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각 한 폐기 철강 공장.남궁은설은 꽁꽁 묶인 채 허공에 매달려 있었고 검은 천으로 두 눈을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도 심하게 얻어맞아 이젠 정신까지 잃었다.화려한 옷차림의 서문천명은 좋은 술을 마시면서 와규 스테이크를 음미하고 있었다. 어찌나 우아한지 귀족 분위기가 줄줄 넘쳤다.“주인님, 시간이 지났는데도 타깃이 아직인 걸 보면 안 오는 거 아닐까요?”잠시 후, 우람한 체격에 빨간 옷차림의 한 무사가 다가와 보고했다.“급할 거 없어. 조금 더 기다려.”서문천명은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냅킨으로 입을 닦고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알아봤는데 유진우랑 남궁은설 관계가 심상치 않아. 유진우 성격에 무조건 구하러 올 거야.”“유진우가 칠색 영지를 아까워해서 내놓지 않을까 봐 그래요. 차라리 애들 데리고 풍우 산장에 쳐들어가서 빼앗아오는 건 어떨까요?”빨간 옷 무사가 나서서 말했다.“어리석은 놈!”서문천명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풍우 산장에 숨은 고수가 많아. 무턱대고 쳐들어갔다가 성공한다고 해도 우리 손해가 엄청날 거라고. 용국 무사들의 천한 목숨 따위는 우리 금오국의 귀한 무사들과 비교가 안 되지.”“용국 무사들은 다 보잘것없어요. 주인님께서 너무 과대평가하신 거 아니에요?”빨간 옷 무사가 내키지 않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그들은 금오국에서 여러 테스트를 거쳐 뽑힌 무사들이다. 수많은 전투를 겪은 그들과 용국의 조무래기들을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용국 무사들의 실력이 별로이긴 하지만 쪽수가 많아. 아무리 무서운 호랑이라 해도 늑대 무리를 조심해야지.”서문천명이 경고했다.“알겠습니다.”빨간 옷 무사는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빛은 사납고 고집스러웠다. 용국의 무사들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어쨌거나 수십 년 전에 용국 사람들은 그들이 짓밟은 개니까.“지금 날 기다려?”그때 누군가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무런 조짐도 없었고 마치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누구야?”사람들은 경계심 가득한
“X발!”빨간 옷 무사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허리춤에서 다치를 꺼내 당장이라도 공격할 준비를 마쳤다.“진우 씨, 상황을 잘 파악하는 사람이야말로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에요. 칠색 영지를 내놓는다면 두 사람 풀어주고 거절한다면 죽음뿐입니다.”서문천명이 협박했다.“고작 너희들 주제에 날 죽이려고? 그럴 재간이나 있어?”유진우가 피식 웃었다.“못 믿겠어요? 그럼 어디 볼까요?”서문천명이 손가락을 튕겼다.“알겠습니다.”빨간 옷 무사는 다치를 들고 유진우에게 다가가며 경멸 섞인 미소를 지었다.“용국 사람들은 실력은 없으면서 큰소리만 치는 개잖아. 오늘 제대로 매운맛 좀 보여줄게.”“방금 뭐라고 했어?”유진우의 표정이 서늘해지더니 순식간에 살기가 폭발했다.약 80년 전에 금오국은 용국을 침범한 적이 있었다. 그땐 용국이 전쟁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 국력이 많이 약해진 시기였다. 하여 금오국의 괴롭힘과 무시를 당했었다.그 후 수십 년의 발전을 거쳐 용국은 다시 일어섰지만 그때의 치욕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었다. 인제 또 무시를 당했으니 열혈 청년이라면 절대 참지 못할 것이다.“왜? 화났어?”빨간 옷 무사가 흉악스럽게 웃었다.“너희들은 우리 금오국의 발밑에만 있어야 해. 8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래. 너희들처럼 비천한 노예는 우리가 키우는 개야, 그냥. 꼬리나 흔들면서 밥 빌어먹는 존재들이지. 그런데 비천한 목숨이긴 하지만 여자들은 참 예쁘더라? 너희들을 싹 다 죽인 다음에 네 여자는 내가 제대로 놀아줘야겠어. 아, 아니다... 네가 보는 앞에서 능욕해야지. 하하...”빨간 옷 무사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거만함이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옆에 있던 검은 옷 무사들도 웃으면서 하나같이 우쭐거렸다. 그들은 용국의 비천한 무사들은 금오국의 귀한 무사들과 비교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너희들 다 죽어야겠다!”오만방자하게 웃는 무사들을 보며 유진우는 분노가 끓어올랐고 살기가 하늘을 찔렀다. 그가 한 걸음 내딛자 마치 폭탄처
유진우의 주먹이 빨간 옷 무사의 가슴을 무참하게 뚫어버렸고 바닥에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졌다.“으억...”빨간 옷 무사는 넋이 나갔다. 경악한 얼굴로 가슴팍을 뚫은 주먹을 내려다보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용국 사람들 하찮다며? 조무래기들이라며? 그런데 왜 이 자식은 이렇게 강한 건데?’빨간 옷 무사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가 결국 바닥에 쿵 쓰러지면서 숨을 거두었다.“제 주제도 모르는 놈!”유진우의 낯빛이 차갑기 그지없었다.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아 빨간 옷 무사의 머리를 힘껏 걷어찼다.쿵!폭발음과 함께 빨간 옷 무사의 머리가 마치 수박 깨지듯 터져버렸고 시신조차 거둘 수 없게 되었다.유진우는 사람을 죽여도 단번에 깔끔하게 죽였지, 시신을 학대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아까 빨간 옷 무사의 말에 꼭지가 돌고 말았다. 빨간 옷 무사를 갈기갈기 찢어서 개밥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다.“뭐야?”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서문천명의 표정이 급변했다. 유진우의 실력이 이토록 강할 줄은 몰랐다. 빨간 옷 무사의 실력도 아주 강했는데 용국의 본투비 레벨 고수에 못지않았다. 그런 존재가 주먹 한 방에 죽었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X발!”동료가 죽은 걸 본 금오국 무사들이 일제히 칼을 빼 들었다. 그중 네 명의 빨간 옷 무사 모두 본투비 레벨 고수였고 거기에 스무 명이 넘는 톱클래스 내공 무사까지 더해지니 기세가 아주 사나웠다.“죽여버려!”서문천명은 두말없이 바로 죽이라는 명을 내렸다. 전에는 생포할 생각이었는데 인제 보니 그건 안 될 것 같았다. 자칫하다간 실패할 수 있기에 진정한 고수 앞에서는 최선을 다해야 했다.“죽여!”무사들은 칼을 들고 우르르 달려들었다.유진우가 발을 쿵 구르자 시체 옆에 있던 다치가 갑자기 튀어 오르더니 정확히 유진우의 손에 안착했다.“다 죽여주마!”유진우는 한 손에 다치를 들고 인정사정없이 베어버렸다.슉!하얀빛이 순식간에 나타나더니 커다란 낫처럼 무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맨
‘저 자식 설마 괴물이야?’“네 차례야!”유진우는 고개를 들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겁에 질려 벌벌 떠는 서문천명을 노려보며 찌르려 했다.“진우 씨, 말로 하시죠. 서로 칼을 겨눌 필요까진 없잖아요. 진우 씨 여자 지금 당장 풀어주고 갈게요. 다시는 진우 씨 앞에 나타나지 않겠습니다.”당황한 서문천명이 손이야 발이야 빌었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이십여 명의 무사들이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상대의 칼 한 방에 전부 죽어버렸다. 유진우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네가 은설 씨를 납치한 순간부터 이미 죽은 목숨이었어. 인제 와서 그런 소리 해봤자 너무 늦었다고.”유진우는 무표정으로 천천히 칼을 들었다.“멈춰!”그때 누군가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남궁진혁이 무장 병사들을 이끌고 기세등등하게 쳐들어왔다. 유연지, 한솔 등 일행도 함께 따라왔다.“마침 잘 왔어. 금오국 사람들이 은설 씨를 납치했어. 잡아들일 건 잡아들이고 묻을 건 묻어버려.”유진우가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가리켰다.“닥쳐! 네가 뭔데 끼어들어?”남궁진혁은 유진혁을 매섭게 째려보더니 서문천명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천명 씨가 여긴 어떻게...”“진혁 씨?”서문천명도 예상 밖이라는 듯 흠칫했다. 두 사람은 유학할 때 알게 된 사이인데 절친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친분은 있었다.“천명 씨가 왜 여기 있죠?”남궁진혁이 의아해하며 물었다.“난...”서문천명은 말을 잇지 못했다. 상대에게 남궁은설을 납치하여 유진우를 협박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얘기 안 하면 내가 대신해주지.”유진우가 사실대로 말했다.“서문천명이 은설 씨를 납치했어. 나쁜 짓을 도모했으니까 잡아들여 엄벌에 처하면서 공범이 더 있는지 알아내야 해.”“뭐?”유진우의 말에 남궁진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진혁 씨, 오해예요. 저놈 헛소리 듣지 말아요.”서문천명이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지금 절대 그렇다고 인정해서는 안 되었다. 인정했다간 유일한 살 기회도 사라지게 될
“뭐야?”구겨진 휴대 전화를 본 유진우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남궁진혁이 이렇게 행동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증거를 인멸하여 서문천명을 감쌌다.‘지금 날 무시하는 건가?’서문천명도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였다. 증거가 떡하니 있어 망한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남궁진혁이 휴대 전화를 망가뜨리다니, 정말 예상 밖이었다.“천명 씨, 긴장해 할 필요 없어요. 내가 있는 한 오늘 아무도 천명 씨 다치게 못 해요.”남궁진혁이 또박또박 말했다.남궁은설이 납치되든 말든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 기회에 서문천명과 가까이하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했다. 어쨌거나 서문 가문이 금오국에서는 10위 안에 드는 명문가니까.“진혁 씨가 내 편을 들다니... 마음이 놓이네요.”서문천명은 재빨리 상황 파악을 마쳤다. 남궁진혁이 먼저 호의를 보였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남궁진혁, 상황을 보아하니 서문천명이랑 한패가 되겠다는 거네?”유진우의 표정이 얼음장같이 차가워졌다.범인도 잡았고 증거도 줬지만 남궁진혁은 되레 상대의 편을 들었다. 범인을 엄벌에 처하기는커녕 범인을 감싸고 돌았고 심지어 증거까지 인멸했다. 그의 비겁하고 파렴치한 행동에 유진우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유진우, 증거도 없으면서 천명 씨를 모함해? 죽고 싶어?”남궁진혁은 유진우에게 누명을 씌웠다.“그리고 충분히 의심할 만 해. 아까 그 영상 네가 조작한 거잖아. 은설이 납치한 진짜 범인은 너지?”“너 눈멀었어? 금오국 무사들의 시체가 잔뜩 깔려있는데 안 보여?”유진우가 참다못해 소리를 질렀다.‘개 같은 X끼가 범인을 싸고도는 것도 모자라 나한테 뒤집어씌워?’“흥, 천명 씨가 금오국 무사들을 데리고 온 건 은설이를 구하고 양국 간의 우애를 다지려던 거였어. 그런데 넌 진실이 드러나니까 금오국의 무사들을 싹 다 죽였어. 인제부터 넌 두 나라의 죄인이야!”남궁진혁이 그럴듯하게 말했다. 단 몇 마디 말로 이 모든 죄를 유진우에게 뒤집어씌웠다.“허허
남궁진혁이 냉랭하게 웃었다.“눈 크게 뜨고 둘러봐봐. 여기 몽땅 내 사람들이야. 함부로 움직였다간 바로 죽는 수가 있어.”“유진우 씨, 총알이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몰라요. 그러니까 그냥 항복해요.”서문천명이 우쭐거리며 웃었다.‘용국 사람들은 역시 자기들끼리 잘 싸운단 말이지. 물론 딱 내가 바라던 바고.’“유진우,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항복해. 그렇지 않으면 후회해도 늦었어.”유연지 일행도 의기양양한 말투로 말했다.“당신들 내 인내심 테스트하지 마.”유진우가 어두운 얼굴로 경고했다.“장군님을 봐서 널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지면 없던 일로 해줄게. 하지만 계속 금오국 사람을 감싸고 돈다면 절대 가만 안 둬!”“가만 안 둔다고? 허허...”남궁진혁이 피식 웃더니 마치 바보를 쳐다보듯 했다.“유진우, 네까짓 게 뭔데 날 협박해? 내 한마디면 널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앨 수 있어.”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뒤에 있던 무장 병사들이 유진우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이건 명령인데 당장 무릎 꿇어!”남궁진혁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손가락을 아래로 까딱였다. 상대를 당장이라도 집어삼킬 듯한 기세였다.“한 번 더 말해봐.”유진우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귀먹었어? 무릎 꿇...”그런데 남궁진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진우가 갑자기 손을 뻗더니 그의 얼굴을 잡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남궁진혁의 얼굴은 마치 커다란 거미에 덮인 듯했고 더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힘을 어찌나 가했는지 얼굴이 다 구겨졌다.“무엄하다!”“당장 놓지 못해?”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가 노발대발했다. 하지만 남궁진혁이 인질로 잡혀있어 아무도 함부로 덤비지 못했다.“너 같은 놈 하나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야. 네가 뭔데 나더러 꿇으라 말아야?”남궁진혁을 한 손으로 들고 있는 유진우의 눈빛이 무서울 정도로 차가웠다.가끔 괘씸한 건 적이 아닐 때도 있었다. 왜냐하면 양측의 생각이 다르니까. 정말로 괘씸한 건 적에게 굽신거리고 아부하
“멈춰요!”유진우가 남궁진혁을 마구 폭행하던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맥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언제 깨어났는지 남궁은설이 이미 깨어있었다.그리고 얼굴에 놀라움과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깨어나자마자 눈앞에 이런 광경이 펼쳐질 줄은 몰랐다. 유진우가 왜 사촌 오빠를 때리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진우 오빠, 지금 뭐 하는 거예요?”남궁은설은 눈살을 찌푸리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은설 씨 사촌 오빠 나쁜 놈 앞잡이 노릇이나 해서 내가 장군님 대신 혼내던 중이었어요. 나쁜 길로 빠져 자신도 해치고 남도 해치면 안 되니까.”유진우가 직설적으로 말했다.“헛소리 집어치워!”유연지가 바로 반박했다.“은설아, 유진우 저 자식이 널 납치했고 우린 널 구하려고 달려온 거야. 그런데 네 사촌 오빠가 되레 얻어맞았어. 봐봐, 맞아서 얼굴이 어떻게 됐는지.”“맞아! 저 양심도 없는 놈이 정체가 까발려지니까 화를 내면서 사람을 막 때리더라고. 정말 극악무도한 놈이야.”한솔이 나서서 맞장구를 쳤다.“진우 오빠, 이게 다 사실이에요?”남궁은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은설 씨, 내가 그런 사람 같아요?”유진우가 되물었다.“아니요.”남궁은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또 물었다.“그런데 왜 진혁 오빠를 때렸어요?”“금오국의 서문천명이 은설 씨를 납치한 다음에 날 협박했어요. 내가 금오국의 무사들을 다 해결하니까 남궁진혁이 마침 도착했고요. 이 자식 금오국에 잘 보이려고 서문천명을 일부러 감싸고 도는 건 물론이고 모든 누명을 나한테 뒤집어씌우지, 뭐예요? 게다가 날 잡겠다고까지 했다고요. 이런 비겁한 앞잡이를 혼 좀 낸 게 뭐 잘못됐나요?”유진우는 단숨에 자초지종을 얘기하고는 마지막에 질문까지 던졌다.“그게...”남궁은설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만약 유진우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남궁진혁이 확실히 잘못하긴 했다.“은설아, 절대 속지 마. 저건 다 거짓말이야!”남궁진혁이 고통을 참으며 소리 질렀다.“널 납치한 건 유진우야. 우리
서문천명은 잠깐 흠칫하다가 바로 정신을 차렸다.“은설 씨, 실례했다면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납치는 정말로 유진우가 돈을 주면서 시킨 거예요. 은설 씨 신분을 진작 알았더라면 절대 이런 짓 안 했죠.”서문천명은 허리 굽혀 인사하면서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는 척했다.“들었지? 이젠 증인도 있어. 유진우야말로 가장 나쁜 놈이야.”남궁진혁이 틈을 놓치지 않고 쐐기를 박았다.“맞아, 나도 증언할 수 있어. 전부 다 유진우의 짓이야.”유연지가 나서서 힘을 보탰다.“나도 증언할게. 저 자식 아주 교활한 놈이야.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는다고.”한솔이 맞장구를 쳤다.“우리 다 증인이야. 유진우가 전부 죽이려 했고 제 발 저려서 저러는 거야.”그 순간 모든 사람들이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수십 명이 한꺼번에 말하니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여론의 힘이 어찌나 큰지 그릇된 것도 옳다고 할 정도였다.남궁은설은 점점 얼떨떨해져 넋을 놓고 말았다. 가뜩이나 주견이 없는 그녀인데 이젠 누굴 믿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은설 씨, 내 말 전부 사실이에요. 그 어떤 거짓도 없다고요.”유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은설아, 난 네 사촌 오빠야. 피를 나눈 가족인데 널 속일 리가 있겠어?”남궁진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내가 무슨 이유로 은설 씨를 납치하겠어요? 잘 생각해봐요.”“나랑 알고 지낸 지 수년이 되는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내가 언제 널 속인 적이 있었어?”“은설 씨, 침착하게 생각해요. 거짓말에 속지 말고.”“은설아, 남을 믿을지언정 이 사촌 오빠를 못 믿겠다는 거야?”“...”유진우와 남궁진혁은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그만들 해요! 제발 그만 말해요!”남궁은설은 귀를 틀어막고 바닥에 웅크리고 앉은 채 고통스러움에 몸부림쳤다. 이젠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누굴 믿어야 할지도 구분이 가지 않았다.한 사람은 어릴 적부터 함께 놀면서 자란 사촌 오빠이고 한 사람은 그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