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한 이는 소철수만이 아니었다. 소은의 부친 소철주와 할머니 역시 그 소식을 들은 뒤로는 온종일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갖고 싶은 것이 있느냐?” 소철수가 묻자, 소은은 잠시 생각한 뒤 대답하였다.“폐하께서 앵무새를 하사하셨는데 이를 돌보는 이를 한 명 들일 수 있겠습니까?”“좋다, 내일 아침 곧장 알아보도록 하마.” 소철수는 흔쾌히 허락하였다.그 후, 소은은 할머니와 큰어머니 위씨 앞으로 다가가 추렵 중 있었던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고금란은 경무제가 소은을 어떻게 대하였는지, 어떻게
장명희는 그저 심드렁하게 말했다.그러자 소철주가 급히 덧붙였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제가 첩을 한 명 더 들여드릴까요?” 장명희는 그저 태연하게 말을 이었지만 그 속뜻은 날카로웠다.소철주는 그 말에 몸을 움찔하며,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내 잘못이오. 하지만 그자와는 아무 일도 없었소. 그리고 몇 해 지나 모친께서 세상을 뜨시면 그자를 보내려 하였소. 그리되면 당신을 배신하지도, 불효도 아니니 때를 기다린 것이오…”장명희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땐 어찌할 것입니까?”
“점점 못하는 말이 없구나.”장명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제가 경솔했습니다.”소은이 바로 잘못을 인정했고 그제야 장명희는 한층 누그러진 얼굴로 조용히 말하였다.“너의 외조모께서도 이 서신을 받으신다면 무척 기뻐하실 것이다.”*옹주는 도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은 탓인지 한 달이 넘도록 한진 장공주의 답신은 올지 않았다.그보다 먼저 궁술 시험 날이 코 앞에 다가왔다.소은은 궁술을 나름 익힌 편이었으나, 시험 전부터는 과자 한 조각도 입에 대지 못할 정도로 긴장이 엄습해왔다.시험 당일, 아직 동이 트기 전
“소은 낭자와 그러한 접촉은 없었습니다.” 강준은 담담히 대답했다.양관 선생은 그를 의심치 않았다. 강준이 소은과 관계가 있었다면, 소국공부에서 이미 찾아와 책임을 묻고도 남았을 것이다.“실로 기이한 일이로다.” 그 역시 별다른 실마리를 찾지 못한 듯 고개를 저었다.허나 강준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어디까지나 모두 사람의 짓일 뿐, 그저 상대가 한 수 위였을 따름입니다.”상대의 목적을 밝혀내기만 하면, 소은이 어찌하여 활쏘기 실력을 갖추게 되었는지도 자연히 드러날 것이다.*학당으로 돌아온 소은이 차를 마시며
그 여인은 그와 특별히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낯설지도 않았다.경화거를 거리낌 없이 차지하고, 온갖 자질구레한 물건을 여기저기 흩뿌려놓아 본래 단정하던 경화거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그럼에도 강준은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침소를 내어주고 자신은 서재에서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서재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고, 손에는 신나라 명장 신도 장군이 쓰던 ‘작요’라 불리는 명궁을 들고 있었다.사내들이 너나없이 탐내던 바로 그것이었다.여인은 실로 경국지색이 따로 없었다. 살결은 곱고 매끄러워 삼월에
장명희가 마다하니 고금란 역시 억지로 강요하진 못했다.소은은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국공부 살림을 도와드리는 것을 극구 사양할 것까지는 없었습니다.” 소은은 소국공부가 큰어머니 손에서 계속 적자를 보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게다가 재물을 손에 쥔다는 것은 곧 권력을 쥐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차남인 아버지는 관직이 높아 외부에서 대접을 받지만, 집에서는 여전히 큰아버지 아래였다. 형제간의 사이가 좋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그 우애가 평생토록 이어지리란 보장은 없었다. 만일 국공부의 살림
고금란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 번졌다.“잘난 체하는 꼴을 좀 보거라. 난 그저 의논하려 한 것뿐인데 마치 이미 그자 발 아래에 소은이 짓밟힌 것처럼 구는구나.”“소은이 이리도 고운 데다, 이제 활쏘기까지 나라 안 으뜸이니, 대연의 사내들 중 누구든 고르기만 하면 될 터인데 굳이 선왕부를 택할 필요는 없죠.”체면을 무엇보다 중히 여기는 고금란이였기에 이 일로 선왕부와 혼사를 엮을 생각을 단념하게 되었고, 반면 위씨는 그제야 마음이 한결 놓였다. 선왕부가 소윤이를 마다했듯 소은이라 하여 눈에 들 리 만무하다 여긴 것이다.소은이
공주부 출신의 어머니가 있으니 창고는 그야말로 없는 게 없었다. 그래서 작요를 찾는데도 한참 걸렸다.단향목으로 제작된 작요는 보통의 활보다 많이 무거웠지만 활시위의 탄력이 더 뛰어났다. 온통 검붉은 색으로 된 손잡이 쪽에 질감이 투명한 흑옥을 박았다. 보통의 옥석은 호수처럼 색감이 투명하거나 한여름의 태양처럼 붉은빛을 띄는데 흑색의 옥은 그리 많지 않았다. 활에 박은 이 옥석만 해도 가치가 어마어마했다.소은은 아무리 찾아도 부부 합방에 관한 책을 찾을 수 없었다.회귀하고 돌아와서 그걸 감상하고 괜찮은 부분에는 평론까지 옆에 적
강준이 말했다.“괜찮습니다. 어차피 언젠가 알게 될 거니까요.”이는 어떻게든 그녀를 끌어들이겠다는 의미였다. 앞으로 그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질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소은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겉으로는 침착함을 유지했다.“저는 세자를 위해 일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앞으로 제 아버지를 관대하게 대해주셨으면 합니다.”“송 각로 사건에 관해 아버님께 죄를 사하여 주라는 상소문은 올리지 말라고 하세요.”강준이 말했다.소은의 입장에서는 꽤 의외였다. 그러다가 전에 진명우를 찾아갔을 때가 떠올랐다. 그는 일 때문에 랑야에 다
밀실의 차가운 온도에 소은은 손발이 마비가 올 것 같았지만 억지로 눈물을 참아냈다.그녀를 바라보는 강준의 시선은 동물이나 물건을 바라보는 것처럼 싸늘하기 그지없었다.그와의 대치에서 소은은 당연히 우위를 점할 수 없었다.“저는 세자의 비밀을 알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결국 그녀는 먼저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그가 두려운 것은 아니나 감정적으로 굴며 자존심을 내세워서 좋을 게 없었다.“난 아씨의 비밀에 꽤 관심이 있습니다만.”미풍이 불어와 책상 위에 놓인 한지가 살짝 날아올랐다. 그것은 소은이 며칠 전 부가은에게 건넸던
소은은 진작에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선왕비는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이니 그녀에게서 나온 처방이라고 하면 절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을 것이다.선왕부와 소국공부가 엮이는 것을 굉장히 꺼려하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후배에게서 처방을 받는다면 분명 자랑하고 다닐 것이다. 어린 후배들의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웃어른들의 생각은 거의 비슷했다.강미는 이미 그녀를 경계하고 있으니 소은은 심지연을 설득하는 게 빠르다고 생각했다.“처방을 알약으로 만들고 괜찮은 이름을 붙여 심지연 언니에게 줄 거예요. 그리고 언니가 왕
항상 이 주제를 피하기만 하던 강민은 오늘따라 꽤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제가 마음에 둔 사람을 어머니가 마음에 들어하시지 않을까 봐 걱정이지요.”강준은 저도 모르게 그를 바라보았다.강 부인이 말했다.“청렴한 가문의 아이라면 다 좋아.”둘째는 선왕부의 세자도 아니고 장남도 아니니 혼인 문제에서 꽤 자유로운 편이었다.강민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좀 더 시간을 주세요.”아들의 성미를 잘 아는 강 부인은 그가 머뭇거리는 것을 봐서 신분이 특별하거나 셋째와 혼담이 오간 사이라고 짐작했다.하지만 그녀는 그리 보수적인 사
“둘째 공자, 오늘 제가 찾아온 일을 세자께는 말씀드리지 말아주세요.”대화가 거의 끝나갈 때쯤 소은이 말했다. 또 강준이 자신이 의도적으로 가족들에게 접근한다고 오해받기는 싫었다.“그래.”어차피 개인적인 일을 강준에게 얘기할 필요는 없었다.전생의 소은은 강민과 사적으로 교류한 적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가 겉으로는 차갑지만 속은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대화가 이렇게 순조로울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그녀는 할머니가 애초에 강민을 신랑감으로 점찍었다면 오히려 나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강준보다는 교류하기
소은은 복희를 위로해 주었다. 그러자 복희가 울음을 터뜨렸다.“제가 둘째 공자의 먹을 깨뜨렸으니 분명 공자께서 저를 벌하실 겁니다.”복희가 겁에 질려 말했다.그건 강민이 정말 어렵게 구한 먹이었는데 먹 중에서도 희귀품이라고 했다.강민은 나가기 전에 먹을 자신의 서재로 가져가라고 분부했는데 그걸 가지고 가다가 깨뜨렸으니 어떻게 주인에게 보고해야 할지 막막했다.하물며 강민은 큰 공자나 세자처럼 부드러운 사람도 아니었다. 군영에서 부하들을 벌할 때도 절대 봐주지 않은 거로 유명했다.복희가 세자를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평가한 걸
소은은 조금 걱정이 됐지만 그렇다고 강준에게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어서 심지연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소준도 집에 없으니 강준이 아니면 진명우의 상황을 알아볼 사람이 없었다.강미는 그녀를 멀리하는 상황이니 다가가고 싶지도 않고 심지연에게도 자신이 누구에게 마음을 주었는지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그리고 심지연은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 딱히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소은의 부탁을 들은 심지연은 그녀를 자세히 관찰했다. 강준이 소은을 거절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소은이 진명우의 상황을 궁금해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저도 모르
예전에 그녀가 선왕비에게 추천한 흉터를 없애는 처방도 그 중 하나였다.“우리 가문 이름을 달고 점포를 차리려는 거라면 도와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어요.”부가은은 단번에 소은의 말을 알아들었다.“첫째, 아가씨의 말을 들어보니 주요 고객은 경성의 귀족 부인이나 아가씨들 같군요. 만약에 사고가 나면 우리 가문은 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해요. 그러니 처방의 안전성은 제가 직접 확인해야겠어요. 그러면 제가 처방을 누설할 위험 부담이 존재하겠죠. 그건 아가씨의 선택에 달렸어요. 둘째, 우리가 수익을 어떻게
소은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상인 가문의 딸 부가은에게 시선을 두었다.전생에 오라버니와 부가은은 온갖 반대를 겪고 힘겹게 약혼했는데 결국 혼인식도 올리지 못하고 오라버니가 세상을 떠버렸다. 부가은은 다른 사람과 혼인할 수는 없다면서 자결을 택했다. 소은은 이번 생에는 그들이 행복한 부부가 되기를 바랐다.부씨 가문은 현재 명성도 꽤 올라간 상태였다. 경성에 부자 가문이 누구냐고 따지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문이 부씨 가문이었다. 궁중의 마마님들이 쓰는 비단, 자기, 찻잎, 백성들이 자주 차 마시러 가는 객잔, 옷감, 각 업계에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