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머리 속에는 또 하나의 뚜렷한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바로 손왕이었다. 혹시 손왕의 목숨이 위태로운 건 아닐까?그리고 회왕에게도 내일 약을 써야 했다. 주사를 안 맞더라도 약은 꼭 먹어야 했다.다행히 오늘 저녁 떠나기 전 두 번 분량의 약을 남겼다. 그녀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 그녀가 죽는다면 회왕은 약이 끊기게 된다. 그는 아직 약을 끊으면 안되었다.다만 너무 고통스러웠다. 왜 이렇게 고통스럽단 말인가. 그녀는 그저 어깨와 다리에 부상을 입었을 뿐인데 왜 온 몸이 아픈 것인가.그녀는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그러나 혼신의 힘을 다 해도 한 음절조차 내뱉을 수 없었다.그녀는 우문호가 그녀를 부르는 것을 들었다. 정말 그인지는 모르겠다. 목소리가 좀 달랐다. 그 목소리는 계속 떨리고 있었다.‘걱정하지 마세요. 걱정 말아요. 저는 버텨낼 수 있을 거예요.’“왕야, 뜨거운 물이 준비되었습니다.”기씨 어멈도 무척이나 놀랐다. 돌연히 왕부로 모셔진 사람이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본왕이 하지!”우문호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희씨 어멈이 말하길 손왕이 그녀의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손왕이 화살을 대신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그 화살은 직접 그녀의 심장을 꿰뚫었을 것이라고.기씨 어멈이 뜨거운 수건을 건네주자 그것을 받은 우문호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피는 이미 굳어있어서 닦아내기 힘들었다. 그는 힘을 쓰지 못했다. 행여 그녀가 또다시 고통스러워할까 봐 두려웠다. 그녀는 비록 혼절했지만 여전히 몸을 떨고 있었다. 고통 때문이었다.이렇게 마르고 몸이 약한 그녀가 어찌 두 화살을 견뎌 낼 수 있단 말인가?“고사와 서일은?”우문호가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탕양이 재빨리 들어와 아뢰었다.“걱정 마십시오, 왕야. 서일과 고사는 지금 조사 중에 있습니다. 자객의 신분은 빠른 시일 내에 밝혀질 수 있을 것입니다.”“본왕은 진실을 알고 싶다. 배후에서 지시한 사람 말이다!”우문호는 한 줄기 서
우문호는 침대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감싸고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지만 한마디 위로의 말조차 내뱉을 수 없었다. 이따금씩 초조하게 그녀의 얼굴에 입을 맞추거나 이마를 맞대고 있었을 뿐이었다.원경능도 그의 초조함과 쓰라린 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녀는 참으려 애썼으나 결국 작지 않은 신음을 내질렀다. 도저히 이 고통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입을 벌리고 심호흡을 했다.그렇게 한 시진 동안 버텼지만 원경능은 종국엔 통증을 참지 못해 몸에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고통 때문에 온몸에서 식은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이마에는 콩알만한 땀이 뚝뚝 흘러내려, 끝내 참지 못하고 떨군 눈물과 함께 섞여 들었다.“너무 아파….”그녀의 이가 딱딱 부딪쳤다. 어깨가 가장 아팠다. 화살촉이 뼈에 박혀 아마 뼈에도 금이 간 듯싶었다. 그 통증이 물밀 듯 밀려왔다.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던 우문호는 그녀의 아프다는 말에 그의 가슴도 찢겨지는 것 같았다. 그가 고개를 돌려 태의에게 진노했다.“방법 좀 생각해 보시게!”“자금단이요.”더는 방법이 없었던 태의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혹 왕야께서 자금단을 더 갖고 계십니까? 자금단은 얼마간 고통을 멈출 수 있을 것입니다.”“본왕에게 더 이상 자금단이 어디 있겠나?”우문호가 성난 사자처럼 울부짖었다. 제왕의 자금단과 예친왕의 자금단은 모두 그가 먹었었다. 다른 형제들은… 그는 누군가가 그에게 양보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본왕이 여섯째에게 가서 부탁해보지!”우문호는 불현듯 회왕을 떠올렸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원경능은 있는 힘을 다해 그의 손가락 하나를 움켜쥐고 절망과 두려움이 섞인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가지… 마세요. 날 혼자 남겨두지 마!”탕양이 급히 나섰다.“소인이 구해오겠습니다. 소인이 구해오겠습니다.”탕양이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자금단은 목숨을 구하는 단약이었다. 회왕은 줄 가능성이 있었지만 로비도 회왕부에 있었다. 과연 로비가 원할까
자금단을 구해 왕부로 돌아가자 우문호는 급히 빻아서 원경능에게 먹였다.자금단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먹은 지 일주향을 피운 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원경능은 떨림을 그쳤다. 고통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그러나 한바탕 아프고 나니 여전히 매우 피곤해서 그녀는 눈꺼풀을 들 수조차 없었다. 흐리멍덩하게 잠을 자고 있는데 꿈속에서 자꾸 날카로운 화살이 그녀를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고 놀라서 깨어났다.우문호는 계속 그녀의 곁을 지켰다. 그의 미간을 펴진 적이 없었다. 그는 상처를 눈으로 직접 보았었다. 화살을 뽑자 선혈이 솟구치더니 살점 하나가 걸려 나왔다. 상처는 깊어서 뼈가 다 보일 정도였다.이 장면을 떠올리자 그의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두근거렸고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왜 안 자? 아직도 아파?”원경능이 눈을 뜬 것을 본 그가 급히 몸을 숙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원경능은 그를 보며 다치지 않은 손을 내밀어 그의 이마를 쓰다듬었다.“전 괜찮아요. 이젠 안 아프니 제 걱정하지 말고 이만 볼 일 보세요.”우문호는 그녀의 아프지 않다는 말에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급한 일은 없어, 그대 곁은 지킬 거야.”원경능이 힘겹게 밖을 한번 쳐다보고 물었다.“몇 시진이에요?”우문호도 몰라서 고개를 돌려 탕양을 바라보았다. 탕양이 급히 대답했다.“거의 오시가 되어갑니다.”원경능이 그의 손을 누르며 일어나려고 애썼다.“회왕부에 다녀와야 해요.”“아니, 오늘은 가지마.”그가 단호하게 말했다.“당신 다 나으면 그때 가도록 해. 그에게 약만 보내주면 될 일이야.”원경능도 고집을 부렸다.“안돼요. 오늘과 내일은 스트렙토마이신 주사를 맞아야 해요. 마지막 이틀이에요, 이후엔 약만 먹으면 돼요. 그러니 꼭 가야 해요.”“당신 이 모양으로 어떻게 간다고 그래? 이틀 정도는 안 가도 괜찮지 않나?”우문호가 말렸다.원경은은 어깨를 움직여봤는데 통증이 아주 미미했다. 자금단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저번의 자금탕과 효
회왕부의 첩자를 찾아내야 했기에 우문호와 원경능은 오래 머물러 있지 못했다. 특히 최근에는 왕부를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기에 꼭 왕부의 사람들이라 할 수도 없었다. 다른 공주나 친왕들이 연루되는 일이라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게다가 우문호는 원경능의 상처도 마음에 걸렸다. 집에 가서 그녀를 눕혀야지만 안심할 수 있었다. 저녁 무렵 회왕부에서 사람을 파견하여 첩자를 이미 찾아냈다는 소식을 전했다. 범인은 뜻밖에도 회왕을 따라 궁에서 나온 어멈이었다.우문호는 그 말을 듣고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본왕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 어멈은 회왕의 유모(奶娘)일거야.”유모는 거의 어머니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회왕은 아마 상심이 클 터였다. “독을 타는 것도 그녀가 했답니다. 하지만 그녀는 여지를 두었습니다. 사실 그 독은 회왕을 즉사 시킬 수 있는 독이었답니다.”탕양은 회왕부에서 보고해온 말을 다시 전했다.“배후자는 자백했다 더냐?”우문호가 물었다. 탕양은 머리를 저었다. “아니요, 죽어도 입을 열지 않았답니다. 일가의 목숨이 전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면서요. 나중에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벽에 머리를 박아 죽었답니다.”유모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원경능의 마음도 좋지 않았다.자신이 젖을 먹여 키운 아이였다. 부득이한 사정이 아니고서는 절대 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확실히 그녀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아니었다면 회왕은 진작 죽었을 것이다.누가 유모를 경계한단 말인가? 이것으로 배후자는 대단히 고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사람을 찾았으니 말이다.탕양이 풀이 죽어 말했다. “유모가 죽으니 모든 단서가 다 끊겼습니다. 추적 조사도 어려울 것입니다.”원경능은 우문호를 보며 말했다.“당신이 보기에는 기왕이 한 짓 같아요?” 우문호가 그녀를 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이런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 당신은 앞으로 그저 이 두 부부에게 될수록 미움
원경능의 눈가에는 그윽한 웃음이 어렸고 창백한 얼굴에는 활기가 조금 돌았다."당신이 어렸을 때 강아지에게 물렸던 일을 말하고 있었어요."우문호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다만 어린 시절에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리에 앉은 우문호는 기씨 어멈을 내보낸 후 원경능에게 말했다."자야 해!"또 자야 하다니, 원경능은 잠만 자서 척추가 끊어질 것 같았다. 원경능은 누우면서 우문호에게 애원하였다."자고 싶지 않아요. 이틀 동안이나 잤으니 나가서 걷고 싶어요.""안돼, 당신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으니 오늘 어디도 가면 안돼. 저택에 남아서 요양해야지."이틀 전만 하여도 원경능은 회왕부에 갔었다. 오늘에는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되어 사흘 동안 먹을 약을 두고 왔다. 사실 원경능은 오늘만 외출하지 못하였지 다른 날은 계속 밖에서 돌아다녔었다."당신의 말을 들을 테니 빨리 관아로 돌아가요."원경능이 재촉했다."오늘은 확실히 관아로 돌아가야 해. 당신은 꼭 내 말을 듣고 도처로 돌아다니지 마."우문호는 원경능을 위해 이불을 잘 여며주었다. 왜 이렇게도 공무를 하기 싫은 것일까? 하루 종일 원경능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되었다."알겠어요, 전 어디에도 안가요."원경능은 고분고분하게 대답하였다. 정말 더 이상 우문호가 공무를 보는 것을 지체하면 안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꼬투리가 잡혀 공개 비판되는 것을 피면 하여야 했다.우문호는 아쉬운 마음에 그녀에게 입맞춤을 하였다. 그녀의 얼굴은 맑고 탱탱하여 감촉이 매우 좋았다."아니면 당신이 잔 후에 가지."원경능은 웃었다."빨리 가요. 이렇게 꾸물대다가 언제 갈지 모르겠네요. 당신이 집에 있으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저도 제대로 휴식할 수 없네요.""그럼 우리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우문호가 다가오면서 구슬렸다. 원경능은 그를 밀쳐냈다."빨리 가요. 빨리 일을 끝마치고 일찍 돌아와도 똑같잖아요?"우문호는 한번 더 그녀의 입술을 훔치고 나서야 웃으며 몸을 일으
두 건의 피해자들은 모두 평민백성들이어서 혁혁한 신분이 없었다. 다만 원한을 지은 사람도 없고 매우 얌전한 사람들이었다. 만일 민가에서 일가를 죽였는데 이웃이 몰랐다면 순식간에 일가의 목숨을 끊거나 고함을 지르지 못하게 하여야 했다.하지만 부검 결과에 따른다면 그들은 무딘 칼에 베인 것이었다. 또한 상처가 한 곳인 시체가 없었다. 예리한 무기가 초래한 상처가 아니었다.그 말인즉 처음 칼을 맞기부터 죽을 때까지 피해자들에게는 충분히 소리 지를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일 이웃이 멀리 떨어졌다면 이상할 것이 없었겠으나, 마음을 백성들은 모두 가까이에 살고 있었다. 자신이 한 치 땅이라도 손해를 볼까 봐서였다.또한 민가는 널찍하지 않았다. 담장 하나 건너에 일가가 몰살 당했는데 외침소리 한 번 듣지 못했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바보는 검을 지니고 있었다고 하였으나 두 가족은 모두 검으로 인한 상처가 아니었다. 보아하니, 바보의 말은 확실히 믿을 수가 없었다.우문호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쉬었다. 원경능의 손이 우문호의 목을 지나 미간에 이르렀다. 그녀는 그의 미간을 매만지며 어렴풋이 물었다."왜 탄식해요? 무슨 일이 있어요?"우문호는 재빨리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아니, 당신이 빨리 낫기를 바래서 그래.""거짓말!"원경능의 목소리는 곧 잠이 들 듯한 나른함이 묻어있었다. 몸을 뒤척이고는 두 발을 우문호의 다리에 올려 놓았다. 원경능은 비교적 편하고도 상처가 눌리지 않는 자세로 바꾸었다. "당신 걱정 거리가 있네요. 사건 때문에 그래요?"우문호는 얼른 손을 뻗어 원경능의 상처가 있는 다리를 조심스럽게 옮겼다."당신은 왜 이렇게도 총명하지? 내 속마음을 모두 꿰뚫고 있군.""맞아요. 그러니 절 속일 생각은 하지 마세요."원경능은 눈을 뜨고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 "저에게 말해봐요. 제가 당신을 도울 수도 있잖아요."우문호는 그녀의 입술을 만지고는 말했다."이 두 사건은 아무런
우문호는 기왕을 흘끔 보았는데, 기왕의 눈가에는 득의양양함이 어려있었다. 오늘 저수부가 이렇게 말하는 것에 대해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저수부는 나랏일을 중히 여겼고 이 사건은 확실히 백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저수부가 하루 빨리 이 사건을 해결하여야 한다고 제기할 것이라 우문호는 예상했었다.그러나 현재 단서란 바보 한 명과 개 한 마리뿐이었다. 이는 범인을 찾을 수 있는 관건적인 실마리로 될 수 있을까? 명백히 불가능해 보였다.조회가 끝난 후 우문호는 먼저 초왕부로 돌아왔다. 원경능이 가마에 들려 회왕부로 간 것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원경능은 과연 고분고분하게 누워있지 않았다.관아로 돌아온 우문호는 황제의 교지를 전했다. 일주일 내에 이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고. 관아는 순간 아비규환으로 가득 찼다. 우문호는 탁자를 내리치면서 소리쳤다."어서 빨리 나가 단서를 찾지 못할까? 그리고 부근의 백성에게 묻거나 주변에 살인 흉기를 찾을 수 있는가 찾아보거라."왕야께서 화를 내시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순간 관아의 모든 사람들이 바삐 움직였다. 그 뒤 며칠 동안 우문호는 매일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였다. 원경능이 일어나기 전에 떠났고 원경능이 잠든 후에야 귀가하였다.원경능은 우문호가 사건 때문에 분망한 것을 알고 자신이 도움이 되지 못하자 그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그녀의 상처도 천천히 회복되고 있었다. 침상에서 내려와 걸을 수 있었으나 움직이는 것은 아직 조금 불편했다.그녀는 몰래 틈을 타 경후부도 한 번 갔다 왔었다. 조용히 돌아가 노부인만 만났는데 노부인에게 약을 지어주었다. 다른 사람이 찾아오기 전에 원경능은 일찍이 떠났다.회왕부도 최근에 매우 평온하였다. 로비가 샅샅이 조사를 하니 어떤 이들은 조용해진 것이 분명했다. 회왕부 하인 역시 의심이 가는 이들은 로비가 모두 내보냈는데 한바탕 대청소를 한 셈이었다.우문령은 이미 궁으로 돌아갔다.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공주인지라 궁으로 돌아가면 다시 쉽게 나올 수
포두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와 두 손으로 읍하며 말했다."왕야, 왕비께서 오셨습니다."우문호는 고개를 들었다."왕비가?"'무엇 하러 왔지? 이렇게 늦었는데 왜 아직도 자지 않은 거야.'그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과연 원경능이 녹아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오고 있었다. 우문호는 빠른 걸음으로 마중을 나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책망하였다."왜 이렇게 늦은 밤에 왔어?"원경능은 그의 피로함에 창백해진 얼굴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오늘 공주께서 저에게 말씀 해주셨어요. 부황께서 당신더러 일주일 내에 범인을 잡으라고 명하셨다고요. 이렇게 큰 사건을 왜 저에게 말하지 않았어요?"우문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했다."아직 일주일이 안되었으니 걱정하지마. 그리고 난 기한 내에 범인을 찾을 신심이 있어."원경능은 그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일 기한 내에 범인을 찾을 수 있다면 우문호는 오늘밤 돌아왔을 것이다. 원경능은 우문호가 이끄는 대로 걸어 들어가면서 말했다."사건 해결에 대한 일은 전 잘 몰라요. 그러나 의술을 좀 아니 저에게 시체를 좀 보여줘요. 혹은 제가 다른 것을 발견할 수도 있잖아요.""시체를 본다고? 안돼!"우문호는 단번에 거절했다."죽은 사람이 무슨 볼 곳이 있다고 그래."비록 영안실(停尸间)에 얼음이 있지만 죽은 지 오래 되었는지라 시체는 이미 팽창하면서 악취가 풍겼다. 그녀가 어찌 그 냄새를 견딜 수 있단 말인가?"그렇지만 당신들도 아무런 진전이 없잖아요. 아니에요? 절 속이지 말아요."원경능이 말했다."괜찮아 질 거야, 날 믿어."우문호조차도 자신의 말이 너무 신빙성이 없다고 여겨졌다. 우문호는 원경능을 관아 뒤채로 데려가 나한 침대에서 휴식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녹아를 불러 왕비가 잘 휴식하도록 감시하지 못했다고 한바탕 훈계를 하였다.원경능은 우문호가 자신을 애지중지하는 것이 매우 고마웠지만 현재 그들은 부부였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응당 두 사람 함께 감당해야 했다. 그리하여
이 문제에 우문호는 잠시 멍을 때렸다. 왜냐하면 자신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당연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원씨가 임신한 뒤로부터 그의 눈과 마음에는 다른 것들을 담지 못했었다.현재 제왕이 물으니 우문호는 잠시 멍을 때렸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어디 그렇게 많은 왜가 있어, 놓으면 놓는 거지.'"다섯째 형님."제왕은 우문호가 머뭇거리자 조금 몸을 일으키더니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혹 아직도 명취를 좋아하는 건 아니겠죠?"우문호는 그를 흘겨보았다."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네 다섯째 형수는 속이 매우 좁아.""형님 아직도 좋아하고 있는 겁니까?"우문호는 고개를 저었다."좋아하지 않아.""어떻게 했습니까? 이렇게 빨리 명취를 잊다니."우문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내가 뭘 했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한참 뒤에 우문호가 고개를 들었는데 빛이 반짝였다."너의 다섯째 형수가 있었기 때문이지.""그 말인즉, 다른 사람이 생기면 잊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이건 아마 대체하는 방법인 듯 하군요. 다른 여인을 찾아야 되지요, 맞나요?"제왕이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우문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연구해본 적도 없는 걸.'허나 표면상으로는 적극적으로 말했다."맞아, 넌 동그란 얼굴의 계집애와 자주 있도록 시도해봐. 아마 곧 잊을 수 있을 거야."원영의를 말하니 제왕이 탄식하며 말했다."이번에 영의가 조태의를 데리고 돌아왔기 다행이지 아니면 전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겁니다.""네 다섯째 형수가 보낸 거다."우문호는 원경능을 위해 공을 쟁취했다. 일곱째는 늘 원씨에게 편견이 있어 이 문제에 대해 우문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공을 쟁취하여야만 했다.그러나 제왕은 그 말을 흘려 보내고 홀로 중얼거렸다."사실, 동그란 얼굴도 괜찮아요. 자상하게 왕비를 소개해줄 것이라 했거든요."우문호가 불현듯 물었다."참, 오늘밤 돌아갈 거야?"제왕은 생각에 잠겼다."돌아갈 거예요. 동그란 얼굴이 있으니 절 괴롭히
우문호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부황...."부황께서 합의 이혼을 동의하시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또한 그 말투에 불쾌한 느낌이 상당했다."그대로 하면 되느니라."명원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저명취가 시집온 뒤로부터 사단이 끊인 적이 없었다. 작은 일은 저수부의 체면을 보아 눈 감아줄 수 있었다. 이렇게 방임했더니 결국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황실의 체면을 깎는 건 괜찮으나 사적으로 친황들의 사이를 이간질 하니 더 이상 용납할 수가 없었다.애당초 그녀의 명성은 그렇지 않았다. 밖에서는 다들 그녀가 현명하고 정숙하며 대가의 풍격이 있다고 했다.그러나 오늘 저씨 노태부인의 그 말을 해 이미 화가 치밀었었다. 저씨 가문의 체면이 참으로 대단했다."부황."우문호가 정색하더니 재빨리 물었다."부황의 뜻은 일곱째의 요구를 동의한다는 겁니까?""동의하지 않을 수 있느냐? 무기를 휘두르기까지 하는데."명원제가 아비로써의 인내를 보여주었다."합의 이혼한 뒤 각자 재혼한다면 두 가문에게 모두 좋은 일이다."우문호는 매우 우러러보았다. 부황의 이 말은 참으로 가식적이었다. 너무 가식적이어서 전혀 가식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각별히 마음을 쓰는 것 같았다."이 일을 일주일 내에 해결하거라. 해결하지 못하면 곤장을 맞으러 와야 한다. 꺼지거라."명원제가 싸늘하게 말했다.우문호는 명을 받고 제왕을 찾으러 들어갔다. 두 형제는 서로를 부축하면서 출궁했다.그러나 명원제는 계속 상소문을 읽어야 했다. 군주로써 다른 이들보다 더 큰 의자가 있는 이외에 뭐가 나은 것이 있던가?황제란 수명이 짧은 직업이었다.옆에서 묵을 갈던 목여공공이 기쁘게 말했다."제왕과 초왕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음을 보셨으니 폐하께서도 시름을 놓으실 수 있습니다."명원제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는 떳떳하고 일곱째는 단순하다. 그렇기에 다행인 거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일찍부터 크게 다투었을 것이다. 다투지 않더라도 이후에는 암투를 벌일 것이지.
우문호가 위로했다."그만 소리 질러, 부황 앞에서도 네가 계속 신음소리를 낸다면 네가 겁쟁이라고 꾸짖으실 거야."제왕은 아픔에 말도 하지 못했다. 끙끙 신음소리와 함께 발을 질질 끌며 가고 있었다. 결국에는 실로 참을 수 없어 말했다."형님, 절 업어줘요.""상처가 앞에 있는데 내가 널 없으면 더 아프지 않을까?"우문호는 그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근심스러워졌다. '왜 이렇게 아픔을 참지 못한단 말인가? 예전에 원씨는 온몸에 부상을 입고 입궁하여서도 억지로 버텼었는데, 일곱째는 여인보다 못하는군.""다쳐서 아픈 것이 낫지 이렇게 상처가 찢기는 고통은 원하지 않습니다." 제왕은 걸음을 멈추고 무기력하게 손을 저었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는데 입술에도 혈색이 보이지 않았다.우문호는 그를 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업고 나니 제왕이 또 "아아아"하고 소리를 질렀다.우문호가 물었다."되겠어?"제왕은 간신히 고개를 돌려 목여공공을 바라 보더니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아니면 나를 들고 가게."목여공공은 이미 성지를 전하러 출궁한 궁인에게 물어보았었다. 부상 정도가 그렇게 엄중하지 않다고 조태의가 말했다고 전했다. 가슴팍의 상처는 괜찮고 복부의 상처가 조금 깊다고 했다.그리하여 제왕의 이러한 모습을 본 목여공공은 근심을 금할 수 없어 물었다."태의가 확실하게 진찰한 게 맞습니까? 내장이 상한 건 아닙니까?"제왕은 숨을 들이쉬었다."내장이 상한 건 아니네."목여공공은 제왕의 이런 모습으로 실로 궁전까지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말했다."좋습니다. 그렇다면 들고 갑시다."어깨 가마와 들것이 없으니 한 사람은 어깨를, 한 사람은 두 다리를 들고 갔다. 제왕의 머리는 떨어져 있었는데 입에 초롱 손잡이를 물로 있었다. 허나 자신이 걷는 것보다는 나았다.제왕은 칠흙같은 하늘을 바라 보았다. 등불의 빛은 궁중의 밤을 밝히기엔 부족했다. 그는 그저 딴 세상에 온 듯 하였다.왜 살아가다가 갑자기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음은 여전
황후는 완전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일곱째가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 죄명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죄명이 실증되고 정말 백관 앞에서 죄를 심의 받는다면 절로 미래를 망친 것이었다.그리하여 이 일의 진위를 막론하고 재빨리 답했다."합방을 하지 않았는데 어찌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 말이야 말로 전해진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태노부인도 바보가 아니었다. 저명취의 낯빛을 보고 태후가 말한 것이 진실임을 알고 있었다.다만 바보가 아닌 태노부인은 멍해졌다. '측비 때문이 아니라면 제왕은 왜 합의 이혼하려고 하려는 걸까? 설마, 그 원측비의 말이 진실이란 말인가? 명취와 초왕 사이가 애매하단 말인가?'태노부인의 얼굴은 당장에 어두워졌다. 다만 태후가 자리에 있는지라 무엇이라 말할 수 없어 일단 이 화를 가라앉혔다.그러나 태후는 태노부인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노부인, 한마디 묻겠네. 한 여인이 처로써 작은 일로 자결하고 또 낭군을 중상한 뒤 회개하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군다면, 노부인의 부중에서는 어떻게 처단하는가?"태노부인은 실로 체면이 깎였으나 반박할 방법이 없었다. 제왕부부는 예전에 화목했었고 측비가 시집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또한 합방도 하지 않았으니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다고 억지를 부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태노부인은 그저 기가 죽어 말했다."태후마마, 제가 아둔했습니다. 명확하게 묻지 않고 입궁하여 태후마마와 황후를 귀찮게 했습니다. 다만 젊은 부부가 다투는 건 자주 있는 일입니다. 어찌 되었든지 쉽게 처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 ""합의 이혼이네."태후가 차가운 낯빛으로 곧 시정했다."황실의 체면이 중요하나 황실의 혈육도 잃을 수 없네. 제왕은 황제의 적자네. 부부가 작은 일로 모순이 생겨 무기를 휘두른다면 철로 만든 몸이라 하여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네."태후는 고개를 돌려 황후를 바라 보았다."너의 며느리고 또 너의 조카니 네가 알아서 이 일을 해결하
황후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몰랐다. 안절부절하여 명원제를 흘깃 보았는데 명원제의 낯빛이 매우 어두웠다. 이에 황후는 원만하게 수습할 수 있는 말 몇 마디 하라고 태노부인에게 눈짓을 보냈다.그러나 태노부인이 싸늘하고도 딱딱하게 말했다."폐하, 황후마마, 제왕은 황실자손으로써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렸습니다. 비록 명취가 충동한 것은 잘못이나 모든 잘못이 명취에게 있는 건 아닙니다. 현재 제왕이 측비로 인해 합의 이혼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니 소문이 퍼진다면 실로 웃음거리가 될 겁니다. 이에 황실과 저씨 가문의 체면이 깎일 겁니다. 폐하께서 성지를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제왕의 상처가 호전되면 백관들 앞에서 죄를 심의 받고 합의 이혼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태노부인의 이 말은 절대 사정의 의미가 아니라 몰아붙이는 느낌이었다.심지어 태노부인이 황실의 체면과 저씨 가문의 체면을 함께 논할 때 황후의 낯빛이 돌연 변했다. 크게 경악하더니 고개를 홱 돌려 명원제를 바라 보았다.아까만 해도 낯빛이 어둡던 명원제는 태노부인의 이 말을 듣고 도리어 화를 내지 않았다. 심지어 잔잔한 미소까지 머금으며 말했다."노부인, 조급해하지 말게. 이 일은 짐이 자세하게 물어볼 것이네. 노부인의 신체가 편찮다고 수부에게 들었으니 돌아가 푹 쉬게. 자손들은 자연히 자손들만의 복이 있을 것이니 노부인이 염려해서 되는 것이 아니네."말을 마친 명원제는 몸을 일으켜 떠났다. 나가기 전에 담담하게 저명취를 흘깃 보았다.태노부인은 기가 차 멍해졌다. 명원제가 위로의 말 한마디도 없이 이렇게 가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자신도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이었다.명원제는 나간 뒤 목여공공에게 분부했다."초왕과 제왕을 부르거라."목여공공은 잠시 머뭇거렸다."폐하, 제왕은 아직 부상 당한 몸입니다.""죽지 않을 거다."명원제가 담담하게 말했다. 만일 중상이라면 일찍이 부중에서 보고를 했을 것이었다."그리고 이 일을 태후께 아뢰거라. 태후께 한 번 들리라고 전하고."목여공공은 명을 받
다만 저명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눈을 감고 울고 있었는데 몸을 달달 떨고 있었다.제왕은 조태의와 원영의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이번에 원영의는 매우 눈치가 빨랐다. 조태의를 이끌고 나가려는데 조태의가 약가루를 내려놓으며 시녀에게 분부했다."이건 지혈약이다. 상처부분에 뿌리고 살짝 동여맨다면 이틀 뒤 바로 괜찮아질 거다."시녀는 이미 놀라 손발이 나른해진 상태였다. 약가루를 건네 받고는 감사의 인사를 했다.제왕은 모든 사람들을 물리고 저명취의 곁에 앉아 물었다."왜 그러는데?"저명취는 고개를 돌리고 눈물만 흘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제왕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그러나 늘 흐리멍덩했던 머리가 이번에는 도리어 맑아졌다. 사실 원영의의 말들이 그를 정신차리게 했던 것이다.만일 명취가 정말 자신을 생각했다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들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었다. 자신은 째지게 가난한 사람도 아니었고 당당한 친왕이었다. 다른 것을 쟁취하지 않아도 그녀에게 평생의 부귀영화를 줄 수 있었다.누구도 그를 경쟁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도 한가하게 놀고 있는 왕야를 상대하지 않았다. 명취는 그렇게 총명하니 알고 있을 것이었다. 또한 자신은 저수부의 외손자였고 현재 황후의 적자였다.큰 형님이 태자로, 황제로 된다고 하여도 감히 자신에게 어쩌지 못할 것이다. 아니면 천하 사람들의 공론을 막을 수 없을 터였다.당연히, 좀 못나게 말한다면 큰 형님은 애초에 자신을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그리하니 명취는 정말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다.그렇다면 그가 한 모든 것들은 가치가 있을까? 그리하여 제왕은 마음이 아프지만 계속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이렇게 끝내. 그대가 시집온 날부터 난 그대의 마음 속에 내가 없다는 걸 알았어. 난 자연히 다섯째 형님과 비할 바가 못되지. 나도 내 자신을 알아. 그대는 시종일관 다섯째 형님을 좋아했던 거야. 다만 다섯째 형님이 그대를 저버리자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시집온
탕양은 이 말을 듣고 너무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아사가 들어와 앉더니 물었다."뭐가 산 것이라고요?""본왕의 아들 말이다!"우문호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아사는 머뭇거리다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턍양을 바라 보았다. 탕양은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며 왕야가 이미 미쳤다는 손짓을 했다.원경능은 기가 막혀 웃음을 터뜨렸다."됐어요, 됐어요, 식사나 해요.""우리 큰 언니는요?""돌아갔어."원경능이 답했다. 아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제왕에게 정말 화가 나요. 글쎄 큰 언니와 서일이 노닥거린다면서 큰 언니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겠어요? 큰 언니가 화를 참고 때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우문호는 기분이 매우 좋은지라 이 말을 듣고 아사를 흘겨봤다."이 계집아이 좀 봐, 일곱째가 매우 연약한 것처럼 말하네. 일곱째도 무술을 연마했었어.""설마요?"아사가 경악했다."그런데 왜 그렇게 연약하게 굴어요?"우문호는 어깨를 으쓱했다."연약하지 않아, 최소한 손으로 계란을 한 알 깰 수 있으니.""전 돌을 깰 수 있어요."아사가 답하니 우문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원경능이 호기심에 물었다."제왕이 정말 무술을 배운 적이 있나요?""배웠지, 황자로써 누가 배우지 않아도 되겠어? 마술과 궁술, 무술 모두 익혀야 하지. 일곱째도 배웠었는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후로는 배우지 않았어. 싸우는 것도 원하지 않고 말이야."아사는 의아해졌다."왜요?""무슨 자극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무술 하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어."우문호가 말했다. 아사는 믿을 수 없었다."그렇게 많이 맞았는데 정말 무술을 익혔다면 왜 반격을 하지 않았겠어요?""일곱째는 여인을 때리지 않아."우문호가 답했다****여인을 때리지 않는 제왕은 제왕부로 돌아갔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그는 곧장 저명취의 방으로 향했다.요 이틀간 저명취는 많이 울었는지라 눈이 계속 부어있었다. 제왕이 들어오는 것을 보아도 그저 담담히 눈길을 위로 들었다."성지가 내려진 건가요
제왕은 기가 막혔다."당신의 말투가 왜 아이를 달래는 것 같지? 본왕에게 정비를 소개하다니. 본왕의 혼사는 모후의 뜻을 따라야 해."원영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밝은 눈에 하얀 이, 옴폭 파인 보조개가 매력적이었다."조모께서 말씀하셨어요. 남자는 모두 애라 달래면 된다고요. 그리고 당신의 모후는...."제왕이 화를 냈다."당신의 모후이기도 하잖아!"원영의는 그제야 두 사람 사이가 생각난 듯 무미건조하게 코를 만졌다."전 정비가 아니라 모후라고 부르면 안돼요."제왕은 눈을 가늘게 떴다."당신 계속 본왕에게 합의 이혼하라고 하고 지금 또 이러한 말을 하는군. 당신 정비가 되고 싶은 거 아니야?"원영의가 물었다."정비가 되면 좋은 점이 뭔데요?""좋은 점이 많지."제왕은 잠시 생각했다."최소한 당신은 본왕과 명분이 정당한 부부로 되는 거지.""명분이 정당한 부부가 된다면 뭐가 좋아요?"원영의가 다시 물었다. 제왕은 그녀를 바라 보았다."당신은 부중에서 뜻대로 할 수 있어. 하인들도 모두 당신의 명을 따를 것이고."원영의가 반문했다."제가 지금 부중에서 뜻대로 살고 있지 않나요? 지금 하인들이 제 명을 따르지 않나요?""당신 본왕과 함께 여러 장소로 출석할 수 있지."원영의가 웃었다."지금은 제가 여러 장소에 출석할 수 없나요? "제왕은 그녀에게 눈을 부릅떴다."당신 지금 고의적으로 엇나가는 거야? 당신이 정비와 측비의 다른 점을 모를 리가 없잖아. 정비는 처고 측비는 첩이야, 명분부터 다르잖아.""처도 좋고 첩도 좋아요. 그러나 제가 저인 사실은 번함이 없어요."원영의는 손을 내저었다."전 당신의 처가 되기 싫어요 .좋기는 다른 사람을 찾으세요. 그리고 당신이 저명취와 합의 이혼하는가를 관심하는 것은 저와 직접적인 이해득실이 있어서예요. 누가 부중에 그러한 정실이 있기를 원하겠어요? 전 그녀를 보는 것조차 싫어요."말을 마치고는 곧 일어났다. 원영의가 떠나려 하자 우문경이 손을 잡았다."가자마, 본왕과 이야기나 좀
아사는 돌아간 뒤 부두에서 만아를 본 일을 원경능에게 알렸다.원경능은 이를 듣고 조금 마음이 시큰거렸다.이러한 시대에 여인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만아는 남정네들과 함께 막노동을 하고 있으니 어디 얼굴을 드러내는 정도인가?다만 자신의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저 아사더러 만아에게 은 열 냥을 가져다 주라고 하였다.다음날 아침 아사가 돌아왔다. 만아가 안받으려고 하였는데 억지로 만아에게 넣어주고 달아났다고 전했다.원경능이 묵묵히 말했다."그 아이에게 주었으면 되었다.""왕비께서는 참 선량하십니다."아사가 칭찬했다. 원경능은 속으로 자신이 선량하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은 열 냥은 준 것도 사실 자신의 죄책감 때문이었다. 원경능은 이 은 열 냥으로 자신을 홀가분하게 만들려고 했다.엄격하게 따진다면 그녀는 만아에게 빚진 것이 없었다.다만 원경능은 자신의 동정심이 점차 사라짐을 느꼈다. 원래의 원경능도 점차 모진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혹 자기 보호를 더 잘할 수 있을 수 있으나 결국 자신을 잃게 된 것이었다.우문호가 저녁에 돌아올 때 제왕을 데리고 함께 돌아왔다.그은 노기등등한 모습으로 초왕부에 도착하더니 바로 소월각으로 들어가 숨었다.원경능이 호기심에 물었다."왜요? 왜 구신이라도 본 듯이 숨어요? 누가 기분을 상하게 했기에 노기등등한 얼굴이에요?"우문호는 자리에 앉아 차를 벌컥벌컥 마셨다. 원경능은 자신 곁으로 끌어오고는 배를 어루만지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아들아, 기억하거라. 네가 이후에 만일 일곱째 삼촌처럼 못난 짓을 한다면 뺨을 갈겨 죽일 것이야."원경능은 그의 손을 두드리며 웃었다."무슨 아들이에요? 딸이면 안되나요? 제왕이 왜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어요?"우문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이 놈이 연속 이틀 동안 관아로 와 나를 찾았어. 공무가 가득한데 저놈 때문에 한 건도 해결하지 못했잖아. 이것 봐, 오늘밤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