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틀 무렵 어느 한 고급 별장 안.한참 단잠에 빠졌던 조선미는 인기척을 듣고 두 눈을 번쩍 떴다.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걸어간 그녀는 커튼을 살짝 열어보았다.흐릿한 달빛 아래 문 앞을 지키던 경호원 몇 명이 언제 공격당했는지 전부 바닥에 쓰러져있었다.“뭐야?”조선미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침대 서랍을 열어 총 한 자루를 꺼냈다. 그러고는 방문을 살짝 열고 상황을 살핀 후 옆방으로 달려갔다.“아영아...”조선미는 곤히 잠든 조아영을 깨웠다. 조아영이 깨어나자마자 입을 막고 소리 내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했다.“소리 내지 마. 누가 집에 쳐들어왔어.”“누가 쳐들어왔다고?”조아영은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언니, 꿈꾼 거 아니야? 이 별장 주변에 열 명이 넘는 고수들이 밤낮으로 지키고 있는데 죽고 싶지 않은 이상 누가 쳐들어오겠어?”“우리 경호원들 전부 다 당했어. 지금 상황이 위험하니까 얼른 나랑 나가자.”조선미가 진지하게 말했다.“뭐?”조아영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언니, 대체 누구야? 형부한테 전화할까?”“시간 없어. 일단 여길 나가고 보자.”조선미는 바로 창문을 열어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동생과 함께 뛰어내리려 했다.“아영아, 내가 셋 세면 같이 뛰어내리자.”“뛰어내리자고?”조아영이 침을 꿀꺽 삼켰다.“언니, 여기 너무 높아. 나 무서워.”“고작 2층이고 바닥도 다 잔디라서 안 죽어.”조선미가 위로했다.“언니, 다른 선택은 없어?”조아영이 부들부들 떨었다.“있어. 뛰어내리거나 죽거나.”조선미가 싸늘하게 말했다.“뭐?”조아영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이젠 정말 시간 없어. 3, 2, 1. 뛰어!”조선미는 다짜고짜 동생의 손을 잡고 2층에서 뛰어내렸다.쿵!두 사람은 잔디밭에 떨어져 곤두박질쳤다. 다행히 잔디가 푹신하고 층이 높지 않아 발을 삐끗하진 않았다.“가자!”조선미는 한 손에는 조아영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에는 총을 쥐고 뒷문으로 달려갔다.
더는 기다릴 수 없었던 조윤지는 당장 마대 자루를 열라고 했다. 곧이어 정신을 잃고 쓰러진 조선미와 조아영이 모습을 드러냈다.“아주 좋아. 두 사람 다 잡았으니까 이젠 아무 문제 없을 거야.”조윤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약점을 두 개나 잡았으니 조군수가 입을 꼭 열 거라 확신했다.“응? 이 여자였어?”조선미의 얼굴을 본 선우장훈은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왜요? 선미 알아요?”조윤지가 눈살을 찌푸렸다.‘둘이 만약 아는 사이라면 큰일인데.’“한 번 만난 적 있어요.”선우장훈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어제 술집에서 어떤 기생오라비가 글쎄 날 때렸는데 이 여자가 바로 그 기생오라비의 여자였어요.”얻어맞은 후로 유진우를 계속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유진우의 여자를 납치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역시 하늘도 그의 편인가?“도련님, 어제 도련님을 때린 사람 혹시 유진우라는 사람인가요?”조윤지가 바로 물었다.“그런 것 같아요.”선우장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맞네요!”조윤지가 싸늘하게 말했다.“두 연놈이 평소에도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고 다니면서 나쁜 짓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라요.”“흥,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날 때린 것도 모자라 형수님까지 건드렸을 줄은 몰랐어요. 우리의 적이니까 이참에 제대로 복수하자고요!”선우장훈은 차갑게 웃으면서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조선미를 훑었다. 이런 절세미인을 데리고 놀지 않는다는 건 너무도 낭비였다.“도련님, 일단 중요한 일부터. 보물 지도만 손에 넣는다면 얘네 둘 마음대로 데리고 놀아도 돼요.”조윤지는 선우장훈의 탐욕을 바로 눈치챘다.“헤헤. 고맙습니다, 형수님.”선우장훈은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웃었다.‘예쁜 여자가 둘이나 있다니. 제대로 복 터졌네.’촤락!그들은 조군수에게 차가운 물을 뿌렸다.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조군수는 몸을 파르르 떨면서 두 눈을 떴다.“작은아버지, 또 만났네요?”조윤지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시간이 하도 긴박하여
“선미?”조군수는 조선미를 보자마자 바로 흥분하기 시작했다.“조윤지!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선미는 네 사촌 동생이야!”“사촌 동생은 무슨. 쟤는 그냥 X년이죠!”조윤지가 소리를 질렀다.“얘는 어릴 적부터 나랑 경쟁하길 좋아하더니 커서도 똑같아요. 가문에 좋은 자원이 있으면 당신들은 다 선미한테만 줬고 나한테는 항상 나머지만 줬어요. 대체 왜? 내가 선미보다 뭐가 부족해서?”“윤지야, 난 그 누구도 편애한 적이 없어. 선미는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오늘까지 왔어. 너희들의 출발점은 같았다고.”조군수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자기 딸에게 준 자원보다 조윤지에게 준 게 더 많았다.“헛소리 집어치워요! 내가 그런 소리를 믿을 것 같아요? 당신이 뒤에서 몰래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선미가 어떻게 나보다 더 뛰어나겠어요!”조윤지가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조군수가 예전에 족장의 신분을 이용하여 조선미에게 좋은 것만 주었다고 생각했다. 하여 어릴 적부터 항상 조선미의 그늘에서 살았다고 여겼다.“윤지야, 우리 다 가족인데 내가 그럴 이유가 없잖아.”조군수의 표정이 복잡해졌다.“흥! 내 앞에서 착한 척 좀 그만 해요!”조윤지가 냉랭하게 말했다.“지금 당신이랑 쓸데없는 얘기 할 시간 없어요. 한마디만 물을게요. 보물 지도 내놓을 거예요, 말 거예요?”그러더니 들고 있던 칼을 위로 들었다. 조선미의 목에 난 상처나 점점 깊어지면서 시뻘건 피가 칼을 따라 흘러내렸다.그 모습에 조군수는 바로 움찔했다.“그만해, 윤지야. 더는 잘못된 길로 가지 마.”“왜요? 당신한테는 딸의 목숨보다 보물 지도가 더 중요해요?”조윤지는 표정이 더 어두워지더니 이번에는 칼로 조아영의 목도 겨누었다.“목숨 하나로 부족하다면 두 개로 바꾸면 되죠. 보물 지도만 내놓는다면 두 사람 풀어줄게요. 안 그러면 얘네들이 죽는 걸 지켜봐야 할 겁니다.”“윤지야, 피를 나눈 가족끼리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조군수는 조급해지기 시작했다.“안 내놓겠다 이거죠? 그래요. 그
조윤지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군수의 목덜미를 칼로 찔렀다. 조군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형수님, 보물 지도가 유진우의 손에 있는 걸 알았으니 이참에 복수해버리죠, 뭐. 지금 당장 사람 보내서 잡아 오라고 할게요.”선우장훈의 두 눈에 흉악함이 스쳤다.“그럴 필요 없어요. 우리가 찾아다니는 것보다 유진우가 직접 찾아오게 하는 게 나아요.”조윤지가 실눈을 뜨고 말했다.“그래요? 형수님한테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요?”선우장훈이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내가 어떻게 하는지 봐요.”조윤지는 두말없이 조선미 앞으로 다가가더니 잠옷을 확 찢어버렸다. 그러자 하얀 피부와 섹시한 속옷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보일 듯 말듯 하는 완벽한 몸매에 선우장훈의 두 눈이 반짝였고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정말 매혹적인 여자란 말이야.’“도련님, 선미를 기둥에 묶어줘요. 영상을 찍어야겠어요.”조윤지는 휴대 전화를 꺼내 카메라를 켰다.“아 참, 도련님도 옆에 서 있어요. 더 자극적이게.”“알았어요!”선우장훈은 히죽 웃으며 조선미를 기둥에 묶으라고 부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고는 그녀의 머리를 넘기더니 가까이 다가가 그녀에게 흠뻑 빠진 듯 냄새를 맡으면서 탐욕스럽게 숨을 쉬었다.“좋아요.”조윤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영상을 찍으면서 말 몇 마디를 보탠 뒤 보냈다.“됐어요. 유진우 아마 30분 내로 보물 지도까지 들고 선우 저택으로 와서 사죄할 겁니다. 안 그러면 이년을 아주 치욕스럽게 죽일 거예요.”“형수님, 이 정도로 될까요? 그 자식 만약 무서워서 안 오면 어떡해요?”선우장훈이 물었다.“안 올 리가 없어요. 내가 아는 유진우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서 무조건 올 거예요.”조윤지가 갑자기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그리고 자기 여자가 몹쓸 짓을 당하게 생겼는데 가만히 있을 남자가 어디 있어요.”“하긴.”선우장훈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싸늘하게 웃었다.“만약 그 자식이 정말로 온다면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게 할 겁니
날이 점점 밝아졌다. 풍우 산장은 이른 아침부터 북적이기 시작했다.오늘은 유진우의 생일이라 강린파 전체가 매우 중요시하게 여겼다. 하여 이틀 전부터 하객들을 초대했고 성대한 생일 파티를 준비했다.강린파는 서울 지하 세계를 주름잡았고 유진우는 지하의 왕이라 불렸다. 그 어떤 세력이든 감히 나 몰라라 하지 못했고 설령 초대장을 받지 못했더라도 선물을 준비해야 했다.똑똑...그 시각 산장 보스의 방 안.두 눈을 감고 앉아있던 유진우는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눈을 떴다.“무슨 일이에요?”유진우가 방문을 열어보니 장 어르신이 밖에 서 있었다.“보스, 큰일 났어요!”장 어르신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오늘 아침 동이 틀 때 고수들이 선미 씨가 머무르는 별장에 들이닥쳤어요. 우리가 보낸 애들은 전부 살해당했고 선미 씨는 지금 행방불명됐어요. 아무래도 납치된 것 같아요.”“뭐라고요?”유진우의 표정이 급변했다.“어떻게 이런 일이! 누구 짓이에요?”“그건 아직 몰라요. 알아보라고 했으니까 곧 결과가 나올 겁니다.”장 어르신이 고개를 푹 숙였다.“애들 전부 다 풀어서 꼭 범인을 잡도록 해요!”유진우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강린파 제자를 죽이고 조선미를 납치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가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상대가 누구든지 반드시 무거운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 다짐했다.윙윙...그때 휴대 전화가 갑자기 진동하더니 누군가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영상 하나를 보냈다.영상을 확인한 유진우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얼굴에 살기가 가득했다.영상 속 조선미는 옷이 찢어진 채 기둥에 묶여있었다. 그리고 옆에 음흉하게 생긴 한 남자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면서 탐욕스럽게 웃고 있었다. 욕망이 어찌나 가득한지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았다.게다가 영상 속 남자는 유진우가 전에 만난 적이 있었던 선우장훈이었다.“유진우, 30분 줄 테니까 보물 지도 들고 선우 저택으로 와. 1분이라도 늦었다간 네 여자 무슨 짓을 당할지 몰라.”영상이 끝
강남 전체의 젊은 세대 중에 선우희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사람들은 앞으로 선우희재가 이끈다면 선우 가문은 더욱 찬란하게 발전할 것이고 나아가서는 강남 전체를 이끌 것이라 생각했다.하여 선우희재가 약혼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서울뿐만 아니라 강남의 다른 큰 도시의 권력자, 유명 인사, 사업 거물 등 사람들도 전부 달려왔다.날이 밝자마자 선우 저택은 이미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하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그 시각 회의실 안.선우희재가 가운데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밖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의 양옆에 선우 가문의 핵심 인물들이 앉아있었다.큰아버지든 고모든 사촌 형제든 선우희재 앞에서는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할 정도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그가 호풍장군이 된 후 선우 어르신은 족장 자리를 한 세대 건너서 선우희재에게 물려주었다. 처음에 다른 가족들은 선우희재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3일도 채 안 되는 사이에 그를 반대했던 가족들은 죽거나 다치거나 누구 하나 멀쩡한 사람이 없었다.결국 보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선우희재는 가문 전체를 손에 넣었다. 그에게 순종하는 자는 발전하고 거역하는 자는 죽을 것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었다.그로부터 몇 년 후, 선우희재의 위엄은 선우 어르신마저 넘어서게 되었고 누구나 다 두려워하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조군해 씨, 시간이 다 됐는데 내가 원하던 물건은요?”한참 후 선우희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그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끝자리로 향했다. 그 자리에는 조씨 가문 사람들이 앉아있었다.“그게...”조군해는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날이 밝기 전에 보물 지도를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지금 내놓지 않으면 아주 곤란한 상황이 될 게 뻔했다.“뭐예요? 내 말을 귓등으로 들은 건가요?”선우희재의 눈빛이 점점 싸늘해졌다.“아닙니다. 그럴 리가요.”조군해는 연신 손을 저으면서 뻔뻔스럽게 말했다.“도련
“선우희재! 당장 나와!”갑작스러운 소리가 선우 저택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소리가 어찌나 높은지 우레처럼 온 하늘을 뒤흔들었다. 게다가 무서운 살기와 분노까지 섞여 있었다.“무엄하다! 어떤 놈이 감히 여기서 큰소리를 쳐?”“제 주제도 모르는 놈, 감히 선우 저택에서 소란을 피워? 당장 잡아들여!”“건방진 것 같으니라고!”잠깐의 고요함이 흐른 후 회의실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선우 가문 사람들은 하나같이 화를 내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지금까지 선우 저택에서 행패를 부린 사람은 없었다. 특히 선우희재의 이름까지 함부로 부르면서 무례하게 구는 행동은 거의 죽을죄나 마찬가지였다.“빌어먹을 놈, 넌 정말 무서운 것도 없구나.”조윤지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유진우가 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나댈 줄은 몰랐다. 안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아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윤지야, 네가 말했던 귀찮은 일이라는 게 바로 이거지?”조금 전까지 눈살을 찌푸리던 선우희재는 바로 덤덤해지더니 화난 기색도 전혀 없었다.“오빠, 사실 보물 지도가 유진우 손에 있어요. 유진우만 잡는다면 모든 일이 다 순조롭게 풀릴 거예요.”조윤지가 웃으며 말했다.“너 아주 간덩이가 부었구나. 감히 날 총알받이로 이용해?”선우희재가 그녀를 싸늘하게 흘겨보았다.“절대 그런 뜻이 아니에요, 오빠.”당황한 조윤지가 바로 설명했다.“조군수가 가족도 아닌 유진우한테 보물 지도를 줘서 그래요. 그리고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다른 걸 준비할 새가 없어서 일단 오라고 했어요. 온 다음에 잡으려고요.”“그나마 머리 쓸 줄 아는구나. 너의 충성을 봐서 오늘 유진우를 죽여줄게. 나중에 어떤 후환이 있을지 모르니까.”선우희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소매를 툭툭 털더니 회의실을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사람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다가 곧장 따라나섰다.그 시각 선우 저택 대문 앞.“으악!”마지막 비명과 함께 선우 가문의 경호원 십여 명이 유진우에게 얻어맞아 바닥에 널브러졌다. 손발
선우장훈의 표정이 싸늘해지더니 바로 손을 흔들면서 명령을 내렸다.“비켜! 내가 해결할게!”그때 한 근육질의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유진우를 향해 달려갔다. 스피드와 힘 모두 놀랄 정도로 어마어마했고 마치 소 한 마리가 달려가는 것처럼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절반 정도 달려갔을 무렵 근육남이 주먹에 힘을 가하자 한쪽 팔이 갑자기 부풀어 오르면서 핏줄도 마구 튀어나왔다.“풍우권!”근육남은 소리를 지르면서 엄청난 무게의 주먹을 유진우에게 휘둘렀다.“주철용도 참 잔인해. 처음부터 필살기를 쓰다니.”“저 주먹은 나도 당해내지 못하는데 저렇게 삐쩍 마른 애는 말할 것도 없지.”“허허... 주철용의 풍우권에 죽는 건 영광이야.”무인들은 하하호호 웃으면서 재미나는 구경거리를 보듯 했다.그들 중에서 주철용이 가장 강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실력 있는 고수였다. 만약 일반 무인이었다면 닿기만 해도 죽었을 것이다.“꺼져!”유진우는 근육남의 공격 따위 가볍게 무시하더니 바로 주먹을 들어 먼저 공격했다.쿵!폭발음과 함께 근육남의 몸은 마치 폭탄 맞은 수박처럼 그 자리에서 터져버리고 말았다. 피가 사방에 튀면서 피바다가 되었다.“뭐야?”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사람들은 그대로 넋이 나갔고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쩍 벌렸다.주철용은 선천무사였고 세간에서도 나름 이름 있는 고수였다. 그런데 그런 고수를 주먹 한 방에 해결하다니, 이게 말이 된다고?“X발. 이리 쉽게 죽었어?”선우장훈도 화들짝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유진우가 강한 건 알았지만 주먹 한 방으로 주철용을 죽일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X발!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났어. 여러분, 다 같이 덤비죠!”놀라움도 잠시 무인들은 엄청난 적이라도 만난 것처럼 진지해졌다. 일대일로는 아예 불가능하기에 쪽수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었다.“죽여버려!”유진우가 계속 몰아붙이자 선우장훈이 참다못해 소리를 질렀다.“죽여!”사람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한참 동안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비록 유만수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몇 년은 더 버틸 수 있을 거로 생각했고 무엇보다 이제 겨우 내우외환을 해결했는데, 유만수가 자리를 넘겨준다고 하니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여보, 너무 성급한 거 아닌가요?”옆에 있던 이의진이 권유했다.“그러니까요. 위왕 님, 아직 몸도 정정하시고 지금은 백세시대인데 어찌 이렇게 일찍 자리를 넘겨줄 생각을 하십니까?”장범규는 정직하고 솔직하게 물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묻고 싶었지만, 감히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만약 누군가 나서서 유만수를 설득한다면 새로운 위왕 님의 미움을 살 수도 있으니,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조용하게 상황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여러분, 제 몸은 제가 잘 압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마침 여러분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후사를 미리 안배하는 것도 제 소원을 이루는 셈입니다.”유만수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여보...”이의진이 뭔가를 말하려는데 유만수가 손을 들어 제재하며 말했다.“그만. 난 이미 결정했으니 더 이상 설득할 필요 없어.”유만수는 다시 모든 사람을 향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여러분, 저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선정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 사람의 손에 미래 서경의 흥망성쇠가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이 일은 저 혼자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에는 누가 미래의 서경을 맡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까?”“그건...”유만수의 말에 사람들은 더욱 당황했다. 형세를 보아하니 유만수는 내부 투표를 통해 지지자가 많은 사람한테 서경을 맡길 생각인 것 같았다.그러니 문제는 유진우를 선택할 것인가 유천우를 선택한 것인가였다.재능과 능력 면에서 보면 당연히 유진우가 한 수 위이지만 집안 내력과 배후 세력으로 판단하면 유천우가 한 수 위였다.유천우는 최근 몇 년 동안 전쟁에서 매우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미래가 기대된다는
보물 지도를 나눈 뒤 유진우는 사람을 안배해 호룡각의 기지를 다시 한번 정리했다. 이곳은 위치가 은밀하여 수비는 쉬우나 공격하기는 아주 어려웠고 또한 두 나라의 국경 지대에 놓여있었다.그러니 이곳을 군사 요새로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만약 앞으로 서방 제국과 충돌이 생긴다면 이곳이 중요 군사 지점이 될 것이고 여기서 출병한다면 반드시 예상치 못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지금 당장은 쓸모가 없겠지만 미리 준비해 둔다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해당 건을 해결한 뒤 유진우는 사람들을 데리고 서경왕부로 돌아갔다.이번에 유진우가 서경의 복병을 해결하고 대승을 거두었기에 유만수는 서경의 왕으로서 특별히 부내에서 연회를 열어 많은 손님을 초대했다.이번 사건에 공로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초청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한동안 왕부 안팎은 매우 시끌벅적했다.유만수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한테 매우 기쁜 소식이었고 호룡각을 멸한 건 더욱 기쁜 일이니 축하할 이유가 충분했다.밤이 되자 왕부 안은 이미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서경에 있는 모든 사람이 거의 다 모인 것 같았다.각 고급 장교, 각 고위 간부, 그리고 각 방면의 거물들이 모두 왕부에 모여 술을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여러분, 후배인 제가 먼저 몇 마디 하겠습니다.”연회에서 유천우는 먼저 일어나 손에 잔을 들고 큰 소리로 말했다.“이번에 왕부가 위기를 맞았었지만, 여러분은 떠나지 않고 앞다투어 왕부의 근심과 어려움을 해결해 주어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자, 제가 먼저 여러분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말을 마친 유천우는 고개를 번쩍 들고 잔에 든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도련님이 너무 겸손하네. 우리는 서경의 신하로서 당연히 왕부와 함께해야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 별거 아니야.”평양 제후 장범규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맞는 말이야. 오랜 시간을 위왕 님과 함께 보냈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늘 같이했으니, 왕부가 곤경에 처했다면 당연히 전폭적으로 도와야지. 나라를 위해서
“맞아요. 길이라는 건 한번 잘못 들어서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죠. 사철수의 모든 행동은 좋은 결과를 맞이할 수가 없어요. 누구처럼 죄를 공으로 대처할 기회조차 없죠.”유천우는 유태범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말했다.만약 유태범이 셋째 삼촌이 아니고 아버지의 인자함이 없었다면, 그뿐만 아니라 형제의 상잔을 원하지 않았고 손실이 크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역모는 열 번 죽어도 모자란 죄였다.“흠 흠.”유천우의 눈빛에 유태범은 괜히 마음에 찔려 화제를 돌렸다.“장혁아, 세 개의 보물 창고를 모두 합치면 가치가 엄청날 텐데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야?”“당연히 전부 서경으로 가져가야죠. 설마 그 잡놈들한테 남겨두기라도 하겠다는 거예요?”유천우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세 개의 보물 창고를 우리가 전부 독차지할 수는 없어.”유진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우리만의 힘으로 호룡각을 멸망시킨 건 아니잖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야. 그러니 보물 창고도 공평하게 함께 나눠야지.”“공평하게 나눈다고? 장혁아, 장난이지?”유태범은 어리둥절해서 격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방금 사철수의 말을 들었잖아. 호룡각의 보물 창고는 수십 년 동안 축적해 온 것들이고 그 수가 엄청날 텐데, 그걸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나눈다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이번에 호룡각을 소탕하는 데 유태범은 뛰어난 공을 세웠으니, 나중에 또 다른 표창을 받을 수도 있었다.다시 말해, 서경왕부가 더 많은 보물을 얻어야만 유태범의 이익도 더 많아지기 때문에 그는 당연히 보물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보물도 좋지만, 도의도 지켜야죠. 사람들이 멀리서 우리를 도와주러 왔는데, 우리가 보물을 독차지한다면 그건 배은망덕한 사람이죠.”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그건 그렇지만 굳이 똑같이 나눌 필요는 없잖아. 적당하게 성의를 보여주면 되는 거지.”유태범이 말했다.“저는 이미 마음먹었어요. 제 결정이 불만스럽다면 유만수에게 일러바쳐서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사철수 씨, 아직도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예요? 사진이라도 찍어줘요? 빨리 보물 지도를 찾아내세요.”불만으로 꼴 독 찼던 유태범은 못마땅한 얼굴로 사철수에게 화풀이했다.“알겠어요. 서두를게요.”유태범의 말에 사철수는 즉시 합금으로 되어 있는 대문 앞으로 다가가 채원진의 부러진 손을 들어 중간 부분에 있는 감응 위치를 살짝 눌렀다.띵 하는 소리와 함께 두터운 대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열리자, 금속으로 만든 금고가 드러났다.금고는 약 33제곱미터 정도의 크기였고 한가운데에는 골드바가 사람의 키보다 더 높게 쌓여 있었다.골드바 외에도 그 주변에는 다양하면서도 진기한 보물들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비싸고 귀중한 물건들이었다.“이곳은 채원진의 개인 금고예요. 채원진은 마음에 드는 모든 물건을 전부 이곳에 수집했어요.”사철수가 설명했다.“보물들이 어마어마하네요.”유천우는 사방을 둘러보며 감탄했다.“이것들을 전부 가지고 나가면 성을 하나 사고도 남겠네요.”“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호룡각의 다른 세 보물 창고에 비하면 눈앞에 있는 것들은 새 발의 피죠.”사철수가 설명했다.“정말이에요?”유천우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당신 말대로라면 호룡각의 보물을 전부 모으면 산더미가 되겠는데요?”“제가 직접 본건 아니지만 수십 년 동안 쌓아왔으니, 산더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예요.”사철수는 진지하게 말했다.“좋아요. 아주 좋아요! 빨리 모든 보물을 긁어모으고 싶네요.”유천우는 정신이 번쩍 들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보물 지도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유태범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있어요.”사철수는 맨 안쪽 선반으로 가서 위에 놓여있는 정교한 박달나무 상자를 꺼내 조심스럽게 유진우에게 건넸다.유진우가 열어보니 안에는 양피지 3장이 들어있었다. 모든 양피지에는 상세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지도 중앙에는 보물 창고의 위치가 금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보물 지도가 진짜라면, 지도에 그려져 있는
“보물 지도는 어디 있나요?”유진우가 추궁했다.“채원진의 지하 밀실에 있어요. 내가 직접 세자 전하를 모시지요.”사철수가 말했다.“지하 밀실?”유천우는 실눈을 뜨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속으로 다른 꿍꿍이를 꾸미는 건 아니죠? 나중에 나를 악랄하다고 탓하기 싫으면 그런 생각은 빨리 접는 게 좋을 거예요.”밀실 같은 건물에는 함정과 암기가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유천우는 사철수가 다른 속셈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저는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아닙니까.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사철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앞서서 안내하세요.”유진우가 두 근위병에게 눈치를 주자 근위병 두 명이 와서 사철수를 일으켜 세웠다.“잠깐만요. 밀실에 있는 보물 상자를 열려면 채원진의 손이 필요해요.”사철수가 갑자기 말했다.“그건 쉽죠.”유천우는 즉시 칼을 빼 들어 채원진의 오른손을 잘라 사철수에게 건네며 말했다.“자. 선물이에요.”사철수는 징그러웠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채원진의 손을 받아 들고 앞장섰다.유진우와 몇몇 사람은 사철수를 따라 기지로 들어갔고 마침내 지휘실 입구까지 도착했다.사철수는 문을 열고 벽 쪽으로 다가간 다음 벽에 걸려 있는 그림 하나를 떼어냈다.그림 뒤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혀 알아차리기 어려운 하나의 버튼이 있었다.사철수가 손을 내밀어 버튼을 누르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벽 전체가 갑자기 양쪽으로 열리더니 안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드러났다.사철수가 유진우를 포함한 몇 명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로 올라탄 뒤 스위치를 누르자 문이 닫히더니 천천히 지하로 내려갔다.반 시간 남짓 지나자 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유진우와 몇 명 사람들의 눈에는 넓고 호화로운 지하 밀실이 들어왔다.말이 밀실이지 사실 호화 저택에 가까웠다. 안에는 없는 것 없이 다양한 생활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었고, 많은 물과 식량도 수집되어 있었는데 수십 년 동안 혼자 생활하기에는 충분한 수량이었다.“핵 방지
“유진우?”무릎을 꿇은 채 냉정한 표정을 한 유진우를 바라보는 사철수의 얼굴은 매우 복잡해 보였다. 놀라움과 기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더욱 컸다.흑용군이 매복되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사철수는 이미 호룡각의 대세가 기울었음을 알아차렸다.아니나 다를까 호룡각의 기지는 파괴되었고 채원진은 목숨을 잃었으며 사철수는 유진우한테 체포되었다. 하지만 사철수는 어쩌면 이게 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비록 사철수가 호룡각의 사람이긴 했지만, 서경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서경은 이미 사철수한테는 고향 같은 곳이었고 주변에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사철수가 저질렀던 많은 일들은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했던 거라 마음이 늘 불편했었다.오늘,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도 모두 사철수의 업보였고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였다.“아저씨,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채원진이 패했으니, 당신도 패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제 와서 더 할말이 남았나요?”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기면 영웅이고 지면 도적이 되는 법이지요. 세자 전하께서 죽이시든 벌을 주든 저는 다 괜찮습니다. 다만 무고한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사철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간청했다.“당신이 지금 나한테 그런 조건을 내세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유진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세자 전하, 죄인인 저는 죽어도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 아내와 딸은 죄가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용서해 주십시오.”사철수는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 머리를 세게 박으며 유진우에게 절을 올렸다.“당신 말대로 그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죠. 하지만 못난 남편과 아비 때문에 그들도 죄인이 된 겁니다. 설마 당신은 어리석게도 그렇게 큰 죄를 지어 놓고 가족은 아무 일 없이 무사할 거로 생각한 겁니까?”유진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세자 전하, 공을 세우는 거로 저의 죄를 보상하면 안 될까요? 세자 전하께서 소가 되라면 소가 될 것이고 말이 되라면 말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때 조무진이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무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자 완전 무장을 한 군부가 보였는데 족히 수만 명은 되는 것 같았다.검은 갑옷을 입고 긴 칼을 허리에 찬 병사들은 기세가 매우 위풍당당했다.얼핏 보면 마치 강철로 되어 있는 호수 같았는데 멀리서부터 강한 압박감을 주는 이 부대는 바로 서경의 최강 정예 부대 흑용군이었다.“보아하니 사철수는 이미 체포된 것 같네요.”이청성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 흥용군의 리더는 바로 유천우였다.당시 유천우는 명령에 따라 천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 호룡각의 정예 부대를 미리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만든 뒤 절대적인 병력 우세로 오천여 명의 적을 죽이고 나머지는 모두 포로로 체포했다.쿵 쿵 쿵!수만 명의 흑용군이 가까워질수록 그 압박감은 점점 더 강해졌다. 성벽 위에 있던 백호군들도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졌다.소문에 의하면 흑용군은 용국의 최강 군부로서 창시 이래 백전백승을 이뤘고 여러 차례 뛰어난 공을 세웠으며 어떠한 군부도 흑용군과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 없다고 했다.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니 그 소문은 거짓이 아닌듯했다. 흑용군의 강렬함과 살벌함은 충분히 다른 군부를 경시할 만했다.“형! 임무를 완성했어요. 호룡각의 남은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잡아들였어요.”유천우가 먼저 앞으로 다가와 보고했다.“잘했어.”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이쪽은 어떻게 됐어요? 채원진은 죽었어요?”유천우는 여기저기 둘러보며 말했다.“머리가 잘렸는데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조무진은 발로 채원진의 머리를 슬쩍 건드리며 말했다.채원진의 머리는 축구공처럼 땅바닥에서 굴러 유천우의 발밑에 멈추었다.“뭐야! 이렇게 못생겼다고? 어쩐지 맨날 가면을 쓰고 다니더라니.”유천우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암살하고 서경을 해친 놈을 미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채원진은 이미 죽었고 밑에 있던 정예들은 모두 체포되었으니, 호룡각은 이제 완전히 멸망한 셈이에요.
채원진은 죽고 호룡각 기지는 함락되었다. 이로써 호룡각은 조직 전체가 완전히 멸망했고 남은 사람이라고는 흩어져 있는 병사들뿐이라 크게 위험이 되지는 않았다.하지만 유진우는 방심하지 않고 호룡각이 관련된 모든 사람은 전부 체포하라고 명을 내렸다. 만약 그들이 자진해서 항복한다면 죽음을 면할 수 있지만 끝까지 저항한다면 남은길은 죽음뿐이었다.“형, 드디어 이 재앙 같았던 놈을 처리했네. 축하해!”조무진은 앞으로 걸어가 채원진의 시신을 발로 차 완전히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미소를 지었다.“다 네 덕분이야. 네가 20만 명의 백호군을 데리고 채원진의 퇴로를 끊어놓지 않았다면 채원진은 또 다른 기회를 찾아 연명했을지도 몰라.”유진우가 말했다. 그는 채원진을 죽이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다. 결국 채원진은 죽었고 그는 승리했다.“난 별로 한 게 없어. 고마워할 거면 공주마마께 고마워해야지.”조무진은 고개를 돌려 뒤에 서있는 이청성을 보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공주마마께서 형을 돕는다고 엄청 바쁘셨어.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독촉하느라 발등에 불이 붙을 뻔했다니까.”“조무진 씨!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이청성은 앞으로 걸어 나오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별거 아니에요. 공주마마께서 학식과 도리가 깊고 외모와 지혜가 뛰어나다고 칭찬하고 있었어요.”조무진은 아첨하며 웃음을 지었다.“흥!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네요.”이청성은 조무진을 흘겨보며 말했다.“공주마마, 감사합니다.”유진우는 공수하며 말했다.“뭘 그렇게 예의를 갖춰요?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끝까지 도와줬을 뿐이에요.”이청성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게다가 채원진은 우리 공공의 적이잖아요. 유진우 씨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전체적으로 보면 백성을 위해 나쁜 놈을 제거 한 거죠.”“공주마마의 대의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이 얘기는 그만하죠. 비록 채원진이 죽었다고 하
반면 채원진은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십여 미터나 날아가 끊임없이 피를 토했다. 팔 전체가 파열되었고 용담적염창도 튕겨 나갔으며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바닥에 누워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도련님, 괜찮으십니까?”홍복홍은 재빨리 달려가 떨고 있는 유진우를 부축했다.“괜찮아요.”유진우는 몸에 기혈이 들끓고 팔이 저리고 검도 제대로 잡지 못할 것 같았다.비록 채원진이 중상을 입기는 했지만 방금 전력으로 내뿜은 일격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힘이었고 결국 유진우도 피를 토하고 말았다.채원진의 몸에 있는 멸신독이 퍼지지 않았다면 오늘 그를 제압하지 못했을 것이다.“왜? 이럴 수 없어. 절대 이럴 수는 없어...”땅에 엎드려 맥 빠진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채원진의 두 손은 긴 손가락 자국을 남긴 채 땅바닥에 푹 꺼져 있었다.안 그래도 흉측하던 얼굴이 더욱 흉측해 보였다.“남길 유언이라도 있나?”유진우는 창궁검을 손에 들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채원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한 세대의 효웅이었던 채원진은 마치 죽음을 앞둔 늙은 개처럼 낭패와 처참함 그리고 빨리 죽기 위해 발악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다.“유진우! 이 비열한 새끼야! 네가 이런 모함을 꾸미지 않았다면 내가 패할 가능성은 절대 없었고 이 지경까지 되지도 않았을 거야. 인정 못 해. 죽어도 인정 못 해!”채원진은 미친 사람처럼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그의 상대는 용국의 지존인 서경 왕 유만수처럼 천하를 뒤흔든 거물이었는데, 젖비린내 나는 아이들 몇 명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채원진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비열?”유진우는 콧방귀를 뀌고 말을 이었다.“이런 단어가 네 입에서 나오니까 정말 어이없구나. 사람을 시켜서 내 아버지를 암살하고 이간질로 삼촌을 유혹하여 반역을 도모해 서경을 혼란에 빠뜨리고. 네가 했던 일 중에 어느 하나 비열하지 않은 일이 없어. 죽을 때가 되니 이제 와서 도리를 따지는 거야? 쪽팔리지도 않아? 그리고 네가 인정하든 못하든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