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술집 밖에 세 대의 군용 트럭이 도착했다.차에서 무장군인들이 내리더니 신속히 술집의 출입구를 봉쇄하고 손님들을 밖으로 대피시켰다.술집 사장마저 군인들에게 쫓기다시피 해서 밖으로 나왔다. 한지훈이 있는 룸을 중심으로 술집의 모든 출입구가 순식간에 봉쇄되었다.검은색 군화를 신은 길정우가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한지훈의 앞에 다가갔다. 그는 동생의 상태를 힐끗 살피고는 섬뜩한 눈빛으로 한지훈을 노려보며 욕설을 퍼부었다.“죽고 싶구나!”한지훈는 길정우의 시선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네 동생이 저지른 짓에 대해 응징하고 있으니 끼어들지 마! 내 말 무시하면 너까지 같이 패버릴 테니까!”그 말을 들은 길정우가 비웃음을 터뜨렸다.철컥!순간 그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들고 한지훈의 미간을 겨누었다.“한지훈, 군인과 내 여동생을 잔인한 방식으로 폭행한 건 중범죄에 해당해!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널 쏴버려도 할 말 없다는 얘기야!”한지훈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싸늘하게 말했다.“내 얼굴에 총을 겨눈 놈 치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놈은 없어.”그 한마디에 방 안 분위기가 팽팽하게 고조되었다.북양의 총사령관이 누군가에게 총으로 협박당하다니!상부에서 알았으면 기함하며 쓰러질 상황이었다.길정우의 눈에 비친 살기가 점점 더 짙어졌다.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길시아가 한지훈을 손가락질하며 길정우에게 소리쳤다.“오빠, 이 놈 죽여! 죽여 버려! 감히 날 상대로 폭력을 휘두른 놈이야! 머뭇거릴 필요 없어!”사실 총은 그냥 협박용이었다. 길정우는 승진을 앞두고 불필요한 소란을 피하고 싶었다.한지훈은 주저하는 길저우를 보고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어서 쏴 봐.”길정우가 분노하며 소리쳤다.“내가 못 쏠 것 같아?”말을 마친 길정우가 방아쇠를 잡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그런데 이때, 군인 한 명이 안으로 달려오더니 길정우의 귀에 대고 말했다.“한민학 군단장이 부대원들을 데리고 오셨습니다!”그 말을 들은 길정우는 크게 당황하며 물었다.“군단장이 왜?
한민학 군단장을 직접 만나는 날이 오다니!오관우는 만면에 아부 섞인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군단장님, 저는 오찬그룹 후계자 오관우라고 합니다.”하지만 한민학은 그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곧장 한지훈에게 다가가며 물었다.“한 선생, 괜찮으신 거죠?”그 모습을 지켜본 오관우와 강희연은 당황했다.이게 무슨 상황이지?군단장 한민학이 한지훈에게 극존칭을 쓰다니!왜 매번 한지훈이 위기에 몰릴 때면 한민학이 나타나서 도와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오관우는 한민학과 한지훈의 관계가 너무 궁금했다.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한지훈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멍하니 서 있는 오관우, 강희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괜찮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말을 마친 그는 곧장 옆방으로 달려갔다.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강우연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한지훈에게 말했다.“지훈 씨, 미안해요. 다 제가 못나서 도움도 못 되고….”한지훈은 그 모습을 보자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는 강우연에게 다가가서 한쪽 무릎을 꿇으며 그녀의 차가운 손을 어루만져 주었다.“괜찮아. 당신 탓 아니니까 일단 병원부터 가자.”강우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지훈은 단숨에 그녀를 소파에서 안아올렸다.강우연은 얼굴을 붉히며 그의 따뜻한 품에 얼굴을 묻었다.한지훈은 그대로 그녀를 안고 술집을 나섰다.술집 밖은 한민학이 데려온 부하들이 현장을 통제하고 있었다.상황이 궁금한 손님들은 군인들 사이로 목을 빼들고 안쪽 상황을 살폈다.한지훈이 강우연을 안고 밖으로 나오자 그들은 너도나도 핸드폰으로 그 모습을 촬영했다.그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차에 올라 병원으로 향했다.부상이 심각했기에 강우연은 며칠 입원하면서 경과를 관찰하기로 했다. 한지훈은 병원과 집을 오가며 아이와 그녀를 돌봤다.오늘도 그녀에게 줄 삼계탕을 끓여 들고 오는데 병실 안에서 요란한 다툼소리가 들려왔다.“강우연, 네가 무슨 사고를 쳤는지 알아? 한지훈 그 자식이 길시아를 때려서 병원에 입원시
태연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한지훈을 보자 서경희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지금 뭐라고 했어? 네가 해결한다고? 그것도 하루만에? 넌 허풍 안 떨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어?”“그래! 직장도 없는 백수 주제에 무슨 수로 거래처를 해결해? 넌 거울 좀 보고 주제 파악 좀 하고 살아!”강신도 옆에서 거들었다.그는 이 상황이 매우 불편했다. 길시아를 때린 건 한지훈인데 온 가족이 쫓겨나게 생겼다.그러건 말건, 한지훈은 직접 끓인 삼계탕을 강우연의 병상 앞에 가져다 놓고 그릇에 담아 그녀에게 주었다. 강학주는 그 모습을 굳은 얼굴로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그래서 무슨 수로 해결한다는 건데?”그 말을 들은 서경희와 강신은 조바심이 났다. 서경희가 강학주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언성을 높였다.“여보! 저 새끼가 하는 말을 믿어? 그냥 허세 부리는 거잖아!”서경희는 씩씩거리며 한지훈을 향해 소리쳤다.“경고하는데 한지훈,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나랑 같이 길씨 가문을 찾아가서 사과드려! 내 딸 지켜준다며? 그럼 우연이랑 고운이를 위해서 남자 노릇 한번 해! 네 경솔한 행동으로 불러일으킨 사고는 네가 책임져야지!”강우연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엄마, 지훈 씨는 잘못 없어. 길시아가 먼저 폭력을 행사한 거 아시면서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 있어?”강우연은 자신을 지켜준 한지훈이 오히려 비난 받는 이 상황이 지긋지긋했다.분노한 서경희가 강우연에게 삿대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너 미쳤어? 아직도 저 자식 편을 들어? 지금 회사가 어떤 상황인지 알기나 해? 영감님이 미쳤어! 3일 안에 이 사건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모두를 내쫓겠다고 했다고!”말을 마친 서경희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고래고래 통곡했다.그 모습을 본 강우연은 힘없는 목소리로 한지훈에게 말했다.“미안해요. 이제 나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네요.”한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서서 강학주에게 말했다.“하루만 시간을 주세요.”강학주는 인상을 쓰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딱 하
한지훈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아닙니다. 주소 보내주시면 내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그 말을 끝으로 한지훈은 사무실을 나섰다.그 시각, 강운그룹 회의실은 삭막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고위 임원과 강가의 친인척들이 전부 회의에 참석했다. 그만큼 회사의 존망이 달린 심각한 문제였다.“어르신! 당장 한지훈 그 놈을 길가에 보내 사과하게 하세요! 안 그러면 회사 망해요!”“그래요, 회장님! 지금 열 곳이 넘는 거래처에서 계약 파기를 선언했어요. 하루 만에 손해 금액이 수백억이란 말입니다! 이러다가 파산하겠어요!”“길 중장이 직접 경고 메시지를 보냈으니 누가 감히 거역하겠어요? 이 모든 게 한지훈 그 자식이랑 강우연이 사고 쳐서 생긴 일이잖아요! 그들을 길가에 보내 처벌을 받게 하는 게 맞아요!”사람들은 격분한 얼굴로 강우연 일가를 길씨 가문에 보내 사과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상석에 앉은 강준상 회장의 얼굴에도 먹구름이 끼었다.강희연이 나서서 불 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할아버지! 더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이에요!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가문이 아니잖아요! 그날 밤에 저도 현장에 있었는데 한지훈 그 미친 놈이 여자를 상대로 주먹까지 휘두르는 모습을 똑똑히 봤어요. 게다가 길 중장과도 현장에서 충돌이 있었죠. 한민학 군단장이 어떻게 알고 왔는지는 모르지만 길 중장이 군단장으로 승진하면 바로 강운그룹에 보복을 시작할 거예요. 그때 가면 모든 게 늦어버린다고요!”“그래요! 아버지, 더 고민할 시간이 없어요!”강문복도 옆에서 거들며 사람들에게 눈치를 주었다.“한지훈이 이 집에 들어온 뒤로 바람 잘 날이 없어요. 불행을 몰고 다니는 애들이에요! 재앙신이 따로 없다고요! 길씨 가문에서 이 일로 물고 늘어지면 우리 다 죽어요! 저들을 집안에서 내치는 것만이 답입니다!”“맞아요!”“강 이사님 말씀이 맞아요. 어르신, 빨리 결정을 내려주세요!”“맞아요! 저들 때문에 회사가 망할 수는 없어요!”강준상은 굳은 표정으로 지팡이를 두드리며 차갑게 말했다
“뭐라고? 우리와 계약한다고? 확실해?”강준상이 눈을 크게 뜨며 재차 확인했다.이 시점에 강운에 손을 내미는 기업이 있다고?이는 대놓고 길정우 중장에게 반기를 드는 것과 다름없었다.다른 사람들도 어안이 벙벙해서 서로 눈치만 살폈다.하지만 이건 기회가 틀림없었다.사람들은 기업 대표들을 움직인 배후가 궁금했다.“설마 우리 강운에 숨겨둔 귀인이 있었던 겁니까? 길 중장의 경고를 무시하고 우리랑 계약하려는 회사가 나타나다니요!”“귀인이 나타난 게 틀림없네요! 길조가 들었나 봅니다!”“빨리 나가서 만나봅시다!”사람들은 다급히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강준상도 강문복의 부축을 받으며 로비로 나왔다.열 명이 넘는 기업 대표들이 긴장한 얼굴로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육 대표, 왕 대표, 이게 무슨….”강준상은 아는 얼굴들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전부 S시에서 난다 긴다 하는 기업의 대표들이었다.평소에 강준상이 만나서 차 한잔 하자고 그렇게 초대를 보내도 거절하던 사람들이었다.그런데 이 사람들이 한날 한시에 회사로 찾아와서 계약을 제안한 상황!강준상은 흥분을 금치 못하며 그들과 악수를 나누었다.주 대표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강준상에게 말했다.“강 회장님은 참 복도 많아요. 이한승 회장님과 이렇게 두터운 친분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저희는 이한승 회장님의 지시를 받고 강운에 거래를 제안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여기 계약서와 투자계획이 든 서류가 있으니 검토해 보시고 문제없으면 사인하시죠.”뭐라고?이안그룹 이한승?사람들을 그 말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모두가 궁금했던 귀인이 S시 재계 1위 이한승 회장이었다니! 망해가는 회사를 되살리고 4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일류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만든 전설의 인물이었다.강준상은 흥분을 금치 못하며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보고 사인까지 마쳤다.지금 이 순간 강준상은 모든 게 꿈만 같고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강문복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그런데 이한승 회장님께서 왜 갑자기 우리 회사를 돕
말을 마친 주 대표 일행은 뒤돌아서 자리를 떴다.이게 전부 한지훈 덕분이라고?직장도 없이 백수 생활을 하는 그 녀석이?믿기지 않았다.강준상은 다급히 주 대표를 쫓아가서 물었다.“주 대표님, 그게 사실입니까? 이한승 회장님께서 정말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요? 한지훈 그 버러지를 위해 우리를 돕는다고요?”주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영감님, 전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한승 회장님은 확실히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왜 그런 결정을 하셨는지는 한지훈 씨와 이 회장님 둘만 아는 비밀이 있겠죠. 그럼 저는 일정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주 대표는 급하게 자리를 떴다.로비에 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한지훈? 그 인간이 이한승 회장과 무슨 사이지?”강희연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강문복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계획했던 일이 전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그는 서둘러 강준상에게 다가가서 말했다.“아버지, 아직은 안심하기 이릅니다. 상대는 길정우 중장이에요. 3일 뒤면 군단장으로 승진하게 됩니다. 이 회장이 아무리 힘이 있어도 군인 장교와 비교할 수는 없죠! 게다가 이한승과 한지훈이 정확히 무슨 사이인지 밝혀지지도 않았잖아요. 이건 확실히 하고 가야 할 것 같아요.”강준상도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일단 선물 좀 준비해서 나랑 병원에 좀 다녀오자꾸나.”“할아버지! 안 돼요! 할아버지는 우리 가문 가주이신데 어찌 어린 강우연의 병문안을 가시려고 그래요? 이런 일은 저와 아버지한테 맡기세요.”강희연이 다급히 말했다.강준상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너희끼리 다녀와. 한지훈이 이 회장이랑 무슨 관계인지 자세히 알아내. 이 녀석 우리한테 뭔가 숨기는 게 많아.”강희연과 강문복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재빨리 회사를 떠나 대충 선물을 고른 뒤, 병원으로 향했다.그 시각, 한지훈은 고운이를 병실에 데려간 뒤, 과일을 사러 밖으로 나
그 말을 들은 강우연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이 거물들이 다 지훈 씨 때문에 온 거라고요?'게다가 이한승이라면, S시의 갑부가 아니던가. 이런 대단한 사람이 한지훈 때문에 강씨 집안을 돕는다니. 이건 대놓고 길정우네 집안과 맞서겠다고 선전포고를 한 거나 다름없었다.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한지훈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대체 한지훈은 뭘 숨기고 있는 걸까?한민학과 친구라고 했을 때는 같은 직군이라 특별 대우를 했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이한승과도 인연이 있다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강우연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녀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강문복을 바라보았다."큰아버지, 사실은 저도 잘 몰라요. 지훈 씨가 말해주지 않았거든요."그 말을 들은 강문복이 웃으며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오면 어찌 된 일인지 물어보자꾸나."강학주와 서경희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들도 퍽 의심스러운 눈치였다.강학주가 물었다."형님, 이한승 회장이 친히 사람을 보내 우리 강운그룹과의 협력 의사를 전했다는 게 정말입니까? 게다가 그게 한지훈 때문이라고요?"강문복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니까. 그래서 확인차 어르신이 우리를 보낸 거 아니겠어. 만약 한지훈이 정말 그분과 특별한 사이라면, 이 소중한 기회를 잘 이용해야지, 안 그래?"그러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서경희가 중얼거렸다."권력도 힘도 다 잃은 무능한 녀석에게 그런 재주가 있을 리 없잖아.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지."비록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으나 가슴이 두방망이질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그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인형을 갖고 놀던 한고운이 사람들한테 다가왔다. 조막만 한 머리를 갸웃거린 아이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아빠는 대단한 사람이에요. 엉첨나게 큰 건물도 샀고 나쁜 사람들도 쫓아냈어요. 그런 식으로 말씀하지 마세요..."그러자 기분 나쁜 티를 내며 눈살을 찌푸린 서경희가 비아냥거렸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이 되바
"그것참 아쉽게 됐군. 우리도 어르신이 잘 알아보라고 하셔서 온 거야. 볼일 끝났으니 우린 이만 가봐야겠어."곧바로 태세를 전환한 강문복은 바로 강희연을 데리고 이곳을 벗어났다. 불과 2분 사이에 그의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강학주가 그들을 배웅하려 했으나 서경희가 차가운 목소리로 제지했다."당신이 가서 뭐 하게? 배웅이라도 해주려고? 저 사람들 표정 안 보여? 그냥 여기 있어!"서경희가 한지훈을 향해 고개를 홱 돌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비웃었다."능력은 변변찮으나 이번 일은 잘 해결했다. 더는 이 일로 따지지 않으마. 하지만 3일 뒤면 길정우 중장의 진급 축하 연회가 열린다는 걸 잊지 말거라. 길씨 가문과의 문제는 해결했어? 우리한테 피해를 주면 가만있지 않겠어!""맞아, 아직 제일 중요한 문제가 남았다고. 한지훈, 해결 못 할 거 같으면 고분고분 사죄드리러 가는 게 어때?"강신도 맞장구를 쳤다.한지훈이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마음 놓으세요. 잘 해결될 겁니다."짧게 코웃음 친 서경희가 몸을 돌렸다.강우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학주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어 강학주도 서경희를 따라 병실을 벗어났다.이제 병실에 남은 사람이라곤 한지훈과 강우연, 그리고 옆에 앉아 장난을 치고 있는 한고운뿐이었다.강우연이 다시 한번 물었다."정말 이한승 회장님과 아무 사이 아니에요?"강우연을 자리에 앉힌 한지훈이 대답했다."특별할 거 없는 사이야. 자꾸 이상한 상상 하지 말고, 이리 와서 내가 깎아주는 사과나 먹어.""아빠, 나도 사과 먹고 싶어."장난감을 품에 안은 아이가 한지훈의 품에 덥석 안겼다.부드럽게 미소 지은 한지훈이 아이의 코를 아프지 않게 쥐었다."그래, 우리 딸한테도 깎아줘야지."늦은 저녁 용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용일이 예의 바르게 입을 열었다."총사령관님, 일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직접 오셔서 확인하시겠습니까?"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강우연을 흘끔거린 한지운이 대답했다."알았어. 곧 가지
단해룡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수십 명의 천왕계 고수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단해룡을 중심으로 한 무리는 더 이상 강우연과 말다툼을 벌이지 않았고, 행동으로 강우연에게 한씨 가문이 반드시 멸할 것이라고 알렸다! “너희들…… 정말 내 스승님이 돌아오시는 게 두렵지 않다는 말이냐?!”천검종의 한 제자가 급히 앞으로 나서서 강우연을 가로막으며 창백한 얼굴로 외쳤다.도청전인은 이제 단해룡과 무리를 견제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단해룡 일당에게 있어 초천서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도청전인은 대화조차 나눌 자격이 없는 존재였다.“네가 말하는 게 도청전인이냐?! 그가 내 앞에 선다 해도, 감히 나를 반하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냐?!”단해룡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그 말과 함께, 단해룡의 몸이 번개처럼 움직이며 순식간에 강우연을 향해 돌진했다.“멈춰라!”단해룡이 강우연으로부터 다섯 걸음도 채 떨어지지 않았을 때, 무리 뒤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사람들은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고, 그곳에는 도포를 두른 한 노인이 있었다.백발이 바람에 휘날리며, 선인과 같은 풍모를 자아내며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였다.“도청전인?!”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놀라서 소리쳤다.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도청전인이 강우연을 위해 직접 나설 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하지만 문제는, 과연 단 한 명의 도청전인이 단해룡을 포함한 수십 명의 고수들을 상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모두 오성 용급 천왕계 강자였고, 도청전인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혼자서 이 모든 적을 상대할 수는 없을 터였다.“도청전인, 나는 불필요한 살생을 원치 않는다. 천검종과 한씨 가문은 본래 아무런 연관도 없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강우연과 초천서의 자식들을 위해 이 많은 무림인을 적으로 돌리는 것이냐?”단해룡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도청전인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빠르게 강우연에게 다가갔다. 그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예를 갖춘 채 말했다.“노비가 늦게
그때가 되면 누가 국왕의 자리에 오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단해룡은 이렇게 거리낌 없이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단해룡! 감히 국왕 폐하를 무시하다니, 네 놈은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이순풍이 분노를 터뜨리며 손을 들어 단해룡의 가슴을 향해 공격했고, 사성 천왕계의 강대한 힘으로 주변 공기가 요동치며 거대한 소용돌이가 형성되었다. 그 기세는 단해룡을 단숨에 제압할 듯했지만, 이순풍의 손바닥이 단해룡에게 닿기 불과 세 치 거리에서 단해룡이 주먹을 내질렀다! 그 주먹에는 강력한 진법의 위력이 담겨 있었다.이순풍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그가 채 손을 떼기도 전에, 단해룡의 주먹이 이미 그의 가슴에 명중했다!“푸욱!”이순풍은 즉시 피를 토하며 공중으로 튕겨 나갔고, 그의 몸은 무려 7~8미터가 날아가 거대한 고목을 들이받고서야 땅에 나뒹굴었다.“이 장로님!”대장로는 재빨리 앞으로 달려가 쓰러진 이순풍을 부축했다.“이 장로님, 괜찮으십니까? 상처가 깊습니까?”이순풍은 이미 숨이 가빠져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는 힘겹게 손가락을 들어 단해룡을 가리켰지만 단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흥! 난 이미 경고했다. 당신 따위는 감히 나와 싸울 자격조차 없다고!”그는 거만하게 고개를 젖히고 큰소리로 웃었다.“단해룡! 감히 종묘의 장로를 해치다니, 그 대가가 얼마나 클지 알고나 있느냐!”대장로는 이를 악물며 쏘아붙였다. 그러나 단해룡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흥, 아직도 이해를 못 한 것 같군. 그 계약이 폐기되는 순간, 세상은 완전히 뒤바뀔 것이다!”“그때가 되면 무력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가 올 텐데, 너희 같은 종묘나 무종 장로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리고 한 가지 확실히 말해주지, 그날은 멀지 않았다!”이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정신이 번쩍 들었다.무종과 명산들은 그동안 산속에 틀어박혀 세속과 단절된 삶을 살아야 했었기에, 그들에게 있어서 이 말은 마치 구원의 빛과도 같았다.
용국을 배반한다니?!이순풍의 흰 눈썹이 살짝 꿈틀거리더니, 차가운 시선으로 단해룡을 바라보았다.“용국을 배반한다고? 단 맹주, 자네 간이 참으로 크구려!”말이 끝나자마자, 이순풍은 사성 천왕계 강자의 기운을 뿜어내며 단해룡을 응시했다.무종의 대장로 또한 손에 든 지팡이를 힘껏 쥐며, 차디찬 눈빛으로 단해룡을 주시했다.'배반'이라는 단어는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대역죄다.단해룡이 어떤 신분이든, 이 말을 내뱉는 순간 곧바로 역적이 되는 것이며, 역적이라면 누구든 죽여 마땅했다!“흥! 겨우 사성 천왕계 따위가 감히 내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거요?!”단해룡은 이순풍을 전혀 눈에 두지 않았다.종묘 장로가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어도, 그들의 권위는 단해룡 같은 무종 강자 앞에서는 무의미했다.무종에서 통하는 것은 오직 주먹뿐이며, 힘이 곧 정의였다! “쾅!”단해룡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거센 돌풍이 평지를 휩쓸었다.이때 하늘엔 먹구름이 몰려들며 대낮의 태양마저 어둠 속에 가려졌다.곧이어 하늘에서 천둥이 울려 퍼지더니, 맑았던 하늘에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비록 아직 싸움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이미 승부는 갈린 것이나 다름없었다.두 사람은 비록 서로 손을 대지 않았지만, 이미 우열을 가리기에는 충분했다. 단해룡이 아무렇지도 않게 진법을 펼쳐, 기후마저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이순풍과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드러나는 것이었다!“이 씨 어르신, 어찌 생각하오?”단해룡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얼굴이 굳어진 이순풍을 보고 비웃듯 말했다.“자네는 아직도 내가 예전과 같은 경지일 거라 생각한 거요?”“지난 수십 년간, 나는 단 하루도 단련을 멈춘 적이 없소. 비록 옛날에 내가 자네에게 한 수 밀렸던 적이 있긴 했지. 하지만 지금 자네는 나와 싸울 자격조차 없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오!”쿠궁!단해룡의 이 말은 그야말로 극도로 거만했다!종묘 장로조차 자신과 싸울 자격이 없다는 듯이 내뱉다니!이순풍의 호흡이 한층 거칠어졌다.강우
한지훈의 아이들도 반드시 죽어야 한다!이곳에 모인 자들은 애초부터 강우연과 말로 해결할 생각이 없었고, 그들의 신분만으로도 강우연을 압도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바로 그때, 검은색 SUV 한 대가 달려와 한지훈의 저택 정문 앞에서 멈춰 섰다.문이 열리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 나왔다.그는 바로 무종의 대장로였다! “이 많은 인원이 모여서 고아와 과부를 괴롭히려 하다니, 너무한 것 아닌가? 더구나 한지훈의 시신이 아직도 식지도 않았거늘, 국왕 폐하의 조명이 내려진 상태에서 국부인인 강우연을 감히 건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대장로는 지팡이를 짚고 서서 묵직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동시에, 반대편 차 문이 열리며 종묘의 한 장로도 차에서 나와 단해룡 무리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무종이든 무맹이든, 국가의 법도를 따를 줄 알아야 할 것이다!”“혹시, 자네들은 천성종의 사례를 잊은 것이냐? 설마 국왕 폐하께서 다시 한번 천성종의 비극을 자네들에게도 반복하게 만들지 않을 거라 믿는 게야?!”종묘 장로가 뒷짐을 진 채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천선종은 30년 전에 국가의 대군에 의해 멸망한 무종의 종문이었다. 그 당시 천성종의 한 제자가 사소한 자존심 싸움 끝에 한 도위소병을 살해했고, 무종 제자의 신분인 그는 조정이 이 일을 그냥 넘길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뜻밖에도 국왕은 즉시 명을 내려 두 개의 야전 군단을 출동시켜 천성종을 포위했고, 살인자를 넘기지 않으면, 천성종을 평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당시 천성종의 문주는 무종의 고위층 및 무맹 맹주와 친분이 있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조정의 행동이 그저 경고일 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다음날, 두 전투 군단은 만 개 이상의 포를 동시에 쏘아 올리며 심지어 공군까지 동원했다. 무종의 제자들이 강하다고 한들, 이런 급이 다른 공격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게다가, 당시 국왕은 작전부에 포탄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부인, 큰일 났습니다! 문밖에 수십 명의 고수가 몰려왔습니다. 게다가 천검종 제자들 중 상당수가 중상을 입었고, 상대측에서 십 분 안에 나오지 않으면 강제로 쳐들어오겠다고 선언했습니다!”한 천검종 제자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강우연 앞으로 달려와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뭐라고?!강우연은 최근 며칠 동안 벌어진 일들이 분명 배후에서 조종하는 자가 있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무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한지훈이 사라지고 도청전인마저 행방이 묘연한 상황에서, 강우연의 현재 실력으로는 이 많은 고수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하지만, 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강우연은 설령 싸워서 이길 수 없더라도 정면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물러나 있어라. 내가 직접 나가 보겠다!”강우연은 단호히 말한 뒤, 간단히 몸을 정리하고 검복으로 갈아입은 뒤 저택을 나섰다. “여러분, 제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토록 몰려와 죄를 묻는 것이죠?”단해룡 등 무리를 마주해도 그녀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네 따위가 감히 우리를 건드릴 자격이 있단 말이냐? 사실대로 말해 주지. 오늘 우리가 온 이유는 단 하나! 바로 한지훈이 남긴 빚을 갚으러 온 것이다!”단해룡이 뒷짐을 진 채 험상궂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고, 원상호도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한지훈이 우리 원씨 가문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죽였는데, 어쨌든 우리에게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해명?!강우연은 이를 악물고 싸늘하게 말했다. “어떤 해명을 말하는 거지?”“흥! 한지훈이 저지른 죄악을 말하자면 끝이 없지. 하지만 우리 원씨 가문은 원래 도리를 중시하는 집안이다. 한지훈이 우리 원씨 가문의 두 어르신을 죽였으니, 그 대가는 당연히 치러야겠지!”“목숨은 목숨으로 되갚는 것이야말로 가장 공정한 처사다! 그렇지 않습니까?”원상호가 말하며 뒤쪽에 서 있는 무리들을 돌아보았다.“옳소! 살인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는 법!”“그래! 한 목
한지훈은 담담하게 말했다.“도청전인?”국왕은 지금까지 도청전인을 만나본 적이 없었고, 그가 누구인지도 몰랐다.하지만 한지훈이 추천한 인물이라면 믿을 만했다.“그럼 짐이 그에게 관직을 하사하여, 나라를 위해 전력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겠는가?”국왕이 신중하게 묻자, 한지훈은 손을 흔들며 고개를 저었다.“그럴 필요 없습니다. 용국이 위기에 처하면 그가 스스로 나설 것입니다. 그는 무종 사람으로 자유로운 삶에 익숙합니다. 오히려 관직을 주면 그에게 부담이 될 것입니다.”“제가 그를 국왕께 추천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금부터 저는 공개적인 장소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오륙으로 떠나기 전까지, 적어도 제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아야 합니다.”국왕은 이 말을 듣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한지훈, 그대는 진정 나라의 기둥이로구나! 가장 먼저 찾은 것이 아내와 자식이 아니라 짐이라니! 짐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겠구나!”위기가 해소되자 국왕의 표정도 한층 부드러워졌고, 한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오직 국왕 폐하의 근심을 덜기 위해 이곳에 온 겁니다. 이제 할 말을 다 했으니, 저는 물러나겠습니다.”한지훈이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국왕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물었다.“한지훈, 이번 곤륜에서의 경험이 상당했을 텐데... 지금의 그대는 어느 경지인가?”잠시 침묵이 흘렀다.“천신입니다!”짧고 날카로운 대답이 밤하늘을 가르며 울려 퍼졌고, 순식간에 한지훈의 모습이 사라졌다.“천신...?!”국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지훈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그의 마음은 한동안 진정되지 않았다.“국왕 폐하, 방금 누군가 다녀갔습니까?”진우가 문을 밀고 꼭대기 층 테라스로 들어오며 말했고,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주변을 살폈다.“그래, 한지훈이었다!”국왕이 담담히 대답했다.“한지훈이라고 하셨습니까?!”진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귀신이나 환영 같은 걸 믿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한지훈은 이미…“쓸데없이 놀라
이 시각, 강중에서 폭풍전야의 긴장감이 감도는 것과 달리, 용경은 한층 더 고요했다.용각에서 국왕은 홀로 천자각 꼭대기에서 뒷짐을 진 채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지금 한지훈이 부재한 상황에서, 용국은 반드시 그를 대신할 인물을 찾아야만 했다!그러나 유청은 그 기준에 명백히 미치지 못했다.적어도, 실력이나 경지에 있어서 유청은 열국을 위압할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바로 그때, 한 사람의 그림자가 불쑥 내려앉았다!“누구냐!”국왕은 즉시 돌아서며 크게 외쳤고, 동시에 허리에 손을 뻗어 검을 뽑으려 했다.“국왕 폐하, 저입니다.”스윽—!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국왕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한... 한지훈?!그 이름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 국왕은 등줄기를 타고 한기가 훑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너... 너는 사람이냐, 귀신이냐?”국왕은 말을 하며 몇 걸음이나 물러섰고, 정신을 가다듬어 자세히 보니 과연 한지훈이었다!다만, 지금의 한지훈은 이전과는 어딘가 달라 보였고, 그의 분위기 역시 확연히 변화한 듯했다.예전의 한지훈에게서는 절대적인 위엄이 느껴졌다면, 지금의 한지훈은 더욱 깊고 심오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국왕 폐하, 이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하산한 뒤에서야 국상을 알았지만, 다행히 운 좋게도 죽지 않았습니다!”한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죽지 않았다니?!”국왕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고, 눈가에는 감격의 눈물이 맺혔다.“한지훈! 네 녀석... 나를 기절초풍하게 만들 뻔했구나! 네가 정말 죽었다면, 용국은 도대체 어떻게 되었겠느냐!”국왕은 말하며 성큼 다가와 한지훈의 옷깃을 움켜쥐고는 세차게 흔들었다.“하지만, 예 씨 부부는 저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제가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두 부부 덕분입니다! 그 부부가 목숨을 걸고 저를 지켜주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수정층 아래에 누워 있는 것은 바로 저였을 것입니다!”한지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그래… 예 씨 어르신
황약사가 말을 마치자, 옷자락을 휘날리며 앞마당을 나섰다.일반인들은 황약사가 의술이 뛰어나고 그 실력이 아무도 따라올 수 없다고만 알고 있었다.하지만 극히 일부만이, 황약사가 진정한 천왕계 강자이며 무적천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실력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설령 단해룡이 직접 나선다고 해도, 황약사의 손에서 쉽게 이득을 보지 못할 터였다.황약사의 예상대로, 한지훈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장씨 가문이든 단해룡이든 가슴 한편에 약간의 설렘이 부풀어 올랐다. 한지훈이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아내와 자식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장씨 가문의 사람들이 괜히 희생된 것도 아니고, 단해룡이 공개적으로 모욕당한 것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다.예충기가 살아 있다면 감히 나서지 못했겠지만, 그마저도 곤륜산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젠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다!노 씨 어르신 무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각 문파와 접촉했고, 화산과 항산 역시 이에 호응하며 손을 잡았다. 이제 강우연이 강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바로 그녀를 찾아가 책임을 묻겠다는 움직임이 퍼졌다!겉보기엔 용국이 평온해 보였지만, 물밑에서는 거센 격류가 휘몰아치고 있었다.사대 가문 중에서도 특히 동방 가문과 원씨 가문이 한지훈과 가장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기에, 이제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가주님, 듣기로는 노 씨 어르신과 무맹이 이미 열 개가 넘는 문파를 규합하여 한씨 가문을 찾아가 응징할 준비를 마쳤다고 합니다. 저희도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원상용은 차분한 시선으로 보고한 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 원씨 가문의 원한이 그냥 묻힐 수는 없지!”“한지훈, 네가 살아 있을 때 우리 원씨 가문 사람들의 목숨을 수없이 앗아갔다. 이제 네가 죽었으니, 우리가 잔인하다고 탓하지는 말아라!”원상용은 말을 마친 뒤 보고를 한 사람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꺼냈다. “원상호, 네가 원씨 가문을 대표하여 강중으로 가 강우연에게 책임을 물
이때, 약왕파에서 생방송을 지켜보던 장로들이 하나같이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비록 약왕파와 한지훈 사이에는 오래된 원한이 있었으나, 한지훈의 삶은 의롭고 당당하여 감탄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하아! 북양왕의 생애가 너무나도 짧았구나. 만약 그에게 10년만 더 주어졌다면, 이처럼 시신조차 찾을 수 없는 최후를 맞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군.”“수만 도에 달하는 고온 속에서라면, 누구라도 수증기로 변해 사라졌을 것이야. 하지만 제릉산에 의관총이라도 마련된 것이 그나마 영광이라 해야겠지.”장로들은 저마다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나 오직 오 장로만은 깊은 눈빛으로 화면을 응시하며 나지막이 말했다.“내 생각엔 며칠 안 가서 무종의 사람들이 우리 문파를 찾아올 거요. 우리 약왕파는 이미 한지훈과 엮여 있었으니, 지금이라도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겠소?”그의 말에 주변 장로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쏠렸다.“오 장로, 자네가 한지훈에게 당한 게 있다 해도, 그의 시신이 아직 식지도 않은 시점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소!”대장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비록 무종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해도, 최소한의 체면은 지켜야 했다.한지훈이 막 숨을 거둔 상황에서 즉각 손절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건 문파의 명예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터였다.“제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약왕파 전체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단해룡이나 원씨 가문, 동방 가문 같은 세력은 논외로 치더라도, 장씨 가문, 천산, 화산, 항산의 인물들이 한지훈을 가만히 두겠습니까?”“그들 중 어느 누구도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한지훈을 건드리지 못했던 것은 오직 그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며, 더군다나 예충기까지 함께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제가 들은 바에 따르면, 예충기 부부마저도 이번 사태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그리고, 헬기를 통해 촬영된 그들의 시신 사진도 이미 공개되었습니다!”뭐라고?!앉아 있던 장로들은 일제히 경악을 금치 못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