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이수용은 맥주를 맛만 보는 수준에서 그쳐, 존이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물은 것을 깨닫고는 경고를 했다.하지만 천도준은 손을 들어 이수용을 막았다.이런 일을 그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고 존이 왜 묻는지도 이해했다.그것을 본 존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천도준의 질문에 답을 했다.천도준은 미소를 지었다.“멍청한 사람은 도구 취급이나 당하면서도 운명이라고 생각하죠. 전 그저 구경꾼에 불과한데 담담하지 않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이수용이 미간을 찌푸렸다.존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그럼 왜 화가 난다는 겁니까?”천도준은 고개를 젖혀 맥주를 들이켠 뒤 환하게 웃었다.“전 제가 안목이 없었던 것이 밉고 천태성의 악랄한 계략에 화가 난 겁니다.”존과 이수용은 서로 시선을 마주했다.정말로 그게 다인걸까?그러나.바로 이수용이 시선을 거두려고 할 때 그의 두 눈에 시린 한기가 번뜩이더니 미간을 팍 찌푸렸다.그 광경을 천도준과 존도 정확하게 발견했다.두 사람은 동시에 의혹을 드러냈다.천도준은 등을 지고 있었던 탓에 고개를 돌렸을 때, 이수용이 보고 있는 쪽을 이미 바라본 존은 맞은편의 광경을 목격하고 있었다.“미친! 젠장!”펑!존은 분노에 차 욕설을 뱉으며 들고 있던 술병을 테이블에 세게 내려쳤다. 힘이 너무 강했던 탓에 맥주병은 그대로 깨져버렸다.그와 동시에,천도준도 고개를 돌려 맞은편 별장의 베란다를 쳐다봤다.시린 한기가 순식간에 얼굴에 드리웠다.눈빛에는 짙은 분노가 가득했다.따지고 보면 별장은 사생활 보호가 아주 철저해 다른 별장 내의 상황을 훔쳐보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하지만 맞은편 별장의 베란다는 은밀함 같은 건 전혀 없었다.비록 빛이 어둡다고는 하지만 살아있는 두 사람은 명확하게 보였다.게다가 얼굴을 알아보는 것 역시 어렵지 않았다.어두운 불빛 아래서 오남미와 천태성은 서로 끌어안고 있었고, 끈적하기 그지없었다.그리고 존이 맥주병을 깨부수는 기척과 함께 두 사람은 동시에 이쪽을 바라봤다.그 찰나.오남미
이어서 안경 뒤 천태성의 눈동자가 싸늘해졌다. 오남미 역시 씩씩거리며 썩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천태성을 떠났다.쌀쌀한 밤바람도 두 사람의 분노를 식히기엔 역부족이었다.오남미가 별장 맞은편을 노려보았을 땐 천도준, 이수용과 존은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다.오남미는 붉은 입술을 꽉 깨물며 중얼거렸다. 밀물 밀려오듯 수치심이 밀려오며 분노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이게 아닌데!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머릿속으로 천도준이 불같이 화를 내는 장면을 수없이 예상했건만 천도준이 그렇게 태연하게 한 마디 내뱉을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말투에 역력히 묻어있던 경멸은 오히려 그녀에게 수치심을 안겼다.“먼저 내려가 있어.”맞은편 별장의 테라스를 바라보며 말하는 천태성의 목소리가 냉담했다.오남미는 잠시 멈칫했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분고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조금 전 천도준의 말은 그녀의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박혔다.천태성과 더 스릴을 즐길 기분도 아니었다.오남미가 떠나고 천태성은 콧등의 안경을 천천히 위로 올렸다.어스름한 조명 아래 잔잔한 그의 얼굴에 분노가 일렁였다. 그를 감싸고 있는 주변의 공기까지 차갑게 얼어버릴 만큼 온몸에서 서늘한 냉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자존심이 짓밟히고 분노에 가득 찬 네 표정을 기대했었는데 이렇게 태연할 줄이야. 태영이 네 손에 다리 하나 잃은 게 어쩌면 그리 억울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군.”천태성은 피식 냉소를 지으며 관자놀이를 주물렀다.아래층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오남미도 이젠 쓸모없네.”별장 안.천도준은 오남미 때문에 취기가 싹 가신 지 오래였다.그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이수용과 존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도련님, 저한테 맡겨주세요. 천태성의 격투 기술도 제가 코치해 줬었지 않습니까”참다못한 존이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감히 천도준의 아내를 모욕하다니. 이렇게 극단적으로 몰아붙일 필요까지는 없었다.하찮은 원한도 반드시 복수를 하고야 마는 천태성이 반드시 천
“내용이 뭔데요?”천도준이 물었다.“천씨 가문의 자손들은 친족에게 상해를 가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가문에서 추방하고 족보에서 제명한다. 설사 상속자일지라도 상속 자격을 박탈한다.”아주 무거운 징벌이었다.“어르신, 저는 처음 들어요!”존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너나 나나 노예 출신인데 어찌 이런 가법을 알 수 배울 권한이 있었겠어? 그때 내가 가주를 따르면서 공을 세우지 않았더라면 나도 죽을 때까지 몰랐을 거야!”이수용이 가볍게 존을 흘기며 대답했다.가족 구성원, 더 나아가서는 후계자의 자격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가법을 일반 노예에게 알 자격이 주어질 리가 만무했다.이수용의 말에 천도준의 미간이 깊게 팼다. 당최 이해 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이 가법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천태성이 오남미를 이용하여 그를 격노케 하려는 목적은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었다.다만 의심스러운 것은 그도 전에 똑같은 방식으로 천태성을 상대했다는 점이었다.“어르신, 제가 천태영의 다리를 부러뜨린 건 어떻게 되는 겁니까?”천도준이 물었다.“이 가법대로라면 전 후계자 자격을 박탈... 아니, 가문에서 쫓겨나게 되겠네요.”심각한 표정의 천도준을 보며 이수용이 씩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정말 똑같은지.”천도준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별안간 뭔가 깨달았다는 듯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지난번 리빙턴 호텔에서 천태영과 싸움을 벌인 건 순전히 고청하 때문이었다.천태영이 먼저 고청하를 건드리면서 싸움이 시작되었고 선제공격을 한 사람 역시 천태영이었다. 게다가 천태영의 다리를 부러뜨린 것 역시 천도준이 아니라 존이었다.이것과 천태성의 수는 얼핏 보기에는 같아 보이지만 그 본질은 전혀 달랐다.오남미가 비록 그의 전처이긴 하지만 이혼과 동시에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남남이었다.천태성이 “전처”를 이용하여 그의 자존심을 짓밟고 도발하고 손을 써서 그를 다치게 한 건 엄연히 가법을 어긴 행위였다.천도준의 반응을
짙은 울분과 유감이 묻어나는 말에 이수용과 존은 조용히 주먹을 말아쥐었다.출생이라는 두 글자는 마치 빙산의 일각처럼 겉모습만 보고 아주 작고 보잘것없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사실 바다 밑에는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사람 죽이는데,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힐 수도 있죠.”갑자기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천도준을 보며 이수용과 존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천도준은 그 의미를 설명하지 않고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어르신, 도련님께 무슨 좋은 방도라도 생긴 것일까요?”존의 물음에 이수용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어째 보면 볼수록 도련님과 회장님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어... 비슷해도 너무 비슷해...”그렇게 밤이 깊었다.이튿날. 싱그러운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유리창에 스며들었다.이와 상반되게도 천태성의 별장은 온기 없이 서늘했다.탁!천태성은 곤히 잠들어 있는 오남미의 위에 옷가지를 던지며 무심히 한마디 했다.“꺼져.”어젯밤 두 사람에게도 평소와 다른 공기가 흘렀다. 오남미가 그와 한침대에서 자고 싶어 했지만 당연하게도 천태성에게 거절당하고 말았다.두 사람은 각방을 쓰고 있었다.잠에서 깬 오남미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천태성을 바라보며 물었다.“태성아... 너, 너 왜 그래?”“꺼지라고.”서릿발같이 쌀쌀한 얼굴에 찬 바람이 쌩쌩 부는 말투였다.오남미는 눈앞이 캄캄해졌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그의 변화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천태성이 아니라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어제까지만 해도 사랑을 운운하던 사람이 오늘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일까.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오남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옷을 챙겨입을 겨를도 없이 그녀는 거의 기어가다시피 천태성의 발치로 다가가 천태성의 바짓가랑이를 꽉 부여잡았다.“태성아, 갑자기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내가 뭐 잘못했어? 알려줘. 내가 고칠게... 나 꼭 고칠 수 있어.”지옥에서 벗어나 천국의 맛을 본 오남미는 죽어도 다시 지옥으로 돌아가고 싶지
“하!”천태성은 비웃음과 함께 머리와 고개를 숙여 오남미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난 단지 몇억 들여서 널 가지고 재미 좀 본 거야. 고작 몇억은 나에게 푼돈이거든. 돈은 숫자에 불과해.”천태성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남미의 어깨를 걷어찼다. “이런 게 다 사랑이라면, 다른 여자에게는 몇십억씩 썼는데? 그럼 걔도 내 앞에서 목매달아야 하겠네?”이 말에 오남미는 얼어붙었다.그러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늘렸다. 고작 재미를 위해 몇억을 쓴다고?그거뿐이야?오남미는 떠나려는 천태성을 보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녀는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지푸라기라고 잡고 싶었다. 맞아, 죽는 거야!진짜 죽으려고 든다면 천태성이 돌아올 거야!오남미는 미친 사람처럼 침대 옆으로 다가가더니 정교한 도자기 집어 들고 바닥에 내리쳤다. “쨍그랑!” 그러고는 도가지 조각을 집어 들고 목에 댔다.“태성 씨, 날 버린다면, 나 진짜 당신 앞에서 죽어버릴 거야!”너무 흥분한 나머지 오남미의 손과 목은 도자기 조각에 찔려 피를 흘렸다. 뒤돌아 이 광경을 본 천태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싫은 표정을 지었다.“죽고 싶다면 죽어. 그런데 여길 더럽히지 말아 줄래? 나 여기서 오래 묶을 거거든. 거기 깔린 카펫 말이야, 페르시아 카펫이야. 미터당 5천만 원이라고. 더러워지면 청소하기 골치 아파.”쿵!오남미는 벼락에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천태성의 말 한마디는 그녀를 끝이 보이지 않은 깊은 절망으로 몰아넣었다.내가...카펫보다 못해?얼마나 정이 없으면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그리고 있잖아. 네 목숨은 나에게 하나도 쓸모없거든? 자살이 뭐야. 널 죽인다고 해도 난 꿈쩍 안 해.” 천태성의 말에는 끝없는 냉기가 돌았다.“허...”오남미는 무너져 버렸다. 그녀는 이내 도자기 조각을 버리고 일어나 천태성을 울부짖으며 노려봤다. “태성 씨! 내가 진짜 눈이 멀어 당신을 선택한 거야.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은...”“젠장!”
오남미는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왔다.마치 물에 젖은 새처럼 하늘도 무너지고 꿈도 깨졌다. 예전보다 더 못한 처지가 돼버린 것이다.문이 열렸다.오남미의 부모님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그녀를 맞이했고, 오남준은 이미 깔끔하게 정장까지 입고 있었다.“누가, 가자. 형부랑 차를 사러 가야지.” 오남준은 오남미의 손을 이끌며 흥분한 듯 말했다.천태성의 말을 들은 오남준은 어젯밤 내내 잠을 청하지 못했다.“2억 이하의 차는 생각할 필요도 없어!”억대 슈퍼카! 오남준 평생 꿈도 못 꾼 차였다. 그러나 미래의 형부가 나타나면서 그에게도 이런 차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오남준은 밤새워 뒤척이며 고민하다가 시승해보고 싶은 모델을 정했다.억대 슈퍼카를 타고 과시할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기존에 타던 아우디는 아버지에게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남미야, 그러고 보니 태성이는?”장수지는 눈썹을 치켜뜬 채 오남미의 뒤를 바라보며 웃으며 말했다. “조금 있다가 태성이한테 잘 말해봐. 우리도 남준이 차 살 때 같이 가자고 말이야?”“엄마, 엄마가 가서 뭐 하게, 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잖아.” 오남준은 같이 가는 걸 싫어했다.“엄마야 모르지. 그냥 같이 가서 구경하면 안 돼?”장수지는 여전히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우리 장한 딸내미가 금수저 사위를 얻어 우리 귀한 아들에게 슈퍼카를 사준다는데. 엄마가 돼서, 따라가서 사진 몇 장도 못 찍어? 자랑 좀 하면 안 돼?”그녀는 자동차는 잘 모르지만 과시하길 좋아했다.슈퍼카 매장에서 셀러가 굽신굽신 대접해주는 화면을 상상하면 매우 설렜다.텔레비전에서나 볼법한 화면이었다.오덕화는 아내를 말리고 싶었으나 참았다. 아내가 그 누구보다 과시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세 사람 모두 오남미의 우울한 표정을 깨닫지 못했다.오남미의 귓가에 들려오는 웃음소리는 마치 뜨겁게 달아오른 날카로운 칼처럼 그녀의 심장을 도려냈다.슈퍼카?과시?오남미는 빨개진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순간 엄마가
오덕화는 얼굴을 찡그리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남미야, 무슨 일 있었던 거야?”말이 끝나기도 전에,욕실에서 흑흑하는 오남미의 비참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그러고는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통곡 소리가 들려왔다.“가짜야. 모든 게 다 가짜야!”“슈퍼카는 없어, 슈퍼카는 없다고!”“태성 씨가 나에게 거짓말을 한 거야. 태성 씨가 나 버렸다고.”...오남미는 통속하며 사실을 말했다.쿵!문밖. 오덕화와 장수지, 오남준은 '쿵' 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이럴 수가?!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 없었잖아?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된 거지? “누나……” 오남준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누나가 미래 형부 화나게 만든 거 아니야? 그럼 나 차 안 사준대? 나 앞으로 어떡해?”이 말 한마디에 장수지는 버럭 화를 냈다.간밤에 잠을 못 이룬 건 장수지도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돈을 펑펑 쓰며 사치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장수지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었다. 앞으로 친척들 앞에서 자랑할 수 있겠지? 쾅쾅쾅……장수지는 거칠게 욕실 문을 두드리며 크게 외쳤다. “오남미! 네가 실수해서 태성이 화난 거 아니야? 그렇겠지. 내가 평소에 너무 오냐오냐 키웠어. 누가 네 성질을 감당하겠냐고. 빨리 가서 태성이한테 사과해!”장수지의 말은 날카롭고도 매정했다. 어제와 금방 보인 상냥한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왜 꼭 내가 실수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엄마 아니야? 그 사람이 부자라고 날 버렸어도 내가 잘못한 거야?”오남미는 욕실에서 큰 소리로 울었다. “아이고. 엄마가 말하는데, 네가 뭘 잘했다고 대들어?”장수지는 멈출 생각이 전혀 없는 듯 허리에 손을 차고 쏘아댔다. “우리 집에 오자마자 몇억씩 선물한 태성이가, 널 그렇게 생각하는 애가. 널 버리겠니? 네가 실수해서 화가 난 걸 거야! 우리 금쪽같은 사위 다시 데려오라고! 그렇지 않으면 오늘이 네 제삿날일 줄 알아!”장수지는 화가 치밀어 올라 오남미를 위협했다.
천도준은 사무실에서 바쁘게 보냈다. 마영석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도준 형, 누가 경호원한테 쪽지를 건네달라고 했대요.” 천도준은 쪽지를 건네받은 뒤, 펼쳐보았다. 순간, 천도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쪽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아래층 카페에서 만나.” 아래쪽에 적힌 천태성이라는 이름을 본 천도준은 미간을 더 세게 찌푸렸다. “도준 형, 누구예요?” 마영석은 일그러진 표정의 천도준을 발견하고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천도준은 쪽지를 찢어버리며 휴지통에 버렸다. “개 같은 놈이 있어.” 말을 마친 천도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천태성이 갑자기 만남을 청하다니, 틀림없이 좋은 일은 아닐 것 같았다. 고양이 쥐 사정 보듯,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이 뻔했다. 천도준은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창가 쪽 자리에 앉아있는 천태성을 발견했다. 천태성은 의자에 가만히 앉은 채, 그윽한 눈빛으로 오고 가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오른손에는 쥐어진 스푼으로는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가볍게 젓고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없을 정도로 평범했다. 하지만 그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천태성은 무려 모든 권력과 재산을 손에 쥔 천씨 가문 후계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날 보자고 했어?” 천도준은 천태성에게 다가간 뒤, 자리에 앉았다. 천태성은 꼼짝하지 않고 덤덤히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희 회사 근처에는 예쁜 여자들이 많네.” 천도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어서 천태성은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분 좀 봐, 다리도 길고 가늘어. 흠, 제법이군.” 말을 이어가며, 천태성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도전적이지 않단 말이지. 난 4천만 원이면 저 여자를 내 옆에 눕힐 수 있어.” “이 얘기 하려고 보자고 한 거야?” 천도준은 짜증이 났다. 천태성은 고개를 돌리며 웃는 얼굴로 천도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그제야 미안한 기색을 드러냈다. “미안, 오남미가 네 전
이은화는 분노했다. “그럼 우리 청하가 중간에 껴서 난처해하는 모습을 눈 뜨고 보고만 있겠단 말이에요? 아빠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 중요한 순간에 딸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어요?”“알았어.”고덕화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어쨌든 동의한 셈이다. “그저 여기에서 며칠 더 묵었을 뿐이야. 천씨 가문쪽과의 협의를 또 지체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 돼.”고덕화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천씨 가문의 여세를 몰아 당신이 한 단계 더 높은 성과를 올리려고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하고요. 게다가 당신을 응원해요.”이은화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여보, 우리에겐 자식이라고는 청하 한 사람 밖에 없어요. 당신이 이미 이룬 성공은 다른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하는 것이예요. 돈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돼요. 청하의 행복이야말로 지금 우리의 가장 큰 목표예요.”“하지만…”고덕화는 여전히 변명하고 싶었다.“저는 저희의 잘못된 생각으로 청하가 좋은 인연을 놓치지는 걸 원하지 않아요. 천씨 가문을 떠나서, 천도준은 이미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고요. 만약 청하가 우리 때문에 헤어지면 아버지라는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겠어요?”이은화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당신 설마 우리 청하가 석유 재벌이나 실리콘 밸리의 거물들의 자식들을 마음에 들어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고덕화는 잠시 멈칫하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바로 명쾌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하지. 모레 여전히 이곳에서 파티를 열어 천도준에게 사과를 하는 거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상견례를 갖는 거지.”“좋아요. 이래야 좋은 아버지죠.”이은화는 부드럽게 웃었다. ……고덕화와 정강수가 회관 주차장으로 달려갔을 때, 천도준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저 멀리에서 롤스로이스 한 대가 회관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고덕화는 미간을 찌푸렸다. 정강수가 다급히 경호원에게 물어보니, 경호원은 천도준이 착잡한 표정으로 차량에 올라탔
그 말에 정강수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의 표정은 어딘가 복잡해보였다.정강수는 국화의 대가였다. 그는 도도하고 자신의 존엄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에게서 사과라는 단어를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하물며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사람한테 사과하라니?그저 멍하니 서 있는 정강수를 보고, 유 원장은 화가 났다.“너, 나랑 박씨 어르신을 믿어, 못 믿어?”박씨 어르신도 한숨을 쉬었다.“가, 어서 사과 해. 체면이 깎이는 것도 아닌데 뭐.”천씨 가문 가주의 친아들, 그것도 천씨 가문 가주가 아들을 위해 이미연에게 협박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천도준이 정강수의 사과를 받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순간, 정강수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유 원장이 혼자 이러는 거면 무시해도 되겠지만, 박씨 어르신까지 이러니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가 아무리 어리석다고 해도 일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정강수는 한숨을 쉰 후, 천천히 밖으로 걸어갔다.“엄마, 아빠. 제가 도준이를 잡으러 갈게요.”고청하는 감격에 겨워 밖으로 뛰쳐나갔다.오해가 풀렸다. 이건 그녀에게 있어서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여자로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부모님의 마음에 드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있겠는가?정강수의 발걸음도 덩달아 빨라졌다.안채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고덕화와 이은화는 아직도 무슨 상황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오늘 밤, 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갔다.기쁨에서 분노로, 다시 공포로 변했다. 두 사람은 그저 오랜 친구들을 불러 딸이 사랑하는 남자가 믿을만한 남자인지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큰 오해가 생길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조금 전 천도준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생각하면, 두 사람은 얼굴이 뜨거워졌다.고덕화는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을 흘겨보았다.“오래 알고 지낸 친구인데, 어떻게 두 사람은 아직도 나를 속일 수가 있지
정강수는 눈을 부릅뜨고 분노했다.그들은 모두 오래된 절친한 친구고, 각자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들이어서 만약 진짜로 싸운다면 누구 하나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유 원장은 얼굴을 붉히며 욕설을 퍼부었다.“넌 정말 양심도 없는 놈이야. 내가 너랑 싸우는 것을 두려워할 것 같아? 너한테 맞으면 난 내가 직접 치료하면 되는데, 넌 누가 치료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난 절대 치료 못 시켜줘.”“너……”정강수는 얼굴을 붉혔다. 고덕화는 아직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했다.같은 편들끼리 왜 갑자기 싸움을 벌이는 거지? 그때, 박씨 어르신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와 유 원장과 똑같이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정강수를 바라보았다.“강수야. 이번 일은 네가 경솔했어. 유 원장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어.”“너 까지 왜……”정강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세 사람 중, 박씨 어르신이 제일 진중하고 침착한 편이었다. 아니었으면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두 사람 대체 왜 그래? 무슨 일이야?”고덕화가 다급히 물었다.이은화와 고덕화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유 원장은 성격이 급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구르며 를 가리키며 정강수에게 소리를 질렀다.“다시 한번 저 그림을 자세히 봐봐. 그래도 천도준이 선물한 그림이 가짜라고 한다면 오늘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 말에 정강수는 마치 날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멍해졌다.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천도준을 대신해 억울함을 호소했다.‘내가 진짜 잘 못 본 걸까?’정강수는 다시 를 들고 신중하게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돋보기를 꺼내 자세히 살펴보았다.아까와 비교하면, 정강수는 확실히 침착했다.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어찌나 조용한지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것 같았다. 고덕화 일행은 막막했다. 하지만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부끄럽기도 하고, 어딘
그의 한 마디에 방은 순식간에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해졌다.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느새 두 사람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하지만 정강수는 오히려 거만한 표정으로 천도준을 아니꼽게 바라보고 있었다.순간, 고청하는 눈앞이 컴컴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갸냘픈 몸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왔다.부모님은 불같이 화를 낸다. 처음 부모님을 소개시켜드리는 자리는 이렇게 완전히 망해버렸다.그럼 앞으로 두 사람의 사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고청하는 힘겹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도준아……”그녀가 막 말을 내뱉은 순간, 천도준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미소는 봄바람처럼 따뜻했다.당백호의 는 이수용이 그에게 준 것이다. 그는 이수용이 고작 그림 한 점으로 수작을 부렸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박씨 어르신에게 주는 선물이라 해도 절대 가짜일 리가 없었다.그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건 바로 정강수의 독단적인 태도였다. 그는 그림을 단 한 번만 보고 가짜라고 판단했다. 그건 아무리 전문가여도 너무 독단적이었다.그의 이런 독단적인 행동 때문에 기쁨과 환희가 차 넘쳐야 할 자리는 순식간에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고청하의 목소리를 듣고, 천도준은 웃으며 말했다.“청하야, 난 괜찮아. 난 이만 나가볼게.”이미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그가 계속 여기에 있는다면 고청하만 중간에서 곤란해질 뿐이었다.고청하는 그가 가장 힘들었을 시기에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는 어렵게 얻은 이 진실된 감정을 각별히 소중하게 여겼다.하지만 지금, 난처해하는 고청하를 보고 있자니 천도준은 마음이 아파왔다.말을 마친 천도준은 얼굴에 미소를 띄고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도준아……”고청하는 그를 잡으려고 했다.하지만 고덕화가 그녀를 붙잡았다.“청하야. 아직도 모르겠어?”“아빠…… 아빠는 제가 무엇을 이해하기를 바라세요?”고청하는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청하야, 천도준은 이 도시에서 젊은 인재라고
쿵.그의 한 마디에 방 안의 몇 몇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했다.모두가 돈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이런 소장품에 대해서는 모두 관심이 없었다. 때문에 서화 면에서는 정강수처럼 조예가 깊은 사람은 없었다.한 폭의 그림이 거의 50억에 달한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이 선물은 아주 귀한 것이었다.그 말에 천도준도 깜짝 놀랐다. 이수용은 너무 손이 컸었다. 다른 사람에게 주는 선물로 50억을 쓰다니?잠시 후, 천도준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아저씨,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분들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50억 정도는 내놓을 수 있습니다.”“어린 나이에 말은 잘하네?”정강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점잖은 그의 얼굴에 흉악한 분노가 일었다. 고청하는 눈을 반짝였다. 천도준의 몸값을 생각했을 때, 50억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그녀가 막 뭐라고 해명하려고 할 때, 정강수는 갑자기 냉소를 지으며 천도준에게 말을 걸었다.“방금 잘 못 들었어? 내가 말한 건 3년 전 시가야.”“잘 들었습니다.”천도준은 평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49억 2천 8백만원. 구체적인 가격을 어떻게 알았냐고?”정강수는 차가운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당시 이 그림이 경매에 팔렸을 때, 내가 그 경매 현장에 있었지. 이 그림은 당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한 신비로운 구매자 손에 들어갔어. 게다가 이 그림은 3년 전에 사간 이후로 한 번도 세간에 나타난 적이 없었지. 나이가 많이 어린 것 같은데, 설마 당신이 그때 그 그림을 산 사람이라고 하진 않겠지?”그 말에 고청하는 몸을 움찔했다. 그녀의 두 눈은 순식간에 휘둥그레졌다.3년 전이면 천도준과 오남미가 결혼하던 해다.그때의 천도준이 어떻게 50억 짜리 그림을 살 수 있었을까?‘설마…… 진짜 가짜란 말이야?’순간, 고청하의 눈앞은 순식간에 캄캄해졌다. 그녀의 마음은 순식간에 텅 빈 듯 공허해졌다.고덕화의 표정도 점점 굳어졌다.그는 정강수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국화의 대가이고, 이 방면에
그의 한 마디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고덕화의 표정도 순식간에 굳어졌다. 고청하 어머니의 표정도 오싹하기 그지 없었다.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아저씨, 도준이는 가짜 그림을 선물할 사람이 아니에요.”고청하는 다급히 해명했다.이건 천도준이 그녀의 부모님을 처음 만나는 자리다. 그녀의 가세로 보아, 고청하의 부모님은 천도준이 준 선물의 가치를 절대 따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물이 가짜라면 그건 의미가 달라진다.이건 가식적이고 무례한 일이 아닌가?“그래, 맞아. 한 번 더 자세히 봐. 함부로 말하지 말고.”유 원장도 고청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는 천도준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었다. 천도준 같은 사람이 어떻게 가짜를 구입할 수 있단 말인가? 반드시 정강수가 잘못 본게 틀림없었다.“그래, 아까 그저 얼핏 봤잖아. 네가 잘못본 게 틀림없을 거야.”박씨 어르신이 말했다.“뭐?”정강수는 박씨 어르신을 노려보았다.그는 국화의 대가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그림 한 점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가치가 있었다.그는 수십 년 동안 서화에 빠져있었고 직접 본 서화는 부지기수였다.당백호의 는 정강수가 한 눈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당신……”박씨 어르신은 무의식적으로 천도준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정강수를 향해 말했다. “이 당나귀 같은 놈아. 오늘은 청하가 남자친구를 데리고 인사를 하러 온 날인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천씨 가문 가주의 친아들이 어떻게 가짜 그림을 선물할 수 있겠는가? 무슨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만약 이번 일로 천도준이 대노한다면 천씨 가문의 명령하나 만으로 정강수는 그동안의 명성을 전부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왜 나를 탓하는 거야?”정강수는 매섭게 쏘아붙였다.“난 저 녀석이 여자친구 부모님에게 선물로 가짜 그림을 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야. 보잘것 없는 선물이라도 정은 깊다는 말도 있는데 값비싼 선물을 주지 못해
“걱정하지 마. 이따가 확실하게 단련시켜 줄 테니까.”박씨 어르신은 워낙 권위가 높은 사람인지라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옆에 있던 유 원장과 정강수도 고개를 끄덕였다.“걱정마시게나. 우린 오랜 벗이잖아. 우리를 초대했으니까 우리도 자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걸세.”“도대체 어느 잘난 놈이 청하 마음을 사로잡은 건지 똑똑히 봐둬야겠어.”고덕화는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 함께 주먹을 맞잡았다.바로 그때, 고청하는 잔뜩 민망해하는 천도준의 팔짱을 끼고 안으로 들어왔다.천도준을 보자마자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동시에 아연실색했다. 그들은 깜짝 놀라 순식간에 동공이 움츠러들었다. ‘저…… 저 사람이 고덕화의 예비 사위라고? 세상에.’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도 권세도 높고 지위도 높은 사람들이었지만, 천도준을 보자마자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거센 파도가 일었다.이렇게 큰 인물을 감히 누가 누구를 테스트하고, 누가 누구를 단련시킨단 말인가?박씨 어르신은 천도준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이율 병원 원장인 유 원장은 천도준의 어머니가 그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그는 천도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장 의사를 통해 천도준에 관한 일을 들은 적이 있었다.“저 사람이 바로 네가 말한, 우리더러 잘 테스트해봐라던 그 사람이야?”유 원장이 말했다.옆에 있던 박씨 어르신은 의아한 표정으로 유 원장을 쳐다보았다. 그는 유 원장이 천도준의 신분을 알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사실, 천도준은 방에 들어온 후에도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오늘 밤 고청하의 부모님을 만난 다는 사실도 미처 몰랐었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많은 거물급 인물들이 함께 있을 줄이야.박씨 어르신뿐만 아니라 유 원장도 있었다.그의 어머니가 이율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어머니를 돌봐느라 병원에 자주 들르곤 했다. 그럴 때에 유 원장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오직 그 점잖은 얼굴을 한 사람과만 초면이었다. 하지만 그는 박씨 어르신, 유 원장과 함께 자리하고 있는 걸 보면 그 또한 만만한 인
죽림 정원.웃음 소리가 본연의 고즈넉함을 깨뜨렸다. 고청하는 의자에 앉아 자신의 아버지와 그의 몇 몇 오랜 벗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봤다.한 쪽의 대원들 외에, 국화의 대가, 의학의 권위자 등등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이 사람들은 국내에서 명성이 자자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위상이 높았다. 이 사람들은 모두 고청하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들이었다. 이따가 천도준이 오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자네,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못 본 새에 이율 병원 원장으로 국제적으로 유명하더군.”중년 남자는 활짝 웃으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외국의 의학 잡지에 자네가 자주 등장하더군.”“하하하. 그만 칭찬하게나. 이게 다 검은 머리가 희도록 밤 새서 노력한 결과물이니……”유 원장이 웃으며 말했다.“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걸로 따지면 정강수가 제일 자격이 있지.”그 말에 점잖은 외모에 안경을 쓴 또 다른 중년 남자가 말을 이어갔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국제적으로 유명하다니? 정말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친 건 내가 아니라 고씨 지. 석유 재벌과 실리콘밸리의 가물들과 어울려 놀잖아.”“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내가 이번에 너희를 부른 건, 중요한 일이 있어서야.”“바로 사윗감을 테스트 하는 거지.”박씨 어르신이 진지하게 말했다.이 말에 유 원장과 정강수는 동시에 흥미를 느꼈다. 그들은 앞다투어 고덕화의 예비 사위가 누구인지 물었다.고덕화는 말없이 웃으며 나중에 소개하겠다고 말했다.“생각지도 못했어. 덕화가 이 도시에서 가문을 일으켰는데 사위도 이 도시에서 찾고, 어느 집 재주가 뛰어난 놈이 우리 조카딸을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리게 한 거야?”유 원장은 참지 못하고 한 마디했다.“기다려보면 알아.”고덕화는 살짝 웃었다. 그러면서 고청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마침 사람들도 다 모였으니 이 녀석들이 나를 도와 그 녀석이 진짜 합격된 놈인지 아닌지 테스트할거야.”고청하는 두 손을 맞잡
세 개의 분양 아파트 실시간 데이터는 꾸준히 잘 유지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일주일 정도면 이번에 나온 매물들을 다 팔 수 있을 것 같았다.이건 그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결과였다.그는 큰 주목을 받지 않는 선에서 가장 빠른 이익화를 실현하려고 했다.오후 5시, 천도준은 마영석에게 오늘 밤 축하연을 마련하라고 했다.하지만 그의 테이블로 배달된 초대장 하나가 그의 계획을 완전히 허사로 만들었다.초대장에 적힌 글자를 보고, 천도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기뻐하면서 조금 놀란 것 같았다.초대장에는 사인회관이라는 장소가 적혀 있었다.사인회관의 초대장이다. 입문 자격을 갖췄다는 뜻이었다.“누가 보낸 거지?”그는 울프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울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떤 젊은 사람이야. 그저 초대장만 건네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어.”천도준은 엉겁결에 웃음을 터뜨렸다.이 초대장은 진짜 초대장이 맞았다. 사인회관의 명성이 워낙 강하다보니 아무도 감히 이 초대장을 위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초대장에는 주인의 이름이 빠져있었다.‘혹시 박씨 어르신인가?’천도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박씨 어르신의 신분으로 이 초대장을 보낸다면 자신의 이름을 빼먹지 않을 것이다.“축하연은 오늘 너희끼리 해야겠어. 나는 약속 장소로 가봐야 해.”그는 초대장을 흔들며 마영석에게 말을 걸었다.만약 정말 박씨 어르신이 보낸 초대장이라면 상대방의 체면을 구길 수 없었다.간단한 초대장 한 장이라고는 하지만, 주건희, 주준용같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지금 상대방이 직접 그의 손에 가져다줬는데 그가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건 멍청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깊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사인회관은 여전히 독특한 신비로움과 장엄함을 자랑했다.작은 뜰.환한 등불이 비추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초대장이 없으면 함부로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진정한 사인회관의 단골손님만이, 전체 사인회관에서 이 대나무 숲의 작은 뜰에 출입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