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힘 없이 반박했다. “내가 헤어지자 했어요. 걔랑 예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서, 안 맞으면 당연히 빨리 결정을 해야죠. 그리고 이건 제 일이라서 엄마랑은 상관없거든요? 내가 남자도 못 사귈까봐 그래요? 전지가 목정침 동생만 아니었어도 엄마는 걔 마음에 안 들어했을 거예요. 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엄마한테 집 선물할 사람 이제 없어요, 집 옮길려면 이제 알아서 벌어야 한다고요. 그러니까 돈 아껴쓰세요, 없이 살아봐서 알잖아요.” 딸의 성격을 알았던 강령은 이렇게 된 이상 다 물거품이라는 걸 알아챘다. “됐고, 너한테 잔소리하기도 귀찮다. 며칠 놀다 와, 우리 굶어 죽을 일 없게 일자리부터 찾고. 내 돈으로 별장은 못 사도 엘리베이터 딸린 아프 정도는 살 수 있어. 앞으로 남자 찾을 땐 내 생각도 좀 고려해줘. 차 없고 집없는 남자는 엄마 성에 안 차!” 강령이 왠일로 싸우려 하지 않자 진몽요도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엄마.” 오후 4시가 되자 목정침과 온연은 목가네에서 캐리어를 들고 진몽요를 픽업한 후 5명이서 공항에서 모였다. 목정침을 제외한 경소경과 임립은 수트를 입지 않고 캐주얼하게 꾸미고 나와서 그런지 오히려 목정침이 눈에 띄었다. 진몽요는 경소경과 임립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그때 술집에서처럼 세 사람만 가는 줄 알았는데 결국엔 또 5명이었다. 정확히 그땐 웨이터까지 있었지만, 어쨌든 목정침은 늘 예기치 못한 행동을 한다. 온연 조차도 이런 상황이 익숙해졌으니, 그녀 또한 익숙해져야만 했다. 비행기 탑승 후, 목정침과 온연이 같이 앉고, 임립과 진몽요과 같이 앉고, 경소경만 혼자 앉았다. 비즈니스석에 탑승한 그들은 비교적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이륙하기 몇 분 전, 선글라스를 쓴 키 큰 여자가 비행기에 타 경소경 앞으로 걸어왔다. “죄송한데 제 자리가 바로 옆이라서요.” 경소경은 고개를 들어 그 여자를 쳐다봤고, 여자는 갑자기 놀란듯한 표정으로 선글라스를 내리고 성형을 많이한 얼굴을 내밀었다. “도련님? 어떻게
리사는 비행기에서부터 그녀에게 불만이 많았다. 술 취한김에 그녀에게 삿대질을 하며 물었다. “무슨 고모할머니? 도련님 새 여자친구죠? 괜히 자만하지 말아요. 언젠간 버림받게 되있으니깐. 우리 어차피 다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인데 서로 이럴 거 있나요? 그 쪽이 좀 젊고 돈 있어도 3개월 안에 차일걸요. 나도 그 사람이랑 3개월은 좋았어요, 이정도면 뭐 오래 만난거죠. 필요한 거 있으면 다 사주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아쉽게도 오래는 못 갈 것 같네요, 행운을 빌어요.” 진몽요는 이 얘기가 역겨워 속으로 경소경을 미친듯이 욕했다. 리사가 떠나기도 전에 그녀는방문을 확 닫아버렸고 폰을 꺼내 경소경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 ‘필요한 거 있으면 다 사준다고 리사가 그러던데, 부탁인데 아무리 염치가 없어도 이러지는 말죠. 다시 나 깨우면 진짜 두고봐요 그땐!’ 경소경은 문자를 보고선 답장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긴 한숨을 쉬었다. 자기라고 여기서 또아는 사람을 마주칠 줄 알았을까? 그는 그저 방탕했던 과거를 탓할 뿐이었다. 한편, 온연은 침대에 누워서 잠이 오지 않아 뒤척거렸다. 호텔 침대는 너무 푹신했고, 베게도집에 있던 거보다 높아 편하게 잠에 들 수가 없었다. 목정침은 잠에 들었지만 그녀의 뒤척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왜 그래?” 그녀는 불편한 듯 말했다. “잠이 안 와요, 새침대라 그런가봐요.” 그는 그녀의 베게를 치우고 자신의 팔을 그녀의 머리 아래에 품에 안았다. “이러면 좀 괜찮아? 집이라고 생각해봐.” 자세를 바꾸니 괜찮아진 것 같았다. 근데 집이랑은 완전 다른 느낌이었다. “왠지 여행 온 게 벌 받으러 온 느낌이에요. 잠도 잘 못자고.” 그는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난 좋은데… 이러면 네가 집 떠날 생각은 안 할 거 아냐. 새 침대에선 잠을 잘 못 자니까.” 그녀는 멈칫하더니 대화주제를 돌렸다. “비행기에서 그 리사 말이예요, 경소경이랑 사겼었죠? 게다가 무명 연예인이라던데. 당신도 예전에 그런 취향이었어요?”
임립도 거들며 말했다. “해명하지 마, 해명하는 건 무언가를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고, 말 할수록 오히려 이상해지는 거지. 우리도 다 아는 데 너무 민망해 할 거 없어. 정침이 너 나이가 몇이냐 그렇게까지 체면 안 챙겨도 돼.” 목정침은 그들과 실랑이 하고싶지 않았다. 그는 술을 들고 먼 풍경을 바라봤다. 시원한 바다바람이 서서히 불어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 온 평화를 만끽했다. 진몽요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술 한 병 들어 임립에게 걸어갔다. “여기서 며칠 동안 있을 거에요?” 임립은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했다. “글쎄요, 저는 다 괜찮아요. 상황봐야죠.”경소경은 왠지 모르게 진몽요가 임립과 있는 모습이 거슬렸다. “일주일 안에는 돌아갈 거에요, 회사 일도 해야하잖아요. 다들 한가한 사람들은 아니니깐요.” 진몽요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대답했다. “그럼 저랑 연이는 한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요? 이래서 그쪽 말하는 게 싫어요. 말만 하면 디스만 하니.” 임립은 껄걸 웃었다. “정말이죠 진몽요씨. 소경이 말 버릇 싫어하는 여자도 당신이 처음이에요. 다른 여자들은 몇 마디만 나눠도 뻑가던데, 유일하게 그쪽만 걔를 할 말 없게 만들어요.” 경소경은 눈을 돌리고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5명은 홀수라서 꼭 한명은 소외되기 마련이다. 지금 그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그는 진몽요가 임립이랑 덜 친해서 혹시라도 소외될까 봐 자신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해가 저물자 그 들은 다시 해변가로 돌아왔다. 리사와 일행들도 광고를 거의 다 찍었는지, 다 같이 해변가에서 놀고 있었다. 경소경을 본 리사는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가뜩이나 작은 수영복을 입은 그녀가 과하게 움직였다. 자칫하면 옷이 흘러내릴까 걱정이었다. “도련님, 오늘 저녁에 시간 있으면 한 잔 할래요? 주변에 괜찮은 술집 있는데 분위기 엄청 좋아요~” 리사의 데이트 요청에 경소경은 이번엔 바로 거절하지 않았다. “나중에 얘기해요, 상
임립은 이 사진이 엄청난 작품을 찍은 것처럼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사진 인화해서 한 장은 내가 갖고, 한 장은 너희 줄 게. 예전에는 너희가 이렇게 부부 같아 보이는지 몰랐는데 말이야.” 온연은 고개를 떨구며 민망한 듯 웃었고, 목정침도 따라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손으로 감쌌다. 슬슬 피곤해지자 그들은 그제야 쉬러 호텔로 들어갔다. 그들이 호텔로 돌아왔을 때도 경소경이 돌아오지 않자 임립이 혀를 끌끌 찼다. “오늘 걔 지나치게 신나게 노는 거 같은데?” 진몽요는 진짜 피곤해서 그런건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침대 위에 놓인 경소경의 물건을 보자 짜증을 내며 한 쪽으로 던졌다. 아무 생각 안 하고 마음 편히 자고 싶었는데... 눕자마자 침대에 그의 향기로 가득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다시 경소경의 방으로 갔다. 이왕 방을 바꿨으니 남자 향기가 나는 방에서 잠을 청하고 싶지 않았다. 잠에 들어 비몽사몽 해진 사이에 누군가 방문을 열었다. 순간 이 곳이 타지인 게 생각 난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불을 켰다. “누구야?!” 문을 닫으려면 경소경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아까 …본인 방으로 돌아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한숨 돌리고 다시 누웠다. “계속 방 바꾸면 잠을 못 자잖아요. 그리고 그쪽은 리사방 가서 자도 되잖아요. 왜 굳이 이 방에서 자려고해요?” 그는 잠시 망설리더니 물러났다. “그럼 일찍 자요.” 진몽요는 우울해졌다. 그녀도 자신이 왜 공허한 감정을 느끼는지 알지 못했다. 둘째 날, 5명 사이에 사람이 늘었다, 바로 리사. 리사의 광고 담당 스텝들은 다 떠났고, 리사만 경소경과 함꼐하기 위해 이곳에 남았다. 이제 3남 3녀 비율로 조합이 꽤나 괜찮아 보였다. 그저 리사의 합류로 인해 분위기만 살짝 변했을 뿐. 리사는 모든 사람들이랑 특히 남자들이랑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목정침이 자신에게 관심을 안 주자 그녀는 더욱 임립과 경소경에 가까이 갔고, 경소경은 그녀가
리사는 자신이 그와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지만 대답했다. “개인적인입장으로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나만 그 사람 돈을 쓸 수 있는거죠, 다른 여자들이 가까이하지 못하게. 도련님은 여자를 그렇게 많이 만나봤는데, 진심으로 좋아하던 사람 없었어요?” 그는 리사를 보며 갑자기 이런 여자들은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건 좋아하는 게 아닌 물물교환과 같은 행동이었다. 소름끼치는 건 그전에 그가 만나온 여자들이 다 이런류의 여자들이었어도, 한번도 개의치 않았고 돈을 쓰고 즐거움을 사는 게 정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없었던 거 같은데…” 저녁, 그들은 호텔로 돌아가지 않고 해변가에 텐트치기 적당한 곳에서 캠핑을 했다. 제일 중요한 건 일출을 보는 것이었다. 저녁엔 바닷바람이 쎄서 그런지 기온도 떨어지고 있었다. 온연은 작은 의자에 앉아 바비큐 굽는 걸 멍하니 보고 있었고 그 모습이 마치 말 잘 듣는 아이 같았다. 목정침 계속해서 그녀를 쳐다보았고 시선을 단 한시도 떼지 않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엔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긴 세월동안 그녀에게 잘 해주지 않았고, 미래가 어떻게 될 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평화만 생각할 뿐이었다. 그도 어느정도 과거에 그녀에게 잘 해주지 못해서 후회하고 있었고 그 감정은 마치 이별을 기다리는 듯했다. “목정침씨, 그렇게 계속 보다간 연이 얼굴 뚫리겠어요. 부부사인데 매일 그렇게 보면 질리지도 않아요?” 진몽요는 바비큐 꼬치를 먹으며 불평했다. 목정침은 시선을 옮기고 컴컴한 바다를 바라보며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온연은 계속 멍 때리고 있어서 목정침이 보고 있었다는 걸 몰랐다. 그녀는 정신을 차려보니조금 민망했다. “몽요야, 넌 어떻게 먹는데도 입을 못 다무니? 나도 좀 줘봐.” 진몽요가 손에 들린 꼬치를 다 먹은 걸 본 리사가 경소경이 방금 구운 꼬치를 죄다 가져가 버렸다. “도련님이 구운 거라서 그런지 정말 맛있네요. 예전에는 이렇게 잘
바닷가로 다시 돌아온 리사는 아무 일도 없는 척하며 경소경 옆에서 깔깔댔다. 경소경이 고기만 굽느라 아무 것도 못 먹자 그녀가 친절하게 음식을 먹여주며 도발하는 눈빛으로 진몽요를 쳐다봤다. 진몽요는 화가 났지만 차가운 바람을 맞자 다시 열이 식었다. 내가 왜 화를 내야하지? 경소경이 누구랑 친하고, 얼마나 친하고 다 그녀랑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냥 이런 일들이 그녀랑 엮이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리사는 비행기에서부터 그녀를 거슬려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다 경소경 때문이지 않은가? 그녀는 그 때문이란 걸 깨달았지만 하나하나 따지기 귀찮아서 온연과 수다를 떨으며 먹기만했다. 늦은 밤, 진몽요와 온연은 텐트안에 같이 비집고 들어가,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작게 떠들었고, 얘기하다가 진몽요는 갑자기 일어나 고개를 내밀어 경소경 텐트 쪽을 쳐다봤다. 경소경 텐트 안은 아직 불이 켜져 있었고 얇은 천 사이로 그림자가 비쳤다. 리사도 안에 같이 있었지만 두 사람 그림자가 겹치진 않은 걸 보니 앉아서 얘기하고 있는 듯했다. 온연은 그녀의 마음을 눈치채고 웃긴 듯 웃었다. “사람들 다 있는 데 설마 그러진 않겠지. 너무신경쓰지마. 이제 4시간만 지나면 해 뜰 텐데, 시간 놓칠지 모르니까 자지 말자. 나 조금 배고픈데, 우리 바비큐 숯불 꺼졌는지 보고 뭐 좀 구워 먹을까?” 진몽요는 대답하고 선 일어나 그릴쪽으로 걸어갔다. 아직 불은 남아 있었는데, 곧 꺼질 것 같아 그녀는 숯을 더 넣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려 얼굴이 간지러웠던 그녀가 얼굴을 만지자 검은 숯자국이 남았다. 온연은 그녀를 보고선 웃으며 “몽요야 너 얼굴에 뭐 묻었다. 길 고양이 같아.” 진몽요는 짓궃게 그녀의 얼굴에도 묻혔다. “이렇게 하면 길 고양이 두마리네!” 어딘가 잘 못 된건지 진몽요가 한참을 해도 숯에 불이 붙지 않았고 남아있던 불 마저 식었다.진몽요가 간절한 눈빛으로 온연을 쳐다보자 어쩔 수 없이 그녀가 경소경의 텐트 앞으로 걸어갔다. “셰프님, 와서 고기 좀 구워 주세요
돌아가는 비행기안, 경소경은 진몽요와 같이 앉게 되었지만 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요 며칠동안 마치 진몽요는 온 에너지를 다 썼는지 비행기에 타자마자 안대를 쓰고 잠에 들었다. 착륙하고 나서도 그녀를 깨운 건 온연이었다. 각자 집에 돌아간 후 시간이 이미 저녁 9시가 넘었다. 온연이 먼저 들어가고 목정침은 뒤에서 캐리어를 챙겼다. 원래는 임집사가 공항에 마중 나오기로 했었는데 관심 집중되는 게 싫어 그녀가 거절했다. 목가네에 가정부 한 명이 나와 그들에게 인사했다. “사모님, 누가 물건을 보냈는데 사모님꼐 전해달라세요.” 그녀는 누가 보내온 건지 궁금했다. “뭔데요? 누가 보낸거에요?” 가정부는 고개를 저으며 “누가 보낸 거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내용물은 편지 같습니다.” 말을하며 가정부는 편지를 꺼냈고, 편지지를 보자 그녀는 온몸이 굳었다. 그건 서영생이 자주쓰던 편지지였다. 그녀는 편지를 건내 받고 바로 뜯어보았다. 편지 내용속 한 글자 한 글자가 그녀의 세포를 움직였고, 호흡은 가빠졌으며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 편지는 그녀에게 쓴 것이 아닌 목정침에게 쓴 것이었다. 하지만 받는 사람 이름은 온연으로 되어있었다. 그녀가 진실을 알기를 바랬던건가?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놀란 듯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뒷걸음질을 치며 눈물을 흘렸다. 목정침은 걸음을 멈추고 캐리어를 내려놓았다. 그녀에 손에 들린 편지를 보자 그는 이제 숨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결국엔 전지가 타이밍을 노리고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다. “왜…왜…?” 그녀는 한 마디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누가 잡아 조르는 것처럼 숨이 막혔고 눈 앞이 캄캄했다. 목정침은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었고 눈동자엔 불안함이 가득했다. “…미안해…” 미안해?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바로 사과했다. 그 뜻은 그가 이미 편지의 내용을 알고 있었고 내용의 진실을 인정하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미 제대로 서 있는 것도 힘들었고 계단 난간을 잡으며 가까스로 서
가정부는 옆에 숨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고, 자신이 건낸 편지가 이렇게 큰 파장을 불어 일으킬지도 몰랐다. 임집사와 유씨 아주머니도 소리를 듣고 거실로 들어왔다. 눈 앞에 이 상황을 보고선 아무도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어떤 일들은 그들이 함부로 끼어들 수 없었다. 목정침은 천천히 소파로 걸어와 앉았다. 얼굴은 심란함이 가득했고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았다. 마치 칼로 찌르는 거처럼 아파왔고, 그가 우려하던 일이 결국 일어났다. 몇 분이 지나자 그가 억지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누가 좀 따라가보세요, 저녁에 위험하지 않게.” 임집사는 대답을 하고선 경호원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온연은 기댈 곳이 없어 진몽요한테 갈 수밖에 없었다. 큰 길로 나오자, 그녀는 아무 차 한 대를 잡고 주소를 불렀고 뒤에 따라오는 검은 롤스로이드는 눈치채지 못했다. 진몽요의 집에 도착한 후 그녀는 울면서 문을 두들겼다. 심지어 그녀는 캐리어를 들고 있을힘조차 없었다. 진몽요는 문을 열고 그녀의 모습을 보고선 적잖이 놀랐다. “무슨 일이야 연아? 목정침이랑 무슨 일 있었어?”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진몽요에 품속에 머리를 파묻고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목정침이랑 앞으로 계속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모든 게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사랑해달라고 하자 그녀는 정말 그러려고 노력했으나, 그건 고작 폭풍전의 평화였고, 모든 게 다 그의 계략이었다. 집 아래, 임집사는 목정침에게 전화했다. “도련님, 사모님 진몽요씨 댁으로 오셨습니다.” 통화 너머 목정침의 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 붙여서 24시간 따라다니라고 하세요. 일 끝나면 들어오시고요.” 임집사는 한숨을 쉬며 경호원을 두고선 떠났다. 온연은 다 울고 억지로 기분을 가다듬고선 모든 걸 진몽요에게 털어놨다. 원래는 온연 혼자만 울었지만 지금은 두 사람 다 울고 있었다. 진몽요도 전지가 그런 일을 한 걸 알자 눈물이 났다. “연아… 나 갑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