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한 일은 내가 혼자서 감당할 거니까. 두 사람을 연루시키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걱정되면 지금이라도 빨리 나가요. 아무것도 못 본 척할 테니까.”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그 몇 마디에 나동수와 정건우 두 사람은 부끄러운 나머지 화가 났다.특히 세 미녀의 눈빛에 두 사람의 얼굴이 화끈거렸다.작은 의사한테 무시당하다니, 이런 수치가 더는 없었다.“당신 이제 죽었어! 당신들 모두 죽일 거야!”바닥에서 일어나는 중년 남자의 안색이 유난히 흉악했다.“누굴 죽여? 다시 말해봐!”유진우는 또 뺨을 때렸다.“너...”중년 남자가 입을 열자마자 말하기도 전에 또 뺨을 세게 맞았다.“팍!”중년 남자는 끙끙거리더니 결국에는 버티지 못하고 기절하고 말았다.주하늘을 포함한 여러 명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유진우가 용씨 가문의 사람인 줄 알면서도 이 정도로 강하게 나올 줄을 몰랐다.‘두렵지 않다는 건가?’“별거 아니네.”유진우는 아직 흥을 다하지 못한 듯싶었다.“유진우 씨! 당신 지금 큰일 저지른 거 알아요? 용씨 가문을 건드리면 누가 와도 당신을 구할 수 없어요!”나동수가 높은 목소리로 외쳤다.하지만 그의 눈썹 사이에는 약간의 고소함도 묻어있었다.유진우의 실력에 조금 놀란 건 사실이지만, 그의 행동은 의심할 여지 없이 스스로 죽으려고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다.“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요. 당신들이나 용씨 가문을 무서워하지, 저는 그렇지 않아요.”유진우는 어깨를 으쓱했다.“흠! 무식한 놈은 무서운 게 없는 법이지. 용씨 가문이 얼마나 무서운지 당신은 모르는가 보네요!”정건우는 바보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용씨 가문은 중주에서 최고로 막강한 가문이었기 때문이다.강남 전체에서 아마 아무도 감히 용씨 가문에 정면으로 맞서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개를 때리려면 주인부터 봐야 한다는 말도 있는데, 일반 의사 나부랭이가 감히 용씨 가문의 부하를 때린다는 건 죽고 싶어 환장한 거 아니면 할 수 없는 짓이었다.
주하늘의 얼굴이 기쁨으로 환해졌다.“미리야, 너 이제 살았어. 동수가 용호걸만 설득하면 이 일 무조건 해결할 수 있을 거야.”“정말로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어. 동수야 고마워!”현미리는 허리를 굽혀 고마움을 표했다.“괜찮아, 다 친구인데 도와주는 게 당연하지.”나동수는 도량이 넓은 듯 손을 흔들었다.“이제 문제도 해결됐으니 우리 자리를 옮겨서 한 잔 더 하자.”정건우가 기사에게 전화하더니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떠나려고 했다.차가 막 시동을 걸고 떠나려는데 십여 대의 검은색 차들이 오더니 클럽 전체를 둘러쌌다.차량 문이 열리자, 몽둥이와 곤봉으로 무장한 괴한들이 클럽으로 달려 들어갔다.“이런 젠장! 방금 그놈들 용씨 가문의 부하들 아니겠지?”정건우는 눈꺼풀을 들썩이며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다행히 빨리 나왔으니 망정이지, 2분만 더 지체했더라면 떠날 수 없었을 것이다.“선미야, 너의 남자친구 괜찮겠어?”현미리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어쨌든 유진우가 방금 자신을 구해줬기에 무슨 일이 생기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다.“걱정하지 마, 해결할 수 있을 거야.”조선미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유진우의 실력이면 이런 괴한들을 상대하는 건 식은 죽 먹기라는 걸 알고 있었다.“글쎄, 아무리 실력이 있다고 해도 두 손으로 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건 힘들 거야.”나동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고소해했다.“맞아! 용씨 가문에 고수들이 얼마나 많은데 혼자서 어떻게 상대해?”정건우가 입을 삐쭉거렸다.그들의 생각에는 유진우가 분명 용씨 가문의 고수들한테 죽임을 당할 것 같았다.조선미는 친구들이 자기 말을 믿지 않자 귀찮은 듯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같은 시각, 클럽의 방 안에서.유진우는 조용히 앉아 혼자서 음식과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마음껏 음식을 먹던 중.문이 쾅 열리더니 수많은 괴한이 몰려들어 순식간에 유진우를 둘러쌌다.“이봐, 내 지원군이 도착했어, 당신은 이제 죽었어!”아까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던 중년 남자가 경
유진우의 차가운 눈빛을 바라보며 이청아는 가슴이 아팠지만, 겉으로는 침착해지려고 애썼다.“진우 씨, 나한테 고마워하라고 그런 거 아니야, 다만 당신이 무사하길 바랄 뿐이야.”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어찌 되든 당신하고는 상관이 없잖아.”유진우는 얼굴을 찡그렸다.“당신이 나를 미워하는 거 알아, 내가 당신한테 진 빚이 많다는 것도 알아. 나중에 꼭 갚을게.”이청아가 말했다.“갚는다고? 필요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마.”유진우가 콧방귀를 뀌었다.“그럼 뭘 할까?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이청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미안한데,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냥 나한테서 멀리 떨어져 줘.”유진우가 말했다.“내가 그렇게 싫어?”이청아는 미간을 찌푸렸다.그녀의 심장 부위에서 설명할 수 없는 따끔거림이 느껴졌다.“아니면? 그동안 나를 개처럼 굴렸으면 됐지, 내가 또 꼬리를 흔들거리며 모든 사람의 비위를 맞춰주길 바라는 거야?”유진우는 비꼬며 말했다.“미안해...”이청아는 심호흡하며 고개를 숙였다.“됐어. 그런 억울한 표정은 그만해, 역겨우니까!”유진우는 인정사정없었다.“나는...”이청아는 몇 번이고 진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유진우의 성격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만약 그가 진실을 알게 되면 분명 용호걸을 찾아가서 어리석은 짓을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그녀는 유진우가 아무리 자신을 미워하고 원수로 생각하더라도 오로지 그가 무사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당신이랑 조선미 씨는 어때?”이청아가 갑자기 물었다.“좋아, 이제 결혼 얘기를 할 예정이야.”유진우는 일부러 이청아를 자극했다.“그래? 그럼 축하해.”이청아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조선미 씨는 좋은 여자야, 당신을 많이 좋아하는 게 보였어. 다만 신분이 좀 차이가 있는 거니까 열심히 노력해서 더 훌륭해지도록 해!”“그건 당신이 걱정할 일이 아니야!”유진우가 냉정하게 반박했다.“그렇지... 당신 둘의 일이니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 아무튼
조선미를 집에 데려다주고 유진우는 평안 의원으로 돌아왔다.그때 검은색 차 한 대가 의원과 멀지 않은 곳에 멈춰있었다.차 문이 열리더니 검은 옷을 입고 복면을 쓴 암살자 몇 명이 무음 장치가 되어 있는 총을 들고 천천히 의원 쪽으로 다가왔다.훈련이 잘되고 호흡이 척척 맞는 그들은 순식간에 의원의 출입구를 모두 봉쇄했다.“가자...”선두에 있는 암살자가 손짓했다.왼쪽에 있던 한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려고 하는데 갑자기 의원의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리더니 안쪽으로부터 희미한 노란색 빛이 비쳐 나왔다.“왔으면 숨지 말고 그냥 들어오지.”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유진우가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테이블 위에는 피클과 땅콩이 한 접시씩 놓여 있었다.그의 여유로운 표정에서는 큰 재앙이 닥칠 것 같지 않아 보였다.“왜? 내가 문밖에까지 나가서 모셔 와야겠어?”유진우가 다시 말했다.암살자들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마침내 한 명한테 보초를 세우고는 모두 총을 들고 걸어 들어갔다.몰래 습격당하지 않기 위해 의원 주변을 훑어보고 매복이 없는 걸 확인한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떻게 우릴 발견한 거야?”암살자는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됐다.그가 이 직업에 종사해 온 수년 동안 그의 총 앞에서 이토록 침착한 사람은 없었다.“30분 동안이나 뒤를 쫓았는데 발견 못 하면 그야말로 장님이지.”유진우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와인 한 잔을 더 따르면서 말했다.“말해봐, 누가 보냈어? 강씨야? 용씨야?”“그게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죽을 건데.”암살자 두목이 냉정하게 말했다.상대방의 눈빛은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다.“죽더라도 알고 죽어야지 않겠어?”유진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알고 싶으면 지옥에 내려가 염라대왕한테 물어봐!”말을 마치고는 바로 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그들 직업은 말이 많으면 안 되는 거였다.“팡! 팡!”두 발의 총알이 유진우의 머리와 가슴을 향해 발사되었다.그가 유진우는 분명 죽
“얘기할게... 그러니까 제발 목숨만 살려줘!”혼비백산한 암살자 두목은 더는 숨기지 않고 모든 사실을 자세하게 털어놓았다. 사주한 사람이 누구인지, 어디 사는지조차 낱낱이 말했다.암살자 두목의 얘기를 다 들은 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몇몇 암살자들을 전부 처리한 후 자리를 떠났다.옛말에 군자가 원수를 갚는데 10년도 늦지 않다고 그는 복수에 있어서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지 않으면 밤에 잠을 설치니까....그 시각 어느 한 고급 호텔의 욕조 안.백발의 청년 권강우가 용호걸과 한창 통화를 하고 있었다.“도련님, 걱정하지 말아요. 제 밑에 애들이 일 하나만큼은 아무 흔적 없이 깔끔하게 처리하거든요. 내일부터 그 녀석의 모습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겁니다.”“그럼 다행이고. 내일 결혼식에 그 어떤 의외의 사고도 있어서는 안 돼.”“당연하죠. 내일 아주 순조롭게 미녀와 함께 집으로 가실 수 있을 겁니다.”권강우가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알았어, 일단 그렇게 해. 저 여자가 계속 터치 못 하게 해서 다른 여자랑 좀 놀아야겠어.”“하하, 그럼 좋은 시간 방해하지 않을게요. 끊겠습니다.”권강우는 인사치레로 대충 두어 마디 건넨 후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고는 샤워 가운을 입고 욕실을 걸어 나왔다.“베이비, 나 왔어.”권강우는 음흉하게 웃으며 오늘 만난 미녀 모델과 뜨거운 시간을 보내려 했다. 그런데 방에 들어간 순간 낯빛이 확 변했다. 미녀 모델은 온데간데없고 한 남자가 침대에 앉아있었는데 바로 유진우였다!“당... 당신이 왜 여기 있어?”권강우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내가 분명 암살자들을 보냈는데 왜 아직도 살아있는 거지?’“당신 부하들은 이미 다 죽었고 이젠 당신 차례야. 남기고 싶은 유언이라도 있어?”유진우가 덤덤하게 물었다. 권강우는 속으로는 움찔했지만, 겉으로는 강한 척했다.“이 자식아! 경고하는데 함부로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난 용씨 가문의 사람이거든!”“알아. 그런데 뭐?”유진우의 표
유진우는 운전하며 미친 듯이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이청아는 받지 않았다.그 순간 말 못 할 두려움이 유진우를 확 덮쳤다. 마치 중요한 무언가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는 액셀을 끝까지 밟고 곧장 이씨 가문 별장으로 달려갔다. 이혼한 후로 이 집으로 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차에서 내린 그는 별장 문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미친 듯이 초인종을 누르며 대문을 냅다 두드렸다.“어떤 예의도 없는 녀석이 문을 이렇게 세게 두드려?”누군가의 짜증 섞인 목소리와 함께 대문이 철컥하고 열렸다.“유진우? 네가 여긴 왜 왔어?”장경화는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기색을 한껏 드러냈다.“청아 씨 어디 있어요? 지금 당장 청아 씨를 만나야겠어요.”유진우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흥, 네가 만나고 싶다면 만날 수 있을 줄 알았어? 네가 뭔데? 당장 꺼져!”장경화가 그를 매정하게 내쫓고 다시 대문을 닫으려던 찰나 유진우가 닫지 못하게 발로 막아섰다.“청아 씨 지금 안에 있는 거 알아요. 할 얘기 있어서 찾아온 거니까 말 좀 전해주세요.”유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할 얘기는 무슨. 내 딸은 너 보고 싶지 않대.”장경화가 경멸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내일이 바로 청아랑 용호걸의 결혼식이야. 앞으로 우리 청아는 용씨 가문의 사모님이라고. 너 같은 사람은 평생 노력해도 안 되니까 다시는 내 딸 귀찮게 하지 마!”“청아 씨는 용호걸이랑 결혼하면 안 돼요.”유진우가 미간을 찌푸렸다.“저 진실을 알게 되었어요. 청아 씨는 이런 희생을 할 필요 없어요. 제가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있어요!”“해결하긴 개뿔!”장경화가 두 눈을 부릅떴다.“유진우! 경고하는데 제발 쓸데없이 끼어들지 마! 내 딸이 용씨 가문에 시집갈 수 있는 건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이고 청아의 복이야. 혹시 무슨 수작이라도 부렸다간 절대 가만 안 둬!”“부귀영화가 중요한가요, 청아 씨의 행복이 중요한가요?”유진우도
“어떤 일은 얼굴 보고 얘기하는 게 나아요.”이청아가 고개를 내저었다.“그래. 그럼 3분 줄 테니까 깔끔하게 정리해.”장경화는 더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조용히 옆으로 움직였다.‘아무튼 내일이 지나면 중주로 이사 가서 상류층의 삶을 살 텐데 뭐. 유진우 같은 쓸모없는 놈은 다시는 내 딸 만날 기회도 없어.’“다시는 연락하지 말자며? 왜 또 왔어?”눈앞에 서 있는 유진우를 보는 이청아의 눈빛이 어딘가 복잡해 보였다.“나 다 알았어. 용호걸이 당신을 협박했다며? 당신 용호걸이랑 결혼하지 않아도 돼. 내가 다 해결할 수 있어!”유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의 말에 이청아는 잠깐 멈칫하다가 이내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당신이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호걸 씨랑 결혼하는 건 강요가 아니라 내가 원해서 하는 거야. 그러니까 호의는 고맙지만 여기까지만 해.”‘알면 뭐가 달라져? 결국에는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으면서.’그녀와 용호걸의 결혼은 용씨 가문과 이씨 가문 두 집안이 이익을 위하여 사돈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누가 먼저 결혼을 깨면 두 집안의 죄인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강남 전체에 그들에게 반항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하여 유진우가 진실을 알았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었고 오히려 더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그럴 리가 없어!”유진우가 눈살을 찌푸렸다.“당신은 용호걸을 싫어하면서 왜 기어코 시집가겠다는 거야?”“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그게 중요해? 호걸 씨는 나에게 부귀영화를 누리게 할 수 있어.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아?”이청아가 씩 웃었다.“당신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거 알아. 지금 거짓말하고 있잖아!”유진우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내가 어떤 사람인지 당신이 잘 알아? 웃기고 있네!”이청아가 코웃음을 쳤다.“진우 씨, 사람은 현실을 알아야 해. 특히 여자는 더 하지. 힘들게 일하는 것보다 돈 많은 남자한테 시집가면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있겠어?”“아니야! 이건 당신
다음날 오전 제운 호텔.성대한 결혼식이 이곳에서 곧 열리게 된다. 두 집안이 사돈을 맺는다는 소식이 거의 강능 전체를 뒤흔들었다.수많은 재벌과 정치인들도 초대를 받고 결혼식에 참석했다. 수백 대의 고급 차들이 호텔 주차장을 꽉 채웠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결혼식 때문에 큰길마저 통제되었다.멋진 양복 차림의 용호걸이 로비에서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물론 그가 인사하는 사람들은 전부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었고 일반 하객은 그의 부하가 맞이했다.“도련님...”그때 권강우가 갑자기 다가와 나지막이 말했다.“사고가 생긴 바람에 유진우 그 자식을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보낸 암살자들도 전부 실종됐고요.”“뭐?”용호걸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넌 대체 뭐 하는 놈이야? 이까짓 일도 제대로 못 해?”“죄송합니다. 제가 그 자식을 너무 얕잡아봤어요.”권강우가 고개를 푹 숙였다.“됐어. 결혼식이 끝나면 내가 직접 사람을 보내서 처리하겠다.”용호걸은 더는 그와 따지고 싶지 않았다.“도련님, 드릴 말씀이 하나 더 있는데요...”권강우가 말끝을 흐렸다.“또 무슨 일이야?”용호걸이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저도 어젯밤에 알았는데 유진우 그 자식 오늘 아무래도 결혼식을 깽판 치러 올 것 같습니다.”권강우가 귓속말로 귀띔했다.“깽판?”용호걸은 잠깐 멈칫하는가 싶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지금 나랑 장난해? 여기 전부 다 내 사람들인데 걔가 무슨 배짱으로 여기 와서 행패를 부려?”“만일에 대비하는 게 좋겠다는 거죠.”권강우도 따라서 웃었다.“깽판 치고 싶다면 오라고 해. 대체 어떻게 깽판 치는지 나도 보고 싶네!”용호걸이 싸늘하게 웃었다.‘아무것도 모르는 촌놈 주제에 감히 나한테 덤벼? 진짜로 온다면 제대로 본때를 보여줘야겠어.’그 시각 호텔의 어느 한 룸.이청아는 넋이 나간 얼굴로 화장대 앞에 멍하니 앉아있었다.어젯밤에 유진우가 찾아온 다음부터 그녀는 혹시라도 유진우가 어리석은 짓을 하진 않을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하여 그
“유진우?”무릎을 꿇은 채 냉정한 표정을 한 유진우를 바라보는 사철수의 얼굴은 매우 복잡해 보였다. 놀라움과 기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더욱 컸다.흑용군이 매복되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사철수는 이미 호룡각의 대세가 기울었음을 알아차렸다.아니나 다를까 호룡각의 기지는 파괴되었고 채원진은 목숨을 잃었으며 사철수는 유진우한테 체포되었다. 하지만 사철수는 어쩌면 이게 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비록 사철수가 호룡각의 사람이긴 했지만, 서경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서경은 이미 사철수한테는 고향 같은 곳이었고 주변에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사철수가 저질렀던 많은 일들은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했던 거라 마음이 늘 불편했었다.오늘,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도 모두 사철수의 업보였고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였다.“아저씨,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채원진이 패했으니, 당신도 패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제 와서 더 할말이 남았나요?”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기면 영웅이고 지면 도적이 되는 법이지요. 세자 전하께서 죽이시든 벌을 주든 저는 다 괜찮습니다. 다만 무고한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사철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간청했다.“당신이 지금 나한테 그런 조건을 내세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유진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세자 전하, 죄인인 저는 죽어도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 아내와 딸은 죄가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용서해 주십시오.”사철수는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 머리를 세게 박으며 유진우에게 절을 올렸다.“당신 말대로 그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죠. 하지만 못난 남편과 아비 때문에 그들도 죄인이 된 겁니다. 설마 당신은 어리석게도 그렇게 큰 죄를 지어 놓고 가족은 아무 일 없이 무사할 거로 생각한 겁니까?”유진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세자 전하, 공을 세우는 거로 저의 죄를 보상하면 안 될까요? 세자 전하께서 소가 되라면 소가 될 것이고 말이 되라면 말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때 조무진이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무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자 완전 무장을 한 군부가 보였는데 족히 수만 명은 되는 것 같았다.검은 갑옷을 입고 긴 칼을 허리에 찬 병사들은 기세가 매우 위풍당당했다.얼핏 보면 마치 강철로 되어 있는 호수 같았는데 멀리서부터 강한 압박감을 주는 이 부대는 바로 서경의 최강 정예 부대 흑용군이었다.“보아하니 사철수는 이미 체포된 것 같네요.”이청성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 흥용군의 리더는 바로 유천우였다.당시 유천우는 명령에 따라 천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 호룡각의 정예 부대를 미리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만든 뒤 절대적인 병력 우세로 오천여 명의 적을 죽이고 나머지는 모두 포로로 체포했다.쿵 쿵 쿵!수만 명의 흑용군이 가까워질수록 그 압박감은 점점 더 강해졌다. 성벽 위에 있던 백호군들도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졌다.소문에 의하면 흑용군은 용국의 최강 군부로서 창시 이래 백전백승을 이뤘고 여러 차례 뛰어난 공을 세웠으며 어떠한 군부도 흑용군과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 없다고 했다.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니 그 소문은 거짓이 아닌듯했다. 흑용군의 강렬함과 살벌함은 충분히 다른 군부를 경시할 만했다.“형! 임무를 완성했어요. 호룡각의 남은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잡아들였어요.”유천우가 먼저 앞으로 다가와 보고했다.“잘했어.”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이쪽은 어떻게 됐어요? 채원진은 죽었어요?”유천우는 여기저기 둘러보며 말했다.“머리가 잘렸는데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조무진은 발로 채원진의 머리를 슬쩍 건드리며 말했다.채원진의 머리는 축구공처럼 땅바닥에서 굴러 유천우의 발밑에 멈추었다.“뭐야! 이렇게 못생겼다고? 어쩐지 맨날 가면을 쓰고 다니더라니.”유천우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암살하고 서경을 해친 놈을 미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채원진은 이미 죽었고 밑에 있던 정예들은 모두 체포되었으니, 호룡각은 이제 완전히 멸망한 셈이에요.
채원진은 죽고 호룡각 기지는 함락되었다. 이로써 호룡각은 조직 전체가 완전히 멸망했고 남은 사람이라고는 흩어져 있는 병사들뿐이라 크게 위험이 되지는 않았다.하지만 유진우는 방심하지 않고 호룡각이 관련된 모든 사람은 전부 체포하라고 명을 내렸다. 만약 그들이 자진해서 항복한다면 죽음을 면할 수 있지만 끝까지 저항한다면 남은길은 죽음뿐이었다.“형, 드디어 이 재앙 같았던 놈을 처리했네. 축하해!”조무진은 앞으로 걸어가 채원진의 시신을 발로 차 완전히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미소를 지었다.“다 네 덕분이야. 네가 20만 명의 백호군을 데리고 채원진의 퇴로를 끊어놓지 않았다면 채원진은 또 다른 기회를 찾아 연명했을지도 몰라.”유진우가 말했다. 그는 채원진을 죽이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다. 결국 채원진은 죽었고 그는 승리했다.“난 별로 한 게 없어. 고마워할 거면 공주마마께 고마워해야지.”조무진은 고개를 돌려 뒤에 서있는 이청성을 보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공주마마께서 형을 돕는다고 엄청 바쁘셨어.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독촉하느라 발등에 불이 붙을 뻔했다니까.”“조무진 씨!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이청성은 앞으로 걸어 나오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별거 아니에요. 공주마마께서 학식과 도리가 깊고 외모와 지혜가 뛰어나다고 칭찬하고 있었어요.”조무진은 아첨하며 웃음을 지었다.“흥!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네요.”이청성은 조무진을 흘겨보며 말했다.“공주마마, 감사합니다.”유진우는 공수하며 말했다.“뭘 그렇게 예의를 갖춰요?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끝까지 도와줬을 뿐이에요.”이청성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게다가 채원진은 우리 공공의 적이잖아요. 유진우 씨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전체적으로 보면 백성을 위해 나쁜 놈을 제거 한 거죠.”“공주마마의 대의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이 얘기는 그만하죠. 비록 채원진이 죽었다고 하
반면 채원진은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십여 미터나 날아가 끊임없이 피를 토했다. 팔 전체가 파열되었고 용담적염창도 튕겨 나갔으며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바닥에 누워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도련님, 괜찮으십니까?”홍복홍은 재빨리 달려가 떨고 있는 유진우를 부축했다.“괜찮아요.”유진우는 몸에 기혈이 들끓고 팔이 저리고 검도 제대로 잡지 못할 것 같았다.비록 채원진이 중상을 입기는 했지만 방금 전력으로 내뿜은 일격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힘이었고 결국 유진우도 피를 토하고 말았다.채원진의 몸에 있는 멸신독이 퍼지지 않았다면 오늘 그를 제압하지 못했을 것이다.“왜? 이럴 수 없어. 절대 이럴 수는 없어...”땅에 엎드려 맥 빠진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채원진의 두 손은 긴 손가락 자국을 남긴 채 땅바닥에 푹 꺼져 있었다.안 그래도 흉측하던 얼굴이 더욱 흉측해 보였다.“남길 유언이라도 있나?”유진우는 창궁검을 손에 들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채원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한 세대의 효웅이었던 채원진은 마치 죽음을 앞둔 늙은 개처럼 낭패와 처참함 그리고 빨리 죽기 위해 발악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다.“유진우! 이 비열한 새끼야! 네가 이런 모함을 꾸미지 않았다면 내가 패할 가능성은 절대 없었고 이 지경까지 되지도 않았을 거야. 인정 못 해. 죽어도 인정 못 해!”채원진은 미친 사람처럼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그의 상대는 용국의 지존인 서경 왕 유만수처럼 천하를 뒤흔든 거물이었는데, 젖비린내 나는 아이들 몇 명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채원진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비열?”유진우는 콧방귀를 뀌고 말을 이었다.“이런 단어가 네 입에서 나오니까 정말 어이없구나. 사람을 시켜서 내 아버지를 암살하고 이간질로 삼촌을 유혹하여 반역을 도모해 서경을 혼란에 빠뜨리고. 네가 했던 일 중에 어느 하나 비열하지 않은 일이 없어. 죽을 때가 되니 이제 와서 도리를 따지는 거야? 쪽팔리지도 않아? 그리고 네가 인정하든 못하든 난
“채원진, 나라와 백성을 해친 네 죄가 극악무도하니 인제 그만 포기하고 꼼짝 말거라. 반항한다면 사살할 것이다.”이청성은 손에 황권을 상징하는 금색 영패를 쥔 채 차가우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이청성이 이번에 유진우를 따라 서경에 온 이유는 바로 호룡각에 남아있는 잔당을 대처하기 위해서였고 여러 가지 경우를 대비해 많은 준비를 해두었다.병력을 이동하라는 칙령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이성민이 직접 내린 거였고 그 덕분에 20만 명의 백호군을 움직여 이번 작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왜?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이청성을 본 채원진은 절망하는 얼굴로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고 그의 입과 코에서는 검붉은 피가 더욱 많이 흘러내렸다.“채원진, 넌 이제 끝났어. 판을 뒤집을 가능성은 절대 없으니 그만 포기해. 오늘이 지나면 호룡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어둠 속에 숨어 살던 추악한 놈들은 자기가 했던 행동에 책임지고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유진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야! 난 아직 패한 거 아니야! 절대 그럴 수 없어!”채원진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내가 이 자리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이제 겨우 천하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너희 같은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들 때문에 무너질 거 같아?”오랜 세월을 참고 견뎌 호룡각의 각주가 된 채원진은 이제 곧 막강한 권세를 누릴 줄 알았는데, 겨우 며칠도 안 돼 큰 타격을 입고 궁지까지 내몰리고 말았다.채원진은 단념할 수 없었다. 이렇게 어린 녀석들을 감당하지 못해 실패하고 죽는다는 게 달통 되지 않았다.“채원진, 아직도 모르겠어?”조무진은 담담하게 말했다.“용맥이 잘려서 사라질 때부터 호룡각 말살은 시작된 거야. 그때 너희들은 이미 대세와 기운을 잃었어. 만약 너희들이 어둠 속에 숨어서 연명한다면 몇 년 더 살 수는 있겠지만 그런 탐욕은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러니까 서경왕부를 건드릴 생각은 하지 말았어야지. 그 결정을 내리는 순간부터 넌 이미
“무슨 헛소리야! 호룡각의 사람이 아니면, 서경왕부의 사람이라도 된다는 거야?”채원진은 눈이 시뻘게져 소리쳤다.“맞아. 내 사람들이야.”유진우는 솔직하게 대답했다.“네가 부대를 이끌고 우리를 매복시키려 할 때 내 병마들은 그 허점을 틈타 이미 너의 기지를 점령했어. 그러니까 이제 이곳은 내 소유야.”“유장혁! 그런 헛소리를 내가 믿을 거 같아?”채원진은 험악한 얼굴로 소리쳤다.“아무리 내가 많은 정예병들을 데리고 나갔다고 하지만, 기지 내에 적어도 3만 명의 병마가 있었고 각종 방어 조치까지 더해져 10만 명 이상의 병력이 없다면 감히 공격도 못해. 서경의 흑용군은 모두 내 감시하에 있었는데 만약 10만 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했다면 내가 몰랐을 리가 없잖아.”“누가 그래? 내가 흑용군을 호출했다고?”유진우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생각하는 걸 나라고 생각 못 할 것 같아? 너의 잔당들을 토벌하기 위해 이번에 특별히 지원군들을 불렀지.”어젯밤, 유천우한테 최대한 빠른 속도로 서신을 전하게 한 이유가 바로 구원병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구원병이 제때 도착해 유진우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될 수 있었다.“지원병? 무슨 지원병?”채원진은 왠지 불안한 마음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서경과 가장 가까운 부대는 서남 지역에 있는 백호군이고, 백호군의 사령관은 전쟁의 신 조무진이야. 그런데 공교롭게도 조무진은 나와 아주 친한 사이라 도움을 좀 받았지.”유진우의 담담한 대답에 채원진은 못 믿겠다는 듯 미친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백호군? 조무진? 그럴 리가 없어. 헛소리 하지 마!”“못 믿겠으면 뒤돌아봐.”유진우는 설명 대신 채원진의 뒤를 보며 턱을 치켜들었다.뭔가를 느낀 듯한 채원진이 뒤를 돌아보니 성벽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은색 갑옷을 입은 준수한 외모의 한 젊은 남자가 정예 장병들과 함께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젊은 남자는 다름 아닌 전쟁의 신 조무진이었다.“채원진, 어때? 이제 현실이 좀 받아들여져
“거의 거의 다 왔어. 곧 도착이야.”채원진은 정혈을 끌어 연소시키며 겨우 도망쳤다. 도중에 끊임없이 피를 토했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한바탕 전력 질주 끝에 드디어 채원진의 눈에는 기지 앞의 높은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성벽만 넘으면 그는 안전할 수 있었다.채원진은 기지 안에 많은 영단 묘약이 있으니, 그의 독을 치료할 약이 기필코 있을 거로 생각하며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성문을 열어라! 어서 빨리 성문을 열어!”성벽 지하까지 돌진한 채원진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비틀거리며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얼굴은 짙은 보라색으로 변해있었고 입과 코에서는 여전히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슝 슝 슝.채원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벽 위에서 갑자기 팔뚝 굵기의 쇠뇌가 몇 대 발사되었는데 10만여 근의 힘을 숨기고 있는 쇠뇌의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놀란 채원진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팡 팡 팡.몇 대의 쇠뇌는 채원진의 눈앞에 떨어지며 엄청난 위력과 함께 뒤쪽 끝을 조금 남긴 채 반이 넘게 땅바닥 깊이 박혀 들어가며 굉음을 냈다.“야! 너희들 미쳤어? 나 호룡각의 객주야! 눈 똑바로 뜨고 잘 봐!”채원진이 성벽을 향해 소리를 질렀지만,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은 오히려 듣는 척도 하지 않고 무기를 들어 채원진에게 겨누었다.각종 중화력 무기도 가동되었고 수많은 포구와 총구가 동시에 성벽 아래에 있는 채원진을 겨누었다.누군가의 명령이 내려지기만 하면 채원진은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었다.“눈은 멋으로 붙이고 다니는 거야? 나도 못 알아봐? 당장 성문을 열어! 안 그러면 전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화가 치밀어 오른 채원진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되려 집 문 앞에서 막힐 줄이야.‘이 녀석들, 도대체 무슨 수작인 거야?’채원진이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채원진, 너한테 남은 건 죽음뿐이야.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면 고통 없이
10대 독극물 중 하나인 멸신독은 랜드 신선의 세상에서 막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다시 말해, 용호산의 장선기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에서 멸신독의 침식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언제 죽느냐에 달렸을 뿐, 채원진의 죽음은 정해진 거였다.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대처해야지 궁지에 몰렸다고 고양이를 무는 쥐가 되어서는 안 된다.“각주님.”채원진이 습격을 당하자, 후방에서 지켜보던 마스트 경지의 장로 세 명이 갑자기 안색이 하얗게 질린채 망설일 새도 없이 즉시 나서서 도울 준비를 했다.“꺼져!”채원진이 소리를 지르며 눈앞에 있는 모든 사람을 전부 쓰러뜨릴 기세로 손에 있던 용담적염창을 휘두르자, 세 명의 호룡각 장로들이 그 자리에서 튕겨 나가 피를 토하며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유태범한테 배신당해 이성을 잃은 채원진은 광기에 빠진 사람처럼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적이라고 생각하고 전부 죽일 기세였다.“너희들 전부 죽여버릴 거야!”채원진이 연속으로 용담적염창을 휘두르자 날카로운 총검이 천지를 뒤덮으며 백 미터 이내가 완전히 죽음의 늪으로 변해 산 것 죽은 것 할 거 없이 전부 가루가 되었다.“쿨럭.”한바탕 광기를 뿜어내던 채원진은 또 한 번 검붉은 피를 토해냈고 온몸에 맥이 빠져 휘청거렸다.그제야 분노로 이글거리던 눈빛이 차츰 사그라지며 광기 어린 공격도 멈추었다. “빌어먹을 놈들아, 언젠가 내가 너희들을 산산조각 낼 테니 각오들 하거라.”독설을 내뱉은 채원진은 목숨이라도 부지하기 위해 한줄기의 잔영으로 변한 채 급하게 기지 쪽으로 도망쳤다.지금 채원진은 독에 중독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까 가슴팍이 유진우의 검에 찔려 몸이 매우 쇠약한 상태였다.만약 이 상태로 계속 싸웠다가는 여기서 죽을 수도 있었던 터라 채원진은 어쩔 수 없이 기지로 돌아가 해독을 시켜줄 사람을 찾아야만 했다.채원진은 자신의 기지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아무리 유진우의 사람들이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자신의 성벽을 뚫지는 못할 거로 생각했
암기 형태로 발사되는 멸신독의 유효 사거리는 3미터였다.3미터 안에서는 기습공격으로 명중시킬 수 있었다.유태범이 암기를 꺼내 채원진의 등 뒤에서 기습공격을 가했을 때, 독침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쉽게 그의 몸에 꽂혀 들어갔다.“후... 드디어 끝났네.”유태범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마치 중요한 임무를 완수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런 유태범과는 반대로 채원진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그는 놀란 듯한 눈빛으로 유태범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대체 왜입니까?”채원진은 눈을 크게 뜨며 얼굴에 드러난 충격과 당혹감, 불신과 깊은 의문을 숨기지 못했다.채원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유태범은 분명 서경 왕부와 절연한 사람이었고, 호룡각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밝은 미래만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날 배신해?’“정말 죄송합니다, 각주님. 저도 유씨 가문 사람으로서 유씨 가문이 멸망하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유태범은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게다가 장혁이는 제 친조카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한 법인데, 제가 제 조카를 왜 배신합니까?”“처음부터 다 계획된 거였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연극이었다는 거냐고요? 배신이고 흔적이고 뭐고 다 거짓말이었다는 거예요?”채원진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이렇게 안 하면, 어떻게 각주님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신뢰를 못 얻었다면 지금 이런 상황도 없었을 겁니다.”유태범이 당당하게 말했다.“각주님, 각주님은 참 똑똑하고 조심스러우셨죠. 그런 각주님을 죽이기 위해선 철저한 계획을 짰어야 했습니다. 과정이 조금 번거롭긴 했지만, 그래도 결과가 좋아서 다행입니다.”“당신... 당신들...”채원진은 분노에 치를 떨며 이를 악물었다. 순간적으로 혈압이 오른 탓에 그의 목에는 핏줄까지 튀어나와 있었다.급격한 혈액순환을 틈타 몸속으로 침투한 멸신독은 더욱 빠른 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채원진의 입에서 검붉은 색의 피가 나왔다.그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