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많은 손님들이 축하 인사를 보냈다.연회장 안의 좌석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한창 멋진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고 무대 아래에는 손님들끼리 한데 모여 술을 주고받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청아야, 여기 정말 괜찮구나. 앞으로 네가 바로 여기 주인이란 말이지?”장경화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엄마, 전 단지 조씨 가문의 사업 파트너일 뿐이에요. 아무리 함께 새 회사를 설립했다고 해도 제2 주주예요.”이청아가 설명했다.“제2 주주도 대단한 거지. 조씨 가문과 한배를 타면 앞으로 걱정할 일이 없어.”장경화가 흐뭇하게 웃었다.“누나 사업이 나날이 번창해서 돈 꽤 많이 벌었지? 나 언제 좋은 차로 바꿔줄 거야?”옆에 있던 이현이 히죽 웃었다.“내가 너한테 매달 용돈을 얼마나 많이 주는데, 그걸로도 부족해?”이청아가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아무리 친동생이라고 해도 자꾸만 손을 벌리는 건 싫었다.“전에는 충분했는데 모은 돈을 전부 양씨 의약에 투자하는 바람에 지금은 일전 한 푼도 없어.”이현이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듯 말했다.“그럼 그냥 양씨 의약의 배당금이나 기다려.”이청아는 더는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돌아서던 그때 유진우와 조선미를 발견했다.“누나, 유진우도 초대했어? 재수 없게!”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던 이현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나 초대 안 했어.”이청아가 부인했다.“초대 안 했는데도 와? 정말 뻔뻔스럽기 짝이 없어.”이현이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조선미에게 닿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어머... 유진우 옆에 있는 저 미인은 누구야? 너무 아름답잖아!”“미인은 무슨. 그냥 여우야!”장경화가 분노를 터뜨렸다.“지난번에 청성 그룹에서 난리를 친 게 바로 쟤야. 하마터면 나까지 때릴 뻔했다니까!”“아, 저 여자였어?”이현의 낯빛이 확 싸늘해졌다.“젠장, 유진우는 정말 배은망덕한 놈이야. 오늘 엄청 중요한 자리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여자라고 경고했었다.“과찬입니다.”이청아가 예의 바르게 웃었다.“청아 씨, 좋은 소식 하나 더 알려줄게요.”그때 양의성이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아까 도현 도련님이 그러는데 오늘 개업식에 조씨 가문의 아가씨도 직접 오신대요.”“그래요? 너무 잘됐네요!”이청아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기뻐했다. 계약을 체결하든 새 회사에 관한 일을 상의하든 전부 조신 그룹의 이사가 나서서 처리한 바람에 아직 조씨 가문의 아가씨를 만난 적이 없었다.물론 조선미의 이름을 들은 적은 있었다.조 어르신이 물러난 후로 그녀가 조씨 가문 전체를 책임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 조씨 가문을 나날이 번창하게 했고 전보다 훨씬 더 좋은 성과를 이루었다.어찌 보면 두 사람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그녀는 조선미를 자신이 따라잡아야 할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만난 적이 없어 늘 아쉬웠다.그런 조선미가 오늘 직접 현장에 온다고 하니 저도 모르게 기대되었다. 상업 퀸의 카리스마가 어떤지 제대로 보고 싶었다.“누나, 조선미 씨가 강능의 4대 미녀 중 한 명이라던데 엄청 예쁘겠지? 두 사람 만나면 나한테 좀 소개해 줄 수 있어?”이현이 기대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았다.“그래그래. 이현이 나이도 적지 않은데 장가갈 때가 됐어. 조씨 가문의 아가씨라면 데릴사위로 보낸다고 해도 좋아!”장경화는 정신이 번쩍 드는 것만 같았다.“엄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조선미 씨가 이현이를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있겠어요?”이청아가 가차 없이 딱 잘랐다.“무슨 말을 그렇게 해? 우리 이현이가 어때서? 젊고 힘도 세고 잘생겼잖아. 그 아가씨랑 딱이네, 뭐.”장경화가 또박또박 말했다.“그러니까 말이야. 내 몸매 좀 봐.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내 근육질 몸매에 반했는지 몰라.”그러더니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다짜고짜 팔근육을 보여줬다.두 사람의 모습에 이청아는 어이가 없었다. 그들을 이곳에 괜히 데려온
“저 여자였어?!”무대 위로 올라온 조선미를 보자마자 이청아는 그대로 넋이 나갔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늘 만나길 기대했던 조신 그룹의 아가씨가 그녀와 맞서던 여자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엄마, 그 여우 년 아니야? 저 여자가 왜 올라가?”두 눈을 부릅뜬 이현이 아직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설... 설마... 저 여자가 바로 조신 그룹의 아가씨야?”장경화는 화들짝 놀란 나머지 입까지 파르르 떨었다. 눈앞의 여우가 조씨 가문의 딸이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왜? 왜 저 여자냐고!”그때 양의성도 벼락을 맞은 것처럼 낯빛이 사색이 되었고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유진우 옆에 있던 여자가 강능의 상업 퀸이자 많은 이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 존재라는 걸 전혀 예상치 못했다.전에 자신이 저질렀던 짓이 뇌리에 스쳐 지나가면서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어떡하지? 이미 조선미 씨한테 밉보였어.’“의성아, 전에 조선미 씨를 만난 적이 있었어?”그때 옆에 있던 안도현이 수상함을 눈치채고 물었다.“있... 있어요. 게다가 불쾌한 일도 있었어요.”양의성이 부들부들 떨며 침을 꿀꺽 삼켰다.“감히 조선미 씨를 건드려? 너도 참 대단하다!”안도현은 마치 곧 죽을 사람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조선미가 오늘 이 자리에 앉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겠는가, 절대 만만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도련님, 전에는 제가 눈이 멀어서 아가씨를 건드리고 말았어요. 이따가 아가씨한테 제 말 좀 잘해주실 수 있어요?”양의성이 부들부들 떨며 안도현의 손을 덥석 잡았다.“양의성, 이런 일은 나도 못 도와줘. 스스로 살길을 도모해.”안도현은 양의성을 매정하게 뿌리치고는 자리를 떠났다. 한낱 볼품없는 사람 때문에 조선미를 건드린다는 건 바보나 할 짓이었다.“망했어...”안도현의 단호한 뒷모습에 양의성의 낯빛이 사색이 되었다.조선미가 넓은 아량으로 너그러이 용서해 주면 모를까, 만약 복수라도 한다면 말 한마디만으로도
“아주 좋아. 그럼 하루빨리 해결해. 더는 다른 예상치 못한 일이 있어선 안 돼!”강천호의 표정이 그제야 조금 풀렸다.“걱정하지 마. 내 두 제자가 직접 나서면 저 사람은 무조건 죽은 목숨이야!”방 선생이 덤덤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휴대 전화를 꺼내 문자를 보냈다.그 시각, 시끌벅적한 무대 아래와 달리 무대 위의 조선미는 무척이나 침착했다.“일단 저희 회사 개업식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조선미는 마이크를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침착하고 엄청난 카리스마와 도도한 눈빛이 더해지니 한 나라를 다스리는 여왕과도 같았다.“다들 아시다시피 저희 조신 그룹에 새로운 사업 파트너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조신 그룹의 일부 사업은 새 파트너의 손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주변을 쭉 살피던 조선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조신 그룹의 새 파트너가 대체 누구인지 다들 궁금하시죠? 조급해하지 말아요. 곧 여러분께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청아 씨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여러분 큰 박수로 맞이해 주십시오!”조선미가 먼저 손뼉을 치기 시작하자 곧바로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청아야, 네 차례야!”가장 먼저 반응한 장경화가 그녀를 툭툭 쳤다. 이청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비록 조선미의 정체에 여간 놀란 건 아니지만 지금의 그녀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한 걸음 한 걸음 무대 위로 올라갔다.“어머! 또 미녀네? 오늘 안구 정화 제대로 하는구나!”“두 분 다 예쁘지만 스타일이 달라. 양쪽에 저런 여자를 끼고 잘 수만 있다면 수명 10년과 바꾼다고 해도 기꺼이 바꿀 수 있어!”“젠장! 어떤 남자여야만 저런 미인을 차지할 자격이 있을까?”이청아가 무대에 오르자 현장이 다시 한번 들썩거리기 시작했다.조선미만으로도 충분히 이목을 끄는데 이청아가 나타나자 현장 분위기가 더욱 뜨거워졌다. 두 미녀가 동시에 무대 위에 있는 모습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또 만났네요, 이청아 씨.”조선미가
무대 위 두 여인은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당당하고 차분하게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몇몇 눈치 빠른 사람들은 두 사람이 몰래 기 싸움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두 여인은 마치 아름다움을 다투는 꽃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날카로웠다.조선미와 비교하면 이청아의 신분이 한참 딸리긴 했지만 전혀 자괴감에 빠지거나 실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투지가 더 불타올랐다.늘 도도한 그녀는 매사에 쉽게 지는 법이 없었다. 그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일일이 헤쳐 나가는 성격이었다.조선미면 어떠한가? 강능의 상업 퀸이면 또 어떠한가?언젠가는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고 심지어 그녀를 넘어설 거라고 다짐했다.“이청아 씨의 풍채를 다들 보셨죠? 이어서 여러분께 다른 젊은 인재를 소개하려 합니다. 이분은 저를 구해줬을 뿐만 아니라 저희 조신 그룹에 많은 도움을 준 귀인입니다.”그 순간 무대 아래가 다시 한번 들끓었다. 서로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는 사람들의 표정에 경악과 호기심이 가득했다.조선미의 눈에 들고 귀인이라고 칭하는 사람이 대체 누구란 말인가?!“의성 도련님, 조선미 씨가 말한 귀인이 설마 도련님은 아니죠?”이현이 슬쩍 한마디 했다. 그는 양의성처럼 뛰어난 청년이어야만 조선미가 말한 인물과 매칭이 된다고 생각했다.“의성아, 네가 바로 조씨 가문의 귀인이었어? 정말 축하해!”장경화는 환하게 웃으며 그 귀인이 바로 양의성이라고 단정 지었다.말문이 막힌 양의성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이 상황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고작 그 주제에 조신 그룹의 귀인이라니,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만약 그런 재주가 있었더라면 회사도 부도 위기에 처하지 않았을 것이다.“설마 그 자식은 아니겠지?”양의성의 뇌리에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이내 부정해 버렸다.‘아니! 그 자식일 리가 없어. 그 쓸모없는 놈이 어떻게 조신 그룹의 귀인이야?’긴장과 기대 가득한 눈빛 속에 잠깐 멈칫하던 조선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자, 그만 뜸 들일게요. 유진우 씨를 무대 위로 모시
“이 대표,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유진우는 일부러 모르는 척 담담하게 말했다.그는 단연코 공을 세워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이 아니었다.이청아와 끝난 사이라 그도 더는 그녀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진짜 너 아니라고?”이청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이 대표, 뭔가 오해했나 본데 나 같은 폐인이 어떻게 이 대표를 도울 수 있겠어?”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괜한 생각을 했나 봐.”이청아의 눈가에 살짝 실망한 기색이 스쳤다.“하긴, 네가 아무 이유 없이 왜 날 돕겠어? 우린 이젠 다 끝난 사이잖아. 게다가 너도 그럴 만한 능력이 없을 테고.”“맞아, 난 돈도 없고 권력도 없으니 양의성과 비할 바가 못 되지. 또 뭐 분부할 거 있어?”유진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없어, 그만 가서 조선미 씨나 돌봐.”이청아가 차갑게 말했다.“그래, 그럼 이만 나가볼게.”유진우도 더 말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그는 일부러 느리게 걷는 조선미를 곧장 따라갔다.“진우 씨, 청아 씨가 아직 진우 씨한테 미련이 남아있나 봐요.”조선미가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미련이요?”유진우는 저 자신을 비웃듯이 대꾸했다.“서로 원한을 맺고 등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에요.”“여자의 마음은 갈대와도 같아 어떤 일은 이청아 씨 본인도 깨닫지 못했을 거예요.”조선미가 미소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아참, 전에 희귀 약재가 조금 모자란다고 했었죠?”“네, 선미 씨가 다 찾았어요?”유진우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건 아니고요. 제가 아는 사람이 한 명 있는데 아마 진우 씨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의학 가문 출신이라 수많은 귀한 약재를 소장하고 있거든요. 어쩌면 그중에 유진우 씨가 필요한 약재가 들어있을지도 모르죠.”조선미가 대답했다.“그래요? 그분이 누구신데요?”유진우가 캐물었다.“나 따라오면 알아요.”조선미는 말을 돌리며 유진우의 손을 잡고 2층 휴게실로 들어갔다.그 시각 휴게실 안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
“어르신, 저는 따로 볼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안도균은 몇 마디 인사를 나눈 후 자리를 뜨려 했다.그는 신의를 보려고 일부러 찾아왔는데 돌팔이를 만나니 더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삼촌, 진우 씨 충고대로 요 며칠 되도록 강능에 남아있으세요. 의외의 사고라도 나면 어떡해요.”조선미가 좋은 뜻으로 말했다.“선미야, 내 일은 걱정할 필요 없다. 너 자신이나 잘 신경 써.”안도균은 문득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너랑 선우희재 씨의 약혼이 코앞인데 그 선우 집안의 도련님 성격으로 네가 딴 남자랑 가까이 있는 걸 싫어할 거야.”조선미는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듣기 싫은 말만 콕 집어서 하네.’“삼촌, 단지 약혼일 뿐 결혼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기껏해야 파혼하면 그만이에요.”조선미가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파혼? 상대는 선우 일가야. 너 파혼하면 뒷감당은 할 수 있겠어?”안도균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뒷감당할 게 뭐가 있어요? 그 집에서 날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요?”조선미가 담담하게 되물었다.“선우 일가에서 너한테는 당연히 어쩌지 않겠지. 다만 네 옆에 있는 이 사람은 과연 내버려 둘까? 너도 선우 일가의 수단을 잘 알 거야. 네가 유진우 씨와 더 가깝게 지낼수록 진우 씨는 위험해져.”안도균이 유진우를 흘겨보며 비꼬듯이 말했다.“칫! 선우희재가 감히 함부로 할까요!”조선미는 싸늘한 말투로 쏘아붙였다.“난 그저 미리 일깨워 줄 뿐이야. 어떻게 할지는 너한테 달렸어.”안도균은 더 말하지 않고 가볍게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선미야, 도균의 말이 맞아. 너랑 선우 일가의 일은 미리 결단내는 게 좋아.”조 어르신이 그녀를 타일렀다.“할아버지, 내가 알아서 할게요.”조선미는 머리를 끄덕였다.그녀는 어릴 때 선우희재와 혼약을 정했지만 단 한 번도 그를 좋아한 적이 없다.좋아하지도 않는데 어찌 결혼할 수 있겠는가?게다가 협력을 위한 결혼은 더 질색이었다!“아가씨, 강천호 씨가 뵙자고 하십니다.”이때 경호원 한 명이 노크
방 선생은 유진우를 힐긋 보더니 두 제자를 데리고 문밖을 나섰다.“진우 씨도 나가 있어요.”조선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진우에게 말했다.유진우는 알겠다며 곧바로 자리를 떴다.양쪽 모두 호흡이 척척 맞았다. 어쩌면 다들 제 속셈을 차리고 있을지도 모른다.“어이, 그쪽이 바로 조선미 씨의 경호원이야? 뭐 별 거 없네!”두 쌍둥이가 유진우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마치 자신들의 사냥감을 훑어보는 듯한 눈빛이었다.“그래? 두고 봐, 곧 알게 될 거야.”유진우는 더 말하지 않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정윤아, 세연아, 너희 둘 따라가서 기회 봐가며 저 녀석 처리해버려.”방 선생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는 유진우와 같은 어린 녀석은 굳이 그가 직접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두 제자가 가뿐히 해결할 수 있을 거로 여겼다.“알겠습니다!”정윤과 세연이 씩 웃으며 조용히 유진우를 따라갔다.유진우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한가롭게 산책하다가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회사가 금방 설립되어 지하주차장을 아직 정식으로 오픈하지 않았다. 주차장 안이 텅 비어 있어 고요한 정적만 흘렀다.“자식! 장소 한번 잘 잡네. 본인 무덤을 파는 거야 뭐야?!”이때 줄곧 뒤따라오던 정윤과 세연이 드디어 앞으로 나왔다.주위에 아무도 없어 손 쓰기 딱 좋았다.“너희들 눈앞의 이익만 탐하고 뒤에 닥칠 위험은 보이지 않지?”유진우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는 마치 이 상황을 진작 예상한 듯싶었다.“누가 할 소리! 뒤에 닥칠 위험은 너나 신경 써야지!”두 사람은 험상궂은 얼굴로 미소를 날렸다.다만 그들이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주차장 입구에서 갑자기 떠들썩한 발소리가 들려왔고 이어서 손에 칼과 쇠파이프를 든 파이터들이 기세등등하게 뛰어왔다.“고작 이게 다야? 우리 두 형제 입가심하기도 부족한데!”정윤과 세연은 씩 웃을 뿐 자신들에게 몰려오는 파이터들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뭐야?”유진우도 의아한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이들 두 사람을 상대하는 데 유진우도 굳이 도움이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