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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1화 빈이를 돌보다

작가: 배나영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이우범은 전화를 끊고 내게 말했다.

“병원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할 것 같아.”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우범이 나가는 걸 지켜봤다.

“아가씨, 오늘 로아와 승현이 데리고 백신 맞으러 가야 합니다.”

장희선이 나와 내게 귀띔했다.

“아, 하마터면 깜빡할 뻔했네요. 희선 언니, 집에서 지현이 좀 돌봐줘요. 내가 로아와 승현이 데리고 가면 되니까.”

나는 머리를 탁 치며 말했다. 자칫 제일 중요한 일을 까먹을 뻔했다.

장희선은 걱정스레 물었다.

“아가씨, 혼자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점점 손에 익어 아이를 보살피는 능력이 점점 늘었다. 그만큼 자신감도 생겼다.

“괜찮아요. 지현이는 오늘 맞을 필요 없으니까 같이 데려갈 필요 없어요. 희선 언니, 한 가지만 당부드릴게요. 노성민은 절대 들어오면 안 돼요.”

나는 백신 접종에 필요한 자료를 챙기며 장희선에게 귀띔했다.

장희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나는 물건을 챙기고 자료를 손에 들고는 로아와 승현이를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렇게 혼자 두 아이를 데리고 백신 접종하러 온 건 처음이었다. 출발 전에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병원에 도착하니 조금 허둥지둥했다.

주요하게는 접종할 때 로아와 승현이 다 자지러지게 우는 바람에 번걸아 가며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

“로아야 울지마. 엄마가 안아줄게.”

나는 승현이를 달래주고는 다시 로아를 안아주려 했다.

하지만 승현이를 내려놓자마자 승현이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다시 기분이 나쁜 듯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유모차를 끌고 병원 로비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베이비!”

갑자기 빈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장난감 비행기를 들고 유모차 옆에 서서 누워있는 승현이를 달랬다.

“비행기 줄게. 되게 재밌다.”

승현이는 빈이의 목소리에 정신이 팔려 더 이상 울지 않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 빈이는 아주 제때 나타나 좋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는 장난감을 들고 계속 승현이와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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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싸! 그럼, 저 아줌마 집에서 게임 해도 돼요?”빈이는 얼굴을 다치긴 했지만 그래도 기뻐서 자리에서 퐁퐁 뛰며 손뼉를 쳤다.배건호와 김미애가 있으니, 민설아도 그를 더 엄격하게 다루느라 전처럼 게임을 하게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여 우리 집에 가서 게임을 할 수 있다니 기대가 커 보였다.나는 이 질문에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를 데리고 병원에서 나와 운전해 집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빈이는 쉬지 않고 로아와 승현이와 재잘거렸다. 빈이는 요즘 한국어가 점점 늘어서 투머치 토커가 되어가고 있었다. 로아와 승현이도 왠지 모르게 빈이가 말하는 걸 듣기 좋아했고 집으로 향하는 길 내내 조용히 들었다.집에 돌아와 유모차를 꺼내 펴고는 로아와 승현이를 눕혔다. 빈이는 얌전하게 옆에서 이를 도왔다.나는 한시름 놓았다. 계속 이렇게 말을 잘 들으면 반나절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저쪽에 장난감 조금 있어. 가지고 놀아.”집에 들어선 나는 거실의 한 코너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장난감들은 다 내가 사전에 산 것이었다. 로아와 승현이는 아직 많이 어리긴 했지만 그래도 나갈 때마다 예쁘고 재밌는 장난감이 있으면 사서 쟁여뒀다. 그러다 크면 가지고 놀아도 된다고 생각했다.빈이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저는 장난감 싫어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장난감 아주 많이 사주셨어요.나는 이따 혼자서 아이 셋을 돌봐야 했고 장희선은 밥을 해야 했기에 나는 빈이와 게임을 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빈이에게 먼저 애니메이션을 보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티브이를 켜고 그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찾아주고는 로아와 승현이의 기저귀를 바꿔주러 갔다.애니메이션을 보는 빈이는 꽤 얌전했다. 가끔 세 동생을 달래주었고 분위기는 꽤 화목했다.밥 먹을 때가 되어서야 나는 문제를 발견했다.“빈이야, 티브이 끄고 이제 밥 먹어야지.”나는 빈이에게 작은 공기로 밥을 떠주며 그를 불렀다.하지만 빈이는 꼼짝달싹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은 채 애니메이션에 집중했다.이때 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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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미, 나는...”빈이는 나의 질문하에 말을 꺼내려다 말았다. 바로 전에까지 그렇게 바닥을 뒹굴며 난리를 치더니 민설아가 오자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긴장한 눈빛이었다.민설아는 머리를 숙여 빈이를 쳐다봤다.“마미한테 말해. 얼굴에 난 상처는 어떻게 된 건지, 왜 여기로 온 건지?”빈이는 이 물음에 얼굴이 빨개졌고 덕분에 상처가 더 눈에 띄었다. 전에 한번 약을 발랐기에 배인호는 나에게 약을 발라주라고 하지 않았고 별다른 약을 주지도 않았다.빈이는 긴장해서 땀이 났고 땀은 상처를 더 아프게 했다. 그는 민설아에게 칭얼대기 시작했다.“마미, 얼굴이 너무 아파요. 흑흑...”빈이의 말을 들은 민설아는 아까보다 더 흥분했고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허지영 씨, 빈이가 누군지 잘 알 텐데 유괴한 것도 모자라 다치게 하다니요.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 몰라요?”나는 어이가 없어서 인내심을 잃었다. 바로 반박하려는데 배건호와 김미애가 정원에서 안으로 달려왔다.나는 깜짝 놀랐다. 일이 있어서 세종시로 돌아갔다고 했던 사람들이 지금 우리 집에 나타났다.“아이고, 빈아.”빈이를 본 김미애가 황급히 달려와 꼭 끌어안았다.“할아버지, 할머니!”배건호와 김미애를 본 빈이는 기뻐서 얼굴이 밝아졌다.배건호도 앞으로 다가가 빈이를 안더니 빈이 얼굴에 난 상처를 걱정하면서 마음 아파했다.“어쩌다 이렇게 심하게 다친 거야? 아파? 약은 발랐어?”빈이는 배건호의 목을 끌어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습이 퍽 억울해 보였다.이때 민설아가 입을 열었다.“아저씨, 아주머니, 먼저 빈이 데리고 돌아가세요. 빈이가 왜 여기로 와서 다치기까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병원 가서 검사해야 할 거 같아요.”“말은 똑바로 해요. 빈이가 다친 건 스케이트보드 타다가 자기가 다친 거예요. 병원에서 인호 씨 마주쳤는데 민 선생님은 오늘 면접 있고 자기는 중요한 회의 있다면서 일단 좀 돌봐달라고 한 거고요.”나는 짜증이 날 대로 나서 바로 핸드폰을 꺼내 배인호에게 전화를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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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말했죠. 빈이가 혼자 다친 거라고. 인호 씨가 병원에 약 가지러 갔다가 나와 우연히 마주쳐서 임시로 내게 맡긴 거예요. 인호 씨 오늘 중요한 회의 있는지 몰랐어요?”나는 문제를 다시 민설아에게 던졌다. “나도 알고 있는 걸 민 선생님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요?”민설아가 모른다고 대답한다면 그녀와 배인호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거다.배건호와 김미애 앞에서 민설아는 이를 인정할 리가 없다. 몰라도 알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민설아는 빠르게 대답했다.“당연히 알고 있죠. 근데 나는 인호 씨가 허지영 씨에게 아이를 맡겼다는 건 못 믿겠어요.”“못 믿을 게 뭐가 있어?”김미애는 계속 나를 감쌌다.“오늘 나와 빈이 할아버지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가려고 하다가 집에 사람이 없으니 믿을만한 사람을 찾다가 서로 알고 지내는 지영이가 좋아서 시름 놓고 맡긴 거야.”민설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녀는 배건호와 김미애가 이 정도로 나를 감싸고 돌지 몰랐다. 빈이의 안전과 관계된 일에서도 배건호와 김미애는 나를 믿는 걸 선택했다.하지만 민설아는 이 일에서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아무튼 빈이는 내가 낳고 내가 홀로 키운 내 아이예요. 내 목숨과도 같은 존재인데 나도 이럴 수밖에 없어요. 이번 일은 내가 알아서 밝혀낼 거예요.”민설아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허지영 씨, 켕기는 게 없다면 왜 내가 신고하는 걸 두려워한 거죠?”나는 그녀의 의식이 흐름이 참 신기했다. 결국엔 신고해서 나를 못살게 굴려는 거였다.“빈이야, 할머니한테 말해 봐.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김미애가 갑자기 엄격하게 빈이를 추궁하기 시작했다.빈이는 김미애의 엄숙한 표정에 켕기는 듯 머리를 숙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아빠는 일하러 갔어요...”“그럼, 얼굴에 난 상처는 어떻게 된 거야? 빈이는 착하니까 거짓말하면 안 돼.”김미애가 다시 물었다.빈이가 입을 삐죽거리더니 무서운 듯 자기도 모르게 긴장한 눈빛으로 민설아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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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방?”배인호는 내 말뜻을 잘 못 알아들은 것 같았다.아까 여기서 일어난 일도 잘 모르는 눈치였다.나는 민설아가 빈이를 찾으러 와서 신고까지 한 일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그의 안색도 점점 어두워졌다.“아무튼 큰일 해줬으니까 우리 거래는 여기서 끝이에요.”나는 이제 가라고 손짓했다.“돌아가서 민설아 씨한테 잘 설명해 봐요. 오해하게 하지 말고.”“너 전화했을 때 나 회의 중이어서 못 들었어.”배인호는 내 말을 못 들은 것처럼 오히려 내게 설명했다.그가 바쁜 건 나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한번 일하면 내가 거의 죽는다고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나는 진작부터 이런 상태에 적응했지만, 민설아는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이 문제는 민설아 씨한테 설명해요. 민설아 씨도 전화했는데 연락이 안 돼서 그런 오해가 생긴 거예요.”나는 좋은 마음에 귀띔했다.“설아한테 설명할 필요 없어. 나만 자초지종을 알고 있으면 돼.”배인호의 태도는 너무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이 일을 신경 쓰는 것도 아니면서 왜 나를 찾아왔는지 의문이었다.지현이는 거실에서 내가 분유를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배인호에게 지현이가 여기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아이의 울음소리가 거실에서부터 전해졌다. 나는 이 이유를 핑계로 말했다.“다른 일 없으면 나는 분유 주러 가볼게요. 이만 가봐요.”“응.”배인호가 이렇게 말하더니 몸을 돌려 가려고 했다.거실로 돌아온 나는 깜짝 놀랐다. 지현이는 무슨 원인인지 모르게 토했고 토사물이 코에 들어가 고통스러움에 얼굴이 빨개 있었다.나는 재빨리 지현이를 안아 입과 코에 묻은 오물을 닦아냈다. 하지만 지현이는 여전히 불편해 보였고 다시 토하기 시작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아직 분유를 먹이기 전이라 분유 때문에 사레가 들려서 토한 건 아닐 텐데.’장희선도 소리를 듣고는 달려 나왔다. 그녀는 나보다는 경험이 많은지라 단번에 지현이의 위장에 문제가 생겼음을 인지하고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로아와 승현이는 아직 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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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높이 사든 말든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으로 바꿔.”배인호는 인정사정없이 다시 거절했다.노성민은 침묵을 지키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대답했다.“오케이, 알았어.”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다.불안하던 내 마음도 따라서 놓였다. 배인호가 노성민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지금 바로 옆에 내가 지현이를 안고 앉아있는데 말이다.하지만 나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저 품속에 안은 아이를 더 꼭 끌어안았다. 가는 길 내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정아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정아더러 결정하라고 할까도 생각했다.“도착했어.”집 앞에 도착하자 배인호는 그저 이렇게 말할 뿐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네, 오늘 고마웠어요.”나는 지현이를 안고 차에서 내리며 인사했다.배인호는 차창을 통해 품에 안은 지현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는 나를 몹시 긴장하게 했다. 아까 말하지 않았다 해서 이후에도 말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가면서 바로 노성민에게 알려줄 수도 있다.나는 이런 불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고 배인호의 차도 집 앞을 떠났다.장희선은 아이의 상황을 물었다. 나는 약을 어떻게 먹여야 하는지 알려주고는 로아와 승현이를 보러 갔다. 둘은 얌전하게 잘 놀고 있었다. 웅얼대는 것 외에 작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백지장처럼 단순하고 귀여웠다.이 아이들만 보면 나빴던 기분도 좋아졌다. 아이들만 내 옆에 있으면 모든 것이 희망찼다.——나는 지현이가 우리 집에 있다는 걸 배인호가 알게 되었다고 정아에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정아가 알게 되면 그쪽에서 하는 일을 영향 줄까 봐 걱정됐다.며칠 속을 졸였는데도 노성민은 집으로 쳐들어오지 않았다. 그러자 내 마음도 천천히 놓이기 시작했고 이 일을 까맣게 잊어먹었다.“아가씨, 로아와 승현이 데리고 바람 좀 쐬고 올게요.”저녁이 되어 식사를 하고 장희선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유모차를 끌고 나와 내게 인사했다.“그래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현이가 사람들 눈에 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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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아가 그러라고 시킨 거죠? 맞죠?”결국 노성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말투에는 정아에 대한 불만이 담겨 있었다.나는 그저 이 상황이 애처로울 뿐이었다.“노성민 씨, 정아가 뭘 잘못했는데요? 최소연보다 못한 게 뭐죠? 그 정도로 불만을 느낄 만큼 그 여자가 좋은 거예요?”노성민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제가 말했을 텐데요. 최소연과 아무 일도 없었다고. 근거 없이 날 의심한 건 당신들이에요. 있지도 않은 일 가지고 이렇게 난리를 치는 데 계속 참고만 있으라고요?”“그럼, 전에 최소연 씨 없을 때는 왜 그렇게 잘 참았어요? 정아가 어떻든 다 받아줬잖아요. 네, 맞아요. 최소연과 실질적인 관계가 생긴 건 아니죠. 근데 최소연이 나타남으로써 정아에 대한 인내심이 대폭 줄어든 건 맞잖아요.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해요?”나는 언성을 높이며 계속 캐물었다. 눈빛은 노성민에 대한 질책과 차가움으로 가득했다.노성민이 이를 악물었다.“이런 소리 하려고 여기 온 거 아니에요. 지현이 내놓지 않으면 신고할 거예요.”또 신고라니, 며칠 전 민설아도 나를 아동 유괴범이라고 신고하겠다 그랬는데 노성민도 신고한다면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진짜 경찰에게 유괴범으로 의심받을 것이다.“성민 씨, 진짜 정아와 이혼하고 싶은 거예요?”나는 노성민의 말을 무시하고 내가 궁금했던 걸 물어봤다.이 일에 대한 노성민의 태도는 명확했다.“아니요. 이혼하고 싶은 건 내가 아니라 정아에요. 저는 그냥 정아가 이렇게 근거 없이 억지 부리는 걸 못 참겠다는 거고요.”이혼하고 싶지 않다는 걸 봐서는 노성민은 아직 이 결혼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다.나는 마음속으로 몰래 한시름 놓았다. 만약 노성민이 이런 명확한 문제에서 주저한다면 나는 진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혼하고 싶지 않다면 일단 최소연 씨부터 해결해요. 지금 이미 홀려 있어요. 알아요?”나는 일부러 천천히 인내심 있게 그를 타이르기 시작했다.“정아는 너무 성민 씨를 소중히 여기니까 최소연 씨와의 일을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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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됨됨이가 어떻다는 게 아니라 당신과 성민 씨 관계가 있으니까 성민 씨에게 알려주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일로 당신 원망할 생각도, 책임지라고 할 생각도 없었다고요. 이제 알겠어요?”나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설명했다.“문부터 열어.”배인호는 이렇게 문을 사이에 두고 나와 대화하는 게 만족스럽지 않은지 문을 두드리며 엄격한 말투로 말했다.“성민이가 정원 문 부쉈다면서, 거실 문도 망가지고 싶으면 그러든지.”이건 협박이었다.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협박은 안 통해요. 자꾸만 이렇게 찾아오는 거 민설아 씨도 받아들인다면 계속 내키는 대로 해요. 근데 또 빈이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지면 그때 가서 내 탓 하지 마요.배인호가 나를 협박하면 나도 그를 협박하면 된다. 민설아에게는 책임감만 느낄 수 있지만 빈이는 아닐 수도 있었다.내가 민설아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면 민설아는 무조건 난리를 피우지 않으면 바로 빈이를 데리고 떠날 수도 있다.내 협박이 먹혔는지 배인호도 조용해졌다.2, 3분쯤 지나자 나는 배인호가 간 줄 알고 문을 열어 상황을 확인했다. 그 결과 문을 열자마자 아직도 문 앞에 서 있는 배인호를 발견했다. 누가 돈이라도 뜯어간 것처럼 어두운 표정이었다.나는 깜짝 놀라서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아직도 안 갔어요?”“이제는 설아와 빈이를 가지고 나를 협박하네? 허지영, 간덩이가 부었지? 갈 데까지 가보자는 거야?”배인호가 입을 열더니 매서운 말투로 말했다.이쯤이면 장희선도 지현이 샤워를 거의 끝낼 시간이었다. 나는 아예 밖으로 나가 문을 닫고는 말했다.“가요. 밖에서 얘기해요. 애들 잘 시간이라 떠들면 안 돼요.”배인호는 거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앞장서서 장렬히 희생된 우리 집 대문을 넘어 밖으로 향했다.나는 배인호 뒤를 따라 근처 큰 가로수 아래까지 걸어갔다. 거기에는 벤치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평소 사람들이 앉아서 쉬기도 했다. 나는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배인호는 앉지 않고 옆에 서 있었다. 가벼우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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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지영은 이우범이 진심으로 배인호에게 말하는 것을 들어서야 마음 깊이 있던 궁금증이 드디어 풀렸다.그녀는 이것이 배인호와 이우범이 화해하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역시 배인호의 얼굴은 점점 더 편안해져 갔다. 잠깐의 침묵이 있었던 뒤 배인호도 말했다.“그래, 우리도 영원한 친구야.” 그는 말을 끝낸 후에 허지영을 바라보았다. 허지영은 그의 행동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인호는 이 순간이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손에 넣고 우정도 되찾은 진정한 승리자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전화를 끊은 후, 배인호는 두 팔을 벌렸고 허지영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품에 안겼다. 그들은 서로를 꽉 껴안았다. 빈이가 로아와 승현을 데리고 이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아빠한테 책 좀 읽어달라고 해줘요~”로아가 낮은 목소리로 빈이를 재촉하였다.세 사람은 잠을 오지 않아서 내려가 배인호더러 그들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하려고 했다.그런데 세 사람은 내려오자마자 아빠와 엄마가 행복하게 안고 있는 것을 보자 조금은 부끄러워졌다.로아와 승현 두 아이는 너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을 감출 수 없었고 빈이는 어른이 다 되였기 때문에 괜찮았다.“유니콘, 유니콘!”승현는 유니콘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계속 떠오르고 있었다. 배인호가 유니콘의 이야기를 승현에게 들려준 후부터 승현은 노래를 들을 때도《유니콘》만 듣고 싶어 했다.두 어린이는 빈이를 양쪽에서 감쌌고 포동포동한 손으로 그의 소매를 잡으며 기대로 가득 찬 큰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로아와 승현은 나이는 어리지만 똑똑해서 아빠와 엄마가 포옹하고 있을 때는 방해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그들보다 많은 빈이는 방해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빈이가 주저하고 있을 때 로아의 간절한 눈빛에 빈이는 말했다.“내가 너희들에게 책을 읽어주면 어때?”“형은 못 해! 못 해!”승현이가 거절했다. 왜냐하면 형한테 유니콘을 불러달라 했을 때 음정이 하나도 맞지 않아서였다.로아도 그렇

  • 이번생은 반드시 해피엔딩   제692화 그냥 친구일뿐

    허지영은 자기 앞에 무릎을 꿇은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이것은 그녀가 오랫동안 사치하게 그리던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일을 겪은 후에야 이룰 수 있었다.그녀의 눈시울도 붉어졌고 마침내 그녀는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요.”사람들은 열렬한 박수를 터뜨렸다. 모두 이 부부의 재결합을 기뻐했지만 아무도 인파 뒤에서 한 남자가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그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는 배인호가 반지를 허지영의 손가락에 끼우는 것을 보고 나서야 묵묵히 자리를 떠났다.그는 저택을 떠나 차에 올랐고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으며 차갑고 마른 얼굴을 드러냈다.이우범은 원래 해외에 있어야 했지만 참지 못하고 결국 배인호와 허지영의 결혼식에 참석했고 오늘의 입장권도 박준이 그를 위해 비밀리로 얻어 주었다.이제 허지영이 행복을 찾았음을 직접 보았으니 이우범은 안심하고 떠날 수 있었다.이우범이 막 차를 몰고 떠나려고 할 때, 박준이 어느새 따라 나와 차 앞에 막아 섰다.“이우범, 왜 벌써 가려고?”다른 사람들은 이우범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박준은 그가 올때부터 알아 보았다.박준은 이우범이 아직 허지영을 놓지 못했고 분명히 그녀의 결혼식에 몰래 참석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넌 왜 나왔어?”이우범은 박준을 보고 조금 놀랐다.“내가 안 나오면, 너는 이렇게 가버릴 거잖아. 배인호는 안 보면 그만이지, 나와 노성민도 안 볼 거니?”박준은 화가 내면서 말했다.박준은 이우범이 지난 몇 년 동안 항상 해외에 머무르고 있어 국내 친구들과의 연락이 매우 뜸했고 이번에 어쩌다 한 번 돌아왔는데 그들과 밥 먹고 술 한 잔 안 하고 허지영만 보러 온 거에 서운해했다.“나 공항에 가봐야 해.”이우범은 약간의 미안함은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우범은 하루도 여기서 보낼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저녁에 같이 밥 먹고 가. 지금 떠나면 너랑 나 친구로 끝이야. 알겠어?”박준은 협박하듯 말했다.이우범은 어쩔 줄 몰

  • 이번생은 반드시 해피엔딩   제691화 나랑 결혼해줄래?

    박정아의 말에 허지영, 오세희, 이민정은 적극 찬성했다.다른 사람과 또 식을 올린다면 쪽팔리겠지만 같은 사람과 두번 식을 올리는 건 무엇을 설명할까? 그들이야 말로 찐 사랑인 것이다.——두 달 뒤.배인호와 허지영의 결혼식은 준비가 거의 되어가고 있었다. 결혼식의 사치와 호화로움은 무수한 감탄과 부러움을 불러일으켰다. 허지영은 천만 원 가치의 수제 웨딩드레스를 입었을때 기묘한 감정이 들었다.허지영은 처음 배인호한테 시집갈 때를 떠올렸다.그때 허지영은 자기가 직접 고른 웨딩드레스를 입었고 지금 사치스로운 드레스와 비교도 안 됐다. 그때의 배인호는 결혼식은 하나의 미션 수행처럼 모든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그 후 몇 년이 지나고 그들은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허지영은 웨딩 드레스 위에 박힌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가볍게 만졌고 그 순간 그녀는 찬란한 태양빛 처럼 화려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박정아를 포함한 친한 친구들은 연속 감탄했다.박정아는 허지영 주위를 돌면서 기쁨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말했다. “영아, 정말 예쁘다. 몇 년 동안 방황하더니 결국 네가 원하는 행복을 얻게 되었네.”“맞아, 나도 너의 용기에 감탄해. 다행히 배인호도 정말로 많이 변한 거 같애.”오세희도 연속 감탄했다. 이민정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개과천선했으니 앞으로도 쭉 그럴 거야. 너를 또 상처 입힐 일이 있으면 우리 몇 명이 가만두지 않을 거야!”이때, 허지영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다가왔다. 두 사람은 아름다운 딸을 바라보며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허지영은 그들이 가장 아끼는 보물같은 존재였고 그녀는 감정적인 고통을 겪은 후에야 재혼이라는 결정을 내렀다. 처음에 부모님은 반대했지만 지금 받아들이기까지 수많은 과정이 있었다.하지만 이 순간, 허지영이 행복해 보이자 그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아빠, 엄마.”허지영은 부모님이 오자 이상하게 코가 찡해진 듯했다. 아마도 그들의 힘든 모습을 보다가 이렇게 뿌듯해하는 모습을

  • 이번생은 반드시 해피엔딩   제690화 이번 생은 너 하나뿐

    허지영은 배인호와 다른 여자의 스캔들을 폭로한 댓글을 보니 마음이 철렁 거렸다. 허지영은 일어서서 배인호와 아버지 쪽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은 바둑을 두고 있었고 경기는 아주 치열했다. 허지영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배인호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면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허지영도 따라서 웃었다. 허지영은 스캔들에 대해 바로 묻지 않고 옆에 의자를 두고 앉아 조용히 두 사람이 바둑을 두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핸드폰 화면에는 배인호와 한 여자 연예인 간의 스캔들이 적힌 댓글이 고스란히 써져 있었다. 배인호는 허지영의 아버지와 바둑 한 판을 두고 난 뒤, 눈길은 자연스럽게 허지영의 핸드폰이 자기의 앞에 놓여져 있는 것을 보았고 화면이 꺼지려 하면 허지영이 화면을 다시 켜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화면에 적힌 그 말은 무슨 뜻이지?’배인호는 허지영의 휴대전화를 가져와 댓글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순간, 바둑을 계속 두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그와 허지영의 재혼을 많은 사람들이 좋게 보지 않았으며 이미 준비 중인 결혼식도 성사되지 못할 것이라는 의심이 가득하였다.‘결혼식이 엄청 화려해서 준비시간이 조금 오래 걸린 것 뿐인데 이게 무슨... 그리고 나와 한 여자 연예인이 하룻밤을 같이 보낸 스캔들이라고?’그날 밤에는 최소 일곱-여덟 명의 사람이 있었고 남자 여자 다 있었다. 주로 투자에 관한 이야기하다가 여자들이 떠나고 남은 몇 명의 남자들이 룸에서 잠을 잔 것이다. ‘언론은 이렇게 근거 없이 아무렇게나 사건의 앞뒤도 맞지 않는 헛소리를 늘어놓다니...’배인호는 허지영의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아버지, 좀 이따 다시 바둑을 둬도 괜찮을까요? 지금 급하게 좀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겼어요.”허지영의 아버지는 자초지종을 모르고 배인호의 말에 급한 일이겠거니 생각하고 동의했다. 그러고 나서 허지영의 아버지는 허지영의 어머니를 도와주러 주방으로 향했다.허지영의 아버지가 나가자마자 배인호는 바로 허지영의 손을 붙잡았다. 얼굴에는 억울함이 가득

  • 이번생은 반드시 해피엔딩   제689화 또다시 스캔들

    거절당한 후, 배인호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마치 모든 욕망을 내뱉으려는 듯했다.허지영은 이불을 감싸안고, 배인호와 사이에 안전한 구역을 만든 다음, 다시 잠을 이루려 했다.“여보, 벌써 자정이 넘었어.”겨우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약간 쉰 듯한 배인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허지영이 방금 잠에서 깨어나려는 찰나, 어느새 안전 구역을 넘어온 손이 허지영을 강하게 끌어당겨, 뜨거운 품에 꼭 안았다.“뭐 하는 거예요? 배인호 씨, 당신...”허지영이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입술이 막혔다. 겨우 의식을 회복했지만 뜨거운 키스 때문에 다시 정신이 흐릿해졌다. 허지영은 저항을 포기했다. 오늘 밤은 편하게 지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정오가 되어서야, 허지영은 온몸이 녹아내린 듯한 느낌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주변을 돌아보자 배인호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샤워를 한 후, 허지영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배인호를 발견했다.그리고 노성민과 박성아는 언제 왔는지 모르게 도착해, 세 아이를 데리고 왔다. 그 시간에 노 씨 집에 세 아이는 허지영의 세 아이와 노는 중이어서, 거실은 매우 활기찼다.박성아가 머리를 들어 계단에서 내려오는 허지영을 보고 말했다. “아이고, 지영아, 너 드디어 내려왔네. 재결합해서 기쁜 건 알겠지만, 몸조심해야 해!”허지영은 박성아를 쏘아보며, 얼굴에 부끄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신의 옷깃을 조금 더 높이 당겼다. 그렇지 않으면 어젯밤 남은 흔적이 들킬 수 있다.그들은 다 같이 식사했다. 식사 도중, 박성아가 민설아의 일을 언급했다. “그래, 민설아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매우 뛰어난 변호사를 고용했어. 이 여자 정말 죽을 쑤고 있어, 지금도 판을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자신이 감옥에 안 가고 바로 무죄로 풀려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민설아의 이름을 듣고, 허지영은 본능적으로 배인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배인호는 로아와 승현, 두 아이에게 옥수수알을 까주는 데 집중하고 있어, 박성아의 말은 아예 듣

  • 이번생은 반드시 해피엔딩   제688화 악몽에 시달리다.

    허지영은 병원으로 옮겨진 후 응급처치를 했다.허지영의 부모님은 거듭 의사에게 수술의 가능 여부 혹은 새로운 치료 방법으로 딸의 이 짧은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는지 묻고 있었다.그러나 그들이 얻은 대답은 모두 절망적인 것이었다.병상 앞에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부모님은 마치 하룻밤 사이에 10살이나 더 늙은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병상에 누워있는 딸을 보며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졌다.“영아, 우리 놀라게 하지 말아줘. 빨리 깨어나, 강하게 버텨줘..”“우리는 다 널 응원할 거야. 네가 끈질기게 살아남을 거라고 했잖아... 버텨줘. 우리 같이 여행 가자. 응?”“넌 삼촌과 이모의 유일한 희망이야, 그들을 위해서라도 버텨야 해!”“영아, 우리 딸... 흑흑흑...”온갖 소리가 허지영의 귀에 들어왔다. 허지영은 몸에 아무런 힘도 없는 것이 느껴졌고, 눈앞은 어렴풋한 빛에 휩싸였다. 한참이 지나서야 부모님의 얼굴과 친구들이 슬퍼하는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몹시 의외인 것은 이우범도 거기에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가장자리에 서있었지만, 키가 커서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이우범이 왜 여기에 있지?’허지영은 입을 벌려보았지만,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고 온몸이 아프기만 하였다.“영아, 너 어떻게 우리를 버리고 떠날 수가 있어... 나랑 네 아빠는 어쩌고...” 어머니는 허지영이 깨어났지만 기뻐하기는커녕 더욱 슬프게 울고 있었다. 어머니는 자기 딸에게서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부모님은 허지영이 왜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전혀 모른다.“아빠, 엄마, 제가 불효자예요... 미안해요... 다음 생이 있다면 제가 그때 효도할게요...”허지영은 허약하게 몇 마디 하려고 노력했지만, 부모님을 더 슬프게 할 뿐이였다.극심한 슬픔에 부모님은 뒤돌아 병실을 나왔다. 자기 딸에게 이토록 처참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박정아는 바로 앞장서서 허지영의 손을 꼭 잡았다.“영아, 너도 날 꼭 기억해야 해. 다음 생이 있다면 다시 나를 찾아줘.

  • 이번생은 반드시 해피엔딩   제687화 영원히 그녀를 사랑할 수 없어.

    허지영은 어린 시절부터 자기는 타고난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가문에 서로 사랑하는 부모님, 좋은 성적,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랑 결혼까지 했다. 그러나 서른도 안 되는 나이에 가정이 풍비박산나고 삶의 끝에 이르렀다.허지영은 부모님이 자신의 눈앞에서 눈물범벅이 된 모습을 지켜보고는 마음이 아려왔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를 속일 수가 없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고집스럽게 배인호를 그리워하고 있었다.‘배인호는 내가 유방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면 보러 올까? 마음이 약해질까?’‘왜 지금 이때까지도 나는 그 잔인한 남자를 그리워하는 걸까?’허지영은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현재 상태에서는 수술할 필요도 없고 방사선 치료와 안전하고 보수적인 치료 외에는 손쓸 방법이 없었다.허지영은 어떻게든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가고 나서 가장 먼저 배인호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늘 그렇듯 또다시 거절당했다.허지영은 다시 배인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나 유방암 걸렸는데 말기래요. 당신이랑 얘기 좀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이번에는 배인호가 답장을 했다.“병 걸렸으면 제대로 치료받아. 나는 의사가 아니야. 널 치료 해줄 수 없어.”이토록 차갑고 매정한 답장을 보면서 허지영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배인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왜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배인호는 그녀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걸까?“영아, 더 이상 배인호 생각은 안 하면 안될까?” 박정아와 친구들이 토끼처럼 눈이 붉어져서 허지영의 집으로 찾아왔다.“우리랑 여행 가자. 우리랑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풍경도 맘껏 즐기면서 몇몇 쓰레기 같은 사람들은 깔끔하게 잊는 거야. 더는 그 쓰레기들에게 상처받지마. 응? ”허지영의 병을 알게 된 이후로 허지영의 부모를 제외하고 가장 슬퍼했던 건 박정아와 3명의 친구들이였다. 거의 매일 슬픔에 잠겨 허지영의 만날 때마다 울음을 참지 못했다.친구들은 더이상 허지영이 고통받는 걸 지켜보기 싫어했다. 그들은 허지영의 좋은 친

  • 이번생은 반드시 해피엔딩   제68화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어.

    배인호는 식탁 위의 아침밥을 흘깃 보고선 한마디 대답도 없이 넥타이를 묶으며 거실 방향으로 걸어갔다. 허지영은 뒤따라가 한 번 더 묻고 싶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배인호가 차에 올라타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리는 모습뿐이었다.허지영은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배인호는 크나큰 빙산이고 허지영은 작디작은 불씨였다. 허지영은 자신의 불씨로 빙산을 녹이려고 하였지만, 결국 그 작은 불씨는 빙산에 의해 꺼져버렸다.“허지영, 우리 이혼하자.”배인호는 어느날 드디어 허지영에게 처음으로 이혼을 얘기했다.허지영은 배인호가 간만에 집에 돌아왔다는 기쁨에 사로잡혀있었다. 허지영은 자신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옷을 입고 저녁에는 무엇을 먹을지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혼합의서가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배씨 그룹 지분의 3%면 충분해?”“이혼이요?”허지영은 마치 날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배인호가 갑자기 이혼을 꺼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 둘은 결혼 이후 함께 지낸 시간은 적었지만, 허지영은 결코 배인호의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고 절대적인 자유를 주었다. 이것만으로도 모자라는가?허지영은 그 수많은 스캔들을 꿋꿋이 참아오면서 작은 꼼수를 부리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려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배인호는 이혼을 원하는 걸까.“맞아. 난 널 전혀 사랑하지 않아. 난 지금 지키고 싶은 여자가 생겼어.”배인호는 이 말을 할 때 차갑기 그지없었다. 마치 배인호와 5년 동안이나 결혼 생활을 해온 허지영이 생명이 없는 장난감일 뿐이며 그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며 아픔도 슬픔도 느끼지 않는 것처럼. 허지영의 목소리를 떨면서 말했다.“누굴 사랑하게 된 건데요? 누구예요?”하지만 배인호가 허지영에게 이런 일들을 얘기해줄 리가 없었다. 그는 차갑게 소매를 털며 말했다.“이혼 합의서 잘 살펴보고 괜찮은 것 같으면 사인해. 별로라면 나한테 연락해. 다시 얘기하자.”허지영이 말도 꺼내기 전에 배인호는

  • 이번생은 반드시 해피엔딩   제685화 악랄한 대우.

    “인호 씨.”허지영은 먼저 배인호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돌아오는 것은 상대방의 서늘하기에 그지없는 눈빛뿐이었다.그 순간 허지영은 그녀가 새신부가 아니라 철천지원수인 것만 같았다.허지영은 그 눈빛에 놀라 흠칫했다. 아마 배인호의 어머님이 때마침 나타나지 않았다면 계속 계단에 서서 멍만 때렸을 것이다.“지영아, 내려와서 아침밥 먹어야지.”배인호의 어머님이 인사를 건넸다.그제야 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조심스럽게 식당으로 걸어갔다.배인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허지영의 존재를 무시했고, 밤새 잠을 자지 않은 듯 턱에는 푸릇푸릇한 수염이 자랐고 눈은 약간 충혈되어 매우 피곤하고 짜증이 난 것같은 모습이었다.하지만 허지영은 감히 더 물어볼 수 없었고 물어보아도 대답도 안 해줄 것을 알고 있었다.그날부터 허지영은 배씨 가문의 사모님이 되었고 철저한 장식품이 되었다. 배인호는 심지어 결혼전 보다도 더 차갑게 굴었으며 종종 집에 오지 않았다.허지영은 신혼집 인테리어에 모든 심혈을 기울였고 청담동이라는 곳에 있는 별장이 바로 그녀와 배인호의 신혼집이었다. 기초 공사는 거의 끝마쳤지만 가구와 같은 인테리어도 천천히 골라야 했다.허지영은 6개월이라는 시간을 들여 청담동 별장을 꿈의 신혼집 모습으로 장식해 놓았다. 그녀는 배인호가 돌아오리라 생각했지만, 이 아름다운 집은 결국 그녀의 외로운 결혼의 무덤이 되어버렸다.“결혼한 지 얼마 됐다고 벌써 5명이나 스캔들이 생겨? 영아, 너 진짜 잘 참는다!”박정아의 전화 10통 중 9통은 배인호의 뒷담화였다.“그거 다 보여주기식일 거야.”허지영은 사실 배인호가 자신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속으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마치 자기의 가련한 자존감을 지키려는 듯 배인호의 편을 들어주었다.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날 것만 같아서 허지영은 끝내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하루 또 하루, 한 해 또 한 해가 지나면서 허지영은 혼자 청담동에서 망부석이 된 것만 같았다. 마치 웃음거리인 것처럼 다들 그녀에 대한 기억은 점점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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