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단 한 알을 더 먹자 팔황자의 상태가 안정되어 보였다. 원경능은 다시 한번 자금단의 위력에 감탄했다.상황이 안정되자 원경능과 우문호 부부는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아사는 왕부에서 매우 조급하게 기다렸다. 그러나 원경능이 돌아오자 많은 걸 묻지는 않았다. 확실히 분수를 아는 계집애였다.우문호도 궁에서 며칠 동안 상처를 치료하고 나오자 큰 지장은 거의 없었다. 경조부 쪽에서 몇 번 사람이 와서 중요한 일이 있다고 했다. 우문호는 원경능이 안태약을 마시는 걸 보고 가려 했지만 원경능은 그의 잔소리가 심하다며 일하러 가라고 내쫓아버렸다. 아내가 화를 내자 우문호는 꼬리를 감추고 고분고분하게 갔다.이번에 팔황자를 치료한 것에 대해 명원제는 상을 내리지 않았다. 원경능도 사실 그녀의 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비록 수혈도 매우 큰 작용을 했지만 그 피가 그녀의 것은 아니었다.더구나 수혈로 황후의 미움을 샀기 때문에 원경능은 이 공로는 얻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왕부에서 며칠 편안한 나날들을 보낸 원경능은 입궁하여 팔황자를 문병했다.팔황자는 아직 침대에서 내려와 걸을 수 없었다. 실은 괜찮았지만 황후가 그의 부상이 심하다며, 누워 쉬어야 한다며 그가 바닥을 내딛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원경능은 팔황자를 진찰했다. 심장박동, 맥박, 각 항목 모두 정상이었다. 회복이 비교적 이상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팔황자는 땅에 내려갈 수는 없었지만 침상에 앉아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진찰을 마친 원경능은 그가 한쪽에 놓아둔 그림을 발견했다. 문 한 짝이었다. 닫혀 있는 문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스며드는 그림이었다.“창이 시동생, 이 문이 어디의 문인지 알려 줄 수 있어요?”원경능이 물었다.팔황자는 살짝 비키더니 말을 하지 않았다.구황자가 옆에서 해명했다.“너무 개의치 마세요, 다섯째 형수. 여덟째 형님은 보통 말을 쉽게 하지 않아요. 익숙해져야만 말 할 거예요.”원경능이 미소 지었다.“네, 알고 있어요.”그녀가 팔황자를 보며 물었다.
제왕의 얼굴은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등 뒤로 땀을 흘리며 원씨 집안의 노부인을 바라봤다. 노부인은 범 머리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그녀의 뒤로는 한 무리의 낭자군이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긴 창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원씨 집안의 무기였다. 그들이 전쟁터에서 사용하는 것이 바로 긴 창이었다.“어르신, 이건 무슨 뜻입니까? 사람들을 데리고 본왕을 위협하고, 본왕의 집안일에 간섭하려는 겁니까?”제왕은 자신이 없었지만 체면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어르신이 한 마디 툭 던졌다.“협박과 간섭을 하고 있는 것이 아주 분명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왜 무기를 갖고 왔겠습니까?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까, 제왕?”제왕은 말문이 막혔다. 위엄을 떨치는 일은 그의 전문이 아니었다. 전쟁터에 나갔던 한 무리의 여인들 앞에서 그도 당당하지 못했다.“당신들… 너무 도가 지나치면 안 될 것입니다. 어찌 원영의를 이토록 방임한단 말입니까? 그녀는 이미 안하무인입니다. 본왕은 그저 그녀더러 규율을 배우게 했을 뿐입니다, 일부러 그녀를 괴롭힌 것도 아니란 말입니다.”제왕의 이 말로부터 기세가 한풀 꺾여 있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 이에 저명취는 매우 난감했다.신분을 따진다면, 제왕은 원씨 가문의 사람들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었다. 원씨 집안이 아무리 대담하더라도 제왕부에서 당조의 친왕을 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원씨 집안의 사람들은 겉보기엔 게처럼 단단해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가장 규칙을 중시하는 사람들이었다.하지만 그는 정말로 기가 죽어 있었다.저명취가 담담히 앞으로 나섰다. 방금 전의 한바탕 소란으로 그녀는 귀밑머리가 헝클어져 있었고 잡아당겨진 소매도 구겨져 있었다. 친왕비의 위엄을 유지하려 애썼으나 조금은 낭패였다.“노부인, 원측비더러 규율을 배우게 한 건 본비의 뜻이니 어르신께서는 제게 뭐라 하면 됩니다. 왕야와는 무관한 일이니 그를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원영의의 모친 원 부인(袁夫人)이 담담하게 말했다.“제왕비의 말을 잇기가
얼굴이 동글동글한 이 계집은 왕부의 문을 밟은 뒤부터 짧은 시간 동안임에도 불구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부중의 위아래 사람들과 모두 잘 아우르며 지냈다. 모든 사람들이 그의 면전에서 그녀의 좋은 점들을 칭찬했다.매번 그녀를 볼 때마다 그녀는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간혹 보물을 건네주듯 그의 입안에 간식을 밀어 넣었다. 모두 친정에서 훔쳐온 것들이라며, 자랑스럽게 자신을 도둑 딸내미라고 칭하기도 했다.그러나 그녀의 성미는 정말 저돌적이어서 눈에 거슬리거나 언짢은 것이 있으면 한바탕 성질을 부렸다. 그러나 지나가면 또 아무 일 없었던 사람이 되어있었다.그래서 그는 오늘도 그녀가 먼저 버릇없이 굴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엔 그녀는 규율을 배우고 성질을 고칠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그는 만약 그녀가 그 성질머리를 고친다면 아주 완벽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그녀가 오늘 잘못한 게 없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 오히려 명취가 일부러 그녀를 난처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는 저명취를 바라보았다. 왜 그녀가 이렇게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측비는 그녀가 찾은 사람이었다.그는 사실 그녀가 원영의를 측비로 들인 의도를 알고 있었다. 그가 원씨 집안의 힘을 빌려 태자 자리를 차지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태자비가 될 테지.그녀가 태자비 자리에 집착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도 한때는 그녀를 위해 경쟁해 보겠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는 자신의 주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자신과 그녀의 목숨이 위험할 것이다.능력이 없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모르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저명취는 그가 보낸 눈빛을 보아냈다. 그녀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이럴 줄 알았어요. 이 일은 결국에는 반드시 내 잘못이 될 거라는 걸요. 다 제 잘못이에요. 저는 그녀의 성질을 고치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됐어요. 저는 제왕부의 측비로서 언행에 절도가 있어야 한다고 여겨서도 안됐던 거예요. 적어도
.기왕부의 사람이 또 초왕부로 왔다. 그렇지만 이번에 온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기왕비 본인이었다. 그녀는 가마에서 내린 후 직접 어깨 수레에 들려 들어왔다 그녀는 혼자 온 것이 아니라 진국대장공주(鎮國大長公主)와 함께 왔다. 진국대장공주는 명원제의 큰 고모였다. 다시 말하면 태상황의 누나였다. 그녀는 이미 칠십 여세였다. 만약 기왕비가 혼자 왔다면 원경능은 피하고 만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국대장공주를 대동하여 함께 왔으니 그 체면을 살려주어야 했다. 임신소식이 처음 알려 졌을 때 진국대장공주는 신속하게 사람을 파견하여 예물을 보내 축하를 전해왔었다. 원경능은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 그녀는 지금 임신한 몸이라 경솔하게 굴 수 없었다. 진국대장공주는 검은색의 둥근 꽃 문양의 비단 옷을 입고 목에는 염주목걸이를 하고 있었다.염주는 알알이 둥글고 매끄러웠다. 그녀의 얼굴은 자애롭고 온화했다. 원경능은 먼저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 대장공주는 앞으로 나섬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가 미소를 머금고 원경능을 훑어 보더니 말했다. “예를 안 갖춰도 된단다. 너는 몸이 무거운 사람이야.” 원경능은 감사함을 표한 후 기왕비를 바라보았다. 기왕비를 못 본지 한참 되었다. 이번에 그녀를 보고 원경능은 마음속으로 조금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많이 늙어 있었고 많이 초췌해있었다. 원경능의 기억으로 그녀는 이제 막 서른 살의 나이였다. 하지만 귀밑머리는 이미 하얗게 세어 있었다. 그녀는 얼굴이 매우 누르스름했으며 두 눈도 움푹 들어가 있었다. 몸도 과하게 야위어 있었다. 그녀도 자신이 만든 입 가리개로 입과 코를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입 가리개 때문인지 그녀의 눈가와 콧등에는 잔주름들이 많아 보였고 눈 밑에는 황갈반이 보였다. 원경능은 그녀가 이미 얇게 분을 바르고 있었음을 보아낼 수 있었다. 그녀는 비교적 널찍한 옷을 입고 있었다. 너무 야위어서 옷이 더 넓어 보였을 수도 있었다. 겉에는 솜을 넣은 검
원경능은 기왕비를 보며 미안함이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기왕비, 제가 약을 당신에게 주기 싫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약이 부족해서 입니다. 두 사람을 다 치료할 수 없어요.” “괜찮아요.”기왕비의 두 눈이 특히 깊고 음침했다. “처방전을 줄 수는 없나요? 제가 사람을 시켜 약을 만들게 하면 됩니다.” ‘오, 처방전 때문에 온 거였어? 여기에 온 의도를 잘못 짚었군.’ 원경능은 다행히 미리 준비를 해놓았었다. “녹아, 가서 내 탁자 위에 있는 공책을 갖고 오너라.” 녹아는 명을 받들고 자리를 떴다. 얼마 안돼서 녹아는 공책을 들고 왔다. 원경능이 말했다.“공책을 기왕비에게 드리거라.” 기왕비는 정말 깜짝 놀랐다. 이렇게 쉽게 내어준단 말인가? “이게 약 처방인가요?”기왕비가 물었다. “네, 저는 모두 이 처방대로 약을 제조합니다.”원경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왕비는 받아서 반신반의하며 열어 보았다. 대번에 그녀의 눈이 휘둥그래 졌다. “이게 뭡니까?” 여기에 쓰여진 글을 그녀는 하나도 알아볼 수 없었다. 마치 부호 같았다. 원경능이 말했다. “이게 바로 약 처방입니다.” “이건 약 처방이 아닙니다.”기왕비는 공책을 덮었다. “초왕비, 그냥 못 준다고 말하면 됩니다. 이렇게 저에게 가식적일 필요 있습니까?” 대장공주도 사람을 시켜 공책을 가져오게 했다. 역시 알아볼 수 없었다. 그녀가 원경능에게 물었다. “이 처방은 어떻게 보는 거냐?” 원경능은 옷소매에서 약 한 봉지를 꺼내 대장공주 앞에 펼쳐 보였다. “이 십 여종의 약은 바로 회왕이 지금 복용하고 있는 약입니다. 이 약은 본래 회왕에게 보내려던 겁니다. 제가 먼저 정리해서 내온 것입니다. 매 한 가지 약의 제조과정은 다 매우 까다롭고 복잡합니다. 여기에 들어간 대부분의 약들은 중초약(中草藥)이 아닙니다. 물론 일부의 약들은 중초약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대장공주께서 알아보실 수 없는 그 부분들이 바로 성분을 추출하고
원경능이 말했다. “제가 왕야를 진찰해드릴게요.”회왕이 재빨리 손을 내저으며 말렸다. “아니, 아닙니다. 모비께 들었는데, 다섯째 형수는 임신한 몸이라 하셨습니다. 저를 가까이 하면 안 됩니다.”원경능이 말했다. “괜찮아요. 당신의 병은 지금 이미 전염성이 없어요. 그저 진찰만 할 뿐입니다.”회왕은 하는 수 없이 말했다. “그럼 좋습니다. 병풍 뒤로 들어가시지요.”대청에는 병풍이 있어 막을 수 있었다. 원경능이 들어가 그를 검사하니 폐부에 비교적 선명한 잡음이 들려왔다.그의 병이 원래보다 더 엄중해졌던 것이다.원경능은 그와 함께 병풍 뒤에서 걸어 나왔다. “왕야는 매일 제시간에 정량대로 약을 드시지 않은 겁니까?”그녀가 물었다.“약을 먹었습니다. 매일 먹고 있습니다.”“하루에 세 번 한번에 여덟 알을요?”원경능이 물었다. “하루에 한번씩 먹었다. 약을 많이 먹어봤자 좋은 일도 아니지 않느냐. 그는 지금 이미 많이 나아졌어. 게다가 복용량을 줄인 후 그는 정신이 훨씬 맑아졌다고 했다.”로비가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원경능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웃어른인지라 그저 머리를 저으며 물었다. “언제부터 약을 줄였습니까? 어떤 약을 줄였습니까? 줄인 약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기왕비에게 팔았다.”로비가 말했다.회왕은 너무 놀라 로비를 쳐다보았다. “모비, 어찌 다섯째 형수의 약을 가져다 팔 수 있습니까? 게다가 다섯째 형수가 저더러 약을 줄이라 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너희들 그렇게 긴장할 게 무엇이냐. 그날 태의가 와서 너를 진맥하고 네가 이젠 거의 좋아졌다 했었다. 거의 좋아졌으니 약을 줄여도 별문제 없을 거 같았어. 그리고 그 약들을 기왕비에게 팔아야 기왕비도 재산을 좀 날릴 것 아니냐.”로비가 웃으며 말했다.원경능은 웃지도 울지도 못할 심정이었다.원경능은 한참을 생각하다 말했다. “로모비, 제가 따로 이야기를 나누어도 되겠습니까?”로비는 대장공주를 쳐다보았다.“가 보거라.”대장공주가 손을 저
우문호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시종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 원경능이 매일 갑옷을 입고 밖으로 나간다 해도 그는 마음을 놓지 못할 것이다.그는 한참 생각했다. “아니면, 내가 궁에 들어가 태상황께 여쭤볼게. 그의 귀영위 두 사람을 빌려 뒤에서 당신을 호위하면 안되냐고.”원경능은 실소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요?”“당연하지!”우문호가 진지하게 말했다.원경능은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 좋을 대로 하세요.”그녀는 아사에게 매우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서일도 있지 않는가?우문호는 아사와 서일에게 추호의 믿음성도 없었다. 그들은 다 같은 종류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모두 데면데면하고 경각심이 높지 못했으며, 게다가 남을 쉽게 믿었으니 매우 쉽게 따돌릴 수 있었다.귀영위는 그들과는 완전히 달랐다.두 사람은 가지런히 누웠다. 우문호는 큰 손바닥으로 그녀의 아랫배를 만지며 호기심이 동해 물었다. “당신 보기엔, 얘는 안에서 뭘 하고 있을 것 같아?”“자요!”원경능이 말했다.“좀 이야기를 나누면 안돼?”우문호가 불만 가득히 말했다. “당신 매우 피곤한 거야?”이후 많은 시간 동안 그는 푸대접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이야기조차도 나눌 수 없단 말인가?원경능은 측면으로 누우며 그를 바라 보았다. 입가에는 웃음이 어려 있었다. “제 말은 아기가 안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뜻이에요.”우문호는 ‘오’ 하고 한마디 했다. 아주 무고한 표정이었다. “그 애도 아주 심심할거야. 안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니 말이야.”“그 애는 심심해 하지 않아요.”원경능은 경고의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꼬리만 올려도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우문호가 궁시렁거렸다. “언제쯤 들어가서 그를 볼 수 있을까?”원경능은 가슴에 놓여져 있던 그의 큰 손을 확 내려놓았다. “그 애가 출생하게 되면 그때 볼 수 있죠. 게다가 당신 그곳에 눈도 안 달렸으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어요.”그는 그녀의 연옥 같은 몸을 안고 한숨을
우문호는 이튿날 틈이 생기자 곧 입궁하여 태상황에게 문안인사를 올리려 했다.다른 사람의 도움을 바라는 일인데 빈손으로 갈수 없다는 도리를 그도 알고 있었다.거리에서 한 바퀴 돌아보고는 시간이 촉박하자 그저 좋은 담뱃잎 몇 덩이를 사들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궁으로 향했다.태상황은 곁눈으로 말로는 최상급이라는 담뱃잎 몇 덩이를 한번 흘깃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상공공을 시켜 소요공이 그에게 가져다 준 담뱃잎을 갖고 와 비교하게 했다. 최상급이라던 엽초는 순식간에 찌꺼기로 전락해 버렸다.우문호는 뻔뻔하게 말했다. “엽초는 색깔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향만 맡아서도 안됩니다. 더욱이 산지만 봐서도 안되고요.”“그럼 뭘 봐야 하느냐?”태상황이 물었다.“마음을 보아야죠.”우문호는 아부를 하며 앞으로 나가 허리를 굽히고 어깨를 주물렀다. “황조부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 손주가 표시한 성의이니 그런대로 받아 주십시오. 게다가 원씨도 말했어요. 황조부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요. 이 담뱃잎이 그리 좋지 않으면 조부께서 적게 피우실 것 아닙니까? 그럼 조부의 건강에도 이롭습니다.” “뜬금없이 무슨 아부냐. 빨리 말해, 무슨 일인 게냐?”태상황은 냉랭했다. 요즘 부인을 맞이 하더니 점점 더 정직한 멋이 없어졌다. 하지만 예전에 체면을 차리느라 어린 나이에 벌써 영감탱이처럼 엄숙했던 것 보다는 지금이 훨씬 사랑스러웠다.우문호는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 헤실대며 말했다. “황조부에게서 사람 둘을 빌려 쓰려 합니다.”“누구를?”“두 귀영위를 빌려 원씨를 보호 하려고요. 최근에 그녀는 또 회왕부로 가야합니다.”우문호가 말했다.“무슨 일이냐?”태상황은 어리둥절했다.우문호는 당연히 로비가 약을 팔아 먹었다는 말은 감히 못했다. 로비의 속마음을 영감님은 듣기만해도 알아차렸다. 이건 여섯째를 연루시키는 일이었다.“말로는 날씨가 추워져서 병세에 무슨 차질이라도 생길까 봐 몇 번 다녀온다 했습니다.”우문호가 말했다.태상황이 손을 흔들자 상공공이 급히 담뱃대를 가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