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 오빠!”유진우가 떠나려 하자 당황한 남궁은설이 재빨리 쫓아가서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오빠, 정말 미안해요. 나도 미치오 씨가 올 줄은 몰랐어요. 다 내 탓이에요. 그러니까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은설 씨, 나 화 안 났어요. 의사로서 나도 은설 씨 아버님 치료해 주고 싶어요. 하지만 날 믿지 않는데 어쩌겠어요.”유진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여러 번이나 경고했는데도 듣지 않는다면 그도 별수가 없었다.“난 진우 오빠를 믿어요. 하지만...”남궁은설이 말을 잇지 못했다. 집안일은 부모님이 결정권을 갖고 있어 딸이라고 해도 함부로 결정할 수 없었다.“괜찮아요, 은설 씨. 먼저 병실로 돌아가요. 난 밖에서 커피나 마시고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요.”유진우는 웃으면서 남궁은설의 어깨를 토닥였다.“알았어요.”남궁은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꾸만 돌아보며 병실로 들어갔다. 괜한 걸음 하게 해서 얼마나 미안한지...“은설아, 저 자식 왜 신경 써? 그냥 가게 내버려 둬. 쟤가 뭐가 대단하다고. 보험이나 파는 놈을 이렇게 신경 쓸 필요가 있어?”남궁은설이 들어오자 유연지가 또 부채질하기 시작했다.“그러게 말이야. 미치오 씨가 있는데 저 자식이 함부로 하게 해서는 안 되지.”한솔이 밖을 힐끗거리며 하찮다는 표정을 지었다.“미치오 씨, 이젠 아무도 방해 안 하니까 빨리 치료해 주시죠.”도란영이 다그치기 시작했다.“그래요. 당신들 성의를 봐서 한 번 더 도와줄게요.”호시노 미치오는 아량을 베푸는 척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검은색 약병을 꺼내 금옥탕을 남궁보성에게 먹였다. 그러고는 약상자에서 은침을 꺼내 남궁보성 몸의 혈 자리에 놓았다. 한꺼번에 침 열몇 개를 꽂고 나서야 멈췄다.“침을 맞으면 경맥을 뚫어주고 기혈을 고르게 하는 효과가 있거든요. 거기에 귀한 금옥탕까지 마셨으니 환자분 꼭 기사회생하실 겁니다.”호시노 미치오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그렇다면 너무 잘됐네요.”도란영은 긴장감이 감도는 얼굴로 침대에 누워
사람들이 비아냥거리자 병실 안에 있는 교수들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의술이 호시노 미치오보다 못하긴 하지만 그들도 여기서는 인재들이었다. 같은 나라 사람에게 무시당하니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감히 건드릴 수 없어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못 들은 척하는 수밖에 없었다.“미치오 씨, 우리 남편 언제쯤 깨어날 수 있나요?”도란영이 떠보듯 물었다. 수치가 정상 범위로 돌아오긴 했지만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했기에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였다.“조급해하지 말아요. 침을 뽑으면 깨어나실 겁니다.”호시노 미치오는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재빨리 은침을 뽑았다. 은침을 다 뽑자 남궁보성이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더니 몇 초 후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두 눈에 핏빛이 스쳤다.“깨어났어요. 드디어 깨어났어요.”사람들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역시 미치오 씨입니다. 말씀대로 정말 깨어났네요. 진심으로 존경합니다.”남궁진혁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괜히 명의가 아니네요. 용국의 의사들보다 백배 더 뛰어나요.”유연지 등 몇몇도 아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고맙습니다, 미치오 씨. 이제부터 당신은 우리 집안의 은인입니다.”도란영이 기쁨에 겨운 얼굴로 말했다.“난 불치병을 전문으로 치료하거든요. 이런 병 나한테는 일도 아니에요.”호시노 미치오가 우쭐거리며 말했다. 그러면서 조력자가 건네는 물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그런데 침대에 누워있는 남궁보성의 두 눈이 시뻘겋게 변하기 시작했고 얼굴이 일그러졌다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으악!”남궁보성이 갑자기 포효하듯 소리를 지르더니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이 순간 그의 모습은 흉악하기 그지없었고 핏줄도 다 튀어나와 무서운 악마를 연상케 했다. 그리고 코와 입에서 검은 피가 천천히 흘러내렸다.“뭐야?”갑작스러운 상황에 사람들은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미치오 씨,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우리 남편 조금 전까지 멀쩡했잖아요.”도란영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죽... 죽었어?”갑자기 숨을 거둔 호시노 미치오를 보며 사람들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하나같이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남궁보성이 갑자기 미쳐 날뛸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것도 아무런 조짐도 없이 호시노 미치오의 숨통을 끊어버렸다.‘단 일격에 죽여버렸어. 어떻게 이런 일이... 큰 문제 아니라며? 정상적인 현상이라며? 침으로 해결할 수 있다더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젠장.’“으악!”남궁보성은 포효하면서 호시노 미치오의 시신을 확 던져버렸다.쿵!호시노 미치오의 시신이 벽에 부딪히면서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 맥없이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왔다.“미치오 씨!”사람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특히 유연지와 한솔 등 몇몇은 마치 친부모가 죽은 것처럼 슬퍼하며 가슴 아파했다.“얼른! 얼른 가서 작은아버지 붙들어!”남궁진혁이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명을 내리자 부하들이 남궁보성을 잡으려 했다. 그런데 이미 미쳐 날뛰기 시작한 남궁보성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고 아주 폭주했다. 게다가 실력까지 강해서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 다가가기만 하면 누구든지 전부 날려버렸고 눈에 뵈는 게 없었다.“여보, 사람 다치게 하지 말아요!”“아빠, 정신 차리세요. 다 아빠 가족이라고요!”도란영과 남궁은설은 끊임없이 소리 지르며 남궁보성을 깨우려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목소리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되레 남궁보성의 주의만 끌게 되었다.“죽어! 다 죽어!”남궁보성은 소리를 지르면서 남궁은설을 덮치려 했다. 그의 두 손은 마치 칼처럼 날카로웠고 손가락 사이에 원기가 감돌아 쇠도 손쉽게 부러뜨릴 수 있었다. 일반 사람이 그 공격을 맞는다면 바로 즉사할 것이다.“여보, 안 돼요!”도란영의 표정이 급변하더니 남궁은설에게 달려가며 몸으로 치명적인 일격을 막으려 했다. 당장 누구 하나 죽어 나갈 것 같던 위기의 순간, 은침 한 개가 갑자기 날아왔다.슉!문밖에서 날아온 은침은 전광석화처럼 남궁보성의 목을 그대로 찔렀다. 남궁
“내가 안 왔더라면 당신들 다 위험했을 거예요.”유진우가 손가락을 튕기자 은침 하나가 또 날아갔다. 조금 전까지 발버둥 치던 남궁보성은 그대로 굳어버려 꼼짝도 하지 못했다.“진우 씨, 살려줘서 고마워. 의술이 뛰어나잖아? 우리 남편 좀 도와줘.”도란영이 간곡하게 부탁했다.“미안하지만 난 지식이 얕아서 미치오보다 실력이 안 되니까 다른 의사 찾으세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미치오 씨?”도란영은 구석에 내던져진 시신을 보며 난감해했다. 만약 호시노 미치오가 진짜로 치료할 수 있었더라면 목숨을 잃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진우 씨, 전에는 내가 정말 미안했어.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으면 좋겠어.”도란영이 먼저 사과를 건넸다. 유진우가 실력 있는 의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호시노 미치오에 비하면 명성이 조금 부족했기 때문에 유진우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젠 호시노 미치오가 죽었으니 남궁보성을 살릴 사람은 유진우밖에 없었다.“진우 오빠, 아빠 지금 이성을 잃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남궁은설이 가여운 눈빛으로 말했다.“은설 씨를 봐서 한 번 더 도와줄게요.”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을용 장군에게 신세 진 게 있어서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고마워요, 진우 오빠.”남궁은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작은어머니, 정말 유진우한테 맡기려고요? 미치오 씨도 치료하지 못했는데 저놈이 무슨 수로요?”그때 남궁진혁이 나서서 부채질하기 시작했다.“맞아요! 만약 저놈이 치료를 방해한다면 무슨 일이 있을지 누가 알아요.”유연지는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난 저 자식이 되레 아버님의 병을 키울까 걱정이에요. 그럼 누가 책임져요?”한솔도 가만히 있지 않고 한마디 덧붙였다.“이 지경이 된 이상 더 나빠질 게 뭐가 있겠어.”도란영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성을 잃은 남편을 제때 치료하지 않는다면 목숨이 위험해질까 걱정이었다.“작은어머니, 그건 아니죠.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인데 작은아버지 목숨으로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어요.”남궁진혁이 의미
방해 요소들이 사라지자 유진우는 남궁보성을 기절시킨 후 진지하게 치료에 임하기 시작했다.남궁보성은 나쁜 무공을 수련했기 때문에 생명력을 잃었고 경맥이 손상됐으며 오장육부도 망가진 것이었다. 게다가 호시노 미치오가 가한 자극으로 상태가 더욱 엄중해졌다.지금의 그는 과하게 부풀어 오른 공 같아 조금이라도 주의하지 않으면 당장 폭발할 수도 있었다.유진우는 은침으로 기혈을 고르게 한 후 진기로 막힌 경맥을 뚫어주는 동시에 망가진 곳을 회복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약물치료도 병행해야 했다.시간이 점점 흘렀고 유진우는 남궁보성의 몸에 은침을 계속 놓았다. 맨 처음에는 머리, 그다음은 가슴, 마지막에 복부에 놓았다. 위로부터 아래까지 어찌나 빼곡하게 놓았는지 고슴도치가 따로 없었다.침을 다 놓은 후 유진우는 손가락으로 마치 현을 튀기는 것처럼 은침을 살짝 건드렸다.윙...그러자 많은 은침이 진동하기 시작하면서 진기가 은침을 따라 남궁보성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상황이 대략 30분 정도 지속되었다.유진우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을 무렵 진기도 다 불어넣었다. 마지막으로 은침을 뽑아 은침 가방에 넣었다.“끝났어?”도란영은 의심에 찬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다. 남궁보성은 아직 침대에 누워있었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아까 기절해서 이따가 깨어날 겁니다.”유진우는 종이와 펜을 꺼내 처방을 적어서 도란영에게 건넸다.“이 처방대로 약을 지어서 연속 7일 동안 마시면 거의 완치할 겁니다.”“알았어.”도란영은 처방을 건네받고 부하에게 약을 지어오라고 했다.“아, 그리고 하나 더.”문득 뭔가 떠오른 유진우가 진지하게 경고했다.“남편분은 서혼공이라는 무공을 수련한 탓에 주화입마에 빠져서 죽을 뻔한 거예요. 그러니까 깨어나면 다시는 수련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다시 재발한다면 그땐 누가 와도 살리지 못합니다.”“알았어. 내가 꼭 잘 타이를게.”도란영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임무는 끝났으니까 이만 가보겠습니다.”
“응?”그 모습에 사람들은 전부 넋이 나갔다. 특히 유연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뭐야? 왜 내가 말하자마자 깬 거야?’“깨어났어요, 아빠 깨어났어요!”남궁은설은 펄쩍 뛰면서 기쁨에 겨워했다.“정말 깼어? 그 녀석 의술이 이렇게 대단하다고?”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호시노 미치오마저 속수무책이었던 병을 이름 없는 유진우가 고쳐버렸다. 실로 예상 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연지 언니, 어때요? 이젠 진우 오빠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죠?”남궁은설은 자랑스럽고 우쭐거리는 표정으로 유연지를 쳐다보았다.“어...”유연지는 민망한 나머지 목까지 시뻘게졌다. 조금 전 옥상에서 뛰어내리겠다고까지 했는데 이렇게나 빨리 망신당할 줄은 몰랐다.“어떻게 된 거야? 내가 왜 여기 있어?”남궁보성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힘들게 일어났다. 온몸이 뭔가에 찔린 것처럼 따끔거렸다.“아빠가 주화입마에 빠져서 하마터면 돌아가실 뻔한 걸 진우 오빠가 살려줬어요.”남궁은설은 앞으로 다가가 자초지종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 말에 남궁보성이 얼굴을 찌푸렸다.“유진우가 날 구했다고? 말도 안 돼.”“사실이에요.”남궁은설이 진지하게 말했다.“진우 오빠가 아니었더라면 이미 목숨을 잃었을걸요?”“아니야. 이 일 뭔가 이상해.”곰곰이 생각하던 남궁보성이 갑자기 말했다.“미치오 씨마저 고치지 못한 내 병을 유진우가 무슨 재주로 고쳐? 난 못 믿겠어.”서로 얼굴을 붉힌 사이라서 자신을 구해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뭔가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해.’“아빠, 사실이 눈앞에 떡하니 있는데도 못 믿으시겠어요?”남궁은설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버지가 괜한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았다.“이 녀석아, 사람 마음은 모르는 거야. 겉만 봐서는 안 된다고.”남궁보성은 잘난 척하며 분석했다.“난 어릴 적부터 무공을 수련해서 몸이 아주 건강한데 왜 갑자기 중병에 걸렸겠어? 내 추측이 맞다면 분명 유진우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먼저 몰래 나한테 약을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라고요.”유진우가 모함을 당하자 남궁은설이 고개를 저으면서 해명했다.“다들 오해했어요. 진우 오빠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사람 함부로 모함하지 말아요.”“이 녀석아, 넌 아직 너무 어려서 그래. 어떤 사람은 자신을 꽁꽁 숨겨서 아예 알아볼 수가 없다고. 나 정도는 돼야 상대의 속셈을 꿰뚫어 볼 수 있지.”남궁보성이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그래, 은설아. 유진우 좋은 놈 아니니까 속지 마.”사람들이 나서서 타일렀다.“안 믿어요... 안 믿는다고요. 진우 오빠는 절대 남을 해치는 사람이 아니에요.”남궁은설은 두 눈이 벌게진 채 도란영을 보며 말했다.“엄마, 뭐라 말 좀 해봐요. 진우 오빠가 예전에 날 살려줬고 오늘은 아빠도 살려줬어요. 전부 다 봤으면 증명해줄 수 있잖아요.”“여보, 뭔가 오해가 있는 거 아닐까요?”도란영이 남궁은설을 도왔다.“당신도 속아 넘어갔어?”남궁보성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은설이가 모르는 건 그렇다 쳐도 당신도 몰라?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 만났는데. 우리한테 빌붙어서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는 사람은 뭐든지 다 해. 이처럼 은혜를 베푸는 척하면서 대가를 바라는 놈 아주 많이 봤다고.”“하지만...”도란영이 뭐라 더 말하려는데 남궁보성이 짜증을 내며 잘라버렸다.“왜? 내 판단이 들렸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면 내 말을 믿지 않는 거야?”“난 그 뜻이 아니라...”도란영은 난감해하며 결국 입을 다물었다.남궁보성이 뭔가 억지스럽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가족도 아닌 유진우 때문에 남편에게 밉보일 수는 없었다.“아빠, 엄마,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남궁은설이 불만을 드러냈다. 분명 살려준 건 유진우인데 결국에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말았다. 이게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게 아니면 무엇이겠는가?“은설아, 네가 진우 그놈 좋아하는 거 알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랑 때문에 이성을 잃어선 안 돼.”남궁보성이 진지하게 경고했다.“그 자식은 빈털터리야. 신분, 배경 아무것도
도란영은 자기 딸이 그런 길을 선택할까 걱정이었다.“왜?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그 시각, 하늘은 이미 어둑해졌다.병원에서 뛰쳐나온 남궁은설은 가로등 밑에 쪼그리고 앉아 엉엉 울었다. 누런 불빛이 그녀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유진우의 신분이 뭐든, 권력이 있든 없든 남궁은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저 단순히 유진우를 좋아할 뿐이었다. 사람들이 대체 왜 이렇게까지 반대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두 사람이 함께하려면 꼭 집안 형편이 비슷해야 해? 그럼 난 어떡하지? 모든 걸 다 버리고 사랑을 택한다? 아니면 가족들의 말대로 좋아하는 마음을 꾹꾹 참아야 하나?”끼익!그때 검은색 승합차가 갑자기 길가에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자 검은 옷차림에 복면을 쓴 사람들이 빠르게 내려 남궁은설을 둘러쌌다.“당신들 누구야? 뭐 하는 거야?”남궁은설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은설 씨, 주인님께서 만나겠다 하십니다. 저희랑 함께 가시죠.”복면을 쓴 우두머리가 깍듯하게 인사하면서 손을 내밀며 차에 타라고 했다.“싫어! 꺼져!”남궁은설은 두말없이 바로 도망쳤다.“가서 잡아.”우두머리가 손을 흔들자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가 남궁은설을 꼼짝 못 하게 묶어버렸다.“이거 놔! 놓으라고!”남궁은설은 미친 듯이 발버둥 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실례 좀 하겠습니다, 은설 씨. 모셔가!”우두머리의 명이 떨어지자 부하들은 남궁은설을 곧장 차에 태웠다. 그러고는 그대로 시동을 걸고 질주했다. 현장에 남궁은설이 떨어뜨린 신발만 덩그러니 남았다...밤이 점점 깊어졌다.그 시각 풍우 산장.유진우는 강린파 사람들과 함께 신나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염룡파 당주 자리가 지금까지 계속 비어있었다. 이젠 왕현도 왔으니 자연스레 그 자리를 맡게 되었다. 그리고 주정뱅이 영감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병이 다 낫긴 했지만 예전의 버릇을 고치진 못했다. 지금도 쩍하면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술을 마시곤 했다.따르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