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서 아직 돌아오지 않아 집에는 나와 희선 언니밖에 없었다. 두 어른이 아이 셋을 돌보는 건 조금 역부족이었다.다행히도 세 아이 모두 순했다. 단지 가끔 울기 시작하면 그치지를 않았다.정아는 서울로 돌아가서 내게 영통을 걸어 지현이의 얼굴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내게 절대로 노성민이 집에 찾아와서 아이를 데려가지 못하게 해달라고 당부했다.“그래, 걱정하지 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정아는 안심하며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나는 노성민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지는 몰랐다. 정아가 돌아가고 사흘 뒤 그가 찾아왔다. 그가 나타난 것을 보고 나는 바로 문을 막으며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내 아이는요?”노성민은 며칠 동안 제대로 자지도 못했는지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조금 무서워 보이기까지 했다.“정아가 데려갔어요.”나는 표정 변화 없이 간단하게 대답했다.“이제야 아이를 찾는 거예요? 모든 건 성민 씨가 자초한 거예요.”“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내 아이 내놔!”노성민은 짜증을 내며 조바심을 냈다.“지현이 데리고 가지 않은 거 알아요. 우리 집에 가서 부모님하고 한바탕 했는데 지현이는 보이지 않았대요.”노성민은 말을 마친 뒤 집으로 들어오려 했지만 내가 막고 있었다. 다행히 막무가내로 들어오려고 하진 않았지만 내 어깨를 잡았다.“허지영 씨, 정아하고 친한 건 알겠는데 이건 우리 집 일이에요. 너무하다는 생각 안 해요?”“그래요. 노성민 씨 집안일이죠. 하지만 지금 확실하게 알아야 할 건, 여기는 내 집이라는 거예요. 이건 가택침입이라고요.”나는 경고를 날렸다.“계속 이러면 경찰 부를 거예요.”“신고해요. 신고해. 경찰 오면 내 아이 찾아달라고 하면 돼요.”노성민의 머릿속엔 아이밖에 없었다. 그는 나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고 나는 고통이 느껴졌다.사실 아까 희선 언니에게 지현이를 데리고 산책을 다녀오라 했다. 오늘은 무슨 일인지 지현이가 자꾸 울었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서 로아와 승현이를 데리고 있었다.노성민
배인호의 말에 나는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그가 이렇게 옳고 그름을 잘 따지는 편이었나?과거 그가 한 행동들을 생각해 보면 노성민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내가 뭘 잘 못했는데?”노성민은 죽어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자기가 최소연을 특별하게 대한 것은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힘든 사람을 도와주는 좋은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그의 물음에 나는 그를 목 졸라 죽여버리고 싶었다. 만약 정아가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면 두 사람은 아마 또 싸웠을 것이다.“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 차라리 시원하게 정아한테 아이들 다 맡겨요. 그리고 이혼하면 되겠네요. 그러면 이제부터 최소연이든 이소연이든 누굴 만나면서 어떤 관계를 맺어도 상관없을 테니까.”나는 화가 나서 노성민에게 삿대질하며 욕을 퍼부었다.노성민은 아이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또다시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였다.“절대로 안 돼요. 내 아이들이에요. 내가 바람을 피우거나 가정폭력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이혼해도 내가 유책배우자도 아닌데 왜 아이를 줘야 해요?”노성민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나의 마음은 싸늘하게 식었다. 지금 노성민의 말속의 뜻은 아이를 뺏어 가겠다는 것도 모자라서 정아를 잡는 것도 그의 선택지에는 없는 것 같았다.만약 옛날 같았다면 그는 아이를 뺏어가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무조건 정아를 붙잡으려고 할 것이다.“정아를 사랑하긴 해요?”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노성민에게 물었다.지금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어쩌면 노성민이 최소연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가 아니라 그가 아직 정아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인것이다.만약 그가 아직도 정아를 사랑한다면 그는 이 혼인을 깨뜨리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노성민은 나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의 얼굴에 분노가 삽시간에 사라지더니 그저 머뭇거리고 있었다.나는 정아를 대신해 큰 실망감을 느꼈다.배인호도 노성민의 변화를 느꼈는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됐어. 인제 그만 가자.”“나.
이우범은 전화를 끊고 내게 말했다.“병원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할 것 같아.”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우범이 나가는 걸 지켜봤다.“아가씨, 오늘 로아와 승현이 데리고 백신 맞으러 가야 합니다.”장희선이 나와 내게 귀띔했다.“아, 하마터면 깜빡할 뻔했네요. 희선 언니, 집에서 지현이 좀 돌봐줘요. 내가 로아와 승현이 데리고 가면 되니까.”나는 머리를 탁 치며 말했다. 자칫 제일 중요한 일을 까먹을 뻔했다.장희선은 걱정스레 물었다.“아가씨, 혼자 괜찮으시겠어요?”나는 점점 손에 익어 아이를 보살피는 능력이 점점 늘었다. 그만큼 자신감도 생겼다.“괜찮아요. 지현이는 오늘 맞을 필요 없으니까 같이 데려갈 필요 없어요. 희선 언니, 한 가지만 당부드릴게요. 노성민은 절대 들어오면 안 돼요.”나는 백신 접종에 필요한 자료를 챙기며 장희선에게 귀띔했다.장희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알겠습니다.”나는 물건을 챙기고 자료를 손에 들고는 로아와 승현이를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이렇게 혼자 두 아이를 데리고 백신 접종하러 온 건 처음이었다. 출발 전에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병원에 도착하니 조금 허둥지둥했다.주요하게는 접종할 때 로아와 승현이 다 자지러지게 우는 바람에 번걸아 가며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로아야 울지마. 엄마가 안아줄게.”나는 승현이를 달래주고는 다시 로아를 안아주려 했다.하지만 승현이를 내려놓자마자 승현이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다시 기분이 나쁜 듯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나는 유모차를 끌고 병원 로비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베이비!”갑자기 빈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장난감 비행기를 들고 유모차 옆에 서서 누워있는 승현이를 달랬다.“비행기 줄게. 되게 재밌다.”승현이는 빈이의 목소리에 정신이 팔려 더 이상 울지 않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쪽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 빈이는 아주 제때 나타나 좋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그는 장난감을 들고 계속 승현이와 말을
“앗싸! 그럼, 저 아줌마 집에서 게임 해도 돼요?”빈이는 얼굴을 다치긴 했지만 그래도 기뻐서 자리에서 퐁퐁 뛰며 손뼉를 쳤다.배건호와 김미애가 있으니, 민설아도 그를 더 엄격하게 다루느라 전처럼 게임을 하게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여 우리 집에 가서 게임을 할 수 있다니 기대가 커 보였다.나는 이 질문에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를 데리고 병원에서 나와 운전해 집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빈이는 쉬지 않고 로아와 승현이와 재잘거렸다. 빈이는 요즘 한국어가 점점 늘어서 투머치 토커가 되어가고 있었다. 로아와 승현이도 왠지 모르게 빈이가 말하는 걸 듣기 좋아했고 집으로 향하는 길 내내 조용히 들었다.집에 돌아와 유모차를 꺼내 펴고는 로아와 승현이를 눕혔다. 빈이는 얌전하게 옆에서 이를 도왔다.나는 한시름 놓았다. 계속 이렇게 말을 잘 들으면 반나절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저쪽에 장난감 조금 있어. 가지고 놀아.”집에 들어선 나는 거실의 한 코너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장난감들은 다 내가 사전에 산 것이었다. 로아와 승현이는 아직 많이 어리긴 했지만 그래도 나갈 때마다 예쁘고 재밌는 장난감이 있으면 사서 쟁여뒀다. 그러다 크면 가지고 놀아도 된다고 생각했다.빈이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저는 장난감 싫어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장난감 아주 많이 사주셨어요.나는 이따 혼자서 아이 셋을 돌봐야 했고 장희선은 밥을 해야 했기에 나는 빈이와 게임을 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빈이에게 먼저 애니메이션을 보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티브이를 켜고 그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찾아주고는 로아와 승현이의 기저귀를 바꿔주러 갔다.애니메이션을 보는 빈이는 꽤 얌전했다. 가끔 세 동생을 달래주었고 분위기는 꽤 화목했다.밥 먹을 때가 되어서야 나는 문제를 발견했다.“빈이야, 티브이 끄고 이제 밥 먹어야지.”나는 빈이에게 작은 공기로 밥을 떠주며 그를 불렀다.하지만 빈이는 꼼짝달싹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은 채 애니메이션에 집중했다.이때 장희
“마미, 나는...”빈이는 나의 질문하에 말을 꺼내려다 말았다. 바로 전에까지 그렇게 바닥을 뒹굴며 난리를 치더니 민설아가 오자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긴장한 눈빛이었다.민설아는 머리를 숙여 빈이를 쳐다봤다.“마미한테 말해. 얼굴에 난 상처는 어떻게 된 건지, 왜 여기로 온 건지?”빈이는 이 물음에 얼굴이 빨개졌고 덕분에 상처가 더 눈에 띄었다. 전에 한번 약을 발랐기에 배인호는 나에게 약을 발라주라고 하지 않았고 별다른 약을 주지도 않았다.빈이는 긴장해서 땀이 났고 땀은 상처를 더 아프게 했다. 그는 민설아에게 칭얼대기 시작했다.“마미, 얼굴이 너무 아파요. 흑흑...”빈이의 말을 들은 민설아는 아까보다 더 흥분했고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허지영 씨, 빈이가 누군지 잘 알 텐데 유괴한 것도 모자라 다치게 하다니요.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 몰라요?”나는 어이가 없어서 인내심을 잃었다. 바로 반박하려는데 배건호와 김미애가 정원에서 안으로 달려왔다.나는 깜짝 놀랐다. 일이 있어서 세종시로 돌아갔다고 했던 사람들이 지금 우리 집에 나타났다.“아이고, 빈아.”빈이를 본 김미애가 황급히 달려와 꼭 끌어안았다.“할아버지, 할머니!”배건호와 김미애를 본 빈이는 기뻐서 얼굴이 밝아졌다.배건호도 앞으로 다가가 빈이를 안더니 빈이 얼굴에 난 상처를 걱정하면서 마음 아파했다.“어쩌다 이렇게 심하게 다친 거야? 아파? 약은 발랐어?”빈이는 배건호의 목을 끌어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습이 퍽 억울해 보였다.이때 민설아가 입을 열었다.“아저씨, 아주머니, 먼저 빈이 데리고 돌아가세요. 빈이가 왜 여기로 와서 다치기까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병원 가서 검사해야 할 거 같아요.”“말은 똑바로 해요. 빈이가 다친 건 스케이트보드 타다가 자기가 다친 거예요. 병원에서 인호 씨 마주쳤는데 민 선생님은 오늘 면접 있고 자기는 중요한 회의 있다면서 일단 좀 돌봐달라고 한 거고요.”나는 짜증이 날 대로 나서 바로 핸드폰을 꺼내 배인호에게 전화를 걸
“내가 말했죠. 빈이가 혼자 다친 거라고. 인호 씨가 병원에 약 가지러 갔다가 나와 우연히 마주쳐서 임시로 내게 맡긴 거예요. 인호 씨 오늘 중요한 회의 있는지 몰랐어요?”나는 문제를 다시 민설아에게 던졌다. “나도 알고 있는 걸 민 선생님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요?”민설아가 모른다고 대답한다면 그녀와 배인호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거다.배건호와 김미애 앞에서 민설아는 이를 인정할 리가 없다. 몰라도 알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민설아는 빠르게 대답했다.“당연히 알고 있죠. 근데 나는 인호 씨가 허지영 씨에게 아이를 맡겼다는 건 못 믿겠어요.”“못 믿을 게 뭐가 있어?”김미애는 계속 나를 감쌌다.“오늘 나와 빈이 할아버지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가려고 하다가 집에 사람이 없으니 믿을만한 사람을 찾다가 서로 알고 지내는 지영이가 좋아서 시름 놓고 맡긴 거야.”민설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녀는 배건호와 김미애가 이 정도로 나를 감싸고 돌지 몰랐다. 빈이의 안전과 관계된 일에서도 배건호와 김미애는 나를 믿는 걸 선택했다.하지만 민설아는 이 일에서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아무튼 빈이는 내가 낳고 내가 홀로 키운 내 아이예요. 내 목숨과도 같은 존재인데 나도 이럴 수밖에 없어요. 이번 일은 내가 알아서 밝혀낼 거예요.”민설아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허지영 씨, 켕기는 게 없다면 왜 내가 신고하는 걸 두려워한 거죠?”나는 그녀의 의식이 흐름이 참 신기했다. 결국엔 신고해서 나를 못살게 굴려는 거였다.“빈이야, 할머니한테 말해 봐.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김미애가 갑자기 엄격하게 빈이를 추궁하기 시작했다.빈이는 김미애의 엄숙한 표정에 켕기는 듯 머리를 숙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아빠는 일하러 갔어요...”“그럼, 얼굴에 난 상처는 어떻게 된 거야? 빈이는 착하니까 거짓말하면 안 돼.”김미애가 다시 물었다.빈이가 입을 삐죽거리더니 무서운 듯 자기도 모르게 긴장한 눈빛으로 민설아를 쳐다봤다
“감방?”배인호는 내 말뜻을 잘 못 알아들은 것 같았다.아까 여기서 일어난 일도 잘 모르는 눈치였다.나는 민설아가 빈이를 찾으러 와서 신고까지 한 일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그의 안색도 점점 어두워졌다.“아무튼 큰일 해줬으니까 우리 거래는 여기서 끝이에요.”나는 이제 가라고 손짓했다.“돌아가서 민설아 씨한테 잘 설명해 봐요. 오해하게 하지 말고.”“너 전화했을 때 나 회의 중이어서 못 들었어.”배인호는 내 말을 못 들은 것처럼 오히려 내게 설명했다.그가 바쁜 건 나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한번 일하면 내가 거의 죽는다고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나는 진작부터 이런 상태에 적응했지만, 민설아는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이 문제는 민설아 씨한테 설명해요. 민설아 씨도 전화했는데 연락이 안 돼서 그런 오해가 생긴 거예요.”나는 좋은 마음에 귀띔했다.“설아한테 설명할 필요 없어. 나만 자초지종을 알고 있으면 돼.”배인호의 태도는 너무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이 일을 신경 쓰는 것도 아니면서 왜 나를 찾아왔는지 의문이었다.지현이는 거실에서 내가 분유를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배인호에게 지현이가 여기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아이의 울음소리가 거실에서부터 전해졌다. 나는 이 이유를 핑계로 말했다.“다른 일 없으면 나는 분유 주러 가볼게요. 이만 가봐요.”“응.”배인호가 이렇게 말하더니 몸을 돌려 가려고 했다.거실로 돌아온 나는 깜짝 놀랐다. 지현이는 무슨 원인인지 모르게 토했고 토사물이 코에 들어가 고통스러움에 얼굴이 빨개 있었다.나는 재빨리 지현이를 안아 입과 코에 묻은 오물을 닦아냈다. 하지만 지현이는 여전히 불편해 보였고 다시 토하기 시작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아직 분유를 먹이기 전이라 분유 때문에 사레가 들려서 토한 건 아닐 텐데.’장희선도 소리를 듣고는 달려 나왔다. 그녀는 나보다는 경험이 많은지라 단번에 지현이의 위장에 문제가 생겼음을 인지하고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로아와 승현이는 아직 자고
“네가 높이 사든 말든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으로 바꿔.”배인호는 인정사정없이 다시 거절했다.노성민은 침묵을 지키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대답했다.“오케이, 알았어.”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다.불안하던 내 마음도 따라서 놓였다. 배인호가 노성민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지금 바로 옆에 내가 지현이를 안고 앉아있는데 말이다.하지만 나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저 품속에 안은 아이를 더 꼭 끌어안았다. 가는 길 내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정아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정아더러 결정하라고 할까도 생각했다.“도착했어.”집 앞에 도착하자 배인호는 그저 이렇게 말할 뿐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네, 오늘 고마웠어요.”나는 지현이를 안고 차에서 내리며 인사했다.배인호는 차창을 통해 품에 안은 지현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는 나를 몹시 긴장하게 했다. 아까 말하지 않았다 해서 이후에도 말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가면서 바로 노성민에게 알려줄 수도 있다.나는 이런 불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고 배인호의 차도 집 앞을 떠났다.장희선은 아이의 상황을 물었다. 나는 약을 어떻게 먹여야 하는지 알려주고는 로아와 승현이를 보러 갔다. 둘은 얌전하게 잘 놀고 있었다. 웅얼대는 것 외에 작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백지장처럼 단순하고 귀여웠다.이 아이들만 보면 나빴던 기분도 좋아졌다. 아이들만 내 옆에 있으면 모든 것이 희망찼다.——나는 지현이가 우리 집에 있다는 걸 배인호가 알게 되었다고 정아에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정아가 알게 되면 그쪽에서 하는 일을 영향 줄까 봐 걱정됐다.며칠 속을 졸였는데도 노성민은 집으로 쳐들어오지 않았다. 그러자 내 마음도 천천히 놓이기 시작했고 이 일을 까맣게 잊어먹었다.“아가씨, 로아와 승현이 데리고 바람 좀 쐬고 올게요.”저녁이 되어 식사를 하고 장희선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유모차를 끌고 나와 내게 인사했다.“그래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현이가 사람들 눈에 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