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된 거예요?”한참이 지나서 가라앉은 온연이 그제야 제 목소리를 되찾았다.“나도 잘 몰라. 어제 오후 두 시 정도에 너희 어머니가 날 찾아오셔서 나한테 서류를 한 더미 주셨어. 목정침의 회사랑 관련된 문서들이였어. 난 정침네 회사에서 걔를 기다리려고 갔는데 잠시 외출했다 하더라고, 그 오는 길에서 사고가 난 거야. 어쩌다 사고가 난 건지는 몰라. 목격자를 찾긴 했어, 그런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정침이 과속를 하다 갑자기 통제가 안돼서 분리대를 들이 받은 거래.”경소경이 가라 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과속? 온연은 그를 잘 알았다. 그는 항상 침착하고 냉정한데, 과속이라니?온연은 무의식적으로 진함에게 책임을 돌렸다.“그 사람이 무슨 유용한 자료를 줘요? 강가네를 나와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목정침을 돕는다고요?!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정상적인 상황에 목정침이 과속을 한다는 게 말이 돼요? 그걸 믿어요? 다들 친구 잖아요, 친구라면 당연히 알잖아요, 그 때 무슨 일이 있던 게 아닌 이상 그렇게 행동할 사람이 아니라는 거!”경소경은 착잡하다는 듯 말했다.“냉정히 생각 해. 받은 자료들 내가 다 확인해봤는데 사람을 고용해서까지 조사한 거였어. 정말 목정침을 돕고 싶어하셔. 안 좋게 생각하지는 마. 교통사고 관해서는 나도 생각 해봤어. 나도 단지 회사에 빨리 가려고 과속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을 거야. 내가 자세히 알아볼게. 일단 지금은 정침이 깨어나기를 기다려야 확실한 걸 아니까 기다리자. 널 오라고 한 이유는 일단 안심하라고 널 부른 거야. 우선은 돌아 가. 네 몸부터 챙겨야지.”그는 말을 마친 뒤 진몽요에게 눈짓을 하였다. 진몽요는 곧 온연의 손을 붙잡고는 말했다.“연아, 내가 데려다 줄게. 기다렸다가 목정침이 깨면 다시 오자. 너한테 제일 먼저 소식 알릴게. 네 몸 상태로는 여기 오래 있기 좋지 않아. 나한테 맡겨 여기는.”온연은 말이 없었다. 눈물을 글썽이며 유리창 너머의 목정침을 바
전화가 끊겼고, 진몽요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이것도 나쁘지 않네. 도망 갈 수도 없을거고, 남의 가게에서 행패 부리지도 않을 테니까. 내가 말한 거 잊으면 안 돼,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마.”온연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차는 곧 바이올렛 카페 건너 길목에 정차하였다.진함은 이들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고, 20분이 채 되지 않아 카페의 입구에 도착하였다.진함은 급히 오며 우산도 챙기지도 않은 채 차문을 열고나왔다. 하얀 오피스룩은 다 젖었으며, 정돈되었던 머리는 모두 헝클어져버렸다. 다소 보기 좋지는 않았지만 온연을 보자마자 되려 활짝 웃으며 말했다.“네가 날 먼저 찾아 줄 줄은 몰랐어.”세 사람은 마주 앉았고, 온연은 무표정으로 진함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찾아보려 했지만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진함은 그런 온연에 불안해하며 물었다.“왜 그러니?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온연이 이를 악 물고는 대답했다.“누구 아이디어죠? 당신? 강연연? 아님 둘 다?”진함은 어리둥절 한 듯 보였다. 얼굴에 띄운 웃음기가 점차 없어졌다.“무슨 일 생긴 거야? 네가 무슨 말 하는지 이해가 안 돼. 온연, 우리 사이에 이런 태도로 교류할 필요 없잖아. 뭐든 괜찮으니 말 해봐.”입을 열기도 전, 온연의 감정은 또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누가 보더라도 망가지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진몽요는 그 모습을 발견하고는 온연 대신 말을 건넸다.“경소경을 찾아 갔던 거 맞죠? 자료들을 줬다던데, 목정침네 회사랑 관련된 자료들이요. 경소경이 목정침을 찾아 회사로 갔고, 그 때 목정침은 회사에 없었어요. 회사로 돌아가던 길에 교통사고가 난 거죠. 지금 중환자실에 누워있어요, 의식도 없고요. 온연 혼자 아이 둘을 떠안게 되면 어떻게 하죠?”진함은 한참 동안 이 말의 뜻을 소화하고는 대답했다.“그래서, 온연 네 생각으로는 내가 목정침을 해치려고 이를 설계했다는 거니? 자료를 건넨 거랑 사고가 우연이
유서라는 두 글자를 듣자마자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다.“죽지도 않았잖아요. 유서 받을 필요 없어요. 그냥 버려버리세요!”임집사와 경소경, 임립과 진락이 한 자리에 모여 이 자리가 몹시 무섭고 엄중하다는 듯 느껴졌다. 정말 목정침이 죽기라도 한 분위기였다.의사는 급히 해명했다.“부인, 너무 흥분 마세요. 유서는 정말 높은 확률로 쓸모 없어질 겁니다. 저는 목대표님의 담당 의사입니다, 호전되는 상태가 매우 선명했기 때문에 그저 전달 드렸을 뿐입니다.”말을 마친 뒤 의사는 가운 안에서 흰 종이를 꺼내 들었다. 당시는 급한 상황이었기에, 대충 처방전 위에 허술히 써낸 빈약한 모습이었다.온연의 두 손이 떨려왔다. 종이 한 장을 천근의 무게라도 되는 듯 무겁게 받아 들었고, 그 위 써진 글자를 눈에 담는 순간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만약 내가 죽는다면, 통제 가능한 모든 재산을 내 본처 온연에게 넘기기를 경소경에게 위탁합니다.’본처, 그의 눈에 자신은 그의 아내였다. 평생 구금하려는 장난감이나 죄인이 아니였다. 평생 모아온 것을 가장 원망스러운 사람에게 물려줄 이는 없을 것이다.경소경은 그의 상태가 안정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걱정되었던 마음이 편해져 장난을 칠 여유까지 생겼다. 그는 온연의 손에서 유서를 빼앗아 들었다.“정침이 유서에 뭐라고 썼나 한 번 볼까…”글자를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는 그 짧은 시간동안 느긋한 표정에서 근엄한 표정, 마지막으로는 허탈한 웃음까지 나왔다.“죽어서도 나를 안 놓아줄 생각이었나보네. 쟤가 가진 걸 모두 현금화하려면 꽤 오래 바빴을텐데 괜찮다니까 다행이다, 시간 허비하면서 대신 일 안 해줘도 되겠어.”임립 역시 흘끗 읽어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마땅히 받을 벌 받았네 뭐, 형수님 안심해요. 별 일 없다니까.”온연은 속이 매우 상했었으나 잔뜩 놀려대는 통에 얼굴이 자연스레 붉게 달아올랐다.임집사는 헛기침을 두어번 하며 그들에게 말했다.“도련님들, 저희 도련님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
경소경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일회성이라고 할 수 있지. 한 번에 200만, 자세한 거라면… 내 친구 어머니가 여자친구를 좀 데려오라고 재촉 하시나봐. 걔는 결혼은 싫다하고. 그래서 연기해 줄 사람을 찾아 달라 하더라고. 그저 연기일 뿐이야. 스킨쉽이야 조금은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지나치지는 않을 거야. 만약 그 가족이 마음에 안 들어한다면 일회성으로 치는 거고, 만족 했다면 다음이 있겠지. 가격이 마음에 안 든다면 다시 조율할 수 있어.”가짜 여자친구 행세를 해주면 200만원이라고? 진몽요는 더 이상 오래 생각하지도 않고 대답했다.“급여도 괜찮네, 근데 잘 말해둬. 스킨쉽은 어느 정도여야 할 거야, 조금이라도 지나치면 당신 찾아가서 그만큼 받아낼 거야.”두 사람은 죽이 잘 맞았다. 진몽요는 기뻐하며 밥을 얻어 먹은 후 집으로 돌아와 못 잔 잠을 보충했다.오후 5시 반, 경소경은 제 시간에 그녀에게 연락을 취해왔고 그녀에게 옷까지 보내왔다. 심플한 흰 와이셔츠에 검은 스커트였다. 옷의 라벨은 제거되지 않았고, 가격을 발견한 그녀의 심장이 한참 동안 두근거렸다. 이렇게나 비싼 옷이라니, 한참 동안을 건들이지도 못하였다.옷을 갈아입은 진몽요는 사이즈가 딱 맞아 떨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허리와 가슴 부분이 몸에 맞게 붙어 몸매가 부각되는 효과가 좋았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는 돌려줘야 할 옷이기에 감히 상표를 뜯어내지도 못하였다.1층으로 내려오니 경소경이 있었고, 그는 진몽요를 한 번 쭉 훑어보는 듯 했다. 눈빛이 매우 반짝이고 있었다, 만족한 모습이였다.“자, 타.”진몽요는 건성건성 걸어 가 조수석에 몸을 실었다.“어떻게 직접 데리러 와? 나랑 같이 그 친구 집에 가는 거야? 민망하지 않겠어? 그 친구 자료있으면 먼저 줘, 집에 갔는데 뭐라고 부를지도 모르면 안 되잖아. 내 출신도 속여야 하나? 어서 정해놓자고, 잘 돼서 장기로 이어지면 나야 좋으니까.”경소경은 두어번 헛기침을 하더니 얼굴 표정이 굳은 채
곧 경가네 공관에 도착 하였고, 진몽요는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집은 제도에서도 비싼 편일 것이다, 세세하게 역사의 흔적이 스며있어 돈을 주고 살 수 있는지도 의문인 곳이였다. 마당의 백 년은 족히 넘은 듯한 고목나무는 그녀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이 나무만 하더라도 가치가 어마어마 할 것이다.“마음에 들면 자주 오면 되겠네.”경소경은 옅은 웃음을 띈 채 능글능글한 어조로 농담을 던졌다.“누구 취향이 이렇게 희한하냐?”진몽요는 그를 흘끗 째려보고는 하이힐을 신은 채 큰 보폭으로 걸어 나갔다. 일부러 동작을 과장하였다. 하람의 눈에 못나 보일수록 그녀에게는 이득이였다.문을 열고 들어서니 하람은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던 때 였다. 품 안에는 회색 빛깔의 푸들이 있었다. 그녀는 진몽요를 한 번 보고는 웃는듯 아닌 듯한 얼굴로 말했다.“자기 집에 오는 듯 하는구나. 가식이 아닌 것 같아서 좋네.”진몽요의 머리로는 그녀가 반어를 하는 것인지 말 그대로 진실인지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곧장 걸어 가 하람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강아지가 정말 예뻐요, 신경 많이 쓰시나봐요?”하람이 경소경을 째려보고는 대답했다.“저 놈이 날 심심하게 하니, 강아지를 기를 수밖에 없었지. 만난지는 얼마나 됐나?”진몽요는 아무렇게나 말을 뱉었다.“얼마 안 됐어요. 아직 깊게 교류는 못 한 상태에요.”경소경은 단박에 진몽요가 자신을 골탕 먹이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위층으로 피신을 갈 수밖에 없었다.“엄마 나 일 좀 처리할 게 있어서, 좀 이따 다시 내려올게. 몽요랑 애기 나누고 있어요.”몽요? 진몽요는 그가 자신을 몽요라고 부르는 것을 처음 들었다. 이는 연기임에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경소경이 올라간 후, 하람은 강아지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진몽요의 곁으로 자리를 옮겼다.“방금 아직 깊게 교류는 못 했다고 했는데, 그럼 아직이라는 건가?”뭐가 아직이냐는 거야?! 진몽요의 머릿속에서 천둥 번개
식탁에서 그녀는 고의적으로 한 쪽 발을 의자에 올려 놓는가 하면, 음식이 입에 든 채로 말을 하며, 반찬을 집은 집게는 꼭 하람의 앞으로 늘어뜨려 놓았다. 알려져 있는 식탁에서의 온갖 혐오스러운 행동은 다 실천하며, 그 와중에 어리숙하다는 듯 일부러 하람의 눈치는 살펴댔다.10분쯤 지난 후, 안색이 어두워진 하람은 젓가락을 식탁위에 내려놓았다. 진몽요는 깜짝 놀라 하던 짓을 멈추고 다리는 곱게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경소경, 너 죽었니? 몽요 좀 도와서 반찬 좀 집어주지? 그게 그렇게 어려워?!”“…???”“알았어요, 마저 드세요. 챙겨 주면 되잖아요…”하람은 대답을 듣고 서야 식사를 이어가다 다리를 곱게 내려놓은 진몽요에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 올려놔도 돼. 그게 편하면 그렇게 하는 거지. 외부 사람도 없는 걸, 집처럼 생각 해. 격식 차리는 건 낯선 사람들 끼리나 하면 되지, 집안에서 그럴 필요 있니? 밖에서나 좀 조심하면 돼.”진몽요는 무너져 내렸다. 하람에게서 패배를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진몽요는 더 이상 과장하기도 지쳤고 원래 제 모습대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성격이 원래 털털하긴 했지만 좋은 환경에서 잘 자랐고, 기본 예의범절은 갖춘 그녀였다.하람의 눈에 웃음기가 떠올랐다. 반평생을 살며 온갖 사람들은 다 만나본 그녀였고, 진몽요가 잔꾀를 부린다는 것은 진작에 꿰뚫어 보았다.공관에서 나온 진몽요는 곧장 경소경에게 손을 내밀었다.“돈이나 줘.”경소경은 눈썹을 찡그리며 대답했다.“우리 사이에 이렇게 삭막해야 하나? 안 그래도 난 네 사장인데, 내가 그걸 안 줄까봐?”진몽요는 돈을 받아갈 생각에 기쁠 뿐이었다.“현실적이면 좋지 뭐, 우리는 각자 필요한 걸 취하고 있잖아. 그리고 이 옷, 벗어서 돌려주려 했는데 네가 라벨도 다 떼어버렸으니 상관없는 걸로 한다?”“벗어 준다고? 여기서? 정말로?”경소경은 제 특유의 웃음을 지어보였다.“꺼져, 꺼져! 어쩜 이렇게 뻔뻔하지?
온연은 한마디 대꾸한 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몸을 이리저리 뒤척여 댔다.그렇게 3시간이 지났고, 진락의 차가 저택으로 들어서는 것을 발견하고 그녀는 시선을 달력으로 돌렸다. 오늘은 금요일이었고 진몽요가 출근하지 않는 날 이였다. 곧바로 그녀에게 문자를 전송했다.‘나 병원에 가서 목정침 상태 좀 보고싶어. 듣기로는 의식을 찾았다 던데, 괜찮으면 나 데려다 줄 수 있겠어? 미안해, 이렇게 늦었는데 신경 쓰이게 해서.’답장은 곧 바로 도착하였다.‘나한테 이렇게 공손히 할 건 또 뭐야? 금방 갈게, 기다려.’온연은 방긋 웃는 이모티콘을 하나 보낸 뒤 옷을 갈아입었다. 이런 늦은 밤에 진락이나 임집사에게 부탁하기는 애매했고, 방금 그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이 보였던 반응도 신경이 쓰였다.온연은 사실 갈등하고 있었다. 그를 보러 가고 싶었으나 그가 깨어 있을 때는 피하고 싶었다. 그와 마주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기에 그가 잘 때라면 덜 어색할 것 같았다. 그의 유서가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고, 다시금 침울한 기분이 들었다.진몽요는 금방 도착하였고, 저택의 현관까지 들어오면 안 된다 주의 했었기에 좀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였다. 온연은 곧 차에 탔고, 진몽요의 질문이 들려왔다.“이 밤에 무슨 일로 병원에 가? 나 정말 너 같은 임산부는 처음 본다. 이 야밤에 안자고 병원에 가다니. 내가 네 남편이었으면 너 때문에 기절했다.”온연은 괜시리 치맛자락을 만지며 대답했다.“이따 병원 도착하면 너무 길게 대화하지 말자. 그 사람 시끄러운 걸 안 좋아해.”진몽요는 수상한 냄새를 맡은 듯 질문해왔다.“연아, 솔직히 말해봐. 너 목정침 많이 좋아하지?”온연은 곧바로 반박했다.“무슨 소리야! 절대 아니야! 내 눈에 그 사람은 그저 가족일 뿐이야, 중요한 가족. 유일한 가족이기도 하잖아.”“그런건가… 너랑 목정침이 알고 지낸 지가 몇 년 째이고, 넌 심개를 좋아했으니까. 목
온연은 어딘가 긴장이 되어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아니요! 전 그냥… 무서웠어요. 중환자실에 있었잖아요, 정말 죽은 사람 같았거든요… 그런 모습은 처음이였어요, 너무 무서웠다고요…”그의 입꼬리가 얕게 올라갔다.“…그래, 알았어.”온연은 긴장을 풀기 위해 다른 화제를 찾아 질문하였다.“어쩌다가 사고가 나신 거에요?”그는 자세한 경위를 그녀에게 알리기 싫었다. 그녀에게 알려봤자 좋을 게 없었다. 그녀에게 심리적 부담감만 더 안기게 될 것이였다.“물어보지 마. 알아도 별 소용없을 거야.”그는 말을 이었다.“진함이 준 자료들은 정말 유용했어, 도움이 될 거야. 네가 생각했던 그런 건 아니야. 내 사고랑은 연관 없어. 이전에는 강가네를 위했겠지만 지금은 널 위하고 있어. 날 해치는 건 그 사람에게 아무런 의미 없어.”온연은 진함의 이야기를 화제로 삼기 싫었다.“알았어요.”“그리고 강연연이랑도 만난 적 없어.”그가 갑자기 화제를 돌렸고 온연은 잠시 멍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화제의 이야기는 온연을 어색하게 만들었다.“해명 할 필요 없어요… 듣고 싶지도 않구요.”“그래, 알겠어.”그의 한마디 후 또 다시 침묵이 흘렀으나 온연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고, 무료함을 느끼지도 않았다. 어둑어둑한 조명 아래 온연은 굳이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고, 그저 묵묵히 그의 옆에 앉아있었다.그렇게 20분쯤 지났을까, 목정침은 더 이상 인기척이 없었다. 잠든 듯하였다. 그의 상태는 정상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보였다. 방금 그녀와 조금 나눈 대화로 체력이 모두 소진된 듯했다. 온연은 그가 잠에 들었음에도 그에게 한마디조차 할 수 없었다.온연은 그에게 이불을 잘 덮어준 뒤 조심스레 그곳을 벗어났다. 진몽요는 밖에서 기다리다 잠에 들 기세였다.“마님, 이제 갈까요?”온연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미안, 갑자기 깼길래 얘기 좀 나눴어.”진몽요는 온연을 탓하지 않았다.“다행이네, 안 깼으면 괜히 왔던 거잖아. 이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