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은 새빨개진 눈으로 손톱을 세게 누르며 스크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그 모습은 마치 스크린에 구멍을 뚫으려는 것 같았다.이때 이영이 이진에 대한 증오는 극에 달했다.하필 이영이 다른 짓을 벌이기도 전에, 누군가가 먼저 이영을 찾았다. 핸드폰에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본 이영은, 당황한 마음에 얼른 전화를 끊으려고 했지만 실수로 수신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드디어 전화를 받으시네!”남자가 욕설을 퍼붓는 목소리가 순식간에 전화 너머 울려 퍼졌다.“네가 끝까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집에 전화를 걸려고 했거든.”집에 전화를 건다면 이기태도 이 일을 알게 될 것이다.이영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말했다.“안 돼! 집에 전화를 거는 건 절대 안 돼!”“그건 당신이 하는 거에 달렸지, 안 그래?”남자는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이영 씨, 지금 상황은 당신이 애초에 말했던 것과 너무 다르잖아. 분명 당신이 보낸 뉴스를 올리면 분명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잖아. 지금 당신이 준 가짜 뉴스 때문에, 우리가 업계에서 쫓겨나기 생긴 건 알아?” 이영 혼자 만의 힘으로는, 며칠 만에 이진을 이 지경까지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며칠 전의 여론이 갈수록 커지게 된 것은, 모두 이영이 몰래 놈들과 손을 잡은 것이다.이영이 준 재료가 꽤나 믿음직해 보였고, 이영의 신분 때문에 그들도 별로 의심하진 않았다.‘결국 이영 그년한테 속았을 줄이야!’남자는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떠올리더니, 당장이라도 이영을 목 졸라 죽이고 싶었다.그러나 이영의 신분을 생각하며 겨우 이성을 잡고는 말했다.“이영 씨, 이 일의 책임은 당연히 당신이 져야겠지?”“뭘 원하는데?”이영은 남자의 협박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60억! 이것보다 적어서는 안 돼!”남자는 이영의 약점을 알고 있기에, 이영이 거절하기 전에 느릿느릿 말을 이어갔다.“이영 씨, 하루 내에 돈을 보내지 않는다면, 당신이 벌인 짓들을 모두 인터넷에 까발릴 거야. 그때가 되면 이씨
백윤정은 총명하고 야망이 있는 여자다.이기태에게 시집온 그녀는 겉으로는 온화하고 가족을 돌보는 좋은 부인이다.그러나 사실은 이기태의 부인이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몰래 자신의 욕심을 채웠다.짧디짧은 몇 년 사이에 백윤정은 남편 몰래 여러 개의 회사를 설립하였고, 하나 또 하나의 프로젝트에 투자하였다.이번에 이영을 돕기 위해 사용한 것은, 바로 백윤정이 따로 숨겨둔 개인 자산이다.만약 이영을 상대하는 것뿐이라면, 이진은 이 일에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지만, 이기태가 이 일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꽤나 궁금했다.그들 가족이 여러 차례 이진을 불쾌하게 만들었기에, 이진은 모처럼 복수할 만한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려고 했다.이진은 컴퓨터를 끄고 핸드폰을 꺼냈다.“이진?”이기태는 이 시간에 회사에 있었는데, 마침 물건을 정리하고 떠나려던 참에 이진이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이기태는 지난번의 프로젝트에 관한 일이라고 생각하고는, 득의양양해하며 입을 열었다.“드디어 생각이 바뀌었나 봐? 아빠가 처음부터 말했듯이 우린 한 가족이니.”“이건 씨도 없는데 굳이 연기를 하실 필요는 없지 않나요?”이진은 마치 이기태를 비꼬듯이 말했다.전화 너머의 이기태는 이진의 말을 듣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이때 이진은 화제를 돌리고는 느릿느릿 말을 꺼냈다.“사실 이기태 씨에게 알려줄 일이 있거든요. 제가 방금 이영의 은행 계좌에 갑자기 60억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송금한 사람은 당신의 부인인 백윤정 씨 더라고요.”이진은 말을 마치고 나서 전화를 끊고, 은행 송금 계산서를 이기태에게 보냈다.곧이어 이기태가 아무리 전화를 걸어오든, 이진은 모두 무시하였다.“이 썩을 년!”이기태는 가슴이 심하게 아파, 실수로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진이 말한 60억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내는 것이다.이진이 보낸 은행 송금 계산서가 가짜 같아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이기태는 자신의 계좌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이진에게 골탕을 먹일 수만 있다면, 이영은 뭐든지 하려고 했다.이영은 빠르게 생각해 보더니, 대담한 방법을 생각해 냈다.‘차라리 이진 그년이 다시는 알짱거리지 못하게 죽여버리는 게 낫겠어!’이영은 이를 악물고는 보안이 소홀해진 틈을 타, 감시 카메라를 피해 AMC 그룹의 지하 주차장으로 소리 없이 침입했다.그리고 이진의 차를 찾아내고는 이진의 차에 몰래 수작을 부렸다.이영은 회사 내부의 감시 카메라를 피했기에, 정말 이진에게 사고가 난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책임이 생기진 않을 것이라고 착각했다.이진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모두 이진 스스로에게 달렸다.이영은 입술을 오므리더니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이번엔 반드시 죽을 거야! 네가 죽어야만 이건 오빠를 포함한 네 모든 것들이 내 것이 될 거야.’한편 이영의 야심찬 계획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이진은, 여전히 회의에 전념하고 있었다.회의가 끝나자 마침 퇴근 시간이 되어, 이진은 백미러에 비친 익숙한 그림자를 발견하지 못했다.이진은 운전을 하며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루트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때 갑자기 차가 심하게 흔들렸는데, 이진은 단번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누군가가 내 차에 손을 댔나 보네.’이진의 목소리가 잠깐 끊겨버리자, 루트도 함께 긴장하기 시작했다.“대표님, 왜 그러세요?”“괜찮아.” 이진은 붉은 입술을 오므리고 더 이상 말하지 않고는, 이어폰을 빼고 브레이크를 밟았다.‘역시 브레이크에도 문제가 생겼네.’이진은 차갑게 웃더니 짧디짧은 몇 초 사이에 여러 개의 방법을 생각해 냈다.어떤 방법을 써도 다치는 것을 피면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대로 죽진 않을 것이다.‘내가 죽는 건 꿈도 꾸지 마!’이진은 일찍이 정희와 함께 레이싱의 여왕이라고 불렸기에, 차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이진은 시종 침착함을 유지하며 차를 넓은 교외로 몰고는, 가장 안전한 방향을 선택하여 차를 들이박았다.“쾅” 하는 격렬한 소리와 함께, 이진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안전한 자세를
이진은 이기태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 일부러 미끼를 던진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비서는 AMC그룹이 GN그룹을 압박한 탓에, GN그룹의 주식이 폭락하였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이기태는 이 소식을 듣고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이기태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고는,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네가 드디어 미쳤나 봐! 지금 GN그룹에 뭔 짓을 한 거야? 당장 그만두지 못해?”“이기태 씨, 절 훈계하시는 것보다, 차라리 당신 딸이 저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한번 알아보시죠.”이진은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이영이랑 관련이 있다고?’이기태는 마음이 순식간에 내려앉았다.“그게 무슨 말이야?”이영은 항상 도를 지나친 행동을 벌여왔다. ‘설마 이영이가 이진에 대한 유언비어들을 터뜨린 것도 모자라, 설마 더 심한 일을 벌인 거야?’하지만 이진은 이기태에게 제대로 말해줄 생각이 없었다.이진은 더 이상 그들이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을 눈 감아 주지 않기로 했다.‘만약 이기태가 이영을 지지해 주지 않았다면, 이영도 분명 내 차에 손을 댈만한 배짱이 없었을 거야.’이진은 벽에 걸린 벽시계를 힐끗 쳐다보고는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기태 씨, 제가 한 시간을 드릴 테니, 한 시간 내에 제가 만족할 만한 답장을 주지 않으신다면, AMC는 계속해서 GN그룹의 주식에 손을 댈 것입니다.”이진은 이렇게 말을 내던지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는 잠시 정신을 가다듬었다.전화 너머의 이기태의 머릿속에는 온통 이진의 마지막 말이 맴돌았다.이기태는 이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감히 이진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결국 이기태는 회사를 떠나 차를 몰고 가장 빠른 속도로 집으로 달려갔다.그리고 한편으론 비서더러 이영이 또 몰래 무슨 짓을 벌인 것인지 알아보라고 했다.이영의 행방은 아주 찾기 쉬웠다.AMC그룹의 주차장에서 행적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부근의 몇 개 거리에서는 모두 이영의 모습을 찾을
짧디짧은 몇 시간 내에 GN그룹의 주식이 엄청나게 폭락하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로 인해, 언론들은 모두 GN그룹의 주식에 관심을 돌리게 되었고, 구경꾼들은 심지어 GN그룹이 언제 파산할 것인가를 예측하는 투표를 진행하기도 했다.뉴스를 본 이건은 왠지 이 일이 이진과 관련되었을 수도 있다고 느꼈다.이진이 아직 별장에 돌아오지 않은 데다가, 이 뉴스를 보자 이건은 머리가 복잡했다.이건은 차가운 얼굴로 핸드폰을 거두고는 바로 AMC그룹으로 달려갔다.이진의 이마에 난 상처는 그다지 심각한 편은 아니었지만, 이를 발견한 만만이 이진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상처를 간단히 처리해 주었다.만만은 이진이 회사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혹여나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봐 급히 회사로 돌아온 것이다.만만의 예상과는 달리, 문제가 생긴 사람은 이진이었다.뿐만 아니라 이진에게 손을 댄 사람은 이진의 가족이다.‘그 세 식구는 그러고도 사람이야? 만약 대표님의 운전 기술이 능숙하지 않으셨으면, 지금쯤 아마.’만만은 감히 더 생각하지 못하고는, 손에 든 거즈를 내려놓고 부드럽게 물었다.“대표님, 아직 한 시간도 안 됐는데 먼저 좀 쉬실래요? 제가 이곳을 지키고 있을 게요.”“그럴 필요 없어.”‘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안심할 수 있어.’이진은 차갑게 웃으며 시간을 힐끗 보았는데, 거의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다.이진은 오히려 이기태가 어떤 대답을 줄 것인지 매우 궁금했다.그러나 이기태의 대답을 듣기 전에, 뜻밖의 사람이 이진의 사무실을 찾아왔다.사무실 문이 밖에서 열리더니, 밖에 서 있던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우월한 기럭지와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뽐낸 남자는 바로 이건이었다.“이건 씨, 왜 갑자기 오신 거예요?”이진은 멍하니 있다가 문득 무언가 생각나 손으로 이마를 가렸지만, 이제 와서 상처를 가리기엔 이미 늦었다.“이마는 왜 그런 거야?”이건은 이진의 다친 이마를 보고는, 앞으로 나아가 이마를 가리려던 이진의 손을
만만은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어리둥절했다.‘내가 잘못한 건가?’“혹시 윤 대표님을 보낼 생각이 없으셨던 거예요?”만만은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리고는, 코를 만지며 겸연쩍게 말했다.“윤 대표님께서 아직 멀리 가지 않으셨으니, 제가 당장 찾으러 갈게요.”‘이미 보낸 사람을 다시 불러올 수는 없지.’이진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먼저 나가 봐.”한 시간이 지났지만, 이진은 여전히 이기태의 연락을 받지 못했다.이진은 잠시 생각을 거두고 행동을 개시하였다.이진은 더 이상 마음 약하게 먹지 않고, GN 그룹을 압박하는 강도를 높였다.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GN그룹이 파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GN그룹은 애초에 이기태가 이진의 어머니에게서 빼앗은 것이기에, 이진은 이대로 GN그룹을 없애 버리는 건 마음이 아팠다.‘이기태가 이영에 대한 사랑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나 봐.’ 분명 GN그룹으로 협박하였는데도, 이기태는 마음을 모질게 먹고 이영을 이곳으로 끌고 오지 않았다.‘부녀지간의 사이가 정말 좋은가 보네.’이렇게 된 이상, 이진은 이기태에게 GN그룹이 파산되는 것을 눈 뜨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선물해 주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0% 하락했던 GN그룹의 주식이 또 5% 폭락했다.GN그룹의 기술자들은 온갖 방법을 써보았는데도, 이진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결국 책임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기태에게 전화를 걸었다.한편 이기태 쪽의 상황은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았다.이기태가 아무리 꾸짖어도 이영은 시종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이기태는 이영의 고집에 화가 나다 못해 미쳐버릴 직전이다. 이때 책임자가 안 좋은 소식을 보고해오자, 이기태는 완전히 미쳐버리고 말았다.“쓸모없는 놈들, 월급은 제때에 받아 가면서 고작 이 정도 일도 처리 못해? 잘 들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주식이 폭락하는 건 막아야 돼.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너희들 모두 해고야!”이기태는 마지막 한마디를 마치고는 핸드폰을 세게 집어던졌다.
백윤정은 오랫동안 이기태와 함께 지내왔는데, 젊었을 때의 뜨거운 사랑이 사라졌어도 그들은 여전히 가족이었다.이기태의 말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백윤정은,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의 옷깃을 붙잡으며 말했다.“이기태,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나와 이영이가 지금까지 당신과 보낸 세월이 얼만데, 지금 그 썩은 년 때문에 이영이를 내쫓으려는 거야?”“당신이 뭘 알아!”이기태는 참다못해 백윤정을 소파에 세게 내동댕이치고 큰 소리로 말했다.“이영이가 그딴 짓들을 벌이지만 않았다면, 이진이가 굳이 GN그룹에 손을 댔겠어? 당신의 딸 때문에 지금 GN그룹의 주식이 폭락하고 있다는 건 알기나 해? 이진이가 멈추지 않으면 우리 모두 끝장날 거야!”세 사람은 모두 주식이 폭락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백윤정은 그제야 이성을 되찾고는 물었다.“당신 지금 한 말이 모두 사실이야?”‘사실이 아니라면 내가 왜 쓸데없이 화를 내겠어?’이기태는 눈을 홉뜨며 백윤정을 쳐다보았다.이때 이기태는 문득 무언가 생각났는지,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더니 백윤정을 보며 말했다.“이영이 사과 안 해도 되긴 해.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 두면 GN그룹의 주식이 폭락할 것이니, 우리에게 적지 않은 자금이 필요할 거야.”마침 백윤정의 개인 계좌에는 엄청난 액수의 자금이 있었다.백윤정은 듣자마자 이기태가 지난번에 가져온 자료 한 뭉치가 생각났다.그 자료에 나타난 것들은 그저 일부분에 불과했다.이기태가 물었을 때 백윤정이 두세 마디로 얼버무렸기에, 이기태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백윤정은 이기태가 정확한 자금이 얼마인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한숨을 쉬며 수심에 찬 표정을 지었다.“여보, 안 그래도 지난번에 이영의 일 때문에 60억을 배상하느라, 나한테는 더 이상 남은 돈이 없어. 진짜 회사에 문제가 생긴다면 내 목걸이와 가방들을 팔면 조금이라도.”“백윤정, 내가 네 계좌에 얼마나 들어있는지 모를 것 같아?”이기태는 가방에서 서류 한 뭉치를 꺼내고는, 백윤정
만만은 얼른 눈치를 채고는, 이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코를 비비며 재빨리 물러났다.사무실의 문이 닫히 후, 이진은 눈앞의 남자를 쳐다보았다.이건이 자신의 일을 시시각각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진은, 감동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이건에 비해 이진은 늘 여러 가지 일에 얽매어, 이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적었다.이진은 소리 없이 한숨을 쉬고는, 목을 가다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이런 작은 일은 임 비서한테 말하면 되지, 굳이 여기까지 오지 않으셔도 돼요.”이진의 목소리가 크진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매우 가까웠기에 이건은 그 말을 아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이건은 잠시 생각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임 비서보다는 내가 같이 있어주는 게 더 낫잖아, 안 그래?”“하지만 내일도 바쁘실 거잖아요.”‘왔다 갔다 하느라고 바빴을 텐데, 이러다가는 언제 제대로 쉴 수 있겠어?’이건은 한눈에 이진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는 눈썹을 가볍게 찡긋거렸다.“그럼 내가 갔으면 좋겠어?”이진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이건이 함께 있어 주기를 바라긴 했지만, 괜히 자신 때문에 이건의 일을 방해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이때 이건은 입꼬리를 가볍게 올리더니, 디저트를 숟가락으로 뜨고는 이진에게 먹여주려고 했다.그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에게 먹여주는 것 같았다.“제가 혼자 먹을 게요.”이진은 얼굴을 붉히더니 얼른 이건이 들고 있던 숟가락을 빼앗았다.사무실 안에서 두 사람이 디저트를 맛보고 있을 때, 밖에서 기다리던 만만은 이건이 보내온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메시지 내용을 제대로 살펴보던 만만은 머리가 아팠다.결국 만만은 오랫동안 고민하더니, 또다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무슨 일이야?”이진은 마침 디저트를 다 먹던 참에, 만만이 갑자기 들어오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만만은 감히 이진을 쳐다보지 못하고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대표님, GN그룹 쪽에서는 분명 당분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할 겁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