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연이 입술을 삐죽거렸다.“본인 입으로 직접 말한 거예요, 난 아무 말도 안 했다고요. 어쨌든 심개랑 3년 전에 몹쓸 사건까지 터졌었으면서. 정침 오빠랑 결혼한 지금은 더 조심히 행동했어야죠. 유산했다는 그 아이… 정말 정침 오빠 아이는 맞긴 해요? 솔직히 말하죠?”강연연은 주변에 사람들이 있던 말던, 현재의 장소가 어디든 거침없이 말을 하였다. 무해하다는 듯 눈을 연신 깜박거리기까지 했다. 그에 온연이 놀라울 정도로 냉담하게 반응하였다.“그래, 아니야. 이제 만족하지? 이제 니 물건들 들고 꺼져줄 수 있겠니?”일순간, 장소에 있던 사람들이 떠들썩해졌다. 그녀가 대중들 앞에서 바람을 인정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임립이 화들짝 놀랐다.“온연, 화났다고 막말하지 마. 다른 할 말 있으면 퇴근 후에 해. 강연연, 너 목정침 찾아야 한다며, 따라와!”강연연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갑자기 몸을 숙이며 온연의 귓가에 그녀만 들을 수 있도록 속삭였다.“그래, 내가 널 쳤어. 그래서? 엄마도 내가 쳤다는 거 알아. 그런데도 날 대신해서 합의하러 나갔다는 건, 네가 누구에게도 쓸모없는 잡종이라는 거야. 정침 오빠도 참, 널 데리고 사느니 차라리 개를 키우는 게 낫지. 네 뱃속에 잡종은 죽어 마땅했어!”온연이 억눌러왔던 감정들이 이 자극에 일순간 폭발해버렸다. 온연은 미쳐버린 듯, 책상 위의 아무 물건이나 집어 강연연에게로 던져버렸다.“죽어 마땅한 건 너야!”임립은 어떻게 해야 온연을 진정시킬 수 있을지 감조차 안 잡혔다. 재빠르게 눈치 챈 임립이 강연연을 한쪽으로 끌어당겼고, 온연은 이내 곧 서류들과 필기류, 심지어는 책상 위에 있던 작은 선인장을 던지기 시작했다. 사무실의 사람들은 본인들의 책임자가 다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직원들이 잔뜩 몰려와 온연을 속박하였다.“진정해!”온연의 아랫배가 책상에 눌려 고통스러웠고, 교통사고로 입은 상처까지 욱신거렸다. 그러나 온연은 상처 따위 개의치 않았다.
#온연은 회사에서 나온 뒤 목가네로 돌아가지 않고, 심개에게 문자를 보냈다.괜찮아? 나를 노리고 벌어진 사고였는데, 너한테까지 폐 끼친 것 같아 미안해.이에 심개는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난 괜찮아, 상처만 좀 생겼을 뿐이야. 너야 말로… 지금은 좀 어때? 널 노린 사고였다니… 그건 무슨 뜻이야?”온연은 그런 역겨운 이야기를 남에게 강요하기 싫었다.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나도 괜찮아, 내 쪽은 다 좋으니까 안 물어봐도 돼. 네가 괜찮다니 됐어. 먼저 끊을게.”진몽요는 지금 출근했을 터였다. 온연은 그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 카페에 들어선 온연은 라떼를 주문한 뒤 창가에 앉아 창 밖의 차들을 구경하였다.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유리창 너머로는 길고양이가 보였다. 지저분한 몰골이었지만 푸른 두 눈만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 예쁜 눈으로 온연을 쳐다보며 다가왔다. 온연의 입꼬리가 자기도 모르게 말려 올라갔다. 손가락을 뻗어 창문에 갖다 대자 길고양이가 자신의 앞발을 들어올려 유리를 사이에 두고 그녀의 손가락을 마주해왔다. 그 순간, 온연은 자신이 그 고양이를 거두겠다 생각했다. 고양이와 애완동물 가게에 데려가 지저분한 것들을 씻겨낸 후 함께 목가네에 도착하자 이를 발견한 유씨 아주머니는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연아, 어디서 이런 고양이를 데려온 거야? 도련님은 고양이 털 알레기가 있으셔. 저택에서 이런 거 못 기르게 하실 거야…”알레르기? 기르지 못하게 해? 온연은 무조건 키울 것이다.“아주머니, 제가 이 저택의 안주인 맞죠? 제 집이기도 해요. 제가 제 집에서 일을 하는데, 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봐야하죠? 그 사람이 싫어하는 건 그 사람 일이고, 전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거예요. 틀린 것도 없지 않나요? 그 까짓 거, 방을 나눠버리면 되겠네요. 제 방에서 고양이를 기르면 방해될 것도 없잖아요.”온연은 곧 미소를 띄우며 고양이를 안고는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침실 앞에 도착해 망설이다가 이
#모두가 온연이 그를 두고 바람을 피웠다고 알게 되었다. 기사의 제목도 곧 ‘목부인이 목정침을 두고 바람을 피웠다.’ 라고 쓴 것과 다름없었다. 기사를 다 읽은 온연이 담담하게 핸드폰을 집어넣었다.“지금 다 봤네요. 그래서요?”목정침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눈빛은 곧 사람을 잡아먹을 듯하였다. 목소리 역시 극도로 차가웠다.“그래서?!”온연이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뉴스를 보라고 하셨잖아요, 봤어요. 당신이 당신 아이가 아니라고 직접 말하지 않았나요? 전세계 사람들이 알게 됐잖아요, 잘 되지 않았나요? 괜히 아빠 노릇 할 일 없어졌잖아요.”음식을 들고 나오던 유씨 아주머니가 온연의 이야기를 듣고 놀랐는지 들고 있던 것을 놓쳐버렸다. 도기가 깨지는 소리와 울렸고, 목정침이 벌떡 일어나 온연의 양 어깨를 사납게 잡아왔다.“다시 한번 말해 봐!”온연은 목정침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전엔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표정이었다. 온연은 목정침이 곧 자신에게 행패 부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온연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하기까지 했다. 이젠 목정침 앞에서 조심할 필요가 없었다. 유씨 아주머니는 상황을 급히 파악하고는 목정침을 당겨 내기 바빴다.“말로 해결 못할 게 뭐 있어요?! 어릴 때부터 연이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는데, 때리실 수 있으세요?! 연이는 지금 볼멘소리나 하는 거예요, 더 이상 무슨 다툼이 필요하겠어요?!”목정침이 애꿎은 옷깃만 매만졌다. 극한까지 차오른 화를 억누르는 듯했다.“온연, 우습게 봤다고 나한테 맞서겠다 이거지? 두고 봐, 좋아, 어디까지 하나 지켜보겠어.”분위기가 잔뜩 열 오르던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분위기와 맞지 않는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유씨 아주머니는 겁이 났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화실의 문은 잠겨 있었지만, 창문은 닫혀 있지 않았다. 고양이는 창문으로도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을 까먹었다.목정침의 안색이 변하였다. 소리를 쫓아 가보니, 희고 통
#온연은 식사를 하며,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꾸했다.“그 애는 ‘물건’이 아니예요. 제 고양이고, 이름은 탕위엔이에요.”“그게 뭐가 됐든, 처리해. 날이 밝기 전까지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으니까! 네가 처리하지 않으면, 내가 직접 처리 하겠어.”목정침이 의논할 필요도 없다는 어투로 말했다.“탕위엔보다 저를 더 싫어하시면서, 왜 진작 저는 처리하지 않으신 거죠? 계속 남아있으면 눈에 거슬리지 않나요? 전 탕위엔 처리 못해요. 당신이 밖에서 이리저리 나도는 거 허락할\게요. 강연연 한 명만 키우시는 거 아닐 텐데, 고양이 한 마리가 뭐 어때서 그래요?”온연은 죽음이 두렵지 않은 듯 말했다.“온연!”목정침은 다시금 폭발해 식탁을 세게 내려쳤다. 온연은 이를 들은 체 만 체하더니 입안의 음식을 천천히 씹어 삼키고는 또 느긋이 대답하였다.“소리 치지 마세요, 저 귀 안 먹었어요. 어차피 집에 돌아오시는 것도 싫어하시는 데다가, 목가는 이렇 게나 큰 저택이잖아요. 고양이 한 마리조차 용납이 안되나요?”목가네의 보모들과 하인들은 놀라움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들 모두 오늘 밤 총성 가득한 전쟁이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끝끝내 목정침이 지고 말았다. 그는 식사도 마치지 않고 어두운 얼굴로 목가를 떠났다. 목정침이 떠난 걸 확인하고는 유씨 아주머니가 온연에게 말했다.“너 이게 뭐 하자는 거니? 도련님을 화나서 떠나버리게 만들다니. 거기다 고양이까지 기르게 되면, 도련님은 저택에 더욱 안 돌아오실 거야. 목가는 안 그래도 땅이 많잖아, 도련님이 다른 애인이랑 다른 곳에서 정착해 머물겠다고 하시면, 속상한 건 네가 아니겠니? 고양이 위한다고 도련님을 못살게 굴 필요 없잖아. 당장 고양이 돌려보내자, 내가 다른 보호자 찾는 거 도와줄까?”온연은 단호한 태도로 대답했다.“그가 돌아오던 안 돌아오던 고양이는 돌려보낼 수 없어요. 방금 고양이가 건드렸는데, 알레르기 반응도 없었잖아요?”유씨 아주머니는 어찌 할 방도가 없었다.
#목정침이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경소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 사건은 내가 너 대신 처리해 줄게. 난 네가 파트너들이랑 계약할 때마다 매번 동정심 받는 꼴은 못 본다. 우리 정침씨는 자기 실력으로 먹고 사는구나~.”목정침은 그를 한껏 째려보았다.“입 좀 닥쳐!”경소경이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내 생각에는… 걔 건들이지 않는 게 좋겠어. 네 앞에 있을 때는 토끼 같은 줄로만 알았는데, 폭발하니까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전혀 예상 못했네.”목정침은 짜증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니까 이제 꺼져.”경소경이 소리 내어 웃었다.“하하, 그래 그래. 보니까 우리 정침이 오늘은 사무실에서 밤 새야겠네, 안쓰러워라. 그럼 전 동참하지 않겠습니다. 따듯한 집으로 돌아가 쉬어야지~.”이튿날 아침. 목정침이 단정히 옷매무시를 바로잡은 뒤 사무실 안 휴게실에서 나서자, 곧바로 비서 엘리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목대표님, 심가에서 사람이 오셨습니다.”목정침은 넥타이를 매만지며 눈살을 찌푸렸다.“들어오라고 해.”엘리는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돌려 나섰다. 곧 심개가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의 얼굴 에는 교통사고로 생긴 상처가 여전했기 때문에 목정침은 그 상처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심가의 회사 이름은 그대로 둘 거야. 너는 매니저를 맡아 관리할 건데, 네가 억울하다면 사람을 바꿔줄 수 있어. 어쨌든 너희가 가진 주식 점유율은 나한테 대수롭지도 않다고, 내 말 알아듣겠나?”심개는 이를 악물더니 대답했다.“그래.”목정침은 데스크 위의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참, 그리고 온연에게서 떨어져. 심가를 다시 돌려받을 기회라도 얻고 싶다면.”심개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당신은 정말 최악이군. 남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그렇게 막대하다니. 이건 알아둬. 심가가다시 일어나고 연이가 허락하는 그 즉시, 연이는 내가 데려 갈거야.”잠시 목정침의 눈 안에 분노가 일었다. “그 날은 영원히
#온연의 기분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탕위엔이 그녀의 손등에 제 몸을 비벼왔다. 온연은 그런 탕위엔을 내려놓고는 창가로 걸음을 옮긴 온연이 목정침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 수신음이 1초가 채 이어지기 전, 온연이 재빨리 전화를 끊어버렸다. 지금 그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자 별 반응도 없을 것이다. 그 안에 개인적인 원한이 들어있던 안 들어있던, 모두 상업적인 일이라며, 그녀가 알 이유 없다고 할 것이다. 온연은 심개에게로 전화를 돌렸다.“심가가 목정침한테 넘어갔다니? 왜 나한테 일찍 말 안 해줬어? 너 전에 날 찾아온 것도 이거 때문이었지? 그때… 너 정말 기분 안 좋았겠구나.”심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어투로 대답했다.“약육강식, 심가는 목가와 비교조차 할 수 없어. 매수된 건 이상할 것도 아니야. 아예 없어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 해야지. 어쨌든 난 심가의 예전 가업을 맡아 살피고 있어.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그 주인이 목정침이라는 것 뿐이야. 언젠가 심가의 모든 걸 내 손안으로 돌려받도록 할 거야. 연아, 걱정하지 마. 정말 괜찮아.”온연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난 너 믿어, 어려울 것 하나도 없을 거야. 다 잘될 거야.”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심개가 돌연 화제를 바꾸었다.“나 파혼하려고.”온연은 당황스러웠다. “파혼한다고…? 이럴 때 고가네랑 파혼하는 건 엎친 데 덮친 격 아니야?”심개는 온연과 생각이 다른 듯하였다.“애초부터 난 고만만을 좋아하지도 않았어. 심가네에 일이 생겼는데, 고가네에서 굳이 같이 얼굴 붉힐 필요는 없지. 지금이라도 파혼하는 게 모두에게 좋을 거야. 우리 심가네는 아직 여자한테 기대야만 하는 처지까지는 아니야. 나 잠시후에 회의가 있어서, 이만 끊을게.”전화를 끊은 뒤 온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온연은 목정침에게서 그 누구도 지켜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현재는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오후 무렵, 유씨 아주머니가 급히
#온연은 더 이상 밥 먹기가 힘들었고, 연어가 담긴 접시를 든 채 위층으로 향하였다. 탕위엔은 연어가 굉장히 맛있는 듯하였다. 순식간에 이를 먹어 치워버렸다. 하얗고 동그란 몸을 그녀의 다리에 계속하여 문질러왔다. 온연은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 웅크려 앉고는 탕위엔의 털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하였다.“탕위엔, 넌 길 고양이였는데 어쩜 이렇게 통통할 수 있어?”그때, 갑자기 화실 문 밖에서 코웃음 소리가 들려왔고, 온연이 고개를 휙 돌려 바라보았다. 목정침의 그림자가 언뜻 지나갔고, 곧 서재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온연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가끔은 동물이 인간보다도 인간성이 있었다. 적어도 탕위엔을 바라보고 있으면 행복하였다. 고양이와 한껏 노닥거린 후, 온연은 침실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이곳에 있으면 결코 한가롭지 못했다. 그녀는 내일부터 회사에 다시 출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한밤 중,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목정침은 몰려오는 피곤함에 눈을 감고는 눈썹을 만져대었다. 침실로 돌아가 잠을 청하려 했으나, 그를 거슬려 하는 온연이 떠올라 곧 그 생각을 접었다. 그때, 문득 창가에서 인기척이 들렸고, 그가 경각심을 지닌 채 일어나 둘러보는데, 다리 아래에서 갑자기 부드러운 털의 촉감이 느껴졌다.그의 온몸이 굳었고, 곧 소름이 끼쳐왔다. 두피까지 저려오는 듯했다. 무언가 신비한 힘에 둘러싸여 몸이 굳어진 듯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다리에 붙어오는 탕위엔을 발로 밀어낼 수조차 없었다.“아… 아주머니…!”그가 어렵게 도움을 청했으나, 아래층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은 저택의 하인들이 모두 휴식을 취할 시간이었다.그가 얼마나 이를 악물고 참아왔을까, 그에게 흥미를 잃은 듯한 탕위엔이 그의 책상위로 가볍게 튀어 올랐다. 불빛이 밝은 노트북에 흥미가 오른 것인지 키보드를 마구 밟아대었고, 저녁 내내 그가 일했던 노동 성과들에 무수한 기호들이 덧붙여졌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당장 안 내려와?!”탕
#온연은 그를 신경쓰기 귀찮아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런데, 갑자기 옆자리가 움푹 꺼지는 것이 느껴졌다. 목정침은 오늘 이 방에서 잠을 자려는 것인가? 방금 나왔을 때 분명 수건 하나로 치부만 가린 채였는데?온연은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이불을 하나 더 챙겨와야만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같은 침대에서 각자 이불을 덮은 채 밤을 지샜다.다음 날 아침, 온연이 눈을 떴을 때 목정침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몸을 감쌌던 이불은 가슴팍까지 내려온 상태였고, 죄악스럽게도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의 쇄골로 향하였다. 비록 본 적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른 아침이 그녀의 양 볼은 금세 붉어졌다.돌연 어젯밤 탕위엔을 대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고, 괘씸해진 온연은 그의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당겨버렸다. 또 빈틈이라도 있을까 온연은 자신이 덮던 이불까지 그의 몸 위에 얹어버렸다. 그에게 산채로 죽음에서 깬 맛을 보게 할 셈이었다.이 모든 일을 끝낸 후, 온연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침 식사를 하였고, 유씨 아주머니에게 뒷마당에 탕위엔을 두고, 집 안에 못 들어가게 해달라 부탁까지 하였다. 탕위엔이 안정된 모습을 본 후에야 온연은 비로소 마음 편히 출근할 수 있었다.한 시간쯤 지난 후, 목정침이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의 몸 위에 덮어진 이불을 발견하고는 어딘가 기묘함을 느꼈다. 어쩐지 지나치게 더웠고, 땀까지 흘렀다. 악몽을 꾼 기분까지 들었다. 마치 산에 묻히는 듯한…비상 디자인 그룹.임립이 회의를 마친 뒤, 계약서를 들고 나오며 말했다.“목씨 그룹이랑 계약 건이 있는데, 누가 가서 결재 받아 올래? 나는 오후에 출장이 있어서 못 가거든.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했는데, 이거 천년에 한 번 올까 말까한 기회야. 많이는 못 가고, 두 자리 있어. 알아서 상의하고, 정해지면 이주임한테 보고하도록 해.”이에 곧 사무실이 시끄러워졌다. 목정침과의 식사 자리인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물론, 온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