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동안 이훈에게 문자를 보낼 기분이 아니었다. 마음이 혼란스러워 불편했고 머릿속이 텅텅 비는 것 같았다. 만약 엄마 아빠가 이 기사를 본다면 분명 많이 화를 내실 것이다. 특히 엄마는 심장이 별로 좋지 않으셔서 정서 안정에 신경을 써야 한다.나는 분노를 참으며 배인호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는 받지 않았다.두 번째 전화했을 때는 아예 전화를 끊었다.나는 충격과 분노를 느꼈고 하루빨리 이 뉴스를 뿌린 사람을 찾아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더 퍼져 나가 수습을 할 수 없었다.나는 먼저 네 명의 단톡방에 이 사실을 알리고 정아와 애들에게 이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게시물을 올린 사람과 사이트에 연락하는 것 말고도 나는 법적인 준비도 해야 했다. 만약 상대방이 지우지 않는다면 법정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놀랍게도 게시물을 올린 사람이 지우지 않겠다고 했다.나는 그의 신분을 알 수는 없었지만, 대화를 통해 그가 내가 경찰에 신고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정아에게서 바로 전화가 왔다. 내가 상황을 그녀에게 얘기하니 그녀가 물었다.“그 사진을 배인호만 갖고 있는 게 확실해?”“그럴 텐데, 그 사람이 사진을 올렸는지는 모르겠어.”나는 미간을 찌푸렸다.“그럼, 고의로 너에게 복수하려는 거네!”정아는 분노했다.“분명 서란 그년 일 때문에 너에게 복수하려는 거야. 지영아, 우리 해커를 찾아서 해킹하는 건 어때? 일단 그 사진들을 지워버리고 다시 생각해 보자.”“좋아, 네가 나 대신 연락해서 바로 처리해 줘. 난 배인호를 찾으러 갈 거야.”나는 배인호에게 가서 제대로 물어봐야겠다. 만약 그가 사진을 올린 게 확실하다면 그가 해결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진이 두 번째, 세 번째 계속 퍼질 것이다.나는 차를 몰고 더 숲으로 향했다. 청담동보다 거기에 있을 것 같았다.더 숲에 도착했지만, 배인호는 거기에 없었다.나는 할 수 없이 청담동으로 갔다. 내 기억 속에 배인호는 청담동을 좋아
내가 질척거리는 것일까 아니면 서란이 질척거리는 것일까? 서란의 반격 스킬은 정말로 대단했다.배인호가 서란을 보호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나의 마음은 평온했다. 이미 예상했단 일일 뿐이다.단지 나는 더 이상 그들을 상대하는 것에 흥미를 잃었다.나는 핸드폰을 꺼내 오늘 저녁 기사를 열고 배인호에게 물었다.“당신이 이런 거예요?”배인호는 내용을 확인하고는 표정이 급속하게 어두워졌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란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을 보고 나는 누구의 작품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서란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빛으로 배인호를 바라보았다.“인호 씨,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아무것도 아니야.”배인호는 차분하게 대답했다.“서란이 올린 거예요?”나는 비참함을 느꼈다. 10년이 지나 환생했는데, 나는 아직도 배인호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몰랐다.배인호가 말했다.“서란이 아마 내 핸드폰을 가지고 조심하지 않아서 올린 걸 거야. 내가 지시해서 처리할게. 네 일상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할게.”예전에 내는 그의 핸드폰을 만지지도 못했는데 지금 서란은 마음껏 가지고 놀며 심지어 그의 사진첩 안의 사진까지 찾아냈고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 나를 비방하는 내용들을 올렸다.내가 멍청해서 얼마 전까지 배인호가 나에게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했다.“실수라고 확신해요?”나는 배인호의 눈을 쳐다보았다.“응, 확신해.”배인호는 잠시 멈칫하더니 대답했다.서란은 억울한 듯 직접 입을 열어 변명했다.“지영 언니, 절 오해 했어요. 전 언니가 상처받을 줄은 몰랐어요. 언니가 왜...”나는 듣고 있다가 참을 수 없어 그녀의 뺨을 다시 때리려고 손을 들었다.아주 연기가 대단하네!배인호가 먼저 나의 손을 잡았다. 그 힘이 얼마나 센지 나는 반항 할 수가 없었고 그는 차갑게 나를 바라봤다.“허지영, 돌아오지 않겠다고 한 건 너야. 지금 나와 서란을 방해하고 있는 것도 너고. 그만해!”서란은 이 장면을 보고 눈에 기쁨이 가득 찼다.하지만 그녀는 나를 위로하는 척
나는 서란의 가족이 청담동으로 이사하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너무 크게 반응했다. 마치 내가 아끼던 보물이 다른 사람에 의해 더럽혀진 것처럼 분노와 혐오감을 억제할 수 없었다.지금, 이 순간 배인호는 병원에서 서중석을 입원시키고 있을 것이다. 그는 서란을 결코 무시하지 못하는데 그녀의 아버지 건강 상태라면 발 벗고 나설 것이다.눈을 감았는데 이유 없이 눈물이 흘렀고 나는 그저 베개를 적시게 놔두었다. 짜증과 불안한 감정 속에서 나는 잠이 들었고 일어나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관자놀이를 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어젯밤에 깨뜨린 향수병에서 강한 향수 냄새가 공기 중에 떠돌았고 나는 기침을 두 번 하고 어지러운 몸을 억지로 일으키고 샤워하러 갔다.욕실에서 나오니 나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우범의 전화였다.“지영 씨, 지금 어디예요?”전화가 연결된 후 이우범의 다소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청담동에 있어요. 왜요?”나는 물었다.“어젯밤 일, 민성이가 말해 줬어요. 지영 씨, 괜찮아요?”이우범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괴로움과 걱정스러움이 묻어났다.나의 복잡했던 마음도 많이 안정되었고 차분하게 말했다.“난 괜찮아요. 어쩌면 서란의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네요. 심장에 문제가 있으니, 지금 우범 씨 병원에 있어요?”이우범은 멈칫하더니 대답했다.“네, 치료는 제가 담당하게 됐어요. 그래서 성민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본 거고요.”“네, 잘 치료해 주세요.”나는 서중석의 상황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들도 자기 딸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고 있었다.나는 서란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길 원했다.이우범은 얼굴을 보자고 했지만 내가 거절했다. 지금은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혼자서 조용히 있고 싶었다. 나에 관한 안 좋은 기사들은 엄마 아빠에게 해명하고 사실을 알려야 했다.집에 돌아가니 엄마 아빠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 관한 기사를 보셨을 것이다.아빠는 굳은 표정으로 물으셨다.“지영아, 이게 다 무슨
나는 윤선이 서란에게 돌아가 분명 이 사실을 말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란은 내 손에 자기에 대한 모든 증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를 막으려고 할 것이다.하지만 나는 배인호가 서란을 이 정도까지 보호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나는 적당한 시기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서란의 녹음을 언론에 뿌리려고 했는데 모든 사람이 피하고 있었다. 서란의 비밀이라는 말을 듣고 모두 거절했다. 마치 뜨거운 감자처럼 서로 떠넘기고 있었다. 이훈도 저번에 나를 대신해 서란에 관한 기사를 썼다고 해도 이번에는 쉽게 나서지 못했다. 그리고 배후에 내막을 알려주었다.“지영 씨, 전남편이 너무 대단한 인물이에요. 그가 서란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저번에 내가 터트린 기사는 귀찮아서 나에게 따지지 않아도 이번에는 다를 거예요. 분명 절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그 말을 듣고 나는 갑자기 마음이 가라앉았다.지금 서란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배인호는 내가 무슨 일을 터트려 서란을 자극할까 봐 무서워했다. 정말 권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었고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이번 일은 정아와 애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녀들이 알아도 배인호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고민거리만 만들어 줄 뿐이었다.언론에 폭로할 수 없다면 내가 직접 하면 그만이다. 단지 영향력이 언론에 퍼지는 속도보다 느릴 뿐이었다.나는 배인호가 자신의 신분과 지위로 나를 협박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나에게 그의 협박 따위가 먹힐 리가 없었다.“지영 씨, 저 좀 도와주세요!”노성민은 갑작스럽게 전화가 와서 다급한 말투로 말했다.“왜?”나는 의외였다. 평소에 노성민이 나에게 연락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나와 배인호의 친구들은 모두 조금씩 얽혀 있었지만 그가 정아와 함께하지 않았다면 평생 노성민과 친해지지 않았을 것이다.노성민은 걱정스러워하며 말했다.“아까 제가 말을 잘 못해서 정아가 화가 나서 저하고 말도 안 해요. 핸드폰도 꺼져 있고요. 같이 찾아 주지 않으실
“욱!”속이 타는 듯한 느낌에 참지 못하고 토하고 싶었는데, 어느새 비닐 주머니가 나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이우범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내 차에 토하지 마요.”나는 비닐 주머니를 들고 망설임 없이 토했다. 공기 중에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났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불편했던 속이 편안해졌고 나는 비닐 주머니를 묶고 티슈를 한 장 뽑아 입 주위를 닦았다. 고개를 돌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이우범을 바라보았다.“내가 왜 당신 차에 있어요?”“세희 씨가 나한테 전화했어요. 지영 씨 데리러 와 달라고.”이우범은 차를 운전하며 천천히 말했다.“이렇게 술을 마시면서 건강 생각은 안 해요?”“우범 씨 몰라요? 나는 아이도 낳지 못해요. 이런 몸을 어디에 쓰겠어요?”나는 웃었지만, 너무 비참했다.“이우범 씨, 말해봐요. 이런 나는 완벽한 여자도 아니죠?”“왜 아니에요? 아이를 가져야만 완벽한 건가요? 누가 그렇게 가르쳤어요?”앞에 빨간 신호등이 걸리고 차는 멈췄다. 이우범은 고개를 돌려 검은 눈동자를 빛내며 나를 바라보았다.“당신의 그런 점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남자를 만나면 되잖아요. 안 그래요?”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어떤 남자가 이런 걸 신경 안 쓰겠어요. 근데 우범 씨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나랑 약속했어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술을 많이 마셨더니 말투가 거칠어졌다. 이우범이 유일하게 무엇이든지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위협했다.나는 이것을 ‘술주정’이라고 불렀다.“어떻게 가만두지 않을 건데요?”이우범이 또 물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다정한 것 같았다.“몰라요, 아무튼 처참하게 죽을 거예요!”나는 무심코 대답했지만, 머릿속이 복잡해 눈을 감았다.이우범이 우리 집 주소를 정확하게 모른다는 것을 깜빡했다. 깨어나 보니 나는 그의 집에 있었다.싱글에 자기 관리에 철저한 남자는
머리를 돌려 차창 밖을 내다봤다. 이우범의 차가 옆에 멈췄다.“왜 여기로 왔어요?”나는 자연스럽게 물었다.“퇴원 절차 밟으려고.”배인호가 차갑게 대답했다.‘서란 이제 퇴원해도 되는 건가? 그럼, 독일로 수술하러 가도 된다는 거네?’궁금증이 밀려왔다.배인호가 서란의 일을 처리하러 온 거면 내가 따라다닐 필요는 없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이 기사한테 연락했고 병원 정문으로 데리러 오라고 했다.“같이 올라가는 거 아니에요?”이우범이 물었다.나는 혼자 들어가는 배인호의 뒷모습에서 이미 화가 많이 나 있음을 느꼈다. 그는 일부러 나와 이우범을 무시하고 먼저 올라갔다.“연적 병문안은 적성에 안 맞아서요. 출근해요.”나는 이렇게 대답했다.“서란 퇴원 절차 끝나면 아마 바로 독일로 가서 2차 이식할 거예요. 인호도 같이요.”이우범은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나와 대화를 나누며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아, 알겠어요. 빨리 출근하러 가봐요. 우범 씨 시간 잡아먹는 거 같은데.”나는 이우범을 향해 손을 흔들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우범이 하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 차가운 눈이 잠깐 빛나는 듯하더니 다시 어두워졌다. 그는 그저 머리를 끄덕이더니 병원으로 들어갔다.나는 문 앞에서 이 기사가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전에 도착한 건 서중석과 윤선이였다.서중석은 퇴원은 했지만, 안색이 예전에 비하면 초췌해 보였다. 부부는 무거운 표정으로 병원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다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눈빛에서 경계심이 묻어났다.“아가씨, 여긴 어쩐 일로?”윤선이 먼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사실 요 며칠 그는 나에게 낯선 번호로 전화를 몇 번 걸어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매번 나는 재빨리 전화를 끊어버렸다.“누구 기다리는 중이에요.”나의 심플한 대답에 윤선이 머리를 끄덕였다.순간 옆에 서 있던 서중석이 가슴을 움켜쥐더니 아픈 기색을 드러냈다. 윤선이 놀라 황급히 부축했고 나를 불렀다.
윤선은 딸이 불쌍한지 황급히 달려가서 위로했다. 나는 차가운 눈길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서란아, 어떤 부분은 네가 잘못했다고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아니면 사람들이 널 더 싫어하게 될 거야. 지금 가진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다고.”서란이 내 말에 놀란 듯 멈칫했다. 하지만 얼마 안 지나 다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언니, 난 언니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요. 인호 씨 때문에 저 싫어하는 거 알고 있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훗날 돈 생기면 지금까지 썼던 비용은 다 돌려줄 거예요. 그 돈은 제가 빌렸다고 생각해 주세요.”“필요 없어.”배인호가 나보다 한발 빨리 대답했다.서란의 눈빛이 잠깐 기쁨으로 반짝였다가 이내 다시 억울한 표정으로 가려졌다. 배인호가 이깟 돈을 아까워할 리가 없었다. 그러니 서란한테 돌려달라고 할 리도 더더욱 없었다. 하물며 지금 나와 이혼한 상태니 공동 재산이라는 것도 없고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되니 어디에 쓰든 어떻게 쓰던 그의 일이었다.“인호 형!”순간 노성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땀범벅이 된 걸 봐서는 이쪽으로 최대한 빨리 달려온 듯싶었다. 같이 서 있는 우리를 보고는 멈칫했다. 그의 뒤에는 정아와 세희, 민정도 있었다.노성민을 본 서란이 웃으며 말했다.“성민 오빠, 저 배웅하러 온 거예요?”전에 서란을 대하는 노성민의 태도가 많이 변했었다. 오늘 독일로 수술하러 떠나는데 노성민이 급히 달려오니 자신을 배웅하러 온 거로 착각하고 있었다.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노성민이 정아를 데리고 서란 배웅을, 정아의 손에 죽고 싶지 않고서는 말이 안 되는 행동이었다.“허허, 인호 형 찾아서 할 얘기가 있어서.”노성민이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배인호 옆으로 신속하게 걸어가 귓속말로 몇 마디 했다. 뭐라고 말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귓속말이 끝나자 배인호의 표정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어떻게 된 일이건, 일단 독일에 도착해서 보자.”배인호의 눈빛이 아래로 처졌다.독일 쪽은 이미
“라니야, 민설아는 누구야?”서중석이 물었다.“민설아는 지금 갖고 있는 심장의 주인이자 배인호가 좋아한 첫 번째 여자기도 하죠.”내가 그의 궁금증을 풀어줬다.“당신 딸은 이 일에 대해서 이미 다 알고 있었고 민설아 가족까지 만나봤는데, 모르고 있었어요?”윤선이 막연하게 고개만 흔들었다.“아니요. 지금 알았어요. 그냥 수술한 그해에 어떤 사람이 라니를 찾아왔었고 집에서 잠깐 대화를 나누다가 사진 한 장 같이 남기고 갔는데...”“그 사람 아마 민설아 어머니일 거예요.”나는 윤선이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하나뿐인 딸이 이렇게 많은 일을 속이고 있으니 말이다.“그만 해요!!”서란이 갑자기 귀를 틀어막으며 소리를 질렀다.“내가 죽기를 바라는 거죠? 좋아요! 지금 죽으면 되잖아요!”이 말을 뒤로 서란은 핸드백에 들어있는 물건을 전부 바닥에 쏟았다. 그러고는 눈썹을 다듬는 칼을 집어 들어 자기 팔목에 갖다 댔다.서란은 눈물을 흘리며 배인호를 바라봤다.“인호 씨, 다들 지영 언니가 당신을 10년이나 일편단심으로 좋아했다고 하는데 설아 언니는요? 당신은 설아 언니를 저버린 거예요! 처음 당신 이름을 안 순간부터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에 합격해 서울에 악착같이 남으려고 애썼어요. 이 모든 건 다 우리 사이의 인연을 믿어서 그런 거라고요!”나는 속으로 서란이 심장 이식을 받았을 때 나이를 계산해 봤다. 열다섯 열여섯쯤 되는 나이니, 사랑에 눈을 뜰 나이었다.그녀가 눈물로 하소연하는 것을 들으며 내 마음속에 풀리지 않던 또 하나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다.민설아 어머니가 그해 서란에게 준 선물은 앨범과 일기장이었다. 안에는 민설아가 기록한 각종 메모와 언니 민예솔과의 사진이 들어있었고 그 사진으로 서란은 민예솔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민예솔은 넋을 놓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서란이 애초부터 이 모든 일들을 알고 있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민예솔은 줄곧 서란이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애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서란은 너무 울어서 탈진하기 일보 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