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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도윤은 알고있었다. 수아가 사진을 되돌려받고 싶다면서 한번 만나자 한것은 한낱 핑계에 불과하다는것을.

사실, 도윤은 수아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예전의 도윤은 수아를 정말로 사랑했기 때문에 지금도 가슴이 너무 아팠다.

지금 이 순간, 수아에게 아무런 감정이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것 또한 거짓말일 것이다.

도윤은 수아의 의기소침한 목소리를 듣고는 마음이 약해져 바로 만나러 가겠다고 했다.

도윤은 일어나서 그동안 서랍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던 사진을 찾았다.

예전에 둘이 캠퍼스 호숫가에서 찍은 소중한 추억이 사진속에는 수아가 다정하게 도윤의 팔짱을 끼고 있었고, 도윤 역시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안고있는 모습이였다.

그러나 이는 이미 지난 과거가 되었고, 사진을 보고있는 도윤의 마음은 너무 아팠다.

추억에 젖어있던 도윤은 무심코 아침에 은행에서 인출한 1억을 발견했다.

사실 이 돈으로 과거에 못해 본 모든 것들을 마음껏 해보는데 쓰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너무 순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현금이 전혀 필요가 없었다. 누나가 준 카드만 있으면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도윤은 이렇게 많은 돈을 기숙사에 두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만약 기숙사 친구들이 이 돈을 발견한다면 어떻게 상황을 설명해야 할까?

몇 년 동안, 그의 가난 때문에 지금 곁에는 진짜 친구들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도윤이 이제 와서 갑자기 진실을 밝힌다면 소중한 무언가를 잃게 될까 두려웠다.

“좋아. 수아를 만나러 내려거던 김에 은행 계좌에 이 1억을 입금해야지.”

도윤은 괜찮은 주머니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숙사에서 흔히 볼수 있는 검정색 쓰레기 봉투에 1억을 집어넣고는 바로 나왔다. 호주머니엔 수아와 캠퍼스 호숫가에서 찍은 사진을 간직한채.

캠퍼스 호수앞.

“여기야, 이도윤!”

수아는 걸어오는 도윤을 보자마자 그에게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아직 사귀고 있을 때와 똑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지금 가장 심란한 사람은 바로 수아였다.

도윤이 오늘 자신과 상우가 보는앞에서 5천 5백만원짜리 에르메스 가방을 샀다.

5천 5백만원이라니!

보통 사람이 그만한 돈을 버는데 얼마나 걸릴까?

특히 그녀가 도윤을 차버리자 마자 도윤이 부자가 되었기 때문에 이 상황은 더욱 아이러니했다. 수아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누구보다 더 궁금했다.

그것이 사진을 핑계로 도윤을 만나기로 결심한 이유였다.

“무슨 일이야?” 도윤은 수아를 보면서 흔들리긴 했지만 애써 차갑고 무관심한척 했다.

수아는 도윤의 손에 들린 검정색 쓰레기 봉지에 눈이 갔다.

그리고 말했다. “난 네가 날 만나러 올 때 뭔가 다른 걸 들고 올 거라 생각했어.”

수아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그녀는 원래 도윤이 5천 5백만원짜리 에르메스 가방을 들고 와서 자기와 다시 만나달라고 애원하기를 은근 기대했었다.

예상과 달리 그는 그녀를 만나고 난 뒤 쓰레기를 버리러 가려고 했다.

도윤은 호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냈다. “여기 있어, 수아야. 이 사진만 돌려주면 우린 이제 더 이상 볼 일 없는 거지?”

도윤은 추억으로 그 사진을 간직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순간 기분이 상한 수아는 발을 구르며 도윤의 가슴을 쳤다.

“이런 바보! 넌 진짜 바보야! 너는 정말 내가 여기서 만나자고 한 이유가 그냥 이 사진을 돌려받고 싶어서라고 생각한 거니?”

도윤이 놀라는 표정을 했다. “그게 이유가 아니면, 그럼 왜 만나자고 한 건데?”

“이도윤, 내가 어떻게 말해야 네가 알아들을수 있을까? 넌 진짜 내가 상우랑 무슨 관계라도 된다고 생각하니?”

수아가 말했다. “너 바보구나! 난 너를 시험해 보고 싶어서 그랬을 뿐이야!”

“날 시험한다고?” 도윤이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수아가 그를 시험해보고 싶어서 상우와 숲에 갔었다? 결국은 그녀 자신에 대한 시험인 것 같았다.

도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넌 네가 원하는 시험마저 해. 이 사진은 그냥 돌려 줄게. 그리고 우리 둘은 이제 만나지 않는 게 좋겠어. 안녕!”

도윤은 머리를 가로 저으며 돌아서버렸다.

“너, 너… 이도윤, 거기 서! 지금 가면, 나 당장 호수로 뛰어들 거야!”

수아는 그녀의 말이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줄만큼 순종적이고 사려 깊었던 도윤이 지금 이렇게 무심하고 차갑게 행동할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도윤은 수아가 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가버리려던 찰나, 수아가 호수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수아가 호수를 향해 기울어지는 것을 보고 도윤은 두려움으로 눈꺼풀이 경련하는 것을 느꼈다.

도윤은 급히 수아에게 뛰어가 백허그로 그녀를 껴안아 호수로 뛰어 드는 것을 막았다.

수아의 두 눈에 눈물이 그득했다. “놔! 네가 날 못 믿는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아! 그냥 죽게 놔둬! 죽을 거야!”

도윤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솔직히 그는 더 이상 수아를 믿지 않았다.

수아가 왜 그를 차버렸는지 기주에게 들은 이후라 특히 더 그랬다.

그러나 수아는 그가 떠나면 호수에 뛰어 들겠다고 협박하고 있었고,정말로 뛰어들 태세를 보였다.

도윤은 순간 조금 감동을 받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서둘러 말했다. “좋아, 알겠어, 믿을게.”

그제서야 수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알고 있었어, 이도윤! 네가 여전히 날 사랑하는 거 다 알고 있었다고. 내가 오늘 호수에 뛰어 들었다 해도, 그건 네가 에르메스 가방을 샀거나 이제 부자이기 때문은 아니야. 난 단지 널 향한 내 사랑이 진짜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을 뿐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난 물질적인 여자인 적이 없었어.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그렇게 오랫동안 사귀지 못했을 거야!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수아가 도윤을 미심쩍게 쳐다보았다. “근데 도윤아, 나 정말 궁금한게 있는데. 어떻게 갑자기 그렇게 부자가 된 거야? 어떻게 5천 5백만원짜리 가방을 살 수 있었어?”

수아는 드디여 참지 못하고 도윤에게 물었다.

도윤은 수아가 분명히 이 질문을 할 거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그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던 도윤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도윤도 수아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아, 이런 일이 있었어. 몇일 전에 내가 어떤 어린 소녀가 차에 치일 뻔한 걸 구해줬거든. 그런데 그 소녀의 가족이 그렇게 부자일지 상상도 못했어. 그 여자애의 부모님이 일회성 쇼핑 카드를 사례의 뜻으로 주겠다는 거야. 그 사람들이 나에게 아주 값진 카드라며 그냥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하더라고.”

수아의 눈이 즉시 커졌다. “다시 말하자면, 그 유니버설 글로벌 슈프림 쇼퍼스 카드는 딱 한번만 사용할 수 있다는 거네?”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가방은 지금 어디 있어? 분명 그 가방을 재판매 하면 큰 돈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수아는 마음속으로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도윤이 하룻밤 사이에 부자가 된줄 알았는데...

하지만 적어도 그는 5천 5백만원짜리 에르메스 가방은 가지고 있었다.

“도윤이 대답했다. “그 에르메스 가방은 나미에게 생일 선물로 줬어.”

“뭐?!” 수아는 충격을 받았다. “그 가방을 줬다고? 네가 5천 5백만 원짜리 가방을 선물로 다른 사람에게 줬다고? 다시 말해서,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거야?”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아야, 나 정말 니가 돈따위에 관심이 하나도 없을줄은 몰랐어. 네가 정말로 나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우리…”

도윤이 수아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짝!

“나한테서 떨어져! 왜 내가 너 같은 거지를 사랑하니?”

'진실'을 알게 된 수아는 도윤의 뺨을 세게 때렸다.

“시발. 내가 너 때문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니! 하마터면 호수에 뛰어들 뻔했잖아! 제길 모자란 놈! 바보같은 놈!”

수아가 혐오감에 찬 눈으로 도윤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하하하…

도윤은 수아의 이런 반응에 완전히 마음속에서 수아를 포기했다.

이것이 진짜 수아의 본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아야, 너한테 정말 너무 실망이다…” 도윤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예전에 얼마나 사랑했었는데.

“내 시간 좀 낭비하지 말아줘. 너 같이 가난한 남자가 나에게 실망하든 말든 난 상관 안 해. 내가 정말 너한테 내 시간을 낭비하는 짓 따위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너 같은 사람들은 쓰레기나 주워야 해!”

화풀이를 하려고 수아는 도윤의 손에 있던 쓰레기 봉지를 잡았다.

수아는 쓰레기 봉지를 바로 도윤의 얼굴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그러다 수아가 봉지를 너무 세게 잡는 바람에 쓰레기 봉지가 찢어졌다.

1억이 바닥에 쏟아졌다.

그것들은 전부 노란 지폐였다!

“뭐야? 이건…”

땅에 떨어진 돈을 보자 믿을 수가 없다는 듯 수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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