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아빠의 마음속에서는 내 목숨이 그의 목숨보다 더 소중했다.그는 마음속으로 극복하기 힘들어 치료를 거부했지만, 나의 건강까지 더해지니 마음이 움직이신 것이다.이 방법은 역시나 효과가 있었고, 나는 마음속으로 감동 받았다.“하지만 전 가고 싶지 않아요…”나는 계속하여 일부러 아빠를 자극했고, 더욱 안달 나게 만들었다.“안돼, 반드시 가야 해! 이미 사람 시켜서 네 물건 정리하라고 했어. 그러니 곧 출발할 거야.”아빠는 강경한 태도로 단칼에 내 말을 거절했다.나는 달갑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소파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나 대신 옷과 일상용품들을 정리해 줄 때까지 가만히 있었고, 도우미 아주머니가 정리를 끝낸 후에야 아빠는 내 팔을 잡아당겼다.“자, 이제 병원으로 가자.”나는 터덜터덜 아빠를 따라 문을 나섰고 차에 탔다. 로아와 승현이는 병원까지 데리고 갈 수 없으므로 도우미 아줌마더러 집에서 돌보게 하였다.오늘은 엄마도 우리와 함께 문을 나섰다. 나와 엄마는 뒷자리에 앉았고, 아빠는 조수석 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엄마가 물었다.“오늘 웬일이에요? 저 혼자 과부로 남기게 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그래, 당신 99살까지 살아야 하는데 인생 아직 길잖아? 내가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당신 늙은 과부로 남게 할 수 있겠어?”아빠는 장난스럽게 엄마를 향해 답했다.그 말에 엄마의 얼굴색은 순식간에 변하면서 아빠에게 뭐라고 욕설을 퍼부으려는 듯했으나, 기사님이 있는지라 결국은 자신의 이미지를 지켜야 했다. 어쨌든 더는 여기에 대해 따지지 않고, 아빠가 병원에 입원하는 건 좋은 일인 것이다. 병원에 도착 후 나와 아빠는 입원 수술 절차를 밟을 준비를 하였다. 이때 내가 전에 찾았던 의사 선생님이 다시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그녀는 우리 아빠 앞에서 나에게 다른 병원을 추천해 주었다. 그 병원이 유방암 치료를 더 잘하고 최고의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이다.그 말을 들은 아빠는 바로 자신의 처지에 대해 답했다.
“네, 이제는 혼자 앉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로아는 아직 제대로 기어다닐 수는 없고 승현이는 그래도 조금 기어다닐 수 있어요.”나는 마음속으로 이게 어떤 감정인지 형용할 수 없었다. 흑과 백 사이에는 항상 회색지대가 있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좋고 나쁨이 없는 것 같았다.“아마 남자아이라 더 움직이기 좋아할 거예요. 그래서 운동적인 부분에서도 더 좋을 거고요. 로아도 기어다니는 거 많이 가르쳐줘요. 발육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이우범은 나를 당부하며 말했다.이 모든 건 나 한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도우미 아주머니한테도 특별히 말씀드린 적 있고, 로아를 최대한 기어다닐 수 있게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라고도 말했었다.“알겠어요.”나는 한마디 답한 후 더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마지막에는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 이우범도 더는 전화를 다시 걸어오지 않았고, 나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아빠가 입원한 뒤 엄마는 회사 쪽 일까지 더해지면서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가 고생하는 모습을 손 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어 적극적으로 회사 일을 돕겠다고 엄마에게 말했다.전에 비록 나 혼자서 겨우겨우 집에 회사를 운영한 적 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경험을 쌓았었다. 하여 잠깐 엄마를 도와 일을 하는 건 나도 할 수 있을 것이고, 지금은 엄마도 곁에 있으니 언제든지 나를 지휘하고 가르쳐줄 수도 있는 것이다. “지영아, 너 할 수 있겠어?”하지만 엄마는 아주 걱정스러워 보였다. 엄마한테 있어서 나는 사업적인 재능이 없는 사람이었다. 사업과 관련된 일이라면 나는 언제나 골치 아파하곤 했었으니 말이다.“엄마, 나 믿어요.”나는 더는 설명하지 않고 바로 엄마에게 답했다. 앞으로 부모님이 계속하여 회사를 관리할 수 없다면 결국은 내가 이어받아 관리도 해야 하기에 이건 지금부터라도 미리 적응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엄마도 여기까지 생각을 한 듯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나도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바로 엄마에게 물을 수도
내 위로 끝에 세희는 다시금 안정을 찾았지만, 끊임없이 흐느꼈다.지금 세희의 상황은 예전의 내 상황과 다르지만, 죽을 만큼 슬픈 감정은 같을 것이다.예전의 나는 적극적으로 배인호를 수년간 쫓아다녔지만 아무런 반응도 얻지 못했다. 이혼하기 전에 배인호는 나에 대해 깊은 감정이 있지도 않았고 이모건만큼 공격적이고 노골적으로 협박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세희의 현재 상황은 이모건이 그녀를 괴롭히며 다른 사람과의 약혼도 파탄시키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모건은 파혼해서는 안 되는 약혼자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세희더러 세컨드를 하라는 건가?세희는 훌륭한 집안 배경과 외모를 가지고 있는데 왜 세컨드가 되어야 하나? 그녀가 스스로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은 하지만, 만약 동의한다고 해도 나와 나머지 친구들은 다시 그녀를 이모건한테서 끌어낼 것이다.어찌 됐든 나는 정식으로 배인호와 결혼도 했고, 정당한 명분도 있었는데 세희는 지금 이게 뭔 상황이란 말인가?“지영아, 나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세희는 다소 쉰 듯한 목소리로 말했고 그 목소리에는 피곤함도 섞여 있었다.“지금 내 맞선 상대 집안에서 이모건을 조사하고 있어. 조사만 끝나면 우리 집에서도 아마 나 뭐라 할 거야.”이건 단순히 감정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회사 협업과도 연관이 되어있다. 세희의 맞선 상대이면 그녀의 집안에서도 자연스레 서로 알 것이고, 회사도 어느 정도 협업 관계가 오갔을 것이다. 끝까지 조사한다면 그녀의 약혼이 취소될 뿐만 아니라 회사의 이익에도 큰 손실을 볼 것이다.세희는 지금까지 회사를 위해 헌신해 왔기에 그녀도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아니면 네가 먼저 네 엄마 아빠한테 자백하는 건 어때? 그러고 부모님이 대신 맞선 상대 집안에 명확히 말해주는 거지. 사과한다던가.”나는 그녀에게 건의를 하나 제기했다.일이 이렇게 된 이상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넬 수밖에 없고, 최대한 안정시킨 뒤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본다. “응, 나
설마 이우범? 지금이 몇 시인데?여기 도우미 아주머니는 이우범을 모르기 때문에 나도 뭘 더는 물어볼 수 없었고, 나가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어쨌든 만약 진짜 이우범이라면 오늘 저녁 그를 피한다 해도 내일이나 모레 중 어느 하루는 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문밖에 배인호도 있는 거라면 나는 절대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늦은 저녁 시간에 그 둘은 서로 약속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동시에 우리 집 앞에 나타났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그 둘의 차는 우리 집 문 앞에 세워져 있었다. 우리 집 부근의 길이 넓어서 다행이지 그게 아니면 진짜 그 둘의 차로 꽉 막힐 것이다.문을 여는 순간 그 둘의 시선은 동시에 나에게로 향했고, 나는 마치 두 개의 총이 나를 겨누고 있는 것만 같아 무서웠다.그렇게 몇초는 다시 문을 닫고 싶었지만 내 이성의 끈이 그럴 필요 없다고 나를 알려주었다.“둘이…”나는 배인호와 이우범을 서로 번갈아 보았고, 그 둘의 얼굴색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배인호는 차갑게 이우범을 흘깃거리며 입을 열었다.“넌 여기 웬일이야? 네가 먼저 이야기해.”“네가 먼저 해. 이야기 마쳤으면 먼저 가고.”이우범도 전혀 물러설 기미가 없이 차갑게 답했다.“흐흐, 난 지영이와 엄청 중요한 일에 대해 말해야 해. 시간이 엄청나게 길어질 거니까 네가 먼저 가.”배인호 또한 매정하게 그의 말을 거절했다.하지만 이우범은 그 말을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네가 지영 씨랑 아직도 뭔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게 있어?”“네가 상관할 바는 아니잖아?”배인호는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아무 말 없이 거기서 이 두 남자가 서로 디스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게다가 그 둘은 매우 진지하게 다투고 있었고, 공기 중에 화약 연기 냄새가 가득한 것만 같았다.이러다간 두 사람이 또다시 부딪힐 것 같아 내가 입을 열어 말렸다.“둘이 여긴 웬일이에요? 이미 시간도 늦었고 나도 이제는 자야 해요.”“얘 보고 먼저
“인호 씨,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요.”나는 손의 서류를 내려놓으며 난처해했다.어찌 되었든 나는 진짜로 병에 든 게 아니니 말이다.하지만 배인호는 현재 내가 유방암에 걸렸다고 굳게 믿고 있고, 이미 나를 위해 유방암 전문 치료병원까지 알아봐 둔 상태였다. 나는 배인호가 더는 시간을 낭비하게 하지 않기 위해, 사실대로 그에게 말해주려 하였다.“난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한평생 후회할 것 같거든.”배인호는 명쾌하게 말했고 그 누구보다도 진지했다.“필요한 거 있으면 나한테 말해. 최대한 다 들어줄 테니까.”그 약속은 순간 나의 마음을 움직였고, 사실대로 말해주려던 내 마음도 순식간에 사라졌다.내가 물었다.“진짜예요? 이게 병원에서의 오진이거나 혹은 진짜 기적적으로 내가 살수 있다고 해도 그 약속 끝까지 지킬 거예요?”“응, 결과가 어떻든 간에 내가 들어주기로 한 일은 반드시 지켜.”배인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또 다른 지분 계약서를 하나 더 꺼냈다.“이거 봐.”그 계약서를 본 나는 배인호가 진짜로 크게 자극을 받았구나 싶었다. 그는 어떻게 배 씨 그룹의 15% 지분을 나에게 주려고 할 수 있지? 나는 뭔 말을 했으면 좋을지 몰라 멍해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우리 이혼 전에 너 배 씨 그룹에 지분 가지고 싶다고 했잖아. 지금 줄게. 만약 그 뒤에 너 진짜 뭔 일이라도 생기면 이건 네 부모님이나 두 아이한테 줄 수도 있어. 네가 돈이 부족하지 않은 거 나도 잘 아는데, 이 지분돈뿐만 아니라 내 내 약속이기도 해. 네 부모님과 두 아이, 내가 잘 보살필 수 있어.”배인호는 말을 하면서 점점 더 슬퍼 보였다.나는 이 거짓 사실로 인해 배인호의 따뜻한 면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내 마음속으로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고, 이건 감동 아니면 뜻밖의 상황인 듯 하다.“배 씨 그룹 지분 저도 가지고 싶었죠. 하지만 그건 우리가 이혼 전에 일이고, 이렇게나 많이 가질 생각은 없었어요.”나는 그 계약서를 배인호에게
“노민준의 주소는 어떻게 알았어요?”나는 바로 그에게 되물었다.나도 노민준의 주소를 찾고 있었고, 경찰의 도움만 있으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일이다.노민준이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살던 곳은 허름한 구식 아파트였다. 그의 고향 주소에 찾아가 봐도 아무도 없었고, 허물어진 낡은 집만 남아있을 뿐이었다.하여 노민준의 주소는 나에게 크나큰 쓸모가 없다. 나는 단지 이우범이 왜 이것을 찾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지영씨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지영 씨 그 일에 대해 내가 대놓고 도와줄 수는 없지만, 사실에 대해 알고 싶다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요.”그러면서 이우범은 핸드폰으로 나에게 낯선 주소를 하나 보내주었고, 그건 경찰 측에서 전에 나에게 주었던 그 주소와는 다른 주소였다.나는 다시 한번 이우범을 바라보았고, 그 뜻을 알 것만 같았다.그와 민설아는 현재 협업 관계라 상대방의 약점을 손에 쥐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우범은 나를 대놓고 도와줄 수는 없지만, 몰래 나에게 도움을 줄 수는 있는 것이다.하지만…민설아가 알기라도 한다면, 이우범에게는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이미 민설아 씨와 협업하는 걸 선택하고 배인호 씨를 같이 겨냥하기로 한 거면서 왜 날 도와주는 거죠? 나와 민설아 씨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잖아요? 이우범 씨, 나는 더 이상 당신에게 신세 지고 싶지 않아요. ”내 속마음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이우범이 나에게 준 단서는 추후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내가 그에게 또 신세를 지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다.“왜냐하면 이 일은 나만 지영 씨를 도울 수 있으니까요. 민설아 아주 주도면밀해요. 나 말고 그 누구도 내부 사정에 대해 알 수 없다고요.”이우범은 낮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해주었다.“이것은 내 결정이니 너무 많은 걱정할 필요 없어요. 나한테 있어서 지영 씨가 신세 진 건 없어요. 굳이 신세 진 거라고 하면 내가 신세 진 건 있겠죠.”“그런 거 없어요.”나는 이우범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전에 내가
약을 따뜻한 물에 풀어 거실로 돌아오자 이우범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내가 자격이 없으면 넌 있어? 너하고 나 똑같은 처지야.”“맞아. 예전에는 내가 잘못했어. 하지만 난 내 모든 것을 바쳐 지영이한테 보상해 줄 거야. 근데 넌 그렇게 할 수 없잖아. 이우범 넌 네 가문의 일이나 가서 해결해.”배인호의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가득했다.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니 내 가슴이 조금 쿵쾅거리는 것 같았다.잠시 후 이우범은 살짝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네 집안에는 문제가 없나 봐? 배인호 너무 자신감이 넘치는 거 아니야? 예전에 내가 지영 씨 소중하게 생각하라고 했었지? 내 충고를 듣지 않은 건 너야.”“우리 집안에 일이 있어도 부모님은 모두 지영이를 예뻐하셔. 네가 나와 비교 상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허허.”배인호의 경멸 가득한 비웃음을 날렸다.“그리고 네가 민설아를 도우면서 함께 나를 괴롭힌 순간부터 넌 나한테 충고할 자격 같은 건 없다는 걸 너도 알아야지.”이우범은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는 듯이 오히려 담담하게 당시 자기가 한 행동을 설명했다.“내가 그렇게 한 건 네가 먼저 민설아한테 잘못했기 때문이야. 민설아는 네 아이를 임신했고 만약 내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민설아는 정말 강에 뛰어들었을 거야. 한 번에 두 사람이 죽을 뻔했다고. 너 두 생명을 감당할 수나 있겠어?”만약 이우범이 이 말을 하지 않았다면 배인호는 그래도 화를 참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런 말들은 이우범에 대한 배인호의 분노와 원망을 모두 폭발시켰다.“내 아이라고?”배인호는 화를 내며 물었다.“이우범, 난 계속 너를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넌 매번 나를 바보로 만드는구나. 난 너희 집안에 극단적인 수단을 쓰진 않았어. 과거 우리 우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우리 부모님들 사이가 좋았기 때문이야. 만약 네가 나하고 끝까지 가보겠다면 어디 해 봐.”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배인호가 마침내 그 사실을 말할 줄은 몰랐
배인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우범의 모습도 나타났다.이미 내 침실 문 앞에 서 있는 배인호를 본 그의 표정이 약간 굳어지고 발걸음도 멈칫했지만 결국 다가왔다.이때 나는 품에 로아를 안고 있었는데 아기 침대에서 자던 승현이가 울기 시작했다. 배인호는 아기 침대로 가서 승현이를 들어 올려 품에 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두 녀석은 배인호에게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품에 안고 조금 달래자 승현이는 바로 울음을 그쳤다.그 모습을 보고 나는 도우미를 부르지 않았다.공교롭게도 바로 이때 밖에서는 천둥소리가 그쳤고 비바람 소리만 계속 들려왔다. 이우범은 나와 배인호가 아이를 한 명씩 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는 발코니로 가서 상황을 확인하면서 말했다.“바람이 너무 셌나 봐요. 발코니 밖에 나뭇가지가 부러져서 창문에 부딪혔네요. 창문에 구멍이 뚫렸는데 내일 사람 불러서 바꾸면 될 거예요.”나는 로아를 안은 채 다가가 간단하게 확인했다. 발코니는 정말 엉망이었다. 통유리에 구멍이 뚤렸지만 다행히 전부 깨지진 않았다.바람에 의해 부러진 나뭇가지가 꽤 컸고 한쪽 귀퉁이가 여전히 유리에 박혀 있었다. 발코니는 완전히 젖어 있었다.“알겠어요.”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우범에게 말했다.“어서 가서 쉬어요. 이젠 괜찮아요.”“내가 로아 안을게요.”하지만 이우범은 손을 뻗으며 다정한 눈빛으로 내 품에 안겨 있는 로아를 바라보았다.애초에 엄마가 이우범이 아이들을 보기 위해 우리집에 오는 것을 허락했다. 나도 그가 로아와 승현이에 대한 사랑에 불순한 감정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거절하지 않았다. 그저 그에게 한마디 하며 로아를 건네주었다.“어깨 다쳤으니까 조심해요.”“네.”이우범은 알겠다고 하며 다치지 않은 쪽으로 로아를 건네받으며 다친 쪽으로는 살며시 로아를 토닥였다.로아는 자기를 안고 있는 남자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맑고 촉촉한 눈동자와 방금 울어 살짝 붉어진 눈가가 조금 불쌍해 보였다.이우범은 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