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국의 의사들은 정말 형편없네요. 반나절이나 토론해도 아무런 치료 방법도 못 내놓고. 역시 미치오 씨밖에 없다니까요.”유연지가 감탄했다.“맞아요. 정말 쓸모없는 의사들이에요. 미치오 씨 반의반이라도 좀 따라가지.”남궁 가문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아부하기 시작했다.용국의 수많은 전문가와 교수들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전부 속수무책이었다. 그런데 호시노 미치오는 보자마자 문제점을 발견했다. 이것이 바로 차이라는 것이다.“미치오 씨, 치료 방법을 아신다면 지금 바로 치료해 주시죠.”도란영이 다급하게 말했다.“약 가져와.”호시노 미치오가 손을 흔들자 두 조력자가 약상자를 앞에 내려놓았다. 그는 약상자를 열고 이리저리 뒤지다가 검은색 약병 하나를 꺼냈다.“이 약은 금옥탕이라는 건데 108가지 귀한 약재를 달여서 만든 거예요. 경맥을 뚫어주고 기혈을 고르게 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죠.”호시노 미치오가 자랑스럽게 말했다.“환자분께서 이 약을 복용하시면 3분 안에 깨어나실 겁니다. 하지만 가격이 좀 비싸요.”“얼만데요?”도란영이 떠보듯 물었다.“600억입니다.”호시노 미치오가 생각지도 못한 금액을 말했다.“600억이요?”그 소리에 용국의 의사들은 입을 쩍 벌렸다.‘차라리 빼앗지 그래? 약 한 병에 600억? 말도 안 돼.’“문제없어요. 우리 남편만 치료할 수 있다면 그 돈 드리죠.”도란영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600억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긴 하지만 그 정도 능력은 있었다. 남편의 목숨에 비하면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네, 사모님께서 흔쾌히 동의하셨으니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호시노 미치오는 씩 웃어 보이더니 남궁보성을 일으켜 약 뚜껑을 열고 입에 넣으려 했다.“그 약 마시면 남궁보성 씨 3일을 넘기지 못할 겁니다.”그때 누군가의 차가운 목소리가 갑자기 문 앞에서 들려왔다.“뭐야?”사람들이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유진우가 위풍당당하게 걸어들어왔다.남궁은설의 전화를 받자마자 유진우는 부리나케 서울로 달려
“헛... 헛소리 지껄이지 마!”모든 게 까발려지자 호시노 미치오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두 눈은 동공 지진이었다. 금옥탕의 원가가 몇만 원 정도로 아주 저렴하다는 건 사실이었다. 물론 그의 명성과 의술이 더해지면 몇만 원짜리 약도 엄청난 값에 팔 수 있었다.“헛소리? 그럼 나랑 가서 약 성분 검사해볼래?”유진우가 계속하여 몰아붙였다.“내 생각이 맞다면 금옥탕에 흥분제 같은 것도 넣었을 거야. 응급 상황에서 효과는 있지만 되레 환자의 목숨을 해치는 거지. 넌 정말 양심도 없는 놈이야!”“닥쳐! 난 금오국의 명의야. 너희들이 우러러보는 존재라고. 그런 날 모함해? 명령하는데 지금 당장 사과해!”호시노 미치오가 노발대발했다.“사과? 넌 사과받을 자격도 없어.”유진우가 차갑게 말했다.“사과 안 하겠다 이거지? 그래, 그럼 치료 안 해. 죽든 말든 알아서 해!”호시노 미치오가 화를 내면서 약상자를 들고 떠나려 했다.“미치오 씨.”그 모습에 남궁진혁이 재빨리 잡으며 미안한 웃음을 지었다.“진정하세요. 저놈은 그냥 미친놈이에요. 아무것도 모르니까 상대하지 말아요. 지금은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죠.”“네, 미치오 씨. 사람 목숨이 달렸어요. 어르신 치료할 수 있는 분은 미치오 씨밖에 없어요.”사람들이 나서서 타일렀다.“유진우, 당장 입 다물어! 한 번만 더 헛소리 지껄였다간 확 내쫓을 거야.”남궁진혁이 고개를 돌리고 호통쳤다.“유진우, 무슨 배짱으로 미치오 씨께 대들어? 당장 사과해.”유연지도 큰소리로 말했다.“맞아. 당장 사과해!”한솔도 맞장구를 쳤다.지금 이 순간 모든 사람들이 유진우를 성난 눈빛으로 째려보면서 불만을 드러냈다. 오자마자 의심부터 하고 모함한 것도 모라자 호시노 미치오를 억지로 내쫓을 뻔까지 했다. 정말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난 사실만 말했는데 왜 사과해야 하죠?”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돈밖에 모르는 이런 의사는 병을 치료 못 하니까 그냥 가게 내버려 둬요. 이 병 내가 치료할게요.”“네까짓
입을 열려던 그때 도란영이 호통치며 가로챘다.“그만들 해! 지금 싸울 때가 아니야. 사람부터 구해야지!”“맞아요, 진우 오빠. 얼른 아빠 좀 구해주세요.”남궁은설이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호시노 미치오의 명성이 대단하긴 했지만 유진우를 더 믿었다.“잠깐!”유진우가 치료를 시작하려는데 남궁진혁이 막아섰다.“사람 목숨이 달린 일에 네가 뭔데 나대? 이 병은 미치오 씨한테 맡겨야 해!”“내가 말했지? 저 사람은 치료 못 하고 오히려 환자만 더 해친다고.”유진우가 냉랭하게 대답했다.“미치오 씨마저 치료 못 한다면 넌 더 말할 것도 없지.”남궁진혁의 시선이 갑자기 도란영에게 향했다.“작은어머니께서 결정하세요. 미치오 씨를 믿으세요? 아니면 저 자식을 믿으세요?”“그게...”그의 말에 도란영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유진우의 의술을 그녀는 두 눈으로 똑똑히 봤었는데 정말 대단했다. 딸의 희귀병도 유진우가 치료해 줬으니까.하지만 호시노 미치오는 명성이 자자한 명의고 의료계에 종사한 지 수십 년이다. 경험으로 보나 의술로 보나 유진우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결국 그녀는 안전하게 호시노 미치오를 선택했다.“엄마, 진우 오빠 실력 아시잖아요. 엄청 대단한 거. 진우 오빠한테 맡기면 문제없을 거예요.”남궁은설이 불쑥 말했다.“은설아, 아빠 목숨이 달린 일인데 어떻게 이름도 없는 사람한테 맡겨? 혹시라도 잘못되면 누가 책임져?”남궁진혁이 눈살을 찌푸렸다.“그래, 은설아. 저놈은 딱 봐도 믿을 놈이 아니야. 미치오 씨가 더 실력 있어.”유연지도 나서서 설득했다.“미치오 씨의 의술이 뛰어나니까 무조건 고칠 수 있어. 그런데 유진우 저놈이라면 아버님 위험해질 거야.”한솔이 경고했다.사람들이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한마디씩 하자 남궁은설도 이젠 확신이 없어졌다. 가뜩이나 귀도 얇은데 옆에서 자꾸만 부추기니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사모님도 남편분이 괜찮길 바라시죠?”호시노 미치오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저...”도란영은 말을 잇지 못하
“진우 오빠!”유진우가 떠나려 하자 당황한 남궁은설이 재빨리 쫓아가서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오빠, 정말 미안해요. 나도 미치오 씨가 올 줄은 몰랐어요. 다 내 탓이에요. 그러니까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은설 씨, 나 화 안 났어요. 의사로서 나도 은설 씨 아버님 치료해 주고 싶어요. 하지만 날 믿지 않는데 어쩌겠어요.”유진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여러 번이나 경고했는데도 듣지 않는다면 그도 별수가 없었다.“난 진우 오빠를 믿어요. 하지만...”남궁은설이 말을 잇지 못했다. 집안일은 부모님이 결정권을 갖고 있어 딸이라고 해도 함부로 결정할 수 없었다.“괜찮아요, 은설 씨. 먼저 병실로 돌아가요. 난 밖에서 커피나 마시고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요.”유진우는 웃으면서 남궁은설의 어깨를 토닥였다.“알았어요.”남궁은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꾸만 돌아보며 병실로 들어갔다. 괜한 걸음 하게 해서 얼마나 미안한지...“은설아, 저 자식 왜 신경 써? 그냥 가게 내버려 둬. 쟤가 뭐가 대단하다고. 보험이나 파는 놈을 이렇게 신경 쓸 필요가 있어?”남궁은설이 들어오자 유연지가 또 부채질하기 시작했다.“그러게 말이야. 미치오 씨가 있는데 저 자식이 함부로 하게 해서는 안 되지.”한솔이 밖을 힐끗거리며 하찮다는 표정을 지었다.“미치오 씨, 이젠 아무도 방해 안 하니까 빨리 치료해 주시죠.”도란영이 다그치기 시작했다.“그래요. 당신들 성의를 봐서 한 번 더 도와줄게요.”호시노 미치오는 아량을 베푸는 척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검은색 약병을 꺼내 금옥탕을 남궁보성에게 먹였다. 그러고는 약상자에서 은침을 꺼내 남궁보성 몸의 혈 자리에 놓았다. 한꺼번에 침 열몇 개를 꽂고 나서야 멈췄다.“침을 맞으면 경맥을 뚫어주고 기혈을 고르게 하는 효과가 있거든요. 거기에 귀한 금옥탕까지 마셨으니 환자분 꼭 기사회생하실 겁니다.”호시노 미치오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그렇다면 너무 잘됐네요.”도란영은 긴장감이 감도는 얼굴로 침대에 누워
사람들이 비아냥거리자 병실 안에 있는 교수들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의술이 호시노 미치오보다 못하긴 하지만 그들도 여기서는 인재들이었다. 같은 나라 사람에게 무시당하니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감히 건드릴 수 없어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못 들은 척하는 수밖에 없었다.“미치오 씨, 우리 남편 언제쯤 깨어날 수 있나요?”도란영이 떠보듯 물었다. 수치가 정상 범위로 돌아오긴 했지만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했기에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였다.“조급해하지 말아요. 침을 뽑으면 깨어나실 겁니다.”호시노 미치오는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재빨리 은침을 뽑았다. 은침을 다 뽑자 남궁보성이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더니 몇 초 후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두 눈에 핏빛이 스쳤다.“깨어났어요. 드디어 깨어났어요.”사람들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역시 미치오 씨입니다. 말씀대로 정말 깨어났네요. 진심으로 존경합니다.”남궁진혁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괜히 명의가 아니네요. 용국의 의사들보다 백배 더 뛰어나요.”유연지 등 몇몇도 아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고맙습니다, 미치오 씨. 이제부터 당신은 우리 집안의 은인입니다.”도란영이 기쁨에 겨운 얼굴로 말했다.“난 불치병을 전문으로 치료하거든요. 이런 병 나한테는 일도 아니에요.”호시노 미치오가 우쭐거리며 말했다. 그러면서 조력자가 건네는 물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그런데 침대에 누워있는 남궁보성의 두 눈이 시뻘겋게 변하기 시작했고 얼굴이 일그러졌다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으악!”남궁보성이 갑자기 포효하듯 소리를 지르더니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이 순간 그의 모습은 흉악하기 그지없었고 핏줄도 다 튀어나와 무서운 악마를 연상케 했다. 그리고 코와 입에서 검은 피가 천천히 흘러내렸다.“뭐야?”갑작스러운 상황에 사람들은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미치오 씨,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우리 남편 조금 전까지 멀쩡했잖아요.”도란영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죽... 죽었어?”갑자기 숨을 거둔 호시노 미치오를 보며 사람들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하나같이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남궁보성이 갑자기 미쳐 날뛸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것도 아무런 조짐도 없이 호시노 미치오의 숨통을 끊어버렸다.‘단 일격에 죽여버렸어. 어떻게 이런 일이... 큰 문제 아니라며? 정상적인 현상이라며? 침으로 해결할 수 있다더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젠장.’“으악!”남궁보성은 포효하면서 호시노 미치오의 시신을 확 던져버렸다.쿵!호시노 미치오의 시신이 벽에 부딪히면서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 맥없이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왔다.“미치오 씨!”사람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특히 유연지와 한솔 등 몇몇은 마치 친부모가 죽은 것처럼 슬퍼하며 가슴 아파했다.“얼른! 얼른 가서 작은아버지 붙들어!”남궁진혁이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명을 내리자 부하들이 남궁보성을 잡으려 했다. 그런데 이미 미쳐 날뛰기 시작한 남궁보성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고 아주 폭주했다. 게다가 실력까지 강해서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 다가가기만 하면 누구든지 전부 날려버렸고 눈에 뵈는 게 없었다.“여보, 사람 다치게 하지 말아요!”“아빠, 정신 차리세요. 다 아빠 가족이라고요!”도란영과 남궁은설은 끊임없이 소리 지르며 남궁보성을 깨우려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목소리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되레 남궁보성의 주의만 끌게 되었다.“죽어! 다 죽어!”남궁보성은 소리를 지르면서 남궁은설을 덮치려 했다. 그의 두 손은 마치 칼처럼 날카로웠고 손가락 사이에 원기가 감돌아 쇠도 손쉽게 부러뜨릴 수 있었다. 일반 사람이 그 공격을 맞는다면 바로 즉사할 것이다.“여보, 안 돼요!”도란영의 표정이 급변하더니 남궁은설에게 달려가며 몸으로 치명적인 일격을 막으려 했다. 당장 누구 하나 죽어 나갈 것 같던 위기의 순간, 은침 한 개가 갑자기 날아왔다.슉!문밖에서 날아온 은침은 전광석화처럼 남궁보성의 목을 그대로 찔렀다. 남궁
“내가 안 왔더라면 당신들 다 위험했을 거예요.”유진우가 손가락을 튕기자 은침 하나가 또 날아갔다. 조금 전까지 발버둥 치던 남궁보성은 그대로 굳어버려 꼼짝도 하지 못했다.“진우 씨, 살려줘서 고마워. 의술이 뛰어나잖아? 우리 남편 좀 도와줘.”도란영이 간곡하게 부탁했다.“미안하지만 난 지식이 얕아서 미치오보다 실력이 안 되니까 다른 의사 찾으세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미치오 씨?”도란영은 구석에 내던져진 시신을 보며 난감해했다. 만약 호시노 미치오가 진짜로 치료할 수 있었더라면 목숨을 잃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진우 씨, 전에는 내가 정말 미안했어.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으면 좋겠어.”도란영이 먼저 사과를 건넸다. 유진우가 실력 있는 의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호시노 미치오에 비하면 명성이 조금 부족했기 때문에 유진우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젠 호시노 미치오가 죽었으니 남궁보성을 살릴 사람은 유진우밖에 없었다.“진우 오빠, 아빠 지금 이성을 잃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남궁은설이 가여운 눈빛으로 말했다.“은설 씨를 봐서 한 번 더 도와줄게요.”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을용 장군에게 신세 진 게 있어서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고마워요, 진우 오빠.”남궁은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작은어머니, 정말 유진우한테 맡기려고요? 미치오 씨도 치료하지 못했는데 저놈이 무슨 수로요?”그때 남궁진혁이 나서서 부채질하기 시작했다.“맞아요! 만약 저놈이 치료를 방해한다면 무슨 일이 있을지 누가 알아요.”유연지는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난 저 자식이 되레 아버님의 병을 키울까 걱정이에요. 그럼 누가 책임져요?”한솔도 가만히 있지 않고 한마디 덧붙였다.“이 지경이 된 이상 더 나빠질 게 뭐가 있겠어.”도란영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성을 잃은 남편을 제때 치료하지 않는다면 목숨이 위험해질까 걱정이었다.“작은어머니, 그건 아니죠.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인데 작은아버지 목숨으로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어요.”남궁진혁이 의미
방해 요소들이 사라지자 유진우는 남궁보성을 기절시킨 후 진지하게 치료에 임하기 시작했다.남궁보성은 나쁜 무공을 수련했기 때문에 생명력을 잃었고 경맥이 손상됐으며 오장육부도 망가진 것이었다. 게다가 호시노 미치오가 가한 자극으로 상태가 더욱 엄중해졌다.지금의 그는 과하게 부풀어 오른 공 같아 조금이라도 주의하지 않으면 당장 폭발할 수도 있었다.유진우는 은침으로 기혈을 고르게 한 후 진기로 막힌 경맥을 뚫어주는 동시에 망가진 곳을 회복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약물치료도 병행해야 했다.시간이 점점 흘렀고 유진우는 남궁보성의 몸에 은침을 계속 놓았다. 맨 처음에는 머리, 그다음은 가슴, 마지막에 복부에 놓았다. 위로부터 아래까지 어찌나 빼곡하게 놓았는지 고슴도치가 따로 없었다.침을 다 놓은 후 유진우는 손가락으로 마치 현을 튀기는 것처럼 은침을 살짝 건드렸다.윙...그러자 많은 은침이 진동하기 시작하면서 진기가 은침을 따라 남궁보성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상황이 대략 30분 정도 지속되었다.유진우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을 무렵 진기도 다 불어넣었다. 마지막으로 은침을 뽑아 은침 가방에 넣었다.“끝났어?”도란영은 의심에 찬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다. 남궁보성은 아직 침대에 누워있었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아까 기절해서 이따가 깨어날 겁니다.”유진우는 종이와 펜을 꺼내 처방을 적어서 도란영에게 건넸다.“이 처방대로 약을 지어서 연속 7일 동안 마시면 거의 완치할 겁니다.”“알았어.”도란영은 처방을 건네받고 부하에게 약을 지어오라고 했다.“아, 그리고 하나 더.”문득 뭔가 떠오른 유진우가 진지하게 경고했다.“남편분은 서혼공이라는 무공을 수련한 탓에 주화입마에 빠져서 죽을 뻔한 거예요. 그러니까 깨어나면 다시는 수련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다시 재발한다면 그땐 누가 와도 살리지 못합니다.”“알았어. 내가 꼭 잘 타이를게.”도란영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임무는 끝났으니까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