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단 한 알을 더 먹자 팔황자의 상태가 안정되어 보였다. 원경능은 다시 한번 자금단의 위력에 감탄했다.상황이 안정되자 원경능과 우문호 부부는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아사는 왕부에서 매우 조급하게 기다렸다. 그러나 원경능이 돌아오자 많은 걸 묻지는 않았다. 확실히 분수를 아는 계집애였다.우문호도 궁에서 며칠 동안 상처를 치료하고 나오자 큰 지장은 거의 없었다. 경조부 쪽에서 몇 번 사람이 와서 중요한 일이 있다고 했다. 우문호는 원경능이 안태약을 마시는 걸 보고 가려 했지만 원경능은 그의 잔소리가 심하다며 일하러 가라고 내쫓아버렸다. 아내가 화를 내자 우문호는 꼬리를 감추고 고분고분하게 갔다.이번에 팔황자를 치료한 것에 대해 명원제는 상을 내리지 않았다. 원경능도 사실 그녀의 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비록 수혈도 매우 큰 작용을 했지만 그 피가 그녀의 것은 아니었다.더구나 수혈로 황후의 미움을 샀기 때문에 원경능은 이 공로는 얻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왕부에서 며칠 편안한 나날들을 보낸 원경능은 입궁하여 팔황자를 문병했다.팔황자는 아직 침대에서 내려와 걸을 수 없었다. 실은 괜찮았지만 황후가 그의 부상이 심하다며, 누워 쉬어야 한다며 그가 바닥을 내딛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원경능은 팔황자를 진찰했다. 심장박동, 맥박, 각 항목 모두 정상이었다. 회복이 비교적 이상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팔황자는 땅에 내려갈 수는 없었지만 침상에 앉아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진찰을 마친 원경능은 그가 한쪽에 놓아둔 그림을 발견했다. 문 한 짝이었다. 닫혀 있는 문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스며드는 그림이었다.“창이 시동생, 이 문이 어디의 문인지 알려 줄 수 있어요?”원경능이 물었다.팔황자는 살짝 비키더니 말을 하지 않았다.구황자가 옆에서 해명했다.“너무 개의치 마세요, 다섯째 형수. 여덟째 형님은 보통 말을 쉽게 하지 않아요. 익숙해져야만 말 할 거예요.”원경능이 미소 지었다.“네, 알고 있어요.”그녀가 팔황자를 보며 물었다.
제왕의 얼굴은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등 뒤로 땀을 흘리며 원씨 집안의 노부인을 바라봤다. 노부인은 범 머리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그녀의 뒤로는 한 무리의 낭자군이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긴 창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원씨 집안의 무기였다. 그들이 전쟁터에서 사용하는 것이 바로 긴 창이었다.“어르신, 이건 무슨 뜻입니까? 사람들을 데리고 본왕을 위협하고, 본왕의 집안일에 간섭하려는 겁니까?”제왕은 자신이 없었지만 체면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어르신이 한 마디 툭 던졌다.“협박과 간섭을 하고 있는 것이 아주 분명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왜 무기를 갖고 왔겠습니까?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까, 제왕?”제왕은 말문이 막혔다. 위엄을 떨치는 일은 그의 전문이 아니었다. 전쟁터에 나갔던 한 무리의 여인들 앞에서 그도 당당하지 못했다.“당신들… 너무 도가 지나치면 안 될 것입니다. 어찌 원영의를 이토록 방임한단 말입니까? 그녀는 이미 안하무인입니다. 본왕은 그저 그녀더러 규율을 배우게 했을 뿐입니다, 일부러 그녀를 괴롭힌 것도 아니란 말입니다.”제왕의 이 말로부터 기세가 한풀 꺾여 있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 이에 저명취는 매우 난감했다.신분을 따진다면, 제왕은 원씨 가문의 사람들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었다. 원씨 집안이 아무리 대담하더라도 제왕부에서 당조의 친왕을 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원씨 집안의 사람들은 겉보기엔 게처럼 단단해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가장 규칙을 중시하는 사람들이었다.하지만 그는 정말로 기가 죽어 있었다.저명취가 담담히 앞으로 나섰다. 방금 전의 한바탕 소란으로 그녀는 귀밑머리가 헝클어져 있었고 잡아당겨진 소매도 구겨져 있었다. 친왕비의 위엄을 유지하려 애썼으나 조금은 낭패였다.“노부인, 원측비더러 규율을 배우게 한 건 본비의 뜻이니 어르신께서는 제게 뭐라 하면 됩니다. 왕야와는 무관한 일이니 그를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원영의의 모친 원 부인(袁夫人)이 담담하게 말했다.“제왕비의 말을 잇기가
얼굴이 동글동글한 이 계집은 왕부의 문을 밟은 뒤부터 짧은 시간 동안임에도 불구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부중의 위아래 사람들과 모두 잘 아우르며 지냈다. 모든 사람들이 그의 면전에서 그녀의 좋은 점들을 칭찬했다.매번 그녀를 볼 때마다 그녀는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간혹 보물을 건네주듯 그의 입안에 간식을 밀어 넣었다. 모두 친정에서 훔쳐온 것들이라며, 자랑스럽게 자신을 도둑 딸내미라고 칭하기도 했다.그러나 그녀의 성미는 정말 저돌적이어서 눈에 거슬리거나 언짢은 것이 있으면 한바탕 성질을 부렸다. 그러나 지나가면 또 아무 일 없었던 사람이 되어있었다.그래서 그는 오늘도 그녀가 먼저 버릇없이 굴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엔 그녀는 규율을 배우고 성질을 고칠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그는 만약 그녀가 그 성질머리를 고친다면 아주 완벽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그녀가 오늘 잘못한 게 없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 오히려 명취가 일부러 그녀를 난처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는 저명취를 바라보았다. 왜 그녀가 이렇게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측비는 그녀가 찾은 사람이었다.그는 사실 그녀가 원영의를 측비로 들인 의도를 알고 있었다. 그가 원씨 집안의 힘을 빌려 태자 자리를 차지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태자비가 될 테지.그녀가 태자비 자리에 집착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도 한때는 그녀를 위해 경쟁해 보겠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는 자신의 주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자신과 그녀의 목숨이 위험할 것이다.능력이 없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모르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저명취는 그가 보낸 눈빛을 보아냈다. 그녀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이럴 줄 알았어요. 이 일은 결국에는 반드시 내 잘못이 될 거라는 걸요. 다 제 잘못이에요. 저는 그녀의 성질을 고치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됐어요. 저는 제왕부의 측비로서 언행에 절도가 있어야 한다고 여겨서도 안됐던 거예요. 적어도
.기왕부의 사람이 또 초왕부로 왔다. 그렇지만 이번에 온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기왕비 본인이었다. 그녀는 가마에서 내린 후 직접 어깨 수레에 들려 들어왔다 그녀는 혼자 온 것이 아니라 진국대장공주(鎮國大長公主)와 함께 왔다. 진국대장공주는 명원제의 큰 고모였다. 다시 말하면 태상황의 누나였다. 그녀는 이미 칠십 여세였다. 만약 기왕비가 혼자 왔다면 원경능은 피하고 만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국대장공주를 대동하여 함께 왔으니 그 체면을 살려주어야 했다. 임신소식이 처음 알려 졌을 때 진국대장공주는 신속하게 사람을 파견하여 예물을 보내 축하를 전해왔었다. 원경능은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 그녀는 지금 임신한 몸이라 경솔하게 굴 수 없었다. 진국대장공주는 검은색의 둥근 꽃 문양의 비단 옷을 입고 목에는 염주목걸이를 하고 있었다.염주는 알알이 둥글고 매끄러웠다. 그녀의 얼굴은 자애롭고 온화했다. 원경능은 먼저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 대장공주는 앞으로 나섬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가 미소를 머금고 원경능을 훑어 보더니 말했다. “예를 안 갖춰도 된단다. 너는 몸이 무거운 사람이야.” 원경능은 감사함을 표한 후 기왕비를 바라보았다. 기왕비를 못 본지 한참 되었다. 이번에 그녀를 보고 원경능은 마음속으로 조금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많이 늙어 있었고 많이 초췌해있었다. 원경능의 기억으로 그녀는 이제 막 서른 살의 나이였다. 하지만 귀밑머리는 이미 하얗게 세어 있었다. 그녀는 얼굴이 매우 누르스름했으며 두 눈도 움푹 들어가 있었다. 몸도 과하게 야위어 있었다. 그녀도 자신이 만든 입 가리개로 입과 코를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입 가리개 때문인지 그녀의 눈가와 콧등에는 잔주름들이 많아 보였고 눈 밑에는 황갈반이 보였다. 원경능은 그녀가 이미 얇게 분을 바르고 있었음을 보아낼 수 있었다. 그녀는 비교적 널찍한 옷을 입고 있었다. 너무 야위어서 옷이 더 넓어 보였을 수도 있었다. 겉에는 솜을 넣은 검
원경능은 기왕비를 보며 미안함이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기왕비, 제가 약을 당신에게 주기 싫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약이 부족해서 입니다. 두 사람을 다 치료할 수 없어요.” “괜찮아요.”기왕비의 두 눈이 특히 깊고 음침했다. “처방전을 줄 수는 없나요? 제가 사람을 시켜 약을 만들게 하면 됩니다.” ‘오, 처방전 때문에 온 거였어? 여기에 온 의도를 잘못 짚었군.’ 원경능은 다행히 미리 준비를 해놓았었다. “녹아, 가서 내 탁자 위에 있는 공책을 갖고 오너라.” 녹아는 명을 받들고 자리를 떴다. 얼마 안돼서 녹아는 공책을 들고 왔다. 원경능이 말했다.“공책을 기왕비에게 드리거라.” 기왕비는 정말 깜짝 놀랐다. 이렇게 쉽게 내어준단 말인가? “이게 약 처방인가요?”기왕비가 물었다. “네, 저는 모두 이 처방대로 약을 제조합니다.”원경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왕비는 받아서 반신반의하며 열어 보았다. 대번에 그녀의 눈이 휘둥그래 졌다. “이게 뭡니까?” 여기에 쓰여진 글을 그녀는 하나도 알아볼 수 없었다. 마치 부호 같았다. 원경능이 말했다. “이게 바로 약 처방입니다.” “이건 약 처방이 아닙니다.”기왕비는 공책을 덮었다. “초왕비, 그냥 못 준다고 말하면 됩니다. 이렇게 저에게 가식적일 필요 있습니까?” 대장공주도 사람을 시켜 공책을 가져오게 했다. 역시 알아볼 수 없었다. 그녀가 원경능에게 물었다. “이 처방은 어떻게 보는 거냐?” 원경능은 옷소매에서 약 한 봉지를 꺼내 대장공주 앞에 펼쳐 보였다. “이 십 여종의 약은 바로 회왕이 지금 복용하고 있는 약입니다. 이 약은 본래 회왕에게 보내려던 겁니다. 제가 먼저 정리해서 내온 것입니다. 매 한 가지 약의 제조과정은 다 매우 까다롭고 복잡합니다. 여기에 들어간 대부분의 약들은 중초약(中草藥)이 아닙니다. 물론 일부의 약들은 중초약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대장공주께서 알아보실 수 없는 그 부분들이 바로 성분을 추출하고
원경능이 말했다. “제가 왕야를 진찰해드릴게요.”회왕이 재빨리 손을 내저으며 말렸다. “아니, 아닙니다. 모비께 들었는데, 다섯째 형수는 임신한 몸이라 하셨습니다. 저를 가까이 하면 안 됩니다.”원경능이 말했다. “괜찮아요. 당신의 병은 지금 이미 전염성이 없어요. 그저 진찰만 할 뿐입니다.”회왕은 하는 수 없이 말했다. “그럼 좋습니다. 병풍 뒤로 들어가시지요.”대청에는 병풍이 있어 막을 수 있었다. 원경능이 들어가 그를 검사하니 폐부에 비교적 선명한 잡음이 들려왔다.그의 병이 원래보다 더 엄중해졌던 것이다.원경능은 그와 함께 병풍 뒤에서 걸어 나왔다. “왕야는 매일 제시간에 정량대로 약을 드시지 않은 겁니까?”그녀가 물었다.“약을 먹었습니다. 매일 먹고 있습니다.”“하루에 세 번 한번에 여덟 알을요?”원경능이 물었다. “하루에 한번씩 먹었다. 약을 많이 먹어봤자 좋은 일도 아니지 않느냐. 그는 지금 이미 많이 나아졌어. 게다가 복용량을 줄인 후 그는 정신이 훨씬 맑아졌다고 했다.”로비가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원경능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웃어른인지라 그저 머리를 저으며 물었다. “언제부터 약을 줄였습니까? 어떤 약을 줄였습니까? 줄인 약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기왕비에게 팔았다.”로비가 말했다.회왕은 너무 놀라 로비를 쳐다보았다. “모비, 어찌 다섯째 형수의 약을 가져다 팔 수 있습니까? 게다가 다섯째 형수가 저더러 약을 줄이라 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너희들 그렇게 긴장할 게 무엇이냐. 그날 태의가 와서 너를 진맥하고 네가 이젠 거의 좋아졌다 했었다. 거의 좋아졌으니 약을 줄여도 별문제 없을 거 같았어. 그리고 그 약들을 기왕비에게 팔아야 기왕비도 재산을 좀 날릴 것 아니냐.”로비가 웃으며 말했다.원경능은 웃지도 울지도 못할 심정이었다.원경능은 한참을 생각하다 말했다. “로모비, 제가 따로 이야기를 나누어도 되겠습니까?”로비는 대장공주를 쳐다보았다.“가 보거라.”대장공주가 손을 저
우문호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시종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 원경능이 매일 갑옷을 입고 밖으로 나간다 해도 그는 마음을 놓지 못할 것이다.그는 한참 생각했다. “아니면, 내가 궁에 들어가 태상황께 여쭤볼게. 그의 귀영위 두 사람을 빌려 뒤에서 당신을 호위하면 안되냐고.”원경능은 실소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요?”“당연하지!”우문호가 진지하게 말했다.원경능은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 좋을 대로 하세요.”그녀는 아사에게 매우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서일도 있지 않는가?우문호는 아사와 서일에게 추호의 믿음성도 없었다. 그들은 다 같은 종류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모두 데면데면하고 경각심이 높지 못했으며, 게다가 남을 쉽게 믿었으니 매우 쉽게 따돌릴 수 있었다.귀영위는 그들과는 완전히 달랐다.두 사람은 가지런히 누웠다. 우문호는 큰 손바닥으로 그녀의 아랫배를 만지며 호기심이 동해 물었다. “당신 보기엔, 얘는 안에서 뭘 하고 있을 것 같아?”“자요!”원경능이 말했다.“좀 이야기를 나누면 안돼?”우문호가 불만 가득히 말했다. “당신 매우 피곤한 거야?”이후 많은 시간 동안 그는 푸대접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이야기조차도 나눌 수 없단 말인가?원경능은 측면으로 누우며 그를 바라 보았다. 입가에는 웃음이 어려 있었다. “제 말은 아기가 안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뜻이에요.”우문호는 ‘오’ 하고 한마디 했다. 아주 무고한 표정이었다. “그 애도 아주 심심할거야. 안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니 말이야.”“그 애는 심심해 하지 않아요.”원경능은 경고의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꼬리만 올려도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우문호가 궁시렁거렸다. “언제쯤 들어가서 그를 볼 수 있을까?”원경능은 가슴에 놓여져 있던 그의 큰 손을 확 내려놓았다. “그 애가 출생하게 되면 그때 볼 수 있죠. 게다가 당신 그곳에 눈도 안 달렸으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어요.”그는 그녀의 연옥 같은 몸을 안고 한숨을
우문호는 이튿날 틈이 생기자 곧 입궁하여 태상황에게 문안인사를 올리려 했다.다른 사람의 도움을 바라는 일인데 빈손으로 갈수 없다는 도리를 그도 알고 있었다.거리에서 한 바퀴 돌아보고는 시간이 촉박하자 그저 좋은 담뱃잎 몇 덩이를 사들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궁으로 향했다.태상황은 곁눈으로 말로는 최상급이라는 담뱃잎 몇 덩이를 한번 흘깃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상공공을 시켜 소요공이 그에게 가져다 준 담뱃잎을 갖고 와 비교하게 했다. 최상급이라던 엽초는 순식간에 찌꺼기로 전락해 버렸다.우문호는 뻔뻔하게 말했다. “엽초는 색깔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향만 맡아서도 안됩니다. 더욱이 산지만 봐서도 안되고요.”“그럼 뭘 봐야 하느냐?”태상황이 물었다.“마음을 보아야죠.”우문호는 아부를 하며 앞으로 나가 허리를 굽히고 어깨를 주물렀다. “황조부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 손주가 표시한 성의이니 그런대로 받아 주십시오. 게다가 원씨도 말했어요. 황조부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요. 이 담뱃잎이 그리 좋지 않으면 조부께서 적게 피우실 것 아닙니까? 그럼 조부의 건강에도 이롭습니다.” “뜬금없이 무슨 아부냐. 빨리 말해, 무슨 일인 게냐?”태상황은 냉랭했다. 요즘 부인을 맞이 하더니 점점 더 정직한 멋이 없어졌다. 하지만 예전에 체면을 차리느라 어린 나이에 벌써 영감탱이처럼 엄숙했던 것 보다는 지금이 훨씬 사랑스러웠다.우문호는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 헤실대며 말했다. “황조부에게서 사람 둘을 빌려 쓰려 합니다.”“누구를?”“두 귀영위를 빌려 원씨를 보호 하려고요. 최근에 그녀는 또 회왕부로 가야합니다.”우문호가 말했다.“무슨 일이냐?”태상황은 어리둥절했다.우문호는 당연히 로비가 약을 팔아 먹었다는 말은 감히 못했다. 로비의 속마음을 영감님은 듣기만해도 알아차렸다. 이건 여섯째를 연루시키는 일이었다.“말로는 날씨가 추워져서 병세에 무슨 차질이라도 생길까 봐 몇 번 다녀온다 했습니다.”우문호가 말했다.태상황이 손을 흔들자 상공공이 급히 담뱃대를 가져
이 문제에 우문호는 잠시 멍을 때렸다. 왜냐하면 자신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당연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원씨가 임신한 뒤로부터 그의 눈과 마음에는 다른 것들을 담지 못했었다.현재 제왕이 물으니 우문호는 잠시 멍을 때렸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어디 그렇게 많은 왜가 있어, 놓으면 놓는 거지.'"다섯째 형님."제왕은 우문호가 머뭇거리자 조금 몸을 일으키더니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혹 아직도 명취를 좋아하는 건 아니겠죠?"우문호는 그를 흘겨보았다."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네 다섯째 형수는 속이 매우 좁아.""형님 아직도 좋아하고 있는 겁니까?"우문호는 고개를 저었다."좋아하지 않아.""어떻게 했습니까? 이렇게 빨리 명취를 잊다니."우문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내가 뭘 했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한참 뒤에 우문호가 고개를 들었는데 빛이 반짝였다."너의 다섯째 형수가 있었기 때문이지.""그 말인즉, 다른 사람이 생기면 잊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이건 아마 대체하는 방법인 듯 하군요. 다른 여인을 찾아야 되지요, 맞나요?"제왕이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우문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연구해본 적도 없는 걸.'허나 표면상으로는 적극적으로 말했다."맞아, 넌 동그란 얼굴의 계집애와 자주 있도록 시도해봐. 아마 곧 잊을 수 있을 거야."원영의를 말하니 제왕이 탄식하며 말했다."이번에 영의가 조태의를 데리고 돌아왔기 다행이지 아니면 전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겁니다.""네 다섯째 형수가 보낸 거다."우문호는 원경능을 위해 공을 쟁취했다. 일곱째는 늘 원씨에게 편견이 있어 이 문제에 대해 우문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공을 쟁취하여야만 했다.그러나 제왕은 그 말을 흘려 보내고 홀로 중얼거렸다."사실, 동그란 얼굴도 괜찮아요. 자상하게 왕비를 소개해줄 것이라 했거든요."우문호가 불현듯 물었다."참, 오늘밤 돌아갈 거야?"제왕은 생각에 잠겼다."돌아갈 거예요. 동그란 얼굴이 있으니 절 괴롭히
우문호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부황...."부황께서 합의 이혼을 동의하시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또한 그 말투에 불쾌한 느낌이 상당했다."그대로 하면 되느니라."명원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저명취가 시집온 뒤로부터 사단이 끊인 적이 없었다. 작은 일은 저수부의 체면을 보아 눈 감아줄 수 있었다. 이렇게 방임했더니 결국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황실의 체면을 깎는 건 괜찮으나 사적으로 친황들의 사이를 이간질 하니 더 이상 용납할 수가 없었다.애당초 그녀의 명성은 그렇지 않았다. 밖에서는 다들 그녀가 현명하고 정숙하며 대가의 풍격이 있다고 했다.그러나 오늘 저씨 노태부인의 그 말을 해 이미 화가 치밀었었다. 저씨 가문의 체면이 참으로 대단했다."부황."우문호가 정색하더니 재빨리 물었다."부황의 뜻은 일곱째의 요구를 동의한다는 겁니까?""동의하지 않을 수 있느냐? 무기를 휘두르기까지 하는데."명원제가 아비로써의 인내를 보여주었다."합의 이혼한 뒤 각자 재혼한다면 두 가문에게 모두 좋은 일이다."우문호는 매우 우러러보았다. 부황의 이 말은 참으로 가식적이었다. 너무 가식적이어서 전혀 가식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각별히 마음을 쓰는 것 같았다."이 일을 일주일 내에 해결하거라. 해결하지 못하면 곤장을 맞으러 와야 한다. 꺼지거라."명원제가 싸늘하게 말했다.우문호는 명을 받고 제왕을 찾으러 들어갔다. 두 형제는 서로를 부축하면서 출궁했다.그러나 명원제는 계속 상소문을 읽어야 했다. 군주로써 다른 이들보다 더 큰 의자가 있는 이외에 뭐가 나은 것이 있던가?황제란 수명이 짧은 직업이었다.옆에서 묵을 갈던 목여공공이 기쁘게 말했다."제왕과 초왕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음을 보셨으니 폐하께서도 시름을 놓으실 수 있습니다."명원제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는 떳떳하고 일곱째는 단순하다. 그렇기에 다행인 거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일찍부터 크게 다투었을 것이다. 다투지 않더라도 이후에는 암투를 벌일 것이지.
우문호가 위로했다."그만 소리 질러, 부황 앞에서도 네가 계속 신음소리를 낸다면 네가 겁쟁이라고 꾸짖으실 거야."제왕은 아픔에 말도 하지 못했다. 끙끙 신음소리와 함께 발을 질질 끌며 가고 있었다. 결국에는 실로 참을 수 없어 말했다."형님, 절 업어줘요.""상처가 앞에 있는데 내가 널 없으면 더 아프지 않을까?"우문호는 그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근심스러워졌다. '왜 이렇게 아픔을 참지 못한단 말인가? 예전에 원씨는 온몸에 부상을 입고 입궁하여서도 억지로 버텼었는데, 일곱째는 여인보다 못하는군.""다쳐서 아픈 것이 낫지 이렇게 상처가 찢기는 고통은 원하지 않습니다." 제왕은 걸음을 멈추고 무기력하게 손을 저었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는데 입술에도 혈색이 보이지 않았다.우문호는 그를 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업고 나니 제왕이 또 "아아아"하고 소리를 질렀다.우문호가 물었다."되겠어?"제왕은 간신히 고개를 돌려 목여공공을 바라 보더니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아니면 나를 들고 가게."목여공공은 이미 성지를 전하러 출궁한 궁인에게 물어보았었다. 부상 정도가 그렇게 엄중하지 않다고 조태의가 말했다고 전했다. 가슴팍의 상처는 괜찮고 복부의 상처가 조금 깊다고 했다.그리하여 제왕의 이러한 모습을 본 목여공공은 근심을 금할 수 없어 물었다."태의가 확실하게 진찰한 게 맞습니까? 내장이 상한 건 아닙니까?"제왕은 숨을 들이쉬었다."내장이 상한 건 아니네."목여공공은 제왕의 이런 모습으로 실로 궁전까지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말했다."좋습니다. 그렇다면 들고 갑시다."어깨 가마와 들것이 없으니 한 사람은 어깨를, 한 사람은 두 다리를 들고 갔다. 제왕의 머리는 떨어져 있었는데 입에 초롱 손잡이를 물로 있었다. 허나 자신이 걷는 것보다는 나았다.제왕은 칠흙같은 하늘을 바라 보았다. 등불의 빛은 궁중의 밤을 밝히기엔 부족했다. 그는 그저 딴 세상에 온 듯 하였다.왜 살아가다가 갑자기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음은 여전
황후는 완전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일곱째가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 죄명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죄명이 실증되고 정말 백관 앞에서 죄를 심의 받는다면 절로 미래를 망친 것이었다.그리하여 이 일의 진위를 막론하고 재빨리 답했다."합방을 하지 않았는데 어찌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 말이야 말로 전해진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태노부인도 바보가 아니었다. 저명취의 낯빛을 보고 태후가 말한 것이 진실임을 알고 있었다.다만 바보가 아닌 태노부인은 멍해졌다. '측비 때문이 아니라면 제왕은 왜 합의 이혼하려고 하려는 걸까? 설마, 그 원측비의 말이 진실이란 말인가? 명취와 초왕 사이가 애매하단 말인가?'태노부인의 얼굴은 당장에 어두워졌다. 다만 태후가 자리에 있는지라 무엇이라 말할 수 없어 일단 이 화를 가라앉혔다.그러나 태후는 태노부인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노부인, 한마디 묻겠네. 한 여인이 처로써 작은 일로 자결하고 또 낭군을 중상한 뒤 회개하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군다면, 노부인의 부중에서는 어떻게 처단하는가?"태노부인은 실로 체면이 깎였으나 반박할 방법이 없었다. 제왕부부는 예전에 화목했었고 측비가 시집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또한 합방도 하지 않았으니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다고 억지를 부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태노부인은 그저 기가 죽어 말했다."태후마마, 제가 아둔했습니다. 명확하게 묻지 않고 입궁하여 태후마마와 황후를 귀찮게 했습니다. 다만 젊은 부부가 다투는 건 자주 있는 일입니다. 어찌 되었든지 쉽게 처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 ""합의 이혼이네."태후가 차가운 낯빛으로 곧 시정했다."황실의 체면이 중요하나 황실의 혈육도 잃을 수 없네. 제왕은 황제의 적자네. 부부가 작은 일로 모순이 생겨 무기를 휘두른다면 철로 만든 몸이라 하여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네."태후는 고개를 돌려 황후를 바라 보았다."너의 며느리고 또 너의 조카니 네가 알아서 이 일을 해결하
황후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몰랐다. 안절부절하여 명원제를 흘깃 보았는데 명원제의 낯빛이 매우 어두웠다. 이에 황후는 원만하게 수습할 수 있는 말 몇 마디 하라고 태노부인에게 눈짓을 보냈다.그러나 태노부인이 싸늘하고도 딱딱하게 말했다."폐하, 황후마마, 제왕은 황실자손으로써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렸습니다. 비록 명취가 충동한 것은 잘못이나 모든 잘못이 명취에게 있는 건 아닙니다. 현재 제왕이 측비로 인해 합의 이혼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니 소문이 퍼진다면 실로 웃음거리가 될 겁니다. 이에 황실과 저씨 가문의 체면이 깎일 겁니다. 폐하께서 성지를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제왕의 상처가 호전되면 백관들 앞에서 죄를 심의 받고 합의 이혼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태노부인의 이 말은 절대 사정의 의미가 아니라 몰아붙이는 느낌이었다.심지어 태노부인이 황실의 체면과 저씨 가문의 체면을 함께 논할 때 황후의 낯빛이 돌연 변했다. 크게 경악하더니 고개를 홱 돌려 명원제를 바라 보았다.아까만 해도 낯빛이 어둡던 명원제는 태노부인의 이 말을 듣고 도리어 화를 내지 않았다. 심지어 잔잔한 미소까지 머금으며 말했다."노부인, 조급해하지 말게. 이 일은 짐이 자세하게 물어볼 것이네. 노부인의 신체가 편찮다고 수부에게 들었으니 돌아가 푹 쉬게. 자손들은 자연히 자손들만의 복이 있을 것이니 노부인이 염려해서 되는 것이 아니네."말을 마친 명원제는 몸을 일으켜 떠났다. 나가기 전에 담담하게 저명취를 흘깃 보았다.태노부인은 기가 차 멍해졌다. 명원제가 위로의 말 한마디도 없이 이렇게 가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자신도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이었다.명원제는 나간 뒤 목여공공에게 분부했다."초왕과 제왕을 부르거라."목여공공은 잠시 머뭇거렸다."폐하, 제왕은 아직 부상 당한 몸입니다.""죽지 않을 거다."명원제가 담담하게 말했다. 만일 중상이라면 일찍이 부중에서 보고를 했을 것이었다."그리고 이 일을 태후께 아뢰거라. 태후께 한 번 들리라고 전하고."목여공공은 명을 받
다만 저명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눈을 감고 울고 있었는데 몸을 달달 떨고 있었다.제왕은 조태의와 원영의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이번에 원영의는 매우 눈치가 빨랐다. 조태의를 이끌고 나가려는데 조태의가 약가루를 내려놓으며 시녀에게 분부했다."이건 지혈약이다. 상처부분에 뿌리고 살짝 동여맨다면 이틀 뒤 바로 괜찮아질 거다."시녀는 이미 놀라 손발이 나른해진 상태였다. 약가루를 건네 받고는 감사의 인사를 했다.제왕은 모든 사람들을 물리고 저명취의 곁에 앉아 물었다."왜 그러는데?"저명취는 고개를 돌리고 눈물만 흘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제왕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그러나 늘 흐리멍덩했던 머리가 이번에는 도리어 맑아졌다. 사실 원영의의 말들이 그를 정신차리게 했던 것이다.만일 명취가 정말 자신을 생각했다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들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었다. 자신은 째지게 가난한 사람도 아니었고 당당한 친왕이었다. 다른 것을 쟁취하지 않아도 그녀에게 평생의 부귀영화를 줄 수 있었다.누구도 그를 경쟁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도 한가하게 놀고 있는 왕야를 상대하지 않았다. 명취는 그렇게 총명하니 알고 있을 것이었다. 또한 자신은 저수부의 외손자였고 현재 황후의 적자였다.큰 형님이 태자로, 황제로 된다고 하여도 감히 자신에게 어쩌지 못할 것이다. 아니면 천하 사람들의 공론을 막을 수 없을 터였다.당연히, 좀 못나게 말한다면 큰 형님은 애초에 자신을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그리하니 명취는 정말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다.그렇다면 그가 한 모든 것들은 가치가 있을까? 그리하여 제왕은 마음이 아프지만 계속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이렇게 끝내. 그대가 시집온 날부터 난 그대의 마음 속에 내가 없다는 걸 알았어. 난 자연히 다섯째 형님과 비할 바가 못되지. 나도 내 자신을 알아. 그대는 시종일관 다섯째 형님을 좋아했던 거야. 다만 다섯째 형님이 그대를 저버리자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시집온
탕양은 이 말을 듣고 너무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아사가 들어와 앉더니 물었다."뭐가 산 것이라고요?""본왕의 아들 말이다!"우문호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아사는 머뭇거리다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턍양을 바라 보았다. 탕양은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며 왕야가 이미 미쳤다는 손짓을 했다.원경능은 기가 막혀 웃음을 터뜨렸다."됐어요, 됐어요, 식사나 해요.""우리 큰 언니는요?""돌아갔어."원경능이 답했다. 아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제왕에게 정말 화가 나요. 글쎄 큰 언니와 서일이 노닥거린다면서 큰 언니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겠어요? 큰 언니가 화를 참고 때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우문호는 기분이 매우 좋은지라 이 말을 듣고 아사를 흘겨봤다."이 계집아이 좀 봐, 일곱째가 매우 연약한 것처럼 말하네. 일곱째도 무술을 연마했었어.""설마요?"아사가 경악했다."그런데 왜 그렇게 연약하게 굴어요?"우문호는 어깨를 으쓱했다."연약하지 않아, 최소한 손으로 계란을 한 알 깰 수 있으니.""전 돌을 깰 수 있어요."아사가 답하니 우문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원경능이 호기심에 물었다."제왕이 정말 무술을 배운 적이 있나요?""배웠지, 황자로써 누가 배우지 않아도 되겠어? 마술과 궁술, 무술 모두 익혀야 하지. 일곱째도 배웠었는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후로는 배우지 않았어. 싸우는 것도 원하지 않고 말이야."아사는 의아해졌다."왜요?""무슨 자극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무술 하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어."우문호가 말했다. 아사는 믿을 수 없었다."그렇게 많이 맞았는데 정말 무술을 익혔다면 왜 반격을 하지 않았겠어요?""일곱째는 여인을 때리지 않아."우문호가 답했다****여인을 때리지 않는 제왕은 제왕부로 돌아갔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그는 곧장 저명취의 방으로 향했다.요 이틀간 저명취는 많이 울었는지라 눈이 계속 부어있었다. 제왕이 들어오는 것을 보아도 그저 담담히 눈길을 위로 들었다."성지가 내려진 건가요
제왕은 기가 막혔다."당신의 말투가 왜 아이를 달래는 것 같지? 본왕에게 정비를 소개하다니. 본왕의 혼사는 모후의 뜻을 따라야 해."원영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밝은 눈에 하얀 이, 옴폭 파인 보조개가 매력적이었다."조모께서 말씀하셨어요. 남자는 모두 애라 달래면 된다고요. 그리고 당신의 모후는...."제왕이 화를 냈다."당신의 모후이기도 하잖아!"원영의는 그제야 두 사람 사이가 생각난 듯 무미건조하게 코를 만졌다."전 정비가 아니라 모후라고 부르면 안돼요."제왕은 눈을 가늘게 떴다."당신 계속 본왕에게 합의 이혼하라고 하고 지금 또 이러한 말을 하는군. 당신 정비가 되고 싶은 거 아니야?"원영의가 물었다."정비가 되면 좋은 점이 뭔데요?""좋은 점이 많지."제왕은 잠시 생각했다."최소한 당신은 본왕과 명분이 정당한 부부로 되는 거지.""명분이 정당한 부부가 된다면 뭐가 좋아요?"원영의가 다시 물었다. 제왕은 그녀를 바라 보았다."당신은 부중에서 뜻대로 할 수 있어. 하인들도 모두 당신의 명을 따를 것이고."원영의가 반문했다."제가 지금 부중에서 뜻대로 살고 있지 않나요? 지금 하인들이 제 명을 따르지 않나요?""당신 본왕과 함께 여러 장소로 출석할 수 있지."원영의가 웃었다."지금은 제가 여러 장소에 출석할 수 없나요? "제왕은 그녀에게 눈을 부릅떴다."당신 지금 고의적으로 엇나가는 거야? 당신이 정비와 측비의 다른 점을 모를 리가 없잖아. 정비는 처고 측비는 첩이야, 명분부터 다르잖아.""처도 좋고 첩도 좋아요. 그러나 제가 저인 사실은 번함이 없어요."원영의는 손을 내저었다."전 당신의 처가 되기 싫어요 .좋기는 다른 사람을 찾으세요. 그리고 당신이 저명취와 합의 이혼하는가를 관심하는 것은 저와 직접적인 이해득실이 있어서예요. 누가 부중에 그러한 정실이 있기를 원하겠어요? 전 그녀를 보는 것조차 싫어요."말을 마치고는 곧 일어났다. 원영의가 떠나려 하자 우문경이 손을 잡았다."가자마, 본왕과 이야기나 좀
아사는 돌아간 뒤 부두에서 만아를 본 일을 원경능에게 알렸다.원경능은 이를 듣고 조금 마음이 시큰거렸다.이러한 시대에 여인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만아는 남정네들과 함께 막노동을 하고 있으니 어디 얼굴을 드러내는 정도인가?다만 자신의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저 아사더러 만아에게 은 열 냥을 가져다 주라고 하였다.다음날 아침 아사가 돌아왔다. 만아가 안받으려고 하였는데 억지로 만아에게 넣어주고 달아났다고 전했다.원경능이 묵묵히 말했다."그 아이에게 주었으면 되었다.""왕비께서는 참 선량하십니다."아사가 칭찬했다. 원경능은 속으로 자신이 선량하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은 열 냥은 준 것도 사실 자신의 죄책감 때문이었다. 원경능은 이 은 열 냥으로 자신을 홀가분하게 만들려고 했다.엄격하게 따진다면 그녀는 만아에게 빚진 것이 없었다.다만 원경능은 자신의 동정심이 점차 사라짐을 느꼈다. 원래의 원경능도 점차 모진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혹 자기 보호를 더 잘할 수 있을 수 있으나 결국 자신을 잃게 된 것이었다.우문호가 저녁에 돌아올 때 제왕을 데리고 함께 돌아왔다.그은 노기등등한 모습으로 초왕부에 도착하더니 바로 소월각으로 들어가 숨었다.원경능이 호기심에 물었다."왜요? 왜 구신이라도 본 듯이 숨어요? 누가 기분을 상하게 했기에 노기등등한 얼굴이에요?"우문호는 자리에 앉아 차를 벌컥벌컥 마셨다. 원경능은 자신 곁으로 끌어오고는 배를 어루만지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아들아, 기억하거라. 네가 이후에 만일 일곱째 삼촌처럼 못난 짓을 한다면 뺨을 갈겨 죽일 것이야."원경능은 그의 손을 두드리며 웃었다."무슨 아들이에요? 딸이면 안되나요? 제왕이 왜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어요?"우문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이 놈이 연속 이틀 동안 관아로 와 나를 찾았어. 공무가 가득한데 저놈 때문에 한 건도 해결하지 못했잖아. 이것 봐, 오늘밤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