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씨 어멈에게 물어본 후 우문호는 돌아가서 원경눙을 이끌고 정원에서 산책을 했다.원경능의 기분은 확실히 좋지 않았다. 우문호가 그녀의 손을 이끌고 걸었지만 그녀는 흡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많이 힘들어?”우문호는 그녀를 부축하여 정자에 앉혔다. 바람이 좀 세자 그는 겉옷을 벗어 그녀에게 씌워 주었다. “방으로 들어 갈까?” 원경능은 머리를 흔들며 그를 끌어 당겨 앉히고 소맷자락에서 약상자를 꺼내 들었다. 약상자가 크게 변하자 그녀는 약상자를 열며 우문호 앞으로 가져다 놓았다. “봐요.”우문호는 머리를 기웃거리며 한 번 쳐다보았다. “뭘 보라는 거야?”그는 이 물건에 대해 몰랐다. 심지어 약통 위에 쓰여진 글자도 알아볼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모두 지렁이 같은 것들이었다.원경능은 약을 하나하나 다 꺼내 놓았다. 꺼낼수록 더 많았다. 그녀는 여러 개로 분류해 놓았다. 마지막에 눈길은 한 안경 보관함에 가서 멎었다. 안경 보관함을 들자 밑에 또 한 층이 나타났다. 이 층의 물건에는 자물쇠가 잠겨 있었다.우문호는 눈만 부릅뜬 채 말을 잇지 못했다.“당신... 당신 이 상자는 크지도 않은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물건을 담을 수 있어?”원경능은 그의 말을 듣고서야 놀란 눈으로 상 위에 가득한 약들을 쳐다보았다. 이 상자 안의 약들로 전체 탁자를 가득 채울 수 있었다.그녀가 다시 상자를 보니 약상자안의 약은 아직 절반도 꺼내지 못했다.그녀는 걸상에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미쳤나 봐. 정말 미쳤나 봐.”우문호도 손을 뻗어 그녀를 도와 물건을 꺼냈다. 꺼낼수록 더 많아졌다. 나중에 제일 밑에 다른 물건이 한층 깔려있었다. “어떻게 칼도 있어? 이건 또 뭐야? 작은 집게? 큰 집게?”원경능도 다가가 들여다 보았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수술 도구까지 다 들어 있다니.마지막 한 층에는 또 다른 물건이 있었는데 무슨 원인인지 새하얀 막으로 봉해져 있었다. 그녀는 그 새하얀 막을 뜯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원경능은 그의 어깨에 기댔다. 몸은 마차의 흔들림에 따라 같이 움직였다. “좋아요!”“이번 사건을 마무리 짓는 대로 곧 당신을 데리고 경성을 떠나 여행을 갈 거야. 이 경조부윤의 자리도 나 다 내놓을 거야. 그 어떤 것도 당신보다 더 중요하지 않아. ““그건 안돼요!”원경능은 급히 머리를 쳐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저와 당신의 일이 충돌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당신은 그냥 일 하세요. 저는 집에서 잘 태아를 잘 안정시키고 있을 게요. 예전처럼 그냥 그렇게 하면 돼요.”“아니, 우리는 경성을 떠날 거야. 아이가 태어나면 다시 돌아오자.”혹은 기왕비가 죽은 다음 다시 돌아 올 수도 있었다.그는 모험을 할 수 없었다. 전에 그녀는 자객을 만나 거의 죽을 뻔했다. 그런 두려움은 그가 지금 생각해 보아도 간담이 서늘했으며 손발이 차가워지고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 공포는 사람들의 모든 용기와 신념을 다 집어삼킬 수 있는 것이었다.그날도 모든 것이 다 평온했었다. 풍랑도 일지 않았고 햇빛도 아주 따스했다. 하지만 그런 안온함 속에서 그렇게 천지를 개변하는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분명 여기저기서 거대한 파도가 용솟음 치고 있었다. 일단 사고가 난다면 구해 낼 여지도 없었다.그는 절대로 이런 모험을 할 수 없었다. 구 할의 파악이 있어 그 사고를 넘길 수 있다 해도 이런 모험은 할 수 없는 법이다.“그럴 필요가 있나요?”원경능은 비록 나가서 바람을 쏘이고는 싶지만, 그가 직업을 잃는 건 너무 과한 것 같았다.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가 본분을 지키며 집에 가만히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우문호는 손으로 그녀의 눈썹 끝을 쓸어주며 말했다. “어젯밤 내가 오랫동안 생각을 해봤어. 이 결정은 비록 급히 내린 거지만, 제일 온당하면서도 안전한 방법이었어. 경성을 떠난다는 건 곧 시비를 떠나고 투쟁을 떠난다는 거야. 경조부윤은 내가 하지 않아도 수많은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맡아 할 수 있어. 꼭 나여야만 하는 일이 아니야. 하지만 당
호국사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 주지방장(住持方丈)은 초왕이 왔단 소리를 듣고 친히 마중을 나왔다.“전하, 삼 년 전에 한번 뵙고 난 후 이 노승은 정말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전하는 그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주지방장은 아주 선량하게 생긴 나이든 승려였다. 아무런 틀도 차리지 않았다. 특히 온 얼굴에 자애로운 웃음을 띠고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순식간에 이 세상의 모든 번뇌를 잊어버리게 했다.“주지방장의 염려 덕에 소왕(小王)은 잘 지냈네.”그는 두 손을 합장하며 예를 갖추고는 원경능을 이끌어 소개했다. “주지방장, 이 사람은 소왕의 부인이네. 원씨 경능이라 하네.”원경능도 합장했다. “방장 대사를 뵙네.”방장은 미소를 머금고 원경능을 바라보았다. 눈빛으로 응시하다 심지어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그제서야 말했다. “왕비, 안녕하십니까!”방장은 두 사람을 선방(禅房)으로 모셨다. 아사와 서일은 밖에서 기다렸다.선방으로 들어가자 방장은 사미승을 시켜 차를 올리게 한 후 물었다. “전하와 왕비께서는 기왕전하를 만나러 오셨습니까? 기왕전하는 저녁강의를 듣고 계십니다.아마 만나 뵙기 힘들 겁니다.”황제는 교지를 내려 기왕이 호국사에 있는 동안 밖의 그 어떤 사람도 만나지 못하게 했다. 방장은 좀 매끄러운 사람이었기에 기왕의 체면을 세워주느라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우문호는 찾아온 이유를 곧바로 말했다. “아니네. 오해하지 마시게, 방장. 소왕은 그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 일이 있어 방장을 찾아 온 거네.”방장은 미소를 지었다. “할 말씀이 있으시면 직접 하시지요, 전하.”우문호는 원경능의 손을 잡고 방장을 보며 말했다. “방장, 소왕이 보기에는 왕비의 몸에 요사스러운 것이 들러붙은 것 같네. 하여 방장이 부처님의 밝은 눈으로 나를 대신해 잘 봐주시게.”방장은 어리둥절해하더니 눈길을 원경능에게 돌렸다. 꼬박 십 초 동안 관찰이 지속되었다. 그가 그제서야 천천히 눈길을 돌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왕비는 가슴속
방장은 그 약상자를 보더니 미소를 머금고 원경능에게 말했다. “다시 눈을 감고 이 노승의 말을 들으십시오.” 원경능은 다시 눈을 감았다. 이젠 이 대승려에 대해 마음속으로 이미 승복하고 있었다. 비록 아직도 좀 의아하기는 했지만. 방장의 목소리가 느릿느릿 울렸다. “당신 앞에 한 위급한 환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자주적으로 호흡할 수 없고 비장이 파열됐고 내장에 출혈이 생겨 목숨이 경각에 달렸습니다. 제일 중요한 문제는 그녀가 아홉 달이 된 임산부라는 것입니다. 아이는 곧 태어날 텐데, 횡태위로 있는 상태입니다. 당신은 어찌하겠습니까? 무엇을 사용하여 이 환자를 구하겠습니까? 원경능은 머릿속으로 재빨리 생각을 굴렸다. 비장이 파열되고 내장 출혈이 생겼는데 아이를 출산해야 한다. 그럼 절대 순산할 수 없다. 우선 먼저 응혈시키고, 피를 수혈하고 제왕 절개하여 아이를 꺼낸 다음 비장을 고치고 내출혈을 막아야 한다. 이건 한 차례의 큰 수술이었다. 수요되는 수술기구들이 수두룩하다. 그녀의 약상자에는 오직 수술칼, 수술 집게 밖에 없다. 심지어 확장기마저도 없었다. 참, 그리고 그녀는 호흡할 수 없다고 했다. 호흡기도 필요했다… 수요되는 물건을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떠올려봤다. 그때 방장이 말했다 “눈을 떠 보세요.” 원경능은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의 광경에 너무 놀라 하마터면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 약상자는 아주 아주 크게 변해 있었다. 선방의 대부분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길이, 너비, 높이가 거의 삼 미터나 되었다. 다시 말하면, 성냥갑만했던 약상자가 아홉 제곱미터나 되는 큰 약상자로 변해버린 것이다. 의자며 책상이 다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아마 금방 약상자가 커지면서 밀어버려 넘어진 것일 테다. “왕비께서 가셔서 약상자를 열어 보십시오.”방장이 말했다. 원경능도 놀라고 의아해하며 걸어갔다. 실로 믿을 수 없었다. 이 약상자가 바로 그녀의 원래 약상자라는 것을. 그렇다면 이 대승려가 약상자를 공제하는 사람이란 말인가?
그녀는 문을 여는 순간 뒤를 한번 돌아 보았다. 방금 전에 이리저리 나뒹굴던 의자며 책상들이 다 제자리에 가 있었다. 마치 전혀 넘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선배, 살펴 가십시오!”대승려는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 원경능은 눈앞이 캄캄해지며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대승려의 눈에 그녀는 삼백 세나 되는 케케묵은 사람일 터였다. 선배라는 한마디를 그녀는 감당하고도 남았다. 겨우 문을 붙잡고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우문호의 목을 붙잡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 “우리 이만 가요!” 우문호는 어리둥절해하다 얼른 그녀를 부축하였다. “얼굴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 사특한 걸 쫓아 냈어? 귀신이 떠나갔어?” 원경능은 그를 보고 있자니 부들부들 떨리면서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당신… 당신은 그렇게 제게 귀신이 씌우기를 바라는 건가요?” 우문호는 그녀를 부축했다. 그녀가 정말로 괴로워하는 것을 확인하고 그제서야 조급해졌다. “어찌된 일이야? 방장이 당신에게 뭐라 했어?” 방장의 목소리가 원경능의 뒤쪽에서 유유히 들려왔다. “노승이 왕야 부부를 청하여 절에서 하룻밤 묵게 하려 합니다.” 원경능은 심장이 다 놀라서 터질 것 같았다. 급히 머리를 돌리니 그는 이미 자신의 뒤에 서 있었다. 여전히 그 자애로운 모습으로. 그녀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당신은 왜 걸을 때 발걸음소리도 내지 않는 것인가? 사람이 사람을 놀라게 하는군. 간 떨어질 뻔했네.” “왕비께선 기분이 엉망이셔서 이 노승의 발걸음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입니다.”방장은 우문호를 보며 성의 있게 초대했다. “왕야, 날도 저물었으니 절에서 하룻밤 묵고 가시는 편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우문호가 말했다. “그렇지. 날도 어둡고 길도 험해서 본왕은 갈수 있지만 왕비는 갈수 없네.”게다가 그는 방장과 몇 마디 말도 못해보고 쫓겨났다. 무슨 일인지도 아직 몰랐다.원경능은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날
원경능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렴. 만약 네가 나라면, 너는 기왕비를 구할 거야?” 아사는 잠깐 생각하다 말했다.“구할 거예요!”원경능은 의아해졌다. “왜?”아사는 입을 벌리고 웃었다. “기왕비가 죽으면 그 저명양이 정비가 되는 거잖아요. 기왕비와 비교했을 때 저는 저명양이 더 싫어요.”“나도 저명양이 싫어. 하지만 저명양은 기왕비처럼 직접 내 목숨을 노리지는 않았어.” 그럼 이 선택은 좋고 싫음에 따라야 한단 말인가? “만약 저명양이 이후에 기왕비가 된다면 그녀는 지금의 기왕비와 똑같은 일을 할 거예요. 게다가 그녀는 더욱 거리낄 것이 없죠. 기왕비의 계략은 깊고 진중해요. 비록 독사같이 매우 공포스럽기는 하지만, 저명양은 그냥 미쳐버린 승냥이나 이리 같잖아요. 그 짐승이 한번 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 독사는 해독이라도 할 수 있잖아요.” 원경능은 머리를 끄덕였다. 이 점은 기실 그녀도 생각했었다. 기왕비도 저명양보다 나은 곳은 없지만 저명양은 반드시 기왕비보다 더 직접적이고 더 잔혹하고 포악할 것 같았다.아마 이것이 그녀의 잠재의식이 기왕비를 구하게 한 원인인 것 같았다. 동시에 다른 하나의 원인이 더 있었는데, 원경능은 그다지 달갑게 승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기왕비가 그날 그녀에게 한 말 때문이었다. 기왕비는 다섯째가 태자자리에 오르는 것을 돕겠다 했다. 그녀는 기왕비의 도움 같은 것은 필요 없었다. 하지만 만약 기왕비의 오빠인 동안의 문하 사람들이 모두 기왕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그건 기왕의 양쪽 팔을 잘라내는 셈이었다. 심지어 그보다 더 심한 것일 수도 있었다. 기왕의 세력이 꺾이고, 이번에 폐하의 처벌까지 합해지면 자연히 때를 기다리며 낮은 자세로 행동하면서 암암리에 세력을 키울 것이다. 이건 과정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바꾸어 말하면, 이건 세력을 다시 키워야 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아사, 너의 말대로 저명양이 좀더 밉고 좀더 흉악한 것 같아. 그럼 기왕비가 살아있다 해도
이튿날 우문호는 원경능과 돌아갈 때 직접 산을 내려가지 않고 방장의 분부대로 뒷산에 있는 작은 절에 가서 조용히 기다렸다. 얼마 안돼 여러 마차들이 줄줄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마차는 뒷산의 평지에 세워졌다. 한 사람 한 사람씩 마차에서 내리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서일은 어리둥절해하더니 말했다. “이 대인? 오 대인? 손 장군? 조 군왕?” 그걸 보고 있던 우문호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모든 사람들이 첫째가 부황의 명에 따라 여기에서 근신하고 있는 중이라는 걸 다 알고 있었다. 또한, 엄격히 성지를 내려 누구도 방문할 수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성지를 무시하고 여기까지 왔다. 이건 절대로 방문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배웅하러 온 혜사부(慧師父)가 말했다. “왕야, 이 몇몇 대인들은 매일 옵니다. 뒷산으로 들어가서 기왕 전하와 일을 상의하고 있습니다.” 우문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잘 알겠네. 알려줘서 고맙네, 사부. 방장한테 전해주게. 본왕이 먼저 작별을 고한다고.” 혜사부는 합장했다.“왕야, 왕비, 살펴 가십시오.” 마차는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비록 산길이었지만 황실의 사찰인지라 그렇게 흔들리지 않았다. 우문호는 내려오는 내내 침묵을 지켰다. 거의 경성에 도착할 즈음에야 그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당신, 기왕비를 치료할 충분한 약이 있는 거 맞지?” “네!”원경능도 사실 입을 떼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이 일을 꺼낼까 고민 중이었다. 하여 그가 말을 꺼내자 얼른 대답했다. 우문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그녀의 병을 치료해줄 수 있어. 하지만 이 일은 절대 비밀이야. 그리고 당신은 반드시 그녀의 명줄을 당신 손안에 쥐고 있어야 해. 나도 이번 사건으로 그녀를 견제할게.” 원경능은 그가 갑자기 생각을 바꾸니 조금 이상했다. “방금 그 사람들은 다 기왕 일당이에요?” “다 그런 건 아니야.”이 점이 우문호의 걱정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그는 예전에 큰 형님은 적어
아사는 기왕부에 도착했다.기왕부는 측비를 맞을 준비로 분주하여 부중 어디에도 안주인의 병이 중하다는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호국사에 있는 기왕이 명하길 이번 결혼은 반드시 성대하고 번화하고 호화스럽게 치러야 한다고 했다. 하여 부중의 모든 가신과 집사들이 온갖 노력을 다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반면 병세가 중한 정비의 뜰은 쓸쓸했다.아사는 원경능의 분부대로 입 가리개를 하고 나서야 기왕비를 만나러 갔다.기왕비는 주위를 물리고 침대식 의자에 누워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며 아사를 한번 보았다. “무슨 일인지 말해보게.” “왕비께서 저더러 말을 전하라 하셨어요. 그녀는 내일부터 약을 제조한다 했습니다. 하지만 기왕비의 병세가 도대체 얼마나 엄중한지 모르니 내일 기왕비더러 한번 초왕부에 들르라 하셨어요.”아사가 말했다. 기왕비가 냉소했다. “그러던가? 그녀도 두려운 모양이지? 아니면 나의 조건에 동의한 것인가?” 아사가 쌀쌀하게 말했다. “왕비가 한마디 더 전하라 했습니다. 만약 기왕비가 목숨을 연명하고 싶다면 선후를 잘 판단하라 하였습니다. 만약 왕비가 협박에 의했거나 기타 다른 뜻이 있어 당신의 병을 치료해준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아예 올 필요 없습니다.”말을 마친 아사는 몸을 돌려 나갔다.“왕비, 원씨네 계집애가 참으로 괘씸합니다.”신변에 있던 시녀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기왕비는 눈을 감고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아사의 건방짐을 그녀는 이미 신경 쓸 수가 없었다. 목숨을 구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만약 네가 본비를 구할 능력이 있으면 너도 저렇게 건방져도 된다.”기왕비가 쌀쌀하게 말했다.시녀는 눈을 내리 깔았다. “소인 감히 그럴 수 없습니다.”기왕비는 아주 의아했다.그녀는 자신이 비천한 먼지로 변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목숨만 구할 수 있다면 그녀는 원경능 앞에서도 비굴하게 아첨할 수 있었다. 그 어떤 사람에게도 그럴 수 있었다그녀는 내키지 않았다.원경능 때문이 아니었다. 원경능이 다 뭐라고. 그녀는 그저 한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