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바로 침대에 눕자 그녀는 그제서야 안도했지만 정신이 혼미했다. 그녀는 문을 열고 샤워하는 게 정말 익숙하지 않았다. 욕실문을 약간 투명했고 수증기 때문에 나름 잘 가려졌지만 그가 안 본다고 해도 문은 열려 있으니 그녀는 여전히 불편했다… 그가 주의하지 않았을 때 그녀는 문을 살짝 닫고, 작게 틈만 벌려 놓았다. 그녀가 다 씻고 눕자 목정침은 불을 껐다. 어두워야 사람은 더 빨리 잠에 들 수 있었다. 온연은 그 순간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져 잠이 오지 않았다. 오랫동안 입맛이 없었는데 드디어 맛있는 걸 먹고, 또 시원하게 샤워까지 마친데다 추운 겨울에 따듯한 이불속에 있으니 이보다 더 편안한 순간은 없었다. 모든 고민들은 다 집어 던지고 지금 이 순간은 이 평화로움을 만끽하고 싶었다. 갑자기, 목정침이 팔을 뻗어 그녀를 안았다. “미안해.” 그녀의 몸은 살짝 굳었다. 그가 아무 말없길래 화가 난 줄 알았고, 말을 한다고 해도 아까 전 일에 대해 트집을 잡을 줄 알았는데 사과할 줄은 몰랐다. 정신을 차리고 그녀가 물었다. “뭐가 미안해요?” 그는 그녀의 목덜미에 대고 숨을 쉬었다. “난 너랑 심개랑 진짜 뭐라도 있는 줄 알았어.” 그는 계속 이 생각만 하고 있었던 건가? 그는 과거에 그녀를 절대 믿은 적이 없었지만, 훠궈가게 화장실에서 진몽요가 그녀와 심개 사이에 아무 일이 없었다는 말을 듣고 그제서야 믿는 건가? 그녀는 대충 대답을 하고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목정침은 마음이 복잡했는지 그녀를 더 세게 안았다. 목정침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지금까지 그 날에 그런 상황이었는지 전혀 몰랐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그는 생각할수록 마음이 안 좋았고, 당연히 그땐 그녀와 심개 사이에 뭐가 있는 줄 알았다. 예전 같았으면 그는 믿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그는 절대 의심하지 않았다. 그때 그녀가 아무 말없이 다른 도시로 갔을 때, 그는 그녀가 도망갔다고 생각해서 열이 나는데도 그녀를 찾아갔다. 그들의 첫 만남은 좋지 않았다
“연아…?” 그는 작게 그녀를 불렀고, 원래는 그녀를 깨울 생각 없이 그저 자고 있나 확인하려고 불러봤다. 온연은 자고 있다고 말을 할지 말지 고민했다… 고민하던 중, 그의 행동은 더 대담해져서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녀는 갑자기 더 이상 그를 예전처럼 안 좋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그의 성격이 차가워도 그는 나름대로 자상한 남자였다. 목정침은 그녀가 깨어 있는 줄 몰랐다. 임신한 후에 그녀는 거의 침대에만 누우면 바로 잠들었고, 심지어 깊게 잠들었다. 그는 다시 몸을 뻣뻣하게 움직여 그녀를 품에 안았다. 한편, 백수완 별장. 진몽요는 소파에 앉아 족욕을 하고 있었고, 배가 아파서 얼굴이 창백 해져 있었지만 입은 계속해서 칭얼거리고 있었다. “경소경씨 나 아파 죽겠어요. 예전에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게 다 당신 때문이에요. 당신이랑 사귀고 나서 이렇게 됐어요!” 옆에 있던 경소경은 태연하게 핸드폰을 하며 그녀의 배를 문질렀다. “됐거든요, 내가 매운 거 먹지 말라고 했는데, 당신이 먹겠다고 하는 걸 내가 어떡해요? 이게 왜 내 탓인지 모르겠네.” 진몽요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그를 쳐다봤다. “그래요, 당신이 저녁마다 날 괴롭히니까 모든 게 피로가 누적돼서 이렇게 된 거라고요!” 경소경은 그 순간 그녀의 지능이 평생 좋아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 배가 왜 아픈지 잘 연구해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요. 만약 진짜 내 탓을 할 거라면 난 더 이상 대꾸 안 할래요. 됐고, 그만 징징거려요. 내가 설탕물 좀 타 줄게요. 마시고 얼른 누워 있어요, 내일도 아프면 회사 나가지 말고 집에서 쉬어요.” 진몽요는 소파에 반쯤 누워 있었다. “연말에 다들 바빠서 회사에서 야근하는데, 나만 생리한다고 월차내면 좀 그렇지 않아요? 이미 반차까지 냈는데.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죠.” 설탕물을 탄 후, 경소경은 그녀 앞에 놔주었다. “당신 하루 빠진다고 무슨 일 안 생겨요. 내가 집에서 같이 있어줄 수
이튿날 아침, 목정침은 웃으며 아래층에 내려왔고, 유씨 아주머니는 그의 기분이 좋아 보이자 물었다. “도련님 무슨 좋은 일 있으신 가 봐요?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사모님은 일어나셨어요? 같이 아침식사하시자고 부를까요?” 목정침은 넥타이를 정리했다. “아니에요, 그냥 오늘 날씨가 좋아서요. 연이 일어났어요, 내려오라고 하세요.” 유씨 아주머니는 의심스럽게 밖을 내다보았다. 분명 함박눈이 내리고 있는데, 이게 날씨가 좋은 건가? 온연은 내려가자 마자 찬 바람에 몸을 떨었다. 누군가 대문을 열어 놓고 닫지 않아서 눈꽃이 날리는 차가운 겨울 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유씨 아주머니는 얼른 문을 닫았다. “춥지? 옷 좀 더 껴입어, 감기 걸리면 안되잖아. 네가 어렸을 때 겨울에 늘 얇게 입고 등교를 해서 매년 감기에 걸렸었어. 겨울이 지나가야 나았지. 체질이 워낙 약해서 몇 년은 회복에 집중해야지.” 아주머니의 말에 온연은 목정침의 달라진 표정을 보았다. 그도 그가 예전에 얼마나 그녀에게 각박했는지 알고있는 걸까? 그녀가 자진해서 부탁하지 않는다면 그는 절대 그녀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옷 한 벌로 그녀는 몇 년을 버텼다. “아주머니 할 일 없으세요?”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유씨 아주머니는 그제서야 자신이 과거 얘기를 꺼내 말 실수한 걸 알았다. “어… 있어요! 저 할 일 많죠, 주방에 국도 끓이고 있고, 얼른 가서 봐야겠네요!” 온연은 신경쓰지 않고 웃으며 식탁에 앉아 죽을 먹었다. “왜요? 기분 안 좋아요? 이제 나한테 얼마나 못 해줬는지 알겠어요? 당신은 예전에 꼭 한겨울 같았어요. 너무 차가워서 따듯한 곳으로 숨고 싶을 정도였죠.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을만큼.” 목정침은 삶은 계란을 까서 그녀의 그릇에 올려주었다. “예전은 예전이고 지금은 지금이지.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내가 너무 한 겨울 같아서 넌 심개가 봄바람처럼 느껴졌던 거지? 내가 잘 못 해줘서 다른 사람이랑 도망갈 생각을 했겠지
“연아, 도련님 완전 달라지셨네. 너도 봤지?” 유씨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온연은 생각을 접고 대답했다. “글쎄요, 저는 모르겠어요. 날씨가 추워서 움직이기가 싫네요. 올라가서 잠 좀 자야겠어요. 맞다, 임집사님 혹시 나가시면 책 두 권만 챙겨 달라고 부탁해주세요. 제가 평소에 보던 시리즈로요. 뭔지 모르시면 저한테 직접 물어봐 달라고 해주세요.” 유씨 아주머니는 대답을 하고 그녀가 위층으로 올라가자 되려 목정침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련님, 집에 오실 때 사모님 책 두 권만 챙겨주세요. 평소에 보시는 시리즈로요, 방금 부탁하셨거든요.” 백수완별장. 진몽요는 오늘 경소경 때문에 강제로 집에 있었다. 사실 그녀의 배는 다 나았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녀는 한동안 집에 가지 않았었다. 강령은 집에 혼자 있고 평소에 연락도 잘 안 했으니, 이쯤 되면 가봐야 했다. 차를 타고 자신의 집에 도착하자 익숙한 길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특별히 강령이 좋아하는 아침밥과 선물까지 챙겨서 문을 딱 열고 신발을 갈아신으려는 순간, 그녀는 남자신발을 발견했다. 그녀의 아빠는 이미 세상을 떠났는데, 이 남자 신발은 뭘까? 의심을 하던 중 강령이 황급히 안방에서 나왔다. “몽요야, 갑자기 어떻게 왔어? 날씨도 추운데, 이 아침에… 출근 안 했어?” 진몽요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집에 누구 있어요?” 강령은 안방 쪽을 보며 “그… 내가 아직 말을 못 했는데…” 강령의 표정을 보자 진몽요는 이 일이 단순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강령은 이제 겨우 40대 초반이었고, 다른 상대를 만난다고 해도 그녀는 반대하지 않지만 지금은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돌아가신지 오래된 것도 아니고, 당시에 강령은 다른 남자를 절대 안 만날 거라고 몇 번이나 말했었다… “이런 일 굳이 말 안 해도 돼요… 저는… 별로 알고 싶지 않아요. 만나고 싶으면 저도 딱히 반대하진 않고요. 엄마는 단순하니까 다른 사람한테 사기만 당하지
진몽요는 온연의 생활패턴을 알아서 그녀가 자고 있지 않을 걸 알았다. “네, 올라가 볼게요.” 방문을 열자 온연은 기쁘게 맞이했다. “몽요? 너 오늘 회사 안 갔어?” 진몽요는 아까 집에서 목격한 상황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려와, 나 너한테 할 얘기 있어. 네 남편이 결벽증 있으니까 방 안으로는 안 들어갈래. 괜히 미움 받을라.” 목정침의 결벽증은 온연도 어쩔 수 없어서 진몽요의 팔짱을 끼고 거실로 내려갔다. “왜 그래? 아침부터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 진몽요는 썩은 표정을 하고 말했다. “나 엄마 집 안 간지 오래돼서, 아침에 갔다 왔거든. 아침밥이랑 선물까지 사 들고. 내가 남자친구 생겨서 엄마 잊었다고 잔소리 듣기 싫기도 했고. 근데 어떻게 됐는지 알아? 나한테 잔소리하기는커녕 내가 평생 안 가도 몰랐을 거야. 집에 남자가 있었거든! 누군지는 못 봤는데, 현관에 신발만 봤어. 그래서 기분이 꿀꿀해.” 온연은 듣고 멍해졌다. “네 말은… 너네 엄마 재혼 생각 있으시다는 거야? 사실… 그런 일은 자연스럽게 되는 게 좋지. 어차피 네가 말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진몽요는 한숨을 쉬었다. “나도 알아. 그래서 말릴 생각은 없어, 그냥 마음이 안 좋을 뿐. 첫째는 아빠가 돌아가신지 얼마 안 돼서 이기도 하고, 둘째는 엄마가 아직 그 남자랑 결혼한 것도 아닌데 집에 데려와서 잤다는 거야. 거긴 내 집이기도 하니까 반감이 드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그냥 짜증나. 사실 엄마가 누구한테 사기도 안 당하고 결혼할 생각이라면 신경 안 쓰겠는데, 아침부터 이 일 때문에 너무 충격 받았어. 너무 갑작스럽지 않아?” 이런 일에 온연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어른들 일이기도 하고 그녀는 반감이 들지 않았지만 진몽요의 생각에 동의했다. “네가 걱정되면 그 남자를 만나 봐. 만나기 싫으면 다른 방법으로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든지. 그럼 너도 마음 편하고 어색할 일도 없잖아.” 진몽요는 고민하더니 온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아마 엄마의 재혼에 적응이 안 돼서 그런지 진몽요는 생각도 안 하고 대답했다. “그냥 그래. 생긴 것도 별로고, 말만 좀 잘해. 예전에 본 적은 있는데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어. 사별한 것도 아니고 이혼한 건데, 그럼 이혼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혼한 사람들이 다 문제 있다는 말은 아닌데, 적어도 이 사람이 왜 이혼했는지는 알아야지. 탐정이 보낸 자료 봐봐, 이 사람 이혼한지 반 년도 안됐어. 더 잘 알아봐야겠다.” 온연은 그저 웃었다. 보니까 진몽요는 지금 석동해를 싫어한다기 보다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샅샅이 조사할 때까지 아마 진몽요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강령이 재혼을 할 생각이라면 이 관문 정도는 통과해야 했다. 유씨 아주머니가 가져다준 디저트를 먹으며 진몽요는 자신의 튀어나온 배를 만졌다. “연아, 목가네에서 이렇게 먹이면 넌 이미 살 많이 쪄야 될 거 같은데 왜 더 살이 빠진 거 같지? 내가 만약 여기서 밥 몇 끼만 더 얻어먹었으면 분명 몇 키로나 쪘을 거야. 밥 먹을 때 식탁에 맛있는 음식들만 꽉 차 있고, 국도 여러가지에 디저트도 이렇게 맛있으니 정말… 부러워서 질투 난다!” 온연은 디저트를 보기만 해도 질렸다. “내가 임신하고 난 뒤로 입맛이 까다로워졌어. 예전에 좋아하던 것들도 잘 못 먹고, 게워내는 게 더 많아. 좀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임산하면 다들 살 찌잖아. 벌써부터 실망하지 마, 곧 내가 살찐 모습 보게 될 거야. 너희 집도 주방에 셰프 있고 먹고싶 은 거 다 먹을 수 있잖아. 부러워할 게 뭐가 있어.” 경소경을 떠올리자 진몽요는 자랑스럽게 웃었다. “당연하지, 우리 경소경씨는 바람둥이 기질 있는 거 빼고 다 멀쩡해.” 온연이 대답했다. “그래도 조심해. 남자들 바람 피우는 건 다 여자하기 나름이잖아. 난 요즘 임신하고 나서 그 사람을 한번도 가까이 안 했어.” 진몽요 의심했다. “진짜야? 설마 밖에서 막 다른 여자 만나는 거 아니겠지? 이건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닌데. 그 사람이 널 좋아하면 어
갑자기, 배 위에 손이 올라오자 신경에 민감해진 그녀는 잠에서 깼고 목정침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의 자세가 너무 가깝게 느껴지자 그녀는 그의 품에서 얼른 벗어났다. “왜 이렇게 일찍 들어왔어요? 아직 3시도 안됐죠? 연말인데 회사 안 바뻐요?” 목정침은 그녀의 반응에 인상을 찌푸렸다. “나 보기 싫어? 난 회사에 있을 때 머릿속에 온통 네 생각이라 바로 온 건데. 네가 필요한 책도 사왔어. 회사 바쁘지. 근데 너랑 있는 시간이 더 중요해. 나 때문에 깬 거야?” 그녀는 유씨 아주머니가 책을 그에게 시킬 줄 몰랐다. “아니요… 그냥 적당히 잔 거 같아서요. 더 자면 저녁에 잠 못 자요. 일어나서 좀 걸어야겠어요. 당신 피곤하면 좀 쉬고 있어요.” 말을 하고 그녀가 일어나자 그가 바로 끌어당겼다. 정확하게 그의 품에 안겼고 두 팔은 그녀를 꽉 감싸고 있었다. “나랑 좀만 누워있자… 아까 오는 길에 할머니 보러 잠깐 갔었어. 네가 가고 싶은데 못 가는 거 알아. 그래서 내가 대신 갔어.” 그는 할머니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바로 말하지 않고 그녀가 묻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분명히 물을 것이다. 한번에 모든 걸 다 얘기하면 그녀는 별다른 반응이 없을테고, 그는 그녀의 과묵한 모습이 싫었다. 역시, 온연은 바로 물었다. “할머니 잘 계세요?” 그는 고민했다. “잘 지내시는 건 아닌 것 같아. 예전부터 계속 기침하던 습관이 있으셨던 거 알지? 거기 가고 나서 고모님이 병원에 안 데려가신 건지 증상이 더 심해졌어. 내가 갔을 때 혼자 집에 계셨는데, 몇 분만 있다가 나가라고 하셨어. 우리랑 더 이상 왕래하기 싫으시데.” 온연은 이 얘기를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그저 속에서 분노가 차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노부인은 곁에 둘 수 있었지만, 노부인은 그녀에게 피해가 갈까 봐 직접 떠나는 걸 선택했다. 지금은 노부인이 잘 지내지 못하는 걸 알았는데 그녀가 어떻게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목정침은 그녀를 달래줄 듯 볼에 입을 살
목정침은 당황해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말할 필요 없어서. 이 일 소경이만 알고 있었어. 원래 할머니한테도 얘기해드릴 생각 없었는데, 뭔가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 내가 숨기는 게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묻지마 연아… 어떤 일들은 너무 역겨워서 네가 몰랐으면 좋겠어.” 이 결론을 온연은 의외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가 말해주지 않을 걸 이미 예상하고 있어서 그저 물었다. “내가 당신 곁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당신은 우리가 앞으로도 이렇게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애가 있어도 우리는… 이미 거리가 많이 멀어졌고, 잊을 수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고, 두 눈을 마주치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널 원하고 있는데 어떻게 못 지낼 수가 있겠어? 네가 사랑하고 싶으면 하고, 미워하고 싶으면 해. 난 다 받아들일 수 있어. 다른 건 다 나한테 맡겨. 내가 더 잘하면 되니까. 난 너를 사랑해, 그래서 네가 날 안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순간, 그녀는 그의 동공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그 안에 반짝이는 눈을 보았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눈이 반짝인다는 말은 진짜였다. 그가 그녀를 좋아한지는 오래 됐지만 몇 번에 계절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자연스럽게 그는 그녀에게 키스했고 그녀는 거절하지 않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흔들리는 속눈썹이 그녀의 심장이 빨리 뛰고 있다는 걸 나타내고 있었다. 그가 더 깊이 들어가려 하자 그녀는 닫혀 있던 이에 힘을 풀었고, 혀 끝으로 그의 부드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갑자기 그는 그녀를 놓아주고 일어났다. “다음에 거절 안 하면 나 진짜 자제력 잃을지도 몰라. 좀 걷자. 밖에 눈 그쳤어. 내가 같이 산책 가줄게.”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고, 침대에서 내려오려 할 때 그는 손을 뻗어 그녀를 잡아주었다. 그녀도 그의 손을 잡았고, 그의 손바닥에서 처음으로 온기를 느꼈다. 이번에는 그가 직접 데려고 나갔고, 그녀에게 정원에서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