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 씨, 제가 뭐 잘못했나요? 왜 갑자기 말투가 차가워졌어요?”엄기준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나는 대꾸를 하지 않고 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이미 저녁 11시가 다 되었다. 거리에 북적거리던 사람들도 확 줄어들어 썰렁해 보였다. 배인호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고 전화를 받으려는데 엄기준이 갑자기 내 팔을 힘껏 부여잡았다. 아까 부드러웠던 모습은 사라지고 분노만 남아 있었다.“따라와요!”“이거 놔요!”나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엄기준의 태도가 이렇게 빨리 변할 줄은 몰랐다. 그의 악력은 대단했고 나는 그 손에 끌려 그의 차로 향했다.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나서서 돕지 않았다. 나도 이런 돌발 상황은 처음이라 머리가 복잡했고 통화 중인 핸드폰에 대고 크게 여러 번 소리쳤다.“살려줘요!”엄기준이 나를 아무렇게나 차 안에 욱여넣었고 내 손에 들린 핸드폰을 앗아갔다.“꼼짝 말고 있어요!”운전석에는 허겸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를 힐끔 돌아보더니 음침하게 웃었다.“허지영 씨, 놀랍죠?”“허겸? 뭐 하는 거야?”나는 애써 진정하려 했다.“당신 때문에 직장도 잃고 민정이와도 헤어져서 나한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어요. 죽여도 시원찮을 판에 이렇게 혼내 주지도 않으면 화가 안 풀릴 거 같아요. 이제 무서운 거 없어요. 오늘 열 배로 다시 갚아 줄게요!”허겸이 담배를 휙 버리고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얼마나 달렸는지 몰라도 차는 한 부두에 도착했다. 허겸과 엄기준은 나를 컨테이너에 데려갔다. 잘 서지도 못했는데 따귀가 날아왔다. 너무 아파 눈앞이 까매졌다.엄기준이 의자를 하나 가져왔고 허겸은 그 의자에 나를 앉히고는 끈으로 꽁꽁 묶었다. 그러면서도 상스러운 욕을 멈추지 않았다.“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허겸이 손가락 두 개를 내밀었다.“첫 번째 선택, 10억을 보상으로 주는 거. 두 번째 선택, 둘한테 몹쓸 짓 당하고 바다에 버려지는 거.”허겸이 이렇게 독한 사람인지 왜 전에는 몰랐을까?“허겸, 민정이랑 그렇게 오래 사
내 머리는 아직도 조금 어지러웠지만, 의식은 있는 상태였다. 나는 민정의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고는 괜찮다며 다독였다.“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잘못은 허겸이 한 거지. 난 그 사람 바람피운 사실을 너한테 말해준 거에 대해 후회하지 않아. 단지 그 쓰레기가 너랑 안 어울리는 거지.”민정이는 더 슬프게 울었다.이때 정아와 세희가 과일 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그 둘은 나를 보고, 급히 다가와서 괜찮냐며 이것저것 물었다.“지영아, 몸은 어때? 머리는 계속 아픈 거야?”“배는 안 고파? 가서 밥이라도 사 올까?”“온도 더 높여줄까? 안 추워? 감기까지 걸리면 안 되는데!”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배고프지도 춥지도 않아, 그냥 머리가 살짝 어지러울 뿐이지.”정아는 속상해하며 말했다.“우리 불쌍한 지영이, 두 달 동안 어떻게 이런 일만 생겨? 머리 상한 거만 벌써 두 번째야, 혹시 머리 상한 거 때문에 멍청해지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나는 웃으며 말했다.“상관없어, 너희들 한 사람씩 바꿔가면서 나 책임지면 되지 뭐.”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사건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 알게 되었다.허겸은 나를 해코지하려고 일부러 엄기준더러 나한테 접근하게 했고, 기회를 찾아 날 납치하고 돈을 갈취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바다로 날 내 던진 후, 그 돈을 갖고 해외로 도주할 계획이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배인호한테서 걸려 온 전화로 내가 살 수 있었던 거고, 나의 살려달라는 소리를 들은 배인호는 내 휴대폰 위치추적 후, 나를 구하러 몇 명을 데리고 같이 온 것이었다.“그 뒤로 한참 널 찾았는데 찾지 못해서, 인호 씨가 나한테 또 연락이 온 거야. 나보고 허겸한테 전화 좀 해보라고 해서 전화했더니 허겸이 내 전화 끊어버리더라.”민정이는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얼굴에는 온통 분노로 가득 찼다.“나는 허겸이 이 정도로 독하고 이기적인 사람인 줄도 몰랐고, 본인이 잘못해 놓고는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릴 줄도 몰랐어. 심지어 허겸 부모님은 날 찾아와서 사정하
그의 과분한 관심에 놀란 나는 입을 열었다.“저 혼자서도 물 부어 마실 수 있어요.”조금 전까지 온화하던 그의 말투는 순식간에 차갑고 시크하게 변했다.“다쳤으면 그냥 누워나 있지 왜 센 척이야?”그냥 물 하나 부을 수 있다는 게 왜 센 척이라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컵을 받아 들고 말없이 물을 마시며, 속으로는 배인호처럼 시크하고 차가운 남자의 부드러운 섬세함은, 그가 좋아하는 여자만 누릴 수 있겠구나 싶었다.그렇다면 서란은 앞으로 배인호의 그 차가움 뒤에 숨겨진 따뜻함을 매일 누릴 수 있는 행운의 여자겠네?“허겸은 어떻게 됐어요?”나는 물을 마시고 나서 그에게 물었다.“지금 경찰서에 수금돼 있어. 절차 다 밟으면 아마 형을 선고받을 건데, 무기징역은 피할 수 없을 거야.”담담하게 말하던 배인호는 갑자기 대화 화제를 돌렸다.“그리고 그 엄기준, 그 사람은 너 납치 계획까지 다 불었어.”“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다행이네요.”배인호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뭐가 다행인 건데?”나는 어리둥절했다. 나쁜 사람이 정의의 심판을 받는다는데 그럼 다행인 거지 뭐라고 해야 할까? 나는 배인호가 정말 종잡을 수 없는 남자라 생각했다.그는 계속해 말했다.“술집에서 낯선 남자한테 연락처를 줘서 다행이라는 거야, 아니면 그 사람이랑 영화 보고 고기 먹으러 가게 된 게 다행이라는 거야?”“…”나는 말문이 막혔다. 만약 내가 복수심을 품지 않고, 다른 사람 일에 신경을 껐다면 엄기준과도 이런 일이 없었을 거다.배인호는 이어서 물었다.“왜 말이 없어?”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나는 오히려 그에게 되물었다.“인호 씨 지금 질투하는 건가요?”나는 강한 질투의 냄새를 맡았지만, 그가 왜 질투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날 전혀 좋아하지도 않고, 각자 즐길 거 즐기고, 내가 만나는 사람이 그의 친구만 아니면 된다고 3계명처럼 항상 말했었기 때문이다.내가 되물은 질문에 배인호는 당황스러운 듯 갑자기 일어서서 차갑게 말했다.“착
이우범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그러면 두 번째 결혼 전에는 안전 조심해요. 머리 맞고 진짜로 바보 되지 말고.”나는 들릴 듯 말 듯 하게 중얼거렸다.“거 참 오지랖 넓네.”이때 간호사가 급히 이우범을 불렀고, 이우범이 떠나자 정아가 돌아왔다. 그녀는 많은 생각이 정리된 듯 신나 보였다.“지영아, 너 지금까지 계속 쫓아다니기만 하다 이제는 별일도 다 있네?!”“아냐, 이혼할 건 해야지.”나는 담담하게 말했다.“나와 이혼할 거라고 배인호가 이미 이우범이랑 서란한테도 말했대.”정아는 순식간에 웃음을 멈췄다.“응?”설사 그녀가 연애 경험도 많고, 연애에서는 고수라 해도 나와 배인호의 변덕에는 다소 어리둥절할 것이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 명은 예전과 다르게 도움을 줬다 하고, 한 명은 오해했다고 자책하며 다시 재회할 것처럼 하더니 이제는 또 이혼할 거라고 하니 말이다.하지만 박정아는 역시 박정아였다. 몇 초간 멍하니 있더니 더욱 신나서 말했다.“맞아! 이혼할 거면 빨리해!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순 없잖아? 너 10년 동안이나 배인호 때문에 힘들었는데 이렇게 쉽게 용서해서는 안 되지, 이혼하고 배인호가 너 못 잊어서 땅을 치고 후회하게 만들어버려!”나는 이런 정아가 너무도 웃겼다. 나와 배인호가 이혼하면, 배인호가 땅을 치며 후회하기보다는 서란과 결혼해서 애까지 낳는 좋은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서란의 존재는 배인호가 나와의 이혼을 승낙한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야 그만해, 뭔 끝이 없냐? 나 빨리 밥 좀 사다 줘. 병원 식당에서 파는 가지볶음 맛있던데 그거 좀 사다 주면 안 돼?”나는 웃으며 정아를 재촉했다.“5성급 호텔 요리도 아니고 고작 병원 식당의 가지볶음이라니, 어휴!”정아는 말로는 구시렁거렸지만, 몸은 반사적으로 일어나 병원 식당으로 향했다. 지금이 정확히 식사 타임이라 아마 줄을 서서 기다려야 될 것이다!정아가 나가고 병실에는 나 혼자 남아 있었다. 얼굴에 미소는 서서히 사라졌고, 그 대신 약간의 상실감이
서란은 내가 더는 대꾸하지 않자, 가방을 집어 들며 일어났다.“지영 언니, 들어보니 언니 이혼할 때 일전 한 푼도 안 받는다면서요? 그거 너무... 바보 같은 짓 아닌가요? 10년 동안의 젊은 시절은 보상받아야죠. 여자한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젊음이잖아요.”말을 마친 그녀는 자리를 떠났다.나는 너무나 화가 났다. 상간녀 주제에 본처한테 위자료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말하면 본인이 착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아나?게다가 그녀는 내가 10년 동안 배인호를 좋아했다는 거도 알고 있었다!그녀한테는 분명히 기쁨과 동정심이 공존할 것이다. 나는 10년이란 시간을 배인호한테 바쳤는데 그녀는 몇 달도 안 돼서 배인호의 사랑을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배인호가 본인한테 더 잘해주는 거도 분명히 알고 있을 거다.배인호가 그녀한테 말했겠지? 나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사람들한테 한두 번 웃음거리가 된 거도 아니니, 서란 한 명 더 늘었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으니 말이다.내가 화를 참지 못하고 난리를 치면 아마 내 꼴만 더 우스워질 것이다. 나는 이혼까지 참았다가 그 뒤에는 세계 여행이나 할 계획이다. 어쨌든 시간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해 줄 수 있으니 말이다.“가지볶음 도착이요!”정아는 포장해 온 음식을 들고는 신이 나서 돌아왔다. 하지만 내 안색이 심상치 않은 걸 보고는 걱정되는 듯 물었다.“왜? 뭔 일 있어? 낯빛이 너무 안 좋은데? ”나는 애써 웃어 보이며 말했다.“너한테 들려줄 게 있어.”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며, 방금 녹음 내용을 들려줬다.녹음본을 들은 정아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얼굴이 빨개져서는 욕설을 퍼부었다.“이거 완전 미친년이잖아, 지금 너 죽이려고 한 거 맞지? 아 안 되겠어. 나 당장이라도 그년 쫓아가 싸대기라도 날려야 될 것 같아!”“정아야, 하지 마.”나는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걔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뭘 어떻게 쫓아간다는 거야?”“그년 서울대 성악과 아냐? 사람 시켜서 걔 학교에 커다
새해가 지나고 며칠 후 나는 퇴원하게 되었다.병원에 있는 건 확실히 지루했고, 게다가 회복도 잘 된 상태라 미리 퇴원 절차를 밟았다.이 기사님은 나를 청담동으로 데려다주었고, 집사 아주머니는 나를 위해 풍성한 점심을 준비했다. 나는 배가 터질 정도로 먹고 나니 기운이 나는 듯했다.갑자기 기선우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누나, 어떻게 된 거예요? 괜찮아요? 병원에 찾아갔는데 누나 이미 퇴원했다면서요!”“선우야, 내가 입원한 병원은 어떻게 알았어?”나는 조금 놀랐다. 왜냐하면, 내가 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그 어디에도 올린 적은 없으니 말이다.기선우는 몇 초 동안 침묵하다가 말했다.“오늘 아침 라니가 알려줬어요.”내가 다친 걸 기선우한테 알려줬다고? 그러고 보니 전에 서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기선우가 나를 대하는 느낌이 다른 사람 대하는 거와 다르다고 말이다. 그녀는 일부러 나랑 기선우가 썸이라도 타길 바라는 듯했다.이때 배인호한테서도 전화가 걸려 왔고, 나는 기선우한테 대충 얼버무리고 배인호의 전화를 받았다.그는 나한테 따져 물었다.“퇴원한 거 나한테 왜 말 안 했어?”“병원에 갔어요?”내가 물었다.“말이라고 하는 거야?”배인호는 몹시 화가 나 보였다.“내 시간만 낭비했잖아!”나는 당황스러웠다. 서란은 오늘 아침 배인호가 병원에 나 보러 가는 줄 미리 알고, 기선우한테 내가 입원한 사실을 알려준 거다. 내가 앞당겨 퇴원해서 다행인 거지, 그게 아니면 일부러 어색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었을 거다.나는 서란이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배인호는 전화를 끊어버렸고, 나도 다시 전화하지는 않았다.겨울은 낮이 짧고 밤은 긴지라 오후 5시 반도 안 돼서 밖은 이미 어두워졌다. 나는 오후 내내 잠을 자고 일어난 뒤 겉옷을 걸쳐 입고, 홀로 밖에 눈사람을 향해 걸어갔다.요즘 날씨가 눈이 매일 오는 건 아니라서 눈사람의 뚱뚱했던 몸통은 조금 사라졌고, 그 형태는 조금씩 변형이 돼 있었다.“사모님, 밖에 추운데 들어와서 몸 좀 녹여요.”
“죄송해요, 하도 이혼을 미루니까 전 인호 씨가 저를 좋아하게 된 줄 알았어요. 근데 그런 게 아니네요.”나는 차분하게 웃어 보였고, 그 어떠한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했다.배인호의 차가운 얼굴에서는 그 어떠한 감정도 엿볼 수 없었고, 그는 내 맞은편에 앉아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나는 담배 연기에 숨이 막혀 기침했고, 그걸 본 배인호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이런 부분은 그래도 신사적이라 생각했다.1분 정도 지난 후, 나는 배인호가 전화를 받고 서둘러 떠나는 모습을 창문으로 바라봤다.이때 내 전화도 울렸고, 정아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지영아, 뭐해? 여기 밥 먹으러 와!”그녀는 신비롭게 나한테 말했다.“여기 오면, 네가 예상치 못한 사람도 볼 수 있을 거야.”“그게 누군데?”내가 물었다.“안 알려줄 거야. 위치 보냈으니 얼른 와. 너 안 오면 집까지 찾아간다.!”정아는 신이 나서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시간을 보니 때마침 저녁 시간이었다. 나는 집사들한테 저녁은 나가서 먹을 거라고 말해줬고, 차를 운전해 나갔다.목적지에 도착해 룸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세희와 민정이도 함께 있었고, 더 생각지 못한 건 문 바로 맞은 편에 30대 초반인 짙은 눈썹과 큰 눈을 가진, 아주 표준적인 동양형 미남이 앉아있었다.그는 다름 아닌 박정아의 친오빠, 박정환이었다.나를 본 박정환은 잠시 깜짝 놀라다가 금세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한테 인사를 건넸다.“지영아, 오랜만이네.”“정환 오빠, 한국은 언제 들어온 거예요?”나는 마음속의 어색함을 억누르고, 대범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정아 옆으로 가서 앉았다.“오후에 금방 도착했어. 정아가 굳이 환영파티 한다고 해서 밥 먹으러 오게 된 거야.”박정환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그는 정아와는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를 갖고 있다.정아의 친언니 박성아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고, 그녀도 웃으며 말했다.“정아가 자리 만들고, 오늘 돈은 네가 계산해.”박정환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누가 하든 똑같지 뭐.”나
서란의 얼굴에는 당황함이 가득했다. 그 시선은 갈 곳을 잃었고, 그녀는 머리를 숙여 발끝만 쳐다보고 있었다.그녀가 앞에서 보여준 순진하고 갈팡질팡한 행동을, 그녀가 실제로 한 일에 비하면 그건 천차만별이다.배인호는 그녀의 당혹감을 느끼고는, 날 일부러 보라고 그런 것인지, 진심으로 그녀가 안쓰러웠는지 우리 앞에서 말없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배인호!”박정환의 목소리는 많이 불쾌한듯했다.“정환 오빠, 오빠 예전보다 더 멋있어진 거 같네요!”나는 박정환의 말을 가로채고는, 손을 뻗어 그의 팔을 끌어당기며 큰 소리로 칭찬했다.엘리베이터 가장 문 앞에 선 민정이는 빠르게 닫기 버튼을 눌렀고, 배인호의 뜨거운 시선을 뒤로하며 엘리베이터 문은 닫혔다.일부러 나 보라고 그런 거 아닌가? 그렇다면 나도 참을 수 없지.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쑥스러웠고, 박정환의 팔을 놓으며 말했다.“죄송해요, 방금 오빠 팔 좀 빌리게 됐네요.”그걸 들은 박성아가 입을 열었다.“뭐가 미안한데, 저놈 속으로 좋아서 난리였을걸?”정아도 활짝 웃었고, 그 두 자매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봤다.“맞아, 나 진짜 너무 행복했어.”박정환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말했다.“앞으로 이런 좋은 일은 내가 책임질게.”“정환 오빠는 점점 유머러스해지네요.”나는 못 말린다는 듯 말했다.박정환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우리 일행은 호텔을 떠나 근처 노래방으로 향했다.이왕 노래하러 왔으니, 나는 마음속 스트레스를 노래로 전부 발산했다. 비록 내가 악기를 전공했지만, 발성 조건은 나쁘지 않았다. 노래 실력이 좋다 할 수는 없지만, 어디 가서 괜찮게 부른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세희는 회사 직원들과 전에 여기서 회식한 적 있다 했으며 그때 카드를 만든 적 있다고 했다. 그 카드에는 술 두 박스를 킵한 적 있었고, 우리는 그 킵한 중에서 한 박스를 시켜 먹었다.“자, 지영아 너 우리 오빠랑 이 노래 좀 같이 해봐!”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