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호와 이우범이 같이 온 것은 아니지만 그 둘이 내 앞에 같이 나타난 건 사실이다.나는 정아에게 이 기묘한 인연에 대해 설명하기 다소 어려웠다.“같이 온 거 아니야.”나는 간단하게 그녀에게 답했다.“그래, 아직 우리를 못 본 것 같은데 너 일단 먼저 나가봐. 내가 가서 가방 갖고 바로 나갈게.”정아가 나에게 말했다.나는 정아가 가방을 갖고 나올 때까지 잠시 앞으로 걸어가 기다렸고, 한참 동안 기다렸지만, 그녀는 도통 오지를 않았다. 나는 조금 걱정이 되어, 정아를 찾으러 되돌아갔다.역시 내가 예상했던 대로, 내가 이우범과 나가서 돌아오지 않자 배인호는 쉽게 정아를 보내지 않았다. 그 순간 정아는 미친 듯이 눈을 희번덕거렸다.그 시각 배인호는 정아의 예쁘고 작은 가방을 손에 들고 있었고, 정아는 내가 돌아온 것을 보더니 매우 욱해서 말했다.“만약 저 가방이 한정판만 아니었다면, 나 그냥 저거 버렸어!”“가.”배인호는 가방을 정아에게 던지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적은 정아를 통해 나를 찾는 것이었다.정아는 가방을 받아들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난 안 가요. 지영이랑 뭔 얘기가 하고 싶으면 그냥 내 앞에서 해요.”“…”배인호는 정아의 꿈적도 않는 모습을 보더니 어이가 없는 듯 했다.“배인호 씨, 난 이해가 안가거든요? 대체 지영이랑 아직도 할 말이 남은 건가요?”정아는 다리를 꼰 채 여유로운 모습으로 이어서 말했다.“어디 한번 말해봐요. 내가 분석 좀 해줄 테니.”배인호는 정아의 말은 대꾸하고 싶지 않은 듯 나를 향해 걸어오더니 내 손을 덥석 잡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나를 데리고 여기를 떠날 참이었다.나는 배인호의 손을 뿌리치며 냉담하게 답했다.“정아의 말이 맞아요. 할 얘기 있으면 그냥 여기서 해요. 우리 사이에 더 이상 얘기할게 남았나요? 굳이 따로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하지만 이때, 정아의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고, 그녀는 발신자표시를 확인하더니 조용한 곳을 찾아가 전화를 받았다. 그 자리
정아의 그 설명을 들은 뒤에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어휴, 이 일에 대해 정아가 몰라서 망정이지, 알면 꼭 밖으로 새어나가겠네.“그럴 수도 있겠네. 내가 조금 얼빠라 내 아이들도 얼빠일 수 있어.”나는 일단 아무렇게나 그녀의 말에 답했다.이때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는 다른 간호사분이 들어왔고, 아마 경험도 충족한 듯 보였다. 그 간호사는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고, 멀지 않은 곳에서 배인호의 소리가 들려왔다.“여기 있어요.”로아는 배인호의 품에서 얌전히 있었고, 가끔은 그를 향해 웃어 보이기 까지 했다. 그 모습은 마치 다정한 부녀의 모습 같았다.그 시각 정아는 두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그녀는 가십거리를 좋아했기에, 어느 부분이 다소 이상한 것 같으면 그걸 깊게 파고드는 성격이었다.“아이 엄마가 안게 하세요.”간호사가 배인호를 향해 말했다.“아마 엄마가 조금 더 나을 거예요.”나는 손을 뻗어 배인호의 품에서 로아를 받아안았고, 간호사는 어떻게 안아야 주사를 놓기 편한지 나에게 알려주었다. 이때 배인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한 번에 성공할 수 있죠?”그 말에 간호사는 잠시 멈칫하더니, 로아 머리의 상처를 보고는 다소 미안한 듯 답했다.“조금 전 그 간호사는 아직 경험이 부족한지라 많이 긴장했나 봐요. 저는 한 번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배인호의 눈빛은 그제야 조금 부드러워졌다. 나는 증거는 없지만 왠지 배인호가 나보다 더 로아를 신경 쓰는 것 같았다.그렇게 이번에는 드디어 한 번에 성공했다. 비록 로아는 잠시 울었지만, 적어도 이번은 주삿바늘을 꽂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로아를 안고 링거 실로 갔고, 늦은 시간이라 링거 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거기에는 나와 로아, 그리고 정아와 배인호만 있을 뿐이었다.승현이는 아직 정아네 집에 있었고, 정아 또한 아이가 셋이나 있기에 나는 그녀더러 먼저 돌아가라고 했다.“정아야, 너 먼저 들어가 봐. 로아가 링거 다 맞으면 내가 차 불러서 갈게.”“왜 차를 불러
나와 배인호는 그렇게 병원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로아가 약을 갈 때가 되자 다시 링거 실로 가서 간호사를 불렀다.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서야 드디어 링거를 다 맞게 되었고, 우리도 그제야 돌아가서 쉴 수 있게 되었다.배인호는 차로 나를 정아네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고, 나는 아이를 안은 채 차에서 내린 뒤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오늘 저녁 고마웠어요.”“일찍 쉬어.”배인호는 간단히 한마디만 건네고 차로 그 자리를 떠났다.그때는 이미 새벽 4시였다. 나는 로아를 제대로 눕힌 뒤 화장을 지우고 씻으러 들어갔다. 오늘 저녁은 확실히 너무 힘든 저녁이었던지라 나는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바로 잠에 들었다. 다행히 정아네 집 베이비시터가 아이를 잘 돌보는지라 점심까지도 아이의 일 때문에 나는 잠에서 깬 적이 없었다.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쯤 배인호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와있었다. 그 문자는 아주 길었으며 그건 전부 아이의 장염에 대해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와 연관된 내용이었다. 그 문자를 보고 나는 잠에서 덜 깬 듯한 환각을 느껴 순간 멍해졌다.이때 전화벨 소리가 크게 울렸고, 이우범이라는 세글자가 나를 환각 속에서 끄집어냈다.“집에 잘 들어갔어요?”전화를 받자마자 이우범의 냉랭한 소리가 들려왔다.“네, 왜요?”나는 앉아서 주위를 한번 살폈고 목소리는 약간 쉰 것 같았다. 아마 어젯밤 술을 먹은 원인인 듯 하다.“별거 아니에요. 어제 잠시 가봐야 해서,지영 씨랑 정아 씨를 데려다주지 못했던 게 걱정이 되어서요.”이우범이 내 말에 답하더니 이어서 물었다.“지금 정아 씨네 집에 있어요?”나는 부인하지 않았다“네, 뭔 일 있어요?”“잠깐 나와봐요. 정아 씨네 집 문 앞에서 기다릴게요.”이우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전화를 끊었고 나는 다소 당황스러웠다.어떻게 내가 여기 있는 거 아는 거지? 게다가 이미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기 까지 하다니.나는 재빨리 일어나 씻었다. 그 시각 정아와 몇몇 아이는 거실 매트에서 기어다니며 놀고 있
정아의 말을 들은 이우범의 눈에는 초조함과 걱정이 섞여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약간 비난 섞인 말투로 나를 향해 말했다.“그런 일이 있었으면서 왜 제일 먼저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어요?”“그때 민설아 씨와 같이 있었잖아요?”내가 오히려 그에게 되물었다.이우범은 내 반박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듯 묵묵히 나를 쳐다보기만 하였다.이때 정아가 나 대신 입을 열었다.“그런 눈으로 지영이 보지 마요. 전에 난 이우범 씨가 깨끗한 사람인 줄 알고, 심지어 지영이 더러 그쪽 받아주라고 했는데, 지금 보니 그쪽도 배인호와 별 다른 거 없네요. 내가 사람을 잘못 봤네요. 역시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리는 건데 말이죠?”그 말을 들은 이우범의 얼굴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이 곳에는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없어 다행이지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더욱 안 좋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어제 저녁은 아주 중요한 일이 있었어요.”이우범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더니 정아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약간 망설이는듯한 눈빛을 보였지만, 곧 원래대로 다시 돌아왔고, 계속하여 이어서 내게 물었다.“민설아가 여기 있는 거 알면서 인호한테는 안 알려준 거예요?”“왜 배인호 씨한테 알려줘야 하죠? 그건 그 둘 일이라 저는 별로 간섭하고 싶지 않네요.”나는 담담하게 답했다.“그래요, 알겠어요.”이우범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듯 하더니 고개를 돌려 큰 대문 쪽을 바라보았다.“로아 안에 있어요? 저 로아 보고 싶어요.”정아는 곧장 눈빛으로 나에게 물었고, 나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그녀가 이우범을 제지하지 않게 했다.이우범의 두 아이에 대한 사랑은 거짓 하나 없이 진심이었고, 나 또한 앞으로도 그와 아이가 거리를 두게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한마디 했다.“여기서 기다려요. 내가 가서 로아 안고 올게요.”이우범은 발걸음을 멈추었다.이윽고 나는 로아를 안은 채 밖으로 나왔고, 오늘 로아는 전보다 많이 좋아진 듯 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완전히 회복된 상태가
“알겠어요. 소식 있으면 바로 알려줄게요.”나는 대충 대답했다.딜런은 온종일 그와 민설아 사이의 비밀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나도 그에게 민설아의 행방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가 먼저 알아서 찾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을 것이다.전화를 끊은 뒤 정아는 내게 물었다.“그 사람도 의사를 찾고 있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하다가 민설아와 딜런 사이의 일을 정아에게 알려주었다. 전체 이야기를 들은 그녀의 직감은 나와 같았다. 딜런과 민설아 사이에는 확실히 뭔가 문제가 있었고 절대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나는 대답했다.“맞아, 그래서 제대로 알아보려고. 민설아가 계속 나를 놓아주지 않고 괴롭힌다면 나도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맞아!”정아도 내 생각에 동의하며 말했다.“민설아 정말 주도면밀한 것 같아. 전에 서란 보다 더 독한 여자야. 우리도 미리 준비해야지.”밖은 또 어두워졌다. 서울에 돌아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서울에 돌아오니 나는 뭔가 소속감이 들었다. 환경이든 분위기든 매우 편안했다. 나는 속으로 몰래 결정을 내렸다. 이번에 배인호와 이우범 두 사람과 결론을 내린 뒤 더 이상 엮이지 않으면 나는 역시 서울로 돌아와서 평생을 살고 싶었다.게다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도 모두 서울에 있었다.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도우미가 가서 문을 열었지만 모르는 사람인지 다시 정아에게 돌아와서 말했다.도우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나는 한 그림자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 속도는 마치 한 마리의 개가 달리는 것만큼 빨랐다.하지만 그 정말 개가 아니라 노성민이었다.그는 면도도 하지 않아 거뭇거뭇한 수염에 빨갛게 된 눈이 사흘 밤낮을 잠도 못 잔 것 같았다. 온몸에서 원한을 품은 여자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노성민을 본 정아는 벌떡 일어나더니 생각도 하지 않고 바닥에 널려있던 장난감을 집어 그에게 던졌다.“누가 들어오래? 나가!”“박정아, 너 너무하는 거 아니야?”노성민은
겁쟁이 노성민은 배인호가 온 것을 보고 바로 지원군을 본 것처럼 배인호에게 달려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할 말 있으면 똑바로 해. 사람 때리지 말고. 내가 여자를 안 때린다고 생각해서 이러는 거지?”“무슨 일이에요? 밖에 문도 안 닫고?”배인호가 물었다.정아는 눈을 희번덕하게 뜨며 더 말하고 싶은 표정이 아니었다. 나는 차갑게 노성민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 친구한테 물어봐요. 제주도에서 여기까지 왜 쫓아 왔는지.”“너 무슨 짓 했어?”배인호는 고개를 돌려 노성민을 바라보며 물었다.노성민은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깔끔하게 배인호에게 말해주었다.“이우범 씨가 나와 정아가 그날 밤 술집에 간 사진을 노성민 씨한테 보내줬대요. 그것 때문에 우리가 그런 옷을 입은 채 아이들까지 팽개쳤다면서 특별히 이렇게 멀리까지 왔더라고요.”내가 이렇게 요약하자 노성민의 표정이 살짝 당황스러워졌다.배인호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다시 물었다.“사실이야?”“인호 형, 내 말도 틀린 거 아니잖아. 형이 두 사람이 어떻게 입었는지 못 봐서 그래. 나도 예전에 술집을 매일 갔었는데 거기 남자들이 다 어떤 놈들인지 모를 것 같아? 집에 아이들이 몇 명인데 아무리 베이비시터가 있다고 해도 그렇지 그렇게 마음대로 나가서 놀아도 되는 거야?”노성민은 비록 당황하긴 했지만 매우 그럴듯하게 말했다.“내도 봤어.”배인호가 차가운 목소리로 노성민의 말을 끊었다.“어? 봤다고?”노성민은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두 사람이 어떻게 입었는지 내가 봤다고. 그날 나도 거기 있었어.”배인호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쿠션을 주운 뒤 노성민의 품에 세게 던졌다.“너 요즘 계속 야근했다며. 며칠 밤을 새우며 일했다더니 이렇게 시간 내서 두 사람을 혼내러 올 시간은 있었어?”정아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역시 2, 3일 동안 야근을 했으니 노성민의 모습이 거의 쓰러질 것 같은 것도 이해가 되었다.나는 그렇게 매를 버는 말을 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온 노성민
나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배인호가 아이들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다음 순간 배인호의 말은 나를 다시 안도하게 했다.“우범이 집에서 너희 아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겠네. 우씨 가문에서는 예전부터 너희 두 사람 반대했으니까.”“네, 난 상관없어요. 그런 이유라도.”나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배인호는 더 말하지 않고 나를 깊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모든 것을 속속들이 그에게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 정아가 로아를 안고 나오며 나를 불렀다.“지영아, 우리 공주님이 계속 우는데 어떻게 하지?”로아는 작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도록 울고 있었다. 작은 입술을 삐쭉이며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는 모습이 뭔가 억울한 일을 당해서 우는 것 같았다.나는 얼른 달려가서 로아를 안았다. 하지만 요 녀석은 배인호가 온 것을 아는지 눈으로 배인호를 계속 바라보았다. 내 품에서 뒤척이며 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엄마 품이 제일 좋은 거 아닌가? 이제 6개월이 조금 넘은 녀석이 고작 앉는 것을 배울 나이에 벌써 억울한 척하는 법을 배웠다.배인호의 시선이 로아에게로 향하더니 바로 다가와서 손을 뻗어 내 품 안에서 로아를 데려갔다.정아는 눈을 크게 뜨며 그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신기한 장면이 또다시 발생했다. 로아는 배인호의 품에 안기자마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얌전해졌다.“이건... 어이가 없네.”정아는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지 얼굴에 의문이 가득했다. 나는 이해가 되었다. 어쩌면 혈육이 자연스럽게 끌리는지도 모른다...배인호는 로아를 안고 나가 정원을 걸어 다녔다. 나는 방으로 가서 승현이를 안고 나왔다. 이때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오더니 마침 햇볕을 쬘 수 있었다.정원에 흰 의자에 배인호는 로아를 허벅지에 올려놓고 손으로 로아의 작은 팔을 바쳐주자 로아는 겨우 앉을 수 있었다.배인호의 부드러운 손길에 로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저 눈빛이 다른 사람의 아이를 보는 눈빛일 수 있을까
이틀이 지나기도 전에 배인호의 어머니 김미애로부터 전화가 왔다.그녀는 매우 화가 난 말투로 말했다.“지영아, 민설아가 서울에 있었어. 우리 모두 민설아한테 속았어.”나는 마음이 철렁했다. ‘김미애가 어떻게 안 거지?’“아주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내가 물었다.“나 제주도로 돌아왔어. 안 그래도 좀 이상하다고 느꼈어. 평소에 빈이가 얼마나 사람을 따르는데. 내가 잠깐 외출하기만 해도 나한테 전화해서 언제 오냐고 하던 애가 이번에는 나한테 천천히 오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바로 제주도로 돌아왔더니 집에 빈이하고 빈이를 챙겨주는 도우미만 있어. 민설아는 보이지도 않아.”김미애는 점점 더 화를 냈다. 내가 말하지도 전에 그녀는 말을 이었다.“빈이하고 도우미가 민설아를 위해서 출근했다고 거짓말까지 했어. 내가 직접 민설아의 병원에 가보니 병원장이 긴 휴가를 냈다고 하더라니까! 몰래 서울로 가서 도대체 뭘 하는 건지. 절대로 좋은 일은 아닐 거야.”확실히 좋은 일은 아니었다. 민설아는 서울로 와서 이우범을 만났다. 배씨 집안을 공격하는 일에 가담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도 확실한 증거가 없었고 아마 이우범도 나에게 증거를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묵묵히 김미애의 말을 듣고 있었다.그녀의 말이 끝나자 나는 다시 물었다.“아주머니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실 거예요?”“어떻게 처리하긴? 바로 민설아한테 빈이만 남겨두고 배씨 집안에서 나가라고 할 거야. 아이를 자기 도구처럼 사용하는 여자야. 이러다간 아이를 완전히 망쳐버릴 거야.”김미애는 아주 확고하게 말했다.“만약 빈이가 민설아와 떨어지지 않겠다고 하면요?”나는 또 물었다.김미애는 나의 물음에 한숨을 쉬었다.“어휴, 빈이가 민설아와 떨어지지 않아서 그동안 쫓아내지 못한 거야. 안 그러면 진작에 쫓아냈어.”이 문제는 나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김미애가 고민하도록 놔둘 수밖에 없었다.민설아가 서울에 있다는 걸 김미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