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제 입었던 그 옷을 입고 있었다. 옷에는 주름이 가득했고 머리카락은 많이 헝클어졌으며 온몸에서 술 냄새가 세게 났다.부시아는 미간을 찌푸리고 코를 쥔 채 부채질을 하면서 입을 삐죽 내밀더니 옆으로 숨었다.“삼촌, 술독에 빠졌다가 왔어요?”“...”“일단 가서 샤워부터 하고 옷 갈아입어요. 이따가 얘기해요.”부승민은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부시아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물어볼 필요도 없었다.어젯밤 온하랑과 싸우고 나서 혼자서 술을 마시러 간 것이었다.부승민은 옷을 갈아입은 후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면서 내려와 부시아 옆에 앉았다.“숙모가 데려다준 거야?”부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삼촌 어제 숙모랑 싸웠어요?”부승민은 머리를 말리다가 그대로 굳었다. 눈을 반쯤 감고 생각하던 그가 말했다.“숙모가 뭐라고 했어?”“자기 앞에서 삼촌 얘기를 하면 우리를 싫어할 거래요.”“그럼 숙모 앞에서 내 얘기를 꺼내지 마. 삼촌이 말했었지. 우리 두 사람의 일은 너와 상관이 없어. 네가 숙모를 좋아한다면 계속 좋아하면 돼.”부승민은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짓고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다가 어젯밤 온하랑이 한 차가운 말이 떠올랐다.“시아야, 넌 모르잖아.”“내가 다른 건 몰라도 삼촌이 숙모를 포기했다는 건 알겠어요. 도와달라고 한 건 삼촌이면서 나보다 먼저 포기하면 어떡해요.”“숙모한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그 말라빠진 사람이요? 그 사람은 숙모한테 어울리지 않아요! 삼촌, 삼촌도 본인이 그 남자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부시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얘기했다.부승민은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그런 문제가 아니야. 하지만 콩깍지를 써서 한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마음이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기우는 거야. 다른 사람이 얼마나 잘났던지 말이야.”“숙모가 전에 다른 사람을 좋아한 적은 없어요?”부시아가 호기심에 물었다.부승민은 멈칫하더니 씁쓸하게 대답했다.“있었지.”두 사람이 결
부승민은 부시아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러는 부승민의 눈빛은 다소 어두웠다.온하랑이 민지훈을 좋아하는 게 뭐가 대수인가.그녀는 밝고 멋있는, 생기 넘치는 민지훈을 좋아한다. 하지만 민지훈이 다른 여자와 사귄다면 부승민은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부승민은 핸드폰을 꺼내 육광태한테 문자를 보냈다.그는 부시아와 함께 오후 내내 놀다가 육광태의 답장을 받았다.메시지를 본 부승민은 핸드폰을 끄고 부시아를 보며 물었다.“저녁에 숙모랑 자고 싶어?”“네!”부시아는 병아리처럼 고개를 끄덕였다.부시아는 온하랑과 같이 자는 것을 좋아했다.“그럼 삼촌이 지금 데려다줄까?”부승민이 물었다.한 달은 짧다. 부승민 혼자의 힘으로는 부시아를 붙잡아두기 어려웠다.하지만 온하랑이 있다면 달랐다.게다가 부시아는 매일같이 온하랑과 함께 잤으니 감정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그게 일상이 되면 나중에 온하랑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네!”부승민은 부시아에게 옷을 몇 벌 더 챙겨준 후 온하랑네 집에 데려다주었다.온하랑은 마침 집에 있었다.벨 소리를 들은 그녀는 문 쪽으로 가서 물었다.“누구예요?”“숙모! 나예요!”온하랑이 문을 열자 그 앞에는 조그마한 아이가 커다란 가방을 옆에 두고 있었다.부시아는 옆의 큰 가방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숙모가 자기를 만나고 싶지 않아 할 거라고 해서 혼자 온 거예요. 숙모, 난 오늘도 숙모랑 같이 자고 싶어요.”부시아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온하랑은 바닥의 가방을 들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들어와.”“예!”부시아는 다시 한번 온하랑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저녁에 김시연이 돌아와 부시아를 보고 복잡한 표정을 드러냈다.온하랑은 김시연을 마주 볼 용기가 없었다. 김시연의 멸시의 시선을 받을까 봐였다.하지만 온하랑도 어쩔 수 없었다. 부시아가 너무 귀여운 걸 어떻게 하란 말인가!밥을 먹을 때, 온하랑은 김시연의 표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돌아왔을 때는 괜
남자는 육광태를 알지만 부승민은 몰랐다. 그렇다고 아는 체할 수도 없었다.부승민의 시선을 마주한 그는 속으로는 전전긍긍하면서 미소를 띤 채 육광태에게 자료를 넘겨주었다.“이게 이들의 자료입니다. 한번 확인해보세요.”육광태는 보지 않고 바로 부승민에게 건네주었다.“네가 골라.”부승민은 자료를 받아들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열심히 지켜보았다.룸 안은 매우 조용했다.분위기도 약간 차가웠다.모든 자료를 다 본 그가 이름을 불렀다.“서수현이 누구지?”한 줄로 선 여자 중에서 왼쪽 두 번째 여자가 흠칫하더니 앞으로 나왔다.“안녕하세요, 제가 서수현입니다.”부승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예리한 시선으로 그녀를 훑어보았다.그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로 정했어. 다른 사람은 다 나가봐.”그들을 데려온 남자가 물었다.“한 명 더 고르지 않으십니까?”남자 두 명이서 여자 한 명을 데리고 논다는 건가?”“됐어.”“알겠습니다.”남자는 더 묻지 않고 나가면서 얘기했다.“수현아, 두 분을 잘 모셔!”다른 여자들은 실망한 표정으로 룸을 걸어 나갔다.이제 룸에는 세 사람만 남았다.서수현은 부승민과 육광태의 시선 속에서 그대로 서 있었다.그녀는 애써 진정하며 소매 속의 주먹을 꽉 쥐었다.“앉아.”부승민은 옆의 소파를 가리켰다.서수현은 부승민을 보면서 옆의 소파에 앉았다. 허리를 곧게 펴고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린 그 단정한 모습은 마치 초등학생 같았다.부승민은 저도 모르게 갓 부씨 가문에 왔던 온하랑을 떠올렸다. 그때의 온하랑도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썼지만 그럴수록 더욱 불안함이 느껴졌다.이게 바로 부승민이 서수현을 고른 원인이었다.“내가 널 왜 부른 건지 알아?”달칵. 부승민은 라이터를 켜고 담배에 불을 피워 깊게 들이켰다. 그리고 라이터를 테이블에 가볍게 던졌다.보통은 성관계하기 위해 이곳에 온다. 하지만 부승민의 질문은 평범하지 않았다.서수현이 고개를 저었다.“몰라요.”“가서 남자를 유혹해줘.”서수현은 고개를
요즘 날씨가 좋지 않아 도우미의 손자가 감기에 걸려 며칠이나 청가를 맡았다.부승민은 더이상 BX그룹의 대표는 아니지만 다른 사업을 많이 갖고 있었기에 매일 바삐 돌아 채서 부시아랑 같이 놀아줄 시간이 없었다.부시아는 그래서 당당하게 온하랑 집에서 살게 되었다. 낮에는 온하랑과 밖에서 놀고 저녁에는 온하랑과 같이 잠을 잤다. 정말 꿈 같은 일이었다.목요일에는 김시연의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 있었기에 온하랑은 어쩔 수 없이 부시아를 본가로 데려가 주었다. 그리고 저녁에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고등학교 동창 모임은 오성급 호텔에서 진행되었다.그곳에 가기 전, 김시연은 아주 아름다운 메이크업까지 했다.마친 후 거울을 보던 그녀는 소파에 앉은 온하랑을 보고 자기 얼굴을 가리키더니 흥분해서 물었다.“하랑 씨, 봐요. 어때요?”깔끔한 피부 표현에 자연스러운 색조, 약간 사나워 보이는 눈썹은 정신을 확 차리게 했다.옅은 컬러렌즈 속 드러난 그녀의 검은 눈동자. 그리고 위로 올라간 아이라인. 갈색의 팔레트까지 더해지니 김시연의 큰 눈은 더욱 크고 아름다워 보였다.딥 레드 립스틱까지 바르니 흰 피부가 더욱 하얘 보였다. 마치 겨울에 피어난 매화처럼 예뻤다.김시연이 이상한 표정만 짓지 않는다면, 그냥 무표정으로 있기만 해도 고급진 여왕 같은 매력이 있었다.“예뻐요.”온하랑이 웃으면서 말했다.“시연 씨가 직접 한 메이크업인데 실수가 있을 리 없죠.”김시연은 그녀를 밉지 않게 흘겨보고 머리를 정돈하면서 말했다.“감히 날 도발하다니. 내가 무조건 그놈을 짓밟아버릴 거예요.”헤어까지 스타일링을 마친 김시연은 옷장에서 가장 비싼 옷을 꺼내 입고 천만 원 대의 가방도 가져왔다.모든 준비를 마친 김시연을 보고 온하랑은 엄지를 치켜세웠다.김시연은 거울을 보면서 매우 만족스러워했다.그녀는 온하랑을 거울 앞에 앉혔다.“이젠 하랑 씨 차례에요. 오늘은 기죽으면 안 되는 날이에요.”저녁. 룸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고등학교 동창들은 서
김시연은 저녁을 잘 먹으면서 재밌게 대화를 나눴다.그러다가 강혜령이라는 동창이 말했다.“맞다, 시연아. 그거 들었어? 연도진 귀국했다던 거 같은데. 오늘 올 거래.”그 이름을 들은 온하랑은 김시연을 쳐다보았다.연도진. 그게 바로 김시연과 그녀의 라이벌이 같이 짝사랑했던 남자의 이름이다.김시연은 약간 흠칫하더니 얘기했다.“그래? 그럼 오라고 하지.”그녀의 눈은 약간 흐리멍텅했다. 머릿속으로는 저도 모르게 그 잘생긴 얼굴을 떠올리게 되었다. 어떤 기억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선명해진다.강혜령이 또 말했다.“오랫동안 못 만났지? 그때 너랑 이슬비가 얼마나 연도진을 차지하기 위해 싸웠었냐. 난 너랑 연도진이 사귈 줄 알았어. 그런데 연도진이 해외로 나가니까 이슬비도 나갔더라? 이번은 이슬비가 주최한 동창회라던데 그래서 연도진도 온대.”“그래?”옆의 한 여자가 말을 걸었다.“설마 두 사람 사귀는 건 아니겠지?”강혜령은 김시연을 흘깃 보고 말했다.“글쎄. 두 사람이 해외에서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했으니까. 이슬비도 계속 솔로였고. 딱 봐도 연도진 때문이잖아. 귀국해서 동창회를 연다는 건, 좋은 소식이라도 있는 건가?”김시연은 몰래 눈을 흘겼다. 허벅지 위에 놓은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다른 여자가 끼어들어 얘기했다.“그래도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라니까. 마지막 승자가 누구일지는 아무도 몰라.”김시연은 표정이 굳어서 미간을 약간 찌푸리고 차갑게 웃었다.“남이 버린 쓰레기를 주워간 것도 이긴 건가?”그 여자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김시연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하필 이때 룸의 문이 열렸다.문 앞에는 25세 좌우의 남자가 서 있었는데 키는 180 이상으로 보였다. 그는 목폴라에 정장 바지를 입고 코트를 팔에 걸치고 있었다.잘생긴 얼굴에 금테 안경까지 더해지니 정적인 매력이 있었다. 그는 주변을 돌아본 후 김시연을 힐긋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무슨 얘기 나누고
두 사람이 같이 서 있었다. 모두 다 예뻤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김시연에게 더욱 많이 집중되었다.생얼을 본다면 두 사람 다 비슷했지만 김시연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니 자기 얼굴의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 그에 맞는 메이크업을 해서 그녀의 분위기를 잘 드러낼 수 있었다.김시연은 눈을 뜨고 이슬비를 보더니 입꼬리를 올렸다.“단톡방에서 그렇게 도발하더니. 내가 오니까 두려운가 봐?”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약간 어색해졌다.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김시연의 성격은 그대로였다.사람들은 다들 연도진과 이슬비가 사귈 거라고 생각했다.1등과 2등이니까.하지만 연도진과 김시연이 사귀다니.1등과 꼴찌의 만남이다.과묵한 사람과 시끄러운 사람의 만남이다.그때 반에는 김시연과 대적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김시연의 별명 중에는 저승사자도 있었다.하지만 연도진 앞에서 저승사자는 그저 귀여운 양이 되었다.이슬비는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너 도진이랑 오랫동안 못 만났지? 도진아, 시연이 여기 있어. 아무리 그래도 사귀었던 사이인데 인사라도 할래?”연도진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김시연은 보면서 천천히 걸어왔다.기억 속의 마른 몸은 이제 성숙한 남자의 몸이 되었다. 금테 안경은 과묵한 그의 성격을 더욱 도드라지게 해주는 것 같았다.김시연은 연도진을 슬쩍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혔다.안경 너머, 연도진의 눈빛은 많은 뜻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김시연이 차갑게 얘기했다.“해외에서 안 먹히니까 돌아온 거야?”연도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물었다.“아직도 널 데려갈 남자는 없는 모양이지?”사람들은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을 듣고 서로 눈치를 보았다.이슬비가 갑자기 웃었다.“시연아, 농담도 참. 도진이는 투자 업계의 신이야. 먹히지 않다니. 헤어진지 오래됐는데 설마 아직도 도진이를 미워하는 거야? 그렇게 속 좁게 굴지 마.”온하랑이 말했다.“연도진 씨라고 하셨죠? 장난도 정도껏 하세요. 시연 씨를 짝사랑하는 남자들이 길거리에 넘쳐나요. 데려갈
다른 자리에는 다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일부러 이슬비 옆자리를 비워두었다.연도진은 입술을 약간 씹었다. 금테 안경 아래의 눈에 불쾌감이 언뜻 엿보였지만 이내 이슬비 옆에 앉았다.직원이 음식을 가져왔다.이슬비가 연도진에게 말했다.“네가 좋아할지는 모르겠어. 싫어하는 거면 다른 거 시켜도 돼.”연도진은 어두운 눈빛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의 다른 남자가 장난치듯 물었다.“내가 싫어하는데, 다른 음식 시켜도 돼?”“저리 꺼져.”이슬비가 웃으면서 얘기했다.밥을 먹을 때, 이슬비는 때때로 옆의 연도진에게 말을 걸고 또 시도 때도 없이 김시연에게 시비를 걸었다.김시연은 그런 이슬비를 무시하고 다른 친구들과 얘기를 나눴다.다른 친구들은 김시연을 더욱 좋아했다.솔로인 남자들도 일부러 김시연한테 말을 걸었다.고등학생 시절, 김시연은 성적이 좋지 않아 담임의 골치를 썩였다. 그래서 담임은 그녀를 마지막 줄에 앉혔다.마지막 줄에는 여자가 김시연뿐이었다. 김시연은 외향적인 성격으로 남자들과 털털하게 친구가 되었다.게다가 남자들도 자존심이 있었다. 이슬비는 연도진을 좋아한다고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었기에 그들은 이슬비한테 가고 싶지 않았다.오건호는 원래 김시연의 짝궁이었는데 지금 김시연을 엄청 잘 챙겨주고 있었다. 음식을 짚어주거나 음료수도 부어줬고 그녀의 직업과 삶에도 관심을 가졌다.김시연이 장난치면서 물었다.“왜 그렇게 관심하는 거야? 나랑 자고 싶어?”오건호가 웃으면서 물었다.“자게 해줄 거야?”연도진은 묵묵히 밥을 먹고 있다가 젓가락을 꽉 쥐었다. 낮게 내리깐 시선이 더욱 어두워졌다.이슬비가 옆에서 연도진을 두 번이나 불렀지만 연도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슬비는 김시연이 다른 친구들과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화가 났다.눈을 데룩 굴린 그녀는 강혜령에게 눈치를 주면서 앞의 술병을 가리켰다.강혜령은 그 뜻을 알아듣고 술을 주어 한 잔을 김시연에게 주면서 말했다.“시연아, 오랜만인데 같이 술이나 하자.”김시연은 술을 받고 같
김시연이 비틀거리면서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였다.연도진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고 안경 너머로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넋을 놓았다. 머리 속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그녀는 무슨 조폭 마누라마냥 그를 복도에서 가로막았었다.“연도진. 나 너 좋아해. 내 남자 친구 해라. 어때?”지금도 그녀의 성격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는데 호칭은 쓰레기로 변했다.김시연은 민지훈이 일부러 이슬비의 승부욕을 자극해서 동창회를 열게 만들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는 이슬비가 무조건 도발을 할 것이라 생각했고 김시연이 성격을 참지 못하고 이슬비의 도발에 넘어가서 동창회에 참가할 거란 것도 알았다.올 때 문 앞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엄청난 정신력으로 겨우 평정을 유지했다.김시연은 룸 앞에까지 가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룸에 있던 모든 사람이 대화를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김시연은 원형 테이블에 사람이 하나도 없고 테이블 근처에도 사람이 안 보이자 이상함을 눈치챘다.종업원이 이미 테이블을 치웠다고?온하랑은?소파에 있던 중년의 남성이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아가씨, 혹시 방 잘못 찾아온 거 아니에요?”김시연은 말을 한 사람을 바라보면서 어리둥절하게 머리를 긁적였다.언제부터 저렇게 나이 많은 동창이 있었지?담임이 찾아온 건가?이주혁은 몸을 일으켜 중년의 남성에게 사과의 뜻을 담아서 웃으면서 말했다.“죄송합니다. 제가 데려다주고 올게요. 시연 씨. 나가요.”중년의 남성은 어느 프로그램의 피디였는데 이주혁은 그 프로그램에 나가고 싶어서 피디를 매니저랑 같이 이번 점심 식사 자리에 초대한 것이었다.누구도 김시연이 갑자기 쳐들어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가까이 다가서자, 이주혁은 김시연 몸에서 풍기는 짙은 술 냄새를 맡아냈다. 불그스레한 얼굴을 보니 적잖이 많이 마신 듯했다. 어쩐지 조금 어리벙벙해 보였다.김시연은 고개를 들고 멈칫하더니 눈을 깜박였다.“이주혁 씨? 어떻게 우리 동창회에 있어요?”이주혁은 그녀의 팔을 밖으로 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