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미?”조군수는 조선미를 보자마자 바로 흥분하기 시작했다.“조윤지!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선미는 네 사촌 동생이야!”“사촌 동생은 무슨. 쟤는 그냥 X년이죠!”조윤지가 소리를 질렀다.“얘는 어릴 적부터 나랑 경쟁하길 좋아하더니 커서도 똑같아요. 가문에 좋은 자원이 있으면 당신들은 다 선미한테만 줬고 나한테는 항상 나머지만 줬어요. 대체 왜? 내가 선미보다 뭐가 부족해서?”“윤지야, 난 그 누구도 편애한 적이 없어. 선미는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오늘까지 왔어. 너희들의 출발점은 같았다고.”조군수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자기 딸에게 준 자원보다 조윤지에게 준 게 더 많았다.“헛소리 집어치워요! 내가 그런 소리를 믿을 것 같아요? 당신이 뒤에서 몰래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선미가 어떻게 나보다 더 뛰어나겠어요!”조윤지가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조군수가 예전에 족장의 신분을 이용하여 조선미에게 좋은 것만 주었다고 생각했다. 하여 어릴 적부터 항상 조선미의 그늘에서 살았다고 여겼다.“윤지야, 우리 다 가족인데 내가 그럴 이유가 없잖아.”조군수의 표정이 복잡해졌다.“흥! 내 앞에서 착한 척 좀 그만 해요!”조윤지가 냉랭하게 말했다.“지금 당신이랑 쓸데없는 얘기 할 시간 없어요. 한마디만 물을게요. 보물 지도 내놓을 거예요, 말 거예요?”그러더니 들고 있던 칼을 위로 들었다. 조선미의 목에 난 상처나 점점 깊어지면서 시뻘건 피가 칼을 따라 흘러내렸다.그 모습에 조군수는 바로 움찔했다.“그만해, 윤지야. 더는 잘못된 길로 가지 마.”“왜요? 당신한테는 딸의 목숨보다 보물 지도가 더 중요해요?”조윤지는 표정이 더 어두워지더니 이번에는 칼로 조아영의 목도 겨누었다.“목숨 하나로 부족하다면 두 개로 바꾸면 되죠. 보물 지도만 내놓는다면 두 사람 풀어줄게요. 안 그러면 얘네들이 죽는 걸 지켜봐야 할 겁니다.”“윤지야, 피를 나눈 가족끼리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조군수는 조급해지기 시작했다.“안 내놓겠다 이거죠? 그래요. 그
조윤지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군수의 목덜미를 칼로 찔렀다. 조군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형수님, 보물 지도가 유진우의 손에 있는 걸 알았으니 이참에 복수해버리죠, 뭐. 지금 당장 사람 보내서 잡아 오라고 할게요.”선우장훈의 두 눈에 흉악함이 스쳤다.“그럴 필요 없어요. 우리가 찾아다니는 것보다 유진우가 직접 찾아오게 하는 게 나아요.”조윤지가 실눈을 뜨고 말했다.“그래요? 형수님한테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요?”선우장훈이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내가 어떻게 하는지 봐요.”조윤지는 두말없이 조선미 앞으로 다가가더니 잠옷을 확 찢어버렸다. 그러자 하얀 피부와 섹시한 속옷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보일 듯 말듯 하는 완벽한 몸매에 선우장훈의 두 눈이 반짝였고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정말 매혹적인 여자란 말이야.’“도련님, 선미를 기둥에 묶어줘요. 영상을 찍어야겠어요.”조윤지는 휴대 전화를 꺼내 카메라를 켰다.“아 참, 도련님도 옆에 서 있어요. 더 자극적이게.”“알았어요!”선우장훈은 히죽 웃으며 조선미를 기둥에 묶으라고 부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고는 그녀의 머리를 넘기더니 가까이 다가가 그녀에게 흠뻑 빠진 듯 냄새를 맡으면서 탐욕스럽게 숨을 쉬었다.“좋아요.”조윤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영상을 찍으면서 말 몇 마디를 보탠 뒤 보냈다.“됐어요. 유진우 아마 30분 내로 보물 지도까지 들고 선우 저택으로 와서 사죄할 겁니다. 안 그러면 이년을 아주 치욕스럽게 죽일 거예요.”“형수님, 이 정도로 될까요? 그 자식 만약 무서워서 안 오면 어떡해요?”선우장훈이 물었다.“안 올 리가 없어요. 내가 아는 유진우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서 무조건 올 거예요.”조윤지가 갑자기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그리고 자기 여자가 몹쓸 짓을 당하게 생겼는데 가만히 있을 남자가 어디 있어요.”“하긴.”선우장훈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싸늘하게 웃었다.“만약 그 자식이 정말로 온다면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게 할 겁니
날이 점점 밝아졌다. 풍우 산장은 이른 아침부터 북적이기 시작했다.오늘은 유진우의 생일이라 강린파 전체가 매우 중요시하게 여겼다. 하여 이틀 전부터 하객들을 초대했고 성대한 생일 파티를 준비했다.강린파는 서울 지하 세계를 주름잡았고 유진우는 지하의 왕이라 불렸다. 그 어떤 세력이든 감히 나 몰라라 하지 못했고 설령 초대장을 받지 못했더라도 선물을 준비해야 했다.똑똑...그 시각 산장 보스의 방 안.두 눈을 감고 앉아있던 유진우는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눈을 떴다.“무슨 일이에요?”유진우가 방문을 열어보니 장 어르신이 밖에 서 있었다.“보스, 큰일 났어요!”장 어르신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오늘 아침 동이 틀 때 고수들이 선미 씨가 머무르는 별장에 들이닥쳤어요. 우리가 보낸 애들은 전부 살해당했고 선미 씨는 지금 행방불명됐어요. 아무래도 납치된 것 같아요.”“뭐라고요?”유진우의 표정이 급변했다.“어떻게 이런 일이! 누구 짓이에요?”“그건 아직 몰라요. 알아보라고 했으니까 곧 결과가 나올 겁니다.”장 어르신이 고개를 푹 숙였다.“애들 전부 다 풀어서 꼭 범인을 잡도록 해요!”유진우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강린파 제자를 죽이고 조선미를 납치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가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상대가 누구든지 반드시 무거운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 다짐했다.윙윙...그때 휴대 전화가 갑자기 진동하더니 누군가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영상 하나를 보냈다.영상을 확인한 유진우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얼굴에 살기가 가득했다.영상 속 조선미는 옷이 찢어진 채 기둥에 묶여있었다. 그리고 옆에 음흉하게 생긴 한 남자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면서 탐욕스럽게 웃고 있었다. 욕망이 어찌나 가득한지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았다.게다가 영상 속 남자는 유진우가 전에 만난 적이 있었던 선우장훈이었다.“유진우, 30분 줄 테니까 보물 지도 들고 선우 저택으로 와. 1분이라도 늦었다간 네 여자 무슨 짓을 당할지 몰라.”영상이 끝
강남 전체의 젊은 세대 중에 선우희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사람들은 앞으로 선우희재가 이끈다면 선우 가문은 더욱 찬란하게 발전할 것이고 나아가서는 강남 전체를 이끌 것이라 생각했다.하여 선우희재가 약혼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서울뿐만 아니라 강남의 다른 큰 도시의 권력자, 유명 인사, 사업 거물 등 사람들도 전부 달려왔다.날이 밝자마자 선우 저택은 이미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하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그 시각 회의실 안.선우희재가 가운데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밖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의 양옆에 선우 가문의 핵심 인물들이 앉아있었다.큰아버지든 고모든 사촌 형제든 선우희재 앞에서는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할 정도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그가 호풍장군이 된 후 선우 어르신은 족장 자리를 한 세대 건너서 선우희재에게 물려주었다. 처음에 다른 가족들은 선우희재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3일도 채 안 되는 사이에 그를 반대했던 가족들은 죽거나 다치거나 누구 하나 멀쩡한 사람이 없었다.결국 보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선우희재는 가문 전체를 손에 넣었다. 그에게 순종하는 자는 발전하고 거역하는 자는 죽을 것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었다.그로부터 몇 년 후, 선우희재의 위엄은 선우 어르신마저 넘어서게 되었고 누구나 다 두려워하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조군해 씨, 시간이 다 됐는데 내가 원하던 물건은요?”한참 후 선우희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그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끝자리로 향했다. 그 자리에는 조씨 가문 사람들이 앉아있었다.“그게...”조군해는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날이 밝기 전에 보물 지도를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지금 내놓지 않으면 아주 곤란한 상황이 될 게 뻔했다.“뭐예요? 내 말을 귓등으로 들은 건가요?”선우희재의 눈빛이 점점 싸늘해졌다.“아닙니다. 그럴 리가요.”조군해는 연신 손을 저으면서 뻔뻔스럽게 말했다.“도련
“선우희재! 당장 나와!”갑작스러운 소리가 선우 저택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소리가 어찌나 높은지 우레처럼 온 하늘을 뒤흔들었다. 게다가 무서운 살기와 분노까지 섞여 있었다.“무엄하다! 어떤 놈이 감히 여기서 큰소리를 쳐?”“제 주제도 모르는 놈, 감히 선우 저택에서 소란을 피워? 당장 잡아들여!”“건방진 것 같으니라고!”잠깐의 고요함이 흐른 후 회의실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선우 가문 사람들은 하나같이 화를 내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지금까지 선우 저택에서 행패를 부린 사람은 없었다. 특히 선우희재의 이름까지 함부로 부르면서 무례하게 구는 행동은 거의 죽을죄나 마찬가지였다.“빌어먹을 놈, 넌 정말 무서운 것도 없구나.”조윤지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유진우가 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나댈 줄은 몰랐다. 안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아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윤지야, 네가 말했던 귀찮은 일이라는 게 바로 이거지?”조금 전까지 눈살을 찌푸리던 선우희재는 바로 덤덤해지더니 화난 기색도 전혀 없었다.“오빠, 사실 보물 지도가 유진우 손에 있어요. 유진우만 잡는다면 모든 일이 다 순조롭게 풀릴 거예요.”조윤지가 웃으며 말했다.“너 아주 간덩이가 부었구나. 감히 날 총알받이로 이용해?”선우희재가 그녀를 싸늘하게 흘겨보았다.“절대 그런 뜻이 아니에요, 오빠.”당황한 조윤지가 바로 설명했다.“조군수가 가족도 아닌 유진우한테 보물 지도를 줘서 그래요. 그리고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다른 걸 준비할 새가 없어서 일단 오라고 했어요. 온 다음에 잡으려고요.”“그나마 머리 쓸 줄 아는구나. 너의 충성을 봐서 오늘 유진우를 죽여줄게. 나중에 어떤 후환이 있을지 모르니까.”선우희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소매를 툭툭 털더니 회의실을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사람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다가 곧장 따라나섰다.그 시각 선우 저택 대문 앞.“으악!”마지막 비명과 함께 선우 가문의 경호원 십여 명이 유진우에게 얻어맞아 바닥에 널브러졌다. 손발
선우장훈의 표정이 싸늘해지더니 바로 손을 흔들면서 명령을 내렸다.“비켜! 내가 해결할게!”그때 한 근육질의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유진우를 향해 달려갔다. 스피드와 힘 모두 놀랄 정도로 어마어마했고 마치 소 한 마리가 달려가는 것처럼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절반 정도 달려갔을 무렵 근육남이 주먹에 힘을 가하자 한쪽 팔이 갑자기 부풀어 오르면서 핏줄도 마구 튀어나왔다.“풍우권!”근육남은 소리를 지르면서 엄청난 무게의 주먹을 유진우에게 휘둘렀다.“주철용도 참 잔인해. 처음부터 필살기를 쓰다니.”“저 주먹은 나도 당해내지 못하는데 저렇게 삐쩍 마른 애는 말할 것도 없지.”“허허... 주철용의 풍우권에 죽는 건 영광이야.”무인들은 하하호호 웃으면서 재미나는 구경거리를 보듯 했다.그들 중에서 주철용이 가장 강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실력 있는 고수였다. 만약 일반 무인이었다면 닿기만 해도 죽었을 것이다.“꺼져!”유진우는 근육남의 공격 따위 가볍게 무시하더니 바로 주먹을 들어 먼저 공격했다.쿵!폭발음과 함께 근육남의 몸은 마치 폭탄 맞은 수박처럼 그 자리에서 터져버리고 말았다. 피가 사방에 튀면서 피바다가 되었다.“뭐야?”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사람들은 그대로 넋이 나갔고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쩍 벌렸다.주철용은 선천무사였고 세간에서도 나름 이름 있는 고수였다. 그런데 그런 고수를 주먹 한 방에 해결하다니, 이게 말이 된다고?“X발. 이리 쉽게 죽었어?”선우장훈도 화들짝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유진우가 강한 건 알았지만 주먹 한 방으로 주철용을 죽일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X발!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났어. 여러분, 다 같이 덤비죠!”놀라움도 잠시 무인들은 엄청난 적이라도 만난 것처럼 진지해졌다. 일대일로는 아예 불가능하기에 쪽수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었다.“죽여버려!”유진우가 계속 몰아붙이자 선우장훈이 참다못해 소리를 질렀다.“죽여!”사람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유진우의 두 눈과 마주친 순간 선우장훈은 저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이 확 밀려왔다.아주 완벽하게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상대가 이리 쉽게 깨부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당장 풀어줘. 안 그러면 죽음뿐이야!”유진우는 살기등등한 기세로 점점 몰아붙였다.“풀어주긴 개뿔!”탕, 탕, 탕!선우장훈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더니 등 뒤에서 갑자기 총 한 자루를 꺼내 유진우를 향해 쐈다. 총알이 발사된 순간 유진우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을 땐 이미 선우장훈의 코앞까지 와있었다.“너...”혼비백산한 선우장훈이 뒷걸음질 치려던 그때 유진우는 그의 손목을 덥석 잡고 가차 없이 부러뜨렸다.“으악!”선우장훈의 비명이 울려 퍼지면서 들고 있던 총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목이 졸려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소리마저 멈췄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으며 두 발이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선미 씨 어디 있어?”유진우는 흉악한 얼굴로 무섭게 몰아붙였다.“이... 이거 놔.. 안 그러면 아주 처참하게 죽는 수가 있어.”선우장훈은 미친 듯이 발버둥 치면서 온갖 협박을 해댔다.“선미 씨 어디 있냐고 물었어!”유진우가 손가락에 힘을 가하자 선우장훈은 점점 더 숨을 쉴 수가 없었고 얼굴의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났으며 두 발을 계속 허우적거렸다.“멈춰!”그때 선우 가문의 핵심 인물들이 위풍당당하게 몰려왔다. 그들 뒤로 무장 병사들이 가득했고 기세가 아주 살벌했다. 그리고 그들의 맨 앞에 선우희재가 서 있었다.“유진우, 아주 간덩이가 부었구나! 당장 도련님 풀어줘. 안 그러면 살아서 여길 못 나가는 수가 있어!”조윤지가 소리 높이 외쳤다. 선우장훈의 사람이 유진우를 쉽게 제압할 거라 생각했는데 전멸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형... 살... 살려줘!”선우장훈이 힘겹게 고개를 돌리면서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풀어주면 죽이진 않을게.”선우희재가 싸늘하게 한마디 했다. 목소리가 높진 않았지만 위엄이 넘쳤다
지금까지 이렇게 미쳐 날뛰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대낮에 홀로 선우 가문에 쳐들어와서 선우장훈의 목을 조인다는 건 그야말로 달걀로 바위 치기였고 죽음을 자초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인마, 봤어? 주변에 전부 우리 병사들이야. 뭐로 나랑 싸울 건데?”선우장훈이 흉악스럽게 웃었다.“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날 풀어주고 스스로 경맥을 자른 다음 바닥에 무릎 꿇고 빌어. 그럼 목숨을 살려줄지도 몰라.”“죽고 싶어?”유진우는 한 손으로 선우장훈의 목을 잡고 천천히 들어 올렸다. 눈빛이 서늘하기 그지없었다.“왜? 내가 못할 것 같아?”선우장훈은 전혀 겁먹은 기색이라곤 없이 건방을 떨었다.“그럼 날 건드려봐. 날 건드리면 너뿐만이 아니라 네 가족과 친구들 모두 죽는 수가 있어. 아, 그리고 네 여자 지금 지하실에 갇혀있어. 내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내 부하들이 차례로 달려들어 죽지 못해 사는 게 어떤 기분인지 제대로 보여줄 거야. 하하... 자, 건드려봐!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겠어?”선우장훈은 마치 상대를 잡아먹기라도 하듯 박장대소했다.싸움을 잘해봤자 무슨 소용인가?실력이 강해봤자 무슨 소용인가?절대적인 권력 앞에 개인의 용기는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선우 가문에는 고수가 수두룩했고 군대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유진우의 실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큰 풍파를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내가 정말 널 죽이지 못할 것 같아? 아니면 날 함부로 쥐고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유진우가 냉랭하게 물었다.“허허... 그럴 배짱이 있어? 두 눈 똑바로 뜨고 봐봐. 넌 지금 독 안에 든 쥐야.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곤 무릎 꿇고 항복하는 것뿐이라고.”선우장훈의 기세는 여전히 꺾이지 않았다.“유진우, 당장 도련님을 풀어주고 보물 지도를 내놔. 안 그러면 조선미네 가족 싹 다 죽여버릴 거야.”조윤지가 큰소리로 협박했다.“너희들만 인질이 있는 게 아니라 나도 있어. 목숨 하나씩 바꾸자.”유진우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으려 애를 썼다. 조선미의
그래야만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라도 지킬 수 있다.지금 왕위를 이어받을 자격과 능력을 갖춘 사람은 표기 대장군 유태범밖에 없었다.첫째로 유태범은 유씨 가문 사람이라 왕족에 속했기에 명분이 정당했다. 둘째로 표기 대장군으로서 서경의 절반에 달하는 군대를 거느리고 있어 권력이 하늘을 찔렀다. 셋째로 유태범은 오랜 시간 동안 힘을 키워왔다. 인맥, 위신, 공로 모두 왕위에 오르기에 충분했다.현재 유태범이 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적지 않은 관원들은 애도를 표한 후 바로 대장군 저택으로 가서 유태범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었다.이러한 움직임은 당연히 서경왕부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의진은 그들을 제압할 힘이 없었다.“어머니, 벌써 종일 여기 계셨어요. 들어가서 쉬세요. 이러다가 몸이 상하실까 걱정됩니다.”수심과 피곤이 가득한 어머니의 얼굴을 본 유천우가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는데 내가 어찌 편히 쉴 수 있겠어.”이의진이 고개를 내저었다.“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더 조심해야죠. 서경왕부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 왕비인 어머니가 버티셔야 합니다. 절대 쓰러져선 안 돼요.”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하지만...”이의진은 뭐라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유천우가 가로챘다.“어머니, 이번에는 제 말을 들어주세요. 먼저 들어가서 쉬고 내일 아침에 다시 아버지 곁을 지켜도 괜찮아요.”이의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유천우는 도우미 두 명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너희 둘, 어머니를 방으로 모시고 잘 보살펴드려.”“알겠습니다.”두 도우미는 대답한 후 이의진을 부축했다. 무릎을 하도 오랜 시간 꿇고 있어 다리가 저린 나머지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천우야, 너도 몸 잘 챙겨. 절대 방심해선 안 돼.”이의진이 당부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유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나가는 걸 본 후에야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렸다.“다들 돌아가. 여긴 나 혼자 지키면
그 시각 서경왕부 문 앞.유태범 등 3인은 한 무리의 근위병들을 이끌고 서둘러 걸어 나왔다.서경왕부를 떠난 후 조군영이 참다못해 물었다.“대장군님, 이의진 모자가 주제도 모르고 저렇게 날뛰는데 계속 가만히 내버려 둬야 합니까?”“당연히 내버려 둘 순 없지. 하지만 너무 대놓고 움직여서도 안 돼. 흑용군의 대부분 고급 장교들이 서경왕부에 충성해서 정말 싸우기라도 한다면 우리한테 좋을 게 없어.”유태범이 실눈을 뜨고 말했다.“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조군영이 또 물었다.“대놓고 움직일 수 없다면 몰래 압력을 가해야지.”유태범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서경에 내란이 일어서 서경왕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진정한 리더가 누구인지 알게 될 거야.”“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이간질시킬게요. 백성들의 원한이 커져서 서경왕부도 감당이 안 될 때 대장군님이 구세주처럼 등장하는 겁니다. 그때가 되면 서경의 백성들은 대장군님께 고마워할 것이고 새로운 서경왕으로 모시겠죠.”눈치가 참 빠른 조군영이었다.“맞아. 아주 영특하구나, 너. 나중에 내가 서경왕 자리에 앉으면 표기 대장군 자리는 네 것이 될 거야.”유태범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 대장군님.”조군영은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얼른 움직여. 빠를수록 좋아. 절대 그 어떤 흔적도 남겨선 안 된다는 거 명심해.”유태범이 신신당부했다.“알겠습니다. 제가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조군영은 인사를 올린 후 자리를 떠났다.“대장군님, 일반적인 내란이라면 서경왕부의 뿌리를 흔드는 건 불가능할 거예요. 반드시 강력한 무언가가 있어야 해요.”고원이 귀띔했다.“그건 나도 알고 있어.”유태범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동안 난 내 사람을 몰래 키워왔어. 8대 제후 중에 절반이 내 사람이야. 내 명령 한마디면 주저하지 않고 날 도와줄 거야.”“진작 준비하고 계셨군요.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고원이 웃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서경왕이 되면 절대 섭섭지 않게 해줄게.”
“유태범은 오랫동안 야심을 숨겨왔어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이 기회에 무조건 권력을 빼앗으려고 할 겁니다. 이 일 아직 끝나려면 멀었어요.”유천우가 수심에 찬 얼굴로 말했다.“맞아. 대놓고 움직이진 못해도 뒤에서 온갖 수단을 동원할 거야. 앞으로 적지 않은 문제가 생길 게 분명해.”이의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위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절대 함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형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유천우가 한탄하듯 말했다.“천우야, 네 능력도 네 형 못지않아. 네 형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도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이의진이 그를 격려했다.“어머니, 제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어요. 형님에 비하면 한참 부족합니다.”유천우가 고개를 내저었다.“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마.”이의진이 엄격한 얼굴로 말했다.“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어. 장례식이 끝난 후에 폐하께 말씀드려서 너한테 왕위를 물려주게 할 거야. 앞으로 서경왕은 너고 그 중책을 맡아야 해.”“어머니, 왕위는 형 거예요. 전 그 자리를 물려받을 생각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서경왕은 형만이 물려받을 자격이 있다고요.”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천우야, 다른 일은 남한테 양보해도 이건 절대 안 돼!”이의진이 어두운 목소리로 호통쳤다.“그 자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꿈에 그리는 자리인지 알아? 놓치면 평생을 후회할 거라고!”“전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요. 저한테 있어서 권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아버지처럼 매일 애쓰고 힘들게 사는 것보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유천우가 고개를 내저었다.‘왕이 되면 좋을 게 뭐가 있다고. 걱정거리만 태산일 텐데. 그럴 바엔 맨날 먹고 놀면서 편히 살겠어. 그게 더 좋은 거 아닌가?’“이 녀석아, 일이 네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전에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건 다 네 아버지가 있어서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금 아무 권력도 손에 쥐지 않는다면 나중에 아주 처참한 결말을 맞이할 거란
“유장혁?”그 소리에 주변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한때 유씨 가문의 천재는 이름을 널리 떨쳤었다. 그런데 10년 전 자금성의 난이 터진 후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고 현재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런 그의 이름을 갑자기 들으니 놀랄 만도 했다.“도련님,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세자 전하의 생사도 불투명한 데다가 어디 있는지도 아무도 몰라요. 그런 분한테 서경왕의 자리를 맡긴다는 건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 아닌가요?”조군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두 손까지 펼쳐 보였다.“그러게요, 도련님. 제발 현실을 잘 알고 말씀하세요. 세자 전하께 기댈 바엔 차라리 대장군님께 기대는 게 더 낫죠.”고원도 나서서 맞장구를 쳤다.유천우가 자기 자신을 얘기할 줄 알았는데 실종된 지 10년이나 된 사람을 얘기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이보다 더 터무니없는 얘기는 없었다.“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형도 꼭 돌아올 겁니다. 그때 가서 형이 왕위를 이어받아도 문제없죠.”유천우가 싸늘하게 말했다.“도련님, 제가 하는 말이 거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만약 세자 전하께서 이미 돌아가셨으면 어떡해요? 서경왕의 자리를 계속 비워둘 작정인가요?”조군영이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형님 죽지 않았고 멀쩡하게 살아있어요. 그러니까 조 장군님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유천우가 말했다.“살아있다면 지금 어디 계시는 거죠? 왜 나타나지 않는 겁니까?”조군영은 일부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형님한테 소식을 전했으니 꼭 올 겁니다.”유천우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설마 지금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는 건 아니죠?”조군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위왕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퍼지면 서경 전체가 크게 흔들릴 거예요. 기다릴 시간이 많지 않다고요. 지금 당장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맞아요, 도련님. 대국을 생각하셔야죠!”고원도 나서서 유천우를 설득했다.“형한테 자리를 물려주는 건 아버지의 유언이에요. 지금 명령을 거역하겠단 겁니까?”
사람들이 뒤돌아보니 거친 삼베옷을 입고 상복 모자를 쓴 젊은 남자가 차가운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남자는 위엄이 넘쳤고 온몸에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오랜 시간 전장을 누빈 조군영과 고원마저도 그를 보자마자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표정이 진지해졌다.그 남자는 다름 아닌 유만수의 작은 아들 유천우였다.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유천우는 온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하여 예전에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도 많이 저질렀었고 서경의 사고뭉치라 불리기도 했다.그런데 최근 2년 동안 유천우는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한 듯 더는 빈둥빈둥 놀지 않고 군에 들어가 열심히 살기 시작했다.처음에 사람들은 유천우가 군대에서 3일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산 도련님이 군대의 혹독한 훈련을 버틴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그런데 뜻밖에도 유천우는 군대에서 자리를 잡았고 공까지 세웠다.짧은 2년 사이에 병사에서 흑용군의 부장으로 성장했다. 든든한 배경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놀라운 성과였다.사람들은 그제야 유천우가 응석받이로 자란 도련님이 아니라 군사 천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천우야, 드디어 온 거야?”아들을 보자마자 이의진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겨우 가라앉았던 슬픔이 다시 저도 모르게 밀려왔다.“어머니, 소식 다 들었어요. 제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유천우는 어머니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군영과 고원에게 시선을 옮겼다.“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이렇게 몰아붙이는 겁니까?”“그게...”조군영은 고원의 눈치를 슬쩍 봤다가 어쩔 수 없이 말했다.“도련님, 오해하지 마세요. 저희도 대국을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 현재 서경왕부에 리더가 없어서 누군가 나서서 이끌어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많은 문제가 생길 거예요.”“맞아요, 도련님. 대국을 생각하셔야죠.”고원은 충성을 다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대국?”유천우는 코웃음을 치고는 더는 두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
“서경 대원수의 직위는 매우 중요합니다. 내부 투표를 거칠 뿐만 아니라 폐하께 보고하여 최종적으로는 폐하의 결정을 받아야 해요. 우리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어요.” 이의진의 눈빛이 경계로 가득했다.유태범이 왔을 때 그녀는 처음에는 형제 간의 정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조군영과 고원의 몇 마디 말에 그녀는 갑자기 깨달았다.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유태범은 흑용군에서 유만수 다음가는 위망을 가지고 있었다.표기대장군으로서 그는 많은 심복 장수들을 거느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절반의 병권도 장악하고 있었다.왕이 세상을 떠난 후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유태범이 분명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유태범이 지금 이미 자신의 야심을 드러냈다는 점이다.왕이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권력을 탈취하려 하다니, 그녀는 그의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심지어 유만수의 죽음이 이 자들과 호룡각 잔당들이 암묵적으로 결탁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만약 유태범이 병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무시무시할 것이다.“마마, 급할 때는 권력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런 상황에서 어찌 폐하의 결정을 기다릴 시간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반드시 빨리 국면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조군영이 계속해서 말했다.“맞습니다!”고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장수가 밖에 있으면 군령도 받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폐하는 상황을 전혀 모르니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반드시 우리가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그래야만 소인배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폐하에게 보고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내부 투표를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두가 승복할 수 있어요.” 이의진이 다시 말했다.“투표라니요? 이게 투표할 일입니까? 전 서경을 둘러봐도 대장군님보다 원수 자리에 더 적합한 분이 누가 있습니까?” 조군영이 말했다.“그렇습니다, 왕비마마! 공적으로 보나, 위망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무공으로 보나 어르신을 제외하고는
고원이 갑자기 큰 소리로 외치며 바로 땅에 무릎을 꿇고 세 번 크게 머리를 조아렸다.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고 가까운 사람을 잃은 듯한 모습이었다.비록 똑같이 연기였지만 조군영보다는 훨씬 진실되어 보였다.“표기대장군 도착하셨습니다!”이때 문밖에서 우렁찬 외침이 울렸다.곧이어 금빛 갑옷을 입고 기상이 비범한 중년 남자가 급하게 걸어 들어왔다.이 사람이 바로 일품 표기대장군 유태범이었다!유태범은 표기대장군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유만수의 사촌 동생이기도 했다.유태범은 어릴 때부터 문무를 겸비하고 천부적 재능이 있어 모든 면에서 매우 뛰어났다.만약 유만수가 없었다면 분명 유씨 가문의 가장 빛나는 천재였을 것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유만수라는 세상에 둘도 없는 영웅 앞에서는 아무리 대단한 천재라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대장군께 인사드립니다!”유태범을 보자 조군영과 고원은 즉시 가식적인 표정을 거두고 공손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그들 둘은 모두 유태범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진정한 측근 장수들이었다.마치 유만수와 석태혁의 관계처럼 영광도 함께 하고 손실도 함께했다.“형님!”유태범은 두 심복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영당에 들어서자마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무릎을 꿇었다.그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입술은 떨리며 얼굴에는 비통함과 분노의 빛이 어려 있었다.“어찌 이럴 수가? 우리 형님이 어찌 돌아가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누가 한 짓입니까?!”유태범이 붉은 눈으로 연달아 분노의 외침을 터뜨렸다.“호룡각의 잔당들입니다. 그들이 자객을 부내에 잠입시켜 어젯밤 어르신을 암살했습니다.” 이의진의 얼굴이 흐리멍덩했다.“호룡각?”유태범이 이를 갈며 분노에 차 있다가 즉시 고함쳤다. “누구 없느냐! 즉시 군대를 집결시켜 전 성을 수색하라. 반드시 범인을 체포해야 한다!”“잠깐만요!”이의진이 갑자기 나서서 제지했다.“태범 씨, 매우 비통한 것을 알지만 지금은 아직 일을 크게 만들 수 없습니다.”“형님이 이미 돌아가셨는데 무
이 말이 나오자 조군영과 고원의 안색이 순간 변했다.두 사람이 오늘 온 것은 본래 기세를 과시하려는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이의진이 이렇게 강경한 태도를 보일 줄은 몰랐다.입을 열자마자 반역이라는 죄명을 들이대다니.이런 죄가 뒤집어씌워진다면 그들은 아마 왕부의 대문을 살아서 나가지 못할 것이다.“마마, 농담 마십시오. 반역은 사형감입니다. 저희가 아무리 대범하다 해도 그런 일은 감히 못 하지요!” 고원이 연달아 해명했다.“맞습니다. 저희는 왕께 항상 충성을 다해왔는데 어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조군영도 따라서 부인했다.비록 두 사람 모두 그런 야심이 조금은 있었지만 명백히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적어도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반역할 생각이 없다면 어째서 갑옷을 입고 부내에 들어오시는 것입니까? 규칙도 모르십니까?” 이의진이 조금도 봐주지 않고 꾸짖었다.그저 이품 장군일 뿐인데 군권이 조금 있다고 감히 왕부 안에서 눈깔을 찌푸리고 있다니.유만수가 살아있을 때 이 둘은 감히 이러지 못했다.“아이고! 제 정신 좀 보세요, 왕부의 규칙을 잊었네요. 마마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조군영이 헛웃음을 지었다.이어서 갑옷을 벗고 차고 있던 칼을 내려 왕부의 경비에게 건넸다.“저희가 급히 오느라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의도치 않은 행동이었으니 개의치마시지요.” 고원이 웃으며 말했고 즉시 갑옷과 칼을 벗었다.이 광경을 보고 이의진의 안색이 비로소 조금 누그러졌지만 어조는 여전히 차가웠다. “갑자기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왕께서 자객의 습격을 받아 위험한 상황이라는 소식을 듣고 저희 둘이 특별히 문안드리러 왔습니다.”고원이 가식적으로 말했다.“소식통이 꽤나 빠르군요.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이의진이 차갑게 말했다.“늦었다니요? 무슨 뜻입니까?” 두 사람이 의아한 척했다.이의진은 설명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고 몸을 돌려 영당으로 향했다.왕부 밖은 비록 동정이 없었지만 왕부 안에는 이미 흰 만장이 가득
“알겠습니다. 제가 경비병 신분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들어가시기 전에 먼저 변장을 하셔야 합니다.” 손도운이 결국 타협했다.비록 위험이 있긴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정오 무렵, 서경 왕부 안.비록 유만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봉쇄되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관리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어떤 이들은 비통한 마음으로 조문을 왔고 또 어떤 이들은 다른 목적을 품고 있었다.“보국대장군 도착!”“운미대장군 도착!”왕부 문 앞에서 두 번의 외침이 들렸다.곧이어 갑옷을 입은 체격이 우람한 중년 남자 둘이 각각 친병들을 대동하고 걸어 들어왔다.이 친병들은 모두 허리에 장도를 차고 있었고 보기에도 험상궂었다.온 이들은 바로 이품 관직인 보국대장군 조군영과 운미대장군 고원이었다.“두 분, 왕부에 들어오시기 전에는 반드시 갑옷과 무기를 해제하셔야 합니다.”한 왕부 친위가 조군영과 고원을 막아서며 동시에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흥! 난 밖에 나올 때 갑옷을 벗지 않아. 꺼져!” 조군영이 노하여 꾸짖었다.“조 장군, 이건 왕부의 규칙입니다. 따라주시기 바랍니다.”왕부 친위가 말했다.“규칙? 나한테 감히 규칙을 운운한 건가?”조군영이 왕부 친위의 얼굴을 때리며 소리쳤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감히 규칙을 들먹이며 나를 압박하느냐? 죽고 싶나?”“조 장군, 소인도 명령을 받들어 행하는 것뿐입니다.” 왕부 친위는 동요하지 않았다.“헛소리 작작 하고 비켜. 그렇지 않으면 네 목을 벨 것이다!”조군영이 갑자기 칼을 뽑아 왕부 친위의 목에 겨누었고 그의 모습은 매우 포악하고 극도로 횡포했다.“제 머리를 베신다 해도 규칙은 지켜야 합니다.” 왕부 친위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이 개자식! 관짝을 보기 전에는 정신을 못 차리겠구나!”조군영은 마침내 화를 내며 칼을 거세게 들어 왕부 친위의 팔을 향해 내리쳤다.“멈추세요!”이때 한 소리의 여성의 호통이 울렸다.삼베 흰옷을 입은 이의진이 석태혁 일행을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