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부의 사람이 또 초왕부로 왔다. 그렇지만 이번에 온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기왕비 본인이었다. 그녀는 가마에서 내린 후 직접 어깨 수레에 들려 들어왔다 그녀는 혼자 온 것이 아니라 진국대장공주(鎮國大長公主)와 함께 왔다. 진국대장공주는 명원제의 큰 고모였다. 다시 말하면 태상황의 누나였다. 그녀는 이미 칠십 여세였다. 만약 기왕비가 혼자 왔다면 원경능은 피하고 만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국대장공주를 대동하여 함께 왔으니 그 체면을 살려주어야 했다. 임신소식이 처음 알려 졌을 때 진국대장공주는 신속하게 사람을 파견하여 예물을 보내 축하를 전해왔었다. 원경능은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 그녀는 지금 임신한 몸이라 경솔하게 굴 수 없었다. 진국대장공주는 검은색의 둥근 꽃 문양의 비단 옷을 입고 목에는 염주목걸이를 하고 있었다.염주는 알알이 둥글고 매끄러웠다. 그녀의 얼굴은 자애롭고 온화했다. 원경능은 먼저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 대장공주는 앞으로 나섬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가 미소를 머금고 원경능을 훑어 보더니 말했다. “예를 안 갖춰도 된단다. 너는 몸이 무거운 사람이야.” 원경능은 감사함을 표한 후 기왕비를 바라보았다. 기왕비를 못 본지 한참 되었다. 이번에 그녀를 보고 원경능은 마음속으로 조금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많이 늙어 있었고 많이 초췌해있었다. 원경능의 기억으로 그녀는 이제 막 서른 살의 나이였다. 하지만 귀밑머리는 이미 하얗게 세어 있었다. 그녀는 얼굴이 매우 누르스름했으며 두 눈도 움푹 들어가 있었다. 몸도 과하게 야위어 있었다. 그녀도 자신이 만든 입 가리개로 입과 코를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입 가리개 때문인지 그녀의 눈가와 콧등에는 잔주름들이 많아 보였고 눈 밑에는 황갈반이 보였다. 원경능은 그녀가 이미 얇게 분을 바르고 있었음을 보아낼 수 있었다. 그녀는 비교적 널찍한 옷을 입고 있었다. 너무 야위어서 옷이 더 넓어 보였을 수도 있었다. 겉에는 솜을 넣은 검
원경능은 기왕비를 보며 미안함이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기왕비, 제가 약을 당신에게 주기 싫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약이 부족해서 입니다. 두 사람을 다 치료할 수 없어요.” “괜찮아요.”기왕비의 두 눈이 특히 깊고 음침했다. “처방전을 줄 수는 없나요? 제가 사람을 시켜 약을 만들게 하면 됩니다.” ‘오, 처방전 때문에 온 거였어? 여기에 온 의도를 잘못 짚었군.’ 원경능은 다행히 미리 준비를 해놓았었다. “녹아, 가서 내 탁자 위에 있는 공책을 갖고 오너라.” 녹아는 명을 받들고 자리를 떴다. 얼마 안돼서 녹아는 공책을 들고 왔다. 원경능이 말했다.“공책을 기왕비에게 드리거라.” 기왕비는 정말 깜짝 놀랐다. 이렇게 쉽게 내어준단 말인가? “이게 약 처방인가요?”기왕비가 물었다. “네, 저는 모두 이 처방대로 약을 제조합니다.”원경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왕비는 받아서 반신반의하며 열어 보았다. 대번에 그녀의 눈이 휘둥그래 졌다. “이게 뭡니까?” 여기에 쓰여진 글을 그녀는 하나도 알아볼 수 없었다. 마치 부호 같았다. 원경능이 말했다. “이게 바로 약 처방입니다.” “이건 약 처방이 아닙니다.”기왕비는 공책을 덮었다. “초왕비, 그냥 못 준다고 말하면 됩니다. 이렇게 저에게 가식적일 필요 있습니까?” 대장공주도 사람을 시켜 공책을 가져오게 했다. 역시 알아볼 수 없었다. 그녀가 원경능에게 물었다. “이 처방은 어떻게 보는 거냐?” 원경능은 옷소매에서 약 한 봉지를 꺼내 대장공주 앞에 펼쳐 보였다. “이 십 여종의 약은 바로 회왕이 지금 복용하고 있는 약입니다. 이 약은 본래 회왕에게 보내려던 겁니다. 제가 먼저 정리해서 내온 것입니다. 매 한 가지 약의 제조과정은 다 매우 까다롭고 복잡합니다. 여기에 들어간 대부분의 약들은 중초약(中草藥)이 아닙니다. 물론 일부의 약들은 중초약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대장공주께서 알아보실 수 없는 그 부분들이 바로 성분을 추출하고
원경능이 말했다. “제가 왕야를 진찰해드릴게요.”회왕이 재빨리 손을 내저으며 말렸다. “아니, 아닙니다. 모비께 들었는데, 다섯째 형수는 임신한 몸이라 하셨습니다. 저를 가까이 하면 안 됩니다.”원경능이 말했다. “괜찮아요. 당신의 병은 지금 이미 전염성이 없어요. 그저 진찰만 할 뿐입니다.”회왕은 하는 수 없이 말했다. “그럼 좋습니다. 병풍 뒤로 들어가시지요.”대청에는 병풍이 있어 막을 수 있었다. 원경능이 들어가 그를 검사하니 폐부에 비교적 선명한 잡음이 들려왔다.그의 병이 원래보다 더 엄중해졌던 것이다.원경능은 그와 함께 병풍 뒤에서 걸어 나왔다. “왕야는 매일 제시간에 정량대로 약을 드시지 않은 겁니까?”그녀가 물었다.“약을 먹었습니다. 매일 먹고 있습니다.”“하루에 세 번 한번에 여덟 알을요?”원경능이 물었다. “하루에 한번씩 먹었다. 약을 많이 먹어봤자 좋은 일도 아니지 않느냐. 그는 지금 이미 많이 나아졌어. 게다가 복용량을 줄인 후 그는 정신이 훨씬 맑아졌다고 했다.”로비가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원경능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웃어른인지라 그저 머리를 저으며 물었다. “언제부터 약을 줄였습니까? 어떤 약을 줄였습니까? 줄인 약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기왕비에게 팔았다.”로비가 말했다.회왕은 너무 놀라 로비를 쳐다보았다. “모비, 어찌 다섯째 형수의 약을 가져다 팔 수 있습니까? 게다가 다섯째 형수가 저더러 약을 줄이라 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너희들 그렇게 긴장할 게 무엇이냐. 그날 태의가 와서 너를 진맥하고 네가 이젠 거의 좋아졌다 했었다. 거의 좋아졌으니 약을 줄여도 별문제 없을 거 같았어. 그리고 그 약들을 기왕비에게 팔아야 기왕비도 재산을 좀 날릴 것 아니냐.”로비가 웃으며 말했다.원경능은 웃지도 울지도 못할 심정이었다.원경능은 한참을 생각하다 말했다. “로모비, 제가 따로 이야기를 나누어도 되겠습니까?”로비는 대장공주를 쳐다보았다.“가 보거라.”대장공주가 손을 저
우문호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시종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 원경능이 매일 갑옷을 입고 밖으로 나간다 해도 그는 마음을 놓지 못할 것이다.그는 한참 생각했다. “아니면, 내가 궁에 들어가 태상황께 여쭤볼게. 그의 귀영위 두 사람을 빌려 뒤에서 당신을 호위하면 안되냐고.”원경능은 실소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요?”“당연하지!”우문호가 진지하게 말했다.원경능은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 좋을 대로 하세요.”그녀는 아사에게 매우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서일도 있지 않는가?우문호는 아사와 서일에게 추호의 믿음성도 없었다. 그들은 다 같은 종류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모두 데면데면하고 경각심이 높지 못했으며, 게다가 남을 쉽게 믿었으니 매우 쉽게 따돌릴 수 있었다.귀영위는 그들과는 완전히 달랐다.두 사람은 가지런히 누웠다. 우문호는 큰 손바닥으로 그녀의 아랫배를 만지며 호기심이 동해 물었다. “당신 보기엔, 얘는 안에서 뭘 하고 있을 것 같아?”“자요!”원경능이 말했다.“좀 이야기를 나누면 안돼?”우문호가 불만 가득히 말했다. “당신 매우 피곤한 거야?”이후 많은 시간 동안 그는 푸대접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이야기조차도 나눌 수 없단 말인가?원경능은 측면으로 누우며 그를 바라 보았다. 입가에는 웃음이 어려 있었다. “제 말은 아기가 안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뜻이에요.”우문호는 ‘오’ 하고 한마디 했다. 아주 무고한 표정이었다. “그 애도 아주 심심할거야. 안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니 말이야.”“그 애는 심심해 하지 않아요.”원경능은 경고의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꼬리만 올려도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우문호가 궁시렁거렸다. “언제쯤 들어가서 그를 볼 수 있을까?”원경능은 가슴에 놓여져 있던 그의 큰 손을 확 내려놓았다. “그 애가 출생하게 되면 그때 볼 수 있죠. 게다가 당신 그곳에 눈도 안 달렸으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어요.”그는 그녀의 연옥 같은 몸을 안고 한숨을
우문호는 이튿날 틈이 생기자 곧 입궁하여 태상황에게 문안인사를 올리려 했다.다른 사람의 도움을 바라는 일인데 빈손으로 갈수 없다는 도리를 그도 알고 있었다.거리에서 한 바퀴 돌아보고는 시간이 촉박하자 그저 좋은 담뱃잎 몇 덩이를 사들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궁으로 향했다.태상황은 곁눈으로 말로는 최상급이라는 담뱃잎 몇 덩이를 한번 흘깃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상공공을 시켜 소요공이 그에게 가져다 준 담뱃잎을 갖고 와 비교하게 했다. 최상급이라던 엽초는 순식간에 찌꺼기로 전락해 버렸다.우문호는 뻔뻔하게 말했다. “엽초는 색깔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향만 맡아서도 안됩니다. 더욱이 산지만 봐서도 안되고요.”“그럼 뭘 봐야 하느냐?”태상황이 물었다.“마음을 보아야죠.”우문호는 아부를 하며 앞으로 나가 허리를 굽히고 어깨를 주물렀다. “황조부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 손주가 표시한 성의이니 그런대로 받아 주십시오. 게다가 원씨도 말했어요. 황조부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요. 이 담뱃잎이 그리 좋지 않으면 조부께서 적게 피우실 것 아닙니까? 그럼 조부의 건강에도 이롭습니다.” “뜬금없이 무슨 아부냐. 빨리 말해, 무슨 일인 게냐?”태상황은 냉랭했다. 요즘 부인을 맞이 하더니 점점 더 정직한 멋이 없어졌다. 하지만 예전에 체면을 차리느라 어린 나이에 벌써 영감탱이처럼 엄숙했던 것 보다는 지금이 훨씬 사랑스러웠다.우문호는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 헤실대며 말했다. “황조부에게서 사람 둘을 빌려 쓰려 합니다.”“누구를?”“두 귀영위를 빌려 원씨를 보호 하려고요. 최근에 그녀는 또 회왕부로 가야합니다.”우문호가 말했다.“무슨 일이냐?”태상황은 어리둥절했다.우문호는 당연히 로비가 약을 팔아 먹었다는 말은 감히 못했다. 로비의 속마음을 영감님은 듣기만해도 알아차렸다. 이건 여섯째를 연루시키는 일이었다.“말로는 날씨가 추워져서 병세에 무슨 차질이라도 생길까 봐 몇 번 다녀온다 했습니다.”우문호가 말했다.태상황이 손을 흔들자 상공공이 급히 담뱃대를 가져
우문호는 그녀가 계속 기왕비와 거래할까 봐 또 당부했다. “그녀가 다시 오면, 당신은 더는 만나지 말아. 어쨌든, 우린 기왕부의 사람들을 건드리지도 말고 만나지도 않으면 돼.”그는 이미 냉철하게 다 생각해놓고 있었다. 부황이 지금 어떤 태도로 나오든 첫째에게 어떤 희망을 품든 그는 다 관계하지 않기로 했다.지금 제일 중요한 일은 그녀와 아이뿐이었다. 모든 일은 다 아이가 태어난 다음에 볼 판이었다.“알겠어요. 참, 그 사건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원경능이 물었다.우문호는 요즘 아침 일찍 나가고 저녁 늦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 정강부의 실마리를 따라 파헤치고 있었다. 이 사건은 그가 궁에서 치료받는 기간에도 부내의 사람들이 다 잘 처리하고 있었다. 특히 탕양은 요즘 얼굴보기가 힘들었다. 아마 이 일로 바쁜 모양이었다.우문호가 말했다.“막문의 죄는 이미 정해졌어. 하지만 머리가 날아나는가 아닌가 하는 건 그가 몇 사람이나 더 부는가에 달렸어.” “막문은 기왕비의 외사촌 동생인가요?”원경능이 물었다.“맞아. 내가 이미 조사했어. 이 몇 년 동안 막문은 많은 물품들을 기왕부에 보냈었어.”원경능은 머리를 측면으로 돌리며 어떤 생각에 잠긴 듯이 말했다. “기왕부에 보냈다고요? 기왕 손에 보낸 게 아니고요? 그럼 기왕은 또 빠져 나갈 수 있겠네요.”우문호가 말했다. “맞는 말이야. 첫째의 수법대로라면 이번에는 꼭 기왕비를 몰아낼 거야.”원경능은 알아차리고 말했다. “그러니 그녀가 당신을 태자자리에 앉혀준다 했군요. 기왕이 이미 그녀에게 자신의 손에 쥔 패를 내보였나 보네요.”“그녀가 온건 다 그녀의 의지 만은 아닐 거야. 아마도 동안(佟安)의 뜻일 거야.”“동안이요?” “기왕비의 큰 오빠야. 원래는 호부상서였는데 지금은 내각으로 옮겨갔어. 이 사람은 사교성이 좋아. 나이는 많지 않은데 세력은 방대하지. 그는 이 몇 년 첫째를 위해 많이 뛰어다녔어. 첫째를 위해 많은 사람들을 긁어 모아 주었지. 만약 그가 첫째를 배반한다면 첫째의 태
희씨 어멈에게 물어본 후 우문호는 돌아가서 원경눙을 이끌고 정원에서 산책을 했다.원경능의 기분은 확실히 좋지 않았다. 우문호가 그녀의 손을 이끌고 걸었지만 그녀는 흡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많이 힘들어?”우문호는 그녀를 부축하여 정자에 앉혔다. 바람이 좀 세자 그는 겉옷을 벗어 그녀에게 씌워 주었다. “방으로 들어 갈까?” 원경능은 머리를 흔들며 그를 끌어 당겨 앉히고 소맷자락에서 약상자를 꺼내 들었다. 약상자가 크게 변하자 그녀는 약상자를 열며 우문호 앞으로 가져다 놓았다. “봐요.”우문호는 머리를 기웃거리며 한 번 쳐다보았다. “뭘 보라는 거야?”그는 이 물건에 대해 몰랐다. 심지어 약통 위에 쓰여진 글자도 알아볼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모두 지렁이 같은 것들이었다.원경능은 약을 하나하나 다 꺼내 놓았다. 꺼낼수록 더 많았다. 그녀는 여러 개로 분류해 놓았다. 마지막에 눈길은 한 안경 보관함에 가서 멎었다. 안경 보관함을 들자 밑에 또 한 층이 나타났다. 이 층의 물건에는 자물쇠가 잠겨 있었다.우문호는 눈만 부릅뜬 채 말을 잇지 못했다.“당신... 당신 이 상자는 크지도 않은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물건을 담을 수 있어?”원경능은 그의 말을 듣고서야 놀란 눈으로 상 위에 가득한 약들을 쳐다보았다. 이 상자 안의 약들로 전체 탁자를 가득 채울 수 있었다.그녀가 다시 상자를 보니 약상자안의 약은 아직 절반도 꺼내지 못했다.그녀는 걸상에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미쳤나 봐. 정말 미쳤나 봐.”우문호도 손을 뻗어 그녀를 도와 물건을 꺼냈다. 꺼낼수록 더 많아졌다. 나중에 제일 밑에 다른 물건이 한층 깔려있었다. “어떻게 칼도 있어? 이건 또 뭐야? 작은 집게? 큰 집게?”원경능도 다가가 들여다 보았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수술 도구까지 다 들어 있다니.마지막 한 층에는 또 다른 물건이 있었는데 무슨 원인인지 새하얀 막으로 봉해져 있었다. 그녀는 그 새하얀 막을 뜯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원경능은 그의 어깨에 기댔다. 몸은 마차의 흔들림에 따라 같이 움직였다. “좋아요!”“이번 사건을 마무리 짓는 대로 곧 당신을 데리고 경성을 떠나 여행을 갈 거야. 이 경조부윤의 자리도 나 다 내놓을 거야. 그 어떤 것도 당신보다 더 중요하지 않아. ““그건 안돼요!”원경능은 급히 머리를 쳐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저와 당신의 일이 충돌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당신은 그냥 일 하세요. 저는 집에서 잘 태아를 잘 안정시키고 있을 게요. 예전처럼 그냥 그렇게 하면 돼요.”“아니, 우리는 경성을 떠날 거야. 아이가 태어나면 다시 돌아오자.”혹은 기왕비가 죽은 다음 다시 돌아 올 수도 있었다.그는 모험을 할 수 없었다. 전에 그녀는 자객을 만나 거의 죽을 뻔했다. 그런 두려움은 그가 지금 생각해 보아도 간담이 서늘했으며 손발이 차가워지고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 공포는 사람들의 모든 용기와 신념을 다 집어삼킬 수 있는 것이었다.그날도 모든 것이 다 평온했었다. 풍랑도 일지 않았고 햇빛도 아주 따스했다. 하지만 그런 안온함 속에서 그렇게 천지를 개변하는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분명 여기저기서 거대한 파도가 용솟음 치고 있었다. 일단 사고가 난다면 구해 낼 여지도 없었다.그는 절대로 이런 모험을 할 수 없었다. 구 할의 파악이 있어 그 사고를 넘길 수 있다 해도 이런 모험은 할 수 없는 법이다.“그럴 필요가 있나요?”원경능은 비록 나가서 바람을 쏘이고는 싶지만, 그가 직업을 잃는 건 너무 과한 것 같았다.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가 본분을 지키며 집에 가만히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우문호는 손으로 그녀의 눈썹 끝을 쓸어주며 말했다. “어젯밤 내가 오랫동안 생각을 해봤어. 이 결정은 비록 급히 내린 거지만, 제일 온당하면서도 안전한 방법이었어. 경성을 떠난다는 건 곧 시비를 떠나고 투쟁을 떠난다는 거야. 경조부윤은 내가 하지 않아도 수많은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맡아 할 수 있어. 꼭 나여야만 하는 일이 아니야. 하지만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