑게 말했다.“그래, 그럼 이만 나가볼게.”유진우도 더 말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그는 일부러 느리게 걷는 조선미를 곧장 따라갔다.“진우 씨, 청아 씨가 아직 진우 씨한테 미련이 남아있나 봐요.”조선미가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미련이요?”유진우는 저 자신을 비웃듯이 대꾸했다.“서로 원한을 맺고 등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에요.”“여자의 마음은 갈대와도 같아 어떤 일은 이청아 씨 본인도 깨닫지 못했을 거예요.”조선미가 미소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아참, 전에 희귀 약재가 조금 모자란다고 했었죠?”“네, 선미 씨가 다 찾았어요?”유진우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건 아니고요. 제가 아는 사람이 한 명 있는데 아마 진우 씨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의학 가문 출신이라 수많은 귀한 약재를 소장하고 있거든요. 어쩌면 그중에 유진우 씨가 필요한 약재가 들어있을지도 모르죠.”조선미가 대답했다.“그래요? 그분이 누구신데요?”유진우가 캐물었다.“나 따라오면 알아요.”조선미는 말을 돌리며 유진우의 손을 잡고 2층 휴게실로 들어갔다.그 시각 휴게실 안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
“어르신, 저는 따로 볼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안도균은 몇 마디 인사를 나눈 후 자리를 뜨려 했다.그는 신의를 보려고 일부러 찾아왔는데 돌팔이를 만나니 더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삼촌, 진우 씨 충고대로 요 며칠 되도록 강능에 남아있으세요. 의외의 사고라도 나면 어떡해요.”조선미가 좋은 뜻으로 말했다.“선미야, 내 일은 걱정할 필요 없다. 너 자신이나 잘 신경 써.”안도균은 문득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너랑 선우희재 씨의 약혼이 코앞인데 그 선우 집안의 도련님 성격으로 네가 딴 남자랑 가까이 있는 걸 싫어할 거야.”조선미는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듣기 싫은 말만 콕 집어서 하네.’“삼촌, 단지 약혼일 뿐 결혼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기껏해야 파혼하면 그만이에요.”조선미가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파혼? 상대는 선우 일가야. 너 파혼하면 뒷감당은 할 수 있겠어?”안도균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뒷감당할 게 뭐가 있어요? 그 집에서 날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요?”조선미가 담담하게 되물었다.“선우 일가에서 너한테는 당연히 어쩌지 않겠지. 다만 네 옆에 있는 이 사람은 과연 내버려 둘까? 너도 선우 일가의 수단을 잘 알 거야. 네가 유진우 씨와 더 가깝게 지낼수록 진우 씨는 위험해져.”안도균이 유진우를 흘겨보며 비꼬듯이 말했다.“칫! 선우희재가 감히 함부로 할까요!”조선미는 싸늘한 말투로 쏘아붙였다.“난 그저 미리 일깨워 줄 뿐이야. 어떻게 할지는 너한테 달렸어.”안도균은 더 말하지 않고 가볍게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선미야, 도균의 말이 맞아. 너랑 선우 일가의 일은 미리 결단내는 게 좋아.”조 어르신이 그녀를 타일렀다.“할아버지, 내가 알아서 할게요.”조선미는 머리를 끄덕였다.그녀는 어릴 때 선우희재와 혼약을 정했지만 단 한 번도 그를 좋아한 적이 없다.좋아하지도 않는데 어찌 결혼할 수 있겠는가?게다가 협력을 위한 결혼은 더 질색이었다!“아가씨, 강천호 씨가 뵙자고 하십니다.”이때 경호원 한 명이 노크
방 선생은 유진우를 힐긋 보더니 두 제자를 데리고 문밖을 나섰다.“진우 씨도 나가 있어요.”조선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진우에게 말했다.유진우는 알겠다며 곧바로 자리를 떴다.양쪽 모두 호흡이 척척 맞았다. 어쩌면 다들 제 속셈을 차리고 있을지도 모른다.“어이, 그쪽이 바로 조선미 씨의 경호원이야? 뭐 별 거 없네!”두 쌍둥이가 유진우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마치 자신들의 사냥감을 훑어보는 듯한 눈빛이었다.“그래? 두고 봐, 곧 알게 될 거야.”유진우는 더 말하지 않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정윤아, 세연아, 너희 둘 따라가서 기회 봐가며 저 녀석 처리해버려.”방 선생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는 유진우와 같은 어린 녀석은 굳이 그가 직접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두 제자가 가뿐히 해결할 수 있을 거로 여겼다.“알겠습니다!”정윤과 세연이 씩 웃으며 조용히 유진우를 따라갔다.유진우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한가롭게 산책하다가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회사가 금방 설립되어 지하주차장을 아직 정식으로 오픈하지 않았다. 주차장 안이 텅 비어 있어 고요한 정적만 흘렀다.“자식! 장소 한번 잘 잡네. 본인 무덤을 파는 거야 뭐야?!”이때 줄곧 뒤따라오던 정윤과 세연이 드디어 앞으로 나왔다.주위에 아무도 없어 손 쓰기 딱 좋았다.“너희들 눈앞의 이익만 탐하고 뒤에 닥칠 위험은 보이지 않지?”유진우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는 마치 이 상황을 진작 예상한 듯싶었다.“누가 할 소리! 뒤에 닥칠 위험은 너나 신경 써야지!”두 사람은 험상궂은 얼굴로 미소를 날렸다.다만 그들이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주차장 입구에서 갑자기 떠들썩한 발소리가 들려왔고 이어서 손에 칼과 쇠파이프를 든 파이터들이 기세등등하게 뛰어왔다.“고작 이게 다야? 우리 두 형제 입가심하기도 부족한데!”정윤과 세연은 씩 웃을 뿐 자신들에게 몰려오는 파이터들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뭐야?”유진우도 의아한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이들 두 사람을 상대하는 데 유진우도 굳이 도움이
“미리 말하는데 먼저 손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후회해도 늦어.”유진우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양의성은 그에게 보잘것없는 피에로일 뿐이니까.“칫! 네가 주먹 좀 쓰는 거 알아. 하지만 홀로 이 많은 사람을 상대할 수 있겠어? 내가 모셔온 분들은 전부 이 바닥 엘리트이고 무기도 쥐고 있어 네가 아무리 날렵해도 사지가 부러질 게 뻔해!”양의성이 쓴웃음을 지었다.맨주먹으로 싸우는 것과 손에 무기를 쥐고 싸우는 건 엄연히 다른 의미였다.양의성은 유진우가 절대 무기의 공격을 당해낼 수 없다고 여겼다!“이봐요!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원한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녀석은 오늘 우리의 사냥감이에요. 그러니까 옆으로 빠져 있어요!”이때 정윤과 세연이 입을 열었다.애초에 그들은 양의성이 유진우의 구세주인 줄 알았는데 한참 듣고 보니 둘은 서로 원수지간이었다.“이건 또 어디서 굴러온 바보들이야? 썩 꺼져. 안 그러면 너희들도 전부 토막 내버릴 테니까!”양의성이 두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우리도 함께 토막 낸다고?”정윤과 세연이 서로 마주 보더니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하하...이렇게 미쳐 날뛰는 사람은 또 오랜만이네. 자, 이리 와봐. 네 부하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볼게!”말을 마친 후 상대를 도발하듯 손가락을 꿈틀거렸다.“X발! 죽고 싶어 환장했어? 전부 다 잘라버려!”양의성은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아 바로 명령을 내렸다!곧이어 쇠파이프와 칼을 든 건장한 사내들이 와르르 몰려들었다.“일단 몸부터 풀자.”정윤과 세연이 입꼬리를 씩 올리고는 앞으로 뛰쳐 갔다.이어서 양의성이 식겁할 상황이 벌어졌다.맨손으로 주먹을 휘두르는 두 쌍둥이는 마치 용맹한 호랑이가 양 무리를 공격하듯 미친 듯이 살육을 펼쳤다.둘은 몸놀림도 빠르고 주먹의 힘도 어마어마했다.그들의 주먹에 맞은 사람들은 전부 바닥에 툭 쓰러졌다.운이 따라주지 않는 일부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가장 섬뜩한 것은 두 사람의 주먹질
‘굳이 죽으러 나설 필요는 없지.’“흥! 그래도 분수는 제대로 아는 모양이야!”유태범이 냉소를 띠며 말했다.“유만수, 네 막내아들은 이미 물러섰어. 그렇다면 네 장남은 어디 있단 말이야?”“장혁아, 그동안 숨어있느라 고생 많았다. 이제 모습을 드러낼 때가 되지 않았느냐?”유만수가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그는 장남 유장혁을 한 번도 본 적 없었지만 그 존재는 알고 있었다.지난번 소현무의 사건 역시 유장혁의 제보 덕분에 해결할 수 있었다.지금처럼 왕부에 큰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의 성격상 방관만 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누가 늙은 여우 아니랄까봐... 유태범만 속인 게 아니라 모두를 속였네요. 이제 와서 저를 방패막이로 세우겠다니. 이대로 되는 거예요?”잠시 망설이던 유진우는 결국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 던졌다.유만수가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왕부의 대세는 아직 굳건했다.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나서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다.억지로 몰린 기분이긴 했지만 유진우도 유만수가 자신을 위한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오늘이 바로 권위를 세울 최고의 기회였기 때문이다.흑룡군 장교들이 모두 지켜보는 자리에서 표기대장군 유태범을 쓰러뜨린다면 이후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 길이 한층 수월해질 것이었다.“뭐라고? 저 사람이 유장혁이라고?”유진우의 정체를 본 이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조금 전 제갈영군을 쓰러뜨린 신비로운 고수가 바로 10년간 자취를 감췄던 유장혁이었다.그가 나타난 충격은 죽었던 유만수가 다시 돌아온 사실 못지않았다.‘누가 부자 사이 아니랄까 봐... 하나같이 교활해.’“너라고? 어떻게 된 일이야!”유태범의 얼굴이 굳어졌다.그는 유장혁이 사라진 줄로만 알았지 바로 곁에서 숨어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게다가 그의 강력한 실력은 자신조차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만들었다.“여러분, 죄송합니다. 신분을 숨긴 건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정체를 드러낸 유
“공정한 경쟁이라고?”유만수의 말이 떨어지자 주위 사람들은 일제히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누구도 유만수가 이런 말을 꺼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이미 형세가 뒤집혀 흑용군 고급 장교들에게 명령만 내리면 유태범을 체포해 이번 반란 위기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었다.그런데도 유만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유태범에게 반격의 기회를 주었다.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여보...”이의진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유만수가 손을 들어 제지하며 말했다.“걱정하지 말거라. 내게도 나름대로 계획이 있으니.”“유만수... 정말 네 아들과 나를 공정하게 경쟁시키겠다는 거야?”유태범은 다소 놀란 표정을 했다.방금까지만 해도 목숨을 걸 각오하고 있었는데 설마 유만수가 이렇게 공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울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대체 무슨 꿍꿍이지?’“네가 공정을 원한다면 그 기회를 주겠다. 내 결정을 납득할 수 있도록 처참하게 질 것이다.”유만수가 담담하게 말했다.“좋아! 당신이 한 말이야?”유태범은 눈을 가늘게 뜨며 기뻐했다.“우리 서경은 무위를 중요시하는 곳이지. 새로운 왕이 되려면 강한 실력이 있어야 마땅해. 그러니 군대의 규칙으로 경쟁하는 게 어때? 이긴 자가 왕이 되는 거지!”“유태범! 정말 뻔뻔하구나!”유태범의 말을 들은 이의진이 참다못해 소리쳤다.“너는 전장에서 오랜 경험을 쌓으며 무력 면에서 뛰어나다. 서경에서 너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데도 네 강점을 내세워 경쟁한다니 이게 공정이라고 할 수 있겠어?”“이 세상은 본디 강자가 존중받는 곳이다. 특히 서경에서는 더더욱 그렇지. 강한 실력이 없다면 수많은 장교를 어떻게 다스릴 수 있겠어? 설마 서경의 왕이 연약한 선비일 수 있다고 생각해?”유태범이 태연히 대꾸했다.“맞아! 우리도 절대로 약자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을 거야!”제갈영군도 이에 동조했다.“누구든 실력이 강한 자가 왕이 될 수 있었다면 이 세상은 이미 혼란에 빠졌을 거야!”이의진이 반박했다.
“태범아, 우리는 한 가족이다. 네가 칼을 내려놓는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유만수가 담담히 말했다.“왜? 왜 아직도 죽지 않은 거예요? 이미 중병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할 텐데... 왜 아직도 서경 왕 자리를 계속 차지하려고 하는 거냐고요!”유태범이 이를 악물며 외쳤다.눈에 핏줄이 선명히 드러난 유태범의 표정은 완전히 흉포해 보였다.“태범아, 네 성격은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너는 문무를 겸비했고 확실히 재능도 뛰어나지. 하지만 너는 남을 품을 그릇이 못 돼. 행동 방식이 너무 잔혹해 왕으로서는 적합하지 않아. 그리고 왕이 될 수도 없어.”유만수가 솔직히 말했다.“닥쳐!”유태범은 갑자기 고함쳤다.“너는 수십 년 동안 왕 자리에 앉아 있었고 이제 곧 죽을 거야! 이 자리도 이제는 내가 차지해야 할 때야. 전체 서경을 둘러봐도 나보다 이 자리에 더 적합한 사람이 있나?”“새로운 왕은 이미 정해져 있다. 너는 아니야.”유만수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이미 정했다고? 하하하”유태범이 미친 듯이 웃으며 말했다.“유천우는 겨우 풋내기에 불과해! 재능이나 능력, 권위를 논하더라도 유천우가 나보다 나은 점이 어디 있나? 무슨 자격으로 나와 다투는 거냐!”“내가 말한 사람은 천우가 아니야.”유만수가 담담히 말했다.“천우가 아니면 또 누가 있어? 설마 십 년 동안 실종되었던 유장혁을 말하는 거야?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녀석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거야? 정말 노망이라도 든 거야?”유태범이 가차 없이 비웃었다.“건방지다!”유태범의 말을 들은 홍복홍이 화를 내려고 했으나 유만수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유태범의 고함과 광기에 비해 유만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었다.“태범아, 장혁이는 죽지 않았어. 게다가 아주 잘 지내고 있어. 장혁이는 그 나이대의 나보다 더 뛰어나고 왕으로서도 더 적합해.”유만수가 진지하게 말했다.“죽지 않았다면 어쩔 건데? 나이를 따져보면 유장혁도 유천우보다 몇 살 많지 않아. 결국 그 역시 어린 녀석에
유태범은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그는 온갖 변수를 고려했지만 유만수가 이렇게 멀쩡히 눈앞에 나타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예상치 못한 충격은 견디기 어려웠다.사실 유태범뿐만 아니라 제갈영군을 비롯한 모든 반란군의 고급 장교들 역시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고 얼굴이 창백해졌다.그들이 유태범과 함께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유만수가 죽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만약 유만수가 죽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이런 반역을 감행할 용기는 없었다.“오늘 정말 시끌벅적하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다니...”유만수가 천천히 문밖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군중은 자연스럽게 길을 열어주었다.“어르신! 당신은 분명히...”이의진은 말을 잇지 못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분명히 유만수가 칼에 가슴을 관통당하는 것을 보았고 그의 숨이 멎는 것도 목격했다.게다가 직접 그의 장례식까지 치렀다.그녀는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긴장하지 마. 나는 귀신이 아닌 사람이다.”유만수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암살자의 공격은 내 목숨을 앗아갈 뻔했지만 다행히 진기를 사용해 심장을 보호한 덕에 가까스로 살아날 수 있었다.”“여보! 왜 저희에게 미리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나요? 얼마나 슬퍼했는지 아세요?”이의진은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유만수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는 극심한 슬픔에 빠졌다.그러나 왕부를 지키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며 장례를 치르고 야심을 품은 자들과 치열하게 싸워야만 했다.“의진아, 그동안 고생 많았다.”유만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미소 지었다.“내가 죽은 척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상처를 회복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내가 죽은 뒤 왕부와 서경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이다.”여기까지 말한 유만수는 갑자기 유태범 일행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안타깝게도 일이 내가 원하던 대로는 잘 풀리지
‘홍복홍을 계속 저대로 두면 병사들의 사기가 꺾일 거야.’“이게...”흑룡군의 고급 장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망설였다.홍복홍도 한때 흑용군의 대장군으로 그 위엄은 위왕 유만수 다음으로 높았다.서부를 평정한 후 그는 은거 생활을 시작했다.하지만 오래된 강교들은 여전히 그의 성과를 기억하고 경외하고 있었다.“뭐 하는 것이야! 귀가 먹었느냐? 아니면 지금 명령을 어기겠다는 거냐!”유태범은 말하며 사령관 병부를 꺼내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병부가 여기 있다! 누가 감히 내 명령을 어기는 것이냐!”“명령에 따르겠습니다!”유태범이 병부를 꺼내 들자 장교들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칼을 뽑아 들고 홍복홍을 포위하기 시작했다.그러나 홍복홍은 뒷짐을 진 채로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위왕께서 여기 계시는데 누가 감히 날뛰는 것이냐!”그때 갑자기 천둥 같은 목소리가 공중에서 폭발하듯 울려 퍼졌다.그 소리는 굉음처럼 전장을 뒤흔들며 모두를 압도했다.모든 병사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왕부의 문 앞에서 한 중년 남자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그는 두 손을 뒤로 하고 있었으며 허리가 약간 굽었고 걸음걸이도 약간 절뚝였다.겉으로 보건대 그 어떤 위엄도 강렬한 기운도 없었다.입고 있는 옷이 아니었다면 누구라도 그를 평범한 농부로 착각했을 것이다.그러나 농부처럼 보이는 중년 남자가 등장하자 전장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등장한 이는 이미 죽었다고 알려진 서경 왕 유만수이었다.“어... 어르신?”익숙한 얼굴을 마주한 이의진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분명 죽은 걸 확인했는데 어떻게 멀쩡히 저기 있는 거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꿈인가?’“아버지?”유천우도 유만수의 등장에 깜짝 놀라며 손에 들고
“여봐라! 당장 저놈을 잡아라!”유진우가 망설임 없이 공격해 오자 유태범은 결국 명령을 내렸다.강한 자가 자신의 편에 서면 당연히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적에게 넘길 수도 없었다.위협은 반드시 사전에 제거해야 했다.“모두 공격하라!”조군영과 고원이 손짓하며 외쳤다.백여 명의 무도 고수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유진우를 포위하며 공격을 감행했다.이들은 모두 흑용군의 장교급 지휘관들로 각자의 실력도 뛰어나거니와 이들이 합심한 힘은 천군만마를 초월했다.“멈춰라!”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하늘에서 유성처럼 땅에 내리꽂히며 번개 같은 속도로 인파 한가운데에 충돌했다.쾅!거대한 폭음과 함께 땅이 갈라지고 먼지가 사방으로 흩어졌다.강력한 충격파가 충돌 지점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며 주변의 무도 고수들을 연이어 물러서게 했다.모두가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비틀거렸다.“누구냐!”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50미터 앞에 화려한 옷을 입고 백발이 섞인 머리를 한 노인이 서 있었다.노인의 표정은 냉담했고 그의 몸 주위에는 붉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짙은 살기는 멀리서도 귀신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한 착각이 일게 했다.등장한 이는 바로 악명 높은 인도, 홍복홍이었다.“홍복홍? 드디어 나타났네!”이의진은 기뻐하며 외쳤다.위왕이 사망한 이후 홍복홍 역시 자취를 감추었었다.며칠 동안 그의 모습은커녕 어떤 연락도 닿지 않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그는 유씨 가문 삼대 고수 중 한 명으로서 진정한 실력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었다.아무도 홍복홍이 얼마나 강한지 몰랐지만 단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눈독 들인 자는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다는 것이었다.“다행입니다! 어르신만 있다면 우리에게도 희망이 생긴 거예요!”갑자기 등장한 홍복홍을 본 장범규는 정신을 차리며 활기를 되찾았다.홍복홍은 전설적인 인물로 위왕이 생전 가장 신뢰하던 조력자였다.비록 평소에는 조용히 지냈지만 그를 과소평가하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인도라는
수년이 지난 지금 제강영군의 이미 실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그러나 뜻밖에도 한 젊은이에게 당해 손쓸 틈도 없이 밀릴 줄은 생각지도 했다.이것은 굴욕 중의 굴욕이었다.“이럴 수는 없다!”상황이 점점 나빠지는 것을 본 제갈영군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크게 외치며 곧바로 필살기를 사용했다.그는 한 손으로 창을 들고 빠르게 거리를 벌린 뒤 갑자기 멈춰서 돌아서더니 양손으로 창대를 움켜쥐고 강력한 반격을 가했다.온몸의 강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하늘의 별 따기!”제갈영군이 외치자 창끝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했다.하늘 가득한 창 그림자가 마치 유성처럼 날아가며 천지를 뒤흔들 기세로 유진우를 향해 돌진했다.창 그림자가 지나가는 곳마다 공기가 비틀리고 땅이 갈라지며 공포감을 자아냈다.“흥!”유진우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섰다. 창궁검을 휘두르자 날카로운 검기가 한순간에 뿜어져 나와 하늘 가득한 창 그림자 속으로 돌진했다.쾅! 쾅! 쾅!굉음이 연달아 들려왔다.유진우의 검기는 마치 대나무를 쪼개듯 모든 창 그림자를 갈기갈기 부수며 제갈영군의 창끝을 정통으로 꿰뚫었다.쾅!커다란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제갈영군의 장창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순식간에 열몇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졌다.폭발로 생긴 강력한 충격파에 제갈영군은 수십 미터 밖으로 날아가 땅에 거칠게 떨어졌다.제갈영군의 입과 코에서 피가 흘러내리며 끊임없이 기침했다.“이럴 수가!”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비록 유진우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제갈영군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그들의 예상으로는 두 사람이 치열한 접전을 벌일 것으로 생각했다.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제갈영군이 패배했다.그것도 처참하게 말이다.너무도 갑작스러운 결과였다.“역시 대단한 젊은이네.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군.”유진우가 단 한 번의 검격으로 적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며 유태범은 눈을 가늘게 뜨고 점점 더 큰 흥미를 느꼈다.‘젊은 나이에
“저 사람 도대체 누구야? 제강영군과 같은 강자를 이 정도로 몰아붙이다니, 정말 대단한데?”“저 나이에 저런 실력을 갖춘다는 건 상상을 초월하네. 만약 우리 편으로 들어오면 정말 든든할 거야.”“아직 제갈영군이 진짜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결과는 지켜봐야지.”숨 막힐 정도로 치열한 유진우와 제갈영군의 전투를 지켜보며 주위에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서경에서 이름 날린 고수들은 전부 알고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유진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젊은 강자는 완전히 미지의 존재였다.그의 정체에 대해 궁금증은 더욱 커졌고 그의 무공 수준은 그 누구도 쉽게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사실도 점점 명백해졌다.“천우야, 저 젊은 고수를 도대체 어디서 데려온 거니? 왜 한 번도 본 적이 없을까?”이의진이 유천우를 부축하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어머니, 아직 시기가 적절치 않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유천우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유진우는 오랫동안 정체를 숨기고 있었고 오늘의 개입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정체를 발설한다면 유태범이 복수를 할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나한테도 말 못 한다는 거니?”이의진의 호기심이 깊어졌다.“죄송해요, 어머니. 저도 약속을 지켜야 해서요.”유천우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알겠다. 그래도 한 가지만 묻자. 믿을 만한 사람이야?”“완전히 믿어도 되는 사람입니다.”유천우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좋다. 실력이 제갈영군보다 더 위에 있구나. 만약 상황이 불리해지면 너를 데리고 성 밖으로 탈출시켜 달라고 해야지.”“어머니...”유천우가 뭔가 말하려 했지만 이의진이 말을 끊었다.“이번만큼은 내 말 들어. 유태범은 절대로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목숨을 건진 채로 서경을 떠나 연경으로 갈 수만 있다면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야.”협상이 실패로 돌아갔다면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저 고수의 도움과 유만군 그리고 800명의 결사
제갈영군은 서경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였다.그의 실력은 그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었다.어젯밤 제갈영군이 병부를 빼앗아 가지 않았다면 유태범의 대군들도 쉽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양쪽의 승패는 어쩌면 제갈영군의 손끝에서 결정된다고 할 수도 있었다.“도련님, 현재 형세를 잘 파악하는 사람이 걸출한 인물이 될 수 있는 법이지. 대장군은 당신보다 더 서경 왕에 적합한 인물이야. 그래서 돕는 건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제갈영군이 담담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충신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박쥐였나!”유천우가 분노했다.“승자가 왕이 되고 패자는 적이 되는 법. 충신이 될지, 배신자가 될지는 누가 승리하는지에 달렸지.”제갈영군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설령 우리가 패하더라도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유천우가 허공으로 손을 뻗어 땅에 떨어진 장검을 끌어당겼다.“왜? 계속 싸우려고?”제갈영군이 고개를 흔들며 비웃었다.“죽을 각오로 덤빈다고 해도 내 눈에는 그저 하룻강아지에 불과해.”“하룻강아지일지 맹수일지는 붙어봐야 알겠지.”유천우가 한 발 앞으로 나가려고 할 때 갑자기 하늘에서 한 사람이 떨어지며 그 앞을 가로막았다.그는 바로 인피 가면을 쓴 유진우였다.“이 사람은 내가 상대할 테니 넌 물러나.”유진우가 차분히 말했다.유천우는 잠시 제갈영군을 바라보다 유진우를 보고는 결국 물러섰다.일대일로 싸운다면 유진우의 실력은 제갈영군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유천우는 확신했다.“뭐야, 너였어?”제갈영군은 유진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전투 의욕을 불태웠다.“전에 봤을 때 비범하다고 느껴서 한번 겨뤄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그 기회가 왔네.”“무릉 제후, 저 사람은 누구죠?”유태범이 물었다.“왕부에 숨겨진 고수입니다. 진승민 일행이 생포 당한 것도 저 친구 때문이죠.”제갈영군이 설명했다.“그래요? 왕부에 저런 인물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네요.”유태범이 눈을 좁히며 유진우를 자세히 살폈다.‘이상하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