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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도윤이 아니었다.

"최하준! 네가 여긴 웬일이야?"

하준을 보자마자 나미의 표정이 변했다.

둘은 과 친구였고 한때는 가깝게 지냈었다.

그러나 나미는 오늘 아침 하준이 도윤을 갖고 장난친 사실을 알게 되고 크게 화를 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놈은 낯짝이 두껍게도 그녀의 생일파티에 참석하러 온거였다.

"나미 너 아직도 화 났어? 어제 밤 일은 그냥 장난이었다니까? 도윤이 상우한테 그걸 진짜 가져다 줄 지 누가 알았겠어?"

하준이 기분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의 기숙사 친구들도 몇 명 함께 왔는데 모두 선물을 가지고 왔다.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긴데, 나미네 집안 역시 매우 부유했고 나미는 이미 몇 번이나 도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하지만 도윤은 늘 그녀의 호의를 거절했다.

하준은 고등학교 때부터 나미와 알고 지냈다.

"나미야, 이 사람이 방금 말한 도윤이 니가 소개해준다던 이도윤이니? 무슨 일이라도 생긴거니?" 연아가 하준을 응시하며 물었다.

연아를 보자마자 하준의 눈이 반짝였다. 사실 하준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연아와 친해지고 싶었다. 연아는 신문방송학과 여신으로 이미 학교에서 유명했다.

이렇게 뻔뻔하게 와서 나미에게 사과 할 용기를 낸 유일한 이유가 연아도 여기에 올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준은 연아의 말을 듣자 마자 말을 걸었다. "안녕, 예쁜 연아야. 이도윤은 내가 어제 장난 좀 친 가난뱅이 과 친구야! 하하하…"

하준은 어제 밤 도윤이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피임 용품을 배달했다는 것을 떠올리자 크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입 닥쳐!" 나미가 하준을 째려 봤다.

연아와 그녀의 친구들 표정이 야릇하게 변했다.

가난한 학생과 부유한 학생 사이에 정말 그렇게 큰 차이가 있었나?

도윤의 기숙사 친구들 또한 이때 불쾌한 표정들을 지었다.

"알겠어, 알겠어. 이제 아무 말도 안 할게."

하준은 웃으며 말했다. "나미야, 내가 가져온 네 생일 선물 좀 봐."

이 때, 누군가 가볍게 문을 노크했다.

다음 순간 문이 열리고 도윤이 빨간색 봉지를 손에 든 채 들어왔다.

"도윤이 너 이제 왔구나!"

나미가 웃는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여보였고 곧 하준이 있다는 것을 알아 보았다. 하준은 조롱하는 표정으로 도윤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실 예전 같았으면 도윤은 하준앞에서 기를 펴고 서있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얘가 이도윤?

이 때 연아도 도윤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사실, 연아는 정말로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은건 맞았다.집안이 엄청 부유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일반 가정이라고 해도 괜찮았다.

단 잘생겨야 했고 자신을 빠지게 만드는 매력 하나쯤은 갖추고 있는 남자이길 바랬다.

지금 눈앞에 서있는 도윤이라는 애는 잘생기긴 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입고 있는 것을 모두 다 합쳐 5만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범해도 너무 평범했다!

더군다나 좀 전에 하준이 했던 말들이 생각나서 도윤에 대한 인상은 최악에 달했다.

연아의 얼굴에 실망감이 가득했다.

"도윤아, 얘는 연아라고 해! 연아야, 여긴 내 친구 도윤이."

나미가 웃는 얼굴로 둘을 소개해주었다.

도윤이 인사했다. "안녕, 난 이도윤이야. 만나서 반가워."

도윤이 정중하게 악수를 청했다.

그러나 연아는 도윤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돌아 서서 주스만 계속 마셨다.

도윤은 허공에 있던 손을 씁쓸하게 거두었다.

나미는 베스트 프렌드인 연아의 성격이 원래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연아가 관심이 있는 상대라면 더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완전 무시를 할 것이다.

도윤은 이 상황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테이블에 찾아 앉았다.

이 때, 하준이 도윤의 손에 들린 빨간색 봉지를 보았다.

"야, 이도윤, 오늘 나미 생일인데 너 선물 뭐 가져 왔냐? 우리한테 그것 좀 보여줘."

도윤의 기숙사 방장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끼어 들었다. "하준아, 넌 왜 맨날 도윤이를 괴롭히니?"

하준은 다른 사람을 놀리거나 괴롭히는 것을 진심으로 즐겼기 때문에 그냥 웃기만 할 뿐이었다.

하준은 차가운 표정으로 도윤을 쳐다 본 뒤, 자신이 나미를 위해 가져온 생일 선물을 꺼내었다.

하준도 나미를 위해 검은색 브랜드 가방을 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미야, 내가 사온 선물, 에르메스 가방이야."

하준이 가방을 꺼내자마자, 연아와 그녀의 예쁜 기숙사 친구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에르메스 가방? 이 가방 적어도 하나에 8백만원은 하던데, 맞지?"

예쁜 여자들이 하준을 바라보는 눈빛이 변했다. 하준의 인상이 달라 보이기까지 하였다.

이 사람 진짜 통이 크구나.

항상 시크함과 도도함으로 유명한 여신 연아도 이번에는 하준을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야. 우리 아빠가 에르메스 매니저랑 아는 사이라서 7백90만원 밖에 안줬어."

하준은 웃는 얼굴로 이 순간 모두가 그에게 보내는 감탄의 눈빛을 즐겼다.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고 심지어 하준을 경멸했던 나미조차도 아무 말도 못한 채 가방을 손에 들고 있을 뿐이었다.

"이 에르메스 럼블은 에르메스가 출시한 신상 가방이야. 마카오, 홍콩, 대만에서 인기가 대단하지. 이거랑 똑같은 가방이 거기서는 천2백만원정도 한다니깐!"

연아는 나미의 손에 들려있는 가방을 보며 유유히 말했다.

연아의 표정을 본 하준이 재빨리 말했다. "연아 여신님, 명품백에 대해 잘 아시네요."

연아는 하준을 쳐다 보면서 약간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이전에 똑같은 가방을 사고 싶었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서…"

하준이 재빨리 답했다. "우리 연아 생일에 가방 사줘야겠네! 8, 9백만원은 나한테 별거 아니야. 게다가 우리학교 건너편에 있는 에르메스 부티크 샵 사람들 전부 다 내 지인들이라고."

연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준을 보며 웃기만 할 뿐이었다.

비록 하준을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했지만, 연아는 하준에 대해 들은바가 있어 그가 바람둥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생각밖으로 오늘 본 하준은 대범하고 통이 크기까지 했다.

연아는 이 순간 하준에게 약간의 호감을 느꼈다.

그 뒤로 도윤의 기숙사 방장과 기숙사 친구들이 한명씩 가져온 선물을 나미에게 주기 시작했다.

다른 선물들은 하준의 명품 가방만큼 비싸지는 않았지만 그것들 또한 3, 40만원정도는 되었다.

도윤은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모두 끝난 뒤에 나미에게 선물을 줄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하준이 도윤을 그냥 놔둘리 없었다. 그는 도윤의 손에 들린 빨간색 봉지를 보고 능글 거리며 말했다. "이도윤, 네가 사 온 나미 선물 좀 보여줘. 들고 있는 빨간색 봉지 좀 봐! 완전 경사스럽네."

"최하준, 그 입 좀 닥쳐줄래? 난 도윤이 주는 건 뭐든 상관 없이 좋기만 하거든."

나미가 하준에게 다시 경고했다.

그러나 나미 역시 기대에 찬 표정으로 도윤을 쳐다보고 있었다.

도윤은 자신의 행동이 조금 후회되기 시작했다.

서둘러 오기 위해 판매원이 가방을 포장 할 30분을 기다리지 않은게 미스테이크였다.

그는 단순히 친한 친구 몇 명만 모인다고 생각했다. 저 망할 놈의 최하준도 여기에 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나미야, 나도 널 위해 가방을 샀어."

도윤이 봉지에서 가방을 꺼내며 말했다.

연아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 사람 가난뱅이인것도 모자라 진짜 촌스러워.

"와우!" 도윤이 가방을 꺼내자마자 하준이 소리쳤다.

"이도윤이 정말로 에르메스 가방을 사왔어! 이도윤도 나미에게 명품을 선물하네!"

"이도윤, 어느 시장 노점상에서 이 가방을 샀는지 좀 알려주라. 싸게 샀어?"

하준의 말에 여자들이 전부 크게 웃어댔다.

연아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원래는 도윤이 가난하긴 해도 좋은 친구로는 괜찮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제 연아는 진심으로 도윤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건 200주년 기념으로 만든 한정판 에르메스 가방이야. 전세계에 200개만 있고 하나에 적어도 5천만원 이상이야!"

연아는 즉시 그 가방을 알아 보았다.

"인터넷에 짝퉁도 워낙 많아서 위조품 가격은 10만원도 안돼. 하지만 아무리 허영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이런 최상급의 짝퉁 명품을 사는건 피해. 왜냐면 금방 들통나니까!"

연아는 전혀 예의를 차리지 않고. 도윤을 쳐다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이 사람 정말 뻔뻔하네!

솔직히 나미는 도윤이 생일 선물로 작게라도 뭔가 준비해올줄 알았지만, 그가 대놓고 짝퉁을 선물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고마워, 도윤아. 진짜 고맙고 네가 뭘 선물하든 난 행복해. 하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비싼 돈 쓰지 마. 10만원이면 너한테 얼마나 큰 돈인데!"

도윤은 그것이 정품 에르메스 가방이라고 스스로 나미에게 해명하고 싶었지만 이미 연아와 그녀의 기숙사 친구들이 그에게 경멸의 눈빛을 보내는 것을 의식하고 할말을 잃었다.

그가 아무리 설명한다 한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고 결국 그들이 그를 더 경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연아가 나미를 보며 말했다. "나미야, 넌 왜 저 신용 떨어지는 애랑 친구가 된 거니?"

나미는 도윤이 난처해 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이야기 주제를 바꾸려고 했다.

"얘들아 얘들아, 여기 좀 봐봐, 오늘 내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이렇게 모여줘서 너무 너무 고마워! 자 모두 잔을 들어!"

하지만 남자들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고, 연아와 그녀의 기숙사 친구들도 못말린다는 표정으로 도윤만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하준과 그의 친구들은 키득키득 도윤을 비웃었다.

도윤은 나미가 그와 친구들 사이에서 난처해 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일어 섰다. "나미야 생일 축하해, 근데 지금 막 기숙사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생각 났어. 나 먼저 갈게. 재밌게 놀아!"

도윤은 자신이 불청객 임을 깨닫고 곧장 나가려고 일어났다.

"이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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